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章)
무명현.
와룡객잔.
와룡서원.
조용한 땅 위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듯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덧 겨울.
대개의 사람들은 옷을 껴입어 체온을 보존하고, 입가로 새어 나오는 새하얀 김을 보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 막 동이 터오는 이른 시각의 추위는 해가 중천에 떴을 때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자연스레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몸은 움츠러들고, 부들부들 떨렸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던 소룡원의 아이들이라 하여도 다를 것은 없었다.
“우우, 추워.”
“장난 아니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소룡원 바깥으로 나온 아이들은, 양손을 모아 입김을 불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덜 추운 것 같아 다행이야.”
“그건 그래.”
와중에 들려온 누군가의 말에, 다른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멍청하기는…….”
가장 일찍 나와 아침의 추위를 맞이하던 정순욱이, 그런 아이들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뭐?”
“정순욱 너 진짜…….”
이제는 정순욱의 말에 소룡원 아이들도 참고 있지만은 않았다.
모두가 나름대로 반박하며 눈을 부라린다. 처음 봤을 때야 접근하기도 어렵고, 기묘할 정도의 고집스러운 눈매 때문에 말을 못 걸었다지만 시간이 흐르며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정순욱도 그들과 같은 와룡서원의 학생이었다. 마현이 가르치고, 그것을 열심히 따라 배운다.
함께 축국을 하기도 하며, 같은 자리에서 글을 익힌다.
웃고 떠들 사이까지는 못 되어도 서로 간에 남남이라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정순욱의 반골 기질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다. 네놈이 뭐가 그리 잘났다고 그리 콧대를 높이느냐? 뭐, 그런 분위기였다.
“하, 하면 멍청한 걸 멍청하다고 말하지. 뭐라 말해주길 바라는 거지?”
물론 정순욱은 아이들의 그런 반응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고 독설을 날렸다. 어차피 발끈해봐야, 덤벼들 용기도 없는 놈들이다. 정순욱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습기만 한 아이들의 모습인 것이다.
“이익…….”
“이게 진짜……!”
“작년 겨울 보다 덜 춥다고? 얼간이들. 머리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나? 생각하고, 고민하라고 달려있는 거다. 한데 장식으로만 쓰고 있으니…… 쯧. 덩치만 커다란 미련한 곰보다도 못한 녀석들이로군.”
“……거기서 나를 왜 끄집어내나.”
마지막으로 소룡원 내부를 점검한 뒤, 신발을 신고 있던 백산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오자마자 들은 게 자신의 욕이니, 어이가 없던 탓이다.
“마침 잘 왔군. 내가 말하면 듣지도 않을 테니 네놈이 설명해줘라. 저 새끼 여우 같은 녀석들은 네 말이면 껌뻑 죽으니까.”
“뭐를?”
“아니, 산. 들어봐. 저 재수 없는 놈이 있지.”
“우리가 작년보다 덜 춥다니까 저렇게 말하잖아. 지가 뭐가 잘났다고 꼭 저딴 식으로 말하는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말 몇 마디에, 단숨에 상황을 파악한 백산이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그렇듯, 정순욱의 독설이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백산으로서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이걸 또 어찌 이야기해야 하나.’
따지고 들자면, 정순욱이 없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올겨울이 작년보다 덜 춥다고?
그럴 리가.
오히려 기온 자체는 해가 갈수록 낮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그리 느끼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선생님 덕이야.”
“무슨 말이야?”
“덜 춥게 느껴지는 거. 선생님이 공부도 알려주시면서, 운동도 시켜주셨잖아.”
“그런가?”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껏 마현의 말을 들어서 손해를 본 적은 없다. 또한 생각 외로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났다.
계절이 흐르는 동안 체격이 커진 것을 포함해, 공부에 눈이 뜨인 것까지. 왠지 마현이라면 추위조차 이겨내게 한다고 하여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탓이다.
“그럼 선생님한테 계속 배우면, 내년 겨울에는 지금보다도 덜 춥겠네?”
“아무래도 그렇겠지.”
또 다른 아이의 질문에, 백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스승님…….”
동시에 아이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어렸다.
