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章)
원시 이후, 정순욱과 정철영의 거리는 크게 가까워졌다.
이제는 정철영이 시간이 날 때마다 무명현에 들려 정순욱을 찾는다. 그리고 정순욱 역시 그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역시 부자는 부자랄까? 서로 솔직하지 못한 때가 더 많았지만 언제나 즐거웠다.
서로를 마주 보게 된 두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무명와룡 선생님은 대단도 하지. 너희들에게 글과 무공을 가르치시는가 싶더니, 이제는 빈민구제 활동이라니. 조만간 상단 내에서 선생님의 활동을 돕기 위한 물건과 사람들을 파견할 생각이다.”
“……딱히 필요로 하지 않을 겁니다.”
마현을 향한 칭찬에, 입술 끝을 실룩거린 정순욱이 곧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의미에서가 아니다. 어느 정도 마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괴물 선생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고?
상상도 안 된다.
아마 필요하다면 진즉에 스스로 준비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니냐.”
“혹시 모르는 일 따윈 없다니까요.”
“넌 그놈의 쏘아대는 말버릇 좀 고치지 못하는 게냐? 무슨 사내놈이 말만 하면…….”
정철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자 미간을 찌푸린 정순욱은 콧바람을 뿜으며 당당히 말했다.
“아버지 닮아서 그렇습니다.”
“그야 내 자식이니 당연히…… 아니, 그래도 나는 너처럼 그렇게 쏘아대지는 않는다.”
정철영이 황당하다는 듯 답하자,
“그럼 어머니 닮았나 보죠.”
여전히 당당하게 반박하는 정순욱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네 어머니가…….”
문제는 이 말이 꽤나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가 상단의 안주인, 백가영(白歌詠)은 젊은 시절 정순욱과 비슷한 말투로 정철영의 가슴에 줄곧 대못을 박고는 했다. 그러고 보니 마현의 밑에서 공부를 배우며 마음을 많이 갈고 닦은 정순욱이 아직도 저렇게 말하는 것은 분명 타고난 천성(天性).
제 어미의 피를 물려받은 게 분명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더군요.”
“너 아버지 앞에서 일부러 문자 쓰는 게냐?”
“……설마.”
피식, 하고 웃은 정순욱이 창문 바깥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만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벌써 해가 완전히 저물어 하늘이 컴컴해졌다.
더 늦으면 내일 아침 수련에 지장이 생길 텐데, 그는 정순욱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이 아비도 바빠서 빨리 가봐야 한다.”
정철영이 지지 않겠다는 듯 함께 자리에 일어선다.
그렇게 두 부자가 서로 안부 인사 한마디 없이 등을 돌리려 할 때였다.
“아, 참 순욱아.”
무언가 생각난 듯, 걸음을 멈춘 정철영이 정순욱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인근에 생겨난 야차문이라는 흑도방파에 대해 알고 있느냐?”
정순욱의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참, 삼류 허접 잡쓰레기 같은 문파 이름이군요.”
“알고 있냐고 묻지 않았느냐.”
“……처음 들었습니다.”
“흐음…….”
정철영이 묘한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답지 않은 애매모호한 분위기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최근 그들이 와룡서원을 주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다. 뭐, 큰일이야 있겠냐만은…….”
“와룡서원을 말입니까? 걱정 털끝만큼도 안 하셔도 됩니다.”
가볍게 콧방귀를 낀 정순욱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등을 돌렸다.
와룡서원에는 그의 스승, 마현이 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 괴물 마현이 지키고 있는 서원을 한낱 삼류 문파 따위가 어찌하려 한다?
‘자살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보라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큰 코만 다치고 엉덩이 불난 듯 달아나게 될 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음 편히 생각하던 정순욱이었다.
* * *
서원으로 돌아가는 길.
“제, 제발 이러지 말아주세요.”
“어허, 이러지 말기는. 다 서로 간에 원하니까 이러는 것 아닌가.”
“제발…… 제발…… 전 약혼자가 있어요. 흑흑.”
어두운 골목길에서부터 한 여인의 울음소리와 두 사내의 목소리가 동시에 섞여 나왔다. 마침 길가를 지나던 정순욱의 인상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요즘 현 내에 저런 잡쓰레기들이 많군.’
