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8화 (9/83)

(第八章)

마현이 가족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와룡서원의 제자들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글공부에서는 이제 대다수의 아이들이 소학의 내편을 끝내고 외편(外篇)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으며, 무공 수련으로는 공간감의 완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이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구 소저의 도움이 크다.’

마음의 안정은 일을 비롯하여 공부의 효율 상승에도 큰 도움을 준다.

아무래도 딱딱해 보이는 남자 스승인 마현 혼자 있을 때와 옆에서 거들어주는 구혜린이 함께 있을 때는 제자들이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예민한 또래의 아이들이니까 더욱 그렇겠지.’

학관에 마현만 있을 때는 마치 아버지만 가진 기분이었을 터다. 하나 구혜린이 얼굴을 보인 이후로는 어머니를 얻은 느낌일 것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야 저절로 마음의 안정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될 것 같군.”

결국 마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이른 때에, 새로운 수련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드디어 제공감을 넘어선, 제공권을 익힐 때가 다가온 것이다.

“모두 모여 보거라.”

신시 말.

한창 짝을 지어 공간감 수련에 빠져 있던 아이들을 불러 모은 마현이 벽에 놓인 연봉을 들어 올려, 새로운 원을 그렸다. 이 전까지 공간감을 수련하던 원형 공간에 비해 조금 더 넓은 형태. 아이들의 눈에는 절로 호기심이 어렸다.

“조만간 새로운 수련에 들어가려 한다.”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최근 글공부보다, 무공 수련에 훨씬 더 큰 재미를 느끼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이유야 굳이 말할 게 있겠냐만은,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달라지는 덕이다.

아침에 운기조식을 하면 몸이 가벼워진다.

묘하게도 어려웠던 제공감 수련은, 시간이 갈수록 특이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움직이는 법이 자연스러워지고, 조금 더 편리하며 부드러워진다.

머릿속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이 주입되며 느껴지는 지식욕(知識慾)과는 다른 종류의 쾌감이었다.

“그러기 전에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부터의 수련은 이전처럼 만만하지 않다. 아무래도 몸의 움직임이 격렬해지며, 아프거나 다칠 수도 있다는 말이지.”

마현의 말에, 여태껏 놀이처럼 수련을 즐기던 아이들의 얼굴에 찔끔한 기색이 어렸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듯했다.

마현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무공 수련은 글공부와 다르다. 굳이 억지로 참가하려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운기조식을 하고, 지금 얻은 감각으로 생활을 한다면 평생을 건강하게 살기에 무리가 없을 터니…… 다치는 것이 싫다면 그만 빠지도록 하여라.”

냉정한 듯하지만, 마현의 말은 분명한 진심이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다.

당연히 고통이 두렵고, 상처가 무서울 수밖에 없다.

특히 귀한 집에서 자라난 아이 몇몇은 더욱 그럴 터다.

그런 제자들에게까지 억지로 무공 수련을 시키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오성 개발에는 도움이 되고, 글공부에 부족함이 없을 터니 무리해서 더 무공 수련에 나설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 익히게 될 것은 진짜 무공.

자신을 지키고 생명을 베는 데 사용해야 할 것들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욱 냉정하게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이 아이들을 위해 고민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것이 스승으로서 마현의 몫.

하나 그렇다고 한들, 중요한 결정까지 강제로 행하게 할 수는 없다. 특히 자신을 위한 단련(鍛鍊)은 더욱 그렇다. 억지로 행하면 언젠가 부러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마음이 서서, 스스로 행할 때 수련은 올바른 길로 향한다.

“혹시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무공을 익히지 않는다 하여 차별하지 않을 것이며, 그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공부를 내려줄 터니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또 많은 아이들 앞에 나서기는 힘든 마음이 약한 제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을 주마. 혹시라도 더 이상 무공 수련을 하고 싶지 않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그만두겠다고 하여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타박을 하거나 내치지 않을 테니, 걱정은 접어두도록 해라.”

마현의 말에, 아이들 모두가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에, 마현은 내심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였던 듯했다.

모든 아이의 눈빛에 열망이 보였다.

‘포기하지 않겠다…… 인가.’

이미 무공 수련의 재미에 맛을 들여버렸다.

이제 와서 조금 다칠 수 있다고 물러난다고?

아무래도, 와룡서원의 제자들은 그 정도로 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 * *

그 뒤로 칠 주야를 더 기다렸지만 아이들 중 그 누구도 마현을 찾아오지 않았다. 처음 예상했던 대로, 모두의 마음에 결심이 섰던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나아가는가.’

