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서로서로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고는 하나, 어느 하나 부족한 답은 없었다. 원시 감독을 보는 시험관이라면, 그 어디에도 큰 무게를 두지 않을 정도의 해답들. 마현의 칭찬에 한결 더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 아이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긴장도 풀렸으니, 하룻밤 정도는 그야말로 푹 잘 수 있을 터였다.
‘방해꾼만 없다면 말이지…….’
늦은 밤.
잠이 안 온다며 방을 찾아온 구혜린을 막 안은 뒤였다.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를 만끽하며, 머리카락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과 체온으로부터 전해지는 편안함에 휴식을 취하고 있던 마현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오랜만에 정말로 기분이 안 좋아.’
구혜린과의 시간은 그야말로 안식이었다.
몸을 비롯해 마음마저 편안함을 만끽한다.
품에 안은 그녀가 색색거리는 숨결을 내뱉으며 잠이 든 뒤로는, 저도 모르게 따뜻한 미소를 흘리고 만다.
그 감각이 좋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감정에 매료되는 중이었다.
한데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장원의 담을 넣는 네 개의 기척.
그중에서도 셋은 마현이 낮에 뿌려놓은 흑결의 기운이 여실히 느껴지는 놈들이었다. 그러니, 목적이야 물을 것도 없었다. 고민하는가 싶더니, 결국 마현의 세 제자도 놈들의 목록에 포함된 것이다.
‘가지가지로 신경을 거슬려.’
조심스레, 구혜린이 깰까 염려하며 팔을 빼던 마현의 몸이 흠칫 떨렸다.
품에 안겨 있던 그녀는 어느새 두 눈을 뜬 뒤였다.
“……깼어?”
마현이 묻자,
“자주 잊으시나 본데, 저도 무공…… 제법 한다고요.”
혀를 쏙, 빼 내밀며 귀엽게 웃은 구혜린이 몸을 일으켰다.
덮고 있던 이불자락이 쏟아져 내리며 그녀의 새하얀 나신을 드러낸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매료될 것 같은 그 모습에, 마현은 저도 모르게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불과 한 시진 전에도 보았던 모습인데, 정말 구혜린의 몸에는 무슨 마력이라도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땡, 정신 차려요. 애들 위험해지겠어요.”
배시시 웃은 구혜린이 검지를 들어 그런 마현의 콧잔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침입자들이 들어선 것을 느꼈지만 그리 다급한 느낌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마현이 옆에 있으면, 그렇게 되고 만다. 너무 편안하고 안락해서 긴장감이란 것 자체가 옅어져 버린다.
분명,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닮아 있었다.
“금방 다녀올게. 쉬고 있어.”
마현이 웃으며 몸을 일으킨다.
“안 도와줘도 괜찮겠어요?”
구혜린이 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마현의 반문에는, 귀엽게 웃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설마요. 열심히 일하고 와요. 저는 여기서 다른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까요.”
몇 번의 관계를 거치며 제법 능글맞아진 구혜린의 말에,
“기대하고 있을게.”
마찬가지로 장난스레 답하며 옷을 갖춰 입은 마현의 신형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 * *
본래 마현의 세 제자는 장삼과 그를 따르는 흑천맹 인물들의 계획에서 제외되어 있던 인물들이었다. 제법 눈에 띄는 특징을 지닌 데다, 정가상단이라는 꽤나 큰 울타리 내부에서 지낸다는 곤란한 상황 탓이었다.
한데 그 계획이 변경되었다.
시험이 끝난 후, 채점을 메기는 감독관들을 감시하던 중, 세 아이의 이름이 유독 많이 거론된 탓이었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합격 후보자다.
또한 이름이 많이 거론된다는 것은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 어떻게든 황궁에 빨리 인원을 집어넣고 싶어 하는 맹의 입장을 떠올린다면 조금 과감하게 움직일 필요도 있었다.
‘정가상단 정도쯤이야 큰 문제도 아니고 말이지.’
광동성 내에서 제법 이름이 드높은 상가이기는 하지만, 어디 권문세가에 연을 걸치고 있지는 않다.
