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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새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달리는 차 안. 이마에 메디컬패치를 붙인 일본 대사 ‘코바야시 슈스케’는,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렸다.
“흠……!”
힘 있는 콧김이 그의 속이 얼마나 끓고 있는지 대변해 줬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옆에 앉은 경호원 ‘이시카와 메이’가 입을 열었다. 그녀 또한 화가 나긴 했으나, 그것보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이 더 컸다.
“후우… 본국에 알려, 그냥 넘어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겁니다.”
경호원이지만, 그녀는 일본 내 각성자 중 최강 100인 중에 하나이기에 대사는 존대로 응했다.
“화를 좀 가라앉히세요. 상대는 귀환자예요. 신중해야 합니다.”
“우린 대 일본제국입니다! 미국은 당연하고, 저 거대한 중국과 러시아도 우리 눈치를 본다고요……! 그런데 이런 약소국에 귀환자가 하나 나왔다고 해서 조심해야 되는 게 말이 됩니까? 내 아까는 어쩔 수 없어서 고개를 숙였지만, 우리 대 일본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그냥 둬선 안 될 중대 사안입니다.”
핏대를 올리며 흥분하는 대사에, 메이는 한숨을 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백발의 귀환자와의 첫 만남을 다시금 회상하며, 그 존재감 자체에 몸을 떨었다. 그런 그녀를 힐끔 쳐다본 대사는 헛기침을 하며 사과했다.
“크흠……! 거, 메이 양에게 화를 낸 건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시오. 아까의 치욕스러움이 울컥 올라와서 그렇습니다.”
메이는, 일본 내 각성자 최강 100인 중에서도 굉장히 유순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한숨 쉬는 것 정도로 끝났지, 다른 이였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피를 봤을 것이다.
그렇게 사과하는 대사를 무시한 채 메이는 생각했다.
‘본국에 알려야 돼.’
그와 공방을 주고받진 않았지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해 본 메이는 상대가 얼마나 잔혹하고 무서운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다. 하여, 직접 본국으로 가, 자신이 느낀 것을 말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 * *
“흠- 유전자가 반만 일치한다라.”
“말하는 걸 보면 기억은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환골탈태를 했다고?”
“예.”
“환골탈태라는 것이 유전자도 변형시키는 건가?”
“환골탈태의 사례가 없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흠…….”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장 ‘박창식’은, 귀환자의 프로필과 상담 내용이 담긴 태블릿을 연신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디멘션 쇼크 때 이계로 간 신시우가, 이 종족에게 잡혀 그 기억을 송두리째 빼앗겼고, 그 이 종족이 신시우의 흉내를 내며 고향으로 왔다면?”
“음. 좀 과도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런 시대가 왔다. 그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시대. 협회장은 새삼 그런 것을 느끼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똑똑.
그때 한 남자가 황급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스승님! 들으셨습니까?”
상당히 격앙되어 있는 남자는, 협회장의 제자 ‘이준’이었다.
“뭘?”
“일본 대사가 공격당했답니다.”
“일본 대사?”
“예! 주한 일본 대사가 또 시내 한복판에서 행패를 부렸는데, 그 상대가 하필 귀환자였답니다. 그래서 직접 시비를 걸었던 경호원 놈은 거의 반 죽었고, 대사는 이마에 피가 날 정도로 아스팔트에 머리를 박고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으하하하하하하!”
협회장은 웃겨 죽겠다는 듯 책상까지 손바닥으로 쳐 가며 웃어 댔다.
“내 살다 살다 이런 통쾌한 소식은 또 처음이구만.”
그러나 그런 협회장과는 달리, 제자 이준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스승님. 저도 일본 대사 엿 먹인 것은 기분 좋지만, 일본이 가만히 있을까요?”
이준의 머릿속엔 일본의 무시무시한 각성자 전력이 펼쳐졌다. 그들이 마음먹고 대한민국을 공격한다면, 아마 순식간에 정리될 것이 자명했다.
허나 그런 그와 다르게, 협회장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뭐, 대사를 죽인 것도 아니라며?”
