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15화 (16/83)

(第二章)

유괴 사건 이후, 일행들의 여정은 별 탈 없이 광동성의 성도인 광주(廣州)로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은 처음 혹은 오랜만에 오는 광주의 모습에 흥분과 기대가 반쯤 섞인 표정으로 연신 환호와 감탄을 토했다. 거리에는 무명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인파가 줄을 지어 돌아다녔으며, 건물의 크기도 훨씬 더 큼직큼직했다.

그것만으로 두 눈이 빠질 지경인데, 여기저기서 판매하는 물건들마저 본 적이 없는 종류다.

게다가 객잔의 수는 뭐 그리 많고 내놓은 요리도 그리 다양한지…….

“별천지, 별천지(別天地)네…….”

백산이 내뱉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두 눈동자는 정신없이 흰자위를 굴러다닌다. 정말 어느 것 하나 신비하지 않은 게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

묵묵히 마현의 뒤를 따르고 있는 소수린이라 하여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또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침착함 덕에 큰 티를 내지는 않고 있지만, 굉장히 감격한 표정이다.

‘성도에 처음 와본 것은 아닌 듯하군.’

신비하다기보다는, 알 수 없는 감격과 아련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표정이다.

성도에 처음 오는 어린아이가 보일 법한 모습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나 언제나 그렇듯 마현은 굳이 그러한 감상의 근원을 소수린에게 묻지 않았다. 말을 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묵묵히 마현의 뒤를 따르고 있다.

아슬아슬 올라오는 손길은 무방비한 마현의 옷깃을 잡으려다가, 빠르게 아래로 내려간다. 마음이 점점 더 열리고 있다는 증거다. 조급하게 그 틈새를 억지로 벌릴 필요는 없었다.

“하…… 누가 촌놈 아니랄까 봐. 크기만 한 곰 같은 눈 튀어나와 바닥을 구르겠다. 부끄러우니까 조금 얌전히 좀 있어.”

그러는 사이 아니나 다를까, 마찬가지로 오랜만에 보는 성도의 풍경에 흥분한 표정을 지은 주제에 백산에게 시비를 건 정순욱이 콧대를 추켜세웠다.

“넌 여기 자주 와봤냐?”

반쯤 넋이 나간 백산이, 그런 정순욱을 향해 놀랍다는 듯 물었다.

“하, 하하……! 이깟 성도쯤 어린 시절에 열 번도 넘게 와봤지. 이제 좀 알았나? 우리 정 씨 가…… 아니, 이 몸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하하하.”

아직 어린 주제에, 어린 시절이라고 따로 때를 분리해 이야기한 정순욱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그려 보이며 가볍게 이마를 짚었다. 이 정도쯤이야 정말로 우습다는 듯한 태도였다.

“우와, 열 번도 넘게? 진짜냐?”

백산이 정말로 멋지다는 듯 눈을 빛내며 묻는다.

오랜만에, 정순욱을 향한 시선에 진심 담긴 동경이 비치는 모습이었다.

“후, 후훗, 물론이지. 네깟 천한 놈에게 타고난 혈통의 이 몸이 무엇이 아쉬워 거짓말을 할까. 뭐…… 딱히 증거라고 내세우는 건 아니다만, 우리 정가상단은 이 성도에도 따로 장원이 딸린 지부를 가지고 있단 말씀.”

“엄청나네.”

“엄청나지.”

“솔직히 조금 부러운 것도 같다. 나도 그런 장원 같은 곳에서 한번 머물러 보고 싶거든.”

백산의 진솔한 고백에 정순욱의 콧대는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하핫, 네놈이 꼭 가고 싶다면야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지. 뭐, 당장은 어렵겠지만…….”

두 아이의 대화를, 미소만을 흘린 채 듣고 있던 마현이 끼어든 것은 이때쯤이었다.

“당장 어려울 게 뭐가 있겠느냐?”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정순욱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산아, 순욱이네 아버님이 운영하시는 상단의 장원을 보고 싶은 게냐?”

마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묻자,

“궁금은 합니다. 하나, 주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장원에 들르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백산은 언제나와 다를 바 없는 예의 바른 모습으로 답한다.

