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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고귀재’는, 오전 일정을 위해 청와대를 나서던 중 받은 보고에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귀환자라고……?”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양날의 검과 같은 그 존재가 고귀재에겐 마치 심연의 구렁텅이에 내려온 하나의 동아줄 같은 느낌이었다.
“극진하게 모시게.”
“예.”
“자리 잡으면 내 직접 뵈러 갈 테니.”
현재 대한민국의 상태는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한국을 놓고 일본과 러시아, 중국이 대치 중이었는데, 그 때문에 국내는 삼파전으로 완전 개판이었다.
행정부는 첩자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입법부 또한 세 나라에 맞춰 삼당 체제로 바뀌어 삼파전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사법부마저 외세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법의 집행을 하지 못하니, 그야말로 나라가 와해되기 일보 직전이라 할 수 있었다.
‘다시없을 절호의 기회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기회라 생각하던 그는, 문득 그가 처음 대통령이 되던 날. 나라를 어떻게든 살려 보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러곤 엷은 미소를 지었다. 말도 안 되는 꿈이었으니까.
그 무시무시한 세 개의 세력 틈바구니에서 나라를 구하는 꿈이라니. 너무나 허황된 망상이었다.
그는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2008년. 갑작스레 전 세계를 강타한 ‘디멘션 웨이브’. 그 알 수 없는 파동은 전 세계의 전기와 통신을 일제히 정지시켰고, 동시에 엄청난 수의 실종자를 발생시켰다.
이후 전기와 통신은 금방 복구가 되었으나, 아직까지도 그 현상이 왜,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그저 그 사건을 ‘디멘션 쇼크’라 명명할 뿐.
다만 분명한 것은, 이후 인류는 엄청난 변환점을 맞이했다는 것이었다. 인류는 ‘각성’이라는 것을 통해 새롭게 거듭났는데, 새롭게 거듭난 이들의 정식 명칭은 ‘각성자’이며, 일각에서는 ‘신인류’, ‘권능의 대리자’, ‘선택받은 자’ 등으로 부른다.
새로운 능력을 선물 받은 인류는, 새로운 과제 또한 얻어야 했다. 그 과제는 바로 ‘몬스터 풀’과 ‘차원 균열’.
몬스터 풀은, 갑자기 허공에 열린 구멍에서 몬스터가 쏟아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성을 잃은 채 까뒤집어진 눈을 하고 닥치는 대로 부수고 다니는 여러 ‘종’들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허나 그것은 각성자들과 군대를 동원해 막으면,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는 수준. 문제는 차원 균열이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존재는 최소 하나에서 최대 둘 정도로 숫자는 아주 극소수지만, 그 힘은 몬스터 풀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그들은 이성을 잃지도 않았고, 마구잡이로 부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인류에게 호의적인 존재는 아니었고, 그 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여 차원 균열이 생긴 국가는 필히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11년 전부터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는 ‘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 세계에 1년에 2~3번꼴로 나타나는데, 세상 너머는 아주 작은 세상도 있었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세계도 존재했다. 중요한 점은,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인류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단 말이지…….
이 세계에 일어난 변화들은 모두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내 정신을 일깨운 것은 마지막 부분이었다. 바로 다른 세계로 넘나들 수 있다는 부분. 그것은 내가 마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균열로 인한 분노가 조금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이곳이지만, 애초에 나는 이곳에 아무런 미련이 없는 사람이다. 이곳에서 내가 얻은 것은, 좋지 않은 기억들뿐. 있을 의미도, 이유도 없는 곳이다.
그에 반해, 마계는 내게 새로운 육체와 삶을 선물했고, 살아갈 의미를 부여해 준 곳이다.
돌아가서 칠황좌를……!
아직 돌아갈 방법도 모르는데, 갑자기 의욕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상념을 깬 것은 내게 설명을 하던 놈이었다.
“그리고 일단은… 돌아오셨으니 귀환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각성자들이 받는 검사를 받으시고, 등록을 하셔야 합니다. 신원조회도 하셔야 하고…….”
“귀환 절차?”
