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용제우가 패배하고, 남궁성호의 가슴에 새로운 짐이 얹힌 다음 날. 충격적인 소식이 와룡서원을 뒤흔들었다.
“뭐? 누가 졌다고?”
강초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입가로 검지를 가져다 대며, ‘쉿.’ 하고 말한 육숭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체 언제?”
“어젯밤에. 구 사부님이 지켜보셨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대련이 있었다.
“그래서? 사마아현이 졌다고?”
조용하게 시작된 둘만의 대련에서, 패배한 측은 사마아현이다.
육숭이, 진중한 눈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인다.
“응, 마설에게.”
“허…… 대사부님 일가(一家)인 만큼 평범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욱 엄청난 일을 벌였다.
아무리 사마아현이 두뇌를 쓰는 사마가의 자손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무가(武家)에 속한 자제다. 한데 평범한 집안에 속한 마설에게 패배했다. 그야말로 깜짝 놀랄 일이었다.
“어땠어?”
워낙 늦은 시간이었던 탓에, 밤의 대련을 지켜본 사람은 몇 없었다. 그 목격자 중 한 명인 육숭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강초의 눈이 반짝 빛을 흘렸다.
대련에서 완전히 기권을 선언한 두 사람이지만, 과연 누가 서원 최고일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 새로운 후기지수라 볼 수 있는 마설의 등장은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는 이야깃거리였다.
“대단하더라고.”
“에……?”
“그 사마아현을 거의 일방적으로 몰아붙였거든.”
“……말도 안 돼.”
“삼십 초를 겨루지 않았어. 누구 하나 부상은 없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지친 사마아현 쪽이 항복을 선언했고.”
“허……!”
놀라고, 또 놀랄 일이다.
작금이야 두 사람과, 당시 대련을 지켜본 몇몇밖에 모를 일이지만 곧 서원 내에 소식이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또 어떠한 대련이 펼쳐지게 될까?
“남은 사람은 넷…… 인가.”
사마아현의 탈락으로, 남은 인물은 정확히 넷.
모용청과 황여준, 그리고 마설과 남궁성아.
“진짜 의외의 변수 등장이네.”
빈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이기 시작한 강초의 눈이 반짝 빛을 흘렸다.
* * *
와룡서원이 이기 제자들 간의 대련으로 술렁이고 있을 때, 현 무림을 석권하고 있는 이들 역시 새로운 근심거리에 크게 앓는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천마신교가 준동하다니…… 사마소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로군.”
평소와는 다르게, 꽤나 심각한 표정인 용대언이 낮게 읊조린다.
그 자리에 함께 모인, 흉왕성의 사대천왕(四大天王) 모두의 표정이 그와 비슷했다.
무겁고, 진중하다.
천마신교, 따로 마교라 불리는 그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큰 사건이었다.
강호 역사상, 마교가 자신의 영역인 천산을 벗어나 무림으로 내려온 것은 단 두 번뿐이다.
그리고 그 두 번 모두, 강호는 큰 홍역(紅疫)을 앓듯 엄청난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피를 쏟아야 했으며, 그만큼이나 많은 눈물이 천하를 뒤덮었다.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묵객(墨客)들 이야기에서 표현한 시체로 쌓은 산은 아직까지 악몽으로 전해지며, 호사가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당시의 괴성은 산속의 호랑이마저 깜짝 놀라 도망가게 할 정도라고 하였다.
그 끔찍한 사건을 두 번이나 일으킨 마교가, 다시금 준동하여 강호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단일 세력 최강.
잔혹하고 잔인한 마인들의 집합체가 천하를 피로 물들이기 위해 강림하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마졸(魔卒)이 아닌 마두(魔頭)와 마왕(魔王)들까지 천산 아래의 영역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더군. 조만간 무혈의 천마가 직접 그 아래로 내려온다 하여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지.”
창백한 낯빛의 초주가 입술을 곱씹으며 말했다.
나름대로 오랜 세월 무공을 비롯한 주술까지 연마해왔기 때문일까? 무혈천마의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 알 수 없는 소름이 등 뒤로 쭈뼛 솟아났다.
“마두나 마왕은 문제가 아니에요. 아시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교의 진정한 힘은 모두 천마에게서 나왔으니까요.”
“으음…….”
당장 강호에 나온다면 어지간한 중소문파, 혹은 대문파의 장문인 직이나 최고수 역할을 꿰찰 마두와 마왕도 무섭다. 하나 단지 그들뿐이었다면 마교가 등장할 때마다 시산혈해(屍山血海)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마교의 가장 무서운 힘은 그들 모두의 정점에 위치한 천마다.
