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章)
그렇게 짧은 사건이 오간 후, 저녁의 바쁜 시간대까지 지나갔다. 슬슬 객잔의 영업을 종료할 시간. 드디어 기다리던 가족들 간의 특식 시식(試食)의 때. 분위기는 자연스레 고조되었다.
‘이번에는 어떠한 요리를 내놓으실까?’
마현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여름 특식이라지만 꼭 시원하고, 상큼한 종류의 음식만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때로는 여름을 닮은 화끈하고 뜨거운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기도 한 것이다.
하나 이는 마전이 혼자 특식을 준비할 때였다.
이번에는 마전과 마정, 두 부자가 모두 요리를 준비했다.
서로 간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같은 종류의 요리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쪽이든 맛이야 훌륭하겠지.’
자그마치 광동성 내에서 손가락으로 꼽히는 숙수와 그 아들이 만든 요리가 아니던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은 사람이 가진 순수한 행복 중 하나라더니. 마전의 말이 틀릴 바 하나 없었다.
조금씩, 음식 냄새가 주방으로부터 짙어지자 가족들 모두의 얼굴이 밝게 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연이랑 구 소저도 괜찮은 것 같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로에게 관심을 전혀 두지 않고 있는 것이지만, 처음의 쌀쌀맞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편이 나았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더 흐르자…….
“요리가 완성됐다.”
주방에서 두 부자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각자 요리는 내오지 않은 채였는데, 얼굴에 쓰여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아주 잘 만들어졌구나.’
둘 다 얼굴에 자부심이 배어 있다.
무슨 생각을 했든, 가족들은 아마 오늘 최고의 요리를 남들보다 먼저 선점하게 될 터였다.
“우선 제 것을 내오겠습니다.”
“그러도록 해라.”
마정이 먼저 나서자, 자리에 앉은 마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주방에서 마정이 자신만만하게 들고 나선 것은 준비해두었던 동벽용주였다.
“오오…….”
“와아…….”
“동벽용주라!”
식구 모두가 눈을 빛내며 마정의 손에 들린 접시를 바라보며 감탄을 흘렸다. 예쁘장한 꽃무늬 장식의 접시 위로 마치 용의 눈을 떠올리게끔 하는 황금빛 알이 줄을 지어 서 있다.
그것만으로 이미 음식의 미(美)가 주는 예술이라 할 법한데, 풍겨 나오는 달콤한 향 역시 후각(嗅覺)을 강하게 자극해 버린다.
고작 작은 완자 몇 개로, 등장부터 사람들의 시각과 후각을 완벽히 자극했다.
처음 선보이는 요리의 등장으로서는 아주 훌륭한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여름이라는 특색에 맞춰 조금 색다르게 조리를 해볼까 생각도 했습니다만…… 어설픈 재주를 부리기보다는 가장 기본에 충실한 형태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옳은 선택이었다.”
마정의 설명에, 듣기만 하던 마전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안이라는 과일의 특색과 동벽용주라는 음식의 특징은 이미 여름이라는 때에 잘 맞춰져 있다.
괜한 욕심을 부렸다가 음식의 균형을 흐트러트리면 그편이 손해.
결국 자식 놈이 잘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 수밖에 없었다.
“어디 한 번, 먹어보자꾸나.”
접시를 내려놓자, 기대 가득한 얼굴의 마전이 먼저 젓가락을 들어 동벽용주를 집어 들었다. 나머지 식구들은 그 뒤를 따라 곧바로 젓가락을 움직였다.
이후 모두가 맞추기라도 한 듯, 동벽용주를 동시에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마정은 긴장 반, 기대 반이 섞인 눈초리로, 그러한 식구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음.”
가장 먼저 음성을 흘린 이는, 마전이었다.
짧은 신음을 흘린 마전은 입안에 든 동벽용주를 계속해서 씹으며 다양한 표정을 보였다. 기쁜 듯하다가도, 울 것 같고, 그러다가도 왠지 즐거워 보이는 느낌의 그 모습에, 마정의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느려졌다를 반복했다.
다른 가족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두 눈을 감은 채, 마정이 만들어 온 동벽용주를 씹으며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전과 다르게 대다수의 표정에는 주로 감탄이 어렸다는 것이었다.
“너무, 너무 맛있어요.”
두 번째로 입을 연 것은 구혜린이었다.
그녀는 감탄했다는 듯, 놀란 눈초리로 마정을 바라보았다.
이미 와룡객잔의 식사에 꽤나 길들여진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정말 요리가 잘 되었다는 뜻이다.
자연스레 마정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
“정말 최고야, 오빠. 너무 맛있어. 이거 해남파로 돌아갈 때 조금 싸갈 수 없을까?”
“멋집니다, 형님. 환상적인 맛이에요.”
뒤를 이어 가족들 모두가 입을 모아 마정의 동벽용주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맛있다.
모두의 마음이 하나와 같았다.
“많이 늘었구나.”
