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62화 (63/83)

(第八章)

마현은 무심한 눈으로 죽어가는 두 마왕을 바라보았다. 당장에라도 죽고 싶겠지만, 절대로 죽을 수는 없을 터였다. 마현이 발한 언령은, 그야말로 세계를 이루는 법칙 중 가장 근원에 위치한 대체불가의 권능이다.

못해도 한 세계의 지배자 혹은 통치자라는 권위에 올라야지만 발휘할 수 있는 힘인 만큼, 세계를 이루는 부속품에 불과한 이들은 그 말을 어길 수 없다.

이대로만 두어도, 영혼은 최악의 공포 끝에 소멸할 터다. 하나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 그의 가족이 위협당했다. 하나뿐인 부인과 자식을 잃을 뻔했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구혜린이 이곳까지 달아났다는 것은 서원에도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다.

고향이, 집이 침략당했다.

마현은 자신의 영역에 함부로 발을 디딘 침략자들을 쉬이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영멸 역시, 쉬이 다가갈 생각은 말도록 해라.”

마현의 손에서 내뻗어진 검은 기운이, 사멸(死滅)해가는 두 마왕의 영혼을 강제로 부여잡는다.

스스로가 만든 거짓 공포에 사로잡혀, 질식해 가던 영혼이 깜짝 놀라며 다시금 육체로 깃들었다.

휘리릭-!

마현이 휘두른 손짓에 따라, 넘실거리며 요동한 흑결이 그러한 영혼과 육체의 고리를 단단히 결속한다. 이후 마현이 다시 한 번 손을 내뻗자 다섯 줄기의 아지랑이가 그들의 머리 위로 연결되었다. 그야말로 검은 실에 매달린 꼭두각시 인형과 같은 모습이었다.

“크으으…….”

“크그그…….”

두 마왕의 얼굴이, 고통으로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 모습이 마치 불가(佛家)에서 묘사되는 아수라(阿修羅)의 진노한 표정을 닮아 있었는데, 마현으로서는 어지간히도 마음에 드는 표정이었다.

‘상상도 못 할 만큼 괴롭겠지.’

육체가 아닌, 영혼에 새겨지는 고통이다.

한 명의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고통의 영역을 벗어난 셈이다. 감히 그의 가족과 식구들을 위협한 벌로서는 결코 과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품에 안긴 직후, 마현이 수혈을 짚은 덕에 잠든 구혜린의 몸 내부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두 번이나 내부가 진탕됐음에도, 이토록 무사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아니, 어쩌면 구혜린이라는 여인이, 어머니의 강함이 만들어낸 힘일 지도 몰랐다.

‘정말로 다행이야.’

혹시나, 아주 만약에라도 그녀와 배 속의 아이가 잘못되었었다면 눈앞의 두 마왕은 지금보다도 더한 고통을 맛보아야 했을 터다. 영멸이 아닌 일생에 이어 후생, 차생에 이어질 데까지 깊게 새겨질 저주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따지자면, 지금 마현이 내린 벌은 일종의 자비인 셈이었다.

“아이들은…….”

두 눈을 감은 마현이 감각을 넓힌다.

꽤나 멀리 떨어진 거리.

제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다행히 누구 하나 다친 기색은 없었다.

구혜린이 힘을 내준 덕일 터였다.

‘천마신교.’

이 일의 주범은 굳이 알기 위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어지간해서는 그저 지켜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을 듯했다. 그들은 이번에 너무나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모습을 감춘 채 따르라.”

“크르르…….”

“크으으…….”

하나 단죄는 차후의 일.

서원의 제자들과 가족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 생각한 마현이 구혜린을 품에 안은 채 몸을 날렸다.

눈 깜빡할 새.

마현의 시야에 달아나고 있는 제자들과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본 마현의 눈에 따뜻함이 깃들었다.

“도망갈 필요 없다.”

굳어졌던 목소리에도 절로 푸근함이 찾아든다.

그에 이끌리듯 쉴새 없이 다리를 움직이던 제자들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스, 스승님.”

모두가 하나가 된 듯, 마현을 부른다.

마전과 마정, 초이영과 마설 역시 감격에 젖은 눈으로 그런 마현을 바라본다.

돌아왔다.