아이들은 마현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쉽게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적으로도 이미 충분히 커다란 성장을 이루고 있는 아이들을 둔 채로 말이다.

“하면, 오늘부터 이(二) 단계 수련으로 들어간다.”

마현의 선언과도 같은 말에 아이들의 두 눈동자가 반짝였다.

안 그래도 언제 시작하나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모두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좋으시겠어요.”

옆에서 지켜보던 구혜린이 작은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제자들이 열성적으로 배우면 가르치는 스승도 흥이 나는 법이다. 이는 분명 사제 관계에 있어 변하지 않을 만고불변의 진리일 터다.

“아무래도.”

짧게 대답하며, 다시 한 번 커다란 원을 그린 마현이 연봉을 둘 들어, 하나를 구혜린에게로 던졌다. 조금 놀란 얼굴이지만 재빨리 연봉을 받아낸 구혜린이 의문 가득한 표정을 보낸다.

“지금부터 너희가 할 수련에 대해, 구 소저와 함께 시범을 보여주겠다.”

“…….”

난 지금 처음 듣는 말인데?

황당한 표정의 구혜린이었지만, 굳이 거부를 하지는 않았다.

어떤 수련을 할지는 모르지만 결국 무공에 관련된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마현과 직접 봉을 맞대어 싸우다 보면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 분명할 터. 이는 최근 몇 개월간 그녀가 바라마지 않던 상황이었다.

“안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예.”

마현을 따라 원 내부로 들어선 구혜린은 아직 아무런 설명을 듣지 않았음에도, 수련의 목적을 단번에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이 원…….’

평범하게, 대충 그린 듯하지만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원 내부로 들어서서, 마현을 마주하는 순간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으로 제어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누가 더 많은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지 심적 싸움이 벌어진다. 이미 원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대련이 시작되는 것이다.

꿀꺽.

이거 장난이 아닌데?

침을 삼킨 구혜린이, 조금 굳어진 얼굴로 봉을 들어 올렸다.

은하검결류는 그 이름처럼 검술이지만, 봉으로 이용할 수 없는 무공은 아니었다. 위력이 조금 떨어진다 뿐, 충분히 봉으로도 펼칠 수 있다.

“대련하잔 것, 맞죠?”

구혜린의 질문에, 마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이미 들어선 순간 모두 느낀 사실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물은 이유는 하나뿐이다.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역시 배려가 깊은 여자야.’

마현은 그런 구혜린에게 살짝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혜린은 묵묵히 봉을 마현에게로 향한 채 내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확실히, 다칠 수도 있겠어요.”

이제부터 제자들이 할 수련은, 이러한 원 내부에 들어서 두 사람이 대련을 하는 것이다. 함께 연봉을 들고 격렬하게 부딪치며, 좁은 공간에서 싸우는 만큼 다칠 수밖에 없다. 특히 아직 어린아이들의 경우는 실수가 잦은 만큼 더욱 그렇다.

구혜린이, 질문과 같은 설명으로 다시 한 번 아이들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려준다.

직후로는…….

쒜에엑-!

빠른 속도로 연봉을 정면으로 내뻗는다.

마현은 가볍게 왼발을 틀어 공격을 피한 후, 자신의 연봉을 가볍게 퉁겨 반격에 나섰다.

“읏……!”

나름대로 좋은 기습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란 표정의 구혜린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났다. 직후 다시 한 번 정면을 바라보니, 마현이 싱글벙글 웃으며 봉을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여유 부리는 거야?’

그러고 보니.

어느새 발뒤꿈치가 원을 이루고 있는 선 끝에 걸쳐져 있었다.

연속해서 공격이 이어졌다면 이미 바깥으로 쫓겨났을 터.

그것은 곧, 패배를 의미했다.

‘고작 일 수만에?’

그것도 기습까지 했는데…….

아무리 봉이 검에 비해 어색하다고는 해도 너무나 큰 실력 차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야 그저 공격하고, 반격한 일일 뿐이지만 구혜린이 느끼는 감각은 그보다도 훨씬 더 높은 벽이었다.

“다시 갈게요.”

신중한 표정으로, 짧게 말한 구혜린은, 말을 내뱉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대체 어디로?’

