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44화 (45/83)

(第四章)

깊은 대화 이후, 조금 더 걸었다.

소수린이 그러고 싶다 하였고, 마현은 묵묵히 따라주었다. 함께 옆에서 걷는 것만으로 힘이 난다는 제자의 말을 무시할 수만은 없을 터니 말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소수린도 점점 더 활기를 찾아갔고, 웃으며 농담까지 건넸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뭘까?

딱 그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외인들의 체포령이 떨어졌다. 순순히 포박을 받도록.”

길가로 갑작스럽게 빙궁의 의복을 입은 무인들 여럿이 나타나 길을 막아서더니 다짜고짜 하는 말이다.

“스승님…….”

얼굴을 굳힌 소수린이 묵묵히 손을 뒤로 가져갔다.

빙궁에 온 이후 상시로 착용하고 다니는 철봉을 뽑아 들려는 것이다.

“반항할 경우 사살해도 좋다는 명을 받았다. 되도록 무기는 뽑지 않는 걸 추천하고 싶군.”

그러자 전면으로 나선 책임자로 보이는 무인이 이죽거리며 그런 소수린을 위협한다. 마현은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천천히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무언가 상황이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황금세가 측에서 문제가 발생한 건가?’

정답을 도출해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로 인해 함께 온 마현 일행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그 말은 곧, 간단했다.

“혹시 숙소에 머물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병력이 갔나?”

“그야 당연한 말…….”

“그거면 됐다.”

마현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질문도 필요 없었다.

그저 공력을 끌어올려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서거걱.

“……!!”

막을 틈새는커녕, 피하거나 비명을 질러볼 여유조차 없었다. 보이지도 않는 무형의 강기가 허공을 갈라 주변을 둘러싼 빙궁의 무인 십여 명의 목을 동시에 베어냈다.

파아앗.

허공으로 사람의 머리와 함께 핏물이 솟구친다.

차가운 달빛이 쏟아지는 새하얀 북해의 대지 위에, 마현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도 냉정했다.

“……가자.”

목소리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시리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아무런 행동도 못 한 채 지켜보기만 하던 소수린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느린 듯, 하나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가는 마현의 의지는 확실했다.

‘혹시나 만약…….’

단 한 명이라도 그의 제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때는…….’

새하얀 빙궁은 붉은 혈궁(血宮)이 될 것이다.

* * *

아이들이 머물던 숙소는 빙왕각에서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빙궁을 찾은 대부분의 외인이 머무는 장소라 하여 식객청(食客廳)이라고도 하였는데, 지금 그 주변을 수십이나 되는 빙궁의 무인들이 포위하고 있는 채였다.

둘러싼 무인들의 중심.

각자 봉을 움켜쥔 채로 서로 간에 등을 맞댄 와룡서원의 제자 사인방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어린아이들이라 하여도 두 번 경고는 하지 않는다. 무기를 버려라.”

아이들을 향해 말을 걸고 있는 이는 빙왕각 산하 무력단체 빙왕무위대(氷王武委隊)의 대주 냉혼검객(冷魂劍客) 여봉위(餘鳳威)였다.

빙궁 내의 절정고수 중 하나인 그는 평소에는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나 한번 검을 뽑으면 그 별호만큼이나 무정(無情)하다. 아이들이라 하여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뜻이 목소리에조차 충분히 느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등을 맞댄 아이들 속, 굳은 얼굴의 양명이 낮게 묻는다.

“……아직 수린이가 돌아오지 않았어.”

눈살을 찌푸린 백산의 시선이 둘러싼 수많은 인파들 너머 바깥을 향했다. 혼자 산책을 나선 그녀에게서 아직 소식이 없다. 그것만으로 걱정될진대, 순순히 체포된다 하여 쉽게 풀릴 분위기도 아니다.

흉흉하다.

“뚫고 나가자.”

정순욱의 의견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한 바가 없었다.

뚫고 나간다.

상대 중 대다수는 척 보아도 이류쯤 돼 보이는 무인들이다. 개중에는 여봉위와 같은 위험해 보이는 인물도 있으나, 그를 피해 한 곳으로 돌파한다면 포위망을 뚫는 것도 불가능만은 아닐 듯했다.

