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25화 (26/83)

(第十二章)

이야기를 들었다.

개방의 부탁을 받아 안휘로 향한 일.

그곳에서 마두를 퇴치하고, 돌아오던 길에 수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마을에 들렀던 사연. 그리고 그곳에서 알게 된 흑천이라는 위험한 문자.

“그 뒤로 엄청나게 쫓겼죠.”

잠시 쉴 새도, 눈을 붙일 틈도, 먹을 여유도 없이 도망 다녔다. 뒤를 따르는 암살자들은 집요했으며,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에 아주 능숙했다. 그들이 가진 무림전복계획 일부를 엿듣게 된 마운의 입장에서야,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 암살자가 수십, 수백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은 훨씬 더 거대한 세력을 구축해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마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놓아두면 분명 무림에 큰 재앙이 될 놈들입니다.”

“그런 일이…….”

“흑천…….”

그 말에, 마연과 공서하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운은 자그마치 절정고수다. 거기에 이어 마현의 특별 강습을 받은 덕에, 꽤 수준 높은 무리를 펼칠 줄도 안다. 그런 그가 쫓기다 죽을 뻔했다. 심지어 적의 세력은 아직 모두 드러난 것도 아니었다.

‘결국 그놈들이…….’

마현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른 심정이었다.

처음 마운이 혼수상태란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분노했던가. 정도맹에 도착해 수척해진 마연의 얼굴을 보았을 때는 또 어떻게 화를 억눌렀던가.

‘참고 참아주었더니 결국 도를 넘어버렸군.’

더 이상 수동적으로 행동할 수만은 없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괜찮았을 터다.

설령 정도맹주를 죽였다 하여도 관심 없었을 것이다.

하나 마운을 건드린 것은 실수다.

그로 인해 여동생, 마연을 울게 한 것 역시 큰 죄다.

‘삭초제근 해주지.’

도저히 흔적이 보이지 않아, 직접 찾아 나서기엔 번거로워 두고만 보았다. 내 일이 아니라며 무시했다. 덕분에 큰 후회를 남길 뻔했다. 아무리 과거는 보지 않고 살아간다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중원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진심을 다한 검을 세운다.

“나는 잠시…….”

“아이의 상태는…… 응?”

마음속으로 결단을 내린 마현이 의약방을 벗어나려 할 때였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 여인이 있었다.

그 등장에는 마현조차 조금 놀랐다.

칠 척이 넘는 장신.

그에 어울리는 커다란 가슴.

매서운 눈매와 마치 색목인의 것처럼 느껴지는 기다란 은발.

모든 것이 독특하였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뭐지, 이 노파는?’

일단 겉으로만 보자면 분명 기껏 해봐야 삼십 대 초반으로 쳐줄 법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몸매 역시, 젊은 남자들이 본다면 침을 흘릴 정도로 훌륭하다. 하나 그 속은 분명 호호 할머니 노파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마현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아주 위급하다더니 아주 멀쩡한데?”

그렇게 들어선 젊은 노파(?)는 장내를 슥 훑어본 후, 침상에 걸터앉은 마운을 보며 기묘한 눈빛을 흘렸다. 이후로는 걸음을 슥슥, 미끄러지듯 옮겨 단숨에 마운의 앞에 선다.

“엇?”

맥을 짚는 손길은 절정고수에 속한 마운이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아니 마현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보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

“아주 건강해.”

그리하여, 단숨에 마운의 상태를 확신한 그녀가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것 참, 그 고지식한 방주 녀석이 날 속였을 리는 없고…….”

이어서는 다시 한 번 방 내부를 훑는다.

“호오…….”

마연을 보면서는 감탄을 흘리고.

“차세대 검후(劍后)인가…….”

공서하에 시선이 닿아서는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무언가를 읊조린다.

그렇게 끝내, 시선이 마현에게까지 닿았다.

동시에 여인의 눈살이 크게 찌푸려졌다.

“넌…….”

이후로는 아무런 말을 못하고 말을 길게 늘이며,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누구시죠?”

그때까지 묵묵히 침묵만 지키고 있던 일행들 사이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마연이었다.

“나 말이냐?”

마현을 보며 한참을 생각에 빠진 표정을 하고 있던 여인이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묻는다.

“예. 당신이요.”

“아,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를 안 했던가? 난 주화화(朱花華)다.”

여인의 소개는 단순명료했다.

“……거짓말.”

그 이름에, 잠시 무언가를 떠올린 마운의 대답 역시 단순명료하기는 마찬가지. 피식, 하는 웃음을 흘린 주화화는 자신의 허리춤을 들어 올려 보였다.

“어린 것들이 의심만 늘어서는, 쯧.”

총 일곱.

