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章)
어느 순간, 현 내의 분위기가 변했다.
와룡서원을 벗어난 백산이 느낀 감각이었다.
‘정확하게는 서원 바깥만 나서면 공기가 달라지는군.’
착 가라앉은 긴장감.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곧이어 전쟁터가 될 법한 장소가 이러한 공기를 가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백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야차문인가?’
정순욱으로부터, 그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원래부터 방비야 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그때부터는 더욱 긴장했다. 정철영이 읽은 돈의 흐름이라면, 제법 일이 크게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서원 입구.
제자리에 선 백산은 눈을 감고 주변의 시선을 느끼려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그중에서 공기를 변화시키는 자.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인물을 찾는다.
‘하나, 둘…….’
백산의 아미가 크게 찌푸려졌다.
‘셋…….’
총 셋.
아니다.
‘넷!’
마지막, 은밀한 기척까지 잡아낸 백산의 온몸이 팽팽한 긴장으로 굳어졌다.
‘서원 내부로 돌아갈까?’
느낌이 온다.
하나, 많게는 둘 정도까지는 상대할 수 있다.
하나 셋이나 넷은 절대 무리다.
특히 네 번째 인물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말해 백산 본인보다 훨씬 더 강한 고수였다. 기척 역시 그가 은연중에 자신을 드러내 알아챈 것뿐. 마음먹고 숨기고자 했다면 끝까지 몰랐을 수도 있었다.
‘돌아가면…….’
현 내 전체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는데도, 와룡서원 내부만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 그 말은 서원으로 돌아가면 안전하다는 뜻이다. 바깥에서 지켜보는 시선 넷이 동시에 덤벼든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굳이 스승님이 나설 필요도 없이…….’
제자들 열 손만으로 충분하다.
그때야 느낀다.
‘와룡서원이야말로 진정한 성벽이로구나.’
서원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 그 무엇도 자신들을 해할 수 없다. 작기만 해 보이는 담벼락은 그야말로 두텁고 무너지지 않을 거대한 성벽. 백산은 마음만 먹으면 그 내부로 숨을 수 있었다.
‘하나…….’
그리 숨는다면 바깥에 남은, 울타리가 없는 친구.
서융은 어찌 된단 말인가?
그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여동생, 서혜는?
‘내가 자초한 일이다.’
백산은 그제야 깨달았다.
누군가의 일에 끼어든다는 것은, 끝까지 책임을 질 각오가 있을 때 해야만 한다. 어설프게 손을 써두면 지금과 같은 위기가 찾아온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야차문에서 헛짓을 하기 전에 쳐들어가 현판을 깨부수는 게 나을 뻔했다. 그편이 훨씬 더 깔끔하고, 안전했을 것이다.
하나 이미 늦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의 무게.
그 감각을 처음으로 어깨에 짊어지게 된 백산은 쓴웃음을 흘렸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동시에, 구제 활동을 통해 깨달은 사실을 행한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돌릴 수 없다.
후회는 변화를 만들지 않는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결심을 한 백산의 걸음이 앞으로 향했다.
서원에서 멀어질수록, 주변을 누르는 중압감은 훨씬 더 커져만 갔다. 쫓아오는 네 시선도 맹렬하게 살기를 키워간다.
‘대로 한복판은 안 돼.’
지켜보는 네 시선에서 느껴지는 것은 광기.
놈들은 백산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일반인들의 피해쯤, 신경도 쓰지 않을지도 몰랐다.
[따라오면 일은 얌전히 처리하도록 하지.]
고민하는 백산에게, 차가운 어투의 전음이 흘러들었다.
바로 옆 골목길,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흘린 것이다.
‘이게 혈향(血香)이란 건가?’
그러한 사내에게서부터, 짙은 피 내음을 느낀 백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비릿한 미소를 지은 날카로운 사내가 턱짓으로 골목 내부를 가리킨다. 백산은 그 뒤를 묵묵히 따랐다. 조금씩 동떨어져 있던 나머지 세 개의 시선이 빠르게 그 뒤를 따라붙는다.
일각 후.
백산이 도착한 곳은 커다란 창고 건물이었다.