좁은 공간, 기다란 연봉을 크게 휘두르면 어떻게든 마현에게 닿아야지 정상이다. 한데 무슨 수를 쓰더라도 연봉을 맞출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원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공간에 보이지 않는 마현의 손이 존재하는 듯했다. 내뻗으면 막히고, 반격당한다. 이후로는 또다시 같은 꼴이다.

‘어디로 가든.’

사방팔방 그 어디에도 명확한 활로가 없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차였다.

여유롭게, 봉을 땅에 짚고 있던 마현의 자세가 바뀌었다.

이 전보다 진중한, 기수식을 취한 느낌이다.

‘빈틈!’

그 짧은 시간 사이, 공간 전체를 장악하던 마현의 보이지 않는 손 일부가 사라졌다.

구혜린은 망설이지 않고 그 틈을 파고들어 봉을 휘둘렀지만, 이번에도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파앗!

구혜린의 봉이 허공을 가른다.

처음부터 만들어진 함정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알고도 밟은 거라고!’

함정이 아니면, 뚫을 수조차 없으니까.

그리 생각한 구혜린이, 짧은 움직임 사이에 보이는 또 다른 틈을 노리며 봉을 내뻗으려 할 때였다.

“아얏!”

머리 위로 부드러운 충격이 짧게 오갔다.

어느새 마현의 봉이 그녀의 머리 바로 위로 정확하게 떨어진 것이다.

“이승째로군요.”

“……치사해.”

그래도 나름대로 무공 실력이라면 자신 있는데, 너무 압도적이다. 그렇다 보니 딱히 반칙을 쓴 것도 아닌데 치사하단 말이 먼저 나왔다. 이래서야 아이들에게 수련을 설명한 정도가 전부지 않은가? 물론 그러기 위한 대련이었지만…….

‘면목이 안 선다고, 면목이!’

하여간에 이 정도쯤은 배려해줘도 나쁘지 않잖아.

그런 생각이 들지만, 끝내 고개를 내저으며 포기하고 만다.

마현은 꽤 생각이 깊고, 여유를 부리는 듯하지만, 배려라는 부분에서 꽤나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마 본인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베풀려 하고, 나누려 하지만, 양보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한데 이게 단순한 욕심 탓이 아니다. 정말로, 어딜 봐도 배려를 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말을 할 때도 그랬다.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을 해서 말을 한 것이었겠지만…….

‘솔직히 누가 그런 말을 듣고 빠지겠냐?’

다행히도 아이들 모두가 열정적인 터라 크게 개의치 않았을 뿐, 소심한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번 일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결국 그랬다.

마현은 최대한 노력을 하여 배려한다 생각하지만, 그게 부족하다. 아마 본인은 잘 모르는 스스로에 대한 약점일 것이다.

‘쓸데없이 정(情)이 많아 보이는 것도 그렇고 말이지.’

알기는 알까?

가볍게 한숨을 내쉬는 구혜린을 무시한 채,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린 마현은 부가설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대충 보아서 알겠지만 규칙은 간단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원 바깥으로 나가지 않은 채 대련할 것. 그것 하나뿐이다. 궁금한 점…… 은 없어 보이는군.”

조금 전 마현과 구혜린의 대련이 꽤나 흥미로웠던 것일까?

아이들은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두 눈에 어서 대련을 해보고 싶다는 열정만을 불태우고 있는 채였다. 하긴 워낙 간단한 수련이니 더 물을 것도 없었다.

‘물론 직접 한다면 또 속사정이 달라지겠지만 말이지.’

하지만 그는 직접 겪어보아야지만 알 일일 터.

마현은 묵묵히, 아이들을 위한 원을 그리며 웃음을 흘렸다.

뭐가 어찌 되었든, 제자들이 열정을 보이니 흥이 나는 감정을 감출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 *

제공권 수련, 그 이 단계.

제한대련(制限對鍊)은 말 그대로 여태껏 익힌 제공감을, 한정된 공간 내에서 계속해서 부딪쳐 나가는 훈련이었다. 당연히 원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대련은 시작된다. 또한, 짧은 눈빛 교환만으로 누가 더 선수(先手)인지 알게 된다.

문제는 꼭 선수가 이기란 법은 없다는 뜻이다.

상대방이 일부러 보여준 빈틈일 수도 있고, 그 사이를 잘못 파고들었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 혹시 실수를 하면 단번에 대련이 끝나버리고 만다.

덕분에 아이들 입장에서도 제한대련장 내부로 들어서고 나면 눈치를 많이 보게 되었다.

‘그 눈치가 곧 제공권의 수련이지.’