독특하게 묶인 허리띠의 매듭이 유독 눈에 띄는 그 모습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 마운이 다시 한 번 주화화와 매듭을 번갈아 본다.

개방에 있어 허리춤에 묶인 매듭의 수는 그 제자의 신분을 나타낸다. 하나일 경우는 일결, 둘일 경우는 이결, 이런 식으로 증가하여 숫자가 많을수록 더욱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일곱 개의 매듭 즉, 칠결은 개방의 장로를 뜻했다. 누군가 흉내를 내거나, 어설프게 거짓으로 매듭을 묶을 수는 없었다.

딱히 규율이랄 것 없는 자유로운 개방에, 몇 안 되는 규율 중 하나. 매듭의 숫자를 속인 자는 척결한다.

어지간히 간이 큰 자라 하여도, 거지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두들겨 맞아 죽기 싫다면 매듭으로 장난을 칠 수는 없다는 뜻.

그렇다는 말은 곧, 답은 하나다.

“저, 정말 주화화 태상장로님이십니까?”

“이제야 믿는구나.”

“사, 사문의 존장을 뵙습니다!”

침상에 앉아 있던 마운이, 재빨리 머리를 조아렸다.

* * *

마현에게 건네받은 타구봉을 환원한 날, 단숨에 개방의 중요인물로 떠오른 마운은 높디높다는 칠결제자, 장로들과 팔결제자인 후개, 거기에 용두방주(龍頭幫主)까지 마주 앉아 알려지지 않은 방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 하나가 바로 전대 태상장로, 주화화에 관한 것이었는데.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던 용두방주는 한참을 망설이다, 매우 독특하고 괴이한 분이니 주의하라는 말과 함께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었다.

이제는 그 한숨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무슨 거지가…….’

물론 마운 본인도 그리 개방의 제자답지는 않다

하나 그는 속세에서 활동하는 경향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닌가?

반면 주화화는 확실한 거지다.

한데 옷을 차려입은 꼴도 깔끔하고, 피부도 곱다.

개방의 왕(王)이라 볼 수 있는 용두방주조차도 해진 옷에 헝클어진 머리, 그야말로 거지꼴로 다녔는데 그녀는 머리조차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참으로 기묘하다.

‘아니, 사실 이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

그보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그녀가 자그마치 태상장로란 사실이었다.

태상(太上).

그야말로 지극히 뛰어난 것을 의미하는 이 문자가 붙은 의미는 간단하다. 주화화가 현대에 활동하는 장로가 아닌, 전대에 활동했던 과거의 장로란 것. 그러니까, 지금쯤이면 나이 칠십이 넘은 노파다. 한데 외모, 아니 그 어디를 보아도 노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단순한 주안술 정도로 가볍게 여길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농담 삼아 하는 말마따나.

“생각보다 몇십 년은 젊어 보이십니다.”

이 말이 옳다. 심지어 농담이 아닌 진심이다.

그런 마운의 칭찬에 피식, 하는 웃음을 흘린 주화화가 손을 내저었다.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칭찬이라 별로 낯간지럽지도 않다.”

아마 그녀에게 마운과 같이 말한 이들의 심정은 대부분 같았을 것이다.

정말 몇십 년은 젊어 보인다.

그래서 기이하다.

도대체 어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찌 보자면 칭찬이라 보기 힘든 그 말에 주화화는 기뻐한다.

딱히 거기에 부정을 해야 될 이유가 없는 마운으로서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강호의 말학 후배들이 대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

마연과 공서하 역시, 그런 주화화를 보며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누가 뭐라든 개방의 제자인 마운이 주화화를 개방의 태상장로로 인정했다.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그녀들 역시 예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타고난 건가? 아니면…….”

반면 마현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주화화가 처음 의약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정체를 한 눈에 꿰뚫어 봤던 탓에, 그리 큰 당황도 없었다. 단지 지금 그녀의 상태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조금은 궁금했다.

“그야 당연히…….”

자신만만하게 무언가를 말하려던 주화화의 시선이, 다시금 마현에게로 닿더니 콱 막힌다.

그가 묻는 것이 외모의 타고남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체 네놈……, 누구냐?”

“선천재능인가 보군.”

마현은 단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천재능(先天才能).

태어날 때부터 몸에 타고난 능력.

맞는 말이다.

주화화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재능 중 하나, 생명활동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방법을 알았다. 따지자면 그런 것이다. 어린 시절, 그녀는 장신의 미녀가 되고 싶다 여겼다. 떠올리며 몸에 느껴지는 생명활동을 조절했다. 위로는 길게, 옆으로는, 기왕이면 날씬하게. 하나 작은 가슴은 싫다.

