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四章)
마현이 먼 거리를 가장 빠르게 이동하는 법은 바로 흑운을 이용하는 것이다. 공중에서 가는 덕에 장애물도 없고, 흑운 자체의 속도도 마현의 축지성촌에 못지않으니 그야말로 최고속이라 말할 수 있는 셈이다.
‘안휘성.’
덕분에 호북을 가로질러 안휘에 도착하는 데까지는 반나절이 필요치 않았다.
‘처음 놈들을 본 게…….’
분명 소호(巢湖)로 하였었다.
소호는 안휘의 성도인 합비의 바로 아래편에 위치한 호수.
생각이 나자, 흑운이 빠른 속도로 날기 시작한다.
마현은 그 위에서 눈을 감아 기파를 넓게 펼쳤다.
‘아무리 잘라 내도, 꼬리가 길면 결국에는 잡히기 마련이지.’
흑천맹 무인들이 가지는 특유의 기운쯤이야 이제 눈 감고도 알 수 있다. 그들 대다수가 자잘한 꼬리라 하여도. 잘라 내고 잘라 내다 보면 결국 몸통에 닿을 수밖에 없다. 몸통 역시 많다면 그도 끝없이 잘라 낸다. 하다 보면 머리가 드러날 수밖에 없을 터다.
‘어디 한 번 해보자고. 흑천맹.’
평소에는 여유롭게 행동하지만, 지독하게 마음을 먹은 마현은 그 누구보다도 집요하고 끈질기다. 오죽했으면 마계의 한 마족이 마현을 상대로 도주하다, 그 집요함에 지쳐 자결을 택했을까.
‘우선 다섯.’
기파에 걸리는 흑천맹 무인의 수에.
마현은 흑운에 탄 상태 그대로 손가락을 내뻗었다.
동시에 백야탈명지의 기운이 바깥으로 빠져나가, 마현이 느낀 다섯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여덟, 아홉, 열…….’
숫자를 세면서, 쉴 새 없이 백야탈명지를 쏘아 보낸다.
하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부터 쏘아진 마현의 백야탈명지를 막아설 수 있는 무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자연으로부터 기운을 끌어다 쓰는 마현의 입장에서, 내기가 모자랄 일도 없다. 혹시나 한 번이라도 백야탈명지를 피하는 고수가 있다 한들 상관없다.
‘또 쏘면 되니까.’
동시에 두, 세 발을 공중에서 한 상대를 향해 쏘아낸다.
하면 살아남았던 고수조차 끝내 숨이 멎었다.
그렇게 소호로 가기까지, 약 백에 가까운 흑천맹의 무인을 죽인 마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무슨 괴갑충(傀甲蟲)을 보는 기분이로군…….’
괴갑충은 마계의 마물 중 하나로서, 다리가 여섯 달리고 등에 단단한 껍질이 씌워진 식인 벌레였다. 단단한 등껍질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강기에 잘리고, 공격력도 딱히 특출한 편이 아니기에 객체로만 보자면 그리 두려울 것도 없던 녀석들의 특징은 그야말로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껍질이 베이고, 다리가 잘리고, 온몸을 난도질해도 살아남는다. 그런 녀석들을 간신히 죽이면, 심지어 알을 낳기까지 하는데 그 수가 수백, 수천에 이르며 부화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일다경도 필요치 않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이 나타난다.
흑천맹 무인들을 보는 마현의 심정이 바로 그러한 괴갑충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나 많이 죽였는데, 소호에 오니 그 배수가 넘는 이들이 또 숨어 있다. 심지어 뭉쳐 있지도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 숨어, 따로 각자의 일을 한다. 아무래도 흑암성 사태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큰 의미도 없지만 말이지.’
당시는 보여줄 거리가 필요해 일을 크게 벌였다.
하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마현이 바라는 바는 그야말로 삭초제근.
놈들을 다 죽일 수만 있다면 방법 따위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마현은 소호에 오는 동안 그랬듯, 흑운 위에서 백야탈명지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한 번에 스무 개의 강기가 허공에서부터 비처럼 쏟아져 내려 흑천맹 무인들의 머리, 혹은 목을 꿰뚫는다. 확실히 본거지 중 하나라 그런지 이리저리 잘 피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의미가 없는 건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고.’
마현은 쉴 새 없이 백야탈명지를 쏘아 보내며 하나로 안 된다면 셋을, 셋조차 피하거나 막는다면 다섯을, 그조차도 감당하면 일곱을 한 사람에게 쏘았다.
‘아무래도 멀리서 쏘는 만큼 위력이 중간에 약해지는 탓이지.’
아마 지근이었다면 백야탈명지 셋을 동시에 감당할 무인은 천하 전체에서 손가락에 꼽아야 했을 터였다.
파바바밧.
