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三章)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한 번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마현도 서른일곱, 아이들도 많게는 열다섯의 나이까지 자라났다. 그동안 또다시 무공과 글공부에 진척이 있었다. 내공으로 치자면, 아이들 중 특출한 몇몇은 육 년 치 이상의 기운을 쌓았으며, 글공부는 대학의 후반대로 접어들었다.
조금 뒤떨어지는 아이들도 사 년 치 이상의 내공과 소학을 모두 졸업하는 수준까지 마쳤으니, 슬슬 다른 행동을 해 보아도 될 때란 것이다.
‘생각해보니 조만간 원시(院試)가 있던가?’
원시는 본래 성도 내에 존재하는 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일종의 입학시험이었다. 단순히 그것만을 위한 시험이었다면, 무시해도 될 일이다. 이미 제자들은 마현의 서원에 들어와 공부를 하고 있다. 성도 내의 학원이 가르침이 높다고는 하나, 마현도 자신이 부족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실제로 아이들도 합격한다 하여 와룡서원을 떠나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원시에 합격해야만 향시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지는 과시(科試)를 볼 수 있단 것이 문제였다.
‘결국 참가해야 한단 뜻인데…….’
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향시는 최근 열린 것이 작년이었다.
하면 올해와 내년은 조용히 지나가고, 후년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온다는 뜻. 그때까지는 학생들 모두를 어떻게든 과시까지 합격시켜놓아야 했다.
‘향시는 그리 쉽지가 않으니…….’
한 번 만에 붙으면 좋으련만, 두, 세 번에 걸치는 것이 보통이다. 결국 최대한 빨리 향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합격을 앞당기는 일이 될 수 있단 말이다.
‘그래, 올해 원시를 보도록 하자.’
아이들이 준비가 덜 되었다면 모를까.
이미 충분할 정도로 공부를 해놓은 상황이다.
특히 상위의 삼인방은 원시는 물론 운이 좋다면 과시까지 넘길 수 있는 상황.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마현은 아이들의 부모에게 각각 서신을 날렸다.
‘아이들에게 원시를 보게 할 생각입니다.’
부모들의 의견이 필요할 때였다.
* * *
아이들이 원시를 보아도 될 정도로 성장했다는 이야기에, 부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뻐하며 시험을 치르는 것에 동의했다. 또한 대부분이 부모로서 자식의 첫 시험에 함께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도 좋지.’
결국 조만간 치러질 원시를 위해, 아이들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돌아가서 따뜻한 밥을 먹고, 마지막으로 공부에 열을 쏟다 시험을 보고 되돌아온다.
어쩌다 보니 일종의 방학(放學) 기간이 생긴 셈이다.
당연히 아이들 대다수도 기뻐했다.
와룡서원의 생활에 적응이 되기는 했지만, 때로는 집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법. 오랜만에 부모님의 얼굴을 볼 생각에 그런 간절함은 더했을 터다.
그렇게 마현은 한동안 제자들을 떠나보냈다.
단 세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어떻게 남아도…….’
백산.
그는 본래부터 고향이 무명현이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인 백일이 도축업이 바빠 함께 원시에 가지 못한다고 하여, 마현이 함께 시험장까지 가기로 했다.
그리고 소수린.
그녀 역시…….
‘고아이니 어쩔 수 없지.’
마현이 책임지고 시험장까지 이끌어줘야 한다.
한데 마지막으로 남은 정순욱은 정말로 예상외였다.
“부모 손이 없으면 시험장에도 못 찾아가는 얼간이들과 같은 취급당하기는 싫으니까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눈빛을 보아하니 백산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원시와 과시는 향시와 다르게 각 지방의 성에서 실시된다. 당연히 성적이 발표되는 것도 각기 다르다. 아마 정순욱의 목표는 백산과 같은 성에서 시험을 봐, 자신이 수석(首席)으로 합격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분명히 그래 보였다.
게다가 백산은 부모 없이 혼자 가는데, 자신은 정철영을 따라나선다면 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강할 터다.
하여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자존심을 죽일 줄 모르는 아이 다운 행동이었다.