그렇게 생각하며 기운을 움직이면 머리끝이 따끔거리고, 무릎 관절이 아파오며 신체가 자랐다. 가슴 측도 마찬가지였다. 앞섶에서부터 왠지 모르게 고통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가슴이 솟아났다. 허리는 어떻고, 본래는 새까맣던 피부는 또 어떻던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기운의 움직임이 거짓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그 특별한 능력에 생체조작술(生體造作術)이라 이름 붙여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 와중에는 본인이 아닌, 타인에게 그 힘을 이용하는 방법도 포함되었는데 덕분에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사례도 많았다.

이번만 해도 그랬다.

주화화의 비밀을 알고 있는 용두방주가, 아끼는 제자가 위험하다며 도움을 청했다. 정도맹의 의약방주도 손을 놓은 상황. 주화화는 희망의 동아줄이었다. 웬만하면 나서지 않을 그녀 역시, 타구봉을 환원한 제자라는 말에는 직접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귀찮은 걸음을 옮겨 정도맹까지 왔는데…….

‘개방의 무공을 익힌 놈은 멀쩡하고, 기이한 녀석도 하나 있고.’

만약 주화화가 직접적으로, 마현을 향해 기이하다는 소리를 했다면 분명 대다수가 어이를 상실했을 터다. 이 자리에서 가장 괴이한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주화화, 그녀였으니 말이다.

“제 형님 되시는 분입니다.”

주화화의 눈초리가 그리 좋지 않다고 느낀 마운이,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형님?”

다시 한 번 주화화가 놀랐다.

‘저놈이 고작 형님이라고?’

물론 생김새야, 제법 젊다.

하나 눈빛이 다르다.

마치 세상을 다 누벼본 듯한 노강호의 눈.

사실 주화화는 어쩌면,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인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생체조작술을 쓸 줄 안다면, 마운이 눈을 뜨고 있는 것도 납득이 된다. 닳고 닳은 노강호의 눈빛을 한 주제에, 젊은 외모도 이해할 수 있다.

한데 형님이란다.

‘이 녀석은…….’

척 봐도 이제 막 이립(而立)에 다다른 애송이의 눈빛이다.

마운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적어도 주화화의 눈에는 분명 그리 보였다. 그런 마운과 형제지간. 아무리 나이 차이가 심하다 한들 열을 넘지 않을 터였다.

보고 보아도 알 수가 없다.

“네놈, 따라 나와봐라.”

이럴 때는 직접 부딪쳐 보는 게 제일.

그리 생각한 주화화의 외침에, 잠시 고민하던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거절하면 운이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도 있으니까.’

잠깐 정도는 따라주는 게 나을 듯해서였다.

* * *

그렇게 의약방을 나간 두 사람은 곧바로 정도맹 내부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인물들의 등장에, 정도맹 무사들이 길을 막으려 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그 역시 주화화가 매듭을 보이면 간단히 해결되었다.

‘계급이 왈패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 거지.’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짓던 마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주화화.

처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개방의 태상장로란 점과 기이한 능력을 함께 연관시키자 무언가가 떠오르려 한다. 분명 중요하다면 꽤나 중요한 이야기였을 텐데…….

“어디 한번 실력부터 보자꾸나.”

연무장에 도착하자마자, 허리춤 사이로 감추어 두고 있던 몽둥이를 꺼내 든 주화화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아, 주화화!’

그 순간, 완벽히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낸 마현의 입가로 웃음이 떠올랐다.

‘소붕 영감, 그녀야.’

동시에, 느긋하기만 하던 마현의 움직임이 조금 변했다.

형태를 잃고 자유를 취한다.

몸의 맥박에 맞춰 흐름을 타며 날아오는 몽둥이를 피해 장을 내지른다.

깜짝 놀란 주화화가 두어 발자국 물러나면, 춤을 추듯 앞으로 다가가 다음 공격을 잇는다.

“네, 네놈……!”

그 독특한 형태의 무공 풀이 방식에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부릅뜬 주화화가 연이은 공격을 풀어냈다. 하지만 즐기고 있는 듯한 마현의 몸을 어느 것 하나 스치지 못한다. 날아오는 공격은 위협적이게 느껴지면서도, 끝내 그녀의 몸에 닿지는 않는다.

안다.

이러한 감각.

전 개방을 통틀어, 이런 식으로 개방의 무공을 펼쳤던 이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소붕 사형과는 무슨 관계냐…….”

입술을 꼭 깨문 주화화가, 질문을 하며 빠르게 공격을 잇는다.

마현은 묵묵히 웃어 보이며 춤사위로 그런 그녀의 대답에 화답한다. 몽둥이를 휘두르는 주화화의 손길은 어느덧 점점 여려지고 있었다.

젊은 시절, 그녀는 이와 같은 상황을 수없이 겪었다.

