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章)
이기 제자들의 수석 제자 선발전에 관련된 이야기는 단숨에 와룡서원 전체를 들끓게 했다. 승부에 참여하게 된 이기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음이요, 한발 물러나 기권을 선언한 제자들도 다를 바 없이 흥분했다.
당연하게도, 이제는 선배로서 제법 각이 잡힌 일기 제자들이라 하여도 다를 것은 없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네, 누가 우승할 것 같냐?”
한창 이기 제자들을 향해 자유대련의 규칙에 관해 설명 중인 구혜린으로부터 삼장 여 밖, 나무 위에 누워 곱게 익은 감을 한 입 베어 문 정순욱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응? 무슨 말이야?”
그 나무의 바로 아래.
한창 진땀을 흘리며 도끼를 겨눈 채 백산을 노려보던 양명이 의문을 표할 때였다.
슈욱- 딱!
“윽!”
틈새를 놓치지 않은 백산의 봉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어 양명의 팔뚝을 강하게 내리쳤다. 힘을 주어 병기를 놓치지는 않았다지만, 방어를 할 틈새도 없이 날아드는 백산의 봉이 목젖에 닿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너, 너무해.”
“대련 중에 한눈을 판 네가 잘못한 거지.”
겨누고 있던 목젖에서 천천히 봉을 들어 올린 백산이 당당한 목소리를 흘릴 때였다.
“옳은 말씀.”
귓가로, 낮으면서도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목 아래로 파고든 것은 섬뜩하기 그지없는 차가운 칼날의 감촉이다.
“……나 설마 당한 거야?”
“응, 이걸로 네 번째야. 후후.”
기척은커녕 발소리조차 흘리지 않은 채 완벽히 은신하여 접근했다. 백산의 목덜미에 올려두었던 검을 조심스럽게 거둔 화영령이 입가를 가리며 작은 웃음을 흘렸다.
“……정말 조금만 방심해도 가차 없구나.”
“스승님이 내주신 과제니까. 후후.”
와룡서원 일기 제자들의 목을 열 번씩 베라.
말 그대로 정말 목을 베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위협적인 암살 수행을 하라는 의미만은 분명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언제 화영령의 검이 목에 다가올지 모른다.
마현이 공개적으로 밝힌 수행과정인 만큼, 일기 제자들 모두가 충분히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나, 매일 같이 친숙하게 지내던 동료가 갑작스레 목에 검을 가져다 대는 상황에 대해서는 익숙지 못하다. 아니, 조금 더 명확하게 말해서 조용하게 다가오는 암살자의 검에 대한 방비(防備)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 옳을 터였다.
암수(暗手)에 약하다.
어린 나이에 부족하지 않은 실전도 겪고, 많은 위기도 지나쳐 왔다지만, 아직도 경험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번 화영령의 암살 수련은 그런 제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쌓게 해주는, 그야말로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수였다.
“한데 고작 네 번째? 난 벌써 열 번 다 죽었는데…….”
두 눈을 크게 뜬 채, 몇 번이고 깜빡인 양명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한 지 보름도 안 돼서 열 번째라니, 엄연히 네가 이상한 것 같은데.”
“네 번도 많다. 훗. 이 몸은 아직 두 번밖에 죽지 않았다고.”
백산의 황당한 목소리에,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흘리는 것은 나무 위의 정순욱이었다. 어떤 이유가 됐든 백산보다 앞서 있다는 데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분명한 표정이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다가, 금방 따라 잡힐걸?”
답변을 한 것은 화영령이었다.
어느덧 손에 쥐고 있던 은빛 비수를 보이지도 않게 감춘 그녀의 입가에 떠오른 섬뜩한 미소에, 정순욱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자신 있으면 해보시든지.”
“기대해.”
“아, 한데…… 그 뭐냐.”
서로를 향해 망설임 없는 도발을 흘리던 중, 볼을 살짝 긁적인 정순욱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소수린은 몇 번이나 죽였냐?”
“……한 번?”
화영령의 양미간에 깊은 구렁이 베였다.
그 한 번조차, 삼 주야를 쉬지 않고 쫓아다닌 덕에 간신히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녀를 쫓아다닌 시간이 없었다면, 작금 정순욱의 기록도 백산 못지않았을 터였다.
“한 번이 어디야. 그 녀석, 요즘 정말 대단하던데.”