그렇게 강기를 쏘아내며, 소호 주변의 흑천맹 무인들을 모두 정리했다. 지상에서는 수많은 저항이 있었지만, 너무나 무력한 발악에 불과했다.
‘자, 이제 이 상태로…….’
마현은 다시금 흑운을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강소였다.
‘이후에는 절강.’
다음은 복건과 강서, 호남을 순회한 후 광동에 도착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는 길에 보이는 흑천맹 무인은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
마족조차도 질리게 만들었던 마현의 집요함과 잔인함.
그 끔찍함이 흑천맹 무인들의 머리 위로 닥치는 순간이었다.
* * *
시간은 어느덧 보름이 흘러가 있었다.
강소에서 절강, 복건까지 훑고 강서성으로 향하며 무심히 백야탈명지를 쏘아내던 마현의 입가로 미소가 스쳤다.
‘드디어 왔군.’
예상했던 대로다.
꼬리를 수도 없이 자르니, 몸통 이상의 거대한 무언가가 등장했다. 아니, 정황을 보니 머리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이곳까지 닿지도 못했을 테니까.”
하늘 위.
흑운을 탄 채 팔짱을 낀 마현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굳어진 얼굴의 중년인이 온몸을 파르르 떨며 마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어떤 고인(高人)이시오?”
분노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중년인은, 마현을 향해 정중히 물어왔다. 화가 난다 한들 쉽게 맞붙을 상대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높은 사람은 아니고…….”
잠시 생각하던 마현은, 작은 웃음을 그리며 답했다.
“그냥 동생들의 형이자, 제자들의 스승일 뿐이지.”
적어도,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는 그것이 분명했다.
광동에서부터, 흑천맹은 마현과 아이들을 노리고 몇 번이나 위협을 가했다. 거기에 이어 동생인 마운에게까지는 직접적인 피해를 주었다. 그 사실에 분노했기에, 마현이 지금 이 자리에 섰다. 하니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닐 터였다.
“지금 당신이 벌이고 있는 일은 대학살이오. 알고 계시오?”
인정(人情)에 대한 호소인가?
그렇다면 상대를 잘못 짚었다.
“한 사람이 여럿을 죽이면 대학살이고. 한 사람이 세운 세력이 그보다 많은 이를 죽이면 옳은 일인가?”
흑천맹.
가만히 놓아두었다면 언젠가 천하에 혈풍을 몰고 왔을 터다.
마현이 죽인 흑천맹 무인들의 수는 문제가 되지도 않을,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어 나갔을 게 분명했다. 그러한 조직을 세워 파렴무치의 짓을 끊임없이 저지른 주제에, 인정을 따진다?
“어린아이마저 납치하며 일을 벌이는 놈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오.”
“대의, 좋은 말 쓰는군.”
마현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지금, 그들이 자행하는 일들이, 희생이, 크고 옳은 일을 위한 것이란 뜻인가? 뭐 사실 아무렴 상관없을지도 몰랐다. 천하가 넓은 만큼, 사람 역시 다양하다. 원하는 바, 지향하는바, 생각하고 뜻하는바 모든 것이 다를 수 있다.
말을 한다면 이해해줄 수도 있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그 말이 모두 옳다고 동의할 수만도 없었다.
“예로부터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늘 뒤따라왔소. 고인과 같은 분이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 아니오?”
중년인의 목소리에서는 꽤나 깊은 절박함이 느껴졌다.
아마 무슨 사연이 있겠지.
자신 나름의 확고한 가치관도 있을 터다.
그것이 설령 천하가 비웃을 헛소리라도, 그의 믿음은 굳건할 터였다.
자신의 의지에 취해 광신도가 된 경우다.
“아무리 그래도 선은 넘지 말았어야지.”
“고인에게 지은 죄가 있다면 사과하겠소. 대의를 위해 우리를 모른 척해줄 수는 없는 것이오?”
사내는 절박했다.
마현과 대면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어오르는 기운의 파동을 느낄수록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는 절대자다…….’
적으로 돌리면, 천하의 그 누구도 견뎌낼 수 없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은 스스로 몸을 숙이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면 그 상태로 묻어야 한다. 초야에 갇혀 세상을 보지 않게 해야만 한다.
흑천맹주, 백천악(百千岳)은 지금이 그 마지막 기회라 여겼다.
“모른 척해주면, 나의 지인이 너에게 칼을 겨누어도 눈 감을 수 있는가?”
“그리하겠소.”
“네 목을 달라 하여도?”
“그건……!”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하던 백천악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시간의 여유를 주면, 내 그리할 자신도 있소.”
“뒤를 이을 후계자만 있다면, 네가 말하는 대의를 끝내 이뤄줄 이만 있다면 나머지는 개의치 않겠다는 건가?”
“…….”
백천악은 마현의 말을 부정치 않았다.
그 말대로였다.
목숨이 아깝지는 않다.
