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37화 (38/83)

(第十章)

북해로 향하기로 결심하였다.

하나 주화화의 부탁대로, 정도 무림의 세력과 함께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마현이 북해라는 먼 땅까지 걸음을 옮기는 이유는 제자 소수린의 마음에 쌓인 빙벽을 녹이기 위함이다. 현재의 강호와 적당한 타협을 위한 지지대가 아니란 뜻이었다.

단지 북해에 도착하였을 때, 정도무림의 세력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들을 돕기 위한 일쯤은 한다고 하였다.

소수린의 마음속에 감춰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한 나름의 보답인 셈. 주화화는 영 마뜩잖은 얼굴을 짓기는 했으나, 그게 어디냐며 납득하고서야 무명현을 떠났다.

당연히 함께 온 마운을 끌고 나섰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직후, 마현은 곧바로 북해로 떠날 준비를 했다.

거리가 보통이 아니다 보니, 조금이라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우선적으로, 와룡서원의 제자 오인방은 동행하기를 청했다. 딱히 소수린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일 년 내내 눈이 오며 얼어붙은 성이 있다는 북해의 땅에 대한 호기심이 클 터였다.

마현도 굳이 이러한 제자들의 동행 요청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경험이란 것은 언제나 중요하지.’

와룡서원이라는 공간 내에서, 마현에게 배울 수 있는 것도 많다. 하나 세상을 직접 마주하며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경험만큼 값진 것은 또 없는 법이다.

길이 멀고, 험한 땅으로 향하는 만큼 고생도 많겠지만 얻는 것 역시 많으리라.

“저도 함께 가고 싶지만…… 안 되겠죠.”

아쉽게도, 구혜린은 무명현에 남기로 했다.

이유는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있을 원시 탓이었다.

그녀와 초이영은 올해가 지난 이후, 다음 해에서부터는 와룡서원의 정식 글 선생으로서 일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원시 합격은 필수. 그러한 시점에 북해라는 먼 땅까지 마현을 따라나선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 아이들과 나뿐인가.’

여자인 구혜린이 없으니, 섬세하게 신경 써줘야 하는 부분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하나 나쁠 것만은 또 없기도 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번 여정이 경험이라면, 그는 마현에게 빗대어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제자들을 홀로 인솔하여, 먼 북해의 땅으로 여행을 떠난다.

사건 사고를 비롯한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문제점에 봉착할 수도 있다. 마계에서 동료들과 함께 생존을 위해 도망 다니던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인 것은 당연할 터.

‘나 역시 무언가를 또 배울 수도 있겠지.’

소수린의 부모, 정확하게 말하자면 북해에 있다는 어머니를 찾으러 가는 것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배움(學)의 길이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북해로 향하는 여정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 * *

며칠 후.

준비를 끝낸 마현과 와룡서원 제자 오인방은 와룡객잔의 앞에 섰다.

“건강히, 조심히 잘 다녀와야 한다.”

무엇을 그리 추렸는지, 양손 가득 잡은 봇짐을 내민 마전이 말한다. 얼굴에는 옅게나마 감출 수 없는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한 번 이렇게 먼 길을 떠나보냈던 마현은, 십 년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 먼 여정을 간다고 하니, 마전의 입장에서야 아무런 근심이 없을 수는 없었다.

“중간중간 서신을 보내 연락하겠습니다.”

그 내심을 충분히 짐작한 마현이 웃으며 답했다.

지금은 당시와 다르다.

어쩔 수 없는 사고에도 손쉽게 대처할 수 있다지만, 그런 말보다는 이런 주기적인 연락이 훨씬 더 아버지의 마음을 안정시키리라.

“그래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위험한 일이 있으면 피해 다니기도 해야 한다.”

마현의 무위를 익히 아는 이가 들었다면, 어이없게 웃을 말이다. 또한 마전이라 하여 마현의 무공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모르지도 않았다.

하나 이 역시 아버지의 마음이란 것.

아무리 마현이 천하를 오시할 무공을 지녔다고 한들, 마전의 눈에는 그저 어린 자식이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런 마전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서신 보낸다는 것, 잊지 말고.”

뒤를 이어, 무언가 마뜩잖은 표정을 지은 마정이 나섰다. 그가 하는 걱정은 마전의 걱정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전적이 있는 만큼, 괜히 아버지 속내를 썩게 할까 염려한다. 물론 본인 나름으로도 꽤나 신경이 쓰일 터다.

