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章)
“돌아오자마자 많이 바쁘네요?”
늦은 밤.
방문을 열고 들어선 구혜린이 살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조심스럽게 들고 들어왔던 다과(茶菓) 쟁반을 내려놓은 그녀에게, 한참 오경(五經)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읽고 써내려가던 마현이 작은 웃음과 함께 답한다.
“어쩔 수 없잖아. 나도 아이들한테 부끄러운 스승이 될 수는 없으니까.”
“다음 시험을 준비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마운의 사태가 있기 전, 이미 회시를 치르기로 마음먹었던 마현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원시에 합격하였고, 이년 후면 향시를 치른다. 향시란 것이 워낙 어렵다 보니 한 번에 합격할 확률은 지극히 낮았지만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와룡서원의 수재 삼인방이라면 기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리되면 아이들도 거인.
마현과 같은 학위가 내려진다.
그래서야 아이들의 스승이라는 명분이 안 서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하니 흑천맹이라는 큰 사건을 대충 해결하자마자, 다음 시험이라는 또 다른 난관과 마주할 수밖에.
“적당히 쉬엄쉬엄해요. 요즘 정말 쉴 새 없이 바쁘잖아요.”
굳이 흑천맹의 일이 아니라 하여도 마현이 할 일은 많다.
오전 일찍부터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 수업까지 모두 끝난 후에는 백산에게 의술을 가르칠 겸 무료봉사에 나선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시작했던 의술 봉사는, 이제 와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져 멀리서부터 찾아오는 환자까지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어지간한 의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이었다. 마현이 워낙 그러한 희귀하고 독특한 병(病)마저 기공치료로 잡아내니,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그렇게 힘든 봉사를 마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학문을 공부한다. 잠들기 직전까지 마현의 일과는 너무 꽉꽉 차 있어 여유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충분히 쉬면서 하고 있어. 아이들과 공부하다가 농담도 하도, 함께 무공을 익히면서 놀이도 하잖아? 밤늦게는 또 이렇게…….”
구혜린이 내려놓은 쟁반 위에 놓인 과자를 하나 집어 입안에 넣은 마현이 작게 웃었다.
“린 매랑 잡담도 하면서 다과도 먹고 말이야.”
“……하여간에.”
저렇게까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면 이길 수가 없잖아.
속으로 투덜대듯 생각한 구혜린이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조심스레 따라 마현에게로 건넸다.
“음…….”
찻잔을 받아, 향을 맡은 마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이거, 객잔에서 쓰는 차가 아닌 것 같은데?”
와룡객잔에서는 손님이 올 때 물 대신 차(茶)를 내주는 편이었는데, 보통 쓰는 것은 대중적이라 볼 수 있는 철관음(鐵觀音)이었다. 덕분에 마현도 꽤나 많이 맛을 보아 그 향취를 익히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법 그윽하고, 부드럽고 상쾌한 느낌.
하나 지금 느껴지는 차 향은 그윽한 것은 닮았으나 철관음에 비해 훨씬 짙다. 어딘지 모르게 밤 향이 나는 것도 같은데…….
‘이제 보니 색도 다르군.’
별생각 없이 쳐다보았을 때는 크게 인지하지 못했는데, 오룡차인 철관음에 비해 확연한 녹빛을 띠고 있었다.
“여산운무(廬山雲霧)에요. 며칠 전에 둘째 도련님이 강서 측을 오가는 상단과 거래를 하시면서 구입해 온 차인데, 저는 제법 마음에 들더라고요.”
“음…….”
구혜린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제법 마음에 드는데?”
철관음의 부드럽고, 그윽한 향도 좋지만 여산운무의 짙으면서도 감칠맛 도는 느낌은 또 다른 풍취가 있었다. 준비해온 과자류가 달기보다는, 무미(無味)에 가깝고 씹는 맛이 좋은 종류이기에 더욱 어울리는 듯도 했다.
“린 매랑 닮았어.”
“……네?”
“진한 듯하면서도 순수하고, 감칠맛도 있고…….”
쩝. 가볍게 입맛까지 다셔주자, 붉어진 얼굴의 구혜린이 크게 손사래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그게 뭐예요!”
“무슨 상상하고 그러는 거야? 그냥 린 매의 순수하면서도, 진득한 마음을 떠올리고 한 말인데.”
“그, 그, 그쯤은 저도 알고 있어요.”
“알고 있던 것 같지 않은데?”
“…….”
마현은 구혜린을 직시하고, 반면 그녀는 시선을 둘 데를 몰라 얼굴을 붉힌 채 딴청을 피운다.
