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三章)
종선휘가 돌아오지 않는다.
“삼주야…….”
벌써 세 번의 해가 뜨고, 세 번의 달이 졌다.
탁, 탁.
조급하게 탁상을 두들기는 제갈천의 안색은 최악이라 지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직 소식도 없으시냐?”
“……예.”
바깥을 향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뇌리를 엄습해 왔다.
아무리 종선휘가 세속에 초탈한 행동을 많이 보인다고 하지만, 시기를 모르는 이는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주어야 한다. 애초부터,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전선에 나서는 것도 마다치 않던 종선휘가 아니던가?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제갈천의 고개가 빠르게 내저어졌다.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아직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가 있기 전까지는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나 만약…….’
종선휘가 죽었다면?
최악을 상정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상정(上程)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군사라는 직무의 책임이다. 눈을 감고,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最善)을 떠올려 본다.
‘희망이라 볼 수 있던 무명와룡에게서는 연락 하나 없으니…….’
상황은 최악 중에서도, 최악.
언제 걸음을 멈춘 마군이 다시금 진격할지 모르는 상황.
“일단은 임시(臨時)로라도 맹주 대리를 세워야 한다.”
아래에서 반발이 없지는 않겠지만, 작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임시로라지만, 맹주 직을 대신해서 수행할 만한 인물이 필요하다.
정의맹에 몸담고 있으며, 현명해야 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한, 시끄러운 꼰대들의 입을 다물게 할 만한 높은 배분이 필요하다.
작금의 정의맹에, 그러한 사람이 몇이나 있던가?
‘우선 나는 아니다.’
이미 군사라는 직무를 다하며, 원로들로부터 미움이란 미움은 가득 산 제갈천이다. 본인이 맹주 대리의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역적(逆賊)으로 몰릴 가능성이 존재했다.
‘대체 누구를…….’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빠져 있던 제갈천의 눈이 반짝 빛났다.
있다.
작금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으면서도, 배분이 높은, 또한 현명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하지 않은 인물!
* * *
“그래서? 나보고 맹주 대리인가 뭔가를 하라는 게냐?”
방금 막, 전장에서 설치던 마두의 목을 베고 돌아와, 환자들의 치료를 돕고 있던 주화화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부탁드릴 분이, 주 장로님밖에 없습니다.”
제갈천의 단언에, 주화화의 입에서 쓴 신음이 흘렀다.
“으음…… 다 늙은 노인네를 중책(重責)에 앉혀서 무에 쓰려고.”
“나이가 있으시기에, 주 장로님이셔야 합니다. 못해도 맹주님과 동 배분, 그 정도의 신분을 가진 분이 필요합니다.”
주화화의 인상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종선휘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옳았다.
제갈천이란 놈이 어찌나 능구렁이 같은지, 다 늙은 노인네들의 등골을 빼먹으려 한다더니, 종선휘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제는 자신한테 와서 덤벼들고 있지 않은가?
“어허…… 아직 화산검선 그 노인네가 죽었는지 확신도 없는 판이다. 이런 때에 맹주 대리를 세우겠다니……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닐 게야. 난 그런 소란스러운 자리는, 몇 번을 말해도 사양이다.”
“해서, 더 주 장로님이어야 합니다. 강호사에 연연하지 않는 분. 여태껏 행동으로 보여주셨지 않습니까? 주 장로님이라면 제 배 불리기 바쁜 원로들도 크게 불만이 없을 겁니다.”
“…….”
“장로님, 장로님밖에 없습니다.”
제갈천의 간곡한 눈빛에, 마음이 움직인 것은 옆에 있던 마운 측이었다.
“제 생각에도, 군사님의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시끄러, 너는! 어린놈이 뭘 안다고 나서는 게야.”
덕분에 주화화의 인상이 더욱 험하게 찌푸려졌다.
“어린놈이라 세상사는 잘 모르지만, 주 장로님도 지금 고집만 부릴 때는 아니란 걸 알고 계실 것이라는 사실쯤은 알고 있습니다.”
“이놈이……!”
