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章)
“진짜 신기해. 어쩜, 모든 게 다 현 가가의 예상대로 되는 거예요?”
가족들이 모인 저녁 식사 시간.
밥을 다 먹은 후 찻잔을 기울이던 구혜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음…… 뭐가?”
“최종적으로 대련을 할 사람은 설아랑 청아라고 하셨잖아요.”
“정말요, 언니?”
구혜린의 말에 눈을 빛낸 쪽은 초이영이었다.
와룡서원 내에서 일어난 이기 제자의 대련은 와룡객잔의 가족들마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제자들의 글 스승이자, 마설의 어머니인 초이영으로서는 그야말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도 했다.
“……설아가 결승전까지 올라갔다고?”
마정도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 그러한 자유대련을 한다고 할 때, 뒤에서 말없이 얼굴을 굳혔던 마정이었다. 혹시나 귀여운 딸의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단 말인가? 형의 서원이라 대놓고 따지지는 않았지만 매우 불쾌했다. 그래서 혹시나 마설이 어디서 크게 맞았다고 하면 마현을 찾아가 화를 낼 생각도 하였었다.
한데, 며칠이 지나도 마설은 상처 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는다.
이상하다 여겼는데, 결승전까지 진출했다고 한다.
“지금 제자들 중에는 무림 세가의 자제들이 많다고 하지 않았어?”
마현과 구혜린, 초이영 등 와룡서원 스승들을 향해 눈을 돌린 마정이 물었다.
“네. 맞아요.”
답한 것은 초이영이었다.
“허허…… 한데 우리 설아가 결승전이라니. 대단하구나, 내 귀여운 손녀.”
“헤헤…… 운이 좋았죠 뭐.”
이야기의 주인공, 마설이 얼굴을 붉히며 볼을 긁적였다. 사실 그녀 본인으로서도 자신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실험해보고 싶어 참가를 물리지 않았을 뿐인 만큼, 결승 진출은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또 한 번 신기하다.
“큰아버지는 제가 결승전에 오를 걸 아셨다는 거네요?”
마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기대를 받은 건가요? 기뻐요!”
감정 표현이 꽤나 다채로워진 마설이 활짝 웃는 얼굴로 말한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는단 사실이 영 기분 좋은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이었다.
“한데 대체 어찌 아신 건가요?”
질문을 한 것은 초이영이었다.
마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그리 눈에 띄는 제자는 아니었다. 마현의 가족이라지만, 학문 성적도 중간, 무공 단련시간에도 그리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이번 자유대련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마설의 잠재력을 알지 못했을 정도였다.
“험험…… 내 딸이니까 뭐, 당연한 것 아니겠소?”
뒤늦게, 왠지 모르게 자랑스러운 마음이 든 마정이 팔짱을 끼며 콧대를 높인다.
“내 귀여운 조카니까 그런 것도 사실이기야 하지.”
마현이 답한다.
“그리고 내 딸이지.”
마정이 이쪽이 더 중요하다는 듯, 눈을 부릅뜬다.
“그래, 그래. 알겠다.”
마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마정이다.
“이거 참, 대답 기다리다가 목이 타는구나. 그래서 정말, 어찌 안 게냐?”
형제간의 짧은 다툼이 지나가자 궁금한 것은 마전도 마찬가지였는지, 눈을 반짝이며 물어온다.
“설아는…….”
마현의 시선이, 칭찬을 기대하며 눈을 반짝이는 마설에게로 향했다.
“학문도, 무공도 열심히 익히지 않습니다.”
“음……?”
“예?”
마정과 초이영이 동시에 의문을 표했다.
반면 마설은 더욱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인다.
“하나…… 무공을 익히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더군요.”
“맞아요!”
마설이 큰 목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즐겁다.
마설이 다른 제자들과 다르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강한 이유였다. 다른 제자들은 노력하여 정진하여 무공을 얻는다. 반면 마설은 무공을 즐기며 이것저것 경험하고, 시험한다. 매일 쉬지 않고 봉과 붙어사니 기다란 봉이 마치 제 몸과 같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허허…….”
마전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단 말이군요?”
구혜린의 질문에,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학문은…… 조금 지루해요. 앉아 있기만 하니 좀도 쑤시고, 근데 무공은 재밌어요! 움직이는 것에 따라 신기하게 변하기도 하고. 헤헤. 저는 무공이 정말 좋아요.”
혀를 쏙 빼 내밀며 말하는 마설을 보며, 가족들의 얼굴에 훈훈한 웃음이 머금어졌다. 비록 위험한 길일 수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좋은 일이다. 가족들의 입장에서야 기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허허…… 이제 보니 우리 설아가, 연아의 여아 대장군 끼를 그대로 쏙 빼닮았구나.”