“예.”
“그럼 명분이 부족하지. 상대가 귀환자인데, 함부로 뭔가를 하겠어?”
“그래도… 일본은 랭커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잖습니까? 맘만 먹으면…….”
“너 핵이 왜 무서운 줄 아냐?”
갑작스러운 핵무기 얘기에, 이준은 아리송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야 방사능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 방사능이 무서워서 보유만 하고 있어도 극도로 경계하는 게 핵무기다. 귀환자도 같은 맥락이야. 존재만으로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귀환자다. 그런 귀환자가 대사를 욕보였다. 그래서 어쩔 거냐? 칠 거냐? 귀환자 성향이 어떤지 잘 알게 해 주는 사건인데, 굳이 그 성질을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래도 그 근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맞는 말씀입니다.”
“나도 국가 비상대책 위원회에 속한 몸이야. 타국의 공격에 대한 수없는 시나리오를 보고 느껴 왔다. 일본이 작정하고 한국을 먹으려 하면 2시간도 되지 않아 한국은 완전히 무력화된다.”
끔찍한 시나리오였다. 그에 이준도, 옆에 있던 협회 간부 ‘함중훈’도 숙연해졌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지. 귀환자가 있는 이상. 일본의 정복욕은 한풀 꺾일 것이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귀환자라는 존재는 용서받을 수 있어. 그게 바로 이 시대다.”
그러나 협회장도 미지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니까.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옆에 서 있던 협회 간부 ‘함중훈’이 협회장에게 물었다.
“일단 만나 봐야지.”
* * *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갈 즈음. 드디어 내가 머무를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네에서도 꽤나 안쪽에 있었는데, 확실히 남 비서 말대로 주위가 조용했다. 거기다 뒤에 기운 좋은 산까지 있어서 마나의 흐름 또한 좋았다.
문으로 들어가 석재 계단을 올라가자 널찍한 앞마당이 나왔다.
“잠깐 여기서 대기. 남 비서.”
“예.”
“저 사람들 다 내보내.”
“예.”
바로 확인에 들어가기 위해, 남 비서의 마당 진입을 제지했다. 그리고 마당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 또한 모두 바깥으로 몰아냈다.
“후우…….”
마당의 한가운데에 선 나는, 깊게 호흡하며 체내 혈맥을 따라 마력을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일종의 준비운동 같은 개념이었다.
묵직한 마력이 뻥뻥 뚫린 혈맥을 따라 힘차게 돌기 시작했다.
샤아아아-
매섭지 않은, 부드러운 바람이 주변을 휩쓸고, 더 나아가 동네 전체를 쓸고 다니기 시작했다. ‘마력 고리’들이 공명하며, 내 마력은 끝도 없이 그 영향력을 넓혀 갔다.
어느새 동네를 벗어나, 이웃 동네를 넘어 아득히 멀리 나아갔다. 그렇게 대충 준비운동을 마친 나는, 오른쪽 어깨에 새겨진 약식 소환 마법진에 마력을 주입했다. 3개의 작은 마법 문신이 마력을 빨아들이며 빛을 발했고, 곧바로 소환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안개에 휩싸이며 나타난 ‘문’이었다. 거대한 석판으로 만들어진 그 문은, ‘마법 서고’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곳은 스승님이 만들어 놓은 아공간으로, 평생 동안 수집하고 연구해 온 마법 서적들과 각종 자료들이 보관된, 그야말로 지혜의 정수라 부를 만한 서고다.
이어서 황금빛 물결이 내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그 사이에서 크기가 다른 수십 개의 황금 고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각각 다른 물건들을 쥐고 있는 고리들은, ‘금빛 물결’이라는 이름의 보관형 아티팩트다.
마지막으로 높은 상공에서 강렬한 금빛 광채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오브’. ‘골든 스피어(Golden Sphere)’.
셋 다 멀쩡한 모습으로 소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어깨에 그려진 약식 마법진에 역으로 마력을 돌려 역소환 마법으로 세 아티팩트 모두 회수했다. 그러곤 넋 놓고 보고 있는 이들에게 손짓했다.