눈을 부릅뜬 주화화가, 확 손을 들어 올려 마운을 바라본다. 하나 끝내 손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저놈의 눈……!’
순수한 듯, 담담한 듯, 고지식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자유롭다. 마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그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약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녔다.
게다가 마운의 말이 틀린 것만도 아니었다.
지금은 전시다.
이런 때에 맹의 우두머리 자리가 며칠째 비어 있는 것은 그야말로 큰 사태다.
어서 빨리 공백을 메우지 않으면, 수습 불가 지경으로 갈 수도 있다는 사실쯤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나 왜 하필 나란 말이냐…….’
이제는 조용히, 그저 편안히 살아가고 싶다.
남 간섭받지 않고 강호 일에도 굳이 예전처럼 몸 던져 뛰어들 필요가 없다 여겼었다. 그도 그럴 게, 나이가 나이 아니던가? 한데 어쩌다가 강호 일에 다시 뛰어들어서는 이리저리 얽히더니 결국에는 정신을 차려보니 이 꼴이다. 또다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야말로…… 인과응보(因果應報)인가.’
조용히 살기로 마음먹었던 주제에, 다시금 강호의 일에 간섭하기 시작했으니 이리되는 것도,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다시금 강호에 몸담게 된 계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장로님은 실제 나이만 많으실 뿐이지. 육체는 어지간한 약관 못지않지 않습니까? 조금 더 일하신다고 해서…….”
멀뚱멀뚱한 눈으로 담담하게도 말하는 어린 문의 제자를 보고 있자니 또다시 속이 타는 듯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걸어온 것을 알아버렸음을.
“빌어먹을 녀석. 내가 고생하는 만큼, 너도 고생할 줄 알아라. 제갈가 놈, 앞장서라. 네놈 말대로 맹주 대린지 뭐시긴지 할 테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제갈천이, 활짝 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숙인다.
“따르겠습니다.”
그 뒤를 따라, 작게 답한 마운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것 하나 없는 녀석이로고.’
그런데도 마음이 가는 것은 어째서일지.
이야말로 알 수 없는 사람 마음일 터였다.
* * *
섬서에서, 정의맹의 맹주 대리가 일시 취임할 때에, 귀주 흉왕성은 생각 외의 고전(苦戰)을 겪고 있었다.
“대체 뭐죠? 저 역마왕이라는 사내…….”
중달의 재림이라는 사마소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혼잣말을 두서없이 흘린다. 그만큼, 전장에 등장한 역마왕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어느 정도였냐를 묻는다면, 길게 서술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다.
강하다.
자그마치, 그 귀흉가의 가주인 초주가 사색에 질려 도주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사내가 바로 역마왕이었다.
“이런 말을 하기 뭐하지만, 용 가주라 한들 이길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네.”
눈을 감은 초주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눈썹을 파르르 떤다. 가마 위에서만 앉아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신묘한 주술은 초인들도 잡아먹는 흉포한 형태다. 한데 역마왕은 그러한 초주의 주술을 모두 깨부수고, 박살 내고, 장면으로 돌진해 목숨마저 위협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부정하기 힘들군.”
용대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초주는 그가 인정하는 강자다.
정면대련을 한다면 분명 승리하겠지만, 초주가 그를 받아줄 리 없었다. 그는 술사인 만큼 교활하고, 준비하여 싸운다. 그런 그가 준비를 갖춰 나선 것이 이번 전장이었다. 한데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기겁하여 달아났다.
그런 역마왕이 날뛰는 탓에 전장에서 흉왕성 측이 입은 피해는 말할 바도 없이 어마어마했다.
‘이럴 때 철 아우가 있었다면…….’
무패철황 철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는 전설을 이룩한 흉왕성 최강의 사내를 떠올리며, 용대언의 입가로 쓴웃음이 떠올랐다. 아직 부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그를 생각하면 아쉬울 따름이지만, 아쉬워한다고 하여 역마왕이라는 강력한 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내가 나서야겠군.”
“……좋지 않은 수예요.”
사마소가, 그런 용대언을 말리고 나섰다.
“왜? 내가 패배할까 봐?”
