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章)
마현은 예정대로 일을 진행했다.
흑운을 타고 단숨에 광주까지 날아가 야명주를 판매하고, 그 돈을 지불하여 객잔과 서원 일대의 건물과 땅을 모두 매입했다. 이후로는 처음 서원을 건설할 때 일을 맡겼던 목수, 금주역에게 모든 일을 맡겼다.
객잔의 영역을 넓히고 층을 높게 쌓는다.
서원 역시 훨씬 더 넓고 크게 짓기로 했다.
이번에 받을 제자들의 수 역시 열 명으로 한정 짓겠지만, 공부하는 공간을 따로 나누고 생활 공간마저 나누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금주역이 대충 설계도를 작성하여 보여 줬는데, 와룡서원이 생각보다 더 넓은 장원이 될 듯했다.
“기왕 하는 것 외곽에 호숫가도 만들고, 객잔과 통하기 쉽게 길도 따로 내려 하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만, 괜찮겠소?”
“그렇게 하지요.”
나쁠 것도 없다.
마현이 유유자적, 은닉하듯 살아간 것은 어디까지나 따로 욕심이 없어서다. 바꿔 말하자면, 굳이 탐을 낼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 한번 마음먹고 행동을 할 때는 제대로 뒤엎을 줄도 안다. 흑천맹의 뿌리를 뽑은 행동이 바로 그러했지 않던가?
그런 마현의 행동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시선이 존재했다.
“저놈 결국…….”
“제가 말해도 안 될 거라고 했지 않습니까.”
“이건 내기 안 했다.”
“……돈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만.”
“끄응…….”
앓는 소리를 낸 주화화가, 마운과의 대화를 접고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마현을 바라보았다.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이야 딱히 나쁠 것도 없다.
가진 자가 마음대로 쓴다는데, 문제가 될 게 무엇인가.
하나 마현을 좋지 않게 보고 있는 세간의 시선만은 그리 쉽지 않을 터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마현의 입장에서도 불편함이 없으며, 겁 모르는 새끼 고양이들도 얌전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으면 안 되는데. 방주 녀석은 뭘 하는 거야. 부탁한 지가 언젠데…….’
고민에 빠져 있는 찰나, 주화화의 시선이 넓은 창공으로 향했다. 푸른 하늘의 바다 위로는 공중을 회전하고 있는 매 한 마리가 보였는데, 발끝에는 둥글게 말린 서류뭉치가 묶여 있었다.
“방의 전서응이네요.”
“용두방주가 아니라 호두방주(虎頭房主)라고 불러야겠구나. 제 욕하니 도착하는 전서응을 보낼 줄도 알고. 킥킥.”
동시에, 허공을 길게 선회한 매가 주화화의 어깨 위로 날아들어 안착했다. 다리에 묶인 서류뭉치를 풀어, 그 내용을 읽어내린 주화화의 얼굴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활짝 펴졌다가도, 와락 구겨지고. 끝내는 기묘한 표정으로 전서를 구깃구깃 접어 버린다.
“왜 그러십니까……?”
“필요한 정보를 물어다 주기는 했는데, 귀찮은 일도 함께 맡겼어.”
“왠지 똥 씹은 표정이시더라니…… 어떻게 하시게요?”
“어떡하긴. 해결해야지. 그나저나 똥 씹은 표정? 이래놓고도 네가 나한테 막 대하지 않는다고 할 자신이 있는 게냐?”
“개방 방도한테 똥 씹은 표정이 욕입니까? 듣자 하니 실제로 먹는 제자들도 있다고 하더만.”
“이걸 한 대 때려?”
“치료비 청구할 겁니다.”
“……돌아버리겠네. 안 되겠다.”
한숨을 내쉰 주화화가, 벌떡 몸을 일으킨 후 저 멀리, 임시로 만든 거처에서 다섯 제자를 향해 학문을 가르치고 있는 마현을 보며 눈을 빛낸다.
‘어차피 이게 다 저놈도 좋자고 하는 일이니…….’
함께 귀찮아서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 * *
“싫습니다.”
마현의 거절은 단호했다.
“무슨 젊은 놈의 냉정함이 북해의 빙정 같은 게냐.”
얼이 빠진 표정이 된 주화화가 당황한 음성으로 물었다.
“강호의 일에 크게 연루되고 싶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부디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다만은.”
마현의 완곡한 거절에, 난감한 표정이 된 주화화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개방의 방주가 맡긴 부탁이란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면 간단한 일이었다. 운남을 통해 중원으로 파고든 남만삼독(南蠻三毒)이라 불리는 마인들을 잡아달라.
주화화의 무공이라면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 것일 터다.
실제로도 그녀 역시 자신 있었다.