“끄응…….”
마전의 너털웃음에, 마정이 쓴 신음을 삼켰다.
조신하게 키워, 예쁜 숙녀로 만들어 매일 매일 품에 안고 살아가려고만 생각했는데, 명확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밝히는 마설을 보니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 탓이다. 하나 또 한편으로는 무언가 뿌듯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감출 수 없다.
그것이 자식의 성장이다.
나중에 더 나이가 자라나, 사람을 알고 세상을 배우고, 점점 더 혼자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 강해질수록 부모의 마음에는 허전함과 뿌듯함이라는 감정이 오묘 모호하게 뒤섞일 것이다.
마현은 생각했다.
그 마음을 알고 싶다.
배우고, 느끼고 싶다.
구혜린의 배 속에서 자라고 있을 자신의 자식을 생각하며 미소 지을 때였다.
꼬옥-!
조용하게 다가온 작은 손이, 따뜻한 감촉으로 마현의 손을 부드럽게 움켜쥔다.
아마 같은 생각을 한 것이었을 터다.
‘우리의 아이도…….’
여름의 직전,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웃음 짓는 부모가 그 자리에 있었다.
* * *
와룡서원과 와룡객잔이 평온하고 밝은 기운으로 휘감겨 있을 때. 드높은 곤륜산 하늘 위로는 검은 장막이 씌워졌다.
“비가 오려나…….”
곤륜파의 현문을 지키던 도사가 하늘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에 폭우를 쏟아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하늘이 검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여,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밤이라 하여도 믿을 정도로 하늘이 검다. 태양 빛조차도 삼켜버릴 듯한 검은 하늘이 딱히 유쾌하지만은 않다.
‘마인 놈들이 설쳐댄다는 소식을 들어서인가?’
무언가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불쾌한 응어리가 꿈틀거릴 때였다.
“이곳이 곤륜파인가?”
대체 언제 나타난 것일까?
붉은 장발을 허리까지 길게 늘어트린 중년의 사내가 젊은 도사를 향해 물어왔다. 순간, 마음속에 응어리진 불쾌감이 알 수 없는 기분에 의해 몇 배나 증폭되는 것을 느낀 도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요?”
“질문은 내가 했다. 이곳이 곤륜파인가?”
아직 젊은 도사라고는 하지만, 누가 있어 대 곤륜파의 현문을 지키는 도인에게 이리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색해야 할 일이다. 화가 나야 할 일이다. 하나 젊은 도사는 화를 내지 못했다. 그저 공포에 질린 듯 몸을 파르르 떨어야만 했다.
“마, 맞소. 이곳이 곤륜파요.”
몸은 뇌리의 의지를 벗어나, 제멋대로 답한다.
그 대답에 만족한 듯, 입가로 미소를 그린 중년인이 앞으로 걸음을 내디뎌 현문을 살짝 밀었다. 쉽게 열리지 않는 구조로 잠긴 현문이, 부드럽게 밀리며 자연스레 그 안을 허락한다.
“누구요?”
내부에서 현문을 지키던 또 다른 도사가 중년인을 향해 의문을 표했다. 바깥에서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으나, 딱히 알림이 없었다. 한데 갑작스럽게 문이 열렸다.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나 질문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사내는 말없이 걸음을 옮길 뿐이다.
대 곤륜파의 내부로 거침없이 들어서는 사내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도사가 일갈을 내뱉었다.
“감히! 이곳이 어딘지 알…… 컥!”
하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중년인의 짙고 검은 눈과 마주하는 순간 온몸이 떨리며, 목이 막힌 탓이다. 딱히 살기가 느껴진 것도 아니었으며, 몸을 옥죄는 기묘한 기운이 느껴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포식자 앞에 선 피식자 마냥. 육식동물 앞에 선 초식동물이 된 것처럼 몸을 움츠리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런 도사를 웃는 얼굴로 바라본 붉은 머리의 중년인이 깊게 숨을 내쉬며 말한다.
“가서 전해라. 무혈의 천마께서 직접 곤륜파에 강림하사, 곤륜파의 장문은 황급히 나와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을 구걸하라.”
“……!!”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은 ‘그 무슨 망언이오!’라는 말이었다. 하나, 몸은 의지를 벗어나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달려간다. 몸이 향하는 곳은 곤륜파의 장문각이었다.
