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章)
삼차 시험까지, 모든 것이 끝났다.
‘확실히 무리했던가.’
시험 측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가 있었다면, 종선휘와의 만남 쪽이었다.
‘마지막 검은 분명 무리였지.’
기억하고 있지만, 함부로 따라 하기에는 힘이 든다.
그를 펼치려 하면 세상이 반발하는 탓이다.
경계하고, 억누른다.
자연과 천하를 발아래 두었다는 마현조차도 그 묵직한 압박만은 쉽게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그야말로 전력을 짜내야지만 만들 수 있는 검이, 마지막 황금의 검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마현은 종선휘와 헤어진 이후, 다음 시험 시간이 되기까지 그야말로 하루를 내리 잤다. 이차 시험 때에는, 오랜만에 느낀 어깨를 내리누르는 피로함에 헛웃음까지 지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지.’
그런 무리를 하면서까지, 종선휘에게 마지막 검을 보여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렵게 돌려 말할 것도 없이, 단순히 그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눈빛.’
분명 외모는 종심(從心)에 다다라 보였으나, 두 눈빛만은 달랐다. 마치 소년을 닮은 듯 총명하게, 또한 열의로 가득 찼던 그 빛은 서원에 남겨 두고 온 제자들을 떠올리게끔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노력하겠지.’
어깨에 얹은 무게감이 있어 당장 모든 것을 내팽개치지는 못할 터지만, 그런 눈을 가진 이는 분명 포기하지 않는다. 갈고 닦고, 노력하여, 목표하는 곳에 닿기 위해 전진한다. 그렇다고 한들, 종선휘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는 마현 역시 모른다.
단지 응원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스승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한때 천재라 불렸던 만큼, 천포에게는 수많은 적이 있었다. 화산파 역시 천포의 재앙을 피해가지 못했던 대상 중 하나였다. 종선휘 역시 아마 그때, 처음으로 천포를 보고 그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을 것이다. 하나 종선휘는 천포를 원망하지 않고 있었다.
마현을 배려하여 ‘그분’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공경심까지 표현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를 미워하기 전에, 한 명의 무인으로서 천포의 무를 숭상한다.
그런 범인(凡人)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품고 있기에, 작금의 종선휘가 존재할 수 있을 터였다.
무에 대한 순수한 열망으로 가득 찬, 정도 무림의 지존.
“하하…….”
다시금 그 눈빛을 떠올리고 있자니, 서원에 남겨 둔 제자들이 유독 보고 싶어졌다.
‘당장에라도 돌아가고 싶지만…….’
시험은 이제 끝이 났고,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어서 빨리 결과를 본 후, 돌아가고 싶군.’
제자와 가족.
마현을 맞아주는 따뜻한 이들의 품이 그리워지는 늦은 오후였다.
* * *
석구억은 불안하고 초조했다.
‘대체 왜 연락이 없는 거지?’
첫 번째 사신(使臣)이 다녀간 이후, 벌써 몇 개월이 흘렀다. 처음 한동안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었다. 하나,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자 다시금 초조해졌다. 언제 다시 사신이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다. 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춰 또다시 정보를 수집했다. 그 기간이, 어찌나 아슬아슬했는지는 오로지 석구억 본인만이 알 일이었다.
심장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발밑으로 떨어지는 감정을 느꼈었다.
한데 그러한 날이 끝나지를 않고 있었다.
‘어서 빨리 사신이 찾아와야지…….’
그나마 며칠만이라도 마음이 편할 텐데…….
매일 같이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있는 채라 눈 밑에 드리워진 음영만 짙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람이란 게 본래 그렇던가?
그러한 날들이 매일 같이 이어지니, 석구억의 머릿속은 최악의 생각으로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서, 설마…… 그, 그분이 날 버린 건가?’
순간, 심장이 섬뜩해지는 감정이 온몸에 차올랐다.
신교에서 버림받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다음번에 찾아올 사신은 사신이 아닌, 사신(死神)이 될지도 몰랐다.
‘내,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석구억의 머릿속 기억이 시간을 거슬러 몇 개월 전으로 되돌아갔다. 당시 보고서에서 혹여 잘못된 부분이나, 실수한 점이 없나 고민에 빠진 것이다.
‘어, 없는 것 같은데?’
하나 높은 분의 마음을 어찌 자신 같은 평범한 마인도 못 되는 마졸(魔卒)이 알 수 있겠는가? 함부로 그 심사를 헤아리는 것조차 죄악이다.