“나가서, 우선 수린이랑 스승님을 찾으면 돼.”

자신 있게, 봉을 앞으로 내민 정순욱이 다시금 말한다.

그의 눈에 보이는 명확한 빈틈의 공간을 파고들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나 백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분명 순욱이 말대로…….’

이 자리를 당장 돌파하는 것은 할 수 있을 터다.

수는 모자라나, 아이들 하나, 하나의 무력은 주변을 둘러싼 빙궁의 무인들에 비해 수준이 높다. 마음먹고 한 곳을 뚫고 지나간다면 순식간이다. 하나 그 뒤로 이어질 추격은? 이들은 빙궁의 무인이다.

그리고 이곳은 북해빙궁이다.

그들에게 해를 끼친 순간부터, 아이들은 모두 빙궁의 적이 되는 것이다.

‘옳은 선택이 아냐.’

뚫고 나가는 것만이 만사는 아니다.

뒷일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 백산의 생각을 읽었음인가?

눈치만 살피던 정순욱이 다시 한 번 작게 입술을 움직였다.

“이 미련 곰탱이 자식, 정말 모르는 거냐? 저놈들이 이곳에 왔다는 것부터가 이미 우리가 북해빙궁의 적이 됐다는 소리다. 이러나저러나 똑같다면, 어설프게 물러서는 것보다는 뚫고 나가는 게 나아.”

“쉽게 생각하지 마. 그로 인해 곤란해지는 게 우리뿐이면 다행이겠지만…….”

정순욱의 그럴듯한 말에, 백산의 입가로 다시 한 번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순욱의 말대로다. 어차피 적이라면, 뚫고 나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하나 그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여전히 하나뿐이다.

바깥에 남은 소수린!

‘스승님은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시겠지.’

만약 사로잡힌다면 자신들을 구출하러도 올 터였다.

하나 만약 그들이 빙궁의 무인들을 적으로 돌린 순간, 소수린이 혼자 포위되어 있다면?

냉혼검객이라 불리는 여봉위의 표정에서부터 느껴졌다.

여차하면 정말 베고, 죽일 생각이다.

자칫하면 마현이 구출해 줄 틈도 없이 소수린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고민이 깊어진다.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흐른다.

“아무래도 말을 들을 생각이 없나 보군.”

여봉위는 그러한 백산의 고민을 기다려줄 생각이 없다는 듯, 작게 읊조리며 묵묵히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 느낀 순간, 이미 뽑혔다.

파앗-!

빛살처럼 쏘아져 온 검은 조금 주춤하고 있던 양명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큿!”

캉-!

놀랐지만, 몸은 움직였다.

짧은 틈새에 봉을 들어 올린 양명이 애써 공격을 막아내며 반격에 나서려 했다.

“양명!”

“명아!”

아이들이 그런 양명을 도울 틈은 없었다.

“모두 쳐라!”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빙왕무위대의 무인들이 동시에 쏟아져 와룡서원의 제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망설이던 차, 이미 사건은 벌어졌다.

‘결단력이 조금 더 필요했던가……!’

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을 백산이 느꼈을 때는, 이미 뒤늦은 후였다.

“기왕 이리된 것, 뚫어!”

정순욱의 목소리에 고개를 크게 끄덕인 백산이 봉을 넓게 돌렸다. 그 말대로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면, 뚫는다. 소수린에 대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그저…… 무사하기를 바랄 수밖에.’

바람을 담은 속내를 털어낸 후, 무거운 봉을 크게 돌려 수세에 몰린 양명을 돕기 위해 나아간다.

퍼버벅. 퍽!

“크앗!”

길을 뚫고 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백산의 눈에는, 아니 와룡서원의 제자라면 모두 그렇겠지만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명확했고 그를 장악하는 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저자는 강해!’

여봉위는 절정고수 중에서도 무르익은, 진짜배기다.

검이 내질러지는 그 찰나에 작은 빈틈조차 찾기가 힘들다. 양명 역시 제공권을 이용해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지만 반격다운 반격 한 번 못해보는 이유가 바로 그 탓이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재빨리 고개가 내저어진다.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팔 한 짝 정도는 빼앗을 수 있을 터다. 하나 그게 한계. 현재 백산의 무위로는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만약 순욱이라면……?’

