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학문 공부에 이어, 무공 수련까지.
겨울의 추위마저 단련의 열기로 녹여버린 탓일까?
와룡서원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어느덧 봄.
추위가 가시고, 여기저기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꽃과 풀들이 서서히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아이들은 새로운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 본래보다 반 시진 빨리 일어나 운기조식을 하여 내공을 쌓고, 공부가 끝난 후로는 제공감을 단련한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서로 간의 재능에 따라 실력 차이가 갈라져, 짝을 다시 맞추는 번거로운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정말이지 우연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한 바인지. 앞서 나가면 앞서 나가는 대로, 뒤처지면 뒤처지는 대로. 서로 간에 비슷한 수준에 맞는 아이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덕이었다.
‘슬슬 내공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줘보도록 할까.’
언제나 말하지만, 마현의 능력은 다양하다.
개중에는 내공의 성장을 촉진 시킬 수 있는 영약제조 능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겨울 내에는 쓸 만한 약초들이 모두 죽어 그러한 영약제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봄이 오며 상황은 뒤바뀌었다. 생명이 넘치는 계절이니만큼, 훌륭한 약초들이 산 이곳저곳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덕이다.
“어디 보자.”
마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등 뒤로는 망태기를 쥔 채 산을 헤맸다. 이 산, 저 산을 오간다는 말이 있다. 따지자면 방황한다는 뜻인데, 그리 치자면 분명 마현도 방황을 하고 있었다.
옆 산에 갔다가, 앞산으로, 그다음에는 너머 산으로. 정말 많이도 오갔다. 보통 산을 방황하는 이와 다른 점이라면, 고작 한 시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그 많은 거리를 오가며 약초를 캤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뒷산 정도만 돌면 되려나.’
그쯤하고 나면 열 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보름간은 먹일 수 있을 만큼 약초를 재배할 수 있을 듯했다.
‘운 좋게 진짜 영초라도 보이면 더 좋은 것도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아직 마현의 운이 거기까지는 닿지 않은 듯했다.
어디를 뒤져봐도 진짜 영초로 불릴법한 만년하수오나 천년설삼은커녕, 백년하수오나 오십년설삼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조금 멀리 가면 있기는 한데…….’
기감의 영역을 끝도 없이 확장해 본 마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무리 마현이라 하여도 이 정도 거리를 움직이려면 왕복해서 이틀은 소모해야 한다.
아직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일진대, 그만한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은 분명한 무리였다.
“음……?”
대신해서, 다른 것이 마현의 기감에 걸려들었다.
방금 막 오르려던 마을 뒷산의 깊은 곳에서부터 기와 기가 격돌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조금 더 집중을 하면,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싸움이로군.’
마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반적인 선택이라면, 무시하는 것이 편하다.
괜한, 그것도 강호의 일에 연루되면 여러 가지로 골치 아파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나 최근 들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탓일까? 마냥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선인(善人)이 악인(惡人)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제자들을 보며 늘 생각한다.
언젠가 이 아이들이 커, 세상에 나아간다면 올바르게 살기를.
또한 부당한 일을 보고 외면하지 않고 맞서주기를.
‘스승을 보고 제자가 배운다 하였다.’
아무리 보이지 않는 곳이라지만, 스승이 이미 그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데 제자들이 바라는 대로 클 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가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나.’
결국 마현은, 등에 망태기를 짊어진 채 싸움이 일어난 장소로 발걸음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스승이 되기란, 역시나 어려운 일이다.
* * *
강호에는 기인이사가 많다고들 한다.
그만큼 감춰진 이야기와 전설이 다양하다는 뜻이다.
개중에는 무림의 평온기에는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위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강호를 구제하는 신비문파에 대한 것도 있는데, 구혜린(球慧麟)이 속한 은하검결류(銀河劍結類)가 바로 그에 속했다.
‘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온 거지…….’
구혜린은 지금 깊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고작 보름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쫓기고, 쫓기다 보니 딱히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왜?’
짧은 말이었지만, 많은 의미가 담겨 있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일이 이렇게까지 된 거지?