마현 역시 칭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학문을 일러줄 수도 있고, 무공을 늘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요리 실력을 단번에 늘릴 방법은 없다.
물론 주술진을 통한 기본적인 오성을 개방시켜, 마정의 숨겨진 재능을 일깨워주기는 했다. 한데,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이 역시 놀라운 성장이다.
다른 동생들이 무공에 열중하여 자신의 실력을 쌓아갈 때, 아무 말도 없이 있던 마정은 자신만의 공부에 또 다른 경지를 개척해낸 것이다.
기특한 일이다.
“이거…… 과일의 단맛과 돼지고기 특유의 씹는 맛이 너무 잘 어우러져요. 그리고 뭐죠? 이 고소함은…….”
“새우요.”
초이영 역시 놀란 눈초리로 칭찬하자, 작은 웃음을 흘린 마정이 부가설명을 붙여주었다.
“버섯도 들어간 것 같군요.”
마운이 뒤를 이어 말을 덧붙였다.
역시 와룡객잔의 식구들이랄까?
다들 한 미각 하는 인물들답게 단숨에 동벽용주의 재료를 맞춰나갔다.
“그런데…… 처음 씹을 때 이 바삭함은 뭔가요?”
구혜린의 질문이 이어지자, 그때까지 맛을 음미하고 있던 가족들의 몸이 흠칫, 하고 떨려왔다. 사실 가족들 대부분이 아직까지 동벽용주를 씹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달콤하고, 고소하고, 씹는 맛이 있는데, 처음엔 바삭하기까지 하다.
대체 무슨 수를 쓰면 이리된단 말인가?
단순히 계란을 입혀 완자 튀김을 했다고 느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건…….”
“당과 부스러기다.”
마정의 말을 끊고, 질문에 답을 한 것은 그때까지 묵묵히 눈을 감고 있던 마전이었다.
“제법이구나. 동벽용주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단맛을 더욱 강화하고, 신선하다 느낄 법한 바삭함까지 잡아냈어.”
“……감사합니다.”
마전의 칭찬에, 잠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감격한 표정을 지은 마정이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제법이다.’ 라는 짧은 말. 그리 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말인 듯했지만, 마정에게는 의미가 깊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이다.’
처음으로, 요리를 하여 마전에게 제법이다는 말을 들었다.
단순히 요리를 해보라며 인정을 받았을 때와는 또 달랐다.
진심으로 감격이 차오른다.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감돈다.
마정은 떨리는 몸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아차, 했다가는 동생들과 자식까지 보는 앞에서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 너무 욕심을 부린 것도 사실이다. 단맛이 이토록 강하면 처음에는 자극에 감탄을 토하나, 오래 먹을수록 질릴 수 있으니 조금 더 생각을 깊게 해보아야 할 것이다.”
“노력하겠습니다.”
마정은 긴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나도 실수하지 않은, 완벽한 요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음식의 비율을 잘 맞춰 균형을 잡아낸 것만으로 목표는 달성했다. 무엇보다, 아버지. 마전이 인정하지 않았는가? 그것이면 되었다.
실수한 점은 여름 특식을 내놓기 전까지 다시 맞추면 된다.
마정의 뿌듯한 미소를 보며, 보이지 않는 웃음을 흘린 마전이 몸을 일으켰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
“예, 아버지.”
그 묘하게 딱딱한 모습에, 작은 미소를 그린 마현이 답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입가심을 위한 차는 제가 내오겠습니다.”
뒤를 이어 일어선 마정이 다시 한 번 주방 내로 들어섰다.
“차 한 잔씩들 하며, 조금만 기다리거라.”
마전 역시 그 뒤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섰다.
마정이 달인 차가 나오고, 입가심을 시작한 식구들의 얼굴에는 또다시 흥미가 어렸다. 아직 요리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주방에서부터 맑고도 고소한 향이 퍼진다. 수많은 요리 중, 끓이는 과정에서부터 향을 전하는 음식 종류는 하나뿐이었다.
‘탕인가?’
마현을 비롯한 모든 식구가 눈을 감은 채 주방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고소한 향을 음미했다.
“자, 준비됐다.”
황홀한 감각에 빠져 있다 눈을 떴을 때는, 어느덧 마전이 자신의 요리를 식탁 위로 올려둔 뒤였다. 마현은 내심 또 한 번 감탄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음식 솜씨가 정녕 신선(神仙)의 경지에 달하셨구나.’
음식의 향을 맡는 것만으로 정신의 일부가 다른 곳을 노닐다 왔다. 본격적으로 맛을 보기도 전에, 상상만으로도 맛을 떠올리게끔 했다는 뜻이다.
정녕 대단한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이게 뭔가요?”
그 속에서, 감탄 섞인 눈빛을 한 초이영의 호기심이 이어졌다.
원형 식탁 위에 놓인 것은 뚜껑이 덮인 커다란 냄비였는데,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는 향이 너무나 다양하여 대체 어떤 요리인지를 짐작할 수 없던 탓이었다.