“어찌 됐든…… 너희들은 나와 함께 가야겠구나.”
마현은 그런 정순욱을 굳이 돌려보내려 하지 않았다.
정철영 측에서도 일이 바빠 함께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서신을 보내왔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뭐,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성도인 광주(廣州)에서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꽤나 거리가 먼 만큼 힘든 여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걱정이 필요할까?
듬직한 백산에, 그런 백산에게 지기 싫어하는 정순욱.
마지막으로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은 가장 잘하는 소수린이다.
무슨 말을 해도 쓸데없을 것 같다.
어차피 따라오기로 한 이상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아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냥 가도록 하자꾸나.”
결국 마현은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 * *
백산에 정순욱, 소수린에 마현, 거기에 구혜린까지 더해지니 인원이 조촐하지만도 않게 됐다.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구혜린이 따라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들은 제 제자들이기도 해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알게 되는 사실은, 구혜린이 의외로 고집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는 자신을 약하다고 말하지만, 마냥 여리지만도 않고, 의외로 뚝심이 있을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제자들이 시험을 보러 간다는데, 같은 스승인 그녀가 어찌 외면하냐는 것이다. 아이들 역시 그런 구혜린을 제법 좋아했기에 말릴 여지는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얼마 가지 않아 첫 장애물을 만났다.
“여어~ 어디들 그리 급하게 가시나?”
대로로 가는 것보다, 험준한 산을 통해 가는 것이 무공의 단련에도 도움이 된다 하여 험로(險路)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산등성이에서부터, 험로에 어울리는 험난한 인상의 털북숭이 사내가 나타나 일행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말할 것도 없다.
“산적이네요.”
구혜린의 말에,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현은 이곳에 오르기 전부터 이쯤에 산적이 잠복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구혜린 역시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산적들의 존재를 눈치챘지만, 이 상황이 닥치기까지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이참에 아이들에게 실전 경험을 시켜주기 위한 의도임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얌전히 가진 것 다 내놓고 거기…… 오오.”
아무것도 모르는 털북숭이 산적 두목은 어깨에 커다란 박도(朴刀)를 나름대로 멋들어지게 걸친 채 말을 하다, 구혜린에게 시선이 닿아서는 감탄을 흘렸다. 천하절색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미모의 여인이 눈앞에 있으니, 사내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 아가씨랑 마지막으로…… 훌륭하군!”
아이들, 그중에서도 소수린에까지 시선을 옮긴 후 또 한 번 감탄한 산적 두목이 얼굴을 붉혔다.
어느덧 열다섯. 범상치 않게 자랄 것이라 예상했던 대로, 서서히 물이 오르기 시작한 소수린의 외모는 서원의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도 화자가 될 정도로 빼어났다.
당장이야 아직 젖살이 빠지기 전이라 귀엽다는 느낌이 더 강했지만, 시간이 더 흐른다면 구혜린이나 공서하 못지않은 미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큭큭, 이거 오늘 아주 횡재하는구먼. 그러니까, 가진 것 모두랑 거기 두 아가씨만 놓고 가면 내가 얌전히 보내 주도록 하지. 어때?”
그러한 산적 두목의 당당한 말에.
“……쯧.”
가볍게 혀를 찬 마현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구혜린은 그렇다 치고, 소수린은 이제 고작 열다섯이다.
척 보아도 산적 두목은 마현의 또래 정도로 보였는데, 이 정도 어린아이를 보고 얼굴을 붉히다니…… 최악이다. 혼이 나도 할 말이 없을 악당인 셈이다.
“크흐흐.”
“어서어서 내놓고, 사내새끼들은 꺼지라고.”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다른 산적들이라고 다를까?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다.
검은색 옆에 있으면, 함께 물드니…… 다 똑같은 놈들이다.
‘자, 그러면 아이들하고 어떻게 싸움을 붙일까.’
산적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났지만, 세 제자 중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그들 모두가 마현이 엄청난 고수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구혜린 역시 그보단 조금 모자라지만, 꽤나 고수란 기색이 역력했다.