“들어와.”
“아, 예……!”
집 안으로 들어가자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걸어 다니는 인부들이 보였다. 아마 오랫동안 쓰지 않은 저택인데, 내가 와서 정돈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두운 석재들로 묵직해 보이는 외부와는 다르게, 내부는 차분한 색상들로 나쁘지 않았다.
“시우 님.”
옆을 걷던 수행비서 남제원이 나를 불렀다.
“어.”
“근처에 대통령님이 오셨답니다.”
“응? 왜?”
대통령이 왔다는 얘기를 들으니 대충 예상되는 것들은 있었지만, 썩 달갑지 않았다.
“돌아오신 기념으로 한번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귀찮게 하는군.
“들어오라고 그래.”
“옙.”
이 나라 꼬라지를 보건데, 아마 내게 도와달라고 무릎이라도 꿇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이라면 치가 떨리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아마 그는 나를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 * *
‘씨발이라…….’
귀환자에게로 향하는 차 안. 대통령 고귀재는 근심으로 가득한 얼굴로 창밖을 응시했다. 처음에는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기대를 품었으나, 막상 만나려니 근심이 가득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구상 최강의 존재라고 불리는 ‘귀환자’. 그 존재와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긴장되었지만, 그것보다 그가 귀환 후에 보인 행적이 그에게 더욱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등장과 동시에 일대를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쌍욕을 하며, 주변을 모조리 초토화시켜 버렸고, 근처 CCTV와 블랙박스 영상으로 본 일본 대사와 그 경호원에 대한 응징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후우…….”
그의 깊은 한숨과 함께 비서실장의 보고가 이어졌다.
“대통령님. 곧 도착합니다. 바로 올라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차가 멈추고, 긴장으로 굳은 얼굴의 고귀재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는, 함께 내린 경호실 인원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여기 남게.”
“예?”
대통령의 말에 경호실장이 정색했다.
“상대는 귀환자야. 자네들이 날 지켜 줄 수가 없네.”
단호한 대통령의 말에 경호실장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각성자인들 상대는 그것을 초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닐세. 우르르 가는 것보다 실장과 둘이 다녀오는 게 나아.”
“정 뜻이 그러시다면야…….”
짧은 한숨을 쉰 경호실장은 굳어 있던 얼굴을 풀며 비켜섰다.
“금방 올 테니까. 다들 쉬고 있게.”
그 말이 애써 태연한 척하려는 말이라는 것을 이곳의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들 숙연한 얼굴로 대통령을 마중했다. 마치,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귀재는 터질 것같이 뛰는 심장을 안고서 안내를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까지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귀환자들에 관한 수많은 소문들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응접실에서 그는, 소파에 앉아 백발의 뒤통수를 보이는 귀환자를 볼 수 있었다.
“귀환자님. 대통령님 오셨습니다.”
“들어오라 해.”
살짝은 짜증이 난 듯한 목소리에 고귀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한껏 긴장은 했으나, 이전에 그가 만나 보았던 각성자들 특유의, ‘상대를 압박하는 힘’은 느껴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응접실로 들어섰다.
그렇게 거만하게 앉아 있는 귀환자 앞에 선 고귀재는, 주저 없이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통령 고귀재라 합니다.”
예전 같으면 대통령이 인사를 한답시고 이런 식으로 고개를 숙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대통령은 말만 대통령이지, 최고의 통치권자나 국가 대표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였다.
지금은 그저, 권력을 잡은 각성자나 해외 세력들의 눈치를 살피며, 생존을 위해 외줄타기를 하는 한낱 정치인일 뿐이니, 이런 상황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귀환자는 앉으라는 손짓을 했고, 그가 앉자마자 귀환자는 질문을 던졌다.
“나를 찾아온 용건이 뭐지?”