한 걸음 떨어져,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는 마현이었다. 눈치라고 표현했지만, 정확하게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제공력의 싸움이다.

어느 쪽이 더 공간을 잘 제어하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

눈치를 보기만 하며, 기회를 놓칠 때도 잦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아이들은 이 싸움에 능숙해지고, 새로운 한계를 뚫고 나아갈 것이다.

‘제공권의 습득.’

강호인이라면 그 누구든 바라마지 않는 육감(六感)의 형성이다.

“정말 당신, 사람 맞아요?”

그런 마현의 옆에 서, 아이들을 지켜보던 구혜린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처음 제공감 수련을 보았을 때부터 의아했다. 한데 이번 제한대련을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수련으로 제공권을 형성시킨다.

그 누구도 행하지 않았던 기발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하늘이 내린다는 재능을 건네주는 것이다.

자연스레 감탄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문파 비전(秘典)의 수련법을 가진 은하검결류에도 이 정도로 기발한 수련은 없었다.

그래, 그것만으로 놀랍다.

한데 사실 구혜린을 경악하게 만드는 사실은 따로 있었다.

현재 마현이 아이들에게 일러주고 있는 제공권 수련은, 알기만 한다면 그 어느 대문파에서도 마다치 않고 시행할 무공 수련계의 새로운 충격을 제시할 신체계였다.

한데 마현은 그러한 특별한 수련법을 서원 내에서 제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가르치고 있다.

딱히 직계제자도 아니고, 그저 글공부를 하러 온 아이들에게 말이다.

아니, 그래 이것도 그렇다 치자.

표현은 잘 못 하지만, 마현이 제자들에게 가진 정과 사랑을 생각한다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데, 그걸 이렇게 공개적으로 보여준다고?

‘나는 신경도 안 쓰이나?’

지금 당장 이 교육법만 들고 나가서, 각 대문파에 전수해주기만 해도 구혜린은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을 터였다.

말 그대로 비기의 전수니 그 누가 마다하고 돈을 아낄까. 한데 마현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구혜린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련 광경을 보인다.

나름대로 공간감 수련에서 도움이 됐다고는 하지만, 역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뭐가 말입니까?”

한술 더 떠.

그러한 구혜린의 심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터인데도, 개의치 않아 한다. 그녀는 알고 있다. 마현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머리가 엄청나게 좋은 유형이었다.

결국 모르지 않으면서 묻는다는 뜻이다.

“제가 이 수련법, 들고 날라서 어디 가서 소문내면 어쩌시려고요?”

“그러실 겁니까?”

물론, 전혀 그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끝을 알 수 없는 막대한 무공?

아니면 아무렴 상관없다는 진짜 자만?

‘그도 아니면…….’

대체 뭐야.

영문을 알 도리가 없다.

아니, 하나 있긴 있었다.

마현이 무슨 생각으로 이리할 수 있는지.

하지만 이 역시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묻게 된다.

“절…… 믿고 계신 건가요?”

제법 가깝게 지내오고 있지만, 본래 남남의 사이다.

식구 취급을 받고, 마 씨 일가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구혜린은 그를 영원한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한동안, 함께 지내는 동안 오가는 정일 뿐이다.

그러니 서로 믿고 신뢰하여 깊은 곳까지 내비칠 수는 없다.

그녀가 마음속으로 검을 세운 것을 마현에게 밝히지 못하듯 말이다.

“안 믿을 이유도 없으니까요.”

마현은 제법 간결하게 답했다.

말 그대로 너무나 간결해서, 이게 진심일까 싶은 말투였으며, 실제로 시선도 구혜린이 아닌 아이들에게로 향한 채였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충족감이 차오른다.

‘대체 왜?’

구혜린은 당황했다.

이 충족감은 뭘까?

멸문지화 당하고, 스승이자 아버지마저 잃었다.

남은 것은 무엇 하나 없으며, 외로운 사투를 이어나가야만 한다. 한데 마현이 옆에서 이리 말해주니, 자신도 모르게 따뜻함을 느껴버리고 만다.

그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믿음직한 등을 보고 있노라면…… 그 품에 안기고 싶어진다.

‘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구혜린은 재빨리 고개를 내저어 감정을 떨쳐냈다.

‘사치, 사치야.’

마음속에 검을 세운 그녀에게 있어, 마현이 건네주는 감정은 사치일 뿐이다.

구혜린은 다시 한 번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절대로 이래서는 안 된다.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는 것이다.

제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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