‘다, 당장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빌까?’
살려만 달라고 한다면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팔 한쪽, 다리 한 짝쯤이야 빼앗길 수도 있겠지만…….
“히이익……!”
말도 안 된다.
그 끔찍한 고통을 어떻게 참으란 말인가!
상상만으로 저도 모르게 긴 신음을 내뱉은 석구억이 이불 아래에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또 왜 지랄이야, 이 미친놈아.”
그런 석구억의 바로 옆자리에 누워 있던 황여준이, 황당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보는 석구억은 아주 이상한 놈이었다.
매일 같이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 또한 쓸데없이 겁이 많고, 행동은 소심하다.
가장 특이한 점은, 그런 주제에 머리가 굉장히 좋다는 점이었다.
겉으로 티는 나지 않았지만, 학문 시험을 본다면 이 중에서 장원은 분명 육숭이다. 그리고 그 뒤를 바로 이을 녀석이 바로 옆에 누운 석구억이었다. 아니, 오히려 글을 읽고 이해하여, 표현하는 점에 대해서만 생각하자면 석구억이 더 뛰어날지도 몰랐다.
“미, 미안. 아, 안 좋은 꿈을 꿔서…….”
이불 위로, 조심스럽게 얼굴을 빼 내밀어 사과를 하는 석구억을 향해, 거칠게 콧바람을 튕기는 황여준이었다.
‘또 거짓말은 엄청나게 못 하지.’
지금 소룡원의 이기 제자들 방 안에 있는 아이들은, 대다수가 이름 높은 무가의 자제들이다. 어려서부터 무공을 익히기 좋은 몸으로 만들기 위해 벌모세수를 받은 데다, 쉬지 않고 단련해온 노력, 거기다 타고난 재능까지 갖춘 괴물들이 두루두루 있다. 그런 아이들이 사람이 잠자는 소리 정도도 분간하지 못할까? 결국 석구억의 서투른 거짓말은 들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러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해 줄 정도로 황여준이 친절한 편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누구냐?”
깊이 신경 쓸 바는 아니다.
그리 생각하고 있던 황여준의 귓가로 꽤나 생소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또 어떤 미친놈…….’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린 황여준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이상하게 생소하다 느꼈는데, 그럴 만도 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모용청이었다.
“벙어리인 줄 알았는데 말도 할 줄 아는군.”
우당탕.
빈정거리던 차, 두 번째로 반응을 보인 것은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키는 철무곤이었다. 재빠르게 바닥을 굴러 자신의 검을 둘러멘 철무곤의 표정이 크게 굳어져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침상 옆에 놓아두었던 검을 집어 드는 모용청의 표정 역시 좋지만은 않았다. 아니, 처음 보는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눈이 떨리고 있어?’
무언가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부터, 소룡원 내부를 감싸고 있던 공기가 변했다. 묵직해졌다고 할까? 무언가 서늘한 기운이 등 뒤에서부터 치솟아 오르는 느낌이었다.
‘무슨…….’
대체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의문은 오래지 않아 해결되었다.
“하나도 아니고 둘? 시험 삼아 흘려본 기운이라고 하더라도 놀랍군!”
방 안 구석, 어둠으로부터 듣는 것만으로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짓이냐, 수마왕(獸魔王).”
하나가 아니다.
다음으로 들려온 것은 꽤나 침착해 보이는, 중후한 목소리였다.
“무슨 짓이긴. 큭큭. 설마 여기까지 와서 정말 애송이가 건네는 정보나 받아갈 생각이었나, 폭마왕(爆魔王)?”
“하나 본교로부터 내려온 명령은 정보회수가 아닌가. 킥킥.”
셋!
마지막으로 들려온 목소리는, 그야말로 음산했다. 듣는 것만으로 뼈마디가 굳어지는 듯한 감각이 돌았으며, 살결 위로는 소름이 돋아났다. 위험하다. 고작 음색만으로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게 돋아났다.
“귀마왕(鬼魔王), 자네답지 않은 소리를 하는군. 정보회수야 꼭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킥킥킥, 그렇지, 물론 그렇기야 하지. 어찌 됐든 임무만 완수하면 되는 것이니 말일세.”
스릉.
“다시금 묻지. 누구……!?”
암흑 속에서 들려오는 세 사람의 대화에, 검을 살짝 뽑아 든 모용청이 나지막이 물으려 할 때였다.
철컥.