하여 처음에 마현에게 부탁해보고 거절당했을 땐, 조금의 미련도 없이 등을 돌려 남만삼독을 잡으러 나섰다. 한데 이게 직접 겪어보니 쉽지가 않았다. 이름만 보아서는 독공에만 해박할 것 같은 녀석들이, 진법에도 조예가 있는지 쫓을 때마다 주화화의 눈을 속속 피해 가는 것이었다.
작금에는 마운의 도움까지 받았지만 크게 틀릴 것은 없었다.
놈들은 영악했다.
개방의 정보나 주화화의 생각보다 약 몇 배는 더 곤란한 녀석들이라는 말이다.
‘하여간에 호두방주 녀석, 머리를 호두처럼 깨버리고 싶어지는 일을 맡겨서는…….’
이래서야 시간만 질질 끌다 놓칠지도 모른다.
하여 마현을 찾아와 다시 한 번 도움을 요청했다.
한데 이번에도 그의 대답은 냉정했다.
차라리 끝까지 예의 없이 차가우면 따져보기라도 할 텐데, 또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저리 말을 잘하기까지 한다. 거인복시에까지 합격해, 회시를 준비하는 학사라더니 과연 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말솜씨였다.
“이걸 어쩌나…… 분명 놈들이 이 인근에 있는 건 확실한데…….”
주화화의 한숨이 깊어져만 갈 때였다.
“그냥 위치만 찾아줘도 상관없습니까?”
조용히 듣고만 있던 마현이 질문을 던졌다.
자연스레 무릎을 탁, 친 주화화가 고개를 끄덕인 것도 순식간이었다.
“물론이지! 내가 그놈들 찾아서 잡을 수만 있다면 당장에 바닥에 내다 꽂아버릴 텐데. 찾을 수가 없어서 문제란 말이지. 찾을 수가.”
자신 있다는 주화화의 목소리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 마현이 눈을 감고 기감을 넓혔다. 그는 평소에 기감을 일정 이상으로 뻗어 나가지 않게 한정하고 살아가고 있는 편이었다. 쓸데없이 기척을 느끼는 것에 예민하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피곤하달까? 당연할 법한 이유 탓이었다.
하나 마음먹고 기감을 넓히면 천하를 통틀어 그 누구보다도 넓은 영역을 감시할 수 있다.
단순히 내기의 운용만으로도 무명현 주변을 비롯한 일대를.
주술의 힘까지 함께 사용한다면 광동성 전체를 뒤질 자신도 있었다.
“놈들이…… 독공의 고수라고 하셨죠?”
“그래, 그래. 또 진법에도 조예가 있는 것 같은데…….”
영역이 넓어져 간다.
보이고, 느껴지는 게 많아진다.
그럴수록 점점 더, 인근에 있는 주화화의 목소리는 멀어져 갔다. 남만삼독을 찾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또한, 그들을 향해 마현이 뛰쳐나가는 속도도 결코 늦지 않았다.
“놈들이 가진 독공의 특징은 남만의 것이라…… 어라?”
한참 이야기를 늘어놓아, 마현의 추적에 도움을 주던 주화화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바로 눈앞.
조금 전까지 마현이 서 있던 자리가 공허하게 휑 빈 탓이었다.
* * *
남만삼독.
그들은 별호 그대로, 남만 일대에서 이름을 날리는 독공의 고수들이었다.
일독(一毒), 과련(課蓮)은 독공도 독공이지만, 주화화를 곤란케 하는 진법의 대가(大家)이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진법을 익히진 못했다. 하나 추적자들로부터 기척을 감추고, 몸을 숨기기에 좋은 진법 하나만큼은 아주 기가 막히게 익혔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그들은 본거지인 남만에서도 쫓겨 다니는 경우가 많았었다. 실상 운남을 통해 중원 진입을 꿈꾼 것 역시 더 이상 남만에 머물 데가 없어진 탓이기도 했다.
이독(二毒), 과억(課憶)은 피가 통한 세 형제 중, 가장 독공 본질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다양한 독약 제조에서부터, 초절정고수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뛰어난 용독술까지.
남만 내에서도 과억의 손에 걸려 죽은 독인(毒人)의 수가 수십이 넘었다.
마지막으로 삼독(三毒), 과춘(課椿)의 주특기는 다름 아닌 강시 제조였다.
남만삼독 삼 형제가 남만의 고수들로부터 중원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과춘의 오랜 과거에서부터 강시 제조술에 열을 올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분했기 때문이다.
흔히들 말한다.
천산의 일월마교에는 흑강시가 있다.
검은 피부의 그들은 베어도 금방 상처가 수복되며, 심지어 팔다리를 잘라도 재생한다고까지 하는 끔찍한 마물이었다.
서장의 포달랍궁이 보유하고 있다는 철강시는 또 어떠한가?