마현이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또, 미안하구나.”

늦은 귀환이었다.

* * *

마현과 만나, 편안한 마음으로 무명현으로 돌아온 제자들을 반긴 것은 불탄 전각과, 무너진 건물이 가득한 와룡서원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마현을 보며 깃들었던 평온한 마음이 단숨에 무너진다. 너나 할 것 없이, 제자들 모두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본래부터 와룡서원을 집처럼 생각하던 일기 제자들을 제외한, 이기 제자들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우리의 서원이…….’

어째서일까?

불편한 장소라 생각한 적이 많았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고, 남몰래 투덜거렸었다.

그저 경쟁심을 불태우기 위한 장소 정도로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한데 불탄 서원을 보니 너무나 화가 난다. 눈물이 차오른다.

“제, 제길. 제길, 제기랄!”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욕설을 내뱉은 황여준이 마구잡이로 바닥을 걷어찼다.

어째서 이런 꼴이 되어야 했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었기에 자신들의 집에서 쫓겨나고, 내몰리고, 이런 비참한 몰골을 마주해야 한단 말인가? 납득할 수 없었다. 분했다.

또한, 그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분명 와룡서원의 생활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경쟁할 수 있는 상대가 있고, 함께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던 장소가 좋았다.

“제길, 개자식들. 빌어먹을 마인 놈들. 나중에 다 잡아 죽여 버릴 거다.”

참지 못하고, 감정을 분출하는 제자 중에는 남궁성호도 있었다. 마왕들의 등장에 겁에 질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이를 간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다들 제각기, 각자의 표현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마현은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달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겼구나.’

자신의 안이함이 부른 분노다.

아이들의 분노는 타인을 향하고 있었지만, 마현은 그 감정을 스스로가 받아들이려 했다. 조금 더 철저했어야 했다. 확실하게 준비를 해놓아야 했다. 마계를 떠나온 지 너무나 오래되어 마음에 깃든 방심이 일을 크게 만들었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는 마현의 어깨 위로, 큼직한 손이 올라왔다.

“정아.”

고개를 돌려보니, 동생인 마정이 보였다.

“뭘 고작 이 정도 일로 맥이 빠져 있는 거야.”

어색하지만, 웃는 얼굴이다.

또 어딘가 쑥스러워 보이는 모습이기도 했다.

‘응원하고 싶은 게냐.’

아마 상심하는 마현을 보고, 어떻게든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리라. 가족, 형제란 본래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그리고 확실히, 별것 아닌 짧은 한마디였지만 마현은 그 속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정이의 말이 옳다.’

고작, 이 정도 일이다.

구혜린이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마현의 백결로 단숨에 치료했다. 그 외에 제자들 중에는 다친 이 하나 없다. 가족들도 무사하며, 와룡객잔은 전혀 이상이 없었다. 별것 아닌 일이다.

‘그래, 이 정도 일에 크게 상심할 필요는 없어.’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실수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를 밑바탕 삼아 도약하는 일이다.

또한 다시는 그러한 실수가 없게끔 방비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작금 자신은 상심해 있을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수많은 제자들의 시선이 보인다. 가족들의 걱정 가득한 모습이 보인다. 지금은 잠이 들어 있지만, 이 상황을 보았다면 구혜린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 상황인 만큼, 오히려 자신이 힘을 내야만 한다.

“다시 복구하면 될 일이다.”

서원의 건물이야, 다시금 지으면 그만이다.

잃어서 안타까울 것은 사람.

“건물을 건물일 뿐이니까.”

마현의 작은 목소리가, 분노에 잠겨 있던 아이들을 조금씩 일깨웠다.

“추억을 만든 것은, 사람이다.”

그 말이 옳았다.

서로 다투고, 질투하고, 시기했지만 결국 서로가 있었기에 와룡서원이 즐거웠다. 이미 확실하게 깨달은 바 아니던가?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이 남았으니, 할 일은 명확했다.

“무너진 건물을, 우리 손으로 다시 짓고 싶습니다.”

백산이 나서서 말했다.

그리고 그에 동의하듯, 이기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제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힘든 일일 터다.