야차문에서 비상시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식량 창고였는데, 혈전사견의 부탁으로 그 내부는 현재 텅 비워진 채였다.
“들어가지.”
이제는 전음이 아닌 음성으로 말한 혈전사견의 첫째 사냥개, 막영이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익-!
불쾌한 소리가 들리며 목조 문이 열린다.
백산은 묵묵히 그 내부로 들어섰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두운 창고.
그 안 깊숙이 들어선 순간.
쾅.
문이 닫혔다.
“생긴 건 진짜 애송이네.”
“그래도 똑똑한 놈.”
“죽이고 싶게 생겼어. 킥킥.”
창고 내부에는 어느새, 막영을 제외한 나머지 세 마리 사냥개가 모두 들어선 뒤였다. 백산은 그들을 노려보며 묵묵히 주먹을 들어 올렸다.
“문답무용(問答無用)이란 건가. 어린 친구가 제법 과묵하게 구는군.”
백산을 창고까지 안내한 막영이 묘한 시선으로 그런 백산의 몸을 아래에서 위로 훑었다. 열다섯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커다란 체구. 기초가 튼튼한 것이 분명한 단단한 하체와 안정된 기수식. 거기에 더해 굳은 얼굴과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
“좋군, 아주 좋아.”
자연스레 감탄이 흘러나온다.
입가로는 감출 수 없는 즐거운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돈을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황금이야말로 만고불변의 진리를 뜻하는 천하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니까. 한데 이제 보니 그렇지만도 않군. 백산이라고 했나? 고마워, 어린 친구. 이런 감각은 처음이야…….”
“진심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어지는 때!”
“돈, 상관없다!”
“혈전사견이라는 별호가 울겠구먼. 킥킥.”
성(姓)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가 같아 모인 네 마리의 사냥개가 함께 공감하며 울부짖었다. 처음이었다. 돈에 상관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어진 건. 이미 들은 바 있던 재능 따위와 상관없이, 백산의 눈을 본 순간 그런 감정이 온몸을 치달았다.
동시에 네 사람의 몸이 바람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백산은 그 순간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자신의 제공권을 극대화했다.
‘동시에 일곱!’
사람은 넷이지만, 사혈(死穴)을 노리고 들어오는 무구는 총 일곱이다. 검, 도, 창, 그리고 세 자루의 비수. 어느 하나 위험하지 않은 게 없었다.
‘봉을 가지고 나올걸.’
싸움을 시작하기 전, 창고에서 무기로 쓸 만한 것이 없나 확인했던 백산이 속내로 한숨을 내쉬었다. 봉이 있었다면, 이번 공격을 쳐내며 반격을 노릴 수도 있었을 터였다. 아직까지는 방심했는지 빈틈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맨손으로는…….’
파바밧.
공격을 피하는 건 가능해도 반격은 무리.
거리가 짧다.
“호오, 이것 봐라.”
“단순한 애송이가 아니란 거지!”
그 동작에 놀란 혈전사견이 다시 한 번 빠른 속도로 달려든다.
백산은 기회를 엿봤다.
‘조금 더.’
파바밧.
공격을 피하면서, 자연스레 거리를 줄인다.
반보(半步), 반보씩.
‘또 반 보…….’
쉴 새 없이 공격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조급해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 공격쯤.’
제한대련 때,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정순욱의 섬뜩한 일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침착하면 된다. 침착하게 거리를 좁혀…….
‘지금!’
와룡강림공의 일 권을 내뻗는다.
“헛!”
검을 휘두르던 이견(二犬), 표율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저 정면으로 내뻗어지는 주먹인데, 워낙 속도가 빨라 깜짝 놀란 것이다.
“채공, 피해라!”
막영은 그러한 표율 대신, 근접에서 도를 휘두르고 있던 채공을 향해 경고음을 보냈다.
알아챈 것이다.
‘처음부터 내가 노린 건…….’
커다란 도를 휘두르는, 비교적 둔한 움직임의 채공!
막영이 경고를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백산은 자세를 낮게 낮추고, 바닥을 짚어 다리를 길게 내뻗었다. 평균보다 큰 신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공간을 제어할 수 있게 도와 도를 내뻗고 있는 채공에까지 맞닿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툭.