백산이 그런 화영령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절정의 경지에 오른 소수린은 그야말로 수어지교(水魚之交). 무공을 때어놓고서는 그녀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무위(武威)를 보여주고 있었다.
작금으로서는 서원 일기 제자 셋 이상이 동시에 달라붙지 않는 이상에는 그녀의 발목조차 잡지 못할 터였다.
“안 그래도, 위안 삼고 있기는 하지만…….”
화영령의 입가로 쓴웃음이 졌다.
역시 이번 과제 최대의 난제는 소수린이었다.
단순히 무공만 뛰어나다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녀는 정말 천재(天才)다. 아마, 한 번 당한 수에는 결단코 두 번 당하지 않을 터였다. 열 번의 목을 베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해야 할지.
“진짜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화영령의 투덜거림에, 백산의 입가로 작은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꽤나 즐거워 보이는 표정인데? 하하.”
“당연한 것 아니야? 저런 강적을 상대로, 열 번이나 암살 수련을 할 수 있다니. 분명 기회라고? 호호.”
부정하지 않은 채 활짝 핀 밝은 웃음을 흘리는 화영령을 보며, 입을 살짝 벌린 양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예쁘다…….”
조금도 감정을 감추지 않은 목소리가 당당하게 흘러나오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일 터였다.
“…….”
덕분에 화영령 역시 말없이 얼굴을 살짝 붉히는 것을 보면,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듯도 하였고 말이다.
“크, 크음. 어, 어쨌든 말이지, 무슨 말이야?”
뒤늦게야, 오묘한 분위기가 쑥스러웠는지 양 볼을 붉히며 고개를 내저은 양명의 두 눈이 정순욱에게로 향했다. 다행히 별 괴이한 느낌 없이, 백산과 화영령의 눈도 그에게로 향한다. 갑작스러운 정순욱의 말이 궁금은 했던 탓이었다.
“아아, 우리 후배님들 말이지. 자유대련이란 걸 하려나 본데?”
“자유대련?”
백산의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뭘 어렵게 생각해. 그냥 누가 최고인지 가려보자 이거지.”
“비무대회 같은 건가?”
“양명, 오랜만에 똑똑해 보이는구나.”
“헤헷, 나 원래부터 머리 좋다고.”
“그래, 그래. 어찌 됐든, 우리하고도 전혀 연관이 없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지…… 곧 사부님이 이야기하러 오실걸? 우승자 녀석은 우리 중 하나를 지목해서 정당한 대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정순욱의 입가로 즐거운 미소가 어렸다.
아직 누가 우승해서 올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정당한 도전이라면 얼마든지 받아줄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누가 우승할 것 같냐고 물은 거군. 내 생각에는…….”
“잠깐!”
백산의 말을 중간에 잘라 내며, 눈을 빛낸 정순욱이 날쌘 날다람쥐와 같이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말하기 전에, 내기 한 번 어떠냐? 지는 놈이 칠 주야 간 형님 노릇을 하는 거다.”
“그 무슨 유치한…….”
듣고 있던 화영령이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나, 백산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좋다.”
미소를 그리며, 망설임 없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 것이다.
“나도, 나도, 나도 형님 할래!”
뒤를 따라붙는 것은 양손을 번쩍 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양명이다.
“……하여간 사내들이란. 난 빠질 테니까 알아서들 해.”
어디 말이었던가?
사내는 평생을 가도 아이가 아니면 개라고 하더니, 그 말이 딱 옳다. 그리 생각한 화영령이 모습을 감췄다. 남은 것은 그야말로 사내 아니, 어린아이 셋뿐.
“괜찮다면 내가 먼저 말해도 될까?”
백산의 물음에,
“양보하지.”
“응.”
입가로 비릿한 미소를 그린 정순욱과, 마냥 즐거워 보이는 양명이 함께 답한다.
“우승자는 철무곤이다. 성격도 굳세고, 의지도 뛰어난 것을 보아 말하건대, 재능과 노력만큼은 분명 서원 제일이다.”
“철무곤이 서원 제일? 그건 네 생각이고, 난 건방진 꼬맹이 녀석에게 걸어보련다.”
“여준에게?”
양명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조금 건방지기는 해도…… 뭐, 분명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냥 닮은꼴이라 믿어보고 싶은 거겠지.”
