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章)
결국 받아들이고 말았다.
마현은 천하제일의 무공을 가지고도, 다섯 명의 아이들을 이기지 못해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허…….”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남는 것은 너털웃음뿐이다.
도대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꾀일지는 모르겠으나, 마현을 상대로는 아주 주효한 방법이었다. 하나가 아닌 여럿, 거기에 더해 진심을 담은 말과 예를 갖춘 부탁까지. 아니, 실상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알만했다.
‘수린이…….’
영특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꿰뚫는 눈도 제법 좋다는 것도 잘 알았다.
한데 마현, 본인까지 완벽히 파악 당할 줄이야.
그러한 생각이 확신으로 변한 순간은 아이들이 나눠 준 편지를 읽을 때였다.
[감사합니다.]
각자 장문의 내용을 담은 편지와 다르게, 소수린의 서신에는 짧은 글만이 쓰여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말이다.
“허허허…….”
또다시 너털웃음이 흘러나온다.
‘이를 어쩌나…….’
어쩌긴, 이미 쏟아진 물.
되 담을 수는 없으니 현재 상황에서 정리를 해야만 한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마현이 꿈꾸던 와룡서원은, 제자들과 함께 소박이 학문을 갈고닦는 작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달라진 것은 없다. 굳이 있다면, 그 크기가 조금 더 커졌을 뿐이다. 이미 어느 정도 과정을 수료한 제자들과 함께, 그야말로 같이 와룡서원을 만들어간다. 선배가 있고, 후배가 있다.
머릿속으로 하나의 그림이 마치 조각처럼 틀을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더 큰 장원이 필요하겠군.’
눈을 뜬 뒤에는, 결심이 확고히 선다.
제자들과 함께 꾸려나가며, 새로운 와룡서원의 모습을 만드는 것 역시 충분히 아름답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이번에야말로 확실한 체계가 필요했다.
선배와 후배가 나뉘니, 그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우선 원시 합격까지를 일차 과정으로 한다.
이 과정을 졸업한 학생은, 그 해에 졸업을 하거나, 현재 선배들이라 볼 수 있는 백산 등이 익힐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바로 향시 합격을 목표로 하는 거인 목표반이다.
‘이후로는…….’
무조건 졸업이다
더 이상은 마현도 양보를 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이때에도 서원에 남겠다고 우길 제자들도 뻔히 있을 터였다. 하니 이참에 확실히 못을 박아둬야 한다.
‘못을 박아두면…….’
다음에는 확고히 거절할 수 있을까?
쉽게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고, 제자 이기는 스승 없다.
문득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말에 마현의 입가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찌 됐든 이를 확실히 정리해놓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로써 학생들이 두 반으로 나뉘어 마현이 감당하기 힘들어진다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선생을 늘려야지.’
어떻게?
멀리 갈 것 있겠는가.
마현의 시선이 서원의 바로 옆, 와룡객잔으로 향했다.
* * *
“제가 글 선생님을요……?”
마현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초이영이 되묻는다.
“예.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기껏 해봐야 천자문에 사서(四書)를 조금 읽을 수 있을 정도인데…….”
“생각보다 많이 아시는군요.”
“틈틈이 글공부에 관심을 두기는 해서…….”
초이영은 끝끝내 망설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나 마현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딱히 자랑하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만 먹는다면 원시쯤은 간단히 합격할 인재다. 마현이 마음먹고 조금 더 가르친다면 향시까지도 문제없을 터였다.
“저는 도움이 될 수 없을까요?”
옆에서 듣고만 있던 구혜린이 묻는다.
물론 그녀도 놀게 할 생각만은 없었다.
“물론 가능하지. 그러기 위해선 린 매가 올해 안에 원시 합격을 해야 하지만.”
“음…….”
“제수씨도 마찬가지고요.”
두 여인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원시.
현재 와룡서원의 제자들은 모두 합격한 시험이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마음먹고 가르쳐 드릴게요. 서원비로 들어오는 돈 중에 따로 챙겨드리기도 하고요.”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초이영이 머뭇거리다, 깜짝 놀란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당연한 대가일 뿐입니다.”