“그래, 그래. 꼭 그러도록 하마.”

그 속내를 충분히 짐작한 마현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답하자,

“……언제까지 애 취급을 하려는 거야.”

황당한 표정의 마정이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의 양손에 들고 있던 또 다른 봇짐을 건넸다.

“꼭 그러려는 건 아닌데…… 글 스승 노릇을 하다 보니, 하하.”

“하여간에…….”

투덜거리는 마정에게 웃어 보이며, 또 다른 봇짐까지 건네받은 마현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직 객잔 내에 남은 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양손이 가득 찬 탓이다.

‘아이들에게 조금 부탁해야겠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리니 제자들을 하나하나 품에 안아주며 응원을 하는 구혜린의 모습이 보였다.

“건강히 잘 다녀와야 한다. 힘든 일이 생기면 스승님한테 의지하고. 알겠지?”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함께 가지 못한단 사실이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게 분명하다. 구혜린은 끝까지 아이들이 걱정된다는 시선으로 인사를 나눈 후에야, 마현에게 다가왔다.

“아이들 잘 챙겨야 돼요.”

그러고서 한단 말은, 제자들 걱정이다.

“난 걱정 안 돼?”

“걱정해야 돼요?”

“……린 매 없이 혼자 떠난 길이 외로울 수도 있다고?”

장난스레 물으니,

“그거야……! 당연히 걱정되죠. 그러니까 미리 경고할게요. 혹시 하는데, 돌아오면서 다른 여자 옆에 끼고 오면…….”

눈에 쌍심지를 돋으며 양손을 모아 마치 고양이가 웅크린 듯한 자세를 취한 구혜린이 ‘어흥!’ 하는 어울리지 않는 울음소리와 함께 목소리를 높인다.

“잡아먹어 버릴 줄 알아요.”

“……기대되는데? 꼭 끼고 와야겠어.”

“아니, 뭐, 좋아하라고 한 뜻이 아닌데…….”

그렇게 묘한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을 무렵.

“조심히 다녀오세요.”

“삼촌, 잘 다녀와요!”

가까이 다가온 초이영과 마설이 또 다른 짐을 건네며 인사를 건넨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야옹-!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마설의 어깨 위에 앉은 백묘의 인사다.

마현은 무릎을 굽혀 그런 백묘의 부드러운 털과 마설의 머리를 번갈아 쓰다듬어 주었다.

“오는 길에 선물이라도 사 오도록 하마.”

“정말요? 큰 삼촌 만세!”

이제는 열 살이 되어 자기감정 표현에도 꽤나 능숙해진 마설이 단숨에 양팔을 벌려 마현의 목을 끌어안았다.

미야옹-!

백묘도 뭐가 그리 신나는지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게 가족들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나니, 제자들 역시 와룡객잔의 식구들과 각자 한마디씩을 나눈다. 그때마다, 소수린의 표정은 기묘한 느낌으로 시시각각 물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현은 조심스레 그런 그녀의 뒤로 다가가, 작은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뭔가 어색한 게냐?”

“…….”

그 감각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 소수린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신기해요.”

“무엇이 말이냐?”

“그냥…….”

소수린의 시선이, 함께 떠나기 위해 짐을 메고, 손에 채운 제자들과 마현에게로 닿는다.

총 여섯.

어머니를 찾으러 나서는 길치고 적지 않은 인원 구성이다.

한데 이들 중 타의적으로 나선 이는 아무도 없다.

마현을 제외하고는 정확한 사정을 아는 사람도 없다지만, 모두가 자의적으로 길을 따라나선 것이다.

거기다 시선을 조금 더 옮기면, 와룡객잔 식구들이 보인다.

그리 친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함께 밥을 먹기도 했으며,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를 나누는 사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옆으로는 서원의 동료, 스승이.

뒤로는 함께 밥을 나눠 먹는 식구(食具)가 있다.

모두 무사히 다녀오라며, 기다린다고 말한다.

묘한 감각이었다.

무엇이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는 감각. 그 덕에 잠시 넋을 잃었었다.

마현이 옆으로 다가온 것도 모른 채 멍하니 있었다.

‘이게…… 따뜻하다는 건가.’

오랜만에 부모의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일까?

막상 그들을 찾아 나선다니, 눈에 밟히는 와룡객잔과 서원의 가족들이 가슴에 깊이 파고들며 느껴지는 감각일까. 무엇하나 정확하지 않다. 말로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벅차고 따스한 감정이긴 한데…… 어찌 답을 해야 할지 모를 어려운 느낌이다.