목공(木工) 일이라고는 거들떠도 본 적 없던 아이들 아닌가? 심지어 이기 제자들은 명문가의 자손들이다. 스스로 손에 흙을 묻히고, 땀을 흘리며 건물을 짓겠다고? 불과 일 년 전까지의 제자들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제자들은 변했다. 마현이 큰일을 한 덕이 아니었다.

지켜보고, 보듬기만 했다.

그저 아이들 스스로 성장한 것뿐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 고마워, 흐뭇한 미소를 지은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손으로 다시 짓자꾸나.”

제자들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마현 역시 팔을 걷어붙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 * *

아이들과 마현, 눈을 뜬 구혜린 그리고 와룡객잔의 가족들 모두가 힘을 합쳐 와룡서원의 재건축에 들어갔다.

목공업자인 금주역이 그러한 와룡서원 식구들을 도왔다. 아이들의 바람이 있는 만큼 직접 손을 거들지는 않더라도, 진두지휘를 맡아 건축에 큰 무리가 없이 진행되게끔 보조해준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무너진 전각의 틀이 다시금 잡혀갔다. 여전히 침략의 폐해는 남아있지만 그래도 완전히 불타버려 볼썽사나운 꼴이 되었던 처음보다는 나은 모습이었다.

그때쯤이 되어서야, 와룡서원의 식구들도 가볍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던 상처가 조금씩 복원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열흘 정도만 더 하면 소룡원 공사는 모두 끝날 것 같군.”

마현을 향해 다가온 금주역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와룡서원의 수많은 건물 중, 가장 크게 무너졌던 건물이 바로 아이들이 머물던 소룡원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건축업자가 온다 한들 건물을 새로 지을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도, 소룡원은 재건축에 들어가야만 했다.

놀라운 점은, 이제 막 목공 일을 배우기 시작한 제자들을 데리고 공사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전문 목수들을 지휘하는 것보다 일의 진행 상황이 빠르다는 점이었다.

“다행이군요.”

아직 어리지만, 체력은 어지간한 어른 못지않은 아이들이다. 거기에 오성은 밝고, 서원 건축에 대한 집념도 엄청나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공사 마무리까지는 한 달이 조금 넘게 걸리겠지만…… 어찌 됐든 놀라운 일이야.”

금주역이 다시금 짧은 감탄을 흘릴 때였다.

마현의 옆에서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서원 공사를 돕고 있던 구혜린이, 조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현 가가, 시험결과는 어떻게 된 거예요?”

워낙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데다, 갑작스럽게 해야 할 일이 늘어 그간 묻지도 못했다. 정확하게는 마현이 직접 이야기를 하기를 기다렸다는 것이 옳을 터였다. 합격했다면, 굳이 감출 이유도 없었으니 말이다. 한데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마현이 아무런 입을 열지 않는다. 혹시 하지만, 걱정이 안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 시험 말이지.”

마현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건물을 쌓기 위한 자재를 들어 올린다. 동시에, 주변에서 각자 할 일을 하는 것만 같던 아이들의 시선이 빠르게 쏟아졌다. 어찌 보자면,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지도 몰랐다. 마현이 서원을 떠나 북경까지 가야 했었던 이유가 바로 그 회시였으니 말이다.

“아쉽게도…….”

마현이 말꼬리를 늘이자, 구혜린의 표정에 옅은 어둠이 졌다.

“설마…….”

“합격했지.”

“에……?”

“아쉽게도 장원은 못 했다고. 하하.”

“그, 그러면?”

“응. 나 이제 진사(進士)야.”

마현의 별것 아니라는 투의 짧은 선언에, 공사에 가담하고 있던 모두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마현의 짧은 말이, 그야말로 깜짝 선언이 된 셈이었다.

“경사(慶事)로군!”

가장 먼저 반응한 이는, 놀란 표정을 한 금주역이었다.

“경축드립니다, 스승님!”

“축하드립니다!”

이후로 제자들의 목소리가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모두 마현이 해낼 것이라 믿고 있었다고 한들, 그 결과를 체감하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정말…… 해냈군요.”

구혜린 역시 감격에 찬 모습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드디어 마현이 진사가 되었다.

회시 합격이 무엇을 의미하던가!

진사는 또 얼마나 대단한 칭호던가!