“다, 닥쳐라! 그딴 건방진 애송이하고 내가 닮았을 리 없잖아? 단지 최근 들어 가장 노력을 많이 하고, 그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다고 생각할 뿐이다!”
백산의 말에, 정순욱이 크게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금쯤,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인정할 정도로 낯짝이 두껍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건방진 황여준을 닮았다는 것은 본인도 건방지다는 말이 아니던가?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본인의 생각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크게 내저은 정순욱이 굳은 얼굴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그래서 양명 너는 누가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 나는 뭐…… 모용청?”
“역시 그 녀석이냐.”
“강하니까.”
양명의 단언에, 세 제자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강하다.
모용청은 분명, 이기 제자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강했다. 하나 승부란 것은 단순히 강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갈리는 것이 아니다.
의외의 변수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
철무곤의 굳건한 의지와 황여준이 가진 집념보다도 지독한 독기(毒氣)라면 단순한 강함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줄 확률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럼 뭐, 셋 다 결정했으니…… 지켜보자고.”
정순욱의 입가로 미소가 진다.
어찌 됐든 즐거운 사건이 벌어진 것은 분명했으니 말이다.
* * *
“확실히, 배가 올라온 것 같아.”
늦은 밤, 침상에 누워 구혜린을 품에 안고 있던 마현이 읊조렸다.
“확실히…… 요즘 옷자락에 배가 스치는 느낌이 들고는 하더라고요.”
오른손으로 부푼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구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로는 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미소가 걸린 채다.
“우리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뜻이겠죠?”
“응, 분명히. 아주 건강히 자라고 있어.”
마현이 말한 적은 없지만, 매일 밤 정기(正氣)로 가득 찬 순수하고 농밀한 자연지기를 구혜린의 뱃속으로 매일 같이 흘려주고 있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배 속의 아이는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태어난 이후로도 큰 병치레 없이 무럭무럭 잘 클 것이다. 아니,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마현이 직접 고르고 고른 순수한 자연지기의 보살핌 아래 태어나는 만큼, 뛰어난 오성(悟性)을 갖춘 기재(奇才)로 날 가능성이 컸다. 따지자면 태어나기도 전부터 벌모세수에 영약 섭취를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아들일까요?”
양측 모두 상관없다고는 하였지만, 역시 신경 쓰지는 않을 수 없는 노릇인지 저도 모르게 자주 질문을 하는 구혜린이었다.
“알고 싶어?”
입가로 웃음을 지은 마현이 물었다.
“알 수 있어요?”
알 수 있다마다.
아니, 솔직히 말해 마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매일 같이 배 속의 아이를 기운으로 보듬어주다 보니 얼마 전부터는 아이의 성별이 확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궁금하면 알려주고.”
“음…….”
구혜린의 양미간에 얕은 구렁이 베였다.
고민에 빠진 듯, 신음을 흘리던 그녀의 고개가 이내 좌우로 저어졌다.
“솔직히 알고 싶지만…… 지금은 듣지 않을래요.”
“어째서?”
“모르고 있는 측이, 더 기대되잖아요.”
“흐음…….”
“아들이든, 딸이든, 큰 상관이 없기도 하고요. 어찌 됐든 내 사랑, 우리 아이잖아요.”
구혜린의 입가로 부드러운 웃음이 걸렸다.
‘어머니의 웃음인가.’
그 짙은 따뜻함에, 오래전에 잊어버린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린 매의 생각이 그렇다면야…….”
굳이 조급하게 알려줄 필요는 없다.
“그래도 확신은 하지 말아주세요. 너무 궁금해지면 참지 못하고 물어볼 수도 있으니까요. 호호.”
“하하…… 결국 끝까지 참을 자신은 없다는 거 아냐?”
“그러게요. 호호.”
웃음 짓는 구혜린을 품으로 끌어안는 마현이다.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두 사람의 눈동자에는 같은 미래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 구혜린이 웃고 있으며, 마현이 그 옆을 지킨다. 주변으로는 와룡객잔의 가족들과, 와룡서원의 식구들이 모두 함께다. 즐겁고 행복한 미래다. 상상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하여 매일 같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이번 자유대련 말이죠…….”
그 달콤한 상상을 지나, 현실로 돌아온 구혜린이 조심스럽게 읊조렸다. 두 눈은 초롱초롱 빛을 내뿜는다.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동자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른들도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 가가 생각에는…… 누가 우승할 것 같나요?”
