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章)
시험이 끝난 뒤로 일 개월.
다가오는 여름을 앞둔 와룡서원은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제자 요청에 또 한 번 홍역을 앓았다.
[강서, 남가장의…….]
[태화에서 나고 자라…….]
[안휘의 남궁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야말로 천하 전역에서 서신이 날아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광동성 내에서 장원에서부터 삼등까지 모두 차지한 삼인방의 위용 외로도, 나머지 제자까지 합하여 도합 십인(十人) 모두가 원시에 합격해 버렸다.
그야말로 십 할의 합격률.
자식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치고 싶은 부모의 입장에서야 마현의 위용이 눈이 부실 수밖에 없었다. 좋다면 좋은 일이었다. 처음 서원을 세울 당시, 어찌 이름을 알릴까 고민했던 때에 비하자면 아주 행복한 상황이라 말할 수도 있었다.
하나 마현의 입장에서는 홍역과 다름이 없다.
‘열 명이 한계다.’
몇 번을 생각해도, 제자는 열이 한계다.
그나마 구혜린이 있기에 둘, 셋 정도 더 받는 것을 고려해 볼 수야 있지만 그리하기엔 또 와룡서원의 규모가 문제다.
‘소룡원도 가득 찼고…….’
열 명의 제자 중 여아가 셋, 남아가 일곱.
차라리 제자들의 성별이 모두 같다면 한 방으로 몰아넣어 어찌할 텐데, 이렇게 나뉘니 결국 소룡원의 방 두 개를 모두 쓸 수밖에 없는 입장.
무리다.
몇 번을 생각해도 제자를 더 받는 것은 욕심이었다.
‘지금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자.’
스승이란 것이 본래 그렇지만, 마현은 아이들의 글공부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딱히 무언가 특별한 행위를 하는 탓이 아니었다. 제자와 스승은 닮을 수밖에 없다. 거울이다. 마현이 행동하는 바를 보며 아이들은 생각하고, 또 닮아간다.
그래서 스승은 언제나 제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또한 잘못된 길을 볼 경우 바로잡아 주는 힘도 필요하다.
‘쉽지가 않아.’
벌써 마현의 손에, 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인생이 걸렸다.
그것을 생각하면 더욱 제자들의 숫자를 늘릴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이 모두 장성하여 세상으로 나간 뒤라면 모를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마음을 굳힌 마현이 붓을 들었다.
멀리서부터 서신을 보내온 이들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거절에 관한 답신이라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말 많은 가문에서 마현의 가르침을 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그에 모두 맞춰 거절하는 답신을 보내려면 일 개월 밤낮 동안 편지만 작성해도 시간이 모자랄 터였다.
적어도 일반적으론 말이다.
하나 마현의 경우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어디 보자.’
잠시 턱을 쓰다듬은 마현은 방 내부를 둘러 본 후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았다. 그것에 백결의 기운을 실어, ‘후.’하고 날려 보내니 바람에 떠밀려 내려간 머리카락이 점점 하나의 형태를 갖춰간다. 직후 사람,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현과 같은 모습을 한 인형들이 순식간에 다섯이나 만들어졌다.
‘오랜만에 분신술을 써보는군.’
분신술(分身術).
그 옛날 제천대성의 절기로 유명한 분신술은, 실제 주술사들 사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는 최상위 술(術)로 통했다. 그중에서도 제천대성이 사용한 것과 같은, 실체분신술(實體分身術)의 경우는 말 그대로 꿈의 주술. 수많은 술사 사이에서도 허황한 이야기라는 말이 많은 능력이었다.
‘한데 스승님은 그를 해내셨지.’
자신의 분신을 바라보는 마현의 입가로 절로 미소가 번진다.
눈앞에 각자의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서 있는 다섯 인형이 모두 실체분신이다.
일반적인 분신과 다른 점은 모두가 진짜라는 것과 각자 생각하며 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 실제로 마현의 힘을 일부나마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이었다.
‘아쉽게도 정도 이상 거리가 떨어지면 소멸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근접에서라면 얼마든지 부릴 수 있다.
“답신을 쓰자.”
마현의 말에, 다섯 인형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는다. 양손에 붓을 들고, 각자 다른 내용의 답신을 적어 내려가는 그 모습은 따져보면 기괴하기 그지없었으나, 효율적인 면만 보자면 분명 아주 훌륭한 형태였다.