회사에 합격한 진사는, 천자가 직접 주도하는 전시를 치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전시에서는 단 한 명의 탈락자도 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곧, 회시를 합격한 진사란 그야말로 언제든지 황궁에 입궁할 수 있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모두가 응원해준 덕이야.”

마현은 겸손을 표했지만, 회시의 합격이란 그리 쉽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모여 축하해야 할 일.

진짜로 연회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소문은 금주역과 제자들을 넘어 와룡객잔으로, 끝내 마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안 그래도 마현의 와룡서원이 불타 심려가 크던 차. 이처럼 경사스러운 일을 그냥 넘길 마전이 아니었다.

본래 연회란 많을수록 좋은 법 아니겠는가!

“정아, 가게 문을 열거라, 연회다!”

마정 역시 거절하지 않았다.

마현의 회시 합격.

폭풍이 지나가고, 즐거운 의미가 담긴 하루가 또 찾아왔다.

* * *

수많은 사람들이 마현의 합격 소식에 몸을 맡겨 마냥 기뻐하고 있었지만, 단 한 사람만은 결코 그러지 못했다. 바로 석구억이었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사실 지금 석구억이 느끼고 있는 의문은 이기 제자들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서원을 침략했던 세 명의 마왕.

하나, 하나가 만만치 않아 보이는 초고수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서원을 불태웠는데, 마현이 돌아온 이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원이 다시금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세 명의 마왕이 어떻게 됐는지는 그 누구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의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답을 유추할 수 있는 소문이 있기는 했다.

“사실 큰 사부님이 천하제일에 가까운 고수시거든.”

“천하제일은 무슨, 고금제일도 아깝지 않을걸?”

“고작 마인 세 명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게 당연하잖아.”

일기 제자들로부터 퍼져 나온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이기 제자 중 하나인 황여준이 동의를 표했다.

“그 사람은 진짜 괴물이라고 했으니까.”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그 무시무시한 세 명의 마인을 제압했다고? 작은 의문이 남았지만, 다른 제자들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석구억만은 분명 달랐다.

‘천하제일이니, 고금제일이니. 말도 안 돼.’

그처럼 대단한 고수가 고작 서원 서생이나 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분명 한 수 무공을 숨겨 두기는 했겠지만, 그래 봐야 천하십대고수 정도가 한계다.

물론, 그도 분명히 대단한 일이었다.

하나 이번에 서원을 방문한 삼마왕을 생각하자면 결코 드높은 무공인 것만은 아니었다.

‘마왕급 분들은, 천하십대고수에 비견해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들이라고 들었는데…….’

말석인 수마왕만 하여도 초절정고수의 끝자락, 과거 천하십대고수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던 해남검후에 비견해서도 결코 모자라지 않은 무위를 갖춘 초고수다. 하면 그 위로 위치한 다른 마왕들은 어떠한가? 대다수가 조화경의 입구에 들어선 무시무시한 마인들이었다.

괜히 수많은 마두들을 제치고, 마왕이란 칭호를 부여받은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팔대마왕의 신화는, 아직까지도 천마신교를 지탱하고 있는 근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한 팔대 마왕 중, 세 명이나 되는 마왕이 와룡서원에 찾아왔다.

한데 모두가 당해 쓰러졌다.

심지어, 그런 마왕들을 상대로 큰 무리한 기색조차 없다.

적어도 석구억의 상식 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다른 음모가 있었던 건가?’

와룡서원의 위치는, 참으로 애매모호하다고 할 수 있었다. 굳이 석구억이 속한 천마신교가 아니더라도 정의맹이나, 흉왕성으로서도 그저 지켜보고 있기만 하기에는 무리가 많은 장소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할 때, 어쩌면 이 모든 일은 다른 세력에서 오래전부터 계획해 놓은 흉계일지도 몰랐다. 팔대마왕 중, 세 명의 마왕이나 잃었다는 것은 천마신교로서도 큰 손해였으니 말이다.

‘마, 말도 안 돼!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는데?’

석구억 본인은 인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단순히 겁이 많을 뿐 정보를 분석하고, 정리하며, 그것으로 인한 상황을 추론하는 데 있어 꽤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차, 차라리 정말 스승님이 그런 무공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는 게…….’

마현은 확실히, 보통 글 스승과 다르다.

