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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귀환-65화 (66/83)

(第十二章)

와룡서원의 커다란 폭풍이 그치며,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으로 들어섰다.

그때쯤, 연례행사처럼 와룡객잔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요즘에는 모두 각자 하나씩 달고 나타나는군요.”

주방에서 한창 식재료를 가다듬던 마정이, 바깥에 모인 가족들의 모습을 흘낏 보며 말한다. 그에 껄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것은 바로 옆에서 느긋한 모습으로 마정의 요리를 지켜보는 마전이다. 이제는 완전히 주방 일을 그에게 맡긴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가족들이 모인 식탁이 아닌, 주방에 남아 있는 것은 그야말로 습관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바깥에서 편히 푹 쉬고 있는 것보다, 똑같이 쉬더라도, 조금 불편한 주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익숙해진 탓이었다.

마정도 그런 마전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 지켜봐 주는 마전이 사라진다면 서글플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느냐.”

“……그렇기야 하지만요.”

마정의 옆에 초이영이 있다면, 마현의 옆에는 구혜린이 있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꽤나 익숙한 그림이었다.

하나 이후로부터는 전혀 달랐다.

‘정말이지…… 어떻게 되려는 건지.’

요리를 준비하는 마정의 시선이, 다시금 바깥의 원형 식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을 향했다.

* * *

“그래서 있지 않습니까? 제가 마 소저를 구하려고, 이렇게 번개같이 날아들어서 그 색마 놈에게 검을 확 날렸는데 말입니다. 아니, 그놈이 생각보다 엄청난 고수인 거 아니겠습니까!?”

남우가,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인다.

“제발 시끄럽다고, 이 멍청아.”

물론 마연이 그를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바로 옆에 앉아, 계속해서 구박하며 옆구리 살을 꼬집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 나가는 남우도 특이한 재능을 가진 것만은 분명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심지어, 재미가 없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꽤나 재미가 있는 편이었다.

나름대로 박진감 넘치는 상황설명을 잘한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가족 중 한 명만은 확실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있는 남우였다.

“그래서요? 어떻게 됐나요, 고모부?”

식탁 위로 고개를 불쑥 내민 마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묻는다. 학문과 함께 무공을 익히고 있는 그녀에게 있어 강호를 직접 종횡무진하고 있는 남우의 여행기는 그야말로 별나라 세상의 이야기였다. 심지어 고모인 마연과의 연정에 관한 내용까지 동반되어 있으니 말 그대로 금상첨화(錦上添花)! 이제 막 소녀의 감성을 품기 시작한 마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고, 고, 고모부라니!”

마연이 그런 마설을 다그쳤지만, 그래 봐야 남우를 향해 소리치는 것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기세가 약했다. 어찌 되었든 마설은 그녀의 입장에 있어서도 귀여운 조카인 것이다.

“언젠가는 이리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빠르네요.”

그를 지켜보던 마운이 턱을 쓰다듬으며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들어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그는 좋게 말해 한층 인상이 사내다워졌으며, 나쁘게 말하면 늙어 보이는 외모가 되었다.

덕분에 오히려 바로 옆에 앉은, 동안술(童顔術)을 펼친 주화화가 더 어려 보일 정도였다.

“내 생각에는 오히려 너무 늦은 것 같다만? 어찌 됐든 정도 무림이 진동할 소식이지. 십대고수인 태을검선과, 해남파의 이름 높은 여검객인 철혈검녀(鐵血劍女)의 결합이라니……. 역시 강호란 재미있다니까. 클클.”

“철혈검녀라니요! 대체 저에게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그 별호는 누가 지은 건가요!?”

주화화의 말에, 저도 모르게 울컥하며 반응하는 마연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이 자리에 있는 인물들 모두가 그런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동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가 지었는지 마연에게 너무나 어울리는 별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 뭐야 다들 분위기가 왜, 왜 이래? 서, 설마 남우 너도……?”

“음…….”

평소였으면, 어떻게든 마연의 편을 들어주었을 남우마저 쓴 신음을 흘리며 시선을 회피한다.

“이, 이…… 나쁜 놈!”

쿠당탕-!

자연스럽게도 마연의 발차기가 날아들고, 그를 받아들인 남우가 바닥을 구른다. 전혀 이상할 바 없는 풍경이었다.