“이런, 이런. 귀여운 아이야. 검은 함부로 뽑아 드는 것이 아니란다.”
대체 언제였던 것인가?
보지도 못한 사이, 뽑아 들려던 모용청의 검이 거대한 손에 막혀 강제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눈앞,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내를 바라본 모용청의 눈이 빠르게 떨렸다.
커다랗다.
단순히 덩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눈도, 코도, 입도 컸다.
심지어 머리와 얼굴 위로 솟은 삐죽삐죽 솟은 털도 굉장히 크게 보였다. 모용청의 이마 위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눈앞의 상대와 자신은, 그 크기만큼이나 역량 차이가 존재한다. 단지 마주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칫……!”
하나 물러설 수는 없다.
모용의 검은 부러지되, 굽히지 않는다.
파앗-!
펄럭~!
단숨에 지면을 박차고, 침성을 덮고 있던 이불로 상대의 시야를 가린 모용청이 거리를 벌리며,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챙-!
빠른 속도다.
‘괴물!’
나름대로 단련을 해왔다고 자부하는 황여준으로서도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
“……돕겠다.”
그 뒤를 따라나선 것은 마찬가지로 검을 뽑아 든 철무곤이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용제우 역시 어느새 자신의 두 주먹을 움켜쥔 채 그들의 옆에 섰다. 온몸을 덜덜 떨고 있지만, 어떻게든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황여준의 눈동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같다.
자신과 같다.
아니, 겁쟁이 석구억은 그야말로 창백한 안색이 되어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고 있다. 이 무거운 공기 속에서 두 발로 서서 움직이고 있는 제자는 오로지 셋뿐이었다.
‘나도, 나도…….’
질 수 없다.
질 수 없어.
무릎이 떨리고, 발끝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고작 발가락에 힘을 주는 것뿐인데, 모공에까지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느낌이다. 하나 일어선다.
“빌어먹을!”
일어섰다.
거친 욕지기를 내뱉으며 두 발로 지면을 내디딘 황여준이 떨리는 무릎을 억지로 부여잡은 채,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갔다. 먼저 당당히 선 세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해, 두 무릎으로 온몸을 지탱하고 굳건히 선다.
“나도, 나도 싸운다.”
옆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 덕일까? 아니면 기운을 해소하고 일어난 탓일까? 어찌 됐든 걸음을 옮기기 전보다 몇 배는 편안해졌다.
뒤늦게야, 입술 위로 비릿한 혈향(血香)이 올라왔다.
‘뭐 어때?’
일단 이놈들과 나란히 섰다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기는 했다.
펄럭~.
공중에서 날갯짓하던 이불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모용청의 앞에 모습을 나타냈던 거인의 웃는 얼굴이 드러난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덧, 어둠 속에서만 목소리를 흘리던 세 사람이 모두 나타났다.
‘저놈들을 쓰러트린다.’
아마, 현재 상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일 터였다.
* * *
“놀랍군, 놀라워. 흘흘.”
거인, 수마왕의 옆에 선 좌측의 허리 굽어진 노인이 자신의 가는 염소수염을 부드럽게 가다듬으며 웃음을 흘렸다.
“아직 지학(志學)도 되어 보이지 않는 애송이들이, 넷이나 이 몸의 귀령기(鬼靈氣)를 이겨내다니. 즐거워. 너무나 즐거워. 과연 어떤 몸을 가지고 있는 거지? 해부해보고 싶군. 아주 샅샅이 훔쳐보고 싶어. 흘흘흘. 수마왕, 미안한데 시체를 온전히 보전해줄 수는 없겠나?”
“큭큭, 가능하다면 말이지.”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겠네.”
“……둘 다. 되도록 일을 조용히 끝내라는 명은 잊었나 보군.”
마지막 사내.
불타오르는 듯한 적안에, 눈에 띄는 적발의 사내가 옅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조용히라는 것 역시 방법은 다양하지 않나? 살인멸구(殺人滅口)라든가…….”
귀마왕의 두 눈에서 으스스한 빛이 흘러나와 아이들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마치 상품을 감평하는 듯한 시선이다.
‘얕보이고 있어.’
아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눈앞의 세 마왕은, 감히 그러한 행동을 해도 될 정도로 강하다. 하기에 딱히 유쾌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입 한 번 벙긋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지?’
황여준의 두 눈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도주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정도 무력 차이라면, 어차피 달아나도 금방 따라 잡힌다. 차라리 죽을 각오로 놈들을 죽인다. 두 눈에 으스스한 살기가 차오른다.