글을 써내려가는 속도도 아주 빨라, 밤이 깊어질 즈음에는 모든 답신을 적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끝났군.’
마현이 그리 생각한 순간.
퍼버버벙.
작은 폭음과 함께 뭉게구름을 피어 올린 다섯 인형이 동시에 사라졌다. 허공에서부터 흩날리는 것은 얼마 전, 마현이 입김을 불었던 머리카락 가닥들뿐.
‘행동반경만 더 넓으면 훌륭하게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한데 그는 마현으로서도 쉽지가 않다.
연구가 필요한 일.
고민하는 마현의 기감에, 누군가 방의 입구까지 다가온 것이 느껴졌다.
커다란 덩치에, 순박하다 말할 수 있을 법한 정명한 기운.
‘산이로군.’
예상대로.
“스승님, 들어가도 될까요?”
바깥에서부터 백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다.”
마현이 허락하자,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선 백산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늦은 시간에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그리 신경 쓰지 말거라. 어차피 잠도 오지 않던 차이니. 그래,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게냐?”
백산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여졌다.
“의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두 눈은 강인한 의지를 품은 채 빛난다.
불과 몇 해 전, 백일이 술독과 과로에 젖어 쓰러진 이후 마음속에 머금었던 꿈. 당시는 아직 이르니 조금 더 뒤에 가르치겠다 말했던 마현이었다.
‘지금은…….’
생각을 하는 마현의 두 눈이 감긴다.
언제 그렇지 않았겠냐만은, 마침 제자들에 관한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백산이 찾아왔다. 여기서 마현의 말 한마디에 의해, 백산의 진로는 결정될 것이다. 나아갈 미래의 선이 그어진다. 스승이라 한들, 마현 자신이 그러한 것을 함부로 정할 자격이 있을까? 의문은 잠깐이다.
‘그것이 산이의 의지라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꿈이라면, 그를 돕는 게 옳다.
이 역시 이미 삼 년 전에 마음먹었던 바였다.
두 눈을 뜨고, 빛나는 백산의 두 눈을 직시한다.
“쉽지는 않을 게다.”
현재 백산을 비롯한 와룡서원의 제자들은 자그마치,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무공과 학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치고 있는 셈이다. 한데 백산은 거기에 더해 의술까지 익히려 한다. 한우물만 파도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힘든 세상에, 셋을 동시에 행한다.
힘들 것이다.
중간에 지칠 때도 있을 터다.
어느 한 부분에서 뒤처지기 시작한 순간,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마현은 많은 걱정을 담아 백산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하나 언제나와 같이, 든든하고 맑은 기운을 풍기는 백산의 모습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 이름과 같은 산(山).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산이 굳건하게 말한다.
목소리에는 웅혼한 기색이 어렸으며, 꽉 쥔 두 주먹과 강렬한 눈빛에는 의지가 깃든다.
‘영웅(英雄)인가…….’
그 모습에, 마현의 입가로는 절로 미소가 깃든다.
시대를 풍미할 영웅이 난다면 당연히 이러한 기세와 마음가짐을 머금어야 할 터다. 또한 힘들 것이라 말했지만, 백산이라면 충분히 해낼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내일부터 이보다 반 시진 빠르게 방으로 찾아 오거라. 의술 교육을 시작하겠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백산의 고개가 크게 숙여졌다.
* * *
그날 밤, 마현은 밤하늘을 보며 또 다른 전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성아현(成阿賢).’
신비문파 성류의문의 전승자이자, 마현에게 의술을 알려줬던 여인. 사실, 처음에는 성아현이 남자인 줄로만 알았던 동료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처음 마계로 들어섰을 때의 그녀는 남자 무인들이나 입을 무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었으며, 머리에는 영웅건을 꽉 둘러멘 채였다. 뿐만이랴? 여자라면 응당 솟아있어야 할 가슴마저도 붕대로 강하게 압박한 상태였다.
성류의문의 비술인 역용공으로 외모도 사내답게 가다듬고, 목소리마저 변조한 그녀가 여인임을 단박에 알아본 이는 두 스승뿐이었다.
‘알려주시지도 않았지만…….’
덕분에, 마현 역시 한참이나 성아현을 남성으로 오인한 채 함께 지내왔다.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마계의 악마들과 싸울 때도.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의 여성성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비밀을 알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기회였었다.