‘거지에게 무슨 풍류(風流)가 있다고…….’

그리고 그때마다, 춤사위에 맞물려 함께 웃고 떠드냐고 소붕을 타박했었다.

직후로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행복한 미소를 그리며, 그 춤사위에 맞물려 무공을 펼쳤었다.

‘아아…….’

단 한 번도,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

그 당시.

인생에서 가장 즐겁게 빛났던 그 나날들을.

소붕이 무절곡 내부로 사라져 돌아오지 않았을 때는, 후회의 눈물을 한도 끝도 없이 쏟았었다.

‘미리, 미리 전할걸.’

자신의 진심을.

행복을.

소붕을 생각하는 그 마음을 한 번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사형…….”

이제는 마현의 모습이 소붕과 겹쳐 보인다.

그 천진난만하게 웃던 해맑은 얼굴이 그녀의 흐린 눈앞을 두둥실 떠다닌다.

먼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 * *

“네놈…… 무절곡에서 나왔느냐?”

한바탕 과거를 그리는 춤사위가 끝난 후, 감정에 복받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던 주화화가 뒤늦게 물어왔다. 마현은 굳이 그를 부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부정한다 하여도 들킬 수밖에 없었다. 천하에 소붕의 무공을 아는 이는 그 수가 적고, 완벽히 따라 펼칠 수 있는 인물은 마현 하나뿐이다.

“사형은…… 사형은 그곳에서 죽은 게냐?”

“…….”

마현은 이번 역시, 아무런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묻고는 있지만, 자신의 가슴을 도려 후벼 파는 행위일 뿐이다.

만약 소붕이 살아 있었다면, 그는 지금쯤 이미 개방으로 돌아간 뒤였을 테니 말이다.

“사형은, 사형은…… 행복하게 떠난 게냐?”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노쇠한 두 눈은 흐릿해질지언정, 감정을 쏟아낼 수가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느껴지는 감정이 옅은 것은 아니다. 지쳤다고 하여 그 애절함이 투명하지는 않다. 오히려 더욱 깊고, 진하다.

‘영감, 그녀는 아직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

자유를 꿈꾸었던 순박한 소붕이, 살아있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했던 여인. 주화화. 용두방주라는 신분이 아니었다면 그녀와 결혼했을 것이라 몇 번이나 말했던가.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이 힘들어, 강호를 떠돌았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또 어땠던가.

그랬다.

소붕은 분명, 주화화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나 끝내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용두방주라는 커다란 책임감을 어깨에 올린 소붕은, 더 이상 무언가 짐을 더 얹을 수 없을 만큼 지쳐있었다.

주화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엄청 후회했었지, 영감?’

오기 전에 주화화한테 고백이나 한번 해볼 걸 그랬다며, 박장대소하며 눈물을 흘렸었다. 그랬던 소붕의 그녀가 눈앞에 있다. 이야기 들은 그대로였다. 소붕보다 신장도 훨씬 크고, 가슴도 엄청나게 탱탱하다. 게다가 나이에 맞지 않게 엄청나게 예쁘다고 자랑했는데…….

‘틀린 말 하나 없구나.’

모두 소붕의 이야기대로였다.

거짓 한 번 말한 적 없단 사실에, 하늘에서나마 자부심을 느껴도 될 정도다.

“묻지 않느냐. 사형은, 사형은 행복하게 떠났느냐고 말이다.”

주화화가 마현을 채근했다.

한참을, 소붕에 대한 추억으로 마음을 적시던 마현이 끝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영감은 행복하게 떠났소.”

“웃기는, 웃기는 했고?”

“그 지옥에서도, 소붕 영감이 웃지 않았던 적은 없소.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그는 웃고 있었소.”

거짓말이다.

죽기 직전의 소붕은 눈물을 흘렸다.

죽고 싶지 않다고.

아직 더 살고 싶다며 슬퍼했다.

살 만큼 살기는, 옘병.

아직도 귓가를 울리는 소붕의 목소리다.

심지어 마현과 일행들은 그를 땅에 묻을 여유조차 없었다.

신체의 반 토막이 날아간 그는, 다음으로 이어진 마족의 공격에 뼛조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산산이 분해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아무것도 못 해주었다.

죽음의 순간.

분명 소붕은 슬픔에 잠식되어 있었다.

하나 주화화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편이 영감이 바라는 것일 테지?’

사랑했던 여인에게, 슬픈 죽음을 전하지 않는 것.

소붕은, 소붕스럽게 살다 죽었다.

하늘에 있는 소붕이라면 분명 이러한 결말을 원했을 터다.

“됐다. 그거면 되었어.”

그 바람대로.

주화화는 흐린 눈빛이나마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그녀의 기억 속 소붕은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간직한 소중한 사형이었다.

제십삼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