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79화 (80/83)

(第十四章)

역마왕은 늘 생각했다.

죽고 싶다.

사는 것이 지루하다. 무의미하고, 허망하다.

언제부터였을까?

의식을 되돌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아…….”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적의 목을 베며, 짧은 탄식을 흘린다.

‘내 딸.’

유일무이, 그가 태어난 이후 사랑을 주었던 다시없을 존재. 그 아이가 죽은 이후였다. 사랑했고, 너무나 아꼈지만 지킬 수 없었다.

언제든지 마왕 위(位)에 오를 수 있는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딸의 병을 고칠 수는 없었다.

무력하다.

남들은 그를 향해 최강의 마왕이라 지칭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자식 하나 지키지 못한 못난 아비일 뿐이다.

그때부터,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목숨에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그를 얽매는 주박과도 같은 딸의 유언이다.

아빠는, 꼭 오래오래 살아야 해.

울고 있는 자신을 향해, 슬픈 눈으로 읊조리던 어린 딸의 얼굴을 떠올린다.

오롯이 그것 하나만이, 죽고 싶은 삶을 유지하고 있는 모든 이유다.

하나 결국 죽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해, 오늘도 이렇게 사지로 나선다. 마조의 뻔히 보이는 공작(工作)에 속아준다.

대체 언제쯤 온단 말인가?

그의 덧없는 질긴 명줄을 끊어줄 사신(死神)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헤맨다. 끝없이 찾아 헤맨다. 목적을 잃고 헤매는 어린아이마냥 죽음을 향해 끝없이 달려나갈 뿐이었다.

우스운 것은, 그러한 죽음의 경계에 선 싸움을 할수록, 그가 죽을 확률은 희박하고 낮아져만 간다는 사실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다.

마왕 중 최강이란 수식어는, 끝없이 사지를 뒹군 끝에 얻은 불명예였다.

지루하다.

허망하다.

죽고 싶다.

끝없는 나락에 빠진 마냥, 검은 생각에 빠져 되뇌고 있던 중.

카앙-!

처음으로 그의 검이 막혔다.

눈을 뜬 역마왕의 앞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만나서 반갑군, 역마왕. 난 용대언이라고 한다.”

용제.

그 이름을 안다.

흉왕성 사대천왕 중, 최강에 가장 가까운 남자.

“그대라면…….”

읊조린다.

기쁨을 담아 눈을 붉힌다.

휘두르는 검의 강맹한 기세는, 희열을 내뱉는다.

‘나를 죽여 줄 수 있나?’

쐐에엑-!

검이, 공기를 찢으며 울음을 토했다.

* * *

카앙-! 카앙-!

검과 권이 부딪친다고는 믿기 힘든 강철의 소리가 전장을 뒤흔든다.

쐐에엑- ! 찌이익-!

갈라지는 것은 공기다.

파밧-! 타다닷-!

그 위를 장식하는 것은 격렬한 격돌을 상징하는 피어오르는 불꽃이다.

각자의 무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두 사람의 격돌에, 전장의 중심에는 자연스레 공터가 만들어졌다. 딱히 고수의 싸움에 눈이 먼 탓이 아니었다. 그저 주변으로 다가가기만 하여도 찢기고, 목이 날아가니 어쩔 수 없이 생긴 자연현상인 것이다.

꿀꺽.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와룡서원 제자 오인방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이게 고수들의 싸움…….’

이게 진정, 무림의 싸움.

경장갑도, 중장갑도 필요 없다.

말조차 타고 있지 않다.

그래도 강하다. 하늘이 울고, 땅이 진동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무위다. 일신(一身)의 신위가 이미 인세(人世)의 발전을 넘어섰다.

이것이 초인.

‘우리에게는 아득히 먼 영역.’

눈으로 와 닿는, 진정한 고수들의 생사결이다.

“우리 이제 조금 있으면,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지?”

양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답한 것은 정순욱, 그 역시 표정이 크게 굳어진 채였다. 작금, 적과 아는 분명했다. 적은 역마왕. 아는 용대언이다. 하나, 저 무수한 권각과 검이 오가는 공간에 들어가면 그러한 적, 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눈먼 검과 눈먼 권각에는 자비가 없다.

아이들이라 한들 망설임 없이, 베고, 부슬 터였다.

“……들어갈 수나 있을까?”

화영령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애초부터 무리였다.

저런 무시무시한 영역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살행위와 다를 것이 없었다. 제공권을 펼쳐 아무리 살펴보아도, 파고들을 틈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죽는다.