정순욱은 백산의 주변에서 양명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주며, 동시에 아직 무위가 조금 부족한 화영령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날렵하고도 정확한 움직임이다. 솔직히 말해, 이제는 무공만 놓고 보자면 백산 본인보다도 한 수 위인 듯했다.

‘해볼 만하겠어.’

백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애초에 튀어나가지 못했다면, 여봉위를 제압하고 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머릿속에 계산을 돌렸다. 결과는 간단했다. 정순욱이라면 백산보다 더 낫다. 둘이 함께, 아니 양명까지 셋이서 합공을 한다면 여봉위도 무너트릴 수 있다.

문제는 그 잠깐의 틈을 만들어줘야 하는 화영령이다.

‘할 수 있겠어?’

시선을 돌려, 화영령을 바라본다.

조금 위축되어 있지만 힘차게 봉을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은 그리 약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과감한 결단성마저 보일 정도였다.

‘믿자.’

믿는다.

백산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며 길을 막는 무인의 검에 봉을 들이밀었다.

캉-!

“애송이가 어딜……!”

봉과 검이 부딪힌 순간, 공력을 끌어올려 검기를 입힌 무인의 입가로 웃음이 떠오른다.

그의 실력은 일류.

아무리 단단한 철봉이라 한들 검기가 어린 검 앞에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미안하지만 빨리 지나가겠습니다.”

그것이 실책이었다.

지금 이곳에 모인 빙궁의 무인들 모두가 그렇지만, 아이들을 얕보고 있다.

기껏 해봐야 무공 좀 할 줄 아는 애송이들.

주변 인물들이 쓰러져가고 있음에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정도의 큰 방심이다.

백산의 봉에도 기가 어리고.

힘차게 앞으로 내뻗는 순간에는…….

카가각-!

불꽃이 튀기며 봉이 검을 쳐낸다.

“……!”

앞을 막아섰던 무인의 두 눈이 부릅떠진 순간은 이미 늦은 뒤였다.

퍼억-!

“커억……!”

핏물을 내뱉은 무인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백산은 그 기세를 이용해 단숨에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설인들과의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군.’

눈앞에서 실제 사람이 핏물을 흘리며 쓰러진다.

피를 토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며, 손끝의 감각에는 살이 갈라지고 뼈가 부서지는 감촉이 느껴진다. 그 사실이 조금 두렵기는 하나, 그에 겁을 먹어 몸을 움츠릴 정도는 아니다. 모두가 그랬다.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잘 해내고 있다.

빙마벽에서의 경험이 아이들을 분명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것이다.

“흐아아앗!”

어느덧 눈앞에는 양명을 압박하고 있는 여봉위가 있었다.

그 머리를 향해 봉을 들어 올려 내리친다.

차가운 표정을 지은 여봉위의 검이, 방향을 바꾸어 백산을 향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래,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백산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후 시선을 돌려 양명을 보았다.

봉이 이미 쏘아지고 있는 상태다.

여봉위의 등 뒤로는 어느새 다가온 정순욱이 봉을 크게 휘두르고 있다.

하면 주변은……?

카가가강-!

찰나와 같은 짧은 순간, 엄청난 쇳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잘 해주고 있구나.’

화영령이 막아내고 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공격을 봉의 길이를 이용해 적절히 방어해주고 있는 것이다.

‘내주는 것은 어깨…….’

대신해서 가져가는 것은 여봉위의 목숨이다.

그리 생각하며 입술을 강하게 깨물 때였다.

눈을 반짝, 빛낸 여봉위의 몸이 살짝 비틀렸다.

백산에게 쏘아지던 검이 갑작스럽게 또 한 번 방향을 바꾸어, 정순욱의 봉 끝을 향한다.

캉-!

튕겨 나간다.

거기서 반을 회전해…….

카앙-!

“큿!”

머리 위로 쏟아지던 백산의 봉마저 방어한다.

이후로는 옆에서 나아가던 양명을 향해 검이 움직인다.

카강-!

쏘아지던 봉이 검면에 막혀 튕겨 나가고.

여봉위의 몸이 휘청거리듯 뒤로 굽어진다.

동시에 그 반탄력을 이용해, 앞으로 검을 쏘아낸다.