“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당황하지 말라고.”
그 모습을 즐기던 마현이 끝내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지도 않은 그녀의 반응이 재밌어 놀리기 시작하긴 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빠요.”
그에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오른 구혜린이 작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고개를 푹 숙인 그 모습은 또 너무나 예뻐, 한창 공부에 집중하려던 마현의 평정심이 순식간에 깨어졌다.
‘일단 오늘 할 만큼은 충분히 했으니까…….’
지금은 일단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자연스레 마현의 몸은 앞으로 기울고, 붉어진 얼굴의 구혜린이 두 눈을 천천히 감겼다.
스르륵.
두 사람의 피부를 감싸고 있던 천 조각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 * *
무명현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좋다.
가족 간의 시간이야 말할 것도 없으며, 이제는 충분히 성장해 글에 대하여 서로 논(論)해도 부족함이 없는 제자들과의 대화도 너무나 즐거웠다.
“천지의 덕(德)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생(生)이라 하였습니다. 사람의 도 역시 만물을 살리는 것을 근본이라 하였으니, 천지 만물 건(乾)과 곤(坤)의 중심에 인(人)이 서는 것이 바른길이라 생각합니다.”
“하나 산아, 만물이라 함은 인만을 뜻하지 않을진대, 이에 대해서는 어찌 답할 터냐?”
“만물이라 함은 분명 인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뜻할진대, 어찌 사람만을 논하겠습니까. 하나 역경(易經)에서 말하길 자연과 인간의 법칙은 일통(一統)한다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감히 사람을 하늘과 땅의 중심에 세우는 괘(卦)로 칭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경(五經) 중 역경에 관한 문답을 나누는 마현의 입가로 즐거운 미소가 번져나갔다.
“하면 태극(太極)의 음양(陰陽)을 가르는 삼행(三行), 팔괘(八卦)를 넘어 육십사괘(六十師卦) 그보다 더 많은 효(爻) 모두에 인이 어려 있다는 말이렷다?”
“정확하게는 사람의 길이 태극, 음양의 이치에 모두 담겨 있다는 말이라 생각되는군요.”
돌아온 답변은 정순욱의 것이었다.
마현과 백산의 논쟁(論爭) 사이로 끼어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하나 어찌 음양만으로 사람을 논할 수 있을까요?”
뿐만이 아니었다.
소수린을 비롯한 열 명의 제자들이 함께 그 속으로 끼어들어 이야기를 나눈다. 의견이 부딪치기도, 합일되기도 하는 그 현상 속에서 마현은 또다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유논쟁(自由論爭)의 시간을 만들기를 잘했어.’
가끔 아이들끼리 의(義)가 상한 듯 다투기도 하지만, 끝내는 서로 간의 합의점을 찾아 정확한 답을 향해 나아간다. 영 옳지 않을 경우에는 마현이 제재하고, 또 다른 답을 내놓기도 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또다시 성장하고, 생각의 폭을 넓힌다.
그 대답들 중에는 마현으로서도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고작 십오 년을 살아온 아이들이라고 무시할 바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이 보는 세상이 있으며, 마현이 살아왔던 때와 다른 것을 보기도 한다.
마냥 오래 살고, 나이가 많다고 하여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의 눈으로 볼 때 보이는 것이 더 많기도 한 법이었다.
“자자, 잠시 그만.”
그렇게 열기가 과열되어갈 때쯤.
잠시 아이들의 자유논쟁을 멈춘 마현이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군자는 성현(聖賢)들의 말과 그 행적을 고찰해 자신의 덕을 기른다는 말은 다들 알고 있느냐?”
아이들 중 반 이상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역시 역경에 나오는 군자의 덕목에 대한 문구다. 한데 말이다, 지금 자유논쟁을 하다 보니 문득 다른 생각도 들더구나.”
“……?”
아이들 모두가, 마현에게 집중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문을 표한다. 정말 정이 많이 들었다 보니, 이제는 아이들의 그러한 모습 하나, 하나가 너무나 귀엽고 예쁠 수밖에 없다. 마현은 저도 모르게 커다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헛, 성현들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귀여운 제자들의 말과 행적을 보고서도 군자의 덕은 기를 수 있다. 이 시간을 만들고 난 이후 늘 한 말이다만. 조금 전까지 서로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투었던 시간을 다시금 되새겨 보거라.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을 것인즉. 그야말로 군자의 덕을 기르는 가장 옳은 방법일 게다.”