“…….”
부인하지 않는다.
혹여나, 아주 만약에라도 용대언이 패배한다면?
끝장이다.
철표마저 없는 흉왕성의 전력이, 반 이하로 줄게 되는 것이다. 최악이다.
역마왕을 어찌어찌 쓰러트린다 한들, 부상이 커도 문제였다.
아직 적에게는 수많은 마왕이 남았다.
반면 흉왕성 측은 초주와 사마소만이 남는다.
그중에서도 사마소는 실상 전투 요원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내가 만반(萬般)의 준비를 갖춘다면, 충분히 역마왕을 잡을 수 있을 걸세.”
하기에 초주까지 사마소를 거들며 나섰다.
굳이 그런 이유를 빼더라도, 용대언은 흉왕성의 가장 큰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제일 처음, 사대천왕을 불러모은 이가 바로 그였으니 말이다.
“귀흉가주의 말대로 하죠. 역마왕이라는 사내는, 아무래도 우리가 알고 있는 마왕의 한계를 넘어선 인물 같아요. 함부로 싸울 상대가 아니라고요.”
사마소가 다시 한 번 끼어들며, 용대언을 말린다.
“휴우…….”
한숨을 내쉰 용대언이 눈을 부릅떴다.
“그 만반의 준비라는 것은, 시일이 얼마나 필요하지?”
“……길면 보름, 짧으면 하루 이틀 정도 단축되겠군.”
“하면 그간 우리 흉왕성 형제들은?”
“…….”
“다 죽겠군. 다 죽겠어.”
이를 갈며, 탁상을 강하게 내리친 용대언이 몸을 일으켰다.
“언제부터 우리 흉왕성이 부하들 뒤에 몸을 숨기는 겁쟁이 집단이 되었나? 어째서, 우리가 저 강대한 정의맹과 맞설 수 있었는지 벌써 잊은 겐가?”
늘 앞장서 왔다.
위험을 피하지 않았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극한의 단련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었다.
명문이라 하는 이들은, 처음부터 가진바, 타고난 바가 달랐다. 어려서부터 벌모세수에, 무수한 영약 처방. 전통을 타고 흐른 무공은 이제 막 기틀을 잡기 시작한 사파의 무공보다 분명 격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왕성은 강했다.
기반에는 앞장서, 물러서지 않던, 위험을 무릅쓰던 사대천왕이 있었다.
“이제 와서 부하들 뒤에 숨겠다고? 차라리 불알 두 짝 다 떼고 계집이라 하고 다니라고 말하게.”
“……그 무슨…….”
사마소가, 황당한 신음을 흘린다.
“사마 가주의 의견은 충분히 존중하고 있어. 하나, 그것과는 별개야. 지금 여기서 내가 물러나면 저기서 싸우고 있는 우리 형제들 중 누가, 우리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겠나? 나서야 할 때네. 물러서야 할 때가 아니야.”
“…….”
붉은 입술을 깨문 사마소의 표정이 굳어진다.
용대언의 말이 옳았다.
하나, 그를 실행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이런 때에, 흉왕성의 군사인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던가?
“알겠어요.”
결정을 내린 듯, 눈을 빛낸 사마소가 입을 열었다.
“최대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게, 계획을 짜볼게요. 대신 약속해줘요.”
“무엇을?”
“꼭 승리해줘요. 절대로 지면 안 돼요.”
사마소의 부탁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그린 용대언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내가 바로 용제다. 나를 꺾을 수 있는 사내는 전 강호를 뒤져도 하나도…… 아니, 몇 없어. 믿어보라고.”
“……네.”
“한데, 죽는 건 괜찮은가?”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마요. 진짜로 죽기 전에는.”
“큭큭. 알겠어. 알겠어.”
고개를 끄덕인 용대언이, 손을 휘휘 내저은 후 다시금 입을 연다.
“아, 그리고 그 계획 말인데. 괜찮으면 나를 믿어주면 안 될까?”
“예……!?”
이번에야말로 정말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사마소가 목소리를 높인다.
