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70화 (71/83)

(第五章)

와룡서원의 이기 제자들 중 최고를 가리는 자유대련은, 이제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총 보름의 기한 중 남은 날수는 정확하게 반절.

남은 인원 역시 처음 참가자인 여덟에 비례하여, 딱 반절인 네 명뿐이다.

본래라면 누가 언제, 어떻게 대련을 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 역시 날카롭게 이빨을 드러낸 황여준의 선언에 의해 확실히 결정되었다.

“모용청은 내 먹이다. 건드리는 녀석이 있다면 내가 먼저 박살 내주겠어.”

남궁성아와 마설, 두 사람 모두 그러한 황여준에게 딱히 반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저렇게까지 본인이 먼저 대련하겠다는데, 굳이 방해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황여준의 선언이 있었던 다음 날.

“우리가 먼저 할까?”

남궁성아의 앞에 선 마설이 웃으며 물었다.

“……응.”

함께 소룡원 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말을 주고받은 것은 있는 탓에 제법 친해진 두 사람이 구혜린의 눈앞에 섰다.

“더 이상 대련의 규칙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는 없을 테고…… 할 말이라면 이것뿐이네. 둘 다 되도록 다치지 않게 힘내.”

작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병기를 겨눈다.

남궁성아는 검.

마설의 무기는 대대로 와룡서원에 전해지고 있는 봉이었다. 기다란 봉을 강하게 움켜쥔 마설이 작게 웃으며 입술을 열었다.

“내가 먼저 갈게.”

“어? ……응.”

대답이 떨어진 순간, 아이들의 눈에 기대가 반짝였다.

마설은 얼마나 강할까?

패자 측인 사마아현에게 묻자, 조금은 심통 난 얼굴로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고 답했다. 그녀 역시 무가의 자손으로서 자존심이 보통이 아닐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 확실한 증거가 지금 눈 앞에 펼쳐지려는 것이다.

파밧.

지면을 박찬 마설의 몸이 정면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다.

모용청이나 황여준, 아니 굳이 그들을 댈 것도 없이 용제우와의 대련에서 보여주었던 남궁성아의 움직임보다도 한없이 느려 보였다.

“……나도 저기에 방심했지.”

지켜보던 사마아현이, 혀를 차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강초의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게끔, 눈앞에 움직임으로 확실하게 펼쳐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쐐에엑-!

봉이 공기를 찢는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순간적으로 봉이 늘어난다고 생각하였다. 하나 실제로 벌어진 일은, 마설이 손에 쥔 봉을 길게 미끄러트려 뻗어낸 것뿐이다.

“엇?”

덕분에, 마설이 다가오는 움직임에 맞춰 공격의 순간을 재고 있던 남궁성아로서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텅-!

날이 없는 검이 다급하게 마설의 목봉을 받아쳤다.

“어엇!?”

그러고 보니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마설이 보인다.

봉 꼬리를 잡고 있던 손은, 어느덧 앞으로 길게 미끄러져 내려 찔러져 들어오던 봉의 머리 부위를 강하게 움켜쥔 채다.

‘이렇게 짧게 봉을 쥐면…….’

분명 봉의 움직임에 제약이 생긴다.

하나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면 오히려, 득(得)이 될 수도 있었다.

파앗-!

여전히 그리 빠르지는 않게, 하나 정확하게 가슴 사이로 찔러 들어오는 마설의 봉 끝에 얼굴을 굳힌 남궁성아가 껑충 뛰며 거리를 크게 벌렸다.

‘놀랍기는 하지만…….’

결국 거리를 벌리면 무의미하다.

그리 생각했거늘…….

봉의 머리는, 언제든 꼬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사실을 말해주는 것일까?

찔러 들어오던 봉의 머리를 강하게 움켜쥔 채, 마설의 몸이 반 바퀴 크게 선회했다.

후웅-!

바람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크게 휘둘러진 봉이 물러난 남궁성아의 가는 목을 노리고 세차게 날아든다.

‘아, 안 돼……!’

피할 수 없다.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이 상태로라면 저 강한 봉의 일격에 가늘고 새하얀 남궁성아의 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아무리 목봉이라 하여도, 살상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상태로 일격에 당한다면, 목이 반쯤 꺾여 죽은 남궁성아의 시체를 볼 수도 있었다.

하면 구혜린이 나서서 막아주어야 하는데…….

그녀는 여전히 제자리에 앉은 채 요지부동(搖之不動)일 뿐이었다.

“아아……!”

누군가의 목소리가, 깊은 탄식을 담은 채 허공에 울려 퍼질 때였다.

후욱-!

강하게 휘둘러진 봉이, 남궁성아의 목 바로 옆에서 멈춘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아슬아슬. 조금만 더 나갔더라면 단두대에 올려진 죄인의 목을 치는 것마냥, 남궁성아의 목이 날아갔을 터였다.

“내가 이긴 거지?”

그러한 아슬아슬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도, 태연하게도 묻는 마설이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곧 다가올 끔찍한 고통을 기다리던 남궁성아가 놀란 사슴 눈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너…… 진짜 강하구나.”

