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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귀환-12화 (13/83)

(第十二章)

마현은 구혜린을 품에 안은 채, 와룡객잔으로 돌아왔다.

말없이, 본래 침대에 머리를 눕히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눈을 떴다. 천천히,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을 뜬 구혜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옆에 있는 마현을 발견하고는…….

“처음과 비슷하네요.”

작은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그런가요?”

“예,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요. 그때는 침대 위에 저 혼자 누워 있었고, 옆에는 아무도 없었죠.”

“…….”

마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구혜린의 두 눈이 빠르게 떨리고 있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달래주어야 하는데,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평소에는 그리도 대화를 잘 나누었는데,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입을 열기가 참 힘들다.

“……사형은요?”

끝내, 그녀의 입에서 영호충에 대한 질문이 흘러나왔다.

처음부터 묻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묻기 싫었을 것이다.

듣기 싫은 대답이 돌아올 게, 뻔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죽었습니다.”

“당신이 죽였나요?”

“……예.”

마현은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그렇기에 솔직히 답했다.

구혜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허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그리고 되물어 온다.

“…….”

마현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언젠가 복수의 이면(裏面)에 대해서도 들려주리라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구혜린의 정신은 혼돈에 빠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믿고 있던, 가족과 같던 이에게 배신당했다. 복수의 이면 따위는 마음에 와 닿지도 않을 터였다.

“혹시 술 있나요?”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마현은 일 층으로 내려가, 본래 자신이 마시고 있던 술병과 술잔을 들어 올렸다.

‘하나 더.’

나머지 술잔을 챙긴 후, 이 층으로 올라갔다.

구혜린은 어느새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 뒤였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현 역시 묵묵히 술잔을 건네주고, 술을 따라주었다.

꿀꺽.

단번에, 술잔을 비운 구혜린이 활짝 웃었다.

“좋네요.”

마현이 가져온 술은 객잔 내에서도 가장 독한 술이다.

그런 술 한 잔을 한 번에 마신 주제에, 첫 마디가 좋다는 것이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마현도 불과 반 시진 전에,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으니 말이다.

“한 잔 더 주세요.”

구혜린의 말에 따라, 술을 한 잔 더 따른다.

그리고 뒤를 이어, 이번에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운다.

마현은 묵묵히 술잔을 들어 올렸다.

“좋아요. 함께 마셔요.”

구혜린은 그런 마현을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뒤이어,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잔을 부딪쳤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조금도 멈추지 않고 술을 마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현이 일 층을 두어 번 정도 왕복한 뒤였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만 다섯. 안주 하나 없이, 정말로 지독히도 마셨다 싶을 때쯤, 붉어진 얼굴의 구혜린이 웃음을 터트렸다.

“푸후훗, 저 사실. 술 이렇게 많이 먹어 본 적 처음이에요.”

한 번도 입에 대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에, 호기심 때문에 아빠 술을 훔쳐 마셨었거든요. 쓴 데다가, 맛도 없었는데…… 그거 먹었다고 혼났어요.”

“억울했겠군요.”

마현 역시 술기운을 몰아내지 않았기에, 꽤나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억울했죠. 엄청나게 많이요. 덕분에 그 날 온종일 양손 들고 벌을 섰는걸요.”

“하하…….”

“사형…… 영호충. 그 개자식은 그때 같이 술을 마셨었어요. 근데 혼자 도망갔다니까요. 나만 벌을 서고.”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사이였나 보군요. 가족과도 같이 볼 정도였으면…….”

마현의 말에, 피식하는 웃음을 흘린 구혜린이 손을 내저었다.

“오래됐죠. 근데 가족을 안 건 그 탓이 아니에요. 제가 말 안 했었죠? 은하검결류 칠 대 전승자! 유성신검 구철학. 우리 아빠예요.”

마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심으로도 제법 놀라긴 했다.

‘설마 했는데…….’

그녀가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멸문지화 당한 사문 측이야 떠올리기 싫어서겠지만, 가족의 이야기는 왜 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많았는데, 드디어 그 답을 듣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협객행을 하던 중에, 나아쁜 놈들 칼에 맞아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아빠가 복수를 하긴 했는데…… 그리 속이 시원하지만은 않다더라고요?”

“…….”

그리도 생각하던 복수의 이면인가?

‘내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구나.

알기에, 복수를 위한 검날을 세웠으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남았던 것이다.

무명현에.

와룡객잔에.

와룡서원 제자들 곁에.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나.’

역시. 세상 모든 일을 안다 하여도, 사람 마음 한 길 알기 어렵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마현은 씁쓸한 웃음을 지은 채, 한 잔 술을 더 기울인다.

“그래도 전 복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빠도 죽고, 문파도 사라졌고, 사형은…….”

피식, 웃은 구혜린이 벽 한구석에 놓은 유성검을 들어 올려 마현을 겨누었다.

“어떻게 해야 되죠?”

이후, 쓸쓸한 웃음을 흘리며 묻는다.

마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해서 묵묵히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람 마음이 무공이나 학문보다 훨씬 더 어렵다.’

저런 마음을 달래주는 법을 몰라.

말을 할 줄 몰라.

결국 할 수 있는 행동을 할 뿐이다.

그저 다가간다.