흉수(兇手)는 누구일까?
내 뒤를 쫓는 자들은 몇이나 되는 거지?
하지만 이제 그러한 의문도 지겨워지고 있었다.
그냥 지친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다.
허망스럽다.
그만두고 싶다.
절망적인 생각들만이 그녀의 뇌리를 감싸고 있었다.
‘검이 이렇게 무거웠나?’
처음 무공을 익혔던 당시가 일곱 살이었다.
고작 칠 세 때에 들었던 목검보다, 지금 들고 있는 철검이 몇 배는 무거웠다. 아니,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이 따로 있었다. 양다리. 도저히 가눌 수가 없을 정도로 무거운 그것은, 몸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불편할 정도였다.
‘없는 게 편할까?’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순간.
“하…….”
구혜린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미쳤구나, 너.
스스로 다리를 자를 생각을 하다니.
정말 죽을 때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아, 모르겠다…….”
구혜린은 제자리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버렸다.
엉망이 된 머리카락에 흙먼지가 꼬이고, 잘 가꿔 입었지만 여기저기 해진 무복 사이로 간지럽고 귀찮은 풀들이 파고들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어차피 죽을 건데 뭐.’
쫓기기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싸지도 못했다.
놈들은 집요하고, 지독했으며, 끔찍할 정도로 악착같았다.
베고, 베고, 또 베어도 나타난다.
‘조금 전에도 다섯 정도 베었나?’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얼마 안 되네.’
였다.
그럴 수밖에.
근 한 달 동안 쫓겨 다니며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베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무슨 사람 목숨이 벌레 값도 아니고…….
검에서 피가 흐르지 않은 날을 본 게 언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이제 와서 포기한다고 한들 그 누구도 욕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어쩔 수 없다. 최선을 다해보았고, 미치도록 살기 위해 발악해 봤지만 이제는 한계다.
‘스승님…… 이해해주실 거죠?’
끝으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한다고 외치던 스승님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죄송…… 해요.’
눈가에 방울이 맺히며,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눈물 탓이 아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막을 수 없다.
누군가 복부를 검으로 쑤셔도 꿈틀댈 기력조차 남지 않았다.
그러니까, 진짜 어쩔 수 없다.
부스럭.
그런 구혜린의 마지막 시선에, 풀숲을 가르는 사람이 보였다.
‘진짜…… 끝이네요.’
여태껏 복면 쓴 저 쓰레기들을 많이도 베었지.
한데, 마지막으로 등장한 적은 참으로 기묘했다.
흐릿한 시야 속이지만 복면을 쓴 것 같지도 않고, 특유의 검은 옷을 입지도 않았다.
‘등에 뭘 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더 이상, 의식을 붙잡고 있을 힘이 없었다.
* * *
풀숲을 가르고 나타나, 쓰러져 있는 여인을 발견한 마현은 가볍게 옆머리를 긁적였다.
‘독에 당했군.’
뿐만이랴.
여기저기 많이도 베였는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어떻게 하지?’
그런 그녀를 보며, 마현은 고민에 빠졌다.
마음먹고 치료를 하고자 하면 못 할 게 어디 있으랴?
내상까지는 아니어도, 외상 정도는 단숨에 낫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었다.
‘지독한 혈향.’
단순히 자신의 상처에서 나는 피 내음이 아니다.
몇이나 뒤섞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피 냄새가 누워있는 여인의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셀 수도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뜻이다.
‘마녀(魔女)일 수도…….’
하면 여기서 마현이 그녀를 치료해주는 것이 오히려 악행(惡行)이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면 죽는 것이 낫다. 무조건 사람이라 하여 살리고 보는 것은 선행(善行)이 아니다. 마현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적어도 자신만의 기준을 똑바로 세울 줄 알아야 한다고 여겼다.
‘세상이 그만큼 험하니까 말이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놓아두면, 반 각 안에 숨을 거두겠군…….’
그러던 차, 멀리서부터 그녀를 쫓고 있던 인물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슬쩍 고개를 들어 추격자들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마현은 큰 거리낌 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살려야겠네.”