그 순간, 굳어졌던 정순욱의 표정이 조금이지만 생동감을 되찾았다.

“그, 그렇지.”

대답을 하는 말투는 이상할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말이다.

“이미 이곳에 온다 하였을 때부터 순욱이의 아버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아둔 뒤다. 시험 때가 다가와 투숙할 곳을 찾기 힘들 터니, 정가상단의 지부에 딸린 장원을 이용하라고 하시더구나.”

다시금, 생동감이 돌아오던 정순욱의 표정이 크게 굳어졌다.

마현을 향해 돌아오는 목은 뻣뻣하다 못해 고목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어색한 움직임을 보였거늘…….

“그게 사실입니까? 하면 매우 기쁜 일입니다. 다행이다. 순욱아. 네가 어린 시절 열 번도 더 드나들었다는 그 장원을 나도 볼 수 있겠구나. 하하.”

백산은 마냥 신이 난 어린아이가 되어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눈치챘을 텐데…….’

흥이 오르니 여느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

참으로 귀여운 두 제자의 모습이다.

“풋.”

그 모습에, 마현의 뒤에서 묘한 표정으로 따라붙던 소수린의 입가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본래의 무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마현은 분명히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터진 웃음에, 볼 가가 살짝 붉게 상기 된 모습까지도 보았다.

‘이것 참…….’

아무래도 이번 광주행은, 마현에게 생각보다 많은 즐거움을 선물해줄 생각인 듯했다.

* * *

아무리 강호의 외곽이라 불릴지라도, 성도에는 사람이 많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수요가 많다는 뜻이고, 그만큼 보급할 수 있는 물건 역시 다양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덕분에 정가상단의 광주 지부는 신의현에 위치한 본단보다도 더욱 큰 장원을 가지고 있었다. 식솔들이 머무를 안채와 인부들이 쉴 공간, 거기에 더해 물건을 보관할 창고까지 가득 세우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최근 정가상단이 성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니…….’

정순욱의 아버지, 정철영의 수완이 좋은 덕에 정가상단의 위세는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성도에 위치한 지부가 상상외의 넓은 장원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소문의 무명와룡 선생님을 뵙게 되다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저는 이곳 정가상단 광주 지부의 지부장 금린(金璘)이라고 합니다.”

지부장은 생각보다는 젊은 사내였다.

이제 막 얼굴에 주름이 지기 시작한 금린은 나쁘게 봐줘야 이립(而立)을 막 넘어선 정도다. 좋게 본다면 더 어리게도 보일 정도. 그런 어린 나이에 중요 거래지점인 성도의 지부장을 맡고 있다는 것은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무공도 익혔나?’

이류에서도 상위에 속할 법한 금린의 실력은, 일반적인 강호의 기준에서 볼 때 결코 모자라지 않는 솜씨였다. 그의 본업이 상인이란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럴 터고 말이다.

“마현이라 합니다.”

“구혜린이라고 해요.”

전면으로 나선 마현과 구혜린이 인사하자,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은 금린이 뒤편의 정순욱을 향해 인사한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못 뵌 지 오 년이 넘었던가요?”

“대충 그쯤 됐지. 그나저나 금린 출세했네. 언제 이곳 지부장으로 온 거야?”

“한 삼 년쯤 됐나요. 처음에는 고생도 어지간히 많이 했습니다. 성도라 그런지 할 일도 많고, 무서운 일도 많은지라…… 하하!”

“대충 내가 서원에 들어갈 때랑 맞물릴 때쯤인가. 쳇, 시골 촌구석에만 갇혀 있으니 바깥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있나.”

가볍게 투덜거리는 정순욱을 보며,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작은 웃음을 흘린 금린이 고개를 내젓는다.

“도련님은 변한 바 없이 여전하시군요.”

정순욱은 당연하다는 듯 콧대를 세우며 외치려다, 무언가 떠오른 듯 백산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너도 변할 것 없이 여전히 넉살 좋은 성격이네. 그나저나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중에 따로 좀 보자.”