“믿을 수 있을 만한 녀석들과 해볼 법한, 좋은 생각이 떠올랐거든.”
“보나 마나 무모한 작전일 것 같은데요?”
사마소의 두 눈이, 불안으로 잠식된다.
“대신 성공하면, 그만큼 얻는 것도 많지.”
“……좋아요. 일단 믿어는 볼 테지만, 대신 어떻게 일을 처리하려는지 쯤은 알려줘요.”
“약속하지.”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개를 끄덕인 사마소가, 이미 몇 번이고 했을 말을 다시금 내뱉었다.
“믿을게요.”
지금의 상황에서, 이 말보다 더 확실한 응원은 없었다.
* * *
“별동대(別動隊)요?”
“그래, 별동대다.”
용대언이, 눈앞의 다섯 아이를 보며 말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애송이 티를 전혀 벗지 못하고 있던 와룡서원의 제자 오인방은, 고작 며칠 사이에 전장의 악취에 완전히 절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쁜 의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용대언의 입장에서야 이보다 더한 찬사가 없었다.
‘예상대로…… 전장에 아주 잘 적응했어.’
악(惡)을 모르고, 악을 논할 수 없다.
선인(善人)이자, 현인(賢人)으로 칭송받는 이들 역시 한 명의 인간. 인생을 살아오며 본인의 악에 대하여 고민한 적이 있던 이들이다. 그런 고심이 있었기에, 깊은 숙고가 있었기에 먼 훗날 현인이라 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용대언은 그런 사정까지는 몰랐다.
하나 적어도, 뭣 모른 채 정의를 논하고 도덕(道德)을 논하는 위선자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했다.
‘적어도 이 녀석들을 위선자가 되게 만들 수는 없지.’
마현이 자신에게 맡겼다면, 그만한 책임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심 마현의 무를 깊이 숭상하게 된 용대언의 눈가에 뿌듯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면 저희는…… 적의 본진을 치는 건가요?
정순욱이 손을 들며 물어왔다.
보통 별동대라 불리는 이들의 역할은 적의 본진 급습일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아니다.”
용대언의 고개가 내저어졌다.
“차후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차 목표는 어디까지나 역마왕이다.”
역마왕!
아이들 역시 전장을 종횡(縱橫)하고 있기에 그 이름이 주는 무서움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자연스레 표정이 굳고, 눈빛이 흔들린다. 하나 그런 감정도 잠시일 뿐이다. 역마왕이 주는 공포에 휘둘려 아무것도 못 했다면, 이미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으리라.
하나 아이들은 아직까지 살아 있다.
그 공포를 이겨냈기 때문이다.
아니, 그에 못지않은 공포와 실전을 경험하였으며, 지고의 무(武)를 보고 자라 강인한 정신력을 갖추게 된 덕이다.
“……어째서 저희들과?”
하나, 그렇다고 하여도 아직은 어린아이들일 뿐이다. 용대언의 입장에서야 굳이 와룡서원의 다섯 제자를 동반하여 전장에 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적이 현재로써는 최강이라 볼 수 있는, 역마왕이라면 더욱 그랬다.
“아, 왜 승천위사대(昇天衛士隊)와 함께하지 않느냐?”
승천위사대는, 용제의 직속 호위대로서 누구 하나 빠짐없이 일류의 경지에 오른 고수 집단이었다. 실전 경험은 말할 바 없이 드높다. 오랜 시간 용대언과 함께하며 호흡을 맞춰온 사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한데 어째서 굳이 아이들을 선택했느냐?
이유야 간단했다.
“녀석들은 따로 할 일이 있거든.”
승천위사대는 명백한 호위대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타격대로 운용하기에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대주인 승룡(昇龍), 마패두(馬覇頭)는 조화의 경지에 오른 초인으로서, 어지간한 마왕과 대적하여도 부족하지 않을 실력자다.
손 하나라도 모자란 상황.
이런 때에 승천위사대 같은 훌륭한 전력을 용대언의 주위에서 잔당 처리나 하게 하는 것은 낭비(浪費)다. 아, 물론 용대언이 생각하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게다가 애초에 이 몸은, 누구한테 보호를 받을 만큼 약하지도 않고 말이지.”