“으어?”
경고에, 다급히 물러나기 시작한 채공의 발끝에 아슬아슬하게 백산의 다리가 걸린다. 큰 타격은 아니었지만 그 덕에 균형을 잃은 채공의 몸이 비틀거리다, 앞으로 무너졌다. 백산의 입장에서야 놓칠 필요가 없는 기회였다.
‘곧바로 땅을 짚고……!’
내려오는 채공의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등룡각(登龍脚)을 내뻗는다.
퍼억-!
“크어악!”
안면에 제대로 된 발차기를 맞은 채공이 핏물을 흘리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젖혔다. 백산은 그 기회조차 놓치지 않은 채 다음 공격을 이어나가려 했다.
“어디서!”
하나 그를 두고만 보고 있을 나머지 혈전사견이 아니다.
멀리서부터 날아온 휘율의 비수가 백산의 손목과 목을.
막영의 기다란 창이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칫…….”
결국 마무리를 하지 못한 채 거리를 벌린 백산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기회였는데.’
아직 방심하고 있던 차.
하나는 쓰러트려 놓아야 했다.
한데 충격은 주었을지언정, 끝내 눕히지는 못했다.
“이 재수 없는 노옴……!”
분노한 채공이 도에 내기를 일으키며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애송이 주제에 제법 잘 날뛰는구나!”
물러섰던 표율 역시 검기를 피어 올리며 달려든다.
‘저게 말로만 듣던 검기!’
무공의 고수들이 사용한다는 그 힘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백산이 다시금 반격을 준비했다.
“이제부터는 봐주지 않겠다!”
크게 외치는 막영의 창에도 서슬 퍼런 기운이 어린다.
쉽지가 않았다.
내기를 품은 검과 도, 창과 비수가 날아드는 것은 내기가 없던 무구들이 휘둘러 질 때와 격이 달랐다.
‘공간이…….’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줄었다.
내기가 형성되며 무구가 지배하는 공간이 더욱 늘어난 탓이다.
거기에 더해 혈전사견의 움직임도 더욱 체계적으로 변했다.
애송이라는 마음을 완전히 접고, 백산을 향해 최선을 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뒷걸음질만 치는 백산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져 갔다.
조금 있으면 막다른 벽이다.
그것이 느껴진 순간부터, 공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당장이야 어떻게든 피하고 있다지만…….
‘위험해.’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급박해져 갔다.
파앗-!
“드디어 잡았다, 요놈!”
처음은 옷깃이었다.
직후로는…….
“크윽!”
서슬 퍼런 내기가 피부를 훑고 지나간다.
허공으로 뿌려지는 핏물에 혈전사견의 두 눈이 더욱 매섭게 빛났다.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쿠와아!”
처음, 반격을 당해 망신을 산 표율과 채공의 공격은 다른 둘에 비해 몇 배나 거칠었다.
‘위험해.’
이제 진짜 조금만 있으면 막다른 길이다.
백산의 이마 위로는 자연스레 식은땀이 송골송골 베어 나왔다.
‘봉이라도 있었으면…….’
다시 한 번, 손에 익은 봉의 감각이 그리워진다.
그것만 있더라도 어찌어찌하여 기회를 노려볼 만할 텐데…….
턱.
‘끝인가.’
등 뒤에 닿는 딱딱한 벽의 감촉에, 백산의 두 눈이 질끈 감겼다. 더 이상 피할 공간이 얼마 없다. 어찌어찌 생명은 구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팔 한쪽쯤은 잘려나갈 각오를 해야 한다.
‘우선 그리해서라도…….’
팔 하나 없어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다.
독한 마음을 먹은 백산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 할 때였다.
쾅-!
쒜에엑-!
창고의 정문이 폭발하며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기다란 무언가가 막영의 등 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누구냐!”
본능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창대를 돌린 순간에는…….
‘길이 생겼다!’
백산은 틈새를 발견해 앞으로 나아간다.
서걱-!
“목봉?”
그 사이, 창날을 휘둘러 날아온 기다란 물건, 목봉을 벤 막영이 의문을 내질렀다. 뒤를 따라 들어선 것은 하나 아니, 둘의 신형이다.
