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39화 (40/83)

(第十二章)

북해에는 일 년 내내 눈이 내린다.

대지는 호수가 얼어붙은 땅이며,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성과 사람을 잡아먹는 괴인(怪人)들마저 실존한다. 북해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허황된 헛소문이라 한다. 하나 한 번이라도 북해에 다녀와 본 사람은 안다.

소문에 거짓은 없다.

모두 진실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북해.

그 중심에 선 거대한 얼음의 성.

북해(北海)의 빙궁(氷宮)은 현재 혼란에 빠져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변혁기를 맞은 상태라 할 수 있을 터다.

“궁주님은?”

“오늘내일하면서도 계속해서 버티고 있다는군”

“……고집도 강하시지. 끝끝내 자신이 지목한 후계자가 빙궁주가 되는 모습을 보신 뒤에야 눈을 감으시려는 건가.”

빙궁에 세워진 얼음의 전각 안.

두 눈을 감아 서로를 보지도 않고 있는 두 노인이 가부좌를 튼 채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공녀(大公女)의 정황은 어떤가?”

“……뭐,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 듣자 하니 냉혈마녀(冷血魔女)와 빙마검객(氷魔劍客)이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더군.”

“그 둘이 대공녀에게……?”

계속해서 먼저 질문을 던지던 노인이 꽤나 놀란 듯 되물었다.

그도 그럴게, 냉혈마녀와 빙마검객이라면 현재 빙궁의 상황 내에서도 절대 중립을 외치던 고수들이다. 두 노인 측에서도 꽤나 손을 내밀었으나 완강히 버티던, 고집불통의 인물들이기도 했다. 한데 넘어갔다.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천빙각(天氷閣)의 괴물이 인도한 것이지.”

“음…….”

천빙각의 괴물.

그를 떠올린 노인의 신음이 깊어졌다.

그도 그럴 게 천빙각의 괴물이라 불리는 이는 두 노인의 가장 위험한 대적(大敵)이었다. 그 무위는 빙궁주를 제외하고 현재 북해 내에서 제일(第一). 그것만으로도 곤란할 지경인데 가진 바 지략 역시 최우선순위를 다툰다. 사람을 얻는 방법은 또 어떠한가? 곤란하고, 또 곤란할 따름이다.

“분명 같은 삼각(三閣)의 각주이거늘…….”

“그 괴물이야 워낙 궁주의 애정을 많이 받지 않았던가? 애초부터 받은 게 다르니 어쩔 수가 없지.”

두 노인.

천빙각을 제외한, 북해빙궁을 이룬다는 삼각 중 이각(二閣), 빙왕각(氷王閣)과 빙퇴각(氷堆閣)의 두 주인의 주먹이 강하게 움켜쥐어졌다.

애초부터 문제가 그랬다.

궁주와 천빙각의 괴물.

둘 사이가 너무 돈독하여 일어난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 빙궁주의 편애(偏愛) 된 사랑이 문제였을 터.

두 노인은 먼 과거부터 긴 악몽처럼 따라오는 천빙각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또다시, 그러한 시간을 이어나가서는 안 된다.

그들이 당한 모욕을 다음 대까지 물려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다음 대 빙궁주는 궁주의 직계 혈손이라 볼 수 있는 대공녀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이공녀(二公女).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밀고 있는 그녀가 다음 대 북해빙궁주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마음먹은 두 노인이었다.

“결국…… 대공녀를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천빙각을 먼저 잡아야 하는가?”

“하나 당장에 그 괴물을 어찌할 방법이 없지 않나?”

“함정은…….”

말을 하던 우측 편의 노인, 빙왕각의 각주 태마응(泰麻鷹)이 말문을 닫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빙각의 괴물이, 왜 괴물이라 불리던가?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손을 쓰고, 별 꾀를 다 부려보아도 쓰러트릴 방법이 없어 그리 불리는 것이다. 아니, 따지자면 영 방법이 없지만도 않다. 독을 쓰고, 암습을 가하고, 말려 죽인다면 괴물이라 해도 언젠가 지치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 정도로 적극적인 행세를 지속적으로 펼치기에는 아직까지 살아 있는 빙궁주가 걸린다는 것이다.

분명 지금의 빙궁주는 죽어가고 있다.

하나 아직 그를 따르는 세력은 유효했다.

그런 그들이 적극적으로 대공녀를 지지하는 데 나서지 못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빙궁을 이루는 삼각 중, 이각이 반대하고 나선 탓이다. 명분적으로 반수 이상이 다른 후계자를 지목하니, 빙궁주도 마음 놓고 대공녀만을 지원할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빙각의 괴물, 천빙각주를 적극적인 공세로 죽인다?

괴물이야 처리될지 모른다.

하나 괴물의 죽음은 또 다른 괴물들을 불러 모을 터다.