그 이름처럼 단단한 피부를 가진 그들은 검기상인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한 베지조차 못한다.
하면 남만은?
그 어떤 강호의 문파보다도, 세외의 세력보다도 독공에 자신 있다는 남만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그들 역시 약물을 통한 강시 제조법을 알고는 있지만, 일월마교의 흑강시와 포달랍궁의 철강시 같은 강력한 마물을 제조할 수 있는 비법은 없었다.
과춘은 늘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가 생각하는 남만은 그야말로 독의 본산지였다.
수많은 독물과 독인, 독지대가 숨을 쉬는 곳.
그러한 땅에서 나고 자랐다.
한데 천산에 틀어박힌 일월마교보다, 사막에서나 간신히 삶을 이어가는 포달랍궁의 땡중들보다 남만의 강시 제조술이 모자란다고? 납득할 수가 없었다.
직후 그는 미친 듯이 강시 제조술에 몰두했다.
남만만이 가질 수 있는.
오로지 남만을 대표하는 강시를 만들겠다.
그러기 위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 여겼다.
다행히 두 형이 그런 그를 거들었다.
그리고 그 끝에, 드디어 독강시라는 무시무시한 생명체의 창조에 다가설 수 있었다.
독강시는 아주 강력한 존재였다.
흑강시와 마찬가지로 베어도 곧바로 재생할 수 있는 재생력에 더불어, 상처 부위에서는 지독한 독이 퍼져 나온다. 또한 호흡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상대를 중독시킬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깊어, 그야말로 남만의 강시가 최고라고 말할 수 있게끔 할 존재였다.
한데, 그랬는데.
남만의 동토들이 그러한 독강시의 존재를 부정했다.
독강시는 수많은 독극물들의 독과 죽은 사람의 시독을 뽑아내 제조된다. 덕분에 한 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희생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남만의 독인들이 그의 독강시를 부정했다.
큰 희생 끝에 탄생한 독강시가 언젠가 남만의 파멸을 부를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향인 남만에서조차 쫓겨난 세 형제는 중원에서 독강시를 완성하고자 했다. 하여, 그들이 만든 독강시가 얼마나 위대한지 남만의 겁쟁이 동도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강호를 지배한다!
독강시와 함께라면 남만의 중원제패도 꿈이 아니었다.
그러기 위해서 잠시 숨을 죽여야 할 때였다.
쫓아오는 개방의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서라면 더욱 그랬다.
하여 무리는 하지 않았다.
척 보아도 가난해 보이는 작은 마을에 속한 어린아이 몇 정도.
이 정도 숫자는 사라져도 큰 티도 나지 않을 터다.
관심도 없을지도 모른다.
설령 뒤늦게 눈치챈 개방의 거지들이 쫓아온다 해도 문제는 없었다. 일독, 과련의 진법은 그야말로 신묘해 엄청난 개방의 고수로 보이는 여인조차도 눈앞에서 따돌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게 중원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인가……, 곱기도 하군. 크흐흐.”
이독, 과억이 납치해 온 아이들을 보며 침을 흘리기라도 할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과춘이 독술을 익히느라 일곱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을 허공에서 마구잡이로 휘저으며 진한 웃음을 흘렸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조사해. 언제 개방의 노괴(老怪)가 따라붙을지 모른다.”
일독, 과련은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막내인 과춘이 중원에서 강시를 제조하기 위해선, 중원인들의 체질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아이들을 납치하기로 마음을 먹기는 했다. 하나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중원 진입은 남만의 독인들에 의해 강호에 알려졌으며, 구대문파와 개방의 제자들이 바로 뒤를 쫓고 있다.
특히, 얼마 전에 본 여인의 모습을 한 노괴는 정말 무서웠다.
진법을 익힌 그만이 알아볼 수 있었지만, 아름다운 외모의 여인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진정한 강호의 고수였다. 그 젊은 외모를 보건대, 어쩌면 전설 속의 경지인 반로환동에 이른 초고수일지도 모른다.
‘강호는 넓다고 하더니…….’
남만에 있을 때에 비해 훨씬 더 마음이 불안했다.
애초부터 고향을 떠나 타지에 발을 디딘 탓도 있겠지만, 역시 심사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어디 그럼 요 녀석부터…….”
음흉한 얼굴을 지은 과춘이, 기절해 있는 세 아이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여아를 향해 손을 내뻗으려는 순간이었다.
푸욱-!
가죽이 뚫리는 피륙음이 들렸다.
“어……?”
의문성은 짧았다.
죽음 역시 그만큼이나 순식간에 찾아왔다.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 손가락을 놀리던 과춘의 이마에는 검고 동그란 구멍이 휑하니 뚫려 버린 채였다.
“누구냐……!?”