구혜린의 질문에, 가볍게 볼을 긁적인 마현이 입가로 즐거운 미소를 그려 보였다.
“우승? 내 생각에는…….”
* * *
자유대련.
이름 그대로, 구혜린과 마현이 지켜보는 앞이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대련을 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 외에는 딱히 형식도 없으며, 규칙도 없다.
승리한 자만이, 승리한 자와 겨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녀의 구별을 두지도 않는다. 그저, 대련하고 승부를 가를 뿐이다.
조금 더 쉽게 풀어 말하자면, 조금 전 싸운 상대에게 대련을 요청하여도 무관하다는 뜻이다.
최대한 실전에 가까운 대련을 겪게 하기 위한 마현의 배려였다.
실전에서의 적은 최상의 상태의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늘 최고의 여건에서 싸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꿈. 실전에서 그런 기적과 같은 상황이 마련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유대련은 그러한 실전의 맥락을 적절히 가져다 댄 대련법인 것이다.
그런 만큼, 아이들은 첫날부터 눈치싸움의 불을 지피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피던 중이었다.
“둘이 먼저 대련을 하겠다고?”
학문 수업이 끝난 직후, 구혜린의 앞에 선 두 소년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구혜린의 눈이 반짝였다.
‘모용청과 철무곤.’
따질 바 없이, 현재 와룡서원 이기 제자들 중 가장 최강에 가까운 아이들이다.
유력한 수석 제자 후보라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니란 뜻이었다. 한데 그런 둘이 가장 먼저 붙는다. 비등한 둘이 대련을 한다면, 힘도 많이 빠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제자들의 입장에서야 싸움의 승자가 누가 되었건,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과연 어찌 될는지…….’
두 제자 역시 그러한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닐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가장 먼저 나서서 대련을 하겠다 말한다. 두 눈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채다.
‘수석 제자 자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말인가?’
어차피 최강은 둘 중 하나.
오만하다면 오만한, 뻔히 보이는 그 눈빛에 구혜린의 입가로 미소가 진다.
“그래. 멋진 선봉전(先鋒戰)을 보여주렴.”
과연 둘의 생각대로 흘러갈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말이다.
* * *
첫날, 첫 대련부터 가장 큰 승부수가 던져졌다.
모용청과 철무곤.
철무곤과 모용청.
둘 다 정과 사, 양측에서 자랑하는 최고의 기재임은 분명한바.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스승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둘의 대련으로 쏠렸다.
“어설프게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수많은 시선의 중심.
본인의 덩치를 뛰어넘는 커다란 대도(大刀)를 등에서부터 뽑아 올린 철무곤이 말한다. 아무리 아직 어린아이라고 한들 아니, 오히려 어린아이기에 더욱 경악스러운 크기의 대도다.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저 엄청난 것을 제대로 휘두를 수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지금 와룡서원의 제자들 중 그 누구도 그리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이미 한 번, 저 거대한 대도를 마음껏 휘두르며 위용을 보여주던 철무곤을 지켜본 바가 있었던 탓이다.
“……바라는바.”
짧게 읊조린 모용청이, 그에 맞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올린다. 어린아이의 체격에 맞게 적절하게 제작된, 균형 잡힌 검이다.
물론, 둘 다 진검은 아니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인 만큼, 진검에 가깝게 만들어진 가검(假劍)이랄까?
은빛을 띠고 있지만 예리한 기세는 없다.
결국 사람을 베기에는 무리가 많은 형태.
각자 가문에서 받은 대련용 무기인 셈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은빛으로 물든 병기를 든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법 살벌하네.’
이제야 갓 오 척을 조금 넘은 소년 둘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서로를 마주하는 모습이란.
‘이러니까 꼭 참관자가 필요한 거겠지.’
두 사람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가볍게 고개를 내저은 구혜린이 입술을 달싹였다.
“알고 있겠지만, 도를 넘어서는 것 같을 경우에는 내가 직접 나서서 중재할 거야. 승리욕도 좋지만, 어쨌거나 대련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참고로, 그렇게 될 경우 결과는 둘 다 탈락. 불만 없지?”
구혜린의 짧은 설명에, 두 소년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그럼, 대련 시작.”
마지막으로 구혜린의 입술이 닫힌 순간에는, 두 소년의 신영이 동시에 지면을 박찼다.
파밧-!
소년 둘이 움직인 땅 위로는 옅지만 잔영이 남는다.