어찌 손 써볼 바 없이, 반격조차 못 할 정도의 압도적인 강함에 남궁성아가 감탄을 토한다.

“헤헤…….”

그에 화답하며, 웃음을 흘리는 마설을 보는 아이들의 눈에는 경악이 담겨 있었다.

* * *

마설이 봉을 다루는 모습은 와룡서원 제자들 모두의 뇌리에 강렬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내공과 기로 표현되는 단순한 무공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뛰어난 병기술이다.

몇 번을 생각해도 그 신묘한 움직임은 말할 바 없이 충격적이고, 또한 아름다웠다. 굳이 빠르고 강한 것만이 무공의 전부는 아니다. 마설의 움직임은 이기 제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무공의 깊이를 월등하게 뛰어넘고 있는 영역이 분명했다.

초식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무기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있기에 펼칠 수 있는 진짜 무공(武功)이 바로 마설의 무공이었다.

‘안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냐.’

홀로, 자신의 무공을 가다듬던 황여준의 두 주먹이 강하게 움켜쥐어졌다. 사마아현은 방심해서 당했다고 하였지만, 실제는 다르다.

마설의 움직임은 마치 봉과 하나가 된 듯했다.

모용청이 검을 제 몸처럼 다루는 신검일체의 영역에 있다면, 마설 역시 그와 같은 경지다.

몸과 봉이 하나가 된 듯했다.

아니, 오히려 모용청보다도 마설 측이 더 무기와 한몸인 듯 보였다.

‘나였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기묘하기까지 하던 마설의 움직임에 맞서는 것을 떠올리며, 등 뒤로 돋아나는 소름을 느낀다. 입가로는 웃음이 가득 머금어진다.

“제길…….”

양팔이 떨린다.

심장은 쉴 새 없이 박동한다.

“정중지와였단 말이지…….”

우물 안 개구리.

보이는 것만 보던 어리석은 자신을 탓한다.

“두고 보자.”

모용청을 꺾은 이후에는, 마설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져줄 생각이 조금도 없는 황여준이었다.

* * *

“한번 붙자.”

모용청이 다시금 서원에 나온 날, 예정되었던 대로 황여준이 모용청을 향해 대련을 신청했다. 한참을 쉬며, 몸의 회복을 완전히 마친 모용청으로서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황여준이라면, 그 재능은 어떨지 모르나 노력과 독기만큼은 철무곤이나 자신에 못지않은 대단한 친구다. 기회가 된다면 정식으로 한 번쯤 겨루어 보고 싶었던 것은 모용청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마현의 감독하에, 두 사람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선수를 양보하지.”

모용청이 말했다.

하나 황여준은 곧바로 걸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쉽사리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으음…….’

정면으로 마주하자, 모용청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기세가 온몸을 압박한다. 철무곤과의 대련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한 것이 분명한 느낌이다.

‘빌어먹을 괴물 자식.’

빠르다.

너무나 빠르게 나아가서 두려울 정도다.

하나 자신도 모용청이 쉬고 있는 동안 놀고 있던 것만은 아니다. 또한 그 기세에 눌려 꼬리를 말 생각 역시 조금도 없었다.

“내가 더 강하다.”

황여준이, 자신을 세뇌하듯 읊조렸다.

많은 강호인들이, 황금세가에는 돈이 많다고 한다.

천하제일금가(天下第一金家)라고 불리니,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돌려 말한 것뿐이다.

그들이 말하고 싶은 진실된 바는 달랐다.

황금세가에는 돈밖에 없다.

결국 무림세가이지만, 무림세가의 취급을 받기에는 무공이 약하다는 견해가 많은 것이다. 그 수많은 시선의 편견을 걷어내기 위해 작금의 황금세가의 선조들은 그야말로 불철주야(不撤晝夜)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황여준 역시 다르지 않았다.

“황금세가는 강하다.”

모용가와 남궁가의 검이 최고다.

팽가의 도가 최고다.

황보가의 권 역시 최고다.

하나 황금세가의 검은 최고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황금세가 직계에게 전해지는 독문무공, 황룡신공(黃龍神功)은 무림의 수많은 고인(高人)들이 인정한 신공절학이다. 검법인 황룡신검(黃龍神劍) 역시 다를 바 없다. 모용가의 건곤백절검(乾坤百折劍)에 비하여 결코 약하지 않다.

“하앗-!”

마음속으로,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신감을 크게 키운 황여준이 지면을 박찼다.

조금도 물러섬 없이, 한 점을 향해 직선으로 쏘아지는 검은 마치 용의 이빨이 날카롭게 날아든 듯하다.

그리하여 붙어진 초식 명이 황룡출아(黃龍出牙).

맞서 검을 내뻗는 모용청의 동작에, 황여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같은 수로 맞서겠다고?’

황여준이 첫수를 찌르기로 시작했듯, 모용청 역시 함께 검을 찔러 들어와 맞받아치려 한다.

카각-!

검극과, 검극이 맞닿으며 쇠 긁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캉-!

뒤이어 두 개의 검이 엇갈리며 허공으로 치솟는다.

직후, 두 사람의 선택지는 달랐다.