하나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놓치고 싶지 않아.’

이 마음을.

그리고 감정을 오랜 시간, 가능하다면 영원히 품고 나아가고 싶다.

혼자가 아니다.

늘 외롭다고 여겼는데, 언제나 주변에 누군가가 함께였다.

그 따뜻한 마음이 얼어붙은 땅을 향하는 소수린의 마음에 안착된다.

그 속내를 능히 짐작한 마현은, 즐거운 웃음을 그리며 소수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출발이었다.

* * *

북해빙궁이 위치해 있다는 북해는, 감숙에 속한 중원 북부지역에 있었다.

무명현이 위치한 광동에서 가자면 호남과 호북을 거쳐, 섬서를 통해 진입하거나 사천 땅을 경유하여 진입하는 등 방법은 많았다.

‘어느 쪽으로 가든 먼 것은 마찬가지지만.’

마현 일행이 택한 길은 광서성을 조금 거쳐, 호남에 이어 중경을 지난 뒤 사천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거리상 조금 돌아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중원 중심이 아닌 외곽을 여행하는 만큼 볼거리나 다양한 문화를 많이 겪을 수 있을 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른 여정의 길에, 기본적인 식사는 와룡객잔에서 싸준 음식들이었다. 하나 이도 오랜 시간 먹을 수는 없는 건 당연했다. 대부분 상하지 않고 오랜 시간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라지만, 사람의 손이란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출발하기 전 마시장에서 산 말의 옆구리에 짐을 조금 걸쳐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그렇게, 오 주야가 조금 지난 시점에 객잔에서 싸온 음식은 모두 바닥을 드러냈다.

이후로는 그야말로 채집 일상이었다.

마현의 지식을 바탕으로 노숙 중에도 먹을 수 있는 버섯과 과일 등을 배워, 알아서 쟁여둔 후 배고플 때마다 섭취한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흐르니, 자연스레 불만이 흘러나왔다.

“고기가 먹고 싶다.”

마치 무언가를 깨닫기라도 한 듯, 심오한 음성을 흘린 이는 다름 아닌 백산이었다. 그런 백산의 말을 부정하는 제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 몇 날 며칠을 풀과 버섯 등으로 허기를 채우려니 속이 너무 허했다. 가끔 들르는 마을의 객잔에서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던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하나 이는 마현이 허락지 않았었다.

여정에는 여정만의 재미가 있으니, 길에서 직접 음식을 채취하는 법을 배워보라 한 것이다.

물론 그 덕에 한동안 재미야 있었다.

길에서 따온 버섯이나 과일이 독인지, 음식인지 배운다. 학문이나, 무공과는 또 다른 지식의 습득이었다. 분명 이는 나중에 혼자서 오랜 시간 여정을 떠나야 할 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경험이었다. 마현의 설명에 아이들도 신이 나 몇 날 며칠을 그리 다녔다. 한데 이제 그것도 한계다.

그야말로 고기가 먹고 싶었다.

하나 마현은 여전히 객잔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허락지 않는 상황.

고민만 하던 아이들 사이에서, 백산의 음성은 결정적이었다.

“흠…….”

그렇게 제자들의 시선이 한 몸에 쏟아지는 것을 느낀 마현은, 가볍게 턱을 쓰다듬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고기를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될 일이 아니더냐?”

“하지만 스승님께서……!”

목소리를 높인 이는 양명이었다.

하나 그 음성은 곧바로 사그라들었다.

분명 그랬다.

마현은 객잔 음식을 먹지 말라 하였지, 육식을 하지 말라 한 적은 없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채집이 있으면 수렵이 있는 법!

“직접 사냥만 해와서 먹는다면 아무 문제도 없단 말씀이시지요?”

처음, 고기에 대한 의견을 내뱉은 백산이 눈을 붉히며 물었다.

‘어지간히도 먹고 싶었나 보군.’

제자들 개개인의 생존력과 야숙의 경험을 늘리기 위해 시작된 교육이 불러온 폐해에, 입가로 웃음을 그린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아이들은 한 마리 늑대가 되었다. 마치 네 발로 박차듯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 아이들은 먹을 만한 동물을 찾아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녀석들…….”

그 모습에, 입가로 웃음을 그린 마현이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수렵.

혹은 사냥이란 것은 그리 생각처럼 쉽지만도 않다.