무슨 말일까?
검은 옷을 입은 채, 복면을 쓰고 나타난 무인들이 의문을 느낀 순간이었다.
“복면 쓰고 나타난 놈들치고, 깨끗한 녀석들 없거든.”
마현의 설명과.
피비빗.
짧은소리가 이어지며 일렬로 나타났던 다섯 복면인의 목이 동시에 허공으로 솟았다. 어떻게 당했는지, 무슨 수를 썼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복면인의 수는 다섯이 전부가 아니었다. 놈들을 쓰러트린 순간, 주변에서부터 천라지망(天羅蜘網)을 펼치고 있던 녀석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많기도 하지.”
사는 마을 바로 뒷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마현은 가볍게 혀를 차며 누워있는 구혜린에게로 다가갔다.
살리기로 마음먹었으니, 가만히 두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우선 백결을 이용해서…….’
꺼져가는 생명의 불길에 힘을 주고, 내부에 쌓인 독기를 방출한다.
‘이것으로 일차적인 문제는 해결.’
단숨에 당장 죽을지도 모르던 여인을 살려낸 마현이 다음 단계의 치료로 나아가려 할 때였다.
부스럭.
또다시 수풀을 가르며 복면인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이번에는 고작 다섯이 아니었다.
마현을 범상치 않다 여겼는지, 주변 일대를 복면인들이 감싼 것이다.
“빠르기까지 하네.”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킨 마현이 작은 웃음을 흘렸다.
“처음 봤을 때는 조금 확신이 없었는데 말이지.”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은.
선두에 섰던 복면인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간 뒤였다.
“언제……!?”
놀라움을 표한 말은,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풀썩.
허공으로 흩뿌려지는 피바람 속, 유유자적하게 조금 전 쓰러진 복면인의 검을 뺏어 들은 마현이 허공으로 손바람을 내저었다. 마치 부채질과 같이, 선선하게 시작된 바람은.
콰앙!
“크아악!”
보이지 않는 장력(掌力)으로 변환하여 수풀 속에 몸을 은닉하고 있던 복면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후로는 들고 있던 검을 지면으로 깊숙이 박았다.
비명도, 신음도 없었다.
그저 바닥을 타고 축축이 흘러나오는 핏물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제야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함을 느낀 복면인들이 주춤하는 순간에는, 마현의 입술이 한 번 더 열렸다.
“너희 흑천맹이지?”
흠칫.
들어선 안 될 이름을 들은 것처럼, 놀란 복면인 몇몇이 몸을 떨었다.
“놀랄 만도 하지.”
나름대로 비밀 조직이라고 다니고 있는데.
자신들을 아는 사람 중, 살아있는 이를 만났으니 경악했을 터다. 역시 직접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지 않은 탓이랄까. 아무래도 마현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혹은 지부 하나를 궤멸시킨 게 한 사람의 소행이라 생각하기에는 어렵든지.’
떠올리고 보니, 이번에도 후자의 추측에 더 많은 힘이 실렸다.
나름대로 자신들의 실력에 자부심도 있을 테니, 개인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놈을 죽여.”
“동시에 몰아쳐!”
숫자를 믿은 것일까?
마현이 예상했던 반응을 보인 흑천맹 무인들이 사방팔방에서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마현은 왼손으로 턱을 짚어 가볍게 쓰다듬은 후, 바닥에 박혀 있던 검을 빠르게 뽑아 들었다.
“이것 참, 오랜만이라…… 너무나 반갑다.”
짧은 말을 남기는 순간에는.
두 눈에서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거대한 악마(惡魔)가 마현의 몸으로부터 튀어나왔다.
크아앙!
마치 괴성을 지르듯 커다랗게 입을 벌린 악마는 그야말로 불사(不死)의 마신(魔神)이었다.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던 검이 악마의 몸에 닿는 순간 마치 종잇조각처럼 일그러진다.
철로 만들어진 검이 그럴진대 사람의 몸이라고 다를까?