“계속해서 오면 찔리실 텐…….”

구혜린이 장난스레 유성검을 돌리며 말을 하던 순간이었다.

단숨에 그 옆을 파고든 마현이, 놀란 표정의 구혜린을 끌어안았다.

“무, 무슨…….”

“……말을 잘하는 편은 못 됩니다.”

마현은 구혜린의 가녀린 몸을 강하게 안아주며 떠오르지 않는 말을 애써 짜내려 했다. 그런 마현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웃음을 흘린 구혜린이다.

“당신도…… 못하는 게 있었네요.”

천하무적의 면모만 봐서 그럴까?

왠지 다 해낼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위로도 잘 못 하는 편이군요.”

“그런 것 같긴 해요.”

다시 한 번 웃음을 흘린 구혜린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검을 떨어트렸다. 이후 눈가로 차오르는 눈물을, 입술을 깨물어 거둔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있잖아요…….”

“……?”

짧은 호흡이 몇 번이나 오고 갈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저랑 잘래요?”

다시 한 번 구혜린의 입이 열렸다.

* * *

아침 동이 터올 때쯤.

한 침대 위에서 눈을 뜬 두 남녀가 서로를 보며 동시에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

“푸훗.”

뜨겁고, 열정적인 밤이 되지는 않았다.

최선을 다해 서로를 아껴주려 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설마하니, 당신도 처음이었어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바람에.”

“어쩜, 이거 기뻐해야 되는 일 맞죠?”

마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이라 둘 다 허둥댄 탓에, 여러모로 실수가 잦았다.

구혜린은 뻣뻣하였으며, 마현은 어찌할지 몰라 허둥댔다.

덕분에 두 사람의 사랑은 열정적이었다기보다, 순수한 느낌이 되어버렸다. 서로를 위한 배려를 하다 보니 더욱 그렇게 되었는데, 그동안 구혜린이 마현을 보며 느낀 감정은 ‘귀엽다.’ 는 것이었다. 물론 그 생각에는 지금도 크게 변화가 없었다.

“서른여섯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사정이 있었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그 나이 때까지 술집 한 번 안 가셨다는 뜻이잖아요.”

“그러게, 가볼 걸 그랬어.”

어느새 마현은 구혜린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낮추고 있었다.

딱히 무슨 의견이 오고 간 것이 아니다.

잠을 자서, 내 여자라는 편견이 들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편이 좋았다.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간 기분도 들었다.

“그랬으면 섭섭했을 거예요.”

냉철한 대답에, 왠지 모르게 볼을 부풀린 구혜린이 손가락을 들어 마현의 볼을 길게 잡아당겼다.

“적어도 이렇게 놀림 받는 것보단 낫잖아?”

“놀림 받는 게 더 나아요.”

“……그런가.”

그럴 리가.

라는 생각이 동시에 공존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구혜린의 기분을 더욱 안 좋게만 할 테니 말이다.

“후아…… 우리, 저질러 버린 것 맞죠?”

“이 나이에 저질렀다고 하기엔 뭐하지 않나.”

“그러게요.”

하기야, 마현이나 구혜린이나, 성혼을 하고도 남았을 나이다.

저질렀다기보다는, 드디어 해냈다라는 표현이 옳을 정도였다.

“푸후…… 마 소저가 돌아오면 크게 화를 내겠어요.”

“분명히.”

공서하랑 그렇고 그런 분위기를 바랐는데, 보지 못하는 동안 결국 이렇게 돼버렸다.

마연이라면 분명 화를 낼 것이다.

분통을 터트리고, 발을 동동 구를 터다.

“뭐 어때. 이미 벌어진 일인데.”

마현은 평소와 같이 여유로 답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현명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게요. 이미 벌어진 일이네요.”

구혜린은, 그 말을 따라 한 후 작은 웃음을 흘렸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스승님, 아버지가 있던 사문을 잃었다.

믿었던 사형에게 배신당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웃었다.

‘적어도 기댈 데 하나 없는 건 아니니까.’

와룡객잔과 와룡서원, 마현이 있다.

또한 이미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던가?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감당하고 살아가야지.’

그렇다고는 해도, 당장 목표나 무언가가 딱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뭐랄까, 여전히 흑천맹은 미웠다.

눈앞에 보인다면 싸울 것이 분명하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발 벗고 찾아 나서 복수를 하겠다며 수라의 길에 들어설 정도로 독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나 이기적인가?’

자연스럽게, 옆으로 몸을 돌려 탄탄한 마현의 가슴에 안기고 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하지만 그도 잠시.

역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마현이 묵묵히, 나신을 끌어안아,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니 그러한 생각이 몇 배는 더 짙어진다. 그래, 잠깐 쉬어 가자. 복수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다짐하지 않았던가?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그냥……

‘그냥…… 말이지.’

그런 것뿐이야.

하나 놈들이 눈앞에 나타나면 누구도 용서치 않을 터다.

지금은, 아직은 완전히 마음속의 칼을 버리기에는 이른 듯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허락이 있기는 했다.

품에 안긴 채, 조용히 마현의 든든한 가슴을 쓸어내린 구혜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잠시 더…… 이곳에 있어도 되죠?”

“물론.”

언제나 그렇듯, 마현의 대답은 믿음직했다.

제십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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