무공도 익힌 제자들이니만큼 마음만 먹는다면야 어떻게든 될 것 같지만…….

‘글쎄, 과연…….’

괜히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따로 있겠는가?

마현의 입가로 스리슬쩍 웃음이 질 무렵이었다.

“아오……!”

가장 먼저, 양명의 목소리가 그야말로 늑대처럼 하늘을 가르며 안타까움을 토한다.

“놓쳤어!”

뒤를 이어 화영령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놈의 토끼가 이렇게 빨라!”

백산의 음성에도 살기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그쪽으로 또……! 잡아, 백산! 놓치면 오늘 밤 생사결이다!”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정순욱의 거친 음성까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는 듯한 분위기에 입가로 미소를 흘린 마현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걸리려나…….’

또 소득은 얼마나 있으려나.

마현의 웃음은 점점 짙어져만 갔다.

* * *

반 시진 후.

어째선지 고기를 먹고 싶다며 뛰어나갈 때보다 더욱 짐승 꼴이 되어 돌아온 아이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서로를 둘러보았다.

“토끼 두 마리라…….”

그간 익힌 무공이 우스울 정도의 허약한 성과다.

격렬히 움직인 상태에서, 마현을 포함한 여섯이서 먹는 토끼 두 마리. 배가 찰리가 없다. 오히려 주린 배를 더 움켜쥐게만 되었을 뿐이었다.

“큰놈, 큰놈 하나만 잡았으면 되는데…….”

“멧돼지, 사슴, 늑대, 호랑이. 아무거나 걸려라…….”

“크흐흐흐…….”

아이들은 반쯤 넋이 나가 헛소리를 떠들거나, 기묘한 웃음을 흘렸다. 누가 보았다면 단체로 의원에 찾아가 보라며 조언을 해주었을 정도의 모습이다.

“채집도 그랬지만, 수렵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를 교훈으로 다음부터는 상에 올라온 음식을 먹을 때마다 더욱 감사하도록 하여라. 그를 잡아, 맛있게 조리하기까지. 그야말로 얼마나 많은 노력이 깃들었는지 지금의 교훈을 바탕으로 명심하는 게다.”

“명심하겠습니다.”

“예, 스승님.”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힘이 없었다.

마현의 말대로 음식의 소중함은 확실히 느꼈지만, 허무한 건 어쩔 수 없달까?

꼬르륵.

아니, 그를 벗어나더라도 주린 배를 속일 수 있는 마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배고파…….”

지친 소수린이 자신도 모르게 읊조릴 무렵.

자신이 싸 온 짐에서 짧은 단궁(檀弓)을 뽑아 든 마현이 시위를 쟀다. 직후로는 나뭇가지를 꺾어 그 끝을 날카롭게 갈아 단궁에 메겨본다. 그렇게 만족할 만한 모습이 나왔을 때쯤에는 입가로 웃음이 어렸다.

“스승님?”

아이들의 입장에서야 호기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마현이 나서면 당장 어려움이 쉽게 해결되었다. 또한 활과 화살은 분명 사냥을 위한 도구이다. 그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역시…….

“잘 봐 두거라. 여러 번 가르쳐 주지는 않을 테니.”

사냥에 대해 일러주겠다는 뜻이다.

기쁜 표정을 한 아이들이 없던 힘마저 짜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앞장서 나가는 마현의 뒤를 따랐다.

“짐승이란 것은 언제나 냄새와 흔적을 흘리기 마련이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중에 알려주도록 하고. 우선 짐승의 흔적을 쫓는 법은 간단하다. 우선 발자국, 그 뒤로는 목표로 하는 짐승의 특징을 쫓는 것인데……, 우리는 멧돼지로 해보자꾸나. 멧돼지는 덩치가 크고…….”

그렇게 아이들은 그날 밤, 마현의 도움으로 사냥하게 된 커다란 멧돼지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비록 조리에 실패해 타고 쓴맛으로 먹을 수밖에 없던 고기였다고는 하더라도 말이다.

“정말로…… 죽겠네.”

모두가 잠들기 직전의 늦은 밤.

불침번을 서던 백산의 말에, 아이들이 하나가 된 듯 고개를 끄덕인 사실은 서로만이 알고 있는 작은 비밀이었다.

* * *

여정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이어졌으며, 아이들은 노숙 생활에 조금씩 적응을 해나갔다. 잠자리도 불편하고, 제대로 먹기도 힘들지만 노력하면 그 모든 걸 어떻게든 해결할 수는 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이를 조금 더 손쉽게 배울 수 있게 도와줄 스승이 있었다.