무작정 앞으로 달려나가던 양명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백산도 깜짝 놀라 손을 뻗었다. 한 번 튕겨 나간 정순욱의 봉이 다시 한 번 쏘아졌다.

하나 그보다도 여봉위의 검이 훨씬 빨랐다.

푸욱-!

“커억!”

양명의 가슴께, 깊숙이 박혀 든 여봉위의 검이 서늘한 빛을 흘린다.

“양명!”

“이 빌어먹을 자식!”

쑤욱-! 캉!

검이 뽑혀 나오고, 다가오던 정순욱의 공격마저 여유롭게 쳐 낸 여봉위가 짧은 뒷걸음질을 쳤다.

털썩.

“커억…… 커어억!”

봉에 의지해 무릎을 꿇어서나마 간신히 쓰러지지 않은 양명이 붉은 핏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봉위는 그런 양명과 백산, 정순욱을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본 후, 아직까지 뜨겁게 흐르고 있는 양명의 피를 털어내며 다시 검을 곧추세웠다.

“모두가 제공권을 다룰 줄 알다니. 예상외로군.”

이어서 흘러나오는 말은 감탄이다.

처음 양명을 상대할 때도, 제공권을 이용한단 사실에 깜짝 놀랐다. 제공권은 일반적으로 무인으로서 타고나야만 하는 재능. 여봉위 역시 그러한 재능을 타고났기에 일반적인 무인보다 더욱 특출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한데 하나가 아니었다.

뛰어드는 아이들 모두가 제공권을 다룰 줄 안다.

하나 아직 미숙하다.

같은 제공권을 사용하는, 더욱 우위를 가진 상대와의 싸움은 경험해 보지 못한 듯하다. 그 사실이 이러한 실수를 불렀다. 만약 조금 더 실전에 능숙했다면, 여봉위와 같은 상대를 하나라도 상대해보았었다면…….

‘아직 경험이 미숙한 아이들이라 다행이로군.’

오히려 현재,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져 있던 것은 본인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느낀 여봉위의 입가로 쓴웃음이 흘렀다.

“싹은 크기 전에 제거해야 하는 법.”

두 눈에는 냉정하고 차가운 감정이 어린다.

무서운 아이들이다.

피를 토하는 동료를 돌보면서도, 주변으로 쏟아지는 빙왕무위대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반격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언제 움직일까 훑어보며 분노와 전투 의지를 불태운다.

아직 지지 않았다.

피를 토하고 있는 양명은 어떠한가?

봉에 의지해 간신히 몸을 곧추세우고 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두 눈에 승리욕을 불태운다.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끊어야 한다.’

저 싹을 잘라 내지 않으면 훗날 빙궁을 위협하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등 뒤를 서늘하게 하는 섬뜩한 감정에, 여봉위는 공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렸다.

‘새끼 사자(獅子)무리다.’

쓰러졌다 한들 방심하면 안 된다.

언제고 이빨을 세워 무섭게 덤벼들지 모른다.

일격, 다음 일격으로 끝낸다.

못해도 둘 이상 목을 베어내야 할 터였다.

발끝에 힘을 집중하고, 검 끝에 온몸을 의지한다.

신검합일.

절정의 경지에 올라서야 얻을 수 있다는 심득을 통해 눈앞의 아이들을 노려본다.

‘틈…….’

공간이 벌어지고.

아이들 여럿을 함께 벨 수 있는 틈을 찾는다.

‘지금……!’

몸이 앞으로 뛰어나간 순간에는…….

“운이 좋았어. 조금만 빨랐어도, 죽어서까지 편치 못했을 터니 말이야.”

차가운 목소리가 몸 내부 전체를 울리듯 전해졌다.

아니, 실제로 온몸이 진탕 되었다.

띠잉-!

단숨에 끌어올렸던 진기가 흩어지고, 입가로는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다.

털썩.

쏘아져 나가려던 자세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진 여봉위의 시선 위로는 태산(泰山)보다도 거대해 보이는 넓은 등이 섰다.

‘이자…… 는…….’

정보로 들었다.

눈앞에 있는 사자 새끼들의 스승이라 불리는 이.

‘빌어…… 먹을…….’

잊고 있었다.

사자 새끼는 사자만이 낳는 법이다.