“예……!”
감히 나를 검사하겠다는 것보다도 귀환 절차라는 단어가 내 귀에 더 먼저 박혔다. 왜냐하면, 귀환 절차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 거짓말 하면 혓바닥 뽑힌다.”
내 으름장에 순식간에 얼굴이 사색이 된 놈은, 사실대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사실 그… 귀환절차라는 것은… 편의상 제가 이름붙인 것이고……! 그… 그냥 확인 절차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다른 귀환자분들도 다 확인했던 거거든요! 유전자 검사나… 프로필이 일치하는지…….”
녀석은 그제야 부랴부랴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다른 귀환자라고?”
“아… 예. 그… 현재 세계에는 다섯의 귀환자가 존재합니다.”
“흠……”
나와 같이 다른 세상으로 갔다가 귀환한 존재가 또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었지만, 그 흥미는 금방 식어 버렸다.
“어쨌든 내가 맞는지 확인한다. 이 소리잖아. 그렇지?”
“예……! 맞습니다.”
“후…….”
짧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올렸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리고 새삼 이곳이 마계가 아님을 피부로 느꼈다. 이곳이 마계였다면, 내가 한숨을 쉬기 전에 내 앞에 있는 놈의 목이 허공을 날았을 테니까.
감히 육황(陸皇)을 능멸한 죄는, 목숨으로도 다 갚지 못한다. 시선을 내려 내 눈치를 살피는 놈을 바라봤다.
“좋아. 내가 맞는지 확인은 해야지.”
그러고 나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처박혀 마계로 가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분명 차원이 봉인되어 있다고 했지만,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방으로 차원이 뻥뻥 뚫린 이곳이라면 가능할 것이라는 촉이 왔다.
내가 돌아갈 때까지 부디 비어 있거라.
아마 오랫동안 칠대제의 자리는 공석일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71명의 육황(陸皇)들 중 칠대제에 걸맞은 놈이 한 놈도 없기 때문이다.
강함을 숭상하는 마계에서, 칠대제에 오를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건은, 각 대륙에서 가장 강한 자인 육황들을 모두 꺾고, 마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그냥 비었다고, 대충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그 자리는 오랫동안 공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공석으로 남아 있진 않을 것이다. 분명 또 다른 강자가 등장할 것이고, 칠황좌를 노리고 수많은 육황을 꺾으려 할 것이었다.
그 전에 내가 먼저 가서 내 자리를 찾아야 한다.
어느덧 마계로 돌아가는 것에 확신을 가져 버린 나는, 그렇게 그들의 안내를 따라 움직였다.
* * *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 ‘귀환 절차’라는 것을 위해 제일 먼저 신원 조회를 하기로 했는데, 앞에 앉은 여직원이 진행은 안 하고, 계속 나를 힐끗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으니, 심히 언짢아졌다.
“아… 그게. 사진과 완전 다르셔서…….”
그렇구나.
나는 이계에서 ‘은인’을 만난 이후 그가 건넨 비약을 먹고 환골탈태를 거쳤었다. 그러니 생김새가 완전히 다를 수밖에.
“환골탈태를 거쳤으니, 당연히 다를 수밖에.”
“환골… 탈태… 말입니까?”
그녀는 침까지 꿀꺽 삼켜 가며, 극도의 긴장 속에서 물어왔다.
“안 잡아먹으니까. 긴장 풀어.”
“아… 예……!”
그게 푼 거냐.
턱밑까지 칼이라도 들어와 있는 듯한 억지 미소에,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불타는 도라지 같은, 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영약들이 있어. 그런 영약들을 재료 삼아 만드는 비약이 하나 있는데, 그 비약을 먹으면 온몸이 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수없이 반복하지. 그 끝없는 고통을 견디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몸을 얻게 돼. 그게 바로 환골탈태라는 거야.”
“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 말이지. 예전의 나는 왜소하고, 못생겼지만, 지금은 볼만해졌잖아.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아… 네! 그렇게 적어 놓겠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의 귀찮은 검사가 이어졌다. 마력을 측정하는 검사도 있었고, 유전자 검사도 있었는데, 또 유전자가 안 맞는다니 뭐니 해서 또다시 환골탈태에 대해 설명하는 수고를 거치고서야 끝이 났다.