“알겠습니다. 그럼 짐을 풀고 시험 전까지 휴식을 취하실 방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우선 두 분 스승님께서는 이쪽으로…….”

“아…… 네, 네!”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는 마현과 다르게, ‘스승님’이란 말에 당혹한 것이 역력한 표정을 지은 구혜린이 힘찬 목소리로 답한다. 평소에는 당당히도 외치더니, 또 이럴 때는 부끄럼을 탄다.

‘하여간에…….’

마현이 속내로 혼자 웃음을 그리는 사이,

“도련님과 친구분들 방은 이쪽입니다.”

금린의 뒤편에 서 있던 시종들이 백산을 비롯한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친구는 무슨…….”

정순욱의 의미 없는 반항은 그 와중에도 쉴 줄을 몰랐지만 말이다.

* * *

밤에는 조촐한 연회가 열렸다.

정순욱을 비롯한 와룡서원 제자 삼인방의 무사합격을 기원하는 자리였다. 조촐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가상단의 기준. 마현을 비롯한 구혜린 등을 위한 화려한 술상이 준비되고, 아이들을 위한 진수성찬도 마련됐다.

이러한 자리를 처음 겪는 백산과 구혜린의 입이 저도 모르게 살짝 벌어질 정도.

“차린 것은 모자라지만 부디 즐겁게 즐기시길 바랍니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둥근 원형 식탁에 둘러앉은 금린이 웃으며 말한 후, 가볍게 박수를 치자 바깥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던 악단이 내부로 들어섰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각자 악기를 켜자 분위기는 단숨에 달아오른다.

“드시죠.”

장원의 주인이자, 지부장인 금린이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젓가락을 들어 올린 백산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리가 달린 것은 책상과 의자 빼고는 다 먹는다는 광주의 음식인 만큼, 와룡객잔에서도 보지 못했던 독특한 요리들이 많은 덕에 음식을 맛보는 재미는 제법 있는 편이었다.

“그간 무명와룡 선생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가히 광동제일명필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고, 제자분들의 신망도 두텁다더군요.”

그 사이, 술을 채운 금린이 잔을 들어 올리며 마현을 향해 말했다. 마현은 묵묵히 웃으며 함께 잔을 기울인 후,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이룬 것 하나 없는 상태에서 들리는 그저 뜬구름 같은 소문일 뿐입니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지요.”

겸손(謙遜)이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상대를 배려해 편안함을 만들 줄도 아는 것. 일종의 지혜다. 마현은 적당한 말솜씨로 금린의 의견에 수긍하면서도, 적당히 자신을 낮추었다.

덕분에 금린의 입가로는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말에서 현기(玄機)가 느껴진다.

다른 것은 모르나, 사람 하나 보는 눈은 자신하는 금린이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 마현은 결코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도련님이 좋은 스승을 두셨구나.’

처음 정철영에게 마현에 대해 들었을 때, 좋은 스승이 될 것이라는 인상은 들었다. 하나 직접 보니 훨씬 더 하다. 깊이가 있고 중용(中庸)이 있다. 이런 사람이라면 누구든 믿고 자식을 맡길 수 있을 터였다.

“하하, 그러시군요. 하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조금 외람되오나…….”

잠시, 음식에 열중하고 있는 정순욱의 눈치를 본 금린이 작게 속삭였다.

“이번 시험, 도련님은 괜찮으실까요?”

태평한 척하지만, 그 역시 한 사람을 모시고 있는 입장이다.

그리고 정순욱은 그리 모시는 인물, 정철영의 자식이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야 안 쓸 수가 없다.

아무리 가문 내에서는 어려서부터 천재라 불렸다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으니 말이다.

“금린, 다 들렸어.”

마현의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 음식만 먹는 듯하던 정순욱이 날카롭게 말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금린은 모르고 있지만, 마현과 와룡서원의 생활에 있어 열심히 노력한 정순욱의 기감은 일반인의 몇 배를 뛰어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혹시나 금린이 자신의 ‘비밀’에 대한 말실수를 할까 봐 은근슬쩍 듣지 않는 척 귀도 기울이고 있던 입장이었다.