“명심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마현의 말에, 아이들이 작은 웃음을 띤 채 고개를 숙이며 답한다. 서로 간의 말에 조금씩 상처를 입었던 경우도, 다시금 되짚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모습.
제자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그 시간 속에서 마현은 묵묵히 청량한 하늘을 바로 보았다.
‘이제 칠 주야.’
거인복시까지 남은 시간.
“내가 없는 며칠간에도 이 말을 잊지 말고, 서로 힘을 합쳐 정진(精進)하도록 하거라.”
이미 아이들에게 며칠간 자리를 비울 것을 예고해두었던 마현이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정말 돌아왔다 하면 떠나야 하는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시간이었다.
* * *
“다녀오겠습니다.”
“시험 잘 보고 오거라.”
“진심으로, 혹시라도 떨어지지는 않기를 바라.”
제자들에 이어, 가족들에게까지 인사를 마친 마현이 북경으로 향했다. 향시에서부터는 성도가 아닌, 천자가 머무는 땅인 수도(首都)에서 시험이 이루어진다. 회시 직전에 치르는 거인복시라고 하여도 다를 것은 없었다.
‘복시 이후 한 달 뒤에는 곧바로 회시…….’
본래라면 대다수 응시자가 거인복시 이후, 한 달의 준비 기간 이후 회시까지 한꺼번에 치른다. 떨어진다 하여도 사, 오 등급을 맞지 않는 이상 기회가 더 남았으니 우선 경험을 하는 것이다. 하나 마현은 거인복시만 치른 이후 곧바로 무명현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다음 회시를 치르면 돼.’
당장 거인복시에 회시까지 치르는 것은 제자들과 떨어져 있는 기간이 신경 쓰인다. 게다가 아직 마현 본인이 생각건대 회시를 치를 준비가 완전치 않았다.
하니 조금 더 학문을 갈고닦고, 시간이 흐른 후에 회시를 치른다. 이미 나이가 찬 만큼 늦은 시험이라 할 수 있지만, 그때라 하여도 문제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시험을 치르느냐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시험이란 얼마나 잘 치냐는 것이 중요한 법. 마현은 준비를 조금 더 한다면 회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기본적으로 일상을 바쁘게 지낸다고 한들, 여유가 많은 삶을 좋아하는 마현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이편이 훨씬 좋을 수밖에 없고 말이다.
‘벌써 도착인가.’
흑운을 타고 이동하다 보니 북경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현은 무명현에 도착할 때 그랬듯, 기척을 지운 채 지상으로 내려섰다.
이후로는 곧바로 황궁 인근에 위치한 예부 상서의 하위 관서(官署)를 찾아가 거인복시에 대한 응시 의사를 내비쳤다.
“칠백삼십이 번이라…….”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니, 아마 마현이 거의 막바지 참가자일 터, 칠백이 조금 넘는 숫자라면 이번 복시에는 그리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평균 천 명이 넘는다고 했던가?’
어찌 됐든 이들 중에서도 눈에 띌 정도의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삼 등급만 되어도 회시를 치를 자격은 주어지지만, 기왕이면 제자들 앞에서 체면도 차릴 겸 일, 이 등급은 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
그도 그럴 게 광동 원시의 결과가 엄청나지 않았던가?
‘장원에, 방안, 탐화까지 다 아이들 중에 나와 버렸으니…….’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또 이 등급도 적어 보인다.
거인복시에서는 따로 장원을 매기지 않으니 일 등급.
‘그래, 일 등급을 맞아야 해.’
그리 결심한 마현은 곧바로 남은 날을 세어 보았다.
‘이제 이틀인가?’
시간으로 치자면 열두 시진이 두 번 하고, 여섯 시진쯤이 더 남은 시점. 마현은 곧바로 객잔에 방을 잡고 글공부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딱히 가르쳐야 할 제자가 있는 것도 아닌 데다, 완벽히 홀로 떨어져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때, 마현은 극한까지 두뇌의 활동을 끌어올려 밤잠을 줄여가며 거인복시의 준비를 했다.
목표는 일 등급!
머릿속에 새겨진 과제를 떠올리며 정말 밤낮없이 공부했다.
잠시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가는 순간에도 손에서 서책을 놓지 않았다. 시험을 치르기 전 수도에서는 흔한 풍경인 만큼, 크게 눈에 뜨일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시험 당일 날까지 그야말로 혼을 불살라 공부에 집중한 마현이 시험장 내부로 들어섰다.
거인복시는 원시에 비하자면 복잡하게, 하나 향시 때에 비하자면 비교적 간단한 과정으로 치러졌다.