하늘 위의 마(魔)라는 오만방자한 명호를 사용하는 마교의 교주, 천마는 긴 강호의 역사상 단 한 번도 천하제일인의 이름에서 언급이 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만큼이나 늘 강하였으며, 언제나 뛰어났다.
천마 하나를 막지 못하여 흘린 피가 두 번의 무림대전(武林大戰)으로 강 하나를 메운다고 하였다. 그만큼이나 무서운 존재가 바로 천마다.
하물며 작금의 천마, 무혈천마는 역사상 이름을 기록한 수많은 천마들 중에서도 가장 최강(最强)에 가까운 사내라 불리고 있었다.
“소문이지만…… 무혈천마가 천마삼재공을 모두 대성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사마소의 말에, 입이 무거운 철표의 입이 쩍 하니 벌어졌다.
천마삼재공이 무엇이던가?
단 하나만 대성하여도, 수많은 천마들을 당대 천하제일인의 이름에 오를 수 있게 하는 그야말로 희대(稀代)의 신공절학(神功絶學)이다.
익히기 어렵지만, 단 하나만 대성하여도 천하를 논할 수 있다. 두 가지를 대성한다면 천하를 홀로 상대하여도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삼재공(三才功) 모두를 대성하면 초대의 천마신교를 창조한 천마신(天魔神)과 동일한 영역에 들어서 하늘조차 어둡게 물들인다고 하니.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와 다름없는 인세의 재앙(災殃)이 강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천마삼재공을 모두 대성하는 것은 불가능이라 들었는데…….”
용대언이 쓴 신음을 삼키며 말했다.
“같은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죠.”
사마소가 답했다.
그야말로, 인간이라면 불가능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삼재공 중, 하나만 대성하여도 천하제일을 논할 수 있다. 하나 그 하나를 대성하기 위해서도 강호에서 기재(奇才)라 불리는 이들 이상의 재능이 필요하다.
하나보다 둘을 익힐 때 몇 배나 더 힘든 천마삼재공의 특성 탓일까? 하늘이 내려주었다는 천재(天才)라 하여도 둘을 대성하면 다행이라 하였다.
천재 이상의 천재.
하면 삼재공 중 두 가지 무공을 대성할 때 보다, 수십 배나 힘들다는 세 번째 신공(神功)을 대성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재능과, 노력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야말로 인간이 아닌 신(神)의 영역에 달한 재능을 갖추고, 그에 걸맞은 노력을 끊임없이 거듭해야지만 닿을 수 있는 영역이다.
매일 사지(死地)에 선 각오로 살아간다 한들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인간 이상의 존재.
그야말로 한계를 초월한 이만이 천마삼재공을 모두 익힐 수 있다는 말이었다.
수많은 강호 역사상, 그러한 경지를 이룩한 이가 몇이나 될까?
“몇 번이고 하늘을 보았지만, 무혈천마에 관한 천기를 전혀 읽을 수 없었어요. 별이 있기는 한데…… 캄캄한 밤하늘보다도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고 할까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에요. 그가 마음먹고자 한다면, 자신의 별이 가진 운명조차 속일 수 있겠죠.”
사마소의 긴 설명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천마삼재공을 모두 익혔다는 소문은, 단순한 소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늘의 눈마저 속일 정도의 힘은, 천마삼재공을 모두 대성하지 않는 한 갖출 수 없다.
흔한 말로,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무혈천마는 그러한 일을 해내고 있다. 손바닥으로 자신의 별을 가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야말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무림에 있어 둘도 없을 위기인가…….”
큼직한 눈을 굳게 감은 용대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번 일은 단순히, 기우(杞憂)로 보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사안이 크다.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만반의 준비를 갖춰두어야 할 때였다.
“다들 만약의 때에 대비해 언제든 전시체제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해 두도록 하지. 만약 무혈의 천마가 제 발로 천산을 벗어난다면…….”
그때는, 말할 바도 없이 전쟁이다.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 한들 천마가 그를 바랄 테니, 온 힘을 다해서 막아야 했다.
‘우리의 힘만으로 부족하다면…….’
두 눈을 감은, 용대언의 눈가로 마현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 * *
천마신교의 준동은 흉왕성뿐만이 아니라, 강호 전체를 들끓게 할 사건이다.
당연히 정의맹 내에서도 야단이 일었다.
“결국, 추정으로 보았을 때 머지않은 시기에 마교가 천산에서 내려온다는 뜻 아니오?”
팽둔우의 큰 목소리에, 제갈천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이 건방진 놈들……, 이참에 한번 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작금의 강호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마인 녀석들에게 제대로 일러줘야지요.”