무명와룡.
무명현의 와룡선생이라 불리는 마현이 자신들의 스승이다. 덕분에 자신들 모르게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정순욱, 넌 꼭 말을 그렇게 해야만 하냐.”
“흥…….”
말한다고 듣나.
그래도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뭐해, 한마디를 날렸던 백산이 어깨를 으쓱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이 소룡원으로부터 하나의 산(山)이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계절이 지나며 안 그래도 큰 덩치가 더욱 늘어난 백산이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곧 선생님이 오실 테니까.’
이후로는 아침 구보(驅步)를 실시하니 최대한 몸을 풀어두는 게 좋다. 추운 날씨일수록 갑작스럽게 몸을 움직이면 상(傷)을 입을 확률이 높으니 말이다.
그런 백산을 따라 다른 아이들도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와중에 가만히 있는 인물은 딱 둘 뿐이었다.
정순욱과 소수린.
이미 이른 아침.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일찍 나와 몸을 풀어둔 둘은 각자만의 생각에 빠져 다른 또래들을 둘러도 보고 있지 않았다.
‘징한 녀석들.’
이제는 백산도 안다.
아이들 중에서도 영특하거나 특출한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들이 바로 정순욱과 소수린이다.
둘은 정말로 똑똑하고, 대단하다. 가끔 보이는 기발함에는 절로 입이 떡 하니 벌어질 정도였다.
문제는 두 친구 모두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어울리려 들지 않는단 것이다. 너무 뛰어나서 그런 것일까? 한 명은 아이들을 무시하는 지독한 독설가. 나머지 하나는 말조차 섞기 싫어하는 얼음마녀가 되어버렸다.
이 추운 겨울날 소수린에게 말을 걸었다 얼어 죽었다 한들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본래부터 그러기야 했지만…….’
그걸 시간이 흐르며 체감하는 것은 역시 전혀 다른 부분인 것 같다. 마현으로부터 자신이 없는 동안 아이들의 지도를 부탁받은 백산의 입장에서는 쓴웃음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힘을 내서 또 하루를 살아간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
의원이 되기 위해서.
또한…….
“오늘도 열심히 하고 있구나.”
부드럽게도 전해지는 저 목소리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네, 선생님!”
아이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 * *
서원(書院)이란 본래 글공부를 하는, 학사들만의 장소라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현의 와룡서원은 달랐다. 단순히 공부만 하는 장소가 아니다. 말 그대로 배움을 받아 익히는 곳, 학원(學院)이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았던 걸까?’
덕분이다.
식생에 운동, 가치관의 정립까지 신경 쓰다 보니 제자들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너무나 특출나졌다. 학문에도 재능을 발휘하고, 눈에 띌 정도로 체격이 성장했다. 그 정도면 다행이었다. 구결신공을 매일 전수하다 보니, 아이들의 단전에 내기까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미 서원의 틀을 한참이나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산이나 순욱이, 수린이 같은 경우는 그 내기를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인 것 같고…….’
영특한 세 아이는 그 내기를 느껴, 운영하는 법까지 스스로 연구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마현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답답한 마음에 실수라도 하면, 그 내기가 곧바로 주화입마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찌해야 하나.’
단순한 육체단련을 벗어나.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하면 서원의 틀을 벗어나게 된다. 어쩌면 그 무공으로 인해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쌓인 내기를 빼앗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찌해야 할까요?”
결국 마현은 가족에게 고민을 풀어놓았다.
“흠…….”
마현이 가진 힘.
무공의 절대적 경지를 익히 알고 있던 가족들은 짧은 신음을 흘렸다. 그들 역시 한 번에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서원의 제자들에게 무공을 가르친다. 언뜻 보자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자신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은 필요하니, 좋다는 생각도 강했다.
하나, 이는 무공의 좋은 면만 본 것이다.
힘을 가지면 사용하고 싶어진다.
무공이란 편리한 수단을 얻으면, 굳이 왜 학문을 익혀야 할까 라는 고민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것이 본래 그렇다.