“하하핫, 역시 마 소저는 난감한 상황일 때 더 큰 힘을 내는 것 같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무공을 연마하면…….”

“시끄러 이 멍청아!”

난리도 난리가 아니다.

“애들은 팔팔해서 좋네요.”

“어리니까 말이지, 흘흘.”

그를 관망하는 개방의 두 사손(師孫)지간 역시 보통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하는데, 설마 저러다가 두 분도 붙는 것 아니겠죠?”

마현이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옆으로 바싹 붙은 구혜린이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마연과 남우에 이어, 마운과 주화화도 전혀 가망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 것이다.

“모를 일이지.”

그 생각에는, 마현 역시 동의했다.

물론 마운과 주화화는 신분이나, 나이상에서 큰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정작 둘이 좋다고 나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다행히도, 주화화의 외모 나이는 적어도 아직 이립이 되지 않은 정도였으니 말이다.

‘소붕 영감도 그런 걸 바랄 테고 말이지.’

주화화가 끝내 혼자서 늙어 죽는 게 아니라, 누군가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한다. 분명 소붕이라면 그런 것을 바랄 터였다.

“자자, 요리 나옵니다. 뜨거운 것도 있으니 다들 주의하시오.”

수많은 소란과 생각으로 왁자지껄하게 즐기고 있다 보니, 마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등 뒤를 돌아보니, 마정이 뜨거운 탕 냄비를 힘겹게 들고는 상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마음먹고 오리를 몇 마리나 잡는다고 하더니, 뭔가 엄청난 것을 준비한 느낌이었다.

그 무거운 그릇을, 식탁 위로 ‘쿵!’ 하고 내려놓은 마정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였다.

“이번에 새로이 특식으로 개발해 본 와룡객잔 특제 불도장(佛跳牆)입니다. 상어 지느러미를 기본 바탕으로 삼은 것은 같으나, 다양한 약재의 조합과 향초의 조합으로 건강과 맛을 다 잡아보았으니 충분히, 아주 맛있게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불도장 한 냄비를 준비하기 위해, 이틀 전 밤부터 각고의 노력을 다해 준비를 했다.

정성에, 값비싼 고급재료, 거기에 뛰어난 숙수의 실력까지 포함된 불도장!

각자 조금씩 덜어, 그릇을 살짝 기울여 본 가족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완전 맛있어!”

“대박입니다!”

마연과 남우가, 감정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외쳤다.

“형님의 요리 실력이 정말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시는 것 같습니다.”

“과연 와룡객잔의 이름을 빛내는 광동십대숙수의 실력인가…… 아니지, 이쯤이면 천하에 이름을 올려도 부족함이 없겠어.”

마운과 주화화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현과 구혜린이라고 다를까?

“최고다.”

“너무 맛있어요. 몸도 건강해지는 느낌이고, 배 속의 아이도…….”

모두가 힘차게 박동하고 있다.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아직 다른 요리도 많이 남았으니, 다들 풍족하게 드시길 바랍니다.”

즐거운 하루.

행복한 가정.

모두의 입가에 머문 함박웃음이 객잔 내부에 가득 퍼졌다.

* * *

신강, 무혈의 천마가 다스리는 십만대산을 넘어서면 어떤 땅이 펼쳐져 있을까?

바로 그 무서운 마인들마저도 꺼린다는 뜨거운 모래의 황무지다.

사막(砂漠).

그 고된 땅을 홀로 묵묵히 헤쳐 나가는 사내가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해졌으며, 깊게 눌러쓰고 있던 방죽은 이곳저곳 이가 나가 마구잡이로 뜯겨 있다. 사내의 전신을 훑어본다 한들, 깔끔하게 정돈된 곳은 단 한 부위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자루의 검뿐이었다.

은빛의 날을 예리하게 빛내는 검.

오로지 그 검만이, 사내의 몸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고된 여정 중에도 자신의 검만큼은 결코 홀대하지 않았다.

한 명의 검객으로서, 긴 사막의 여정을 헤쳐나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끝.

“드디어…….”

저 멀리, 마구잡이로 흩뿌려진 모래 안개의 뒤편으로 황톳빛의 거대한 성이 보였다.

검객, 추영이 그토록 찾아 헤맨 포달랍궁이었다.