모르긴 몰라도 산적들 따위는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
아이들 모두가 그리 알고 자라온 탓이다.
문제는 마현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이 직접 손을 쓰는 게 아니란 점이다. 무공을 익혔으면,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처음 손을 쓰는 것이야 어렵겠지만,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 정신적인 단련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어찌 말을 해야 할까 고민 중인데…….
“하나같이 천박한 냄새를 풍기는 놈들이, 누가 생긴 것답지 않게 논다고 이야기할까 봐 비천하게도 잘 지껄이는구나.”
“……뭐?”
콧방귀를 뀐 정순욱이 먼저 도발에 나섰다.
산적들의 표정에 자연스레 황당함이 어렸다. 지금 저 말이 약관도 한참이나 멀어 보이는 꼬맹이의 입에서 나온 것이 맞단 말인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가 않는 탓이었다.
“주세요.”
그 사이, 마현의 앞으로 다가온 소수린이 손을 내밀었다.
마현이 커다란 천에 감싼 채 등에 지고 있던 것이 그들의 무기란 사실을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저희도 마침 실력을 알아보고 싶던 차였습니다.”
백산 역시 그런 소수린을 따라 손을 내민다.
‘이거 아무래도…….’
와룡서원의 수재(殊才) 삼인방을 너무 무시했던 듯하다.
굳이 마현이 고민할 필요 없이, 아이들은 이미 그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던 것이다.
“그래, 한 번 실력을 보여 보거라.”
마현이 등 뒤에 메고 있던 천을 풀어, 세 자루의 봉을 각자의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
평소 수련 때 휘두르던 연봉이 아닌, 실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목봉(木棒)을 든 아이들은 그 느낌이 익숙하지 않은지, 이리저리 휘둘러보며 감을 찾으려 했다.
“이, 이놈들이…… 얘들아!”
갓난아기나 다름없는 꼬맹이들의 무시에서부터.
마현의 태연자약한 행동까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분명한 행위에 얼굴을 붉힌 산적 두목이 박도를 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찍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
그에 마찬가지로 흥분한 채,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산적들이 우렁차게 답했다.
“사내새끼들은 모두 죽이고 계집년들은 잡아와 무릎 꿇려! 오늘은 피를 보는 것을 참을 필요가 없다.”
“우와아아!”
산적 두목의 외침에, 기합을 내지른 주변의 산적 이십여 명이 동시에 비탈길을 타고 마현 일행을 덮쳐왔다.
“해볼까?”
그 사이, 나름대로 목봉에 대한 적응을 마친 백산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
“흥, 잘난 척하기는.”
정순욱이 그런 백산을 지나쳐,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그 잽싼 움직임에, 다가오던 산적들이 제법 놀란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도를 휘둘렀다.
“이미 내 영역이다. 얼간이들아.”
제공권.
공간을 장악한 정순욱은 아무런 무리 없이 산적의 공격을 피하며, 목봉을 배에 찔러넣었다.
“쿠엑!”
체구는 작지만, 내력만 칠 년 치에 탄탄하게 키워 온 근육을 가진 정순욱의 공격이다. 덩치만 큰 비곗덩어리나 다름없는 산적은 단 일격에 토사물을 게워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 건방진 꼬맹이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지면에 발을 디딘 산적들이 빠른 속도로 정순욱을 덮쳐왔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은, 아무리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하여도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하게끔 하는 위협감이 있었다.
혼자서 너무 깊숙이 들어왔다.
실전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한 실수일 터였다.
“칫.”
짧게 혀를 찬 정순욱이, 회피로를 찾기 위해 봉을 회전시키는 때였다.
갑작스럽게 공간의 여유가 마구잡이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늦잖아.”
정순욱의 투덜거림과 함께.
퍼버버벅.
어느새 정면으로 뛰쳐나온 백산과 소수린의 봉이 네 명의 산적을 동시에 쓰러트린다.
“뭐, 뭐야!”
“빨라!”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며, 무시하고 달려들던 산적들 입장에서야 기가 찰 노릇이었다. 대체 뭐에 어떻게 당했는지 보지도 못했다. 그만큼이나 아이들의 봉이 빨랐다는 뜻이다.