마음이란 악마는 너무나도 간사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이 바뀌면 잽싸게도 행동을 달리한다. 어쩌면 그 힘을 쓰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해 끔찍한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 단순히 세상에 마현의 무공이 퍼트려진다, 그 정도의 일이었다면 이리까지 고민하지 않았을 터였다.
“제 생각에는…… 괜찮을 것 같아요.”
짧은 침묵 속,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초이영이었다.
그녀는 잠든 마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짧은 생각인 것 같지만…… 무공을 익히지 못해 힘에 억압당하느니, 무공을 알고 힘을 이용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남을 괴롭히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그렇다고 내 자식이 괴롭힘당하는 건 보기 싫다는 마음? 철부지 엄마라서 이럴지도 모르겠네요.”
입가로 쓴웃음을 흘린 초이영의 말에, 마현은 작게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한다.
힘으로 남을 핍박하는 일은 분명한 악(惡)이다.
자식이 그러한 악이 된다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다. 하나 반대로 생각하여, 자식이 힘이 없어 그러한 악에게 억압받는다면? 평생 괴로움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면? 차라리 악이 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어설픈 선(善)으로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초이영의 말이 마현의 마음에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은 아니다.
제자는 자식과 같은 존재다.
그러한 자식이, 악인이 되어 강호, 중원을 피로 물들일지도 모른다. 마현이 무공을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한 작은 악의 개념에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에 생겨나서는 안 될 마귀(魔鬼)를 풀어놓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나 하나 편하자고, 내 자식 하나 잘살자고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강요한다? 초이영 본인도 말했듯, 짧은 생각이다.
단지 어머니가 가진 욕심으로서 내뱉은 말일 뿐이지만, 만약 세상이 모두 그런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이 천하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이기심(利己心)으로 물든 세상에 배려란 것은 존재치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악을 경계하는 것이지.’
결국 이해는 할 수 있어도, 납득은 할 수 없다.
그것이 초이영의 대답에 대한 마현의 결론이었다.
“네 생각은 어떠냐?”
뒤를 이은 것은 아버지, 마전의 질문이었다.
“……?”
“제자들에 대한 것 말이다. 무공을 가르친다 하여 그 아이들이 세상에 해를 입힐 것 같으냐?”
“……그럴 리가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절레절레 고개가 저어진다.
그러고 나니 퍼뜩,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마현을 보는 마전의 입가는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하면 이미 답은 나온 것 아니겠느냐.”
“……그렇군요.”
생각조차 싫어, 고개를 내젓고 보니 알 수 있었다.
마현은 이미 결정을 내린 뒤였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
이미 아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치기로 다짐한 것이다.
만약 이러한 고민 탓에 무공을 일러주지 못할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모든 것이 뒤바뀌었어야만 했다. 구결신공은 물론, 놀이를 통한 무공의 육체단련 따위 떠올리지 말았어야만 한다. 결국 마현은 마음속으로 이미 길을 세워두었던 것이다.
‘나는…….’
제자들을 믿고 싶다.
아니, 믿고 있다.
자신이 키운 아이들이라면 세상에 득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이다. 마음의 연(緣)이 닿아 가르치기로 하였다 한들, 그 본성까지 무시한 것은 아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마현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지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마현이 마계를 뚫고 나오며 절대무공을 익혔다고는 하지만, 지식과 지혜가 극에 달한 현자(賢者)는 아니었다.
반면 마전은 절대무공을 가지지 못했으나, 오랜 세월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면서 지혜를 얻었다.
경험이 주는 인생의 선물. 결국 마현은 한 번 더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멀었구나.’
무공을 알고, 천하를 오시한다 한들, 세상을 알지는 못한다.
직접대면하고 부딪칠 시간에 오로지 싸움만으로 인생을 점철 지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전에게 감사한다.
마음을 단숨에 꿰뚫어보는 혜안(慧眼)은 부모가 자식에게 가진 관심이 깊기에 생기는 것이다.
언제나 마현을 지켜보고 있다.
묵묵히, 주방에서 요리만 하는 것 같지만 항상 마현을 떠올리고 있다. 이를 겉으로 표현한다면, 부모로서 당연한 도리라고만 말씀하실 것이다. 하나 그 당연한 도리조차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이 자식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몇 번이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곧 있으면 현이 너도 서른 중반대를 넘어서는구나.”