하나 그의 대의가 무너지는 것은 두렵다.
“작금의 강호는…… 썩었소.”
“무림전복을 꿈꾸는 놈들이 한 번씩은 하는 말이지?”
마현이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예전부터 강호전복, 강호 지배를 노리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그들이 가진 가치관과 생각이 다르더라도 하나로 공통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현재의 강호는 썩었다.
하면 다음에 그들이 만들 강호는 다르단 말인가?
그 세상은 썩지 않고 맑단 말인가?
“꿈 깨. 고인 물은 결국 언젠가 썩기 마련이다.”
이는 세상의 이치다.
천하가 두 번 뒤집힌다 한들 바뀌지 않을 진실.
마현은 더 이상 백천악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여태껏 이야기를 나눈 것도 흑천맹이라는 거대하고, 은밀한 단체를 만든 이가 어떤 사내인지 궁금해서일 뿐이다. 만능자라 불릴 마현의 앞에서야 미약하지만, 실제 그가 가진 힘은 대단하다. 백천악과 같은 이가 열 정도 더 있다면, 마현의 목숨을 노려볼 만도 할 정도.
그렇기에 더 살려 둘 수 없다.
마현은 자신이 가진 힘의 크기와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일 할만 되어도, 상상도 못 할 무서운 일들을 벌일 수 있다. 백천악을 놓아둔다면, 끝내 그러한 일을 벌일 터다. 그 뒤로는 장담할 수 없다. 그의 약조도, 다짐도. 이미 쏟아진 물을 돌릴 수는 없을 터니 말이다.
“항아리가 밀리기 전에 죽일 수밖에.”
마현의 두 눈에서부터 붉고 푸른 기운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이결운용(二結運用).
마계에서조차도, 마족 이상급의 존재를 상대할 때가 아니면 쓰지 않았던 힘이다. 그만큼 백천악의 힘을 인정한다는 뜻. 마현은 최선을 다해 그의 목을 벨 생각이었다.
“끝내…….”
입술을 깨문 백천악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리되지 않기를 바랐거늘, 이제 도리가 없다.
“나 역시 아무 준비도 없이 왔다고는 생각지 마시오.”
온몸에서부터, 기운을 피어 올리기 시작한 백천악의 눈이 칠흑과 같은 검은 빛으로 물들었다.
“최선을 다해보도록.”
마현은 그런 그를 향해 답한다.
비록 그 길이 옳지는 않았다고는 하나, 일부나마 절대를 엿본 이와의 싸움.
우습게 받아줄 마음은 없었다.
“하수(下手)에 대한 예의로, 첫수는 양보해주리라 믿소! 금천봉마진(禁天封魔陣)!”
백천악의 손이 빠른 동작을 취하며, 허공을 향해 내뻗어졌다.
동시에 지면 아래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투명한 삼각 뿔기둥이 솟아나 단숨에 마현을 관통한다.
“크읏……!”
몸을 관통하고 지나 하나의 결계처럼 형성된 뿔기둥 내부, 입가로 신음을 흘린 마현의 두 눈에 솟아났던 붉고 푸른 기운 중, 붉은 측이 허공으로 흩어지며 사라진다.
“제법…….”
쓸 만한 준비를 했다.
그리 말하려던 마현의 눈이 다시 한 번 동그랗게 뜨인다.
“흑쇄개방(黑鎖開放)!”
촤르르륵.
백천악의 음성과 손이 한 번 더 내뻗어진 순간, 뿔기둥 정상에서부터 흑빛의 기운으로 형성된 쇠사슬이 줄지어 내려와 마현의 몸을 휘감는다.
동시에 양팔과 양다리, 몸통까지 그 흑쇄에 사로잡힌 마현의 두 눈에 머물던 푸른 기운 역시 허공으로 흩어진다.
하늘조차 사용하는 것을 허락지 않은 봉마진에.
주술의 기운을 띤 흑쇄를 이용해 마현을 완전 봉인했다.
“헉, 헉.”
그 힘을 한 번에 쏟아낸 덕에, 꽤나 거친 숨결을 연속으로 흘린 백천악이 곧 장포를 휘날리며 검을 뽑았다.
“이제 서로 비등해진 듯하구려.”
두 눈에서 피어오르던 흑색 기운이, 조금씩 검으로 옮겨져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금천봉마진과 흑쇄에 갇혀 힘을 상실한 마현은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파앗.
기운을 가득 머금은 검을 내세워 마현을 향해 겨눈 백천악의 눈이 으스스한 빛을 흘렸다. 결전의 각오다. 백천악 역시 이번 싸움에서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그렇기에 말할 수 있다.
“부디 최선을 다해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경고를 남긴다.
“당신은 이 자리에서 죽게 될 것이오.”
하늘 위.
차가운 바람이 두 사람의 볼 가를 훑고 지나갔다.
<4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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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귀환 4권
제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