“킁!”
위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털북숭이 산적 두목이 크게 콧바람을 내쉬었다.
‘이걸 어찌하나?’
마현 일행을 덮치기로 결심을 한 이유야 간단했다.
인원도 소규모고, 어린아이들을 끼고 있는 데다가, 유일하게 검을 차고 있는 무인은 여자다. 쉽게 말하자면, 만만해 보여서였다. 한데 이게 막상 까고 보니 만만치가 않다.
‘저놈들 모두…… 무공을 익혔잖아?’
아직 완숙된 느낌은 아니지만, 분명히 무공을 익힌 움직임이다. 날래고, 힘이 들어간 데다, 정확하다.
‘제법이긴 한데…….’
부하들과 함께라면 상대 못 할 정도는 아니다.
털북숭이 산적 두목, 전율(戰律)은 밑의 상황을 지켜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칠까? 튈까?’
튀면 부하들에게 원망을 받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만약의 상황에, 목숨을 건질 수는 있을 터다.
반면에, 치면?
일단 아이들 셋 정도는 잡을 자신이 있다.
그러고 보면 남는 것은 뒤로 빠진 젊은 남녀다.
‘남자 녀석 측은 별것 없어 보이니 그렇다 치고…….’
문제는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여성 측이다.
아이들에게 저 정도 무공을 가르친 것이 그녀라 사료되는 바.
무공이 만만치만은 않을 것 같았다.
‘역시 포기하는 게…….’
그리 생각하며 구혜린의 얼굴을 본 순간이었다.
자연스럽게 얼굴이 붉어지고, 콧바람이 크게 새어 나오며, 아랫도리에 힘이 뻐근하게 들어갔다.
‘포기할 수 없어!’
얼마 만에 본 야들야들한 젊은 미녀던가.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조금 욕심이 과한 듯도 하지만, 믿는 게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 전 상단의 표물을 습격하여 얻은 비장의 암기를 이용한다면…….
“이놈드을!”
전율의 결정이 내려졌다.
그는 빠른 속도로 비탈길을 내려가, 전장에 합류하며 크게 박도를 휘둘렀다. 동시에 한참 자신들만의 공간을 확보하며 싸움을 이어가던 아이들의 움직임이 크게 제한되었다.
“어디서 돼진지 곰인지 모를 놈이 나타났다 했는데…… 생각보다 제법인가 보네.”
정순욱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을 흘린다.
“합공을 해야 될까?”
소수린이 묻자.
“그러려면 주변에 있는 녀석들부터 쓰러트려야 될 것 같은데…….”
백산이 곤란하다는 듯 답한다.
“무슨 합공까지……. 그냥 밀고 나가!”
동시에 정순욱이, 거칠 것 없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여태껏 쓰러트린 산적의 수는 백산이 다섯, 정순욱이 일곱.
이런 사소한 일에서부터 백산에게만큼은 지기 싫은 정순욱이었다.
퍼벅.
“여덟!”
수를 외치며, 다음 산적을 쓰러트린 정순욱의 시선이 돌아갔다.
“쿠엑!”
“아홉!”
또 한 명의 산적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순간에는…….
“이 건방진 애송이가!”
큰 기합을 외친 전율의 박도가 뒤통수로 떨어졌다.
‘아차……!’
또 흥분해서 무리를 한 탓일까.
공간 어디에도 피할 활로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수밖에 없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애초부터 독하기로는 한 수 하는 정순욱이었던 만큼, 자신 있었다.
‘어깨를 주고!’
얼굴에 목봉을 박아 넣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으익?”
놀란 목소리의 전율이 도의 방향을 빠르게 전환했다.
어느샌가 소리 소문도 없이 다가온 소수린이, 그의 옆구리로 봉을 박아 넣고 있던 탓이었다.
“칫.”
아쉽다는 듯, 짧은 신음을 토한 그녀가 뒷걸음질을 쳤다.
정순욱 역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얼굴을 향해 봉을 내질렀다.