허접이라는 소리조차 아까운 말 그대로 쓰레기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스스로가 내다 버렸으니, 챙겨줄 필요도 없다. 그리 생각한 정순욱이 골목길 내부로 천천히 들어섰다.
“들리던 것보다 하나 많네.”
그곳에는 세 명의 사내가 한 명의 여인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이미 일이 어느 정도 벌어진 상태인지 찢어진 옷자락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네놈은 뭐야!?”
“쓰레기 청소부.”
정순욱의 대답은 간단했다.
“좋은 말 해 줄 때 가라. 피 보기 싫으…… 컥!”
그리고 그 간결한 답변만큼이나, 움직임도 빨랐다.
“요즘 잡쓰레기는 말도 할 줄 아는군.”
“이 미친놈이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좁은 골목, 품에 숨겨 두었던 칼을 꺼낸 두 사내가 동시에 달려든다. 한숨을 내쉰 정순욱은 벽을 짚어 허공으로 날아오른 후 단숨에 두 사내의 머리를 동시에 가격했다.
“커걱!”
“컥!”
“누구긴 누구야, 세상을 살 필요 없는 벌레 새끼들이지.”
순식간에 세 사내를 제압한 정순욱은, 공포에 떨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여인을 잠시 바라보다,
“더러운 옷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쓰러진 세 사내중 한 명의 옷을 벗겨 여인에게 건네주었다.
“가, 감사, 감사합니다.”
“인사는 됐으니까, 어서 가 봐. 시끄럽게 옆에서 우는 건 질색이다.”
“예, 예. 감사합니다!”
정순욱이 내민 옷을 겹쳐 입은 여인은 직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골목길 바깥으로 벗어났다. 정순욱의 차가운 태도에 기댈 생각조차 못 한 탓일 터다.
‘욕심이지.’
만약 여인이 그러한 행위를 취했다 한들, 욕심이라며 단박에 밀어냈을 정순욱인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네, 네놈…… 이 일대에서 우리 야차문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쓰러졌던 사내 하나가, 의식을 차렸는지 그런 정순욱을 향해 이를 갈며 말했다.
‘야차문?’
익숙한 이름에 잠시 멈칫하던 정순욱은, 불과 얼마 전 있었던 정철영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네놈들, 야차문이었냐?”
“큭큭……. 그래, 이제 와서 알게 되니 겁나나 보지? 네놈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컥!”
발길질을 차, 떠들던 사내의 입을 막은 정순욱이 고개를 내저으며 험악하게 말했다.
“난 쓰레기가 말 길게 하는 거 싫어해. 묻는 말에는 짧게만 대답하도록. 입에서 구역 내 나니까 말이지.”
“네, 네놈…….”
“억울해? 복수하고 싶다면 받아주지. 네놈들 같은 쓰레기 백이 몰려와도 무섭지 않으니 나를 찾고 싶으면 와룡서원으로 와라.”
마침 주시하고 있다 했으니, 위치를 모르지는 않겠지.
그리 생각한 정순욱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골목길을 벗어났다.
뒤에 남아, 고통에 신음을 흘리던 사내는 그런 정순욱의 말에 눈을 기이하게 빛내며 웃음을 흘렸다.
“크흐, 크흐흐…… 와룡서원. 네놈이 백산이라는 놈이었구나. 큭큭, 기대해라. 곧 우리 야차문에서…….”
“아, 진짜 더럽게 시끄럽네!”
퍽!
떠나는 것만 같던 정순욱의 발길질이 다시 한 번 사내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 * *
와룡서원으로 돌아온 정순욱은,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최근 현 내에 꼴 보기 싫은 쓰레기들이 늘어난 것은 야차문이라는 곳에 속한 녀석들 탓인 것 같다. 이는 지금까지의 경과를 지켜보면 대충 견적이 나왔다.
‘그리고 놈들이 와룡서원을 주시하는 이유는…….’
서원 자체에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산을 향한 것이다. 머릿속으로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다시 한 번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 곰탱이 자식, 알고는 있으려나?’