백산조차도 암담한 눈빛으로 둘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있어.”

차가운 목소리를 흘리며, 전면에 나선 소수린의 눈이 밝은 빛을 토한다.

제공권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나, 감각도를 포함한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눈에는 분명 보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지속적으로 틈이 생긴다. 용대언이 아이들이 파고들 수 있게, 계속해서 틈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곳을 파고든다면 이길 수 있다.

선이 그어지고, 점이 연결된다.

하나 무수히 많지는 않다.

단 하나의 선.

단 하나의 점이다.

용대언이 저 얇고 가는, 희박한 선과 점을 만들기 위해 어찌나 애쓰고 있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해낼 수 있어.”

하면, 그들도 해내야 한다.

저 무시무시한 역마왕의 목에, 검을 꽂아 넣어야 한다.

기회는 싸움에 눈이 멀어, 방심하고 있는 틈이다.

소수린, 와룡서원의 제자들 중 무의 화신(化身)에 가장 가까운 그녀의 음성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보았다면 길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돼?”

양명이 묻는다.

하나, 묻는다고 대답할 수 있는 길이 아니지 않던가?

“따라와.”

반짝.

틈이 생긴 순간, 눈을 빛낸 소수린의 몸이 쏜살같이 쏘아졌다. 남은 아이들도 빠르게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사이는, 대기조차도 베어버릴 정도의 날카로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딜 보아도 여전히 다른 제자들의 눈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하나, 소수린은 길을 향해 달려간다.

아이들은 그 뒤를 쫓는다.

“아앗……!”

누군가, 뛰어드는 아이들을 보았는지 비명을 내질렀다. 아마 당장에라도 갈기갈기 사지가 발겨져 흩어지는 모습을 상상했으리라.

하나…….

타다다당-!

아이들은 그 날카로운 공기에 찢기지 않는다.

무섭게 날아드는 권각과 검의 틈새를 비집고, 파고들며, 때로는 날아오는 힘을 맞받아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혼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을 터다. 다섯 아이가 마치 한몸이 된 듯, 선두에 선 소수린을 따라 조금씩 그 입구를 열어가는 공간의 틈새를 마구잡이로 차지한다.

나아간다.

‘할 수 있어……!’

아이들의 두 눈에, 자신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간 열심히 익혀온 무가, 전장에 나와 더욱 쌓아 올린 그들의 무공이 먹힌다.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한 흥분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날파리로군.”

역마왕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쉬아아악-!

“이런……!”

대기를 찢어발기다 못해, 완전히 갈라버리는 듯한 참격은 용대언마저 단숨에 튕겨내며, 어느새 역마왕의 인근까지 파고든 아이들을 향해 무겁게 날아들었다. 여태껏, 튕겨 나오던 힘이 실려 있던 공격과 다르다.

진심을 다해 죽이기 위해 휘두른 참격!

가장 전면에서 길을 뚫고 있던 소수린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피할 곳은 있어.’

하나, 너무 빠르다.

과연 움직일 수 있을까?

틈이 나와 줄까?

초인의 한계를 벗어난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이 체감되자, 온몸이 절로 굳어진다. 얼굴에는 말로 할 수 없는 경악이 어린 채였다.

“뭐해, 이 멍청아!”

그런 소수린을 다급하게 밀쳐내는 손길이 있었다.

“어……?”

정순욱.

언제 앞으로 튀어나왔는지, 소수린을 다급하게 밀친 그가 웃고 있었다.

환하게, 아주 밝게 웃는다.

“다칠 뻔했잖아.”

콰득-!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실 끊어진 연이 된 마냥 허공을 향해 높이 날아오른 정순욱의 몸이 전장의 지면에 처박힌다. 아이들의 두 눈과 입이, 크게 벌어지며,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려 한다.

“움직여라! 가만히 있으면 다 죽는다!”

그런 아이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용대언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역마왕의 검에는 자비가 없다.

넋을 놓고 있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먹기 좋게 잘 차려진 먹이일 뿐이다.

쐐에엑-!

다시 검이 허공을 가르고.

카앙-!

용대언이 그를 막아선다.

붉어진 얼굴에 호흡마저 가팔라진 그는 거칠게 침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무슨 일개 마왕이 이토록 강하단 말이냐.’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하다.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적이다.

어쩌면 사상최강의 천마라는, 무혈천마가 없었다면 당대 천마는 바로 눈앞의 사내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아, 아아아……!”

뒤에서는 소수린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이들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다들, 용 가주님을 도와야 돼.”