겨울이 지나고, 새해가 찾아오면 나이를 먹는다.
‘어느덧…….’
중원의 시간으로만 따져도 서른여섯이던가.
세월의 흐름이란 것이 참 무상하다.
“해서 말인데…… 현아. 성혼(成婚)할 생각은 없는 게냐?”
“……서, 성혼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깊어지던 상념이 단숨에 깨어진다.
성혼이라니.
먼 과거에도, 마계에 갇힌 후로도, 돌아온 뒤 역시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문제였다.
“정이는 벌써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데, 너는 아직까지 홑몸이 아니더냐.”
마전의 눈빛은 기묘했다.
굳이 강요를 하는 것은 아닌 듯한데, 왠지 거부할 수 없는 느낌이다. 말투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여기서 마현이 마냥 싫다 하면, 굉장히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실 게 분명했다.
“그, 그게…… 아직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어서. 게다가 서원도…….”
“여자야 찾으면 될 일이고, 서원이야 이제 꽤나 안정되지 않았느냐? 제자들에게 무공을 가르칠 걱정까지 할 정도니 말이다.”
“으음…….”
“네가 싫다면 강요는 하지 않으마. 그래도 이 늙은 아비의 마음을 조금은 생각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자식이 넷이나 있는데 그중 둘은 출가하였고, 귀여운 손주가 있기는 하나 여아(女兒)니……. 안 되겠구나. 정아, 네가 분발을 해야겠다.”
“…….”
묵묵히 듣고만 있던 마정의 눈빛이 마현에게로 향했다.
안 그래도 마설을 낳은 이후, 와룡객잔의 후계 문제 탓에 아버지로부터 눈총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이 시대에야 가업(家業)이란 당연히 사내자식이 물려받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 마정의 입장에서는 초이영까지 괜한 눈치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싫을 수밖에 없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로다.’
이쯤 되면 마냥 거부할 수도 없다.
괜한 말 한마디로 온 가족의 원망을 사느니.
차라리 부담감을 조금 안는 것이 나으리라.
“……좋게 생각해보겠습니다.”
결국 마현이 양손을 드는 순간이었다.
* * *
가족들과의 대화 끝에 아이들에게로 무공을 가르치기로 결심한 마현은 기왕 하는 일,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 선결(先決)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제자들 부모의 허락이었다. 마현이 가르치려 마음먹는다 한들, 부모의 입장에서는 또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행이라 말해야 할까?
아이들의 부모 중, 마현이 무공을 가르치려 한다는데 불평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무림대회전에 참가한 마연의 이름을 판 덕이 큰 것 같았다.
‘지금은 강호협객행(江湖俠客行)을 하는 중이라고 했던가?’
아니지, 사저인 공서하와 둘이 떠났으니 강호협녀행(江湖俠女行)이라는 말이 옳을 듯했다. 듣자 하니, 협객행은 무림대회전에서 이름을 날린 무인들이 꼭 거쳐 가야만 하는 일종의 관례인 듯했다.
명성을 얻은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강호를 직접 누벼보지 않은 마현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정도 무림에서 행하는 축제이기에 있을 수 있는 절차였다.
‘해남이화(海南二花)라…….’
마연 측이 연화(蓮花), 공서하 측이 빙화(氷花)라고 하였던가?
직접 무공을 가르치기까지 했지만, 막상 동생이 그리 불린다니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렇지 않은가? 여동생이 무림에서 꽃이라 불리는 고수라니…… 쉽게 납득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았다.
‘다행히도 흑천맹 측은 잠잠한가…….’
주로 객잔 사이를 오가는 백묘가 아무런 신호를 주지 않는다. 아직 흑천맹 측에서 마현에 관한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이미 알고 멀리하고 있든지…….’
강호를 둘이서만 떠도는 마연 측이 아직까지 무사하단 점이 그러한 생각에 더욱 확신을 실어주었다. 아무리 마연과 공서하의 무공이 대단하다 한들, 흑천맹 같은 암중 조직이 손을 쓴다면 사달이 났어도, 벌써 일었어야 할 테니 말이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생각보다 귀찮은 녀석들일 지도 모르겠다.