알 리가 없다.
‘아는 자식이…….’
태평한 얼굴로 다른 아이들과 웃고 떠들고만 있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아니지…….’
알아도 그럴 놈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혹시 모르니까 알려는 줄까?’
딱히 의리나, 우정 따위는 없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백산은 자신이 인정한 적수였다.
그런 백산이 한낮 잡쓰레기들에게 당하는 것 따위, 절대 원치 않았다.
‘당할 리도 없겠지만.’
세상일은 모르는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정순욱이, 백산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자연스레 백산 주변으로 몰려 있던 아이들이 거리를 벌린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성격에, 까칠한 말투 때문에 아직도 정순욱을 어렵게 대하는 탓이었다.
“어이.”
“……?”
불과 이 각도 되기 전, 마현과 의료봉사를 끝내고 온 백산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두 눈을 보아하니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곰탱이, 야차문 알지?”
“알기야 하지.”
백산의 눈매가 살짝 날카로워졌다.
처음 시장에 갔던 이후로 요 며칠간, 서융을 찾아온 야차문도 여럿을 직접 혼내주었다. 더 이상 현 내에 발길을 들이면 큰 욕을 볼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놈들이 너를 노리고 있다.”
“……그래?”
짐작은 하고 있던 일이다.
하나 크게 여의치는 않았다.
대충 알아봤는데, 문주가 이류의 초입에 불과한 무인이라고 했다. 나머지 문도는 숫자는 많지만 모두 삼류. 직접 안으로 쳐들어가 깨부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현 내에서라면 좁은 길목 등을 이용해 충분히 맞상대할 수 있다.
“아버지가 경고한 일이다. 그냥 허튼수작 정도가 아닐 수도 있어.”
정순욱이 가장 신경 쓰인 바도 이러한 사실이었다.
정철영이 의식했다.
이는 곧, 돈의 흐름이 있다는 말이다.
단순히 삼류문도들만 보고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칠지도 모른다.
“조심할게.”
정순욱의 말에, 백산 역시 제법 경각심을 느꼈는지 진중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흥…….”
그제야, 조금은 안도하는 정순욱이었다.
* * *
야차문.
기원이 뒷골목 조직이었던 그들이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조직의 운영은 장사다.’
야차문주, 우필도(雨必盜)는 계산이 빠른 사내였다.
또한 돈의 흐름을 보고 움직일 줄 알았다.
본래였다면 조직의 두목보다는 상인으로서 어울릴 법한 재능을 타고난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한 우필도의 말에, 뒷골목 조직 두목들은 코웃음을 쳤다. 조직 운영이 장사라니, 주먹 하나만 믿고 세력을 일군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스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 곧 우필도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돈의 흐름을 읽고, 그를 조종할 줄 아는 우필도는 주먹만 다룰 줄 아는 뒷골목 조직들의 자금줄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주먹 들고 싸우려 하여도 배가 든든할 때나 가능한 일.
갑작스럽게 자금줄이 끊기며 먹고 살 방안이 없어진 그들은 이를 갈며 우필도에게 쳐들어갔다.
하나 그 역시 돈의 힘 앞에 무력하게 무너졌다.
무림고수.
우필도는 돈을 들여 무림의 고수까지 초빙했다.
아무리 주먹만으로 먹고 살아온 왈패들이라지만, 기를 다루고 검을 쓰는 무림의 고수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그렇게 우필도는 뒷골목 조직을 하나로 흡수해, 야차문을 세웠다.
이후의 방법도 비슷했다.
적당하게 돈을 굴려 크기를 불린 후, 흐름을 만들어 상대를 말려 죽인다. 참지 못하고 검을 빼 들면 그들이 상대하지도 못할 고수를 초빙해 찍어 누른다.
황금만능주의다.
그러한 돈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운영!
장사!
향후 몇십 년이 흐른다면 가히 천하제일상가라는 황금세가와도 겨룰 자신이 있다. 우필도의 야망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 무명현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막내로 들였던 조직원을 구해내고, 이어서 보내는 야차문도마다 죄다 깨부순다는 백산이라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 처음에는 포섭하려고도 했다.
