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章)
그 모습을 보며, 마현은 입가로 작은 웃음을 그렸다.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지.’
소리는 크고 위력도 있었지만 적당한 넓이로 벌어진 감옥의 창살을 부러트리기에는 무리였다. 살짝 휘게는 만들었을지언정, 큰 변화는 없다.
오히려 그 반동에 충격을 받은 것은 제자들 측이었다.
“젠장!”
변할 것 없는 상황에 정순욱이 입 바깥으로 욕지기를 토했다. 내부에 자리 잡은 황금세가의 무인들은 돕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지, 양 손목을 억압하고 있는 수갑을 바라보며 침음성을 흘린다.
“죄송합니다. 내공까지 금제가 된 상태라…….”
어느새 전면으로 나선 황금세가의 대공자, 황여진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기까지 한다.
“비켜봐!”
그에 다급한 표정을 지은 백산이 봉을 등 뒤로 꽂은 채, 어느 정도 벌어진 쇠창살 틈새로 자신의 양손을 밀어 넣었다.
“흐아아앗!”
백산은 타고난 신체 자체가 다른 평범한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실제로도 그만한 괴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린 시절에는 그를 통해 자신을 지켜나가기도 했었다. 하나 그렇다고 한들…….
“이런 미련한 자식아. 아무리 그래도 맨손으로 쇠를 무슨 수로 휘…… 어……?”
황당하다는 듯, 백산을 바라보며 외치던 정순욱의 표정이 점점 어이없는 형태로 변해갔다.
안 그래도 커 보이는 백산이, 평소보다 더욱 부풀어 오르는 듯했다. 온몸의 근육은 터질 듯이 팽창하고, 붉어진 얼굴 위로는 혈관이 마구잡이로 솟아난다.
‘벌써 거기까지 생각했던 게냐.’
마현의 눈에도 놀라움이 어렸다.
현재 백산이 운용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공력뿐만이 아니었다.
성류의문의 의성활생심공을 이용한 자가 신체 강화!
기공으로 타인의 몸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그를 이용해 자신의 신체를 일시적으로 강화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무절곡 내부에서 만난 성류의문의 후계자, 성아현 역시 그를 이용한 전투를 펼치고는 했다. 그럴 때 그녀가 보여준 괴력이란…….
‘마물하고 힘 싸움해서 이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
그녀는 그러한 활용법을 일종의 잠력활성화 상태라고 표현하며, 도를 넘어서면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한 활용법이라고 했다.
실제로 백산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그 말이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많이 불안정하군.’
아슬아슬하게 한계선을 넘지 않고 있지만, 자칫하면 위험할 정도다. 잠력 활성화라는 것은 결국, 아직 허락되지 않은 힘을 끌어다 쓰는 것. 당연히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끼이익-.
‘그래도 효율은 확실한가.’
백산이 아직 선을 넘기 전,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 창살이 점점 더 공간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로 사람 하나가 통과할 정도의 공간으로 넓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크아앗!”
끼이이익- 텅!
백산이 짐승 울음을 토하듯 괴성을 터트린 순간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넌 진짜 곰인 거냐.”
정순욱이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읊조렸다.
“입 다물고, 빨리 사람들이나 풀어줘.”
어느새 쓰러진 간수들 사이에서 챙겨 온 열쇠를 던진 소수린이 말한다. 감옥의 좁은 길 너머에서는 빙궁의 무인들이 흉흉한 기세로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막고 있을게.”
화영령이 그러한 길목 중심에 서 읊조린 후로는 정순욱의 행동도 빨라졌다.
“고맙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손을 내민 황여진의 구속을 풀어준 후, 금제 된 내공을 풀어준다.
“읏차, 몸이 이렇게나 가벼울 수가 있다니! 그럼 저도……!”
신난다는 듯, 가벼운 음성을 토한 황여진의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카가강-!
단둘이서 좁은 길목을 막고 선 화영령과 소수린을 돕기 위함이다.
“허억…… 허억…… 나도…….”
창살을 열어젖힌 후, 한참이나 숨을 몰아쉬던 백산도 천천히 허리를 펴며 봉을 들어 올렸다.
“넌 조금 더 쉬다 가라.”
그에 가볍게 눈살을 찌푸린 정순욱이 고개를 내저은 후 다음 인물에게로 향했다.
“……뭐해? 안 풀어주고?”
앞으로 나선 이는 황금세가의 소공자, 황여준이다.
물론, 중요도로 보자면 황여진 다음에 그를 풀어주는 것이 옳다. 어린 나이에 감옥에서 여간 고생한 게 아닌지 핼쑥해진 표정에, 지친 얼굴을 보니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빨리 이리로 오세요!”
정순욱은 모른 척했다.
아무래도 첫인상부터 감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던 꼬마다.
‘지금 조금 더 고생한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부탁하는 말투마저 글러 먹었다.
정순욱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다른 황금세가의 식솔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이…… 건방진 놈이! 어서 빨리 이 몸의 수갑을 풀지 않을 게냐!? 내가 풀려나기만 하면 네놈을…….”
“누가 네놈을 풀어주기나 한대?”
“…….”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일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황여준이다. 정순욱은 그렇게 망설임 없이, 황여준을 제외한 황금세가의 식솔들을 하나씩 풀어주었다.
시간은 오래 걸릴 필요 없었다.
풀려나는 인원이 많아질수록 내공의 금제를 푸는 것부터 작업 속도가 빨라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풀려나고.
“……나 좀 풀어줘.”
황여준 혼자만 수갑을 차고 있는 상황.