다른 서원에 다녀보지 않았다 한들 그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역시 천하제일이라니, 말이 안 된다.

분명 말이 안 되는데…….

“고민이 깊은 게냐?”

화들짝.

혼자 사색에 빠져 있던 석구억의 등 뒤로, 웃는 얼굴의 마현이 다가오며 물었다. 매일 같이 보는 얼굴이지만, 단둘이서만 이렇게 조용히 이야기하는 경험은 또 처음이다. 덕분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진 석구억이 양손을 크게 내저었다.

“아, 아, 아니요.”

물론 엄청 고민하고 있었다.

하나 그를 내색할 수는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구억아.”

그러거나 말거나.

마현은 그런 석구억의 바로 옆자리에 앉으며 그의 이름을 부른다.

“……네, 네?”

“너는 와룡서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

어찌 생각하고 있냐니?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이다.

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야 어려울 것도 없겠지만, 석구억 본인의 본래 위치를 생각하자면, 정말로 어려운 답이었다.

‘서, 설마 스승님은 다 알고 계신 걸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떠오르는 또 다른 가설이다.

“친구들을 보거라.”

마현의 말에는, 마치 마력이라도 담긴 듯했다.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어찌 거부할 수가 없달까?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딱히 거절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몸이 절로, 마치 그래야 한다는 듯 자연스레 그리 따를 뿐이다. 하나 그렇다고는 해도, 고개를 돌리는 자신을 느끼면 화들짝 놀라는 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음식 맛이 좋기로 소문난 와룡객잔의 연회인 만큼, 사람이 많았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그야말로 인파가 한가득하다. 한데 마현의 말대로 친구들을 찾아 시선을 돌리니, 그야말로 와룡서원의 제자들밖에 안 보인다.

그나마 어설프게라도 말을 섞는 마설, 육숭, 남궁성호, 남궁성아 등을 비롯해서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한 모용청이나 용제우, 철무곤까지. 심지어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꼴 보기 싫은 황여준까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러고 나니, 일기 선배들인 백산이나 정순욱, 소수린, 양명과 화영령 등도 보인다.

옆에는 마현이 있다.

조금 더 둘러보니, 구혜린과 초이영도 보인다.

와룡서원이다.

와룡객잔 내에, 와룡서원이 존재한다.

아니, 어디를 가든 이들이 있다면 그곳이 와룡서원이다. 그러한 와룡서원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땅 위에서 자신은…….

‘난 뭐지?’

석구억에게 와룡서원이란 무엇일까?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었다.

문득,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왜, 왜, 어째서…….’

도대체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자신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친구들이 좋은 것이지?”

차라리, 이런 단출한 질문이라면 답변하기 쉽다.

하기에, 미친 듯이, 쉴 새 없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눈물이 마구잡이로 쏟아지고 콧물이 계속해서 쏟아져 오른팔로 크게 감추어 보았지만, 찌푸려진 표정과 흐르는 감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

“와룡서원에서, 계속 함께하고 싶은 것이지?”

“네, 네!”

작은 목소리로 말하려니, 콧물에 목이 막혀 저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답변한다.

“와룡서원을, 사랑하고 있는 거지?”

“네, 네. 스승님. 너, 너무…… 너무 조하해요.”

눈물과 콧물이 목구멍을 틀어막아 버린 덕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조차 힘들다.

하나 어디 부정할 수 있으랴.

너무나 좋다.

매일매일을 외줄 타기와 같은 불안정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와룡서원 내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믿음직한 스승님들과 친구들이 있는 장소기에 견딜 수 있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꿋꿋이 버텨냈다.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었다.

자신은 그런 와룡서원을 해치려 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스승들의 믿음을 배신했다.

한데도, 한데도 와룡서원을 좋아한다.

와룡서원이 있기에 견딜 수 있었다니…… 자신의 한심함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친구들을 상처 입혔다고 생각하느냐?”

고개를 또 한 번 크게 끄덕인다.

친구들뿐만이 아니었다.

마현과 구혜린 등을 비롯한 식구들.

와룡서원 전체에 큰 흉을 남겨 버렸다.

“죄송, 죄송해요. 으흐흑.”

이제는 부정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진실을 숨길 수 없다는 말이 옳을 터다.