“드디어……!”

저곳에 가면, 잃었던 주군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기대감을 힘껏 가슴 한편에 머금고, 사막의 모래에 파묻혀 무거워진 걸음을 다시금 옮기기 시작했다.

* * *

힘겹게 포달랍궁에 도착한 추영을 반긴 이는, 궁내에서도 가장 높은 직위에 속해있다 볼 수 있는 대라마 라흐마였다.

두 눈을 붉은빛 안대로 가린 그는,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 움직임은 강호에서 산전수전을 모두 겪어보았다는 추영에게도 너무나도 신비한, 그리고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따로 안내인이 없음에도 걸음을 옮기는 데 문제가 없다. 손을 내뻗어 물건을 집는 동작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그야말로 기행의 극치다.

“오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말투마저 독특했다.

마치 일부나마, 미래를 알고 있었다는 듯한 괴이한 화법.

“바로 ‘그분’이 계시는 지하로 향하시겠습니까?”

묻고는 있지만, 이미 몸은 움직이고 있다.

추영의 대답을 뻔히 알고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냥 속내를 읽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미래를 보는 것일까.

포달랍궁의 대라마와 신녀에게는 매우 특별한 힘이 있다고 하니, 후자의 생각도 마냥 틀린 것만은 아닐 터였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라흐마의 뒤를 따라 포달랍궁의 지하로 향했다.

라흐마는 금방이라도 도착할 듯 말했지만, 그 길은 꽤나 길었다. 미로처럼 마구잡이로 얽힌 괴상한 통로를 지나, 마치 용의 몸통처럼 길고, 둥글게 늘어진 계단을 한참이나 내려가야만 했다.

그 끝에 도달한 지하에는, 지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공동이 펼쳐져 있었다. 벽과 바닥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는데, 그를 처음 본 추영은 마치 고대 중국의 상형문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데 이곳 어디에 주군이 계신다는 거지?’

그런 추영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천천히 비쩍 마른 기다란 팔을 들어 올린 라흐마가 공동의 중앙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지 않소.”

하나 추영의 눈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넓은 공동의 일부분처럼 여겨질 뿐이다.

“다시금 자세히 보시오. 저곳에…… 그분이 계시오.”

라흐마가, 단언하듯, 또한 선언하듯 추영을 향해 읊조렸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추영의 눈앞으로 갑작스럽게 거대하고 투명한 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하게 라흐마가 가리킨 공동의 중앙에 위치한 기둥이었다.

‘이럴 수가……!’

거대한 공동의, 높은 천장에까지 닿는 거대한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투명 기둥이 갑작스럽게 생성되었을 리는 없다. 당연하게도, 저 기둥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한데 추영은 이 공동에 들어오고 나서도 라흐마가 지목해주기 전까지 그 존재를 조금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 감각을 속일 정도의 사술이란 말인가……!’

아무리 고된 여행으로 지쳤다고는 하지만, 그는 초인이다. 그것도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십대고수들 중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과 비견해도 부족하지 않을 초고수다. 그런 그의 감각이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었다.

세외의 세력이라 무시만 했었는데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포달랍궁의 저력은 더 어마어마할지도 몰랐다.

“가서 보시오.”

라흐마의 작은 읊조림에, 고개를 끄덕인 추영이 투명한 기둥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아…… 아아……!?”

가까이 가자, 투명 기둥의 내부가 훤히 보이며 그 속에 자리한 이의 모습이 보인다. 추영은 그를 보며 감탄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의문을 느껴야만 했다.

‘어, 어째서……!?’

백륜의 말대로라면, 저 투명한 기둥 속에 있어야 할 사내는 백륜이었다.

한데 어째서일까?

지금 눈앞에 있는 이는…….

“초, 초대 회주.”

백천악.

백천악이었다!

마현의 손에 의해 완전히 갈기갈기 찢겨버린 그의 육신이 중원에서 너무나 먼 세외의 땅, 포달랍궁의 지하 공동에 온전히 보전되어 있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또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대체 주군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단 말인가!?’

가장 최측근인 추영조차도 알지 못했던 엄청난 비밀!

어쩌면 백천악 혹은 백륜은 처음부터 이러한 사태에 대비해 놓았을지도 몰랐다. 그들의 계산과 행동은, 제법 수재소리를 듣는 추영의 범주에서도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경우가 많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문득, 눈앞에 잠들어 있는 사내가 두려워졌다.