모용청은 신형을 더욱 낮추었다.

반면 황여준은 허공을 향해 뛰었다.

아니, 날았다.

용처럼 비상한 황여준이, 지상을 향해 다시금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내렸다.

‘황룡재림(黃龍再臨)!’

허공에서 쏟아지는 힘은, 정면으로 뻗어올 때에 비해 몇 배는 강하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같은 수로 대항해온다면 모용청의 필패(必敗)다. 그를 알기에, 모용청 역시 이번에는 같은 찌르기로 대항하지 않는다. 검면을 넓게 펼쳐, 공중을 크게 휘감을 뿐이다.

그 모습에 황여준의 두 눈이 크게 떨렸다.

‘없어.’

상승의 무리(武理)인 검막(劍膜)은 아니었다.

하나 그와 마찬가지로 어디 하나 뚫고 들어갈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막힌다.

그리 생각하는 순간, 다음 동작이 머릿속에 이어졌다.

‘모용청은 분명 치고 올라올 것이다.’

곤과 건.

땅과 하늘.

양측의 이름을 딴 모용가의 검술은 신묘하고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다. 낮아질 때는 한 없이 낮아지며, 높아질 때는 끝없이 솟아오른다.

밑으로 내려앉아 방어했다면, 다음은 오를 차례다.

‘하면 나는……!’

날아오르는 틈을 놓치지 않고 발목을 잡는다.

눈빛이 반짝이는 사이, 땅으로 찍어 내리는 황여준의 검과, 방어하는 모용청의 검이 맞부딪친다.

카앙-!

울음을 토하고, 황여준이 다음 움직임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모용청의 검에서 남청 빛의 기운이 번쩍였다.

‘아차……!’

검기!

얕게나마 일류의 경지에 발을 들인 모용청이기에 보일 수 있는 그 신기에 황여준의 검이 허공으로 튕겨 나왔다. 황여준은 처음 생각과 다르게 허공을 선회해 거리를 벌리며 지면으로 안착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그 기를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 기의 사용이 미숙하기에, 아무리 모용청이라 한들 끊임없이 검기를 사용하지는 못한다. 결국 그 틈을 파고들어야 한다. 쉴 새 없이, 되도록 검기를 끌어낼 시간이 없게 치고 가야 하는데…….

“……다친다.”

“흡……!”

생각보다 모용청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검은 어느새 턱 끝으로 치고 오르는 중이다.

뒤늦게라도 상황을 파악한 덕에 간신히 피해내기는 하였지만, 작은 경고음이 없었다면 당황하여 몸의 균형을 잃은 채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너 이 새끼…….”

그렇게 물러선 후, 얼굴을 붉힌 황여준이 이를 크게 갈았다.

“날 봐 줘?”

모용청의 경고가 없었다면 승부가 당장 끝나지는 않았을지언정, 부상을 입으며 큰 위기를 겪었을 터였다. 한데 모용청이 그러한 기회를 스스로 놓아 버렸다. 화가 난다. 머리 위로 김이 솟아났다. 눈을 부릅뜬 황여준의 검이 빠르게 모용청에게로 쏘아졌다.

“아니…….”

다가오는 검을 침착한 눈으로 바라보며, 오히려 정면으로 치고 나온 모용청이 말한다.

“네 단점은, 쉽게 흥분한다는 것이다.”

매섭게 나아간 검은, 어느덧 황여준의 심장 어림에 맞닿은 채다.

“…….”

모용청의 머리 위, 쏘아내던 검을 다급하게 방향을 바꾸어 내리치려던 황여준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마지막에, 화가 나 눈이 돌아간 탓에 모용청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조차 보지 못했다.

너무나도 허망한 자신의 패배에, 황여준의 얼굴이 크게 붉어졌다. 이길 수 있다고, 부족하지 않다고 그렇게 믿어왔는데 끝내 져버렸다.

닿지 않았다.

모용청의 경고대로였다.

너무나 화가 나, 순간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지 않은 탓에 이루어진 패배다.

“하…….”

입가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결국 기회를 놓아버리면서, 오히려 더 큰 기회를 만든 모용청의 기재(機才)의 승리인 것이다.

“결코 황금세가의 검이 꺾인 것은 아니다.”

이를 빠드득 갈며, 검을 거둔 황여준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패배는 패배인 것이다.

“…….”

모용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황여준의 검은 날카롭고 매서웠다.

기를 두르지는 않았지만, 그 초식의 연계와 움직임만은 일류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모용청조차도 황여준의 심적인 약점을 파고들어야지 부상 없이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을 정도로 말이다.

짝짝짝.

“이제 둘만 남았네.”

두 사람의 대련이 끝난 후, 박수를 친 구혜린이 말했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주변 모두의 시선이 두 제자에게로 향했다.

모용청과 마설.

두 사람의 시선 역시, 허공에서 얽힌다.

“나 정말…… 열심히 해야겠네.”

그 끝에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은 마설 측이었다.

지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한 의사 표현이다.

“기대하지.”

모용청이 답했다.

와룡서원의 자유대련 역시, 이제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제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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