너무나 자연스러운 하대였지만, 고귀재는 기분 나빠하는 대신, 바짝 긴장했다. 귀환자가 썩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드릴 것이 있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 귀환자는, 여전히 소파에 등을 기댄 자세로 말해 보라는 듯 지긋이 바라봤다.
* * *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찾아와 무슨 말을 할지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미 이 나라가 어떤 꼬라지인지 두 눈으로 보았고, 그간의 사정을 다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처절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현재 국가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주변 나라들의 위협으로 인해, 국민들은 흩어지고, 사회는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건지, 어금니를 한번 꽉 깨물며 잠시 쉬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본래 저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중대 결정을 내릴 생각이었습니다. 아마도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중에서 한쪽을 택해야 했을 테죠. 그런 와중에 귀환자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드시며, 그 무력을 세상에 보이셨죠. 저는 그때 결심했습니다. 꼭, 귀환자님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 난국을 헤쳐 나가겠다고.”
“하- 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한 나는 그를 무신경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이름만 고향일 뿐. 이곳은 내게 악몽의 세계였다. 이런 좋지 않은 기억뿐인 곳을 도와줄 의리 따윈 없었다. 만일 나라가 없어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통쾌함이 있을 것 같은, 그런 심정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돌려 보겠다고?
“귀환자님이 원하시는 바가 있다면 무엇이든 목숨 걸고 들어드리겠습니다.”
“원하는 바라…….”
한숨을 한번 내쉰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돌아가고 싶다.”
내 말에 대통령의 눈이 커졌다.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듯, 놀란 눈이었다.
“들어줄 수 있겠어?”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그는 입을 열어 해답을 제시했다.
“다른 차원과 연결되는 차원 관문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분명… 귀환자님이 계셨던 곳으로도 갈 수 있을 겁니다. 저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귀환자님이 돌아가실 수 있게 도울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모두가 도운다라…….”
과연 너희들이 도운다고 도울 수 있는 일일까? 마력과 기력이라는 힘을 깨우친 지 고작 27년밖에 안 된 곳에서, 차원 이동 마법 같은 것을 구현해 낼 수 있을까? 아니, 그 광대한 마법의 개념이라도 이해하는 자가 있을까?
고개가 저어졌다. 그런 존재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 혹여나 다른 세계에서 배워 온 자가 있다면 모를까. 그러나 그것도 썩 신뢰가 가진 않았다.
“나도 연구해 보진 않았지만, 차원 관련 마법은 굉장히 난해하고 복잡할 거야. 아마 이 지구상엔 그걸 이해조차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거다. 그래선 나를 도울 수 없어.”
그러니까. 네가 날 만족시킬 일 따윈 없다는 소리였다.
“만에 하나 아무도 그 마법을 이해조차 하지 못하여 도움을 드리지 못하게 된다면, 연구에 필요한 재료와 정보들이라도 최상의 상태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구할 수는 있고?”
내가 계속 튕기자, 고귀재는 굳은 얼굴로 시선을 내렸다. 그의 굵은 주름에서 간절함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도와주십시오.”
묵직한 한마디가 가슴을 울리고 지나갔다. 진심이 가득 담긴 울림. 그러나 그마저도 내 마음을 사로잡을 순 없었다.
“나는 그런 복잡한 싸움에 말리기 싫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렇지만 네 정성을 봐서라도 생각은 해 보도록 하지.”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들더니,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은 듯한 얼굴을 했다.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고 연락 줄 테니. 가 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일단은 일단락시킬 겸 대충 둘러댔다.
“첫날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알면 다음부터는 좀 상대방 생각도 해 가면서 약속을 잡아.”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념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통령이 떠나고, 집안은 다시금 정리가 되어져 갔다.
* * *
“아니, 씨발. 이렇게 중요한 때에 뭔 귀환자냐고! 이게 말이 돼!”
제1야당 ‘구라당’의 5선 의원 ‘주한진’의 비서실장은, 주한진의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 소리에 귀청이 나갈 것만 같아 눈을 꼭 감았다.