직접 조사하기보다, 상황을 둘러 둘러 알아본다.
그리되면 마현으로서는 놈들이 조사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물론 흑천맹 측도 직접적인 정보를 얻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안전하게 소식을 접할 수 있단 사실은 분명한 장점이었다.
아마 놈들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마현을 위험인자 중 하나로 분류했을 터다. 단 하루 만에 지부 하나를 궤멸시켰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어찌 됐든 이렇게 되었으니……’
우선은 흑천맹에 대한 생각은 접어둔다.
어차피 부딪쳐야 할 인연이면 어딘가에서라도 또다시 마주하게 되어 있다. 성급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제자들 무공이나 열심히 가르쳐볼까.’
아무래도 제자들의 부모 측은 어지간한 운기토납법과 삼류 무공 정도를 일러준다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마현은 한번 시작한 일을 어중간하게 메우는 성격이 아니었다.
* * *
와룡서원의 일상이 훨씬 더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구보 후 조식(朝食), 점심을 지나 신시(申時) 말(末)에는 육체단련, 유시(酉時)에는 석식을 먹은 후, 나머지는 자유시간. 이러하던 본래의 와룡서원의 일상에, 두 가지나 더 시간이 추가되었다.
“모두 나와 같은 자세로 앉아 보아라.”
그중 첫째가 바로 구보 전 운기조식의 시간이었다.
평소보다 반 시진 일찍 깬 아이들은 피곤한 눈동자로 비틀거리면서도, 마현의 가부좌를 따라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처음이라 그리 쉽지는 않아 보였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아직 근육과 뼈가 굳지 않은 어린아이들이었기에 조금만 지켜보자 무리 없이 자세를 따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들 그 상태로 눈을 감은 채, 편안하게 숨을 쉬어보아라.”
이제 와서는 마현의 말이라면 똥으로 밥을 짓는다 하여도 믿게 된 아이들이 최대한 편안한 표정으로 숨을 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안 그래도 불편한 자세에서, 추운 공기가 폐로 들어오니 편안하게 숨을 쉰다는 행위 자체가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아이들 대부분의 표정이 강하게 찌푸려졌다.
“조금만 참고, 의식을 집중해 보거라. 몸속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질 것이다.”
마현의 작고도 편안한 목소리에, 아이들 모두가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내부를 관조(觀照)하기 시작한다. 이후 강호에서 손에 꼽히는 초고수가 보았다면, 놀라 까무러칠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아악.
차가운 돌 바닥 위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혹은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조심스레 훑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몸속에 차오르는 따뜻한 기운을 느낀다. 처음으로 자연의 대기(大氣)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러한 엄청난 기운은, 정면에 위치한 마현으로부터 쏟아져 나온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파(氣波)다.
엄청난 크기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기파는 마치 하나의 해일과 같았다. 마현의 앞으로 나설 땐 작은 울렁임을 보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며 기하급수(幾何級數)적으로 몸을 키운다. 아이들에게 닿을 무렵에는, 와룡서원의 지붕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형태가 되어버린다.
동시에 아이들의 온몸을 단숨에 집어삼킨다.
기로 하는 목욕이다.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기를 뒤집어쓰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자연스레 여태껏 내기를 느끼지도 못했던 아이들이 기에 대하여 깨닫는다. 이미 내공에 대해 알고 있던 아이들은, 그 어마어마한 압도감에 저도 모르게 감탄을 토한다.
드넓은 천하 그 어디에도 없을, 기로 가득 찬 세계가 와룡서원 일대에 새겨진 것이다.
“지금부터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마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몸에 들어온 기의 흐름을 관조(觀照)하거라. 느껴라. 그 따뜻함이 어떻게 움직여 어디로 향하는지.”
마현은 점점 더 상상 이상의 신기(神技)를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의 파도를 만들어내는 것만 해도 놀라 기절할 판이거늘, 그러한 파도 속에서 또 다른 세밀한 기운을 뽑아내 열 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인도해준다. 뿐만이랴? 그 와중에 입을 열어 말을 하기까지 한다. 천하에 있어 그 어떤 고수도 마현처럼은 하지 못한다.