그 와중에, 입술을 강하게 깨문 백산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었을까?

“으아아아……!”

비명을 내지른, 눈을 붉힌 소수린이 역마왕의 뒤를 노리고 다시금 뛰어들었다.

‘위험…….’

외치려던 용대언의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정말 위험한가?’

막무가내인 듯한 움직이지만, 그 동선은 완벽하다.

봉을 휘두르는 일격은 어디 흠잡을 데 없이 깔끔했다.

역마왕조차도 예상치 못했는지, 움직임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는 공격이었다.

‘그래도 막힌다.’

아니, 본래라면 죽는다.

하나, 자신이 돕는다면……?

“죽어라!”

용대언은 있는 힘을 쥐어짜며, 무거운 정권을 내질렀다.

특별한 초식도, 형태도 없지만 대신하여 그만큼 확실하고 무겁다. 만약 소수린을 베고자 등을 돌린다면, 이 일권(一拳)에 역마왕의 심장이 박살 날 것이다.

‘한데 어째서?’

역마왕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보이지 않는다.

차가운 눈으로 아니, 죽은 눈으로 용대언의 권과, 소수린의 봉을 동시에 바라본다. 이후로는 오묘한 미소를 흘려 보인다.

“너희들조차…… 나를 죽일 수 없구나.”

쓴 신음이다.

안타까움이 가득 느껴지는 음성이다.

번쩍.

빛이 반짝이고, 역마왕의 몸이 두 개로 갈라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동시에, 용대언과 소수린 양쪽을 향해 몸이 움직인다.

이형환위!

“아…….”

전설이라 불리는 경지를 본 용대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자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어쩌면 마군이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도 더욱 무서운 인물일지도 모른다.

‘죽는다.’

용대언 본인은 어떻게든 살겠지만.

분노에 눈이 먼 소녀만큼은 지킬 수 없다.

‘내 실수로구나.’

이자가 이토록 강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 절대의 힘을 보여주는 역마왕의 모습에 용대언의 머릿속으로 후회가 깃들 때였다.

파앗-!

한 줄기 섬광처럼, 역마왕의 목젖을 노리고 날아다니는 백색의 빛줄기가 있었다. 용대언도 예상치 못했던 일격이다. 아니, 목 끝 아래에 닿을 때까지 보지 못했던 공격이었다.

“호오……?”

그 공격은,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역마왕조차 예상치 못했던 것일까?

오묘한 신음을 흘린 그가,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목 아래까지 치밀어 오른 공격을 회피하기 위하여 휘두르던 검을 거둔다.

파바밧-!

덕분에 세 사람의 공격은 무엇도 남지 않은 허공을 마구잡이로 쑤셔놓았다.

“네놈……!”

분노에 눈이 먼 소수린이, 그런 역마왕의 뒤를 쫓으려 했다. 하나, 그보다 앞길을 가로막는 용대언의 손이 더 빨랐다.

“물러나자.”

“비켜! 저놈은, 저놈은……!”

소수린의 두 눈을 붉힌 채, 눈물을 떨어트리며 오열한다.

“물러나야 한다.”

“비키란 말이야!”

소수린이 뛰쳐나가려 하고, 용대언이 막는다.

난잡한 전장의 풍경에 낀 기이한 광경이다.

하나 역마왕의 시선은 이미 두 사람에게서 완전히 떨어진 채였다.

“……죽을 뻔했군.”

왼손으로 목젖을 쓰다듬으며, 입가로는 미소를 그린다.

살아야 하지만, 죽고 싶다.

그 끝없는 모순의 주박 속에 괴로워하던 그가, 조금 전, 처음으로 정말 죽을 뻔한 경험을 맞이했다.

그 유명한 용제의 권각에서도 여유로웠거늘, 공간을 파고든 아이들의 협공에도 코웃음 쳤었거늘.

“허억, 허억…….”

무슨 짓을 했는지, 한순간 폭발적인 힘을 선보였던 커다란 덩치를 가진 백산의 공격 탓에 죽을 뻔했다. 입가로 절로 미소가 번진다.

“거기 너.”

흠칫.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백산의 몸이 떨렸다.

그것은 그야말로 본능이었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역마왕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아난다. 당장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하나 역마왕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 오묘한 죽음의 경계에 서는 듯한 독특한 감각이다.

“날 죽여줄 수 있나?”

역마왕의 물음은, 그야말로 오묘했다.