고생을 몇 번 하다 보면, 마현이 다가와 알려준다.

그리고 이후에는 스스로 그를 습득해 생존해 나간다.

아이들은 점점 채집과 사냥, 그 외의 노숙 기술 모든 것에 숙달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여행의 참맛을 즐기기까지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생활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까지는 아니게 되었다.

마현의 마음에 뿌듯함이 차오를 무렵.

여행의 또 다른 중요 요소가 등장했다.

“이놈들……! 가진 것 모두 내려놓고……!”

산적 일당.

숨어 있던 수풀에서 뛰쳐나오며 자연스럽게 위협을 가하던 그들의 중심에 선 털보 두목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기묘하게 낮아졌다.

“너, 너희들은……!”

뒤를 이어 내뱉은 음성에 담긴 감정은 경악이다.

또한 당황이었다.

“저 녀석…….”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

“원시 치러 갈 때…….”

그런 털보 산적을 직시한 수재 삼인방.

백산과 정순욱, 소수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그 말대로였다.

털보 산적은 마현이 아이들과 함께 원시를 치르러 가는 도중 만났었던, 전륜이었다.

당시에 비하자면 조금 더 살이 빠졌고, 오히려 털은 더 풍성해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얼굴형은 숨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겪었던 실전 상대다. 딱히 기억하고 싶지는 않더라도, 머릿속에 새겨질 수밖에 없는 적인 것이다.

“아는 사이야?”

양명과 화영령이 묻자, 삼인방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분명 아는 사이는 맞으니,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데 어떻게?’

세 아이의 공통된 의문이었다.

산적, 전륜은 약 일 년여 전쯤에 세 아이가 때려잡아 관청에 넘겼다. 그 뒤로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 여겼는데, 광동에서 광서로 넘어가는 오묘한 지점에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크으으…… 네놈들…….”

전륜 역시 꽤나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관청에 끌려가, 모진 생활과 시련 끝에 탈옥한 지 어느덧 삼 개월. 본래 영업(?)을 하던 지역에서 자리를 옮겨 어수룩한 녀석들 몇몇 모아 세력을 만든 것은 며칠 되지도 않았다. 그렇게 어려운 시간 끝에 이제야 산적의 형태가 안정되어 영업을 시작하려는 찰나였는데 첫 손님이 익숙한 얼굴들이라니……!

‘누가 꼬마 녀석들 아니랄까 봐.’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았는데 많이도 변했다.

덩치도 다르고, 체형과 얼굴의 느낌도 조금씩 바뀌어 숨어서 보았을 때는 못 알아봤다. 하나 근처에서 직시하니 확실히 처음 보았을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위험하다…….’

당시, 나름대로 구를 대로 구른 숙련된 부하들을 데리고도 된통 깨졌던 전륜이었다. 지금 모아놓은 산적들? 그야말로 어중이떠중이만 모아놓은 애송이 집단이다. 이런 녀석들을 데리고 눈앞의 삼인방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하나…….’

여기서 물러나도 끝장이다.

어떻게 옮긴 영업장(?)이던가.

이러한 상황에서, 부하들을 버리고 달아난다면 그렇게 옮긴 영업장마저 잃을 수밖에 없다. 또다시 새로운 영업장을 찾아 위험한 중원강호를 헤매야 하는 것이다.

‘빌어먹을…….’

오랜만에 같은 고민을 하게 된 전륜의 인상이 크게 찌푸려졌다.

답은 둘 중 하나였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당장에 달아난다.

혹은, 그냥 미친개가 됐다 생각하고 물어뜯는다.

‘내 결정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어서 빨리 처리하자.”

“하찮은 산적인 주제에, 건방지기까지 한 녀석들이니. 그냥 잡아서 흠뻑 두들겨 팬 후 관청에 넘기면 돼.”

“포상금도…….”

긴 노숙에 제법 예민하게 감정이 서 있던 아이들이 눈을 붉히며 봉을 뽑아 들며 나선다.

“그래?”

“나쁜 놈들이라면야…….”

양명과 화영령이 동참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후로는 도망칠 틈도 없었다.

퍼버버벅.

봉은 개방의 타구봉이라도 된 듯 몽둥이처럼 사방에서 날아들고.

“크아악!”

“끄아악!”

산적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끄허어억!”

전륜이라고 다를 바 있나?

