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一章)
야수문 사건으로, 아이들은 많은 것을 얻었다.
첫 번째는 경험일 터였다.
‘악의와 맞서는 일.’
아직 어린 나이의 제자들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일일 터였다. 한데 어렵지 않게 그 검은 감정을 이겨내고 싸웠다.
또한 스스로 벌인 일에 대한 책임이 어떠한 것인지 느꼈다.
강호, 아니 천하의 모든 일이 그렇다.
원한이란 것은 또 다른 원한을 낳는다.
한번 시작된 일은 마치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계속해서 크기를 불리며 더 큰 사건을 부른다. 그렇기에 일을 시작할 때는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그야말로 끝을 볼 각오.
그러한 마음가짐이 없다면 함부로 동정을 표해서도 안 된다.
‘셋째는 그야말로 우정이겠지.’
참 낯부끄러운 단어이지만, 세 제자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말은 없을 듯했다. 아닌 듯, 관심 없는 듯,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세 제자는 분명 친해지고 있다. 쏘아대기만 하는 정순욱, 묵묵한 소수린, 올바른 백산까지 모두가 서로를 크게 아끼기 시작했다.
중요한 부분이다.
‘인생에 있어, 진정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이를 하나만 얻어도 그 삶은 성공한 것이다.’
그만큼, 진심을 가진 친우란 얻어내기가 어렵다.
어린 시절, 함께 마음을 나누고 자란 죽마고우들 사이에서도 힘든 일이었다.
마현은 몇 번이고 생각했다.
‘내 제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그러한 진짜 친우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 이는 스승의 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보자면 이야말로 정말 제자들끼리의 문제라 할 수 있었다. 친구란 것이 그렇다. 억지로 붙여놓을 수도 없으며, 강제로 떨어트릴 수도 없다. 서로 간에 마음이 맞닿아야지만 형성되는 관계인 것이다.
이번 위기는 제자들 간에 그러한 맞닿음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함께 힘을 합쳐, 큰 사태를 이겨내며 얻은 발전이다.
‘믿기 잘했다.’
직접 손을 써, 혈전사견과 야차문을 청소할까.
한때나마 고민했던 마현의 입가로 웃음이 번졌다.
그야말로 믿기를 잘했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일도 있고 말이다.
이제부터 아이들은 조금씩 더 서로에게 가까워질 터다.
마현이 바라던 진정한 친우가 형성되는 것.
하나.
언제나 그렇듯 좋은 일에는 마가 끼는 법이었다.
* * *
호사다마(好事多魔).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귀여운 여동생, 마연으로부터 날아온 서신을 받은 마현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셋째 오빠가 혼수상태야.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대. 제발, 도와줘. 오빠.]
“감히…… 감히 누가 있어…….”
중원으로 돌아온 이후, 여유를 즐기며 살던 마현이었다.
그 어떤 다급한 일, 힘든 일이 있어도 결코 성급하지 말자 마음먹었다. 지나간 일에 후회를 두지 않고, 당장 삶에 최선을 다하자 생각했다. 어떤 일에도, 크게 분노치는 말자 했다.
하나 그 모든 것이 한 장의 서신에 의해 깨어졌다.
마현이 분노하자, 대기가 울었다.
천하가 떨었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세상이, 숨을 죽였다.
“……현 가가.”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구혜린이, 창백한 안색으로 힘들게 말문을 열었다.
“……미안.”
덕분에, 어느 정도 정신이 깨어난 마현이 피어오르는 살기를 억눌렀다. 이미 그의 경지는 살기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다. 자칫했다가는 옆에 있는 구혜린은 물론, 와룡서원의 제자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한참의 정적.
“정도맹(定道盟)으로 가야겠어.”
그 끝에 입을 연 마현이 말했다.
정도맹은 구대문파와 일방에 속하는 개방, 그 뜻에 동조하는 세력이 연합하여 세워진 현 강호의 중심이었다.
위치는 호북성.
아무리 마현이라 하여도 며칠 안에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래도 가야 한다.
가족, 동생이 죽기 직전이다.
서원의 운영도 중요하지만 동생의 목숨만큼 귀하지는 않았다.
결심을 한 후에는 곧바로 걸음을 옮겨 아이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하여 한동안은 너희들끼리 스스로 공부해야만 한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심려치 말고 다녀오세요.”
백산이 나서, 그런 마현의 짐을 덜어준다.
“고맙다.”
이후로는 곧바로 마정을 만났다.
“아버지한테는 비밀이다. 한동안 아이들을 부탁하마.”
“……걱정 마.”
동생이 혼수상태라는 말에, 마찬가지로 얼굴을 굳힌 마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은 구혜린.
“편히 다녀오세요.”
그녀는 직접, 마현이 없는 동안 와룡서원 전체의 담당을 맡았다. 이미 원시까지 합격한 제자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칠 수준은 못 되지만, 돌봐줄 수는 있다. 객잔 일에 급한 마정보다야 서원에 익숙한 그녀가 도움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부탁하지.”
직후, 마현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목표는 호북, 무한.
정도맹 본단이었다.
* * *
정도맹 본단 의약방(醫藥房).
온몸에 깊은 상처가 남은 마운은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연은 그런 마운의 큼직한 손을 양손으로 잡고 몇 날 며칠이고 기도했다.
‘제발, 제발 조금만 버텨줘.’
의약방주 공손찬(公孫澯)은 얼마 전, 앞으로 보름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말수는 적지만, 고지식한 부분이 답답했어도, 믿음직하고 듬직했던 마운을 싫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죽음 따위, 상상조차 안 했었다.
‘싫어…….’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자고 일어나면, 식은땀 흘리는 그녀를 옆에서 누군가가 놀리는 꿈. 악몽(惡夢). 차라리 그러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현실이다.