이미 세상과 조화되는 선을 넘어, 조율하는 경지까지 발을 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
그 엄청난 시간이 지나가고, 마현이 내뿜던 모든 기파가 거둬진 순간 아이들도 모두가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탄식을 흘렸다.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것과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이 삽시간에 사라지니, 그 허전함이 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눈을 뜨고, 입을 열어도 좋다. 모두 기억했느냐?”
마현의 질문에, 눈을 뜬 열 명의 아이들 대다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황홀하고, 감격적이라고까지 말할 감각이었으나, 그를 한 번에 외우기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가 많았던 탓이다.
“크게 개의치 말거라. 외우지 못했다면 외울 때까지 다시 하면 되는 일이니까. 자, 이제 구보 시간이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도록 하자꾸나.”
“네?”
“벌써요?”
마현의 말에, 아이들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기껏해야 반 각도 눈을 감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한데 평소보다 반 시진 일찍 일어났으니, 일정이 기묘하게 느껴진 탓이리라.
“벌써라니……. 이미 반 각이 지났다. 지금부터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조식이 늦어질걸?”
다시 한 번, 마현의 말에 깜짝 놀란 아이들이 재빨리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 짧게만 느껴진 시간이 반 각이라니, 몇 번을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 * *
다음 일정은 본래 놀이를 즐기던 신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침에 이어 무언가를 배운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아침의 운기조식 수련 이후, 몸이 이상할 정도로 개운한 덕이다. 분명 반 시진을 일찍 일어났건만 오히려 평소보다 정신이 더욱 맑고 몸이 가볍다. 마현이 가르쳐준 것만 익혀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리 배움을 싫어하는 아이들이라 하여도, 그로 인해 얻어지는 쾌감까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아이들의 열성적인 모습 덕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 마현이 부드러운 웃음을 흘렸다.
“이미 눈치챈 아이들도 몇 있겠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
육체단련에 이어, 내공수련.
이 두 가지만 하여도 기본적인 무공 수련에 대한 준비는 완료된다. 아니, 대다수의 문파와 무관(武館)에서는 이 두 가지만으로 무공을 가르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히, 눈치가 빠른 몇몇은 자신들이 무공 수련을 한다는 사실을 진즉에 깨닫고 있는 채였다.
“그중 아침에 하는 것은 운기 조식으로, 몸의 내기를 쌓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면 그 내기를 스스로 이용할 수도 있겠지. 하면 지금부터 할 것은 무엇이냐…….”
말을 늘인 마현은 발끝을 들어 자신의 주변에 커다란 원을 그렸다. 아이들의 체구를 생각할 때, 가장 큰 백산을 기준으로 해도 둘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크기의 공간이었다.
“누가 좋을까……. 그래, 수린아. 네가 해보겠느냐?”
“예.”
소수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보아하니 시켜주지 않았으면 섭섭해 할 정도로,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자였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멀리하는 것뿐이다라…….’
게다가 유독 무공 수련에 더욱 관심을 보인다.
어쩌면 학문을 익히는 것이, 애초부터 일종의 절차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떠할까.’
벌써 반년.
아이들을 처음 와룡서원으로 들인 이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와서는 정이 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니 신경 쓰지 않는다.
소수린이 마음속에 어떠한 것을 품고 있든, 설령 그것이 검(劍)이라 할지라도 지켜본다.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모든 것이 스승의 몫이었으니 말이다.
“원 안으로 들어가 보거라.”
마현이 원에서 빠져나오고, 소수린이 내부로 들어서자, 공간은 더욱 넓게 보였다. 그녀 정도의 작은 체구라면 세 사람이 들어가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적당하군.’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린 마현이, 웃음을 흘렸다.
“한 사람 더 필요한데…….”
마현이 시선을 돌리자, 아이들 중 반짝이는 눈동자로 상황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양명(亮明), 네가 하고 싶다고?”
“네!”
이제 갓 열 살이 된 양명은 이름만큼이나 밝은 아이였다.