듣지 못할 리가 없다.

기분 나쁘다는 듯, 고개를 추켜든 정순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여기서 말해두는데, 시험은 무조건 합격이야. 단지 누가 수석이냐의 문제일 뿐이지.”

홱, 하고 여전히 걸신들린 듯 음식만 먹고 있는 백산을 노려본 정순욱이 주먹을 움켜쥐며 다음 말을 이었다.

“뭐, 내 자랑하는 것 같아 참으려 했지만…….”

직후로는 짧은 시문을 읊어 나간다.

서화일당오(鋤禾日當午

가련한 농부 김매는 날, 한낮

한적화하토(汗滴禾下土

땀방울이 논바닥에 고인다

수지반중찬(誰知盤中餐

누가 알랴 상 위의 더운밥

입입개신고(粒粒皆辛苦

알알이 쓴 고생인걸

당나라 당시의 재상이었던 이신(李紳)의 민농(憫農)이라는 시가였다. 상 위에 올라오는 쌀 한 톨, 밥 한 톨의 고역을 알려주는 민농은 어려운 말로 이루어진 글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농사짓는 농부의 심정을 읽어내는 시. 아직 어리고 제법 부잣집에서만 살아온 정순욱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감성이었다.

한데 정순욱은 이를 자연스럽게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담아냈다. 한낱 어린 아이일 뿐만이 아니다. 나름대로 세상에 대해 보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자신을 알리려는 정순욱의 노력이 가득 담긴 덕이었다.

‘이번 건 좋았어.’

심지어 음식이 차려진 연회 상 앞에, 흐르는 악단의 연주도 딱 어울렸다.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모습으로 시가를 읊은 정순욱의 콧대가 다시 드높아졌다.

“와, 이건 정말…….”

금린이 놀란 듯,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실제로도 경악했다.

저 오만불손 방자함의 대명사 정순욱이 민농과 같은 시가를 자연스럽게 읽어 내리다니.

쌀의 귀중함을 스스로 말하다니……!

정말이지.

“대단하십니다. 무명와룡 선생님!”

모두 마현의 덕이다.

그리 생각한 금린이 마현을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주변에 위치한, 정순욱을 오래전부터 보았던 다른 식솔들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모두 마현의 덕이다.

“그, 그렇군요.”

그사이에 낀 마현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시문은 자신이 읊었는데 왠지 모르게 소외된 정순욱은 황당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

‘이, 이게 뭐야…….’

재주는 곰이 부리고 값은 누가 받는다더니…….

“쳇, 괜한 짓을 했어.”

크게 혀를 찬 정순욱이 투덜대는 표정으로 쿵, 쿵 발소리를 내며 백산의 바로 옆에 앉았다.

“왔냐? 음식 다 떨어져 간다. 빨리 먹어.”

그런 정순욱을 반기는 것은 백산의 기름때 묻은 입술뿐.

“이익……!”

덕분에 정순욱의 얼굴은 더욱 붉어지고,

은근슬쩍 지켜보던 주변인들의 입가로는 저절로 웃음이 머금어진다.

“하하하……!”

“푸후후.”

금린이 웃고, 구혜린이 웃는다.

뒤를 이어 다른 식솔들도 박장대소했으며, 마현도 작은 미소를 그렸다. 모두 정순욱의 행동을 은근슬쩍 지켜보던 인물들이었다.

“왜, 왜 웃어!”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웃음소리만큼, 더욱 붉어지는 정순욱의 얼굴이었다.

* * *

“근데 너, 성도는 열 번도 넘게 와봤다고 했었지?”

연회가 끝난 늦은 밤.

만지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오는 비단 이불 위에 누운 백산이 정순욱을 향해 물었다.

“……다, 당연하지.”

굳이 한 방을 써가면서까지 백산이 감탄하는 모습을 즐기던 정순욱이 목소리를 떨며 답했다. 그도 그럴게, 정순욱 역시 이번 성도 행이 기껏해야 세 번째인 탓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거짓말을 했다. 자존심 탓에 큰소리를 떵떵 치고 나니 이게 아니다 싶었지만 언제 엎어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있던가?