“그…… 저는 시형께서 글만 가르쳐주신다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늘인 초이영이 마전과 마정의 눈치를 살폈다. 하는 것 없이 객잔에 머무는 듯한 그녀지만, 실상 초이영의 일상은 제법 바쁜 편이었다.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 마정을 깨워 아침 준비를 시키는 것에서부터, 바쁜 시간대에 객잔 일을 돕는 것. 그 외로도 잡다한 청소와 잡무, 이제 갓 열 살이 된 마설에게 글공부를 일러주는 것까지. 그야말로 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만큼 객잔에서 그녀가 사라진다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을 터다. 마전과 마정의 입장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
“나는 괜찮다. 어차피 네가 시집오기 전까지는 정이와 둘이 해왔던 일이니 말이다. 요즘 들어서는 몸도 더 튼실해진 것 같고.”
대화를 듣고만 있던 마전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마현의 주술진 덕에 건강을 완전히 되찾다 못해, 회춘(回春)하다시피 하고 있는 마전은 그야말로 무서울 게 없는 기분이었다.
“나도 좋다고 생각해. 당신, 예전에 글공부 하고 싶었다고 했었잖아.”
마정도 어렵지 않게 동의했다.
“아버님…… 당신…….”
자연스레 초이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배우고는 싶었지만, 뜻을 세울 틈이 없었다.
여인의 몸으로 독학(獨學)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시집온 뒤로는 접어야만 할 꿈이라 여긴 탓이었다. 한데 가장 큰 벽이 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이 너무나 손쉽게 허락한다. 아니, 오히려 응원하는 눈빛을 보낸다.
“내 형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지만, 가르치는 재주만은 특출난 것 같으니까…….”
마정이 은근슬쩍, 마현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그렸다.
이제 처음 보았을 때의 까탈스러움은 거의 흔적도 남지 않은 채였다. 나름대로 형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뿌듯하게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마현의 입장에서야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언제까지나 귀여운 동생으로 남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언제부터 우리 새아가에게 글을 가르칠 셈이냐?”
“원한다면 내일…… 아니, 당장부터도 가능하죠.”
마전과 마정, 두 사람의 허락까지 힘에 업은 마현 역시 당당하게 대답한다. 그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당장 원시를 준비하라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초이영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마전과 마정, 마현을 향해 인사했다. 그런 그녀의 손을 꼬옥 붙들고 있는 것은 이제 열 살이 된 마설.
“그럼 이제 엄마, 선생님 되는 거야?”
귀여운 마현의 아기 선녀 역시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응원을 더한다.
훈훈한 기운이 객잔 전체를 감싸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 *
역시 마음을 먹기까지가 어려운 법이다.
결정을 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니 일은 일사천리(一瀉千里)였다. 초이영과 구혜린을 대상으로 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다음 기수의 제자들을 연말쯤에 모집하겠다며 방문을 붙인다. 해야 할 일은 더 있었다.
‘어차피 키우기로 마음먹은 것.’
마현은 오랜만에 마신고를 열었다.
마신고의 내부에는 중원에서 볼 수 없는 기이하고 특이한 종류에서부터, 야명주와 같이 흔치 않지만 큰 값을 받을 수 있는 귀품(貴品)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이 정도 크기의 야명주 셋이면…….’
그중에서도, 중원에서 가장 값을 받기 쉬운 물품을 꺼낸 마현이 작은 미소를 그렸다. 자신의 주먹보다도 더 큰 야명주가 셋이다. 엄청나게 큰 정도는 아니지만, 작지만도 않다. 이를 모두 가져다 팔면 무명현 일대는 사고도 남을 정도의 돈이 들어올 터였다.
그를 이용해 객잔과 서원 주변 일대의 건물 몇을 매입할 생각이었다. 새 건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원 자체를 증축할 생각인 것이다.
‘이참에 객잔 크기도 키우고 말이야.’
무명현의 와룡객잔은 광동성 전체에서도 손가락으로 꼽히는 객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아 보이는 이 층 덩치에, 초라해 보이는 외관은 고관대작들이나, 흔히 말하는 있는 집 자식들에게 기피하고 싶은 마음을 안겨주기도 했다.