구대문파쯤 되는 대문파와 연관을 맺고 있었다면 또 차라리 곤란했을 텐데, 그도 아니다. 마음먹고 일 한 번 저지르기에는 나쁠 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별 탈은 없을 것 같군.’
세 수하를 보낸 후, 담장 뒷벽에 등을 기댄 장삼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큰 문제는 없다지만, 그래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정가상단이다. 어디서 고용한 쓸 만한 무사 하나 있을까 싶어 함께 잠입했는데, 아무래도 직접 움직일 일은 없을 듯했다. 세 수하가 장원 깊숙한 곳에 들어설 때까지도 느껴지는 별 기척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 느낀 순간이었다.
“음……?”
가장 선두에서 움직이던 수하의 움직임이 멎었다.
눈동자를 한 번 깜빡인 뒤에는, 세 수하의 기척이 모두 사라졌다.
‘무슨……?’
의문을 느끼며 다시 한 번 눈을 깜빡인다.
불길한 예감에 등을 돌려 지면을 박찼다.
아니, 박차려 했다.
“느려.”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장삼의 눈앞을 거대한 신형이 가로막는다. 불빛이 번쩍인다 싶은 순간에는 왼쪽 가슴에 휑한 구멍이 뚫린 직후였다.
‘괴, 괴물…….’
장삼은 마지막 쓰러지는 순간까지, 눈앞의 상대를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는 흑령이다. 맹 내를 분할하고 있는 오대세력 중 흑암성(黑暗城)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 그런 그가 상대의 손짓조차 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흑암성을 아니, 맹 전체를 뒤져보아도 이러한 초고수는 몇 없다. 그러고 보니, 최근 광동성 내에서 맹의 일이 꼬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상치도 못할 고수의 동향이 감지된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는데…….
‘운 한 번 지지리도 없지.’
이리 마주칠 줄이야.
마지막 죽음의 순간, 입가로 미소를 그리며 쓰러진 장삼의 영혼이 허공을 향해 솟구쳤다. 승천(昇天)이다. 장삼의 영혼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나마 고통 없이 죽은 것이 다행인가.’
하지만 그 역시 착각.
영혼체를 옭아매는 검은 기운에 승천하던 혼령은 지상으로 내려앉는다. 육신이 없기에 파장도, 충격도 없지만 장삼의 영혼은 괴로움에 떨어야만 했다.
‘아, 안 돼……!’
하늘 위로는 눈 부신 빛이 번뜩이고 있다.
지금 저 빛을 놓치면…….
올라서지 못하면 그의 영혼은 영멸(永滅) 당한다.
그럴 순 없다. 죽음보다도 더욱 두려운 현실이 장삼의 영혼 전체를 갉아먹으며 지독한 고통을 자아냈다.
“몇 가지만 순순히 답해주면 보내 주마.”
그런 장삼에게, 차가운 목소리가 건네졌다.
장삼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이 아는 바를 토했다.
검게 물들었을지언정,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발악이었다.
* * *
‘이번에야말로 뿌리를 뽑을 수 있겠군.’
어두운 밤하늘.
흑운(黑雲)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검은 기운의 실타래, 그 위로 올라선 마현의 눈이 흉흉한 빛을 내뿜었다. 이번에 사로잡은 네 영혼. 그들 중 셋은 여태까지와 다를 바 없는 별것 아닌 꼬리들이었다. 하나 한 놈은 달랐다.
‘흑령이라고 했던가?’
놈은 흑천맹 내에서도 제법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구절마제라 불리던 주제에 이용만 당하던 태거악보다도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덕분에 이곳 광동성 내에 위치한 흑천맹 지부, 정확하게는 흑암성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남곤산(南昆山).
성도 광주에서 북서 측으로 말을 타고 달릴 경우 삼일 정도면 닿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광동제일봉(廣東第一峰)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장소였다.
하나 그는 어디까지나 광동성에서만 불리는 이름일 뿐.
중원에 산재한 산악에 비하자면 위용이 적은 남곤산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니, 실제를 따지자면 이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몇 년 전부터 남곤산의 정상, 천당정(天堂頂)에 자리를 잡은 흑도문파 흑월도문(黑月刀門) 탓이었다.
현재 흑월도문은 남곤산의 지배자였다.