독공의 대가, 과억이 눈을 부라리며 품에 손을 집어넣어 크게 휘둘렀다. 주변 일대를 모두 녹여버리는 강력한 산성이 포함된 독분(毒粉)이 시야를 완전히 가릴 정도로 짙게 펼쳐졌다.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적의 위협감에, 자신의 목숨까지 건 동귀어진의 수를 펼친 것이다.
하나 그조차도 의미가 없었다.
“그야말로 최악이로군.”
차갑고 낮은 목소리와 함께, 괴이한 타는 소리를 내며 주변을 삼킬 듯하던 독분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이 무슨…….”
모습을 드러낸 사내, 마현은 손바닥을 넓게 펼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바늘구멍만 한, 작고 검은 공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는데,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눈치도 채지 못할 정도의 정말 좁은 틈이었다. 한데 자연스레 시선이 고정된다. 또한 그 검은 공간을 본 순간 온몸이 떨렸다.
공포에 잠식되어 간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 좁은 공간이 뿜어내는 흡입력에 못 이겨 몸이 마현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벗어나야 하는데…….’
벗어날 수 없다.
조금 더 크기를 키운 마현의 손바닥 위 검은 공간은, 과억을 비롯한 과련, 죽은 과춘의 시체를 비롯한 일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세상 만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탐의 화신이자, 아귀와 같은 모습.
온몸의 내기를 끌어올려 대항해도 의미 없었다.
“크으윽…….”
“으으으…….”
빨려 들어간다.
벗어날 수도 없는 무한한 암흑의 공간으로 다가선다.
그러한 공간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형성한 마현이 손을 들었다. 그 끝에 서리는 것은 무엇이든 베어낸다는 무형의 강기.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었다.
‘저 손이 휘둘러지면…….’
죽는다.
하나 벗어날 방도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두 사람의 온몸은 작게 형성된 검은 공간에 사로잡혀 옴짝달싹도 못 하게 된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
“이렇게 허무하게…….”
서걱.
끝은 간단했다.
일독, 과련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듯, 단숨에 목이 잘려나갔다. 그렇게 세 구의 시체를 만든 마현은 영문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중향촌의 세 아이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만약 주화화의 부탁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결심을 하는 시간이 더 걸렸었더라면…….
이 아이들은 세 마인의 끔찍한 희생양이 되었을 터였다.
“정말 다행이야.”
몇 번을 생각해도 다행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사건이었다.
* * *
중향촌의 아이들은 모두 마현에게 익숙하다면 익숙한 얼굴이었다. 늦은 밤이 되기 전이면 그곳으로 나가 의료봉사활동을 하곤 하니,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쉽게, 세 아이를 부모의 품에 돌려보낼 수 있었다.
직후, 와룡서원으로 돌아가니 입구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던 주화화가 마현을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너 설마…….”
“남만삼독은 모두 죽었습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게냐?”
“아이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더군요.”
정리하자면 간단했다.
기감을 넓히던 도중, 아이들의 목숨을 취하려는 남만삼독의 기척을 느꼈다. 동시에 마현이 움직였다. 그뿐이었다. 주화화가 몇 날 며칠을 고생하고 애를 썼던 남만삼독 사건은 이토록 쉽게 정리되어 버렸다.
“네놈, 정말 괴물이로군.”
주화화의 이름은 천하십대고수니 뭐니 하는 영역에 들지 않는다. 하나 알 사람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녀가 마음먹고 나선다면, 가히 천하제일을 노린다 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 주화화가 몇 날 며칠을 고생한 남만삼독을 한 시진도 안 될 시간 만에 처리하고 돌아왔다.
그뿐이랴?
눈앞에서 보란 듯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주화화는 마현을 쫓을 수 없었다.
뭐라도 보여야 따라갈 게 아닌가.
‘정말 애송이 고양이 녀석들을 크게 걱정해줘야 할 판이로군.’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이런 마현이, 마음먹고 강호를 향해 칼을 빼 든다면 어찌 될까?
단순한 피바다 구경 정도로 끝난다면 다행일 터였다.
그렇기에 막아야 한다.
마현과 강호가 서로 등을 돌리는 상황만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생각을 정리한 주화화는, 이번 일이 끝나면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혹시 부탁 하나 들어줄 생각은 없느냐?”
“전혀 없습니다.”
애초부터 이럴 것이라 예상했기에, 당황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당황을 해야 한다면 마현의 몫이었다.
개방의 전 정보력을 동원해 어렵게 알아낸 정보.
그를 떠올린 주화화의 입가로, 미소가 감돌았다.
“네 제자 중, 소수린이라는 아이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 관심이 없느냐?”
묵묵히, 정면만을 보며 나아가던 마현의 걸음이 멈춰 섰다.
제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