곧 눈앞에 있는 이는 그야말로 맹수의 왕.

사자.

커다란 발이 들어 올려져, 머리로 떨어지는 가파른 소리에 여봉위의 입가로는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망했군.’

그것은, 그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생각이었다.

* * *

“모두 제 자리에 멈춰라.”

그야말로 왕의 명(命)이었다.

작은 목소리에,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핍박하던 빙궁의 무인들 모두가 멈춰 섰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들으면 거부할 수 없는 절대의 언령(言令).

분노한 마현이 흘리는 목소리는 하늘 아래, 아니 하늘 위에 존재하는 이들이라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담겨 있었다.

“스, 스승님…….”

그렇게 멈춰선 북해빙궁의 무인들 사이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 마현이 제자들에게로 다가간다. 양명이 쓰러진 이후로도 끝까지 기세를 피어 올렸지만, 막막함을 느끼고 있던 제자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많이 다쳤구나.”

그런 제자들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어 따듯한 기운을 흘려보낸 마현이 쓰러져 피를 토하고 있는 양명의 앞에 무릎을 굽혔다.

“스승…… 님.”

“말하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있거라.”

가볍게 고갯짓을 한 마현은, 손을 들어 양명의 상처 부위로 내뻗었다.

“크읏…….”

통증에 양명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마현은 눈을 감고 내부를 관조했다.

‘다행히 심장에서는 비켜나갔군.’

검이 날아오던 마지막 순간, 양명의 본능이 일으킨 기적일 터다.

단숨에 심장을 관통당했다면…….

아마 이미 양명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터였다.

죽은 사람은 마현도 되살릴 수 없다.

천만다행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백결의 기운을 흘려 놓는다.

고오오-!

그 공력이 어찌나 강한지, 대기가 요동치며 마현과 양명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손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새하얀 운무는 이내 빛으로 화한다.

파아앗-!

그 빛이 양명의 상처 부위를 감싼 직후로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어어……?”

척 보기에도 깔끔히 뜯겨 나간 상처 부위가 단숨에 아문다. 검은, 죽은 핏물은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난다. 그야말로 생명의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그 모습에 주변인 모두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나도…….’

백산은 양 주먹을 꼭 쥐었다.

성류의문, 의성활생심공을 대성한다면 저러한 기적을 보일 수 있을까? 수많은, 다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활생의 힘.

양명이 다치는 순간, 그 위기의 때에 또 한 번 느꼈다.

힘이 필요하다.

모두를 지키고, 구할 수 있는 힘.

“저…… 괜찮은 건가요?”

치료가 끝난 후, 자신의 상처 부위를 더듬은 양명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마현은 묵묵히, 그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살았…… 구나.”

가슴이 꿰뚫린 순간, 정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양명의 입가로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기왕 죽어야 한다면, 다른 아이들이라도 탈출시키기 위해 있는 힘껏 싸우다 쓰러지리라 마음먹었었다.

한데 살았다.

자연스레 긴장이 풀리며, 의식의 끈이 멀어졌다.

그렇게 쓰러지는 몸을 가볍게 받쳐 든 마현이, 바로 뒤를 따른 소수린에게로 양명을 건넸다.

“잠시만 맡아주거라.”

“……예.”

그 뒤를 따르며 몇 번이나 놀랐는지 몰랐다.

마현이 무지막지한 인물이란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탓이다.

‘천하제일 고수라 한들 스승님과 같을 수 있을까……?’

혹은 고금제일이라 떠들어대는 달마대사, 장삼봉 진인, 천마라 불리는 이들이었다면 마현과 같았을까?

정확히 장담은 할 수 없다.

하나, 마현이 결코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들에 비해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한번 힘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사람의 느낌이 변했다.

너무나도 강렬하다.

세상 만물,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발아래 둔 느낌.

그야말로 왕의 기세다.

제자를 구출한 후, 분노한 왕의 시선은 자신의 자식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적들을 바라본다. 세상을 지배하는 왕의 명에 갇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그들을 향해, 차갑게 다음 명을 내린다.

“자결하도록.”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현은 아이들의 시선을 돌려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고.

푸부부북.

뒤에서는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혹은 천령개를 내리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거역할 수 있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왕의 명은 절대적이었으니 말이다.

제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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