아무리 삼류 왈패라지만, 보내는 야차문도마다 부상 하나 없이 속속 내쫓았다고 한다. 한데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아직 어리단다.
심지어 서원의 학생이라니!
‘돈만 적당히 주면 구슬릴 수 있을 줄 알았지…….’
착각이었다.
요즘 돈으로 일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가끔 돈의 가치를 모르는 멍청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덕분에 피해는 더욱 커졌지만, 별 상관없었다.
‘언제든지 불러 모을 수 있는 삼류문도들 따위…….’
금전의 가치로 치자면 반 냥도 못될 이들뿐이다.
“하나 단죄는 해야지.”
결심을 한 우필도는 돈을 풀어 낭인을 고용했다.
그리하여 불러 모은 이들이…….
“애송이 하나를 처리하는 데 우리 모두를 불렀다고?”
“기가 막힐 노릇이군.”
“대형, 내기해서 지는 사람 혼자만 가면 안 됩니까?”
“그래도 돈 주는 사람 체면이 있지, 어떻게 그러나. 이 멍청한 셋째 형아.”
혈전사견(血錢四犬).
그 별호처럼 피 묻은 돈을 좋아하는 네 마리의 사냥개.
누구 하나 빠짐없이 강호에 내로라하는 일류 고수인 그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하하, 명성이 자자한 혈전사룡(血錢四龍)을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강호의 악당들이란 대개 그렇듯, 견(犬)이란 별호를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반면 용이니, 왕이니, 제(帝)니 하는 별호는 또 죽자고 좋아한다. 우필도는 언제나 그렇듯 웃는 얼굴로 고용한 낭인들을 맞이하며 그들을 띄워주었다.
“목표가 이제 고작 열다섯 먹은 애송이 하나라고 들었소.”
혈전사견의 첫째 사냥개, 막영(漠永)이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
“열다섯이라지만 저희 야차문의 문도 수십을 때려눕힌 놈입니다. 게다가 머리도 제법 좋다고 알려진지라…….”
“이깟 야차문이 별 대수라고. 반나절이면 다 썰어버리겠구먼.”
두 번째 사냥개, 표휼(漂譎)이 비릿한 웃음을 띠며 말한다.
우필도는 그 말에도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틀린 말도 아니니까.’
야차문.
한참 성세를 누리고 있다 한들 기껏해야 삼류 왈패들 몇 모아놓은 삼류 문파인 것이 사실이다. 혈전사견이 마음먹고 손을 쓴다면 반나절까지는 아니어도, 하루면 끝이었다.
‘아직까지는.’
하나 그도 향후 몇 년 안에 없어질 소리다.
돈을 이용해 수많은 무인들을 고용하고, 식객들을 불러모아 단단한 성채를 쌓을 것이다. 혈전사견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엄청난 초고수들로 말이다.
‘그때까지 얼마든지 거들먹거려라.’
어차피 최후의 승자는 마지막에 이기는 자다.
우필도는 그때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자존심을 굽힐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내기해서 지는 사람만 가자니까.”
“아, 세 형들 다 시끄러. 언제 우리가 일 할 때 애송이, 아닌 애송이 따졌다고 그래. 돈만 주면 그만 아냐?”
셋째 사냥개 채공(債公)과 넷째 사냥개 휘율(輝慄)이 동시에 말을 덧붙였다.
“뭐, 따지자면 넷째의 말이 맞지.”
그 말에 첫째 사냥개, 막영이 고개를 묵묵히 끄덕인다.
어차피 그들은 혈전사견이다.
돈만 있으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달려드는 사냥개들.
이렇게 투덜거리고는 있지만, 돈을 받기로 한 이상 일 처리는 똑바로 해줄 생각이었다. 우필도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기에 혈전사견을 고용하는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돈값은 한다. 애초부터 낭인 바닥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돈값’이다. 나머지는 모두 무의미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하, 역시 목숨보다 귀한 게 황금인 세상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우리가 굳이 우 문주 부탁이면 거절하지 않는 이유도 그 옳은 생각 덕이라니까”
표휼이 ‘크흐흐.’ 웃으며 즐겁게 답한다.
돈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다.