갑작스러운 마물의 습격에 동료들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던 상황, 마현은 다친 성아현을 등에 업고 도주를 시도했다. 정신력이 강한 그녀는 당시에조차 의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치료에 힘을 썼었지만,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끝내 마현은 목숨을 건 도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물들의 추적이 옅어졌을 무렵.
걸음을 멈추고 기척이 드문 동굴로 숨어들었다.
아직도 쫓아오고 있을 마물들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놈들은 인간의 향취에 예민하다. 당장 추격의 고삐가 풀어졌다 한들, 언제 미친 듯이 달려올지 몰랐다. 확신이 설 때까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아야만 하는 게 옳았다.
‘날 버리고 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성아현은, 참 냉정히도 말했었다.
하나 마현으로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상태로 계속 격하게 움직이면서 치료하는 정도로 나을 수 있는 상처가 아니다. 끝내는 죽는다. 버려두고 가도? 마찬가지의 결과밖에 남지 않을 뿐. 마현은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살리고 싶었다. 눈앞에서 매일같이 동료가 죽어 나가는 일상에 지쳤다 한들, 그래도 살아있는 한 버릴 수 없었다.
헛소리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상의를 거칠게 찢었다. 이미 성류의문의 의술은 마현 역시 어느 정도 전수받은 바. 혼자가 아닌, 함께 한다면 치료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그리 생각하며 한 행동이었다.
그때였다.
얼굴을 크게 붉힌 성아현이, 처음으로 ‘꺄악-!’ 하는 여성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몸을 반쯤 돌린 채로 가슴을 가리고 선 그녀는 굉장히 화가 난 듯한 얼굴로 당황한 마현을 바라보다, 끝내 한숨을 내쉬며 작게 읊조렸었다.
‘절대 비밀이야.’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의 복부에 난 상처를 향해 성류의문의 비기인 기공치료를 시도했다. 성아현 역시 직후로는 별말 없이 자신의 신체 회복에 최선을 다했다. 살아남기 위한 발악. 그 끝에, 마물들이 쫓아오기 전 치료를 끝낸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진짜, 비밀이다.’
그 말을 끝으로, 지친 성아현은 눈을 감고 바닥으로 쓰러졌었다. 기공치료에 전력을 쏟느라 힘이 다한 탓. 덕분에 역용술이 풀린 모습까지 보게 된 마현은 쓴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모자란 것 하나 없는 여인이, 어째서 성별까지 감추고 살아가다 무절곡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사연을 듣게 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중원의 밤하늘을 다시 보고 싶다고 그리 말했었지.’
하나 그런 그녀조차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중원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저주받은 마계의 땅에 몸을 묻었다.
‘보고 싶군.’
언제나 그렇듯, 두 스승과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릴 때면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 너무나 그리운 이름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마현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 중 일인인 성아현에게 전수받은 의술을 제자, 백산에게 전하려 한다.
‘잘 가르쳐서 보내마.’
훗날, 하늘에서 만난다면.
성류의문의 이름에 먹칠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될 테니 말이다.
* * *
와룡서원의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체력 운동을 한다.
이후로는 구결신공을 연마하고, 학문을 갈고닦는다. 원시에 합격한 아이들은 자신감에 더불어, 재미까지 붙여 더욱 열심히 글공부에 몰두했다. 늦은 오후에 시작하는 무공 수련에도 슬슬, 변화가 필요한 시점. 어느덧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과 투로(鬪路)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기반이 닦였다는 뜻.
이쯤이면 슬슬 무공의 완성을 향한 또 다른 과제, 초식을 연마해도 된다.
‘어떤 초식을 일러주느냐.’
문제는 바로 이것.
마현은 천하에 산재한 다양한 신공절학을 알고 있었다.
하나 신공절학이라 하여 모두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먹는 음식, 공부를 하는 방법 등도 그렇지만, 사람마다 체질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필요한 법. 어울리는 옷이 따로 있는 것과 같이, 개인에게 맞는 초식도 분명히 존재했다.
‘각자에게 다른 초식을 가르쳐?’
곧바로 고개가 내저어졌다.
어찌 보자면 가장 훌륭한 선택이지만, 여러 가지로 번거로운 부분이 많았다. 또한 제자들 개개인을 신경 써주려 하다 보면 어딘가에서 자신도 모르게 차별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로 인해 불만이 터져 나올 경우 역시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하면 모두에게 어울릴 법한 초식을 가르쳐야 하는데.’
천하에 있어 그러한 초식이 어디 있을까.
사람 열이란 숫자는 많지도 않지만, 결코 적지도 않다.