그에 다시 한 번 도의 방향을 틀게 된 전율이 펄쩍 뛰며 성을 냈다.
“어린놈들이 귀찮게 구는구나!”
위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내려와서 맞서보니 생각보다 아이들의 움직임이 더 뛰어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공권을 발휘하고 있기에 너무나 효율적으로 움직여 보이는 실력보다 뛰어난 압박을 가하는 것이지만, 평범한 무인인 전율이 그런 것을 알 도리는 없었다.
“모두 죽여버리겠다!”
분노한 전율이 길길이 흥분하며, 만약의 때에는 품에 있는 암기를 쓸 생각까지 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따악-!
머리 위로 강한 충격이 전해지며.
허공으로 별이 회전했다.
‘어, 언제?’
어느 새였던 걸까?
수하들을 모두 쓰러트린 백산이 나무 위에 숨어 있다 떨어져 내리며 전율의 머리에 목봉을 내리꽂은 것이다.
“이익!”
계획과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래서야 얻는 것이 없는데…….
품에 있는 암기라도 써야 한다.
미녀를 얻지는 못했지만, 혼자 죽기는 억울하니 꼬맹이들이라도…….
‘네놈들이라도오……!’
생각은 이어졌지만, 몸은 행동을 잇지 못했다.
왜냐고?
퍼버버벅.
산적 측에 남은 것은 전율 혼자.
반면 아이들 측 세 명은 모두 무사한 상태였다.
쉴 새 없이 몽둥이찜질이 쏟아지고 있는 마당인데 어찌 품에 손을 집어넣어 암기를 꺼낼까.
결국 전율이 할 수 있는 것은 쉴 새 없이 두들겨 맞으며…….
“크, 꾸에엑!”
가축인 돼지와 닮은 비명을 내지르는 것뿐이었다.
* * *
싸움은 격렬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목봉을 쓴 데다, 아직 살인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손속에 여유를 둔 덕이었다.
“그래도 한 명은 아주 피떡이 되었구먼.”
마지막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티던 털북숭이 두목, 전율은 말 그대로 온몸이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무공은 기껏해야 이류가 될까 말까지만 몸 하나는 튼튼한 경우인 것이다.
“흥, 제깟 놈이 버텨 봤자지.”
정순욱이 우습다는 듯, 골골 앓고 있는 산적들 중심에 누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전율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건방진 꼬맹이!”
산적들 중 제법 멀쩡한 누군가가, 그런 정순욱을 향해 분노를 불태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따악.
“악!”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것은 보복의 매질이었다.
“그 건방진 꼬맹이들한테 진 어른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백산 역시 첫 실전 승리가 꽤 기분 좋은지, 들뜬 모습이었다.
무공을 익히기만 하고 써먹어 본 적이 없으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반면에 수린이는…….’
쓸데없을 정도로 침착하달까.
자신의 무기로 선택한 목봉을 등에 멘 그녀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산적들을 굴비 엮듯 하나, 하나 포박하고 있었다. 마현이 이대로 근처 현의 관(官)으로 데려가 모두 넘기자고 한 탓이었다.
“듣자 하니 이놈들, 현상금도 있는 것 같던데요?”
산적들 중 하나를 붙잡아, 심문을 하던 구혜린이 다가와 말했다. 아무래도 관으로 데려갈 경우 정확한 죄목이 필요한 탓이었는데, 덕분에 쓸 만한 사실을 알게 된 셈이다.
“좋네. 선한 일도 하고, 용돈도 벌고.”
“번 돈은 얻다 쓰실 생각이세요?”
구혜린이 장난스레 묻자, 작은 웃음을 흘린 마현의 시선이 산적들을 열심히 포박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향한다.
“글쎄, 산적을 잡은 건 저 아이들이니. 결정권도 넘겨줘야 하지 않을까?”
“쳇, 선물 사준다는 말은 절대로 안 하네.”
“필요해?”
마현의 질문에.
“……됐네요.”
고개를 돌린 구혜린이 웃으며 답한다.
화창한 날에 일어난, 와룡서원 제자들의 산적 소탕기였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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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귀환 3권
제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