“뭐, 일단은 부탁을 최대한 염두에 둬보도록 하지.”
목을 좌우로 꺾어, 가볍게 몸을 푼 수마왕이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다행히, 세 사내는 합공(合攻)을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감히 방심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눈앞의 수마왕만 하여도,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크고 높은 적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어떻게…….’
앞으로 나선 네 아이의 생각은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같았다.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뒤의 두 사람이 나서기 전에, 하나라도 쓰러트려야 한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머리를 잘만 굴린다면 방법 하나쯤은…….
“자, 그럼 위험한 무기를 뽑아 들었으니 벌을 받아야겠지?”
낮은, 짐승 울음소리와 비슷한 거친 목소리를 흘린 수마왕의 몸에서부터 강렬한 기세가 뻗쳐 나왔다. 과연, 그 별호에 어울리는 짐승과 같은 기세다. 그 기운을 정면으로 받은 네 아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대체 어떻게?’
도대체 무슨 수로 저 거대한 괴물을 쓰러트리란 말인가!
셋이 아니라 하나라서 기회라고?
정녕 그런 기회가 존재하기는 한단 말인가.
가슴 속 한편에 절망이라는 두 글자가, 싸우기도 전에 새겨지려 한순간이었다.
콰직-! 퍼벙-!
“큭……?”
방의 한쪽 벽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며 소용돌이치는 기운이 단숨에 수마왕을 향해 쏘아졌다.
“꼬맹이들, 물러서!”
이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정순욱이었다.
아니, 그를 포함한 일기 제자 모두였다.
각자 와룡강림공의 기수식을 취한 채 모습을 드러낸 다섯 제자의 시선이 서로를 빠르게 오갔다.
‘속전속결(速戰速決)!’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세 명의 마인 중 두 사람은 싸움에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지켜볼 생각이 많아 보인다. 하면 기회는 지금뿐이다.
이기 제자들과 비슷한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하나, 그 움직임은 또 달랐다.
굳어져 있지 않으며, 능수능란하다.
단숨에 수마왕의 품으로 접근해 자신들의 영역 내에서 싸움을 풀어나간다.
파바밧-!
빛살이 번뜩이며 다섯 제자의 봉과 수마왕의 권각이 쉴 새 없이 부딪쳤다.
콰직, 콰지직-! 펑!
소룡원 내부가 부서지고, 무너지며, 폭음을 터트린다.
“이거 무슨 서원이 아니라 무관에라도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군…… 큭큭, 재밌어. 아주 좋다! 애송이들. 크하하!”
파바바밧-!
번쩍이는 불빛과 잔영이 방안을 가득 메운다.
그 엄청난 공방에 이기 제자들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게만 보였다.
‘아니……. 그렇게 보이기만 할 뿐이겠지?’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모용청과 철무곤이었다.
일기 제자들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주변을 장악하던 수마왕의 기세가 옅어지며 마음속에 다시금 투기(鬪氣)가 일기 시작했다.
“돕겠습니다.”
앞으로 달려나간 모용청의 검이 지면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수마왕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늘과 땅마저도 부순다는 모용가의 건곤파섬검(乾坤破閃劍)이었다.
“흐읍……!”
짧은 기합만으로, 그 공격을 쳐낸 수마왕이 코웃음 칠 때였다.
“죽어!”
수마왕의 머리 위까지 도약한 철무곤의 검격이 무겁게 떨어졌다.
철가장의 독문무공인 철참검격(鐵斬劍擊)의 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봐야 수마왕의 입장에서야 우스운 검격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를 막는 순간 날아올 한 자루의 봉이었다.
격전 속에서 한발 물러나, 매서운 눈빛으로 봉을 겨누고 있는 여인. 소수린을 향해 흘낏 시선을 던지는 수마왕의 등 뒤로 옅은 식은땀이 맺혔다.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가 아닌가?’
한데도 얕볼 수 없다.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돌아다니는 다른 제자들이 모기라면, 그녀는 벌이다. 그것도 언제 매서운 독침을 쏘아낼지 모르는 아주 지독한 말벌이다. 고작 서원 정도라 생각했던 것 자체가 잘못되었었다.
자칫하면, 무너지는 것은 자신일 수도 있다.
‘이 몸이 고작 이런 애송이들에게……!’