워낙 화려하고 큰 것을 좋아하는 허황된 마음이 큰 양반들이니,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마현은 이참에 와룡객잔도 제대로 부흥시킬 생각이었다. 예상대로라면, 광동성 내에서 몇 손가락이 아닌 제일에 꼽히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물론 크기가 커진 만큼 바빠지고 손님도 늘겠지만…….
‘그야 점소이를 고용하면 될 뿐이고.’
역시 난감할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서원도 키우고, 객잔도 키운다.
그야말로 하는 김에 다 해결하는 것.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는다! 일석이조(一石二鳥)란 말이 바로 이럴 때 쓰이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느낌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여태껏 아끼고, 조심스레 살아온 만큼 쓸 때는 제대로 푸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계획이 단숨에 가속도를 가했다.
‘제자들은 우선…….’
구혜린과 초이영이 원시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따로 받지 않는다. 대신해서 고집을 부리고 남은 다섯 제자를 다음 향시에 합격시키기 위해 움직인다.
마현은 언제나와 같은 일상을 보내기 위해, 준비를 마친 이후 소룡원으로 향했다.
이제는 정해진 것을 아이들 모두에게 알려야 할 때였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반발은 없었다.
아이들은 그저 서원에 남게 되어 함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크게 기뻐했다. 특히 소수린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기뻐했는데, 그에 백산과 정순욱, 양명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사내 제자들의 얼굴이 크게 붉어졌다.
그야말로 최근 들어 꽃을 피우는 듯한 미모였다.
평탄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와룡서원을 찾아온 의외의 손님이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형님.”
마운.
한때 부상으로 사경을 헤맸던 동생이 이제 완전히 회복된 모습으로 와룡서원을 찾았다. 이는 나쁠 것이 없었다. 가족의 방문이란 언제나 즐거운 법. 마현은 단숨에 그를 부둥켜안고 기쁨을 표시했다.
“잘 지냈던 거냐?”
“저야 뭐…… 형님 덕분에 늘 무사합니다.”
“하하, 그것참. 연이는? 연이는 뭐 하고 지낸다더냐?”
“해남파 내에서 무공을 갈고 닦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최근 사저인 공 소저의 발전에 완전히 눌려, 절치부심 중이라던가요. 하하.”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리 생각한 마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애초부터 손님은 마운 혼자만이 아니었다. 기척 하나 남기지 않으려는 듯, 몰래 들어섰지만 이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쯧, 역시 네놈의 눈을 속이기에는 무리였나.”
장신에, 감각적인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낸 옷을 입은 주화화가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그녀 주변에 은은하게 어려 있던 안개와 같은 장막이 사라진다.
단순한 은잠술이 아니라, 주화화 특유의 기운을 이용한 독특한 은신술을 펼친 것이 분명했다.
“그러게, 제가 안 될 거라고 했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짐작했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은 마운의 말에 불쾌한 표정을 지은 주화화가 고개를 홱 내저었다.
“그래도 혹시란 것이 있지 않으냐.”
“어찌 됐든 내기는 제가 이겼습니다. 어서 주시죠.”
“끄응…….”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의 주화화가, 품에서부터 금자를 꺼내 마운에게 건넨다.
그 모습에 마현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지금 두 사람…….”
“아, 대단한 건 아닙니다. 작은 놀이라고 할까요.”
“현금이 오가는 아주 무서운 놀이지.”
“……태상장로님.”
“흥.”
한동안 보지 못한 사이, 두 사람 사이에도 꽤나 많은 변화가 있었던 듯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직하기만 하던 셋째 동생의 큰 변화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내기라니…….’
그것도 금자가 걸린 도박이라니.
서원의 스승이기 이전에, 한 동생의 형으로서 걱정이 되는 모습인 것은 사실이었다.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하는데, 내기는 늘 태상장로님께서 제안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넌 꼭 그 내기를 넙죽 받아먹지.”
“형님이 오해하십니다. 전 분명 도박 같은 내기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고요.”
“그래도 이기면 돈은 꼬박꼬박 받아가잖아!”
“그야 이겼으니까 당연히…….”
“흥.”