예전보다 훨씬 성장한 아이들에 비해, 고생을 한 덕에 내력도, 근력도 더욱 약해진 그는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살려, 살려주세요. 제, 제발……!”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볼 수 없던 비굴함까지 더해졌다는 점일 터였다.

* * *

하북(河北) 천진(天津).

“흐아암.”

아름다운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늘어지는 하품을 선보인 여인이 어두운 토굴에서 걸어 나왔다.

“거…… 입천장 다 보입니다.”

기다리고 있던 건지, 토굴의 입구를 서성이던 젊은 청년이 곧바로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그러자 피식, 하는 웃음을 흘린 그녀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왜? 반할 것 같아?”

“설마요. 저랑 태상장로님 나이 차이가 얼만 줄은 아십니까?”

“너는 사랑에 나이가 중요하니? 게다가 나이 좀 있으면 어때. 이 얼굴에, 이 몸매에. 충분히 젊은 남자도 여럿 꼬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인, 주화화가 자신의 오른손을 머리 위로, 왼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대며 말한다.

“하아…… 제발 체통을 좀…….”

깊어지는 것은 청년, 마운의 한숨이었다.

“옘병, 거지한테 체통은 얼어 죽을. 그보다 달리 할 말은 없어?”

“나이 좀 있으면 어때가 아니고,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이라고 하셨어야죠. 이제 팔십도 넘으신 분이 무슨…….”

“…….”

주화화의 이마 위로, 작은 십자 혈관이 솟아났다.

“너, 여인에게 나이란 금기 사항인 것도 듣지 못한 게냐?”

“태상장로님이 여인입니까. 장로님이시지…… 끄아악!”

끝내 주화화의 손이 허공을 날아 마운의 뒤통수에 강하게 부딪혔다.

“네놈은 매를 버는 게 특기인 것 같다.”

“아니, 무슨…… 폭력을……! 요즘 사문폭력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주화화의 손이 다시 한 번 들릴 때쯤에야, 입을 다문 마운이 시선을 피했다.

“그것 말고, 따로 할 말은?”

“……방주님이 뭐라고 하셨나요?”

주화화의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원하던 대답은 아니지만, 이전보다는 낫다는 느낌이었다.

“제깟 놈이 뭐라고 해봤자지.”

“하지만…… 형님한테 북해 이야기를 꺼낸 건…….”

“물론 방주 놈이 바란 건 따로 있었다만. 그건 제 바람이고. 현실이 그리 쉽나? 게다가 내가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잖아?”

“그렇기야 하지만……, 아직 돕는다고도 안 했는데 형님한테 정보를 흘린 것부터가 조금…….”

“네놈은 대체 누구 편인 거냐? 방주 놈이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까 제 형도 안 보이나 보다?”

“그건 절대 아니지요!”

“그리 말하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 에잉.”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크게 찬 주화화가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이후로는 단언하듯 빠르게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다시금 말하지만, 정보를 먼저 건네준 건 엄연한 실수였다.”

“……방주님이 그걸로 넘어가냐는 거죠.”

“안 넘어가면 어쩔 건데?”

“거 그거, 솔직히 말하자면 실수도 아니었지 않습니까…….”

마운이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며 말하자 시선을 허공으로 돌린 주화화가 커다란 헛기침을 흘렸다.

“실수 맞아.”

이후로 나오는 음성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우기는 것과 같은 단호한 음성이다.

“……고맙습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마운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녀가, 굳이 하지도 않을 실수를 그렇게 흘린 것은 어디까지나 마현을 위함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

당연하지만, 그 감사인사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보다 따로 할 말은?”

대신해서 돌아온 말은 이미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은 질문이다.

“또 있어요?”

마운이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하자, 크게 한숨을 내쉬며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를 다시 이동시킨 주화화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떠냐?”

“…….”

“젊은 놈들도 여럿 넘어올 것 같지?”

“태상장로님…….”

“대답 잘해야 된다.”

웃으며 묻는 주화화의 얼굴이 무섭다.

그에 크게 한숨을 내쉰 마운이 울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왜 하필 그걸 저한테…….”

“그거야 네가 젊은 놈이니까 하는 말이지!”

“젊은 놈이 저 말고는 없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이놈이 정말 태상장로님이 말씀하시는데 말끝마다 말꼬리야! 너 안 되겠다, 그냥 이리로 와서 몇 대 맞자.”

“억울합니다. 사문폭력은……!”

여전히 시끄러운 두 사람이었다.

제십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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