모른 척 넘어가려 했을 때는 이미 물이 엎어지고도 도랑에 고인 뒤였다. 결국 마현의 주도하에, 정가상단 성도 지부까지 온 뒤로는 은근슬쩍 떨리는 마음을 숨기느라 애를 쓰는 게 전부였다. 그 와중에 거짓말은 들키기 싫어, 금린과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 언질을 줄 생각이었는데 이 역시 쉽지가 않았다.

하루가 너무 바쁘게 흘러간 탓에 자리를 따로 마련할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백산이 정곡을 찔러왔다.

분명 거짓말이라는 놈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진다던데…….

‘나한테는 체질이 아닌가 보다.’

어째서인지 할수록 가시방석으로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면 나중에 시간 날 때 성도 구경시켜줄 수 있냐?”

다행히 아직 백산은 크게 의심치 않는 듯했다.

하긴, 본래부터 곰처럼 우직한 놈이니 의심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내가 왜?”

하나 그렇다고 하여 백산의 말을 들어줄 필요는 없었다.

성도 구경이라니, 광주가 얼마나 넓은지는 알고 하는 말일까?

실제로 열 번을 넘게 오간다 해도 다 알기 힘든 곳이 바로 성도란 곳이었다. 올 때마다 그 모습이 뒤바뀌니, 솔직히 몇몇 곳에서는 정순욱마저도 몰래 감탄할 정도였다.

“왜긴, 같이 온 친구라고는 너랑 나랑 수린이밖에 없는데 우리끼리 다니면서 구경해보자는 거지.”

스윽.

침대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백산이 해맑게도 웃으며 말한다.

눈을 흘기며 그런 백산을 쳐다본 정순욱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우선 착각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어. 우리는 서로 친구가 아니다. 함께 서원에서 공부를 한다고 하여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래, 그래.”

언제나 그렇듯 백산은 태평스럽게만 답했다.

정순욱의 까칠함에는 적응될 대로 적응되었다는 느낌이랄까? 그 모습에 이마 위로 십자 혈관을 ‘빠직.’ 세운 정순욱이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펼치며 말했다.

“그리고 추가해서 두 번째. 난 네가 싫다. 싫어하는 사람하고 함께 껴서 한가롭게 성도 구경이나 한다? 말이 안 되지. 혹시 오해할까 말하는데, 서원비를 보태준 것도 네놈을 동료라 여긴다거나, 친구라 느껴서가 아니다. 단지 곰 같은 네놈이 끝까지 서원에 남아, 나의 위대함을 견식 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지.”

이쯤 되었으면 알아먹었겠지.

마지막으로, 냉담해 보이는 비웃음을 지은 정순욱이 등을 돌릴 때였다.

“난 네가 좋은데?”

앞뒤 다 잘라 먹은 백산의 답변이 돌아온다.

“도대체가 네놈은……!”

평소에 보면 머리가 좋은 듯도 한데 이런 식으로 답답하게 나오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화를 내려 했다. 적당히 길길이 날뛰면 이 단순무식하게 밀어붙이는 놈도 조용해지겠지. 뭐, 그런 심사가 없던 것도 아니다. 한데 그조차도 힘을 잃었다. 언성을 높이고, 고개를 돌려 싱글벙글 웃고 있는 백산의 눈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정말이지 의심 하나 없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네깟 놈들 따위와 친구라고?’

그딴 식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 상대를 한 내가 병신이지.”

화를 낸 것 자체도 무의미해져 버린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등을 돌린 정순욱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했다. 다행히 그 뒤로 백산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조르지도 않았고, 딱히 다른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니다.

‘다행…… 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정순욱은, 끝내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달싹였다.

“한 번쯤이라면…….”

“응?”

자고 있지 않던 백산이, 잽싸게 대답한다.

“한 번쯤이라면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빠르게 대답한 정순욱은, 어두운 밤 속에서도 붉어진 얼굴을 들키기 싫어 재빠르게 이불을 뒤집어썼다.

“고마워! 역시 넌 좋은 녀석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산은 여전한 모습으로 밝게 말할 뿐이었다.

제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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