그들 모두에게 맞는 무공이란 절대로 없다.
없지만, 없으나…….
‘만들면 되지 않나?’
다른 사람은 안 돼도, 마현은 가능하다.
매일매일 보아온 열 명의 제자 모두에게 어울리는 무공초식.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오후 무공단련 시간이 지나간다. 이후로는 저녁을 먹은 후 자유시간이다. 본래라면 이때부터 마현 역시 개인적인 시간을 즐기지만…….
‘오늘부터는 아니지.’
이제는 백산이 찾아온다.
두 사제가 마주 앉아 또 다른 수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백산입니다.”
“들어와라.”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방 내부로 들어선 백산은,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마현을 바라본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행위에서부터 재미를 느낀다. 진정으로 배우는 이, 학사의 자세가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마현은 그런 백산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후.
“의술을 익히기 전, 먼저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
“어떤 것입니까?”
“네가 배울 의술의 근원, 성류의문에 관한 이야기다.”
성류의문에 관해 설명을 풀어놓았다.
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신의라 불리는 화타의 제자가 세운 성류의문은 내공을 기반으로 치료를 행하는 이른바 기공 치료술의 일인자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문파였다.
단순히 혈을 눌러 병의 상태를 완화하는 정도가 아니라, 혈에 정밀하게 필요한 만큼의 기운만 흘려 몸의 기운을 북돋고 병을 몰아낸다. 마현의 주술 스승이 만들어낸 백결의 원천에도 바로 이러한 성류의문의 비술이 섞여 있었다.
당연히 익혀야 할 부분이 일반적인 의술보다도 훨씬 많았다. 단순히 혈도의 위치와 이름 정도가 아니라 치료에 사용할 때 흘려야 하는 내공양의 미세한 조절 방식과 침을 통해 기운을 전달하는 방법, 거기에 더해 성류의문 특유의 내공 활용법까지.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기공치료의 방향은 틀어진다.
“익히기 어려우나, 익힌다면 가히 천하제일의 의술을 논할 수 있다.”
마현은 과거, 백산에게 말할 때 오다가다 익힌 의술이라 말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괜한 신경을 쓰게 하기 싫어서 한 말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성류의문의 전승자가 될 백산이, 자신이 배우는 의학이 얼마나 뛰어난지 몰라서는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분위기에, 더욱 굳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백산이 답한다. 언제나 그렇듯 믿음직한 모습이었다.
“또한 성류의문의 전승자가 됨에 있어, 꼭 지켜야 할 규율이 있다.”
말을 하는 마현의 머릿속으로,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하던 성아현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떤 것입니까?”
“첫째, 성류의문의 의술은 그 무엇보다도 구제에 우선한다.”
구제(救濟)란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돕는 일이다.
의학이 발달하며, 수많은 의술 활용법이 나왔다.
그만큼이나 의술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가진 인물들도 생겨났다. 누군가는 의술을 단순한 밥벌이 도구라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의술을 통한 무공의 단련을 말한다. 혹자는 이러한 의술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죽어 있는 존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 누가 뭐라 하여도 의술의 밑바탕은 분명한 활생(活生)이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의술.
그렇기에 구제를 먼저 말한다.
어려운 처지에 속한 사람일수록 목숨이 위험하고, 절박함이 높은바. 성류의문은 가장 의술의 근원에 가까운 도리를 늘 말했었다.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황금에 눈이 멀지 말 것.”
의술을 행하는 이에게도, 언젠가 선택의 순간은 찾아온다.
눈앞에 당장 죽을 듯 숨을 헐떡이는 가난한 이.
등 뒤로는 큰 부상을 입은 부자.
활생과 구제를 떠올린다면 당연히 첫 번째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란 것이 어찌 그리 쉽던가?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눈앞에 정작 황금이 떨어지면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운 바다. 세상에서 가까이할수록 무섭고 미혹되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황금이다.
배를 곯으면 사람을 치료할 수 없으니 돈을 무시하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하나 황금에 눈이 멀어 당장의 구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마지막 셋째, 의문의 비술을 비인부전 할 것.”
기공치료라 함은, 그야말로 기운을 다루는 데 있어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그러한 기공치료를 익힌 성류의문의 인물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딱히 주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죽은 시체를 되돌려 강시처럼 부릴 수 있음은 물론.
마음만 먹자면 역병을 심어버릴 수도 있다.