아무래도, 마현으로서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가 정말 많았던 듯했다. 어찌 됐든 나쁘지는 않았다. 현금이 오가는 도박성 내기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두 사람의 관계는 분명 돈독해 보였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촌구석에서 작은 서원 하나 차리고 조용히 살아간다더니 진짜였군.”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마운의 전신을 가볍게 훑은 주화화가 뒷짐을 진 채 와룡서원 내부를 둘러보았다. 장원은 척 보기에도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다. 열 명의 제자가 생활하기에 딱 알맞은 정도? 장식이나 수목 역시 화려하게 놓는 편이 아니기에 소박하다는 인상이 더 강할 터였다.
“앞으로는 조금 덩치를 키울 생각입니다.”
소붕의 친구이기에, 나름대로 호감을 느끼고 있는 주화화를 향해 마현은 꽤나 친절한 답변을 해주었다. 그러자 주화화뿐만이 아니라, 마운까지 놀란 눈동자가 되어 마현을 바라본다.
“형님…….”
“네놈 혹시…… 문파라도 차릴 생각이냐?”
“…….”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마현이 황당한 표정을 짓자, 가볍게 이마를 짚은 주화화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실, 와룡서원에 대해 조금 알아보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에 대해 알아본 것이다만, 제자들에게 무공도 가르친다고?”
“체력 양성 겸 함께 일러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체력 양성이라면 학자들에게 어울리는 고고한 궁술이나, 가벼운 승마도 있을 터다마는.”
“가르치는 것이야 스승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야 맞는 말이다만. 네놈이 무공을 가르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녕 모르는가 보구나.”
마현은 가볍게 턱을 쓰다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모르지는 않습니다만, 그리 깊은 의미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너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놈이 들었다면 기가 막혀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거다.”
“하시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마현, 마 씨 일가의 장남. 스물다섯 때 향시에 합격한 거인이자, 학사…… 였으나. 관리가 되기 위해 북경을 향해 가던 길 중(中) 실종. 십 년 뒤…… 무절곡으로부터의 귀환. 생환자. 그 무공은 추정 불명.”
주화화의 예리한 눈빛이, 마현의 담담한 얼굴을 향했다.
‘조금도 흔들림이 없군.’
자신에 대해 이토록 조사했다는 사실을 알면, 불쾌감이라도 나타낼 만하건만 전혀 변화가 없다. 아무렴 상관없다는 느낌이랄까.
“어차피 때가 되면 알려질 이야기였으니까요.”
의문을 읽어낸 듯, 대답하는 것 역시 기가 막힌다.
“아직 구대문파 중에서도 일부와 우리 개방밖에 모르는 사실이다만 네 존재감은 이미 강호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거수일투족의 감시까지는 아니라고 하여도, 너의 움직임에 따라 강호의 향방이 어느 정도 정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리 큰일을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너야 그렇겠지. 하나 강호를 운영한다는 오만한 자들의 눈에는 그리만 보일까?”
주화화는 억지로 마현을 조사하려 하지 않았다.
마운 역시, 자신의 형에 관한 것이므로 최대한 입을 조심하려 했다. 하나 그간 마현의 행보는 너무나 파격적인 것들뿐이었다. 모든 것을 알아채지는 못했더라도, 일부나마 무림을 지배하는 이들의 귀에 들어갔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한 적도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네놈이 구절마제 태거악과 그의 수하 다섯을 몇 수만에 제압했다는 사실은 이미 구대문파와 사대흉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기른 제자 녀석들을 얼마 전 졸업 시켰다며?”
“그게 또 왜……?”
“형님의 제자들이 그…… 협객행을 했습니다.”
와룡서원을 졸업했다며 나선 제자 오인방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꽤나 멀다. 당연히 가는 동안 꽤나 이름 있는 악인(惡人)이나, 사파의 무인도 보일 수밖에 없다.
마현에게 있어 정의와 효, 그리고 도리에 대해 배운 제자들이다. 불의를 보고 도저히 못 참을 정도는 아니지만, 간과하기만 할 성격도 아니다. 그렇게 산적들의 산채 몇 개와 이름난 사도의 무인 몇몇이 와룡서원 제자들의 손에 걸려 박살이 났다. 마두(魔頭) 급은 아니라며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와룡서원의 제자들은 그야말로, 학사의 제자다.
