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76화 (77/83)

(第十一章)

섬서 일대로 진출하였던 마왕들 중, 검마왕이 죽었다.

직후 남은 마왕들은 모두 퇴각.

화산검선을 비롯한 구대문파에 속한 고수들의 참전으로 싸움의 추는 정의맹으로 확실히 기우는 것 같아 보였다.

하나 그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섬서 일대로 들어온 무혈천마와 그의 친위대의 등장으로 다시금 섬서가 술렁였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천마의 모습도 보지 못했단 점을 생각하면 아직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선봉에 나서 마교도를 섬서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온갖 힘을 쓰던 종남파가 큰 타격을 입고, 종남제일검마저 부상한 채 정의맹 본진으로 후퇴했다.

사그라들 것만 같던 전화(戰火)가, 다시금 섬서를 크게 휘감고 있었다.

* * *

“남우…….”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두 눈을 감고 있는 종남제일검, 태을검선 남우를 보는 마연의 눈동자는 붉게 물든 채였다. 새하얀 볼가로는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린다.

“조금 들어가서 쉬거라.”

마연의 어깨에 손을 얹은 마운이 말했다.

“아니야. 나, 아직 괜찮아.”

“……벌써 오 일째다.”

우연히 마주친 무혈천마의 일검(一劍)에 남우가 쓰러진 이후, 밤잠도 없이 옆을 지키고 있는 마연이었다.

“오빠, 난 정말 괜찮아.”

“연아…….”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 조금만.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는 모습이라도 보고…….”

“이대로면 남우 녀석이 눈을 떠도, 네가 다시 병상으로 갈 판이로구나.”

마연의 고집에,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던 주화화가 혀를 찬다. 남우의 부상은 아주 심각했다. 정의맹에 속한 이름 높은 의원들과, 주화화의 능력을 합해 치료를 병행하였음에도 큰 차도(差度)가 보이지를 않는다. 천마의 검기에 담겨 있던 지독한 마기(魔氣)가 치료를 방해하고 있는 탓이었다.

“…….”

마연은 주화화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꿈쩍도 하지 않는 남우의 손을 강하게 움켜쥔 채 아랫입술만을 강하게 깨물 뿐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한참이 지난 후, 입술을 달싹인 그녀의 짧은 말에 마운과 주화화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주어는 없지만, 충분히 의미를 알아들은 탓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또한 되돌릴 생각도 없다. 게다가 우리가 언제까지 병상에만 붙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잊은 게냐? 지금은 전쟁 중이다.”

주화화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녀 역시, 마현의 도움을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천마의 침공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마현을 찾고자 했다.

하나, 마운이 말렸다.

언제까지고 형님에게 의지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기특한 말을 내뱉은 개방의 어린(?) 제자의 두 눈에는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마현의 무력은 분명 절대(絶代)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저 무시무시해 보이는 천마도 마현의 앞에 선다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하나 그리된다면, 정의맹이 왜 필요한가?

검을 들고, 명예와, 협을 위해 싸우는 무림에 몸담은 그들은 어째서 존재하는가?

마현은 무림에 발을 걸친 듯하지만, 무림인이 아니다.

반면 천마를 맞이한 그들은 무림인이다.

무림이, 무림인도 아닌 이의 손에 의해 지켜진다.

이는 검을 든 무인이라면 충분히 자존심이 상해야 할 일이었다. 또한 꺼려야만 하는 일이었다.

주화화가 그 말에 동의했다.

마연과 남우 역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여진도 씁쓸한 표정이었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무명와룡에게 의지만 한다면, 강호에는 희망이 없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하여도 문제가 없을 테니 말이다. 너무나도 완벽한 방어벽이란 것이 오히려 독(毒)이 되는 경우다.

“남 아우라면, 어렵지 않게 병세를 떨쳐낼 수 있을 거야. 그때 너도 건강한 모습으로 맞아주어야 할 것 아니냐.”

마운이 마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큰 차도는 없지만, 분명 회복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힘없이 쓰러져있지만, 능히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초인의 영역에 선 남우다. 이토록 허망하게 죽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후우, 미안하다.”

지켜만 보고 있던 주화화가 나선 것은 그때였다.