“컥!”
속도가 어찌나 재빠른지, 가장 후미에 있던 휘율은 일격을 허락하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
그 사이, 빠른 속도로 나타난 두 인물을 확인한 백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순욱과 소수린.
각자 손에 봉을 든 두 사람이 창고에 나타난 것이다.
“미리 말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어디서 온 지 모를 강아지 네 마리가 피 냄새를 풀풀 풍기기에 쫓아와 본 것뿐이니 말이다.”
정순욱이, 그런 백산을 보며 차갑게 말한다.
동시에 한 손에 들고 있던 또 다른 목봉을 던진다.
이번에는 공격이 아닌 양도이니만큼,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백산은 그러한 목봉을 잡아채며 활짝 핀 미소를 그렸다.
“네 얼굴이 이렇게 반갑기는 처음이다.”
“……언제는 좋다더니.”
“뭐라고?”
“됐고…….”
언제나 그렇듯, 마주친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려던 때.
“와.”
봉을 정면으로 세운 소수린이 말했다.
“애송이 셋이서 뭘 어째 보겠다고!”
“기습에 성공했다고 기고만장하지 말란 말이다.”
“죽인다!”
“개자식들!”
그 뒤를 따라 혈전사견 넷이 동시에 아이들을 향해 덮쳐들었다.
“흥, 개는 누가 봐도 제 놈들이거늘.”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단 말이 있지.”
“……시끄러워.”
세 아이 역시 봉을 앞세우며 그런 혈전사견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수는 적지만 속도와 공간지배력, 초식은 아이들의 우세다. 그렇다면 싸움은 빠르게 결판이 나야만 한다. 한데 그게 또 쉽지만도 않았다.
파바밧.
쉴 새 없이 봉과 검, 도, 창, 비수가 허공을 오간다.
하나 단 한 번도 격전을 일으키며 불꽃을 튀기는 적이 없었다.
혈전사견의 의도가 아니다.
‘봉만 있으면 조금 더 할 만할 것 같았는데…….’
말 그대로 조금 더 나아졌다.
혈전사견의 무기에는 모두 내기가 흐르고 있어, 아무런 힘이 없는 목봉으로 부딪쳤다가는 애꿎은 봉만 베인다.
그렇다 보니 위협을 가하다가도 반격이 돌아오면 피할 수 없다.
승부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었다.
“하, 수가 늘었다 했더니 쥐새끼들이 더 는 것뿐이었구나!”
“피하기만 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우필도의 말이 옳았다.
백산의 무공은 분명 일류에 다다라 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다른 아이들의 무공도 비슷하다.
거기에 제공권까지 익혔으니, 혼자서도 잠시나마 혈전사견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 정도다. 하나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내기를 다루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검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지!’
혈전사견은 자신했다.
싸움이 계속되면, 승리는 그들의 것이다.
아이들은 피하는 것 외로는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만간 그 쥐새끼들이 개새끼들을 물어뜯을 테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봐.”
“말은 잘하는군!”
“말만? 무공도 너보다 잘할걸. 머리는 당연히 몇 배 좋고 말이야.”
“우오오!”
정순욱은 그 와중에도 혈전사견을 도발하며 눈치를 살폈다.
정면 대치가 안 되니, 빈틈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하나 혈전사견도 자그마치 일류 고수.
거기에 더해 수년간 함께 손발을 맞춰온 조직이다.
쉽게 허점이 뚫릴 리가 없다.
‘쳇, 우리도 내기만 다룰 수 있다면……,’
고민하는 정순욱의 머릿속으로.
[용천, 미룡, 기문, 완맥…….]
익숙한 목소리가 혈도의 이름을 읊는다.
동시에 세 아이의 시선이 빠르게 서로를 훑었다.
‘이건……!’
아이들의 눈빛이 말하는 바가 모두 같다.
직후 의심 없이, 내공을 목소리가 불러주는 혈의 방향으로 인도한다. 몸속을 치달리던 내공이 격전 중에 빠르게 움직이며 변환하여, 특성을 띤다. 그것의 마지막 종착지는…….