쉬이익-!
검과 도를 휘두르는 소리는 공기마저 세차게 갈라놓는다. 이제 갓 열 살을 넘어선 어린아이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괴랄한 움직임이었다.
‘내가 열 살 때쯤에는 어땠더라……?’
그 모습에 구혜린의 입가로 쓴웃음이 졌다.
제법 기재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눈앞의 두 아이에 비하자면 한참이나 모자랐을 터였다.
그도 그럴 게 아직 소년에 불과한 두 제자의 검과 도에서 각자 짙은 남청 빛과, 붉은빛의 기가 옅게나마 번뜩인다.
형상화된 기(氣)다.
강호에서는, 저와 같이 자신의 병기에 형상화된 기를 형성할 수 있는 이들을 바로 일류 고수라 지칭한다. 아직 어수룩한 기의 형성이라 한들, 지학(志學)도 이루지 못한 어린아이들이 오르기에는 너무나 높은 경지인 것이다. 한데 두 사람은 이미 그곳에 닿았다.
본인들이 감히 최강이라 자부할만한 영역에 발을 딛고 있던 것이다.
‘기는 조금 위험한데…….’
구혜린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졌다.
기는 자칫하면 상대를 상하게 한다.
하나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할 아이들이 아니었다.
서로 최선을 다해 부딪치고 있는 만큼, 일단은 지켜보기로 결정하는 구혜린이었다.
그 사이.
카강-!
기에 휩싸인 검과 도가 부딪치며 불똥을 튀겼다.
서로를 노려보는 두 아이의 시선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아무래도, 힘으로는 내가 한 수 위인 것 같군.”
양손으로 도병을 강하게 움켜쥔 철무곤이 웃으며 이마 위로 심줄을 돋군다.
“흐읍!”
기합을 흘리자, 눈에 띄게 모용청의 신형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양미간에는 깊은 구렁이 패였으며, 다리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크게 흔들렸다.
“곧바로 힘 싸움으로 들어선 너의 실수다.”
철무곤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생각보다 쉽게 승부를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에 취한 것이다.
‘대단하지만, 역시 아직 어린아이.’
분명 승기(勝機)를 잡았다고 한들, 아직 승부가 갈린 것은 아니다. 잠깐의 기회에 저리 즐거워하며 방심한다면 대련은 어떠한 향방으로 흐르게 될지 모른다.
‘반면 이쪽은…….’
과연 차세대 검왕이라는 것일까?
불리한 형세에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용청의 두 눈빛은 고요했다. 양팔이 떨리고, 손바닥이 찢기는 고통이 있을지언정, 두 다리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눈빛은 고요한 맑은 물과도 같다.
상황이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힘 싸움에 몰려, 짙은 패색을 드러내던 모용청은 검을 놓았다.
“엇?”
덕분에 온 힘을 쏟아내 짓누르던 받침대를 잃은 철무곤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후우…….”
모용청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한 발 앞으로 내뻗으며 쌍 장을 펼친 것은 동시였다.
퍼벅-!
“쿨럭……!”
짙은 타격음과 철무곤의 신음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하나, 물러서지는 않는다.
입술을 짙게 깨물며, 장법이 전해주는 짙은 통증을 의지력으로 이겨낸 철무곤의 도가 거칠게 휘둘러졌다.
후웅-!
“흡……!”
이번에야말로 생각지 못했던 것일까?
지독한 고통에도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저돌적으로 나서는 철무곤의 도에 화들짝 놀란 모용청이 빠르게 몸을 뒤틀었으나, 끝내 허리 끝자락에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덕분에 모용청의 옷이 찢기고, 둔탁한 도가 얕게나마 피부를 거칠게 쓸어내었다.
“헉……, 헉…….”
“후우……, 후우…….”
각자 일격씩, 공격을 주고받은 후 거리를 벌린 두 사람이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 순식간에 오고 간 공방에 지켜보던 제자들의 입에서는 옅은 감탄과 경악이 뒤섞인 옅은 신음이 흘렀다.
‘둘 다 대단해.’
구혜린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침착하게 상황을 재단하는 깊은 심리나, 필요할 때에는 과감하게 검을 버리는 결단성을 보여준 모용청.
‘내지른 장법은 분명, 건곤무적장(乾坤無敵掌).’