손은 번개처럼 움직여, 반항할 여력조차 없는 마연의 수혈을 짚는다.

털썩.

쓰러지는 마연을 품으로 받아든 주화화가 쓴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강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안 쉬는 것보다는 나을 테다.”

“……알겠습니다.”

이 정도나 고집을 부리는데, 도리가 있으랴.

마찬가지로 쓴웃음을 그린 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나저나, 정말 마음이 약해지는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지독한 전쟁 틈 사이에 섞여 있다 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은 언제나 한결같다.

마현.

그 듬직한 얼굴을 떠올린 두 사람의 고개가 내저어졌다.

“일단 힘을 내보죠. 검선께서도 천마의 추격에 나섰다고 하셨으니까요.”

“옳은 말이다.”

두 사람의 눈에, 힘이 깃들었다.

* * *

귀주.

흉왕성 본단.

“뭐? 와룡서원?”

생각지도 못한 이름의 등장에, 벌떡 일어난 용대언의 눈에 희열이 감돌았다.

“어서 가자꾸나.”

부하를 향해 재촉하며, 큰 걸음을 옮겨 바깥으로 나아간다.

‘나서지 않으실 거라 생각했는데…….’

마현이 직접 거들어준다면, 큰 보탬이 된다. 아니, 전쟁에 승리했다고 보아도 무관하다. 회복기에 접어든 철표가 전선에서 빠져 있는 데다, 갑작스럽게 마군(魔軍)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탓에 수세(守勢)에 몰린 흉왕성의 입장에서, 마현의 합류는 정말 큰 도움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에……?”

큰 기대를 품고 가서일까?

마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당황을 감추지 못한 용대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와룡서원 일기 제자 오인(五人)이 용제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백산이라고 합니다.”

“음…….”

용대언의 입가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와룡서원 일기 제자라 함은, 마현의 제자이자 용제우의 선배들임을 뜻한다. 분명, 자신들을 와룡서원이라 표방(標榜)한다 한들 부족함이 없었다.

하나, 역시 마현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기대한 바가 크지 않았다고는 부정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스승님은 직접 천마를 잡겠다고 따로 여정에 나서셨습니다.”

용대언의 표정을 읽은 백산이 담담히 말한다.

“천마를?”

턱을 쓰다듬으며, 작게 읊조린 용대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작금 강호에 있어 천마를 이길 사람은 그분밖에 없겠지.”

마현의 입장에서는 잔챙이나 다름없는 마왕 따위들과 승강이를 벌일 필요가 없다.

승부를 본다면 곧바로 머리를 치는 편이 낫다.

“하면 남은 잔챙이들이 우리 몫인가.”

마현이 직접 천마를 잡겠다고 나섰다니, 큰 걱정을 덜었다. 잘된 일이었다. 마현이 나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매일 같이 어깨를 짓누르던 억압감에서 크게 해방된 것을 느낀 용대언의 입가로 미소가 어렸다.

“하면 너희가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전장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백산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하나, 그 내용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가볍게, 미간을 찌푸린 용대언이 묻는다.

“아직 약관이 되지 않았습니다.”

본래라면, 어린아이가 머물 곳이 아니라며 내쫓아야 옳을 터였다. 하나 여전히 담담히 목소리를 내뱉는 백산을 보고 있노라니, 그 한점 흐트러짐 없는 검은 눈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흔들린다.

‘이 아이는…….’

범상(凡常)치 않다.

왜 몰랐을까?

마현이라는 거대한 장막만을 보려 하였기에 전혀 못 보았던 것일까?

시야에 씌워졌던 마현이라는 안개를 치우고 나니, 또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단 백산뿐만이 아니로구나.’

와룡서원의 일기 제자 오인방.

다섯 모두의 기도가 대단했다.

본신에서 느껴지는 무위(武威)는 고작 약관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눈빛에 서린 각오는 어떠한가? 어지간한 어른에 비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자신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성인(成人) 다섯이 눈앞에 있었다.

“……선생님께서 너희를 이곳으로 보냈더냐?”

“예. 스승님께서는 이곳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올바르게 알길 원하셨습니다.”

여전히 담담한 백산의 목소리, 흔들림 없는 아이들의 눈동자에 용대언의 입가로 짧은 감탄이 새어 나왔다.