섬뜩한 생각에, 갑자기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았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들판의 짐승들 중 왕이라 불리는 사자(獅子)를 연상케 한다.
“감히 이 몸을……!”
카가가강-!
거대한 기운이 폭풍처럼 일어나 사방팔방으로 날아드는 아이들의 병장기를 털어낸다. 하나 아이들의 기세는 쉬이 꺾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졌다.
“우리도 가담한다!”
뒤를 따라 달려든 용제우와 황여준 덕이었다.
기운을 풀어 잠시 떨쳐낸다 해도, 말 그대로 잠깐의 시간을 벌 뿐에 불과했다.
“날파리 같은 녀석들……!”
입으로는 욕지기를 내뱉고 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전(苦戰)이다.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가볍게 몸이나 풀 생각이었는데, 싸움을 하고 있다. 그것도 만만치 않다. 딱히 대단한 진법을 펼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손발이 딱딱 맞는 제자들의 오묘한 공격 탓이다.
‘대다수가 제공권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타고난 재능이어야 한다는 제공권!
마현은 그를 교육으로 와룡서원의 제자들에게 심어주었다. 덕분에 합공을 함에 있어서도 막힘이 없었다. 오히려 힘의 증가 효과만 더욱 확실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소수린뿐 아니라, 정순욱, 백산의 예상치 못한 일격도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흘흘, 힘들면 도움을 요청하겠나?”
뒤로부터, 귀마왕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서는 꽤나 고전이라 할만하지만, 귀마왕이 참여하면 승부는 단숨에 갈린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끼어들지 마라, 노괴!”
하나 수마왕의 자존심이 그를 허락지 않았다.
“감히, 감히……! 시체를 무사히 남겨달라는 부탁은 못 들어줄 것 같구나.”
대신하여, 크게 부푼 근육에 더욱 힘을 집어넣는다.
이후, 단숨에 도약한다.
파앗-!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제자들의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선택한 전장은 공중이다.
“잡았어……!”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소수린의 봉이 그 뒤를 따랐다. 정확하게 가슴 한가운데를 노리고 날아드는 일격에 실린 기세가 만만치 않다. 아무리 수마왕이라 한들, 그 일격에 적중당한다면 한동안 몸을 가누지 못할 터였다.
“크아앙!”
하나 당해주기 위해 공중으로 뛰어올랐을 리 없지 않은가? 짐승과 같은 울음을 토한 수마왕의 손이 거칠게 공중에서 휘저어지며 세 줄기 강기를 흩뿌렸다. 마치 짐승이 발톱을 휘두른 것과 같은 모양새의 강기였다.
오로지 공격 일변도.
이번 단 한 번의 공격을 하기 위해 기회만을 엿보던 소수린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설마하니 공중에서, 몸을 반쯤이나 비튼 자세로 이러한 공격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뚫고 나갈 길이 전혀 없지는 않다.
문제는 너무 도박수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대놓고 말해, 팔 한 짝 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상관없어.’
당장 목숨이 걸린 상황에 팔 한 짝이 대수랴?
두 눈에 독기를 품은 소수린이 그 매서운 강기의 틈 사이로 파고들려 할 때였다.
“피해!”
어느새 공중으로 박차 오른 정순욱이 풍차 돌리듯 봉을 크게 회전시키며 소수린을 향해 말했다. 그녀가 위험해 보이자, 대신해서 예리한 강기 앞으로 몸을 날린 것이었다.
‘멍청한……!’
저래서는 팔 한 짝 정도가 아니다.
못해도 양팔.
아니.
“푸하하, 죽어라 애송이 녀석들!”
죽는다.
수마왕의 말대로였다.
사지가 갈가리 찢길 것이다.
어쩌면 허리가 반 토막이 날지도 모른다.
아찔한 상황이 소수린의 머릿속에 그림으로 펼쳐질 때였다.
“후웁…….”
짧은 호흡과 함께, 발밑 바로 아래로부터 거대한 기운이 꿈틀거렸다.
콰앙-!
폭음과 함께 공중으로 뛰어오른 것은, 거대한 덩치를 한 백산이었다.
한데 평소 그녀가 알던 백산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정확하게는, 기운의 크기가 너무나 다르다.
내기의 양과 질이 본래 백산이 가진 바에 비해 몇 배는 부풀어 있었다.
의성활생심공이 육성에 이르면 사용할 수 있다는 비술(秘術), 활기유류공(活氣兪流功)의 효능이었다.