주 업무는 남곤산을 찾는 관광객들과 인근에 위치한 객잔주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일. 삼류 왈패나 다를 바 없는 행패를 일삼으면서도 그들이 남곤산의 지배자라 불리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빠른 눈치와 끈질긴 생명력. 그들은 남곤산 인근에 위치한 강대 흑도문파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 능통했다. 상납금은 물론이요, 영 못하면 문주가 직접 나서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행패를 일삼아 납치한 여자들을 가져다 바치는 일도 수두룩했다.
그 덕에 남곤산 일대의 지배력을 인정받는다.
흑월도문을 하나의 지부쯤으로 취급하는 인근 강대 흑도문파들 사이에서는 나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흑월도문이…….’
흑천맹의 오대세력 중 하나, 흑암성의 본점이었다.
이류 중에서는 제법 칼밥 먹어준다는 문주, 흑야월도(黑夜月刀) 양천악(洋千岳)은 실제로는 화경의 경지를 월등히 넘어선 초인이며, 그 밑에 있다는 백인의 삼류 문도와 식솔 등은 최소 일류를 넘어선 고수 집단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중에서 장로 혹은 호법으로 뽑히는 인물들은 죽은 장삼과 같이 흑령이라 불리며 최소 초절정에서 심하게는 화경 초입의 경지다. 이쯤 되면 가히 구대문파나 사대흉가에 못지않은 엄청난 무력 집단.
그런 단체가 흑천맹의 오대세력 중 하나일 뿐이다.
‘이거 정말 생각보다 일이 크네.’
흑운을 타고, 단숨에 천당정 하늘 위로 도착한 마현이 가볍게 혀를 찼다. 이런 집단이 최소 넷 이상 더 있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마음먹고 봉기하고자 한다면 강호를 뒤집고도 남을 세력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엄청난 덩치를 아직까지 들키지 않고 숨어 있다.’
새삼스레 흑천맹주란 인물의 얼굴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이를 감추는 것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건 그거고…….’
벌어진 일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흑운 위에 올라서 흑월도문 아니, 흑암성의 장원을 쳐다보는 마현의 두 눈에 고민이 어렸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그냥 조용하고 은밀하게 일을 끝내느냐, 아니면 화려하게 흔적을 남겨 흑천맹에 경고를 전하느냐.
‘당장 편하기야 전자가 좋지만…….’
훗날을 생각하면 후자가 낫다.
결심을 한 마현의 온몸에서부터 적결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붉은색 실타래가 풀려나오듯 흘러나온 힘은, 조금씩 실체화되어가며 마현의 옷자락을 들썩인다. 곧이어 권능은 바람이 되어 머리카락마저 들어 올린다. 검은 하늘은 노을이 지는 듯한 적색으로 물들고, 눈을 부릅뜬 마현이 내민 우수(右手)를 향해 천천히 몰려들기 시작한다.
“흐으읍…….”
가속의 시작은, 마현이 크게 호흡을 들이킨 순간이었다.
쐐에엑-!
바람이 갈라지는, 대기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던 기운들이 마현의 오른손으로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뭉쳐 들었다.
파지직, 파직.
급속도로 몰려든 기운들은 서로 상충하고, 상응하며 뇌전음을 만들어낸다. 자칫 조금만 실수를 해도 커다란 폭발을 일으킬 괴력(怪力).
그를 오른손만으로 제어하여 하나의 형태, 대검(大劍)을 만든 마현의 눈이 붉게 빛났다.
지면에서는 격렬한 기의 흐름에 깜짝 놀란 흑암성의 무인들이 뛰쳐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하늘을 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놀란 표정으로 검을 집어 던질 준비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마현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든 것일 터다.
하나…….
“너무 늦었어.”
마현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동작이 커지며,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는 척마(斥魔)의 대검 역시 그 덩치를 불려 나간다. 목표, 흑암성의 마병(魔兵)들을 향해 겨눠졌을 때는, 이미 그 크기가 광동제일봉이라 불리는 남곤산에 못지않을 정도였다.
카가가강.
마현을 향해 허공으로 치솟던 수많은 검이 척마의 대검에 부딪혀 허망하게 부서지며, 깨어지며, 튕겨 나간다. 지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허망하고 나약한 존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죽음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
중심에 선 인물이, 입술을 크게 벌리고 침을 늘여가며 발악하듯 외치고 있지만 그 역시 무의미했다.