고단할 것이다.

험난한 시험이라 말해야 하는 것이 분명할 터다.

“전장은 생명의 경중(輕重)을 한없이 무뎌지게 만드는 지옥이다. 그곳을 헤쳐 나온다면 분명,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무언가도 얻을 수 있을 터. 하나, 그곳에서 괴물에게 사로잡혀 버린다면 죽는 것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너희는…….”

그곳조차 책임질 수 있느냐?

물으려던 용대언의 입이, 굳게 닫혔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미 아이들은 충분히 보여주었다.

지금도, 자신을 입증하듯 내보이고 있다.

아직 용의 칭호를 받지 못한 아이들 앞에서, 용의 시험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것 참…… 당황스럽군.’

고작 약관도 안 된 아이들 다섯에게 알 수 없는 감명(感銘)까지 받고 있다니…….

하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마현이 검증했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할지도 몰랐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겠군. 마음먹었으니, 그만한 각오에 책임을 져야 할 터다. 내일부터는 혹독하게 굴릴 터이니, 오늘 하루는 푹 쉬도록 하거라.”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린 용대언이 등을 돌린다.

“감사합니다, 대협!”

뒤에서 백산이 포권을 취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대협이라…….’

그에, 용대언의 입가로 실소(失笑)가 흘러나왔다.

사파에 몸담은, 그중에서도 가장 지고(至高)에 위치한 자신이 협(俠)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던가? 웃음이 나온다. 나쁘지 않은 기분의, 즐거운 웃음이다.

‘나도 나이가 드나 보군.’

잔걱정이 늘고, 실없는 웃음이 많아진다.

또한 다가올 미래를 보며 기대하게 된다.

‘늙었어. 늙었어.’

은퇴(隱退)란 것은, 생각보다 빠르게 날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뒤를 이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나름의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태어나,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생각이 용대언의 뇌리를 휘감는 날이었다.

* * *

와룡서원의 제자들이 용대언과 만나던 날.

대륙 북쪽에서는 일대(一代)를 풍미한 두 영웅이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드디어 만났군.”

무혈천마, 아니지, 이제는 자신을 스스로 천마신(天魔神)이라 지칭하기 시작한 사내의 입가로 웃음이 번졌다. 고금을 통틀어 오롯이, 유일무이(唯一無二). 초대 천마에게만 내려졌던 별호를 자칭한 그의 검에서는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미 무혈(無血)이란 칭호를 버린 지는 오래다.

한데 뭉쳐, 쉬이 굴복하지 않는 중원 무림의 올곧은 정신이란 공포와 힘만으로 쉽사리 무릎 꿇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상치도 못했었지. 중원 무림 제일이라 불리는 화산검선이 뒤꽁무니도 보이지 않게 도주만 할 줄이야.”

천마신의 도발에, 종선휘의 입가로 쓴웃음이 졌다.

굳게 닫힌 입술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끝내…….’

마주치고 말았다.

제갈천이 극구 말리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자네는 이렇게 마주친다면 도주하라 하였지만…….’

무인으로 태어나, 무인으로 살아온 이상 어찌 그러할 수 있단 말인가? 검이 울고 있었다. 이제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우수(右手)에 잡힌 검이 잔잔하게 진동하며, 눈앞의 적(的)을 향해 비명을 내지른다. 싸우라고 말한다.

마치, 마현을 처음 보았을 때와 같다.

물러서고 싶지 않다.

그것이 설령 죽음으로 향하는 길일지라도…….

‘제일(第一)이라 불렸던 값을, 한없이 낮출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이 현재 중원 무림 제일이라 불리는 화산검선의 책임감이다.

자긍심이며, 이름의 무게다.

제갈천은 그가 없으면 정의맹도 존재할 수 없다 하였지만, 그 말은 틀렸다. 화산검선이 없다 한들, 정의맹은 유지된다. 오히려 그의 죽음이 더욱 굳건해질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도 있었다.

“기왕이면 만전(萬全)을 갖춰 맞이하고 싶었네.”

종선휘의 짧은 읊조림에, 허공에 흩날리는 좌측 소매를 본 천마신이 비웃음을 흘렸다.