우그러지고, 베이고, 뭉개진다. 겁도 없이 덤벼들던 복면인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실수를 했음을 깨닫지만 너무나 뒤늦은 후였다.
이미 검은 끔찍한 검은 악마에게 도달한 뒤였으며.
더 이상 물러날 틈은 없었다.
“죽어서들 보자.”
마현의 짧은 인사말과 함께, 쏟아지던 복면인들 모두가 한 줌의 피 분수가 되어 사라졌다. 지면으로는 악마의 발 모양과 같았던 거대한 강기의 흔적만이 남았을 뿐.
후드득.
쏟아지는 검 조각과, 핏물, 의복 더미 속.
묵묵히 고개를 든 마현이 손바닥을 내뻗었다.
“죽어서 보자는 말, 잊지는 않았겠지?”
우우우웅.
주변으로는 살아있는 인간들의 괴성 대신, 승천하지도 못한 채 지상으로 내려앉은 망자들의 비명만이 맴돌았다.
* * *
죽은 흑천맹 무인들의 영혼을 고문한 결과, 놈들이 절강성에서부터 여인을 쫓았음을 알게 된 마현이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한 달 동안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쉬지도 않고 달려왔단 말이지?’
마현의 기준에서 생각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눈앞에 누워있는 여인, 구혜린의 경지를 생각하자면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초절정 초입(初入)이라…….’
아직 이십 대 후반 정도의 젊은 나이를 생각한다면 엄청난 무위다. 현재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마연이나, 공서하보다도 한 선 윗줄의 고수인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역시 한 달 만에 두 개의 성을 가로질러, 무명현 인근까지 온 것은 엄청난 일이다. 추격당하던 중인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정말 지독할 정도로, 생(生)에 대한 집념을 발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터다.
‘그나저나 이놈들…….’
이전에 비해 대처가 훨씬 더 능숙해졌다.
다른 놈들이라면 모를까, 흑천맹이라면 가만둘 수 없다는 생각에 하루를 소모해 절강성까지 쫓아갔는데, 그새 꼬리를 자르고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 복면인들로부터 연락이 끊기는 순간부터 철수를 시도한 것 같았다.
‘제법 약은 녀석들이야.’
기왕 다시 꼬리를 밟은 김에, 몸통까지 잘라 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아쉬운 일이었다.
“근데 이 검이 그렇게도 탐이 났나?”
그러고 나니 또다시 남는 의문은 놈들이 구혜린을 쫓던 이유다. 벽 한쪽에, 깔끔히 손질돼 서 있는 구혜린의 검은 그녀의 사문(師門), 은하검결류의 보물이자 흑천맹 녀석들이 탐내던 물건이었다.
‘분명 뛰어난 명검(名劍)이긴 한데…….’
마현이 보기에도 감탄이 나올 정도의 보검(寶劍)이니 유성검(流星劍)의 가치가 작지는 않다. 하나 그렇다고 한들, 그 많은 인원을 보내 작지만 문파 하나를 멸문시키면서까지 얻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는 또 모호했다.
‘설령 가치가 있었다고 해도…….’
기묘할 정도의 집착이다.
아쉽게도 놓쳤다면, 포기를 할 법도 하건만.
놈들은 그만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절강에서부터 지치지도 않고 구혜린을 쫓아왔다. 무언가 다른 사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나.’
몇 번이고 유성검을 되살펴 보았지만, 마현으로서도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엄청난 명검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그 외의 특이점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일어나면 물어보면 되겠지.”
마현은 어렵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유성검에 또 다른 사연이 있다면, 은하검결류의 전승자인 구혜린이 알고 있을 터였다. 결국 그녀가 깨어난 뒤에 물어도 늦지 않다는 말이다.
‘상처랑 체력은 회복되었는데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긴 한데…….’
그야 정신적 충격이 크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흑천맹 측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만 해도 꽤나 고초(苦楚)를 겪은 듯했으니, 본인이 겪은 수난은 어땠겠는가?
마현은 굳이 억지로 그녀를 깨우려 들지 않은 채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말했듯, 어차피 할 일은 많았다.
제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