그야말로 끔찍한 저주가 중원 전역에 퍼지는 것이다.
하기에 성류의문은 비인부전을 외친다.
도리가 없는 자, 의술을 배울 자격도 없다.
언제나 활생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의문으로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꼭, 올바른 일에만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너를 믿는다.”
마현의 입가로 웃음이 떠올랐다.
* * *
일상(日常)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변함없는 똑같은 나날.
누군가는 이를 지루하다고 말하며, 타파(打破)를 외친다.
하나 그런 누군가에게조차도 일상은 소중하다.
일상이 깨어진다는 것은 일종의 몰려오는 격류에 휩쓸리는 것이다. 좌로, 우로, 불안정한 삶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나날이라 하여도, 일상은 더없이 귀중하다.
마현과 와룡서원 제자들의 일상 역시 그러했다.
변하는 모습 하나 없지만 소중하고, 아름답다.
눈에 띄게 확 변하는 모습이 없다 한들 발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노력하는 만큼 나아간다. 당장 의술을 배운 백산이 기공치료를 시도할 수 없다 한들, 그가 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현과 마주 앉아 매일 밤 구제와 활생에 대하여 전해 듣고, 그를 가슴 깊이 새긴다.
의원으로서 기본적인 마음을 갈고 닦는 일 역시 하나의 수련.
“내일부터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구제를 배운다.”
늦은 밤, 백산과의 의술 수업을 마친 마현이 말했다.
“실천…… 말씀이십니까?”
백산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되묻는다.
“내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마현은 은은한 웃음을 지은 채 그에 대한 답을 미뤘다.
백산의 의문은 오래 갈 것도 없었다.
곧바로 다음날.
두 사제는 저녁 의술 수업 때가 되자마자 짐을 싸 서원 바깥으로 나섰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아직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이를 아무런 말없이 가로지른 마현은, 단숨에 무명현을 벗어났다.
의문이 더욱 강해질 법도 한데, 백산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은 채 그 뒤를 따른다. 오전, 오후 고된 시간을 지났음에도, 힘든 표정 하나 짓지 않는다. 은근슬쩍 백산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마현이 더욱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눈에 작은 울타리를 가진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중향촌(衆香村)이다.”
“아…….”
짧게 감탄을 터트린 백산의 시선이 중향촌의 낮은 외벽 아니, 울타리를 향했다. 무명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중향촌의 이름은 꽤나 유명한 편이었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무명현 인근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
제대로 먹고 자라지 못한 아이들은 비쩍 곯은 데다, 마을에서부터는 이름과 같은 많은 향 대신 단 하나의, 악취(惡臭)만을 풍긴다. 그래서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붙인 별명이 오향촌(汚香村)이다. 백산 역시 열이 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중향촌에서부터 내려온 아이들을 놀려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를 떠올리니 자연스레 백산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린 시절의 치부가 떠오른 것이냐?”
그 모습에, 마현이 작은 미소를 그리며 묻는다.
“예.”
“나 역시 그랬었다.”
“…….”
백산은 조금 놀란 눈동자로 마현을 바라보았다.
못 하는 일 하나 없고, 언제나 높아만 보이던 스승이었다.
남의 치부를 드러내기보다는 그야말로 군자답게 자신을 숙일 줄 아는 사람으로만 보았다. 한데 자신의 부끄럽던 시절과 같은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나도 사람이다, 인석아. 하하.”
놀란 백산의 머리에, 가볍게 주먹을 쥐어박아 준 마현이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역시도 어리고 치기 없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란 것이 그렇지 않던가?
날 때부터 타고난 이는 없다.
나고 자라면서도 부족함이 많은 동물이 바로 인간이란 생명체다. 한데 마현이라고 어찌 달랐을까. 그 역시 어린 시절 중향촌의 아이들을 보며 오향촌 거지들이라고 많이도 놀렸더랬다.
“전 스승님이 신선(神仙)이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 마현의 옆으로 따라붙은 백산이 가벼운 농을 건다.
지내 온 시간이 많았지만, 서로 간에 대한 높은 벽을 가지고 있던 두 사제의 경계가 한층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마현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 하나 기분 나쁠 것은 하나 없다. 오히려 신이 난다 말할 정도로 마음이 즐거워졌다.
‘이런 게 제자와 가까워진다는 것인가?’
오히려 여태껏은 쓸데없는 벽만 쌓아오지 않았나.
지켜본다는 명목하에 너무 멀리서만 서 있었을 수도 있다.