마현은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자신은 석구억이 아니었다. 그저, 중원 전체에 기묘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와룡서원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침투한 마졸 팔호(八毫)다. 광주 석가장 따위, 멀리서나마 지켜본 적조차 없었다.

그저 위에서 분부하는 대로, 가족들의 인적사항과 석가장의 특징 정도를 외운 게 전부일 뿐이었다.

“거치말, 거짓말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좁고 컴컴한 동굴 내에서 생활하던 자신에게 유일한 휴식처가 되어주었던 와룡서원의 모두를 배신했다. 자신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마졸 팔호의 자리는 와룡서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와룡서원은 집이고 고향이었지만, 와룡서원은 마졸 팔호를 환영한 적이 없었다.

그 말이 옳았다.

울고 있는 석구억의 머리 위로, 손을 얹어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마현이 묻는다.

“계속 남아있고 싶은 거지?”

물론이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계속 와룡서원에 남아있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허락할 리 없어도 그러고 싶었다.

“네, 네.”

“하면 계속 남아있어도 좋다.”

“…….”

제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그리 묻고 싶었다.

하나 정말로, 이제는 목이 콱 틀어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콧물이 쉴 새 없이 흐른다.

“너에게는 자격이 충분하다. 내가 고른 제자이니까. 나는 마교의 마졸이 아닌, 석구억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게 바로 너다. 내 말이 틀렸느냐?”

마현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너무 따뜻했다.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그분’과는 완전히 달랐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의 안도가 찾아오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냥 이 상태로 마현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쉬고 싶어질 정도였다.

하나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분은, 그들은 너무나도 두렵고 강대한 존재였다.

전 강호를 들었다 놓을 수 있는 큰 이름이다.

마현은 그런 석구억의 속내를 모두 읽고 있는 듯했다.

“이제 너를 속박하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석구억.”

그 말과 함께, 머릿속 끝으로 파고든 기운이 몸 내부를 상쾌하게 감싼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작은 변화였지만 석구억은 알 수 있다. 몸에 품고 있던 검은 마기가 사라졌다. 자신이 마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인(印)과 같은 마기가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소멸한 것이었다.

“천마신교가 아닌, 천하가 적이라 한들 두려워 말거라. 또한 개의치 말거라. 너는 그냥 너일 뿐이다. 와룡서원의 제자 석구억. 아니, 강초(强草).”

“……!!”

“마음에 들지 않느냐? 잡초는 어디에나 널려있고, 언제나 짓밟히지만 누구보다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나는 네가 그러한 잡초 중에서도 가장 강인한 풀이 될 수 있다 믿는다. 그리하여 쑥쑥 자라나, 천하에 그 이름을 꿋꿋이 새기거라. 그야말로 강초가 되어 말이다.”

입술을 깨문 석구억 아니, 강초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리될 거다.

꼭 그리되어, 와룡서원의 이름을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새길 것이다.

할 수 있다.

자신도 있었다.

그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재능이 있었으니 말이다.

“저는, 저는, 강초가 될 거에요.”

사람의 마음은 땅(土)과 같다.

그 대지에 남아, 끈질기게 그 사람이 되새김질할 수 있게 해주는 문장가가 되겠다.

이야기를 풀어, 전달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었다.

소설가가 되겠다.

와룡서원 출신의, 학사이자 문인이 되고 싶다.

“잘해낼 수 있을 게다.”

마현이 믿어준다.

그에 화답하기 위하여, 눈을 빛낸 석구억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이, 징징이. 거기서 뭐 하냐.”

그런 강초에게, 불평불만 가득한 눈을 보이는 황여준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물을 훔치고, 흐르는 콧물마저 삼킨 강초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꿋꿋이 섰다.

“나는 징징이가 아니야.”

“뭐, 뭐야…….”

움찔.

평소 그가 알던 강초답지 않은 태도에 꽤나 놀란 황여준이 살짝 몸을 움츠렸다. 그런 황여준을 향해, 눈을 부릅뜬 강초가 확언하듯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징징이가 아니었다.

석구억도 아니다.

마졸 팔호는 더더욱 아니었다.

“강초야.”

그게 그의 진짜 이름.

시대를 뛰어넘어, 먼 미래에까지 전해질 한 문인의 이름이었다.

제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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