* * *
천하가 술렁였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무혈천마가 홀로 강호로 내려왔다. 이후 마왕도, 마두도 대동하지 않은 채 홀몸으로 곤륜파를 봉문(封門)시켰다. 정의맹 측에서는 딱히 손 써볼 틈도 없는 빠른 움직임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보고를 올리는 제갈천의 얼굴이, 크게 굳어져 있었다.
종선휘의 표정이라고 평안하지만은 않았다.
“홀로 곤륜을 봉문 시켰다?”
“예. 심지어 그 별호처럼…… 피를 흘리지 않은 무혈입성(無血入城)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면 곤륜이 알아서 봉문을 선언하였다는 말인데…….”
정의맹에 소속된 아니, 그를 벗어나서라도, 구파의 일각에 속한 자존심 강한 곤륜파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이 일로 인해 생각할 수 있는 바는 두 가지였다.
첫째, 곤륜파가 애초부터 배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곤륜파의 배신은 아닙니다. 봉문 직후, 그들로부터 사죄의 서신과 함께 무혈천마와 되도록 싸우지 말라는 전언이 함께 전해졌습니다.”
“그렇겠지. 애초부터 배신을 하려 하였다면, 굳이 봉문이라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아도 됐을 터니…….”
결국, 중요한 것은 뒤의 전언이다.
무혈천마와 적대하지 말라.
대체 곤륜은 무엇을 보았기에 정의맹이 이러한 전언을 전하였을까? 덕분에 난감해진 것은 정의맹에 머물고 있는 곤륜파 장로의 입장이었다. 정의맹 역시 강호의 수호신으로서, 또한 강호 제일의 세력으로서 자긍심이 높은 것은 당연할 일이다.
천하제일인으로 꼽히는 종선휘가 그 필두에 서 있음이야 누구 하나 모르는 바가 없다.
한데 그런 정의맹을 향해 무혈의 천마와 대적하지 말라는 전언을 보냈다.
곤륜이 미친 것인가?
아니면 그 정도로, 무혈천마가 압도적이라는 뜻일까?
어느 쪽이 되었든 그다지 좋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했다.
“분명…… 곤륜에는 곤륜잠룡(崑崙潛龍)이 있었지?”
“예.”
종선휘의 질문에 제갈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그 친구가 있는 한,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긴 수염을 쓰다듬는 종선휘의 표정이 편치 않다. 곤륜잠룡은 비록 십대고수의 측에는 끼지 못하지만, 삼대 만에 곤륜대팔식(崑崙大八式)을 대성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받고 있는 곤륜파 최고의 기재였다. 그러한 곤륜잠룡이 있을진대, 피 한 방울을 보기 전에 항복하였다.
만약 무혈천마가 순수하게, 압도적인 강함으로 그러한 일을 일궈냈다면…….
‘나는 그리할 수 있을까?’
종선휘는 화산제일검이다.
또한 현경의 경지를 이룩한, 절대의 고수다.
하나, 아무리 그런 그라고 한들 뿌리 깊은 구파의 일맥인 곤륜의 자존심조차 짓뭉개며 무혈입성을 하지는 못할 터였다.
“곤란하군.”
“소식을 전해 들은 맹의 장로들 사이에서도 또 난리입니다. 곤륜파를 비롯해 당가와 공동파를 탓하는 이들부터, 벌써부터 겁을 먹은 이들까지…….”
“쯧, 언제나 그랬지.”
어리석고, 부족할 따름이다.
이미 말한 바 있듯, 모두 하나 되어 싸운다 한들 힘들 이 마당에 또다시 내분이라니.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종선휘, 본인의 문제도 분명 존재했다.
“정말 그가 무혈천마라면…….”
그 별호대로 한 방울의 피도 강호에 흐르게 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한순간 머릿속으로 치미는 생각에, 고개를 내저은 종선휘의 얼굴이 굳어졌다.
“헛생각이로군.”
무혈천마는, 마공을 익힌 인물이다.
정말 별호처럼 단 한 방울의 피조차 흐르지 않을 리 없다.
뒤이어 치민 생각에, 종선휘의 등 뒤로 소름이 쭈뼛 돋아났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이지만…… 곤륜파 근처에 위치한, 맹에 속한 다른 문파들은 어찌하였나?”
제갈천의 고개가, 깊숙이 숙여진다.
입가로는 침통한 신음이 흐른다.
“모두…… 봉문을 선언하였습니다.”
“아…….”
아찔한 감각이, 종선휘의 머릿속을 세차게 때렸다.
무혈천마.
어쩌면, 강호는 생각보다도 훨씬 무서운 대적(大賊)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제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