카가각.
제일 먼저 천당정의 지면이 갈라지고.
우르르.
뒤를 이어 담벼락이 무너졌다.
막아서기 위해 뛰어드는 무인들의 몸이 기운에 휩쓸려 흔적도 남지 않은 채 소멸한다. 세상에 벨 수 없는 것 없다는 무적의 강기조차 하늘 아래 가장 패도적이라는 적결의 기운이 응집된 척마의 대검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모두 죽는다.
부서진다.
달아나려 등을 돌린 이들은, 척마의 대검이 만들어내는 폭풍에 휩쓸려 부나방이 된다.
“개자시이이익!”
중년의 사내가, 마현을 향해 오열하듯 외쳤다.
콰과광.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때 흑월도문이라 불렸던 장원은 한일(一)자로 새겨진 거대한 상처에 이등분 되며 몰락했다.
‘생존자는…….’
기껏해야 대여섯 정도.
운이 아주 좋은 인물이거나, 흑암성 내에서도 가장 실력이 뛰어나 마지막까지 적결이 내뿜는 격류에 휩싸이지 않았던 이들. 마현은 적운에서 뛰어내려, 그 중 첫 번째 목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이미 척마의 대검이 내뿜는 기운에 휩쓸려 큰 상처를 입은 채였다.
말 그대로 살아만 있는 상태.
‘빨리 끝내야지.’
단숨에 목을 벤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도 다를 바 없었다. 모두가 죽어가기 직전의 반 시체들뿐. 마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의 목을 취했다.
하나 마지막, 여섯 번째는 달랐다.
“네놈…… 네놈……!”
비록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로 칠한 갑옷을 입었을지언정. 두 다리로 지면을 지탱하기 힘들어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으면서도. 쓰러지지 않은 중년인은 마현을 향해 적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반 시체가 아니다. 내버려 둔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을 정도. 마지막 순간, 마현을 향해 욕지기를 내뱉으며 척마의 대검을 향해 뛰어들었던 중년 무인이었다.
‘아무리 광역을 노린 형태였다고는 하나…….’
척마의 대검과 직면하여 이 정도라는 것은 분명 엄청난 일. 중년인이 누군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네가 바로 흑월문주, 아니 흑암성의 주인이겠군.”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런 짓을……! 우리의, 나의 삼십 년 노고를 하룻밤 사이에 날려버린단 말이냐……!”
두 눈을 붉힌 흑주, 양천악은 오열하고 있었다.
굳건히 일구어 온 성을 잃은 그는 절망하고, 분노하며, 마현을 저주하고 있었다.
마현의 입장에서는 허탈한 웃음이 나올 일이었다.
“너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용서치, 용서치 않겠다.”
끄그극.
이를 갈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검을 겨눈 채 마현에게 다가온다.
‘정말이지…….’
이래서야 마현이 천하에 다시없을 악당이 된 듯한 기분이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도 마음의 변동은 없다.
그 끈질긴 모습에 감복하여, 뒷일을 도모할 기회를 줄 생각도 없었다.
마현의 선택은 첫 번째에서, 다섯 번째 생존자를 벨 때와 다름이 없었다.
“내가 나쁜 놈이 될 수도 있지만…….”
파앗.
마현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진다.
슈웅-!
놀란 양천악의 검은 허공을 가르고,
털썩.
육신의 무게를 지탱치 못한 무릎이 지면에 떨어진 순간에는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 차 두 눈을 부릅뜬 목이 하늘로 솟구친다.
“너는 나보다 더 나쁜 놈이지 않냐. 그러니 우리 너무 사연 있는 척하지 말자.”
마현은 그런 양천악의 시체를 보며 냉정히 등을 돌렸다.
잘려나간 목의 단면에서부터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붉은 핏물이 하늘에 뜬 달을 반으로 가른다.
“보고 싶네.”
마현은 그러한 하늘을 보며, 작게 읊조린다.
과한 살인을 한 날이라 그럴까.
유독 조금 전까지 안겨 쉬고 있던 구혜린의 품이 그리웠다.
제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