낮에는 시험장에서 사서에서 출제된 문제를 풀이한다.
이후 한밤중에 출두하여 또다시 한 문제.
이른 새벽에는 오경에 관하여 문제가 출제된다.
마지막으로 되돌아온 점심때에 오경의 또 다른 문제를 풀이하면 드디어 완료.
“끝났군.”
정말 정신없이, 시험을 준비하고, 답을 내고, 또다시 공부하고의 반복된 이틀을 보낸 마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생존을 위하여 무학을 단련했던 만큼, 그 누구보다도 강한 정신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였음에도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칠 주야에 걸쳐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치렀던 향시에서 합격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이가 들면 삭신이 쑤셔서 시험을 못 치른다더니…….’
먼 옛날 한 번 떠올렸던 생각이, 다시금 떠오르며 되새겨지는 추억에 다시 한 번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러고 보니 향시 때와 또 다른 점이 있었다. 향시는 칠 주야의 시험이 끝난 후, 합격자 발표 전에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주연(酒筵)을 펼친다. 하나 거인복시 이후로는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전에 말했듯 얼마 있지 않아 회시다. 고작 거인복시를 끝냈다고 하여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 응시자 대부분은 자신의 합격 여부를 듣지 않은 상태에서도 서책을 들고 공부에 집중했다.
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는 예감이 들거나,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서책을 읽는 눈빛이 불안정하게 떨리긴 했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나.’
학사란 인물들 대부분이 워낙 공부에만 목을 매다 보니, 건강에는 취약해지기 따름. 몸이 약하면 정신이 무너지기도 훨씬 쉽다. 한데 그런 학사들이 몇 날 며칠 모여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시험을 치르니…….
‘다시 생각해도 예전의 내가 자랑스럽군.’
그런 상태로 며칠이 더 흐르자, 거인복시의 결과가 북경 중앙에 대문짝만하게 걸렸다.
“좋았어.”
“아…….”
“허헛…….”
자신의 높은 성적에 기뻐하는 인물들도 보였으며, 원치 않은 성적에 탄식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오 등급을 받아 거인에서 평민이 된 몇몇 응시자들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졌다. 고작 검은 먹물로 이루어진 글자 몇몇에 사람의 감정이 이리도 뒤흔들리는 것이다.
‘과연 이 시험이란 제도도 옳기만 한 것인지…….’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쉰 마현은 곧 생각을 접었다. 무조건 옳지만도 않다는 것쯤이야 누구든 말할 수 있다. 하나 국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재를 판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안타깝지만 세상은 불공평하고, 현실은 쓰니, 자신의 노력과 재능에 대한 값을 언젠가는 치를 수밖에 없는 법.
‘다행히도…….’
아직 마현에게는 그때가 오지 않은 듯했다.
일 등급.
원하던 결과를 받은 마현은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북경을 나섰다.
어찌 되었든, 마현은 이제 진사(進士)가 되기 위한 시험, 회시를 치를 자격을 얻은 것이다.
* * *
돌아온 마현의 합격 소식에 가족과 제자들 모두가 크게 기뻐했다. 비록 복시일지라고 해도, 가장 좋은 성적인 일 등급을 받아왔기에 그 기쁨은 더욱 컸다.
특히 아버지, 마전의 경우는 살짝 눈물까지 내비칠 정도였다.
“네가 서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들, 더 이상 학문에서는 빛을 보기 힘들 거라 여겼었는데…….”
어린 시절, 나름대로 촉망받던 학사였던 마현이었다.
하나 세월은 이미 유수와 같이 흘러갔으며, 그동안 시대는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또한 마현도 손에서 붓을 놓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비록 훌륭한 스승으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으나, 본인이 가진 바 학사로서의 빛은 도태되지 않았을까 걱정되던 차. 이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니 마전의 입장에서야 너무나 기쁠 수밖에 없었다.
‘이거면 됐지.’
그 덕에, 북경에서 보았던 응시자들의 다양한 모습에 느꼈던 조금의 씁쓸함마저 털어낸 마현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수많은 결과가 펼쳐진다.
그 모든 것을 마현이 행복이나 즐거움으로 바꿀 수는 없다.
가진바 꿈대로.
죽어가던 백천악에게 원망 말라며 떠올렸던 소원대로.
주변의 가족들과 지인들 정도만이 함께 행복할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그러니 마전이 기뻐하는 만큼 마현도 자신의 높은 성적의 합격 소식을 즐겼다.
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흘러, 새해가 찾아왔다.
제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