“후우…….”
답답함을 참았더니 숨이 가빠지는 느낌이었다. 환골탈태에 대해 무지한 이들을 이해시키려니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마지막 검사실 앞에 방위청장이 마중 나와 있었다.
“됐어.”
대체 어떻게 저런 새파란 놈이 이런 큰 기관의 장을 하고 있나 싶었는데, 지금 눈빛을 보아하니, 보통내기가 아닌 것이, 충분히 이런 큰 자리 하나를 꿰찰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젊긴 젊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청장이 내게 사람들을 소개했다.
“당분간 귀환자님을 모시게 될 비서진입니다. 이쪽은 귀환자님 관련된 일들을 총괄할 비서실장 그리고 이쪽은 귀환자님의 손과 발이 될 수행비서입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황 실장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총 다섯 명을 소개했는데, 나는 그중 둘을 지목했다.
“너 그리고 너. 둘이면 돼.”
야비한 인상을 가진 이와 무능하게 생긴 이들은 뺐다. 그런 내 요구에 청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남제원’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은우’입니다.”
나의 수족이 될 두 남녀의 인사가 이어졌고, 대충 그들의 인사를 받은 나는, 방위청장에게 시선을 던졌다.
“나는 어디서 기거하게 되지?”
“국가 소유의 한 저택을 선별해 놓았습니다. 임시로 기거하시는 데에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혹여나 마음에 안 드신다면, 다른 집들도 있으니…….”
“마당만 넓으면 돼.”
내 말에 남제원 비서가 대답했다.
“마당만 앞뒤로 한 200평 정도 될 겁니다.”
이백 평이라… 한 평이 사람이 누우면 딱 된다고 하니까.
대충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식을 대입해 봤다. 그래도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뭐, 가 보면 알겠지. 얼른 출발하자.”
내 말에 두 비서가 움직였고, 고개를 숙이는 청장과 헤어져 1층으로 내려갔다.
“산 아래에 조용한 동네라, 잠시나마 지내시기에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그거 좋군.”
남 비서는 생각보다 말이 많은 사내였다. 그게 긴장을 푸는 나름의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내려가며 계속해서 자잘한 사항들을 떠들어 댔다. 그런데 필요한 말보다 불필요한 말들이 많았다. 그런 내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차에 오르고 나서는 더 이상 쓸데없이 떠들지 않았다.
차창 밖은 보기 싫은 삭막한 도시의 풍경이 그려졌다. 계속 보고 있으려니, 쓸데없는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올라, 시선을 거두고는 눈을 감고 내 내부를 관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성가신 경적음이 내 정신을 깨웠다.
“뭐야?”
경적에서 느껴지는 신경질에 내 미간에도 주름이 생겼다.
“어… 그게 지금, 차가 밀려서 저희가 사거리 한복판을 막고 있…….”
빵빠아앙-!
긴 경적 소리. 꽤나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였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조수석에 있던 김 비서가 문을 열고 나갔다. 창문을 통해 어떤 놈이 시끄럽게 구나 봤더니, 차 앞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본?
너무나 간단하게 생겨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국기. 바로 일본의 국기였다. 한창 집중하고 있는 것을 깨운 것에 짜증이 와락 솟구쳤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김 비서가 내리자 상대 차에서도 한 남자가 내렸는데, 덩치가 크고 성질이 더럽게 생긴 것이, 딱 일을 낼 것 같은 상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은 김 비서와 대면하자마자 손부터 뻗었다.
뭐야. 왜 그냥 처잡히고 있어.
김 비서와 남 비서는 모두 각성자였다. 다들 내재된 힘들이 있는데,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대주고 있으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시우 님. 저도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운전석에서 급하게 뛰쳐나간 남비서는, 그놈의 앞에 가더니 마치 죄를 지은 듯 굽신거렸다.
이것들이 단체로 약을 처먹었나.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나는 차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