우우웅!
봉기(棒氣)다.
혈전사견과 같이 내기를 무기에 씌울 수 있게 된 세 아이의 눈이 빛을 내뿜었다.
“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갑작스럽게 쏘아져 나온 아이들의 내기에, 당황한 혈전사견이 잠시 혼란을 보였다. 자그마치 수재 삼인방이라는 소리를 듣는 세 제자다. 그 틈을 놓칠 리가 무방한바.
“하앗!”
내기를 잔뜩 머금은 봉을 동시에 휘둘러 적을 노린다.
“커거걱-!”
멀뚱히 서 있던 채공이 그 봉에 두들겨 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머리와 복부, 다리에 동시에 삼격(三擊)을 맞은 그는 더 이상 전투 불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놈들이……!”
이후로는 삼 대 삼의 격전이다.
파바바방-!
내기와 내기가 부딪치며 화려한 불꽃이 어두운 창고를 밝힌다.
승부는 이미 정해진 바와 마찬가지였다.
내기를 뽑아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숫자가 모자랐을 때도 대등한 상황을 유지하던 아이들이었다.
“이, 이럴 수가…….”
“우, 우리가…….”
“혈전사견이……!”
승패의 향방은 단숨에 기울어, 각기의 비명을 내지르는 나머지 세 마리의 사냥개를 쓰러트린다.
퍼버버벅-!
반항은 불가능했다.
압도적 우위!
“헉헉…….”
단숨에 혈전사견을 제압한 아이들의 입가로 거친 숨결이 흩어져 나왔다.
“말했지? 쥐새끼한테 물어뜯길 거라고.”
짜릿한 승리의 감각.
그 속에서 미소를 흘린 정순욱이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근데 스승님은……?”
자신들에게 무구에 내기를 흘리는 법을 알려준 목소리.
마현을 찾는 것은 백산의 두 눈이었다.
전음이지만 분명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전 목소리는 분명한 마현이다.
“……가셨겠지.”
소수린이 그런 백산을 보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모습을 보일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자리에 나타났을 터다.
하나 전음으로 내공을 사용하는 법만 일러준 후 사라졌다.
마치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아이들을 돕고 사라진 것이다.
“처음부터 보고 계셨던 걸까?”
“……아마?”
“뭘 그리 걱정해. 어차피 서원에 가면 계실 텐데.”
그런 둘의 대화에,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끼어든 정순욱이 콧방귀를 끼었다. 격전의 상황, 갑작스럽게 들려온 전음에 의심치 않고 내공을 움직일 수 있던 것은 음성의 주인이 마현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믿음직한 스승.
그의 얼굴을 떠올린 아이들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한데…… 순욱이야 원래부터 저런 성격이니 그렇다 치고, 수린이 넌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원래 저런 성격이란 건 뭐지?”
“……따라 왔어.”
“걱정돼서?”
소수린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서원 최고의 미녀께서 걱정해주셨다니, 이거 영광인걸.”
“저런 성격이란 게 뭐냐고 물었다.”
“아, 그나저나 말이지. 너희 둘. 기왕 도와주러 온 것 한 번만 더 거들어주면 안 될까?”
“어이, 곰탱이.”
“야수문이라고 인근에 설치는 흑도문파가 있는데, 가만히 내버려 두면 현 내에 계속 사건을 일으킬 것 같아. 도와줄 거지?”
“……응.”
“야, 백산!”
“좋았어, 그럼 마음먹은 김에 한 번에 정리하는 거다. 가자!”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백산이, 소수린과 함께 창고를 벗어난다.
멀뚱히 혼자 그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순욱은,
“난 안 가. 안 간다고 말했어!”
반항하듯 크게 외친 후…….
“빌어먹을, 곰탱이 녀석!”
창고 바깥을 벗어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그 날, 무명현 인근에서 자신만만하게 영역을 넓혀가던 야수문은 멸문당했다. 돈으로 목숨을 구걸하던 우필도는 양 손목과 발목이 부러진 채 내쫓겼으며, 어지럽던 무명현 내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세 아이가 함께 힘을 합쳐 이뤄낸, 그야말로 쾌거였다.
제십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