열쇠를 품 안으로 집어넣은 정순욱이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말한다.
“생각해보고.”
그야말로 천적 대전이었다.
* * *
이후로는 순식간이었다.
절정고수인 황여진을 필두로 한 황금세가는 파죽지세로 감옥 바깥으로 뛰쳐나가, 단숨에 정문까지 뚫으며 완벽히 도주했다. 한참 마현 일행을 찾아 바깥으로 무력단체를 돌리고 있던 빙퇴각의 입장에서는 그 많은 인원을 한 번에 막을 손이 없었다.
그렇게 빙퇴각을 벗어나, 잠들어 있는 양명까지 업고서 빙궁 바깥으로 나선 일행은 우선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젠장 입고 있던 방한복까지 다 뺏겨서.”
“무기를 챙길 시간도 없었어.”
여유로운 듯 보였지만, 그야말로 필사의 도주였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면 바깥으로 나선 빙퇴각의 무인들을 비롯, 빙궁의 모든 무인이 나섰을 테니 말이다. 아니, 실제로는 아직까지 쫓기고 있는 중이었다.
빙궁 내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무인들이 황금세가의 식솔들과 와룡서원의 제자들을 비롯한 마현을 찾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옆에 선 마현의 질문에, 추운 빙궁에서의 도주에 힘들어하는 식솔들을 다독이며 웃음을 내보이던 황여진이 검지를 들어 볼을 긁적인다.
“그게…… 곤란한 제안을 받은 탓에…….”
“……?”
“맹과 거래를 할 터이니, 천빙각주를 처리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녀의 반대가 너무 격심한 탓에 함부로 손을 잡을 수 없다고…….”
마현의 눈매가 가볍게 좁혀졌다.
‘수린이의 어머니?’
곧 머릿속으로는 상황이 빠르게 정리된다.
빙충으로부터 얻은 현재 빙궁의 상황으로부터 추론한 그들의 목적. 그리고 천빙각주.
‘뒤집어씌우려 했던 것이군.’
애초부터 정의맹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집단에 돌려 표현했지만, 암살 의뢰를 넣은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황여진이 어지간히 바보 같은 인물이라면 그러한 술수에 넘어갔을 수도 있으나, 눈앞의 그는 자그마치 금룡이라 불리는 뛰어난 후기지수다.
심계조차 깊으니 그런 어설픈 술수에 걸려들 리가 없었다.
“적당히 뜸을 들이다 거절을 했더니 그만…… 하핫.”
“바로 등을 돌린 것이로군요.”
“예, 듣자 하니 저와 동생 녀석의 생사를 위협해 식솔들을 부려 음모를 짜려 했나 봅니다만 뭐…….”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거절하면 이리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겁니까?”
그럴 리가 없다.
황여진쯤 되는 인물이, 그 정도 생각을 하지 못했을 리 없다. 하면 가장 최상의 수는 빙궁을 몰래 빠져나가는 것이었을 터다. 여러 가지로 난제가 많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무기도 의복도 뺏긴 채 쫓기기 시작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다.
“당연히…….”
짧게 말을 남긴 황여진이 웃는다.
그 속내에 뭐가 담겼는지 모를 묘한 웃음이지만, 답변은 명확했다.
‘알고 있었다.’
한데 어째서?
또 다른 의문이 차오를 무렵.
“이편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황여진이 속내로 담은 의문에 답하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나저나 정말 춥네요. 이쯤 되면 슬슬 나타날 때도 된 것 같은데…….”
그제야, 황여진의 속셈을 모두 눈치챈 마현의 눈이 번뜩였다.
‘설마……?’
만약 황여진이 상구청과 태마응을 찾아가기 전, 먼저 천빙각에 연락을 취했다면?
이러한 상황에 처할 때까지 위기에 몰린 상태로 그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이후 힘을 몰아 정통성을 가진 대공녀를 궁주로 내세우게 된다면!
‘정의맹과 북해빙궁의 관계는 아주 돈독해지겠군.’
그야말로 혈맹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관계로 거듭날 것이다.
황여진은 그러한 모든 것을 이미 계산하고 판을 짠 것이 분명했다.
뜻을 알고 나니, 어린 나이에 보이기 힘든 그 심계에 짧은 감탄이 흘러나온다. 또한 의문이 든다. 좋은 계획이었지만, 실패의 여지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만약, 아주 만약에 마현을 비롯한 제자들이 그를 구하러 가지 않았다면 어찌하려던 것일까? 대답이야 듣지 않아도 뻔할 듯했다.
‘이거야 원…….’
믿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현이 끝내 그를 구하러 오리란 것을.
그야말로 한 방 먹었다.
마현조차도 하나의 장기 말로 사용하여 판을 그렸다는 뜻.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혀가 내둘러진다.
‘타고난 책략가인가.’
어쩌면 금룡이라 불리는 황여진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 무공도, 뛰어난 학문도 아닐지 몰랐다.
놀라울 정도의 대담한 심계!
“오오…… 드디어 오는군요.”
그러한 황여진의 말대로, 저 멀리서부터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는 빙궁의 무인들이 여럿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이들은 자연스레 긴장된 기색으로 또다시 도주를 준비하지만, 그들은 적이 아니었다.
북해빙궁 내, 괴물이라 불리는 철혈의 여제.
천빙무후와 그녀의 무력 집단, 천빙검단.
‘또한 수린이의 어머니.’
백서향, 그녀야말로 바로 황여진이 빙궁 내에서 손을 잡기로 마음먹은 진정한 우군이었다.
제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