“한쪽 팔이 있었다고 하여도, 결과(結果)는 달라질 것이 없지.”

“……자신만만하군.”

“기대했는데 말이지, 기대 이하인 걸 어쩌겠나.”

종선휘의 입가로 스산한 웃음이 번졌다.

“길고 짧은 것은 대어봐야 아는 법.”

돌려 말했지만, 결국 우습게 보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본인 역시 천마신을 향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기도 했다.

등 뒤로는 어느덧 세상을 뒤덮는 자줏빛 기운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손바닥 위로 솟은 것은 자줏빛의 심검.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모든 적을 배제(排除)하는 가장 강력한 창이자 방패다.

“흐음…….”

그 자줏빛 검을 보면서도, 천마의 표정은 그저 심드렁하기만 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지루하다는 듯, 늘어지게 하품을 보일 정도다.

“우습군.”

이윽고, 입가를 비집고 나온 음성은 명백한 조소(嘲笑)다. 종선휘는 침착하게, 자신을 얕보는 적을 노려보았다.

‘방심해라.’

방심하고, 방심한다면, 앞서나간 길이마저 짧은 것이 벨 수 있을 터.

상관없었다.

자신을 멸시(蔑視)함으로, 싸움의 향방은 더욱 자신 측으로 기울 터니.

“그딴 게 심검이라고?”

동시에, 천마의 등 뒤로 폭발하듯 검은 화염이 치솟았다. 맑은 하늘마저 어둡게 불태우는 그 겁화(劫火)를 보며, 종선휘는 입을 크게 벌렸다.

“서, 설마…….”

문득 며칠 전, 천하가, 천상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萬物)이 반으로 갈라졌던 사건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순간의 착각이라 여겼던 그 현상은, 분명 물리적인 한계치를 아득히 초월한 힘을 동반한, 궁극의 힘이었다.

당시 종선휘는, 그 힘의 주인을 마현이라 생각하였다.

누군가 그런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오롯이 마현일 것이라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나, 눈앞에 하늘을 불태우는 천마신을 보고 있자니 당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며칠 전에, 세계(世界)를 벤 것이 바로 그대였나?”

천마신이 웃는다.

“무슨 개소리야?”

돌아온 답은, 허망할 정도의 거부를 담고 있다.

하나 종선휘에게 답변을 할 여력은 없었다.

천마신의 손짓을 따라 쏘아진 흑염(黑炎)이, 종선휘의 심장을 향해 무섭게 날아온다. 그것은 불타고 있지만 날카로운 검이었다. 또한 검이지만, 온몸을 불태울 수 있는 지독한 화기(火氣)를 머금은 진정한 겁화였다.

종선휘의 자줏빛 검광이 미친 듯이 번뜩이며 그러한 불길을 가로막는다. 하나 미약(微弱)하다. 베고, 베고, 또 베려 하여도 배제하지 못한다. 이를 악문 종선휘는 두 번째 검을 일으켰다.

아직 미완성이라 한들, 그 힘은 결코 첫 번째 검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거봐, 시시하다고 했잖아.”

그를 보며, 다시금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한 천마가 손을 내저었다.

“넌 안 돼. 그러니까 죽기 전에 잘 봐두라고. 심검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궁극의 힘을. 이것이 바로 천마신의 전유물인 천마검(天魔劍)이다.”

“말…… 도 안 되는…….”

두 자루 자줏빛 검이 하늘을 뒤덮는 검은 겁화 앞에 미력하게 흩어지고, 마지막 음성을 남긴 종선휘의 온몸이 그 기운의 중심에 휩싸였다.

녹아든다.

감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천하제일(天下第一).

그 이름을 논하던 화산의 검선이 꺾였다.

“지루해……, 조금쯤은 즐겁게 해주길 바랐거늘.”

그의 죽음을 무심한 눈동자로 바라본 천마가 곧바로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 너밖에 없다.”

하늘을 뒤덮는 검은 겁화와 다르게, 조금도 타오르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달궈줄 자.

“누구냐, 대체?”

짧게나마, 세계를 통째로 갈랐던 이.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적어도 아직은, 그의 기대를 모두 접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을 신이라 지칭하기 시작한 사내의 입가로,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제십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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