온몸을 휘감는 너무나 실감 나는 현실적 감각이 마연을 몇 번이고 바람에서부터 일깨운다.
“마연.”
그런 그녀의 등 뒤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왜소한 체구에, 큰 눈.
한 손에는 물잔을 든 공서하다.
“마셔.”
“……괜찮아요. 사저.”
마연은 그를 거부했다.
“이틀째야.”
그러자, 인상을 찌푸린 공서하가 화를 낸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벌써 이틀째, 공손찬의 사형선고를 들은 후 입에 음식도, 물도 대지 않고 있는 마연이었다. 그녀는 그저, 그저 양손만을 공손히 모은 채 천지신명께 빌었다. 마운을 향해 부탁했다. 버텨달라고. 마현이 올 때까지만. 그 못 하는 것 하나 없는 큰 오빠가 달려오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죽지 말라고.
간절함을 담아 끝없이 빌었다.
음식도, 물 생각도 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눈앞에 있는 마운의 얼굴뿐이었다.
“마연.”
다시 한 번, 공서하가 화를 낸다.
“…….”
하나 그렇다 하여도 마연의 마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기절시킬 거야.”
그러자 공서하가, 품에서부터 두꺼운 책을 꺼내 들며 말한다.
농담이 아니다. 계속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진심으로 기절시켜서라도 음식과 물을 먹일 터다.
“휴우…….”
이쯤 되면 마연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
목에 무엇이 넘어가는 감각조차 싫지만, 물이라도 받아 마신다. 본래였으면 청량감을 느끼게 할 시원한 물에는, 아무런 맛도 없다. 딱히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셋째 오빠는…….’
침상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한데 어떻게 자신의 입과 목으로 음식과 물이 넘어가랴.
감당되지 않는다.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눈물이 왈칵 치솟으려 했다.
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감정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왔어.”
그러던 차, 메아리치는 듯한 공서하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무슨……?”
의문은, 길게 이어질 필요 없었다.
“늦어서 미안하다.”
벌컥, 열린 의약방 문 앞.
환한 빛과 함께 들어서는 이의 얼굴은 그토록 기다리던, 마현의 것이었다.
* * *
“오빠…….”
마연의 울먹이는 읊조림에, 빠르게 걸음을 옮겨 마운에게로 다가간 마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분명, 안도의 한숨이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군.’
살아만 있으면 된다. 살아만.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되돌릴 수 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울먹이는 마연의 머리에 손을 얹어,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마현이 말했다.
“정말? 이제 진짜…… 안심해도 돼?”
큰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은 마연이 조금은 안도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누워있는 마운에 못지않은 수척한 인상인 그녀를 본 마현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다 괜찮을 거다.”
말과 함께, 오른손을 내뻗는다.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백결이다.
그 신묘하면서도, 특이한 형태의 내기에 공서하와 마연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백결이, 마운의 신체 내부로 스며들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에는 짧은 감탄도 흘렸다.
“아…….”
움직인다.
그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던 마운의 손가락 끝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직후로는 양미간이 찌푸려지고…….
“크으으…….”
입가로는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의식을 차리고 있는 것이다.
“오빠!”
마연이 그러한 마운의 손을 꼭 잡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되살아난다.
죽을 것이라 선고받았던 마운의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넘쳐흐른다. 그 놀라운 광경에 공서하는 난생처음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건…….’
대체 무슨 원리로 발생하는 힘일까?
그림을 그리려 하고, 본질을 꿰뚫어보려 하여도 알 수가 없다.
주인을 닮아 그런지 캄캄한 어둠과 같이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분명 백색인데…….’
알 수 있는 것은 그 힘이 생명의 기운이라는 것뿐.
‘어떻게…….’
알려고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만 늘어난다.
정말이지 볼 때마다 시선을 뗄 수가 없는 존재.
공서하가 빛나는 눈으로 그러한 마현을 직시할 때였다.
“크으으…….”
신음을 더욱 깊게 흘린 마운의 몸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상에 이어, 외상이 아물어 간다.
그 치료마저 끝났을 때는.
마치 기적과도 같이, 마운이 눈을 떴다.
“여, 여기는……?”
의문을 흘리는 목소리는 평소 그의 것보다 훨씬 더 거칠었다.
한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누워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오빠, 셋째 오빠.”
그런 마운을 보며, 마연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몇 날 며칠간 이어진 그녀의 바람이, 현실로 이어져 끝내 마운이 부활했다. 기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연이?”
마운은, 그런 마연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시점이 명확하지 않은 탓이었다.
‘내가…… 어떻게…….’
추격자들로부터, 간신히 탈출을 한 것까지는 기억에 남았다.
하나 그뿐.
끝내 호북으로 들어서지 못한 채 대로에서 의식을 놓고 말았다. 그때는 정말이지 최후를 예감했다. 머릿속으로 스쳐 가는 주마등에, 얼마나 큰 안타까움을 느꼈던가. 한데 살아남았다. 누군가 도와준다 해도, 힘들 것이라 여겼는데 대체 어찌…….
“큰 형?”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아 해결되었다.
시선의 초점이 맞춰지며, 마연의 옆에 선 마현의 얼굴이 보인다.
“큰형이 왔구나.”
“그래, 운아.”
이 믿을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상황도, 마현이 연계되니 쉽게 납득 되어버린다.
“하하, 큰형이 왔었어.”
그 사실에, 웃음마저 지을 수 있게 된다.
마현이 옆에 있다.
그것만으로, 마음에 안심이 깃든다.
어둡기만 하던 의약방 내에는, 더 이상 아무런 암흑도 닿지 않았다.
제십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