그는 이 자리에 모인 다섯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놈에 대한 정보는? 열다섯이라는 것 외에는 없소?”
“아…… 서원에 다니고 있는데, 원시에 합격했다고 합니다.”
“열다섯에? 천재로군.”
휘율이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다.
“와룡서원이란 곳인데, 그곳 제자들은 모두 그렇다더군요.”
“들어본 적 있어. 거기 애들은 다 똑똑하던데.”
채공의 말에 옆에서 휘파람을 불던 휘율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멍청한 셋째 형하곤 완전 다른데?”
그 도발에.
“그냥 와룡서원에 다니는 놈들 다 죽이면 안 돼?”
채공이 열 받는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서라, 돈 안 되는 일에 칼 쓰는 법 아니다.”
막영이 그런 채공을 말린 후, 다시금 우필도를 바라보았다.
“그 외로는? 사람 죽이는 데 붓놀림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오만.”
“추정 무위를 예상 중이기는 합니다만…….”
여태껏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우필도의 말이 잠시 늘어졌다.
“뭔데 그래. 그냥 시원하게 이야기해봐.”
표휼이 답답다 하는 듯 그런 우필도를 채근한다.
우필도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잠시 볼을 긁적이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약 일류 고수 정도로…….”
“뭐라 하셨소?”
“일류……!”
“머리 좋고, 무공도 잘한다!”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야. 분명 열다섯이라고 하지 않았어?”
혈전사견 넷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강호 전체를 따져보자면, 일류 고수의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다. 하나 약관 이하의 나이에서 뽑자면, 단언컨대 백을 뽑지 못한다. 열다섯 이하로 보자면 열도 나오지 않을 터다.
한데 그런 천재가, 고작 서원에 다니고 있다고?
강호에 나서면 당장 이름을 날려도 이상하지 않을 잠룡(潛龍)이?
“정보가 잘못되었을 확률은?”
심각한 표정의 막영이 물었다.
그들이 일류여서 더욱 잘 안다.
일류 고수쯤 된다면, 그들도 무작정 방심할 수만은 없었다.
칼에는 눈이 달리지 않았으니, 어지간하게 했다가는 넷 중 하나의 목이 재수 없게 달아날 수도 있었다.
“없습니다.”
우필도의 확언에, 막영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뿐만이 아니었다.
혈전사견, 네 마리 사냥개의 얼굴에 보기 흉측한 웃음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것참, 불쾌하면서도 즐거운 일이군.”
“될 것 같은 싹은 어릴 때 짓밟아야지.”
“죽인다, 죽여!”
“재수 없는 새끼, 죽여서 양팔과 양다리를 뜯어버린 다음에 까마귀들이 많은 산에 던져버리겠어. 킥킥.”
재능을 질시한다.
그리고 그러한 재능을 짓밟을 수 있는 기회에 기뻐한다.
“자, 가자 형제들아. 사냥 시작이다.”
백산을 노리는 사냥개들이 무명현에 퍼지는 순간이었다.
* * *
‘혈전사견이라…….’
무명현 내에 풀린 네 마리의 사냥개.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있었다.
‘처리할까?’
달이 떠오른 밤, 어둠 속에 묻혀 자신의 턱을 가볍게 쓰다듬는 이의 두 눈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오른다. 마음만 먹는다면, 일수에 네 마리의 사냥개를 찢고 야차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원 전체를 날려버릴 자신이 있다.
‘아니면 조금 두고 볼까?’
혈전사견은 일종의 시련이다.
그에게는 별것 아니지만, 그가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무거운 짐이 될. 넘어서지 못하면 죽고, 뛰어넘는다면 성장할 수 있다. 시련이란 언제나 사람을 성장시키는 촉매였으니 말이다.
‘조금 더…….’
결국, 두 눈에 피어오르던 붉은 기운을 거둔 사내가 시선을 돌렸다.
‘아이들을 믿어보자.’
와룡서원.
자신의 제자들이 잠든 장소를 멀리서부터 바라본 사내는 바랐다.
‘별 탈 없이…….’
큰 문제 없이 이 위기를 넘어서기를.
진심을 담은 바람이었다.
제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