활기유류공은 일반적으로 마도(魔道)에 속하는 폭혈공(爆血功)과 비슷한 듯하나 안정성은 훨씬 더 뛰어난, 그야말로 비술이었다.
“계속 공격해.”
하나 어찌 되었든 강제적으로 기운을 증강하는 방법은 몸의 무리를 가져온다.
꽤나 힘겨운 듯한, 묵직한 목소리가 소수린의 귓가에 들렸다.
‘무리하기는 멍청이.’
하나 이로써 활로(活路)는 열렸다.
지금의 백산이라면, 단 한 번이라는 한계 내에 저 강기의 손톱을 막을 수 있다.
소수린의 머릿속에 불빛이 번뜩였다.
콰앙-!
“크읏……!”
폭음과 함께 백산의 신음이 들려왔다.
허공으로는 입에서 터져 나온 붉은 핏물이 수를 놓는다.
“그걸 막았다고……?”
자그마치 세 줄기의 강기였다.
일반적인 내기로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아니다.
하나 내상을 입었다 한들, 아직 절정도 안 되어 보이는 백산이 그 기운을 막아섰다.
수마왕의 입장에서야 놀라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나, 경악으로 닿기에는 아직 일렀다.
슈아아앗-!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강기가 일으킨 폭발의 흔적 사이로 번쩍이는 푸른빛이 날아든다.
‘아뿔싸!’
섬뜩한 감각이 등 뒤로 쭈뼛하고 치솟아 오른다.
백산이 강기를 막았다는 사실에 놀라, 가장 중요한 적을 잊고 있었다.
‘여왕벌!’
오로지 일점(一點).
봉 끝에 자신의 모든 내기를 실은 소수린이 차가운 눈을 한 채 수마왕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건 피할 수 없…….’
막아야 한다.
아니면 부서야 한다.
하나, 이미 양측 다 늦은 듯해 보였다.
‘내, 내가 설마 이런 애송이들에게……!?’
아무리 방심을 했다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초절정 끝자락에 이른, 마왕급 고수다.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지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이 내가아아……!”
경악을 실은 목소리가 허공에 드높이 울려 퍼질 때였다.
“시끄럽다. 수마왕.”
“……!?”
대체 언제였을까?
수마왕을 향해 날아드는 소수린의 봉 바로 앞으로, 검은 인영이 막아섰다.
폭마왕!
여태껏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그가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 들끓는 기운을 감싼 오른손은 날아드는 봉을 막아설 뿐 아니라, 소수린 본인까지 뭉개버릴 듯 쏘아진다.
‘큰일…….’
공격에 모든 힘을 실은 소수린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죽는다.
사방전후.
제공권을 넓히고 감각도를 이용한다 하여도 활로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길이 사로(死路)로 향하고 있다. 상대의 강함이 온몸, 정신에까지 깊이 와 닿는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 자…… 진짜 강해.’
수마왕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눈앞의 폭마왕이야말로 진짜배기다.
함께 나타났다 하여, 같은 수준의 무공을 지니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아득해지는 정신 속.
봉 끝에 닿는 붉은 빛 기운에 입술을 꼭 깨물 때였다.
파앗-!
섬광이 번뜩였다.
“감히 내 제자들에게 무슨 짓이냐…….”
차가운 목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크읏……!”
두 눈을 부릅뜬 폭마왕이 손을 거두며 온몸을 뒤튼다. 하나 이미 허공으로는 붉은 핏물과 함께, 그의 새끼와 약지가 분산된 채였다.
그 틈을 타, 폭마왕을 지나친 소수린의 봉이 수마왕의 가슴에 틀어박힌다.
퍼억-!
“크억……!”
비명과 핏물이 또 한 번 허공을 수놓는다.
“이…… 무슨!”
전황의 공기가 바뀌었다.
아이들을 짓누르던 무거운 기운이 모두 해소되었다.
반대로 세 마왕이 느끼는 감각에는 무거운 살기가 짓쳐 들었다. 함부로 밀어낼 수 없는 강력한 예기(銳氣)다.
손가락 두어 개 날아간 것쯤 상관없다는 듯, 침착한 표정으로 지상에 착지한 폭마왕이 새로이 나타난 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달빛 아래, 검극에 어린 핏물을 가볍게 털어내는 여인이 보인다.
“누구냐……?”
강하다.
단순히 마주한 것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초고수.
“아이들 스승. 와룡서원 소사부다.”
구혜린의 등장이었다.
제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