회의실 탁상을 강하게 내리치는 팽둔우의 눈에서 불길이 솟았다. 이미 두 번이나 무림을 피에 잠기게 만든 마교이지만,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다. 작금의 강호는 강하다. 정의맹은 더할 바 없이 결속되어 있다. 이 힘이라면 단일 세력 제일이라는 마교조차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팽둔우였다.
“이 멍청한 팽가야.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일 것 같은 거냐? 마교에는 십대고수와 맞먹는 힘을 가진 팔마왕이 있다. 거기다 맹주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고수인 천마도 있지. 고수의 숫자에서 이미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십대고수 중, 여섯이 정의맹 소속이다.
전 강호를 따져서 반절이 넘는 인원이라 볼 수 있으나, 그렇다 하여도 마교에 비하자면 여전히 부족한 숫자다. 거기다 종선휘와 이름을 나란히 하는 무혈천마의 무위는 쉽사리 짐작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황금 벌레, 네놈이야말로 어리석기 그지없군. 우리 맹주님께서 정말 그깟 천마 따위와 겨룰 분이라고 생각하시는가? 팔마왕이 십대고수 급이란 것도 단지 소문에 불과할 뿐 아닌가? 무엇보다 싸움은 힘이 아니라 이 머리, 머리로 하는 것이란 말이다. 대체 누구보고 멍청하다고 하는 건지!”
“뭣이? 하, 해가 서쪽에서 뜨고 볼 일이로군. 팽가 놈 입에서 싸움을 머리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입이랑 혀가 붙었다고 나불대면 그게 다 말이 되는 줄 알지.”
쾅-!
두 사람이 침을 튀기며 서로를 향해 열변(熱辯)을 토하는 사이, 두 눈을 감은 채 묵직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던 종선휘의 손이 강하게 탁상을 내리쳤다.
“두 사람 다. 이 무슨 상스러운 꼴이란 말이오? 지금 누가 더 강하고, 누구와 붙어 이기는 것이 중요하오? 자그마치 마교의 준동이오. 그 세력에 몸담은 무인의 숫자만 하여도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 강호로 내려오고 있단 말이오.”
종선휘의 두 눈에서 분노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천마를 이긴다 한들 피가 흐르지 않소? 한 손이 열 손이 아닌 백 손, 천 손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냐는 말이오? 수많은 우리 정의맹 동도들의 눈물과 피가 흐를 것이오. 강호가 슬픔에 잠길 것이란 말이외다. 한데, 당장 서로의 생각을 앞서 말다툼하고 있을 때라고 생각하는 게요?”
결과가 어찌 되었든, 강호는 피에 잠기게 된다.
수만과 수만.
셀 수 없는 칼을 쓰는 무인들이 격돌하는 전쟁일진데 어찌 슬픔이 없으랴?
단순히 둘이 치고받는 정도의 간단한 싸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대전(大戰)이다.
몇 번을 생각해도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죄송합니다.”
“……마음이 너무 앞섰습니다.”
한창 열변을 토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종선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말이 옳았다. 당장 마교와의 싸움에서 정의맹이 승리한다 한들, 이미 흐른 피는 되 담을 수 없다. 깊게 베인 마음의 상처는 그 누구도 치료할 수 없을 터였다.
“우리가 생각해야 될 바는, 최대한 적은 피를 흘리는 방법이오. 그것이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몇 배는 중요한바. 군사는 그에 대해 고민해주시오.”
“맹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또한 개방과 곤륜파는 언제든지 천산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계속해서 정보를 전해주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천산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속한 구대문파인 곤륜파와, 정의맹에 속한 가장 큰 정보 집단인 개방의 두 장로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唐家)와 공동파 또한 만약 마교가 천산을 내려올 시, 쉽게 도발하지 못하도록 곤륜파 일대로 병력을 파견해주시오.”
“무량수불.”
“예.”
공동파의 도사와, 사천당가의 독인(毒人)이 함께 답했다.
“어찌 됐든, 작금의 무림은 위험한 상황이오. 이런 때일수록 서로 다투기보다는 몸과 마음을 한데 모아 힘을 합쳐야 하니, 다들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해결책을 떠올려 보도록 하였으면 좋겠소.”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종선휘다. 단숨에 걸음을 옮겨, 맹주전(盟主殿) 바깥으로 나와 저 멀리 천산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평소의 고요함이 아닌 작은 떨림이 깃들어 있었다.
‘무혈천마.’
평생 마주칠 일이 없기를 바라던 일생일대(一生一代)의 숙적이 그곳에서부터 움직이고 있다. 마음에 무거운 짐이 얹어진다.
‘제발 별 탈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제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