듣자 하니 입신양명(立身揚名)이 부모의 바람이라고 하였던가.
그렇다면 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다.
“앞으로 나와 보거라.”
후다닥.
벌떡 일어나, 단숨에 앞으로 뛰쳐나온 양명이 웃는 얼굴로 마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호기심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지금부터 놀이를 하며 무공 수련을 하게 될 것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원 바깥에 있는 명이가, 원 내부에 있는 수린이를 맞춘다. 무엇으로?”
마현은 후면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막대기를 꺼내 들었다. 적당한 굵기와 길이의 막대기는, 언뜻 보면 나무로 만든 듯 단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탄성이 강한 수지(樹脂) 재질이었다.
‘아, 일반 수지는 아닌가.’
마현이 흑결을 흘려 넣어 특수하게 변형된 수지는 탄성이 강하고, 쉽게 부러지지는 않지만 남에게 고통을 주기에는 무리가 많은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 장정이 있는 힘껏 휘둘러 아이들을 때린다 하여도 따끔하고 말 정도? 아무래도 놀이를 위한 장난감이다 보니 수준을 맞출 수밖에 없는 탓이었다.
‘아직은 엄하게 수련하다 다쳐도 될 때도 아니고.’
나중에야 목봉(木棒)을 든다 한들 지금은 이 정도가 딱 좋다.
그리 생각한 마현이 연봉(軟棒)이라 이름 붙인 막대기를 양명에게로 내밀었다.
“들어 보거라.”
“……어?”
건네받은 양명이, 곧바로 놀라움을 토한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마현이 이리저리로 휘두르던 연봉을 막상 들어보니 꽤나 무게감이 있는 탓이었다. 이 역시 마현이 술수를 부린 것이었다. 무게는 무겁지만, 타격력은 없고, 휘두르면 탄력을 발휘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의 무공 수련 용도로는 아주 훌륭한 물건이 바로 연봉이었다.
“한 손으로 휘두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넵!”
양명이 기합을 토하며, 양손으로 봉의 중앙을 잡았다.
“호오…….”
어디서 들은 것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본능적인 행동일까.
무게감이 있는 봉을 처음 잡을 때, 봉 끝을 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다면 봉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봉에 휘둘릴지니. 아직 연봉의 무게에 적응되지 않은 양명이라면 봉의 중앙을 잡는 게 옳다.
그 정도만 되어도 원 중심에 선 소수린에게 닿기까지는 전혀 무리가 없으니 말이다.
“아까도 말했듯 규칙은 간단하다. 수린이는 원 안에서 명이의 봉을 피할 것. 따지자면 명이가 술래, 수린이가 도망가는 입장이로구나.”
술래란 말에, 신난 표정으로 봉을 보던 양명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보통 놀이에서 술래라 함은, 지는 사람이 맡는 역할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명이가 봉으로 수린이를 맞춘다면, 당연히 술래가 뒤바뀌겠지?”
“아……!”
마현의 마지막 말에, 놀이를 빙자한 무공 수련의 모든 규칙을 깨달은 아이들이 탄성을 토했다. 그러니까 정말 간단한 것이다. 원 안에 있는 아이는 원 바깥에서부터 날아오는 연봉의 공격을 피한다. 만약 맞출 경우, 두 사람은 역할을 바꾼다.
자리가 한정적이고, 도구를 사용한다 뿐.
술래잡기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자, 그럼 한번 해보자.”
마현의 말에, 봉을 들고 원 바로 앞에 선 양명과 내부에서 자세를 잡은 소수린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
마현은 그 모습을 잠시간 지켜보다, 입술을 떼 짧게 수련의 시작을 알렸다. 동시에 양명의 봉이 내부의 소수린을 향해 쏘아졌다.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공간이 한정적이다 보니 피하기가 모호하다.
잠시간 고민하는 듯 멈추어 있던 소수린은, 우선적으로 몸을 우측으로 움직여 양명의 첫 공격을 피했다.
이후로 이어지는 연타, 그러니까 두 번째 공격은…….
“엇!”
없었다.