‘육류(肉類)이긴 육류인데…….’
마현을 비롯한 다른 식구들도 기대가 가득한 눈동자로 식탁의 중심을 바라보았다.
“이건 말이다…….”
그런 분위기를 즐기듯, 잠시간 뜸을 들인 마전이 뚜껑을 천천히 열어젖혔다. 확, 하는 새하얀 김이 허공으로 흩어져 나오며 식구들 모두의 시선을 흩뜨렸다. 마현은 안력을 돋우어 그 내부를 살펴본 뒤 가장 먼저 박수를 쳤다.
“그랬군요!”
뒤이어 김이 걷히며, 다른 가족들도 그 내부를 알 수 있게 됐다.
“아……!”
“자라……!”
“그리고 닭이군요!”
냄비 속에 들어 있던 것은 다름 아닌 한 마리의 닭과, 작은 자라였다.
“패왕별희(覇王別姬)다.”
“그 유명한 서주의…….”
마정이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의 특산 요리 중 하나인 패왕별희는 그 이름에 사연이 담긴 특별한 음식이었다.
초한(楚漢) 분쟁 당시,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불리던 항우(項羽)는 유방(劉邦)의 계략에 빠져 벗어날 곳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이때 당시 심란에 빠져 있던 항우의 기분을 풀어준 것이 바로 이 패왕별희라는 요리였다.
“당시 패왕의 부인이었던 우희(虞姬)가 만들어낸 요리였죠?”
구혜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패왕별희에 얽힌 사연은 이미 하나의 구설을 지나 연극으로까지 확장되어 중원 내에 넓게 알려지고 있는 이야기였다.
“맞다.”
“패왕과 부인이었던 우희의 이별을 말하는 음식이라…… 왠지 먹기 전에 슬퍼해야 될 것 같지 않습니까? 하하.”
분위기를 적당히 풀어주는 마운의 농담에.
“패왕별희의 국물은 우희의 눈물이다는 말도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겠네.”
적당히 받아준 마연이 기대되는 눈빛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먹어도 되냐는 의미였다.
“먹어보자꾸나.”
마전이 요리사로서 한 걸음 물러난 덕에, 가장 연장자가 된 마현이 짧게 말을 하며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먼저 손이 가는 것은 역시 닭고기 위에 오른 자라였다.
“하…….”
고기를 때어내는데, 워낙 부드럽게 들어 올려져 우선적으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어찌하면 이렇게까지 고기를 잘 익힐 수 있는지, 놀라움의 표현이었다.
“그럼 우리도……!”
다른 가족들도 빠르게 자라의 몸에 손을 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나 부드럽게 뜯기는 고긴데, 힘없이 부서지거나 쓸데없이 뭉치지 않는다. 정확하게 열기를 조절해 잘 익혔다는 말이다.
“음……!”
그러한 자라 고기를 입에 가져가 씹자, 처음부터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 맛은…….”
가족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늘였다.
자라 고기를 먹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자라와 닭, 두 종류의 고기밖에 들어 있지 않은 패왕별희에서 이토록 다양한 향이 날 수 있는지.
‘처음 씹을 때는 사슴고기 맛이 나더니…….’
두 번째 씹을 때는 소고기의 감미로운 부드러움이 이어진다.
그리고 세 번 씹자 양고기 특유의 향이 몰려오고, 네 번째로는 돼지고기 특유의 고소한 맛이 입안 전체를 감돌아 버린다. 그야말로 절로 박수가 나오는, 풍취 가득한 요리라 말할 수 있었다.
“허…….”
짧은 탄식을 흘린 가족들의 손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닭고기를 뜯어 먹으며 또 다른 풍미를 느끼고, 자라의 배를 뜯어 내부에 담긴 알을 꺼내 먹을 때는 한 번 더 감탄을 흘린다. 정신없이, 마지막 육수까지 입안에 털어 넣은 뒤에는 모두의 감상이 하나로 일치되었다.
“최고로군요.”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아니, 그 어떤 다른 단어로도 대체할 수가 없는 것뿐이다.
최고의 요리다.
자라와 닭을 먹어서인지, 여름 특유의 보양식이라는 기분도 나며 온몸에 힘이 감도는 느낌이었다. 맛도 있고, 영양에, 풍취까지 잡았다. 마정의 요리도 훌륭했지만 역시 아직 마전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봐요.”
“어떻게 아버지는 해가 갈수록 요리 실력이 느시는 건지…….”
“아빠도 어떤 의미로는 무지막지하다니까.”
다른 식구들의 칭찬에, 마전은 웃음을 흘리며 기분 좋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허허허…….”
자신이 만든 요리를, 식구들 모두가 즐겁게 먹고 행복해한다.
기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마현이 사라진 이후, 십 년간 완성되지 않던 자리가 오늘에서야 완벽히 만들어졌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마전이 바라던 행복한 가정이었으니 말이다.
“허허허……!”
절로, 웃음소리가 더욱 높아져만 갔다.
제팔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