암습의 증거라는 꼬리표를 문 빙궁주의 지지세력 말이다.

그들은 많다.

또한 강인하다.

가장 무서운 점은, 빙궁에 속한 무인들 대부분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되면 막을 수가 없다.

아무리 이 각이 나서 이공녀를 민다 하여도, 명분에서 밀리는 순간 많은 이들이 적으로 돌아설 터.

함부로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곤란했다.

“진즉에 처리했어야 했어.”

“……어린 시절에 그 싹을 잘랐어야 했지.”

언제나 후회는 뒤늦은 법이라 했던가?

두 노인의 고민과 한숨이 깊어져만 갈 때였다.

“각주님, 빙충(氷蟲)입니다.”

전각의 뒤편에서부터 낮고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빙술각주, 상구청(想具聽)이 가장 신임한다는 수하인 빙충이었다.

“무슨 일이냐?”

“북해의 초입에 외인(外人)이 들어섰습니다.”

“한데……?”

북해가 가진 외인에 대한 태도는 언제나 늘 한결같다.

척결(剔抉).

북해는 외인을 허락지 않는다.

손님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있다면, 그는 북해의 척결에서도 살아남은 강자의 경우뿐이다.

“그게…… 중원 정의맹(正意盟)의 기수(旗手)가 선봉에 서있습니다.”

“정의맹?”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연합 말인가?”

두 노인의 아미가 동시에 찌푸려졌다.

현 중원강호는 정도문파의 세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한 정도문파들이 연합한 정의맹은 그야말로 강호 제일세력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바.

멋대로 처리하기에는 곤란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다 한들…….’

중원은 중원.

세외는 세외다.

중원의 어중이떠중이들이 북해의 땅에서 노니는 꼴은 보지 못한다.

“척살조를 보내. 살아남는다면 손님으로 맞이하지.”

눈살을 찌푸린 태마응이 명을 내린 순간이었다.

“잠깐……! 기다려 보게.”

상구청이 재빠르게 태마응의 명을 잘라 냈다.

“왜…….”

의문을 표하던 태마응의 표정이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상구청의 눈이 으스스하게 빛나는 것을 본 탓이다.

“설마 자네……?”

“아마 지금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을 걸세.”

상구청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내부의 손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외부의 손을 빌리자.

생각 외의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나 그 역시 그들이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쓸 만한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태마응의 걱정에, 상구청의 두 눈이 웃음을 그렸다.

“정의맹에서 나왔다고 하니, 기본은 하겠지.”

“하나 그렇다고 하여도 척살조를 처리하지 못한 채 궁 내(內)로 들어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나?”

“그러니까 실험도 할 겸, 사유를 만들어야지. 천빙각 내에서도 입궁을 거부할 수 없을 법한 좋은 수로 말일세.”

“무슨……?”

질문을 하던, 태마응의 눈이 부릅뜨였다.

있다.

현재 북해의 가장 큰 골칫거리!

그를 해결할 수 있다면 실력도 보장되고, 천빙각의 방해도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다.

“빙마벽(氷魔壁)!”

두 노인의 눈이 동시에 어둠을 토했다.

* * *

“진짜 더럽게 춥네!”

“들어서기 전에 구입한 방한복(防寒服)이 아니었다면 얼어 죽었을 거야.”

“처음 살 때는 무겁기만 하다더니.”

정순욱의 투덜거림에 양명과 백산이 순서대로 말을 받았다.

하나 그 뒤로는 별말도 없었다.

북해의 추위란 것은 상상외로 더 엄청나, 입을 여는 것조차 괴로운 정도였다. 애초부터 북해에 들어선 이후 말이 없어진 이들이 많아진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아이들로서는 견디기 힘들 수도 있겠군.’

선두에 선 황금세가의 가솔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는 와룡서원의 제자들은 누구 하나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한 채 온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소수린이었는데, 그녀는 꽤나 냉정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풍경까지 감상할 정도의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북해의 피가 흐른단 건가…….’

아마 지금쯤 본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터다.

“스승님, 기수의 깃발이 흔들리는데요?”

그렇게 조금 더 걸었을 때쯤이었던가?

백산의 말대로 정면에서 나아가던 기수의 깃발이 좌우로 크게 휘저어졌다.

북해빙궁을 발견하였거나, 변경사항이 생길 때 준다던 신호다.

“조금 속도를 높여서 가봐야겠구나.”

마현이 말하자, 입고 온 방한복을 더욱 둘러멘 제자들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북해의 추위는, 돈 많고, 힘 있는 집안이라는 황금세가의 대공자도 피해가지 못하는 듯했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방한복을 끌어안듯 꼭 껴입은 상태에서,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던 황여진이 마현을 보며 반갑게 손을 휘젓는다.