무서웠다.

도대체 그의 심계는 어디에까지 닿아 있다는 말일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의 종이 도착하면 당신의 모습을 보이고, 의견을 물으라 하였습니다.”

“……?”

그런 추영의 뒤편으로 다가온 라흐마가, 작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그분은 이곳에 잠들었습니다. 만약 종께서 그분이 평안한 휴식을 취하기를 원하신다면, 더 이상 그분이 눈을 뜨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나 종께서 그분의 기침(起寢)을 바라신다면…….”

라흐마는 끝말을 조심스레 흘렸다.

굳이 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결국 추영에게 결정권이 건네진 것이었다.

눈앞에 잠들어 있는 백천악일지, 백륜일지 모를 주군을 살릴지 죽일지는 그의 손에 달렸다.

천하를 뒤집을 무서운 사내가 그의 눈앞에 잠들어 있었다. 이대로 평안하게 쉴 수 있게 한다면…… 모두가 편안할 터였다.

그의 주군도. 추영 본인도. 또한 강호도.

분명 그럴 터다.

‘나는…….’

추영의 양미간이 강하게 찌푸려졌다.

라흐마가 그런 추영을 조심스레 지켜보다,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말한다.

“……그럼, 그분을 깨우는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

추영은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을 할 필요가 없었다.

고민하였지만,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강호가 뒤집힌다 한들.

그의 몸이 조금 지친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눈앞에 그의 주군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죽어 있다.

한데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한다.

추영은 검이었다.

깊은 생각을 하기보다는, 모시는 이를 따르는 역할에 가장 충실한 종이었다.

그야말로 흑천의 종!

주군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심장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있었다.

“……부탁하겠습니다.”

추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라흐마를 바라보았다.

그에 한숨을 내쉰 라흐마가 한쪽 손을 길게 내뻗어 추영의 왼쪽 가슴을 꿰뚫는다.

“커억……!”

붉은 핏물이, 추영의 입 바깥으로 흘러내렸다.

“알고 계셨지요?”

라흐마의 물음에, 아무런 답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이는 추영이었다.

심장이라도 바칠 각오라는 것은, 그야말로 진심이었다.

죽은 자의 부활이란, 응당 그만한 대가를 매개로 한다.

목숨에는 목숨.

‘하찮은 검 한 자루가 부러져 주군께서 대업을 이룩할 수 있다면…….’

그 무엇이 두려우랴!

“천세, 천세, 천천세…… 흑천…… 만세!”

추영의 절규가, 포달랍궁의 지하 내부에서 드높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심장에서부터 흘러내린 붉은 핏물이 지면으로 스며들며 눈이 부시는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푸욱-!

뜨거운, 아직까지도 활기차게 뛰고 있는 심장을 뽑아 든 라흐마가 그러한 빛살 위로 양손을 길게 내뻗는다.

‘결국 내가…… 역천의 대죄를 짓게 되는구나.’

이미 예정되었던 미래.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알면서도 많은 것을 바꾸어 보려 했다.

하나 역시 무의미.

이미 미래를 향한 수레바퀴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우웅-!

공동 전체가 울음을 토하고.

그 끝자락까지 솟은 투명 기둥이 거친 떨림을 내뱉기 시작했다.

잠들어 있던 흑천의 부활 조짐이다.

그 속에서,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물러난 라흐마가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이 년.”

사자(死者)를 현세로 이끌어오기 위한 시간.

그 짧은 틈뿐이었다.

전 강호와 중원이, 피로 물드는 혈겁을 피하기 위해 대비를 할 시간은 고작 이 년이 전부였다.

‘중원이여……!’

과연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까?

알아낸다 한들 방비할 수 있을까?

무엇도 알 수 없었다.

붉은 천에 가려진 라흐마의 두 눈에 보이는 미래는 그저 어둡기만 했다.

언뜻언뜻 비치는 것은 붉은 피.

그리고 시체.

수많은 사람들의 절규와 울음.

그 속에서 희망의 빛은 없었다.

보이는 것은 짙은 어둠뿐.

미래는, 혈세(血世)의 파국(破局)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8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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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귀환 8권

제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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