마현의 머릿속에 또 다른 상념이 깃든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많군요.”
그러는 사이, 중향촌에 들어선 백산이 놀란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현 내에서 중향촌까지의 거리는 십 리를 조금 넘는 정도다. 당장 눈에 띄진 않지만, 가고자 하면 언제든 닿을 수 있는 곳. 그런 인근에 중향촌이 있었다.
한데 백산은 여태까지 중향촌 사람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알려 하지도 않았다는 게 옳은 말일 터다.
“무슨 생각이 드느냐?”
마현의 질문에,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느껴지는 표정을 지은 백산은 한참을 주춤대다 말문을 열었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을 떠올렸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
이리 가까운 곳에, 이러한 삶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떠올린 적이 없던 탓이라는 것은 변명이다. 알고자 한다면, 오향촌이라 불렀던 그 시절부터 알 수 있었다. 한데 외면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것을 직시하고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현 주변에는 중향촌과 같은 마을이 많다. 오늘부터 우리는 이곳으로 시작해, 여러 마을을 돌리며 치료봉사를 할 예정이다.”
마현은 복잡해 하는 제자를 보며, 즐거운 웃음을 그린 채 마을의 중심으로 향했다. 고민과 생각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지금 백산은 자신이 등잔 밑도 보지 못했단 사실에 자책하는 중이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떠올릴 것이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 그를 외면한 것은 나 역시 사실이지.’
따지자면 가장 나쁜 것은 마현, 본인일 지도 몰랐다.
오래전부터 중향촌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있었다.
당시는 능력이 없어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관리가 된다면, 저런 사람들을 구제해주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는 게 전부였다. 돌아온 마현은? 능력이 있었다. 관리가 되어 그들의 생활환경을 바꾸진 못할망정, 지금 마음먹은 구제 행위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나 하지 않았다.
‘마계에서의 영향이겠지.’
남 일이다.
내 주변의 소중한 것만 지키기에도 바쁜 나날을 살아온 마현에게 있어, 중향촌 사람들의 불행은 그야말로 타인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나선 것 역시, 백산에게 성류의문의 규율을 직접 전하기 위함일 뿐. 이러한 사건이 없었다면 결코 중향촌에 들르는 일은 없었을 터다.
‘활생이라…….’
그러고 보니, 성아현에게 성류의문의 기공 치료술을 전수받은 주제에 본인은 규율 하나 지키려 한 적이 없던 것 아니겠는가?
‘이번 일로서 짐을 조금 덜어야겠군.’
어쩌면 중원에 돌아간 김에, 구제 좀 하라며 하늘에 있는 성아현이 떠민 걸지도 몰랐다.
마현은 마음을 편히 먹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언제나와 같이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
지나간 과거보다 다가올 미래를 향해 노력한다.
마현은 자리를 펼치며, 엉덩이를 맞붙인 후로는 바로 옆에 직접 글을 쓴 명패를 세웠다.
무료진맥, 치료.
오랜만에 마을을 찾는 손님에, 마현과 백산의 행태를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던 중향촌 주민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의원이야?”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어디서 얼굴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웅성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하나 그 누구도 쉽게 마현과 백산을 향해 다가오지는 못했다.
무료로 진맥을 해준다. 분명 달콤한 제안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매혹적인 일에는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가난하고, 남들에게 억압을 받고 살아온 중향촌 사람들이기에 그러한 불행에 대한 경계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마현은 굳이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억지로 누군가를 치료하려고 끌고 오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
“어차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얼마 있지 않아, 용기를 낸 마을 주민 한 명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마현을 향해 다가왔다. 얼마 전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해 절름발이가 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샀던 청년이었다.
‘무릎의 관절이 완전히 나갔군.’
그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상처를 그대로 놓아둔 탓에 무릎 부근에 진물이 고이고 고름마저 피었다.
이 상태로 상처가 악화한다면 단순히 절름발이 수준이 아닌, 무릎 아래를 완전히 잘라 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앉으시지요.”
“크으…….”
마현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린 청년이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상처와 고름에서부터 발생하는 통증이 계속해서 일어날 터니,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설쳤을 터다.
“산아, 소독초(消毒草)와 소침(小針)을 주거라.”
“아, 예.”
며칠 동안, 마현으로부터 약초와 의술에 대한 지식을 얕게나마 전수받은 백산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현이 챙겨온 짐에는 다양한 약초와 약재, 그리고 종류별 침이 놓여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잘 찾아왔다.”