중국에 줄을 대고 있는 구라당은 곧 있을 대선에서 이긴 뒤 중국과 군신 관계를 맺고, 일본과 러시아를 물리칠 생각이었다. 그러곤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왕국으로 만들,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정당이었다.
나름 계획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나타난 귀환자로 인해 그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지게 생겼으니. 화가 치밀어 오를 만도 했다.
“어떻게… 중국에 얘기해서 처리하는 방향으로 가는…….”
“야! 너 드론 영상 봤어 못 봤어?”
“봐, 봤습니다.”
“그런데 씨발 지금 그런 말이 나와? 뭐, 그 새끼는 그냥 없애면 없어지는 그런 먼지 같은 건 줄 알아! 귀환자가 뭔지도 모르는 새끼도 아니고 말이야.”
‘박두한’ 실장은, 씩씩거리는 주한진의원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꾹 다물었다.
“후… 브로커들이 잘 해내길 바랄 수밖에 없겠군.”
대한민국에는, 오래전부터 각성자들을 꼬셔서 강대국에 넘기는 브로커들이 많았다. 근래에 들어서는 강한 각성자들도 없고, 그나마 있는 강한 놈들은 길드들이 꽉 잡고 있어서 각성자 브로커들이 자취를 감추었었다.
그러나 자취를 감추었을 뿐, 없어진 것은 아니었으니. 주한진 의원은 그들을 다시 부를 생각이었다. 그렇게 주한진의 흥분이 좀 가라앉자 박 실장은 잽싸게 입을 열었다.
“제가 알아봐 놓겠습니다.”
“출중한 놈으로 알아봐. 중국에 넘길 수 있는 놈으로.”
“옙.”
* * *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각. 저택의 정비가 마무리되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김 비서가 돌아왔다.
“다 내보냈습니다.”
“좋아.”
두 비서와 나를 제외한 모두를 집에서 내보낸 후 마당 앞에 서서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러곤 마법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 손으로는 수인(手印)을 맺어, 또 하나의 마법을 캐스팅해 갔다.
허공에서 집약된 마나들이, 푸른빛과 황색 빛이 도는 두 개의 마법으로 완성되어, 하나는 높이 솟아올라 그물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하나는 땅으로 내려앉아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그물처럼 퍼져 나간 푸른빛을 내는 마법은, 집의 경계선을 따라 내려와 정확하게 저택을 주변과 분리시켰고, 땅으로 퍼져나간 황색 빛깔의 마법은, 저택의 지하 면적까지 감싸며 저택의 경계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지상 경계면에서 만난 두 마법은, 하나가 되어 저택을 주위와 완전하게 분리해 냈다. 그렇게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결계를 완성한 나는, 간단한 인을 맺어 두 손에 푸른빛의 마법을 휘감았다. 그러곤 그 두 손을 두 비서의 어깨 위에 얹었다.
둘은 갑작스런 내 행동에 움찔했으나,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제 나와 너희들만이 이 집을 드나들 수 있고, 내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이 저택을 드나들 수 없다.”
“네.”
“이 결계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결계가 아니야. 그러니 이 저택에 함부로 손을 대거나 침입을 하려고 시도하는 놈들이 없도록 해야 할 거다. 함부로 손댔다가는 저세상으로 갈 테니까. 말이야.”
“네!”
“내일부터 바쁠 거니까. 각오들 하고 있어.”
“넵!”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나를 졸졸 쫓아온 김 비서가 물었다.
“혹시 기억나시는 한국 음식 있으십니까?”
“음…….”
싫은 곳이었지만, 그리운 음식도 있었다.
“짬뽕?”
내 말에 그녀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 중화요리를 좋아하셨군요!”
“어. 그랬지. 짜장면이랑 짬뽕. 그리고… 탕수육?”
그렇게 저녁 식사는 중화요리로 정해졌다. 그러나 요리사를 부른다는 김 비서의 말에, 누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 내가 그냥 네가 할 줄 아는 거 아무거나 하라고 했더니, 결국 배달을 시켰다.