최근 들어 강호 전체가 준동하며 엄청난 실력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용대언은 여전히 무림의 최정상위권을 달리는 초고수다. 감히 누가 용제의 이름 앞에 오만을 부릴 수 있겠나? 장담컨대, 수많은 무림인 중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없을 터다.
“하면 정확하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백산이 물었다.
이만한 자긍심을 동반한 실력자, 무인과 함께 별동 작전을 펼친다. 너무나 아득히 높아 바라볼 수도 없는 마현의 무를 지켜보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 될 터였다. 자연스레 아이들의 얼굴에 기대가 어린다.
‘죽을지도 모르는 전장에서, 기대란 말이지.’
그 모습에,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은 용대언이 웃는다.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일차 목표는 하나다. 역마왕의 죽음.”
“……음?”
이해하지 못한 듯, 아이들이 의아한 신음을 흘린다.
“해야 할 일을 물지 않았느냐? 너희가 해야 할 일이다. 역마왕을 죽여라.”
용대언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 지어 보였다.
* * *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아이들이 또래에 비해 엄청난 무위를 갖추고 있다지만, 전장에 들어선 이후 하루가 다르게 비약적으로 무공의 성장을 이루고 있다지만 아직 어지간한 마왕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실력이다.
다섯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수가 힘을 합쳐서도 마왕 중 최약체라는 수마왕을 죽이지 못했다.
한데, 누가 보아도 현재 마왕 중 최강으로 보이는 역마왕을 죽인다?
짚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들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긴 하다만, 정확하게 말해 역마왕과 싸우는 것은 이 몸이다.”
여전히,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매단 용대언이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하나 놈의 숨통을 끊는 것은 너희들. 뭐, 그렇다는 말이다.”
손가락은 와룡서원의 제자 다섯을 가리킨다.
꽤나 명석한 편인 와룡서원의 아이들로서도 이해가 어려운 말이었다.
싸움은 용대언이 하지만, 목숨을 끊는 것은 자신들이다? 대체 무슨 수를 쓸려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를 제외하고라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뭐가 말이냐?”
“용제께서는 무인…… 이시지 않습니까.”
백산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무인에게는 무인의 자긍심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다. 역마왕쯤 되는 고수와의 일대일 생사결이다. 그러한 싸움에 아이들이 끼어든다면, 용대언의 입장에서야 불쾌할 여지가 충분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하나 용대언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커다란 두 눈을 껌뻑이기만 한다. 직후,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알겠다, 알겠어. 네가 궁금한 것은, 내 자긍심에 관한 것이로구나?”
무인의 자긍이란, 결코 가볍지 않다.
서로의 명예를 건 일대일 생사결이라 함은, 그러한 자긍심이 걸린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백산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꼬맹아, 잘 들어라. 이곳은 전장이다.”
“……예?”
“정의맹의 위선자 녀석들은 어떨지 모르나, 죽은 자긍은 산 비열에 비견할 수조차 없이 하찮다.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곳을 매일 같이 헤매고 있지만, 죽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슬퍼할 가족들, 내 식구들. 그들은 어찌한단 말이냐? 자긍을 지켜 마음이 편해진다면, 가장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들의 슬픔을 보는 것 역시 마음이 편하단 말이냐? 궤변이다.”
용대언의 두 눈은 단호했다.
“중요한 것은 살아서, 이기는 것이다. 그런 하찮은 자긍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아…….”
아이들 모두가, 감탄을 흘린다.
용대언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가슴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드넓은 중원 무림의 최정상에 군림하는 포식자이지만, 결국 한 가정의 아버지일 뿐이다. 사람이다. 마현과 다름이 없었다.
다른 모습, 다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너희들이 어떠한 삶을 살게 될지는 모른다. 하나 어른으로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살아라. 살아남은 자가 곧 승리자다. 죽은 명예는, 그야말로 죽은 명예일 뿐이니…….”
용대언이 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며 말했다.
“내일, 우리는 살아서 이길 것이다.”
제십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