상식적으로 재단하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하나, 정순욱의 죽음으로 분노한 백산의 이지는 그러한 판단을 하는 것조차 부정했다. 당장 목표는 하나다. 용대언을 도와, 눈앞의 적을 죽인다.

“죽일 것이다.”

단호한 백산의 목소리에, 역마왕의 입가로 큼직한 미소가 걸렸다.

“그거,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로군.”

이렇게 웃어 본 게 얼마 만이던가?

기억을 더듬다가, 곧바로 내젓는다.

눈에는 안타까운 감정이 어린다.

“너라면 분명 나를 죽여주겠지. 하나…….”

신음을 삼킨다.

“아직은 아니야.”

멀었다.

운이 좋아 목 끝까지 봉이 닿았던 것은, 그야말로 운.

하나 그 운이 있다 한들 저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할 정도던가? 역시 천명(天銘)이다.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하늘에서, 그를 죽여줄 사신을 보낸 것이다.

기쁘다. 또한 슬프다.

너무 빨리 보내 준 하늘이 밉다.

그래도 고맙다.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 자신을 편안하게 해줄 일생일대의 숙적이 찾아올 터이니.

“기다리겠다.”

미소 지으며, 걸음을 돌린다.

더 이상 이런 전장에는 미련이 없었다.

천마신교라는 울타리의 허울도 벗은 지 오래된 몸이다. 그저, 떠나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더 이상 사지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으니, 굳이 피비린내에 취하여 살아갈 필요가 없다.

어차피 찾아오게 되어 있다.

그를 죽일 사신은 머지않은 미래, 그에게 찾아올 것이다.

“기대하지.”

죽음의 그 날을 기다리며.

역마왕이 전장을 떠났다.

* * *

“으아아…… 개자식…… 멈춰, 거기 멈추라고……!”

역마왕이 멀어진다.

짐승과도 같이 울부짖는 소수린의 목소리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초탈(超脫)한 모습이 되어 사라진다. 전장조차도 그에게는 무의미해 보였다. 발걸음은 마치 유령과 같았다. 멀어지는 속도는 번개와 같아 한순간 번쩍이는 것 같을 뿐이다.

“허…….”

어쩌면, 이 싸움에서조차 역마왕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달은 용대언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대체 저 사내는?’

만약 그가 진심으로 마음먹고 전장에서 승리하고자 하였다면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차가운 감촉이 등 뒤를 쓸고 내려간다.

당장의 전황만 보자면, 그러한 역마왕이 떠나가서 다행이라 말할 수 있었다.

하나 또 달리 보자면…….

‘이를 어쩌나.’

슬픔에 잠겨,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와룡서원 제자 사인방을 바라보는 용대언의 두 눈에 안타까움과 탄식의 감정이 동시에 깃들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참지 못한 채, 욕지기를 내뱉는 소수린이 보인다.

“순욱…….”

입술을 깨물며, 뜨거운 핏속에 잠긴 시신을 향해 손을 뻗는 백산이 보인다.

“거짓말…….”

화영령이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물을 그렁그렁 쏟아냈다.

“일어나 봐. 어이, 순욱. 일어나라고.”

양명은, 정순욱의 몸을 흔들며 눈물을 쏟아냈다.

후드득.

“비……인가.”

그런 아이들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함일까?

하늘 위에서, 차가운 빗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전장의 바닥을 때리는 그 소리는, 너무나도 아프게 아이들의 심장을 두들겼다.

그때였다.

“쿨럭……!”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어?”

울음을 흘리던 아이들 중, 그러한 기침을 내뱉은 이는 없었다. 전장의 괴성조차 묻어버리는 빗소리 속에, 기괴하게 들려온 기침 소리다.

“쿨럭, 쿨럭……!”

핏물이, 치솟아 오른다.

범인은 핏물로 점철된 정순욱의 입이다.

“수, 순욱……!”

“살아 있어! 살아 있다고!”

아이들의 얼굴이, 빠르게 서로를 오갔다.

살아 있다!

그 사실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용대언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등에 업히어라!”

말은 길지 않았다.

지금은 행동이 빨라져야 할 때였다.

거친 기침과 함께, 핏물을 토하는 정순욱을 용대언의 등 위로 올리며, 여전히 얼굴을 풀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의 바람은 단 한 가지였다.

‘제발, 제발…….’

무사하기를.

아무런 탈 없이 일어나기를.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정순욱의 회생(回生)을 바라며 기도했다.

정녕 하나뿐인 하늘이 계신다면, 아직 다 못 핀 이 어린 꽃을 저물게 하지 마소서.

제십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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