학문을 갈고닦은 어린아이들이란 말이다.
그 나이가 채 약관도 되지 않은.
하나 서원을 나선 다섯의 아이가 모두 일류에 가까운 또는, 그에 필적한 무위를 자랑한다.
이래서야 서원이 아니라, 무관이라 해도 믿을 판이었다.
한데 그 과거시험 성적도 만만치가 않다.
무절곡의 유일한 생환자 마현.
그가 제자들에게 무공과 학문을 동시에 일러주고 있다.
따로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하여도, 강호를 지배하고자 하는 이들의 눈에는 마현이란 존재는 걸리적거릴 수밖에 없는 사갈이었다.
“걱정이 돼서 네놈을 찾아왔다.”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은 마현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자 주화화가 말한다. 그에 마현은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걱정 안 해주셔도 됩니다. 처음 무절곡을 나설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했던 일이기도 하고…….”
“누가 네놈이 걱정된다고 하더냐? 나는 겁도 모른 채 강호를 운영한다니 마니 하는 애송이 녀석들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이다. 분명 나는 너를 잘 모른다. 하나, 네가 마음만 먹으면 이 천하의 판도를 확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무서운 녀석이란 사실쯤은 알고 있지.”
주화화의 말에, 마현의 입가로 씁쓸한 웃음이 감돌았다.
문득 얼마 전 그의 손으로 죽인 백천악의 얼굴이 떠오른 탓이다.
‘현 강호는 썩었다고 했던가?’
고리타분하고, 흔한 이야기지만 틀린 말만은 아닐 터다.
주화화 같은 인물이 직접 나서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정도라면 말이다.
“안 그래도 너를 신경 쓰고 있는 놈들이다. 네가 덩치를 불려 문파라도 세운다고 하면…… 감춰두었던 고양이의 손톱을 꺼내 들지도 모르지.”
“그런 건 보통 호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듣고만 있던 마운의 질문에, 피식하는 비웃음을 흘린 주화화가 혀를 찼다.
“네 눈에는 그놈들이 호랑이는커녕, 살쾡이는 돼 보이더냐? 아직 어리고 멋모르는 애송이 고양이가 딱 어울리는 말이지.”
“뭐, 제 눈에야 워낙 높으신 분들이라…….”
“그 높으신 분들보다 더 높은 나한테는 막 대하고 있지 않으냐.”
“제가 언제 막 대했다고 그러십니까.”
“막 대하지 않으면 내기 이겼다고 돈 받아가지 말든가!”
“아직도 신경 쓰고 계셨던 겁니까!”
“네가 보름 만에 금자 스무 냥 잃어봐라. 속이 썩나, 안 썩나.”
“그러니까 저는 내기 안 한대도…….”
그렇게 또 시작된 두 사손 관계의 싸움에, 한숨을 내쉰 마현은 맑게 갠 청량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오랜만에, 이미 떠나간 두 스승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두 분이 말씀하셨지.’
언젠가 중원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강호에 나서지 않아도 주목을 받게 되리라. 여간 귀찮지 않고, 답답한 일도 많을 것이다. 내키지 않으면 깊은 산 속 어딘가에 처박혀 살면 되는데. 그도 답답한 일이니 그냥 네 멋대로 살아라.
강호를 지배하겠다니, 우리가 정의니 하는 헛소리 하는 놈들 있어도 신경 쓰지 마라.
‘이미 너는…….’
그 모든 것을 다 뒤엎고도 남을 힘을 가졌으니.
‘내 멋대로 살아라.’
아직도 마음속 한구석에 깊이 남아 있는 두 분의 말씀이었다.
마계에서의 생활이 각박했던 만큼, 중원에서는 제멋대로 살겠다. 감출 필요도 억지로 포장할 것도 없다. 있는 그대로 제약 없이 살아간다.
“그렇게 살 겁니다.”
다짐을 하듯, 하늘을 향해 읊조리는 마현의 목소리였다.
제팔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