“먹자.”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굳어 있는 두 비서에게 얘기하곤 젓가락을 들었다. 젓가락과 비슷한 것을 마계에서도 써 본 적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사용이 가능했다.
후르릅.
가장 먼저 맛본 짬뽕의 맛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분명 짬뽕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을 마계에서도 먹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향이 달랐다. 그냥 음식 냄새의 향이 아닌 스승님이 말씀하시던 고향의 향. 그것이 있었다.
스승님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뿌리를 기억해라. 뿌리가 없으면 너도 없는 것이야. 아무리 X 같아도 뿌리를 잊어선 안 돼.’
그것은 스승님의 말씀 중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고향이라는 곳은, 나를 못살게 구는 것을 넘어서, 결국 스스로 목에 줄을 감게 만들었던 곳이었다. 그런 끔찍한 곳을 뿌리라고 생각하라니. 그것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 생각들이 지금 서서히 옅어져 가고 있었다. 불같이 가슴속을 뜨겁게 달구었던, 좋지 않은 기억들과 분노들이 사그라들어 갔다. 낮에 먹었던 편의점 김밥 같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요리를 한 젓가락씩 집어 먹으며, 스승님의 말을 서서히 이해해 갔다.
“너희들은 스스로 지원했냐?”
“네? 아… 네. 자의로 지원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어…….”
남 비서가 우물쭈물대는 사이 김 비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보수가 좋아서입니다.”
“오- 보수 좋지.”
남 비서를 쳐다보자 그도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저도…보수가 좋아서 지원했습니다.”
“음… 돈 중요하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귀환자의 이미지는 어떠냐.”
“어… 무서운 존재랄까요. 험악하고,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떤 거 같아?”
낮에 일본 놈을 족치는 것을 보여 줬으니, 충분히 겁을 집어먹고 있으리라.
“어… 생각보다는 좋으신 분 같습니다.”
“혓바닥에 기름칠하지 말고. 내가 그런 거 제일 싫어해.”
“저, 정말입니다.”
“그래? 넌?”
김 비서에게 질문을 넘겼다.
“소, 솔직히 무섭긴 하지만, 저 또한 생각보다 좋으신 분 같습니다.”
실없는 질의응답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나는, 짬뽕 그릇을 비워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아서 일보고 자라. 나는 할 일이 있으니까.”
나를 따라 일어선 두 비서는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옙.”
그렇게 식당에서 나간 나는, 곧장 마당으로 나갔다. 아무런 이상 없이 전개되고 있는 결계를 확인한 나는, 오른쪽 어깨에 있는 소환진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그러자 검은 구름이 허공에 모여들며, 그 안에서 커다란 석판으로 된 문이 소환되었다.
자. 이제 슬슬 찾아보실까.
이제 차원 마법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었다.
* * *
“흠…….”
허공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는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밤을 꼬박 새웠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왜냐하면, 스승님이 살아생전 모아놓은 이 서고에는, 차원 관련 마법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차원과 관련된 설명을 스승님께 들은 적이 있기에, 나는 스승님도 차원 마법에 대해서 좀 알고 계시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마법의 정수인 마법 서고엔, 차원과 관련된 그 어떤 정보도 들어 있지 않았다.
“흠…….”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럴수록 담담해졌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상 쓰고 있어 봤자 답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면 이곳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는데…….
일단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그 차원 관문이라는 것부터 조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분석하고 연구하다 보면 뭔가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마계에서 태어난 물건들도 있으니, ‘귀소 마법’을 이용하면 마계로 가는 문을 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암담한 상황을 나름 긍정적으로 극복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스름한, 동이 트기 직전의 하늘이 스산해 보였다.
썩 느낌이 좋진 않은데…….
나는 가끔 아침 하늘을 보며 그것에서 받는 느낌으로 그날의 일을 점쳐 보는 버릇이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날의 마나의 흐름과 바람, 구름 등이 그 느낌을 가져다주는데, 그 느낌은 꽤나 잘 맞는 편이다.
좋지 않은 기분으로 마당에 내려선 나는, 마법 서고를 집어넣은 뒤 저택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