‘……천성이 그런 건지.’

황여진은 밝다고밖에 할 말이 없는 인물이었다.

딱히 가식적이거나, 의도한 바가 아니라 그저 본성 자체가 바르다. 또한 사람을 아끼며 신의(信義)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거기에 사람을 알아보는 재능도 있으니, 그야말로 상재로서 뛰어나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무재도 제법 괜찮고 말이지.’

황여진의 나이, 이제 갓 약관을 벗어났다고 했던가?

그런 어린 나이에 절정에 오른 고수라 함은 무재로서도 넘친다.

와룡서원의 제자들에, 공서하나 구혜린 같은 인물들.

거기에 더해 황여진과 같은 후기지수까지.

아마 다음 대 강호는 현재 강호보다 몇 배는 더 영웅들과 고수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만큼 혼란스럽기도 할 테고 말이지.’

문득 걱정도 되었다.

하늘이 영웅을 많이 내릴 때는 그만한 사유가 있는 법이다.

어쩌면, 마현으로서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폭풍이 몰려올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어찌 됐든, 최근 무인들의 높은 성장도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마현이었다.

“후우…… 북해는 정말 춥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동조하듯 답했지만, 실상 마현은 그렇게 춥지만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체온에 큰 변동이 없었다.

‘마계의 극한지옥(極寒地獄)에 비한다면야…….’

북해의 땅이 내뿜는 추위는 그저 조금 시원한 춘풍(春風)에 불과하다.

“조금 전 빙궁의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흠…….”

마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척살조가 아니라?’

마계에 있을 당시, 북해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개중에는 실제로 북해빙궁에 속했던 무인도 있었으며, 직접 빙궁에 손님으로 다녀온 인물들도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로 공통되어 있었는데, 북해는 손님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약한 이를 손님으로 원치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기에 가혹한 환경을 지닌 북해는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천산의 일월마교와 닮아 있었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약한 자는 죽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험난한 환경을 헤치고 살아온 자들은, 결코 편안하게 살아온 이들을 납득하지 않기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렇기에 빙궁은 자신들을 찾아온 북해의 손님에게 척살조를 선물한다. 개개인이 일류에 가까운, 혹은 일류에 속한 무인들만 스물이 넘는 조직. 그런 엄청난 무인 집단을 고작 시험용으로 쓴다는 것은 우습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북해의 고단한 환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일류의 무인들도 여럿 존재하게끔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마 중원강호는 상상도 못 할 터다.

이 좁은 땅에 얼마나 많은, 얼마나 강한 고수가 모여 있는지.

마현 역시 북해빙궁에 속했었던 동료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동안 납득하기 힘들어했으니 말이다.

한데 그런 북해의 빙궁에서 척살조가 아닌, 그냥 사람을 보냈다.

‘그 사이 북해의 법이 바뀌었나?’

워낙 폐쇄적이고 은밀한 곳이다 보니 변화가 일어도 쉽게 알 수는 없다. 또한 마현이 무절곡에 들어가 동료들과 활동하던 시절과 격차도 있으니 이상할 법한 상황만도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더군요. 북해의 손님이 되고 싶다면 빙마벽의 시련을 넘어와라……. 뭐, 어렵게 돌려 말하던데 쉽게 말해서 빙마벽이라는 협곡 주변에서 설인(雪人)들을 퇴치해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설인이라면 그 살인귀들 말하는 건가?”

“북해의 살인귀에 대해 잘 아시는가 보네요?”

알다마다.

북해의 살인귀, 설인들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일반적인 사람에 비해 털이 훨씬 길고 가죽이 두꺼운 것은 물론, 두 눈은 붉고 송곳니는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다.

또한 가장 즐기는 음식도 인육(人肉)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인간처럼 걷고, 말하고, 뛰어다니나,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생명체가 바로 설인이었다.

“요즘 북해가 그 설인들로 인해 고생이 많나 봅니다. 이렇게 외인들에게까지 부탁하는 걸 보면 말이죠, 하하…….”

웃음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지만, 두 눈은 빠르게 회전한다. 아마 황여진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척살조의 존재와, 북해의 시험을 말이다.

한데 갑작스러운 빙마벽 설인 퇴치 의뢰가 돌아왔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그래서 더 이상하다.

‘뭔가 냄새가 나긴 하는군.’

하나 그 냄새도 빙궁 내부로 들어가 봐야 더 짙게 맡을 수 있는 노릇.

어차피 상대가 인간을 잡아먹는 살인귀라면 망설일 것도 없었다.

“같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몇 배 낫겠네요.”

웃음을 흘린 황여진의 말에, 황금세가를 위시한 마현의 제자들의 목적지는 정해졌다.

빙마벽.

설인들이 주거하고 있다는 얼음의 협곡이었다.

제십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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