백산이 건네는 것을 흘낏 본 마현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약초들 사이에서 소독초를 따로 분류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한데 백산은 의술에 대해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빠른 속도로, 정확히 찾아왔다. 마현이 저녁 시간마다 알려주었던 약초의 종류에 대해 집중해서 경청했다는 말이다.
“아파도 참으셔야 합니다.”
“이미 오질나게 아픈데 뭘 또…… 아아악!”
소독초를 갈아, 그 즙을 짜내어 묻힌 새하얀 포단에 소침을 비빈 마현이 투덜거리는 청년의 고름을 향해 단숨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크으으……!”
고름이 터져나가며 내부 상처가 소독되는 고통에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청년의 인상이 쉴 새 없이 변화를 맞이했다.
‘여기서…….’
마현은 그 와중에도 침을 통해 성류의문의 비술, 기공치료를 시도했다. 단순한 소독이 아니라 재생의 효과를 더하며 고름이 뭉치며 생겨난 독성마저 빠른 속도로 잡아낸다. 침 끝으로 스며든 기운이 단숨에 상처 부위에 정화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크으으…… 끄윽!”
청년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동안, 진물과 고름의 상처와 독소를 모두 잡아낸 마현의 손길이 진중하게 움직였다.
“이번에는 더 많이 아플 겁니다.”
양손에 하얀 천을 맞댄 후, 청년의 무릎 부위를 잡은 마현의 손바닥에서부터 백결이 아닌 성류의문의 치료기공이 퍼져 나온다. 백산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곧바로…….
뿌드득.
“크아아악!”
완전히 엇나간 관절의 위치를 바로잡아 버린다.
청년은 이마 위로 식은땀을 흘리며 바락바락 소리를 내질렀다.
마현의 손길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을 굴린 후로는, 눈알을 부라리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미쳤어!? 지금 방금…… 어?”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을 시작한 사내는 곧바로 의문을 표했다. 엄청나게 아팠다. 정말 정신이 나갈 정도로 고통스러워, 치료고 뭐고 포기하고 일어나 욕을 내뱉었다. 한데 그러고 나니 걷기도 힘들었던 오른쪽 다리가 굳건히도 지면을 버티고 선다.
혹시 하는 마음에 몇 걸음을 옮긴 뒤에는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
“이, 이, 이거…….”
마현을 보는 두 눈에는 미안함과 고마움 등의 다양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더 이상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걷는데도 절름발이가 아니었다. 멀쩡히, 잘 걸을 수 있다. 한쪽 다리를 잃은 후 몸으로 먹고살던 놈이 앞으로 어찌 살아가나 걱정하며 매일 술로 보내던 차였다.
몇 날 며칠, 눈앞에 아른거리는 병든 어머니와 비쩍 꼴은 동생들을 생각하며 얼마나 괴로웠던가?
하나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털썩.
“제, 제가 감히 대인을 몰라뵙고 실수를 했습니다.”
무릎을 꿇은 청년은 머리를 조아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방금 막 치료가 끝난 상태입니다. 무리해서 움직이다 보면 다시 증상이 재발할 수 있으니, 몸을 아끼셔야 합니다.”
마현은 한숨을 내쉬며, 그런 청년에게 다가가 어깨를 부여잡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눈앞에는 조금 전까지 길길이 화를 내며 욕을 하던 사내는 없었다. 눈물과 콧물을 짜내며 감격의 기쁨을 표현하는 순박한 청년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눈물을 곧바로 훔친 후,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어머니……!’
직후로는, 침상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부릅뜬다.
아직,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 후에는 곧바로 집을 향해 뛰어갔다.
무리를 하지 말라는 마현의 말은 이미 귓등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시름시름 앓으시며 죽을 날 만을 손꼽고 계시는 어머니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자, 그럼…….”
그런 청년의 다급함을 느끼며, 가볍게 고개를 내저은 마현이 다시금 자리에 앉는다. 이후로는 묵묵히 기다릴 틈도 없었다.
“저, 저도!”
“선생님!”
“아이고 의원 어르신!”
지켜만 보고 있던 몸이 아픈 환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자자, 천천히. 줄을 서세요. 오늘만 날이 아닙니다. 매일 시간을 내서 올 테니…….”
마현과 백산은 그러한 환자들을 진정시키느라 한참이나 애를 먹어야만 했다.
제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