모용세가에서 자랑하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장법이 차기 검왕이라 불리는 모용청의 양손에서 펼쳐졌다. 비록 미숙하여 일격에 철무곤을 물리지는 못했다고는 하나, 오로지 검만을 고집하던 역대 검왕들과는 엄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유연성마저 뛰어나다는 뜻이겠지.’
침착함에 유연성, 거기에 노력까지, 모용청이 갖춘 재능은 분명 강호 제일의 기재라 불린다 한들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하나, 거기에 맞서는 철무곤 역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숙하다고는 하지만…….’
정통으로 들어간 건곤무적장이었다.
아마 속이 뒤집히고, 뇌가 마구잡이로 진탕되었으리라.
한데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 커다란 대도를 휘둘렀다.
어마어마한 독기에, 무서울 정도의 집착이다.
덕분에 모용청은 일격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입고, 무기까지 버린 채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정말 둘 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대단해.’
짧은 공방이었지만, 이제 대련의 향방(向方)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둘 다 부상을 입었지만, 더 큰 부상을 입은 측은 분명 철무곤이다. 아마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탓에, 더 이상 처음에 보여주었던 도기를 자랑할 수는 없을 터였다. 하나 그의 양손에는 아직도 대도가 굳건히 쥐어진 채였다.
반면, 얕은 부상을 입었지만 모용청의 손에는 검이 없다. 유연성을 발휘해, 검 외의 무공도 제법 익혀둔 것 같지만 역시 검을 들었을 때만은 못하다. 신검일체(身劍 一體)를 이루었기에 가능했을 기의 유형화를, 양손으로 보여줄 수 있을 리도 없다.
결국 승부의 행방은…….
‘검인가.’
구혜린을 비롯한, 지켜보던 와룡서원의 제자들, 대련 중인 철무곤과 모용청의 시선까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한 자루의 철검을 향했다.
타다닷-!
먼저 뛴 것은 모용청 측이었다.
검을 노리는 눈빛은 맹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하나, 검에서 더 가까운 것은 철무곤이었다.
파밧-! 콰득-!
달리는 것이 아니라, 뛰어올라 단숨에 모용청의 검을 밟고 올라선 철무곤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이번에야말로.
“내 승리…….”
“자만하지 마.”
어느덧, 철무곤의 바로 앞으로 다가온 모용청이 다시금 쌍장을 길게 내뻗는다. 다급한 표정이 된 철무곤이 도를 넓게 펼치며 가슴께를 가린다.
쩡-!
손바닥이 도신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음…….”
신음을 흘린 것은 모용청 측이었다.
“악!”
하나 비명을 내지른 것은 철무곤이었다.
도를 넓게 눕히며 방어태세를 취한 덕에, 순간적으로 시야를 잃었다. 그리고 모용청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철무곤의 빈 발목을 향해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각법(脚法)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그야말로 형식 하나 없는 제멋대로인 다리 휘두르기였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철무곤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밟고 있던 검에서 힘을 때어버린 것이다.
모용청으로서는 그 틈을 놓칠 이유가 없다.
휘리릭-!
땅을 기듯 몸을 눕힌 후, 지면에 누워있던 검을 빠르게 들어 올리며 허공을 선회한 모용청의 검극이 철무곤의 목젖 바로 앞에 닿았다. 함부로 승리를 재단할 수 없는 대련에서, 그야말로 눈 깜빡할 새에 승부가 갈렸다.
장내에는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직후.
“모용청의 승리네.”
단언하듯 구혜린의 목소리가 작게 울려 퍼진다.
주변을 찍어 누르는 것 같던 무거운 공기가 가신 것도 동시였다.
“제길……!”
패배가 분한 듯, 얼굴을 붉힌 철무곤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좋은 승부였다.”
모용청은 겨누고 있던 검을 거두며, 포권을 취해 보였다. 이기긴 했지만,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승리를 향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철무곤이 훌륭한 대련 상대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한 모용청을, 당장에라도 때려죽일 듯 불타오르는 눈으로 노려보던 철무곤이 이를 빠득 갈았다.
“……다음에는 지지 않는다.”
이 악문 목소리를 흘린 철무곤이, 도를 갈무리하며 등을 돌렸다.
“비켜.”
발목을 접질렸는지, 절뚝거리며 제자들 사이를 가르고 지나간 철무곤이 점점 멀어져갔다.
첫날, 첫 자유대련이 방금 막을 내린 것이다.
하나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제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