자세는 좋았지만, 너무 힘껏 휘둘렀는지 봉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양명이 제자리에서 균형을 잃은 탓이었다.
“연봉은 제법 무거운 편이다. 그러니 무작정 빨리 휘두르려 하기보다는, 조심스럽게 잘 휘두르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지.”
그러한 양명을 받쳐준 마현의 부가설명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붉어진 양명 역시 마찬가지.
“맞으면 아프지 않을까요?”
“걱정하지 말거라.”
이는 또 어떻게 설명을 해줄까?
고민하던 마현이 곧바로 연봉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이럴 때는 설명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편이 낫다.
“연봉은 무겁지만, 특수한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마현의 손에서 전광석화와 같이 휘둘러진 연봉이 단숨에 바닥을 내리쳤다. 누가 보기에도 큰 소리가 나고, 땅이 팼어야 할 엄청난 모습이었다.
한데 바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대신해서 연봉이 반쯤 휘기는 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부러지지도, 딱히 별일도 없다.
마현은 살짝 웃으며 휘둘렀던 연봉을, 질문한 아이에게 건넸다.
“네 몸을 향해 직접 내리쳐 보거라.”
아이는 신기한 표정으로 연봉을 잡아, 자신의 몸을 향해 조심스레 내리쳤다. 진심으로 있는 힘껏은 아니었다지만, 꽤나 힘이 담겨 있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봉은 큰 타격을 주지 않았다.
차라리 축국을 하다가 공에 맞았을 때가 더 아플 판.
연봉이 주는 놀라움에, 탄성을 토한 아이가 반짝이는 눈동자로 마현을 바라보았다. 어딜 봐도 영락없이, 신비한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의 모습이었다.
‘이것 참…… 나도 꽤나 무딘 걸지도.’
제대로 무공 수련을 시키려면 이런 장난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진심이 가득한 모습이어야 되는데…….
결국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버렸다.
‘어쩔 수 있나.’
이 역시 스스로가 한 선택이거늘.
마현은 편안한 마음을 가진 채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너무 우습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는 무공에서도 매우 중요한 제공수련(制空修鍊)으로서…….”
아이들의 두 눈이 별빛처럼 반짝이는 수련 시간이었다.
* * *
설명이 끝난 이후, 아이들은 각자 짝을 지어 제공수련을 시작했다. 마현은 주변에서 지켜보며 가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만들고 보니 제법 훌륭한걸?’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놀이처럼 웃으면서 즐기고 있는 제공수련은 실제로는 무공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공부였다. 우선 도망가는 아이의 입장에서부터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연봉을 피하기 위해 한정된 공간에서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레 몸의 유연성과 회피 능력이 상승한다.
한데 이는 말 그대로 표면적으로 보이는 간단한 결과일 뿐이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큰 효과가 따로 있었다.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여기에서부터 발생되는 공간감(空間感)의 제어 능력의 발생이다. 그러한 공간의 제어, 그러니까 제공감(制空感)은 무공의 수련을 구분하는 네 가지 중 초식에 있어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상대방과 나의 거리를 안다.
그로 인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명확히 인식한다.
이는 곧, 초식을 펼치는 데에 생기는 제한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뜻이다.
‘거기에 더해 한 단계 더 성장하면…….’
제공권(制空權)을 익히게 된다.
단순히 공간을 인지하는 수준을 벗어나,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고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제공권을 가진 무인과 가지지 못한 무인의 차이는 명백했다. 자신의 몸 일대 주변이나마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무인을,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어하는 일반적인 인간이 어찌 이겨낸단 말인가?
그렇기에 오래전 과거부터 제공권을 가진 무인들은 역사에 회자 될 정도로 이름을 드높였다.
마현이 최근에 본 인물로만 치자면, 바로 공서하가 그런 격이다. 일부지만 자신의 주변 일대를 명확히 파악하고, 그 속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향해 뻗어 나간다. 이는 무인에게 있어 엄청난 재능이었다.
또한, 일부 천재들만이 가질 수 있는 권한이었다.
‘본래라면 말이지…….’
만약 범인(凡人)은 가지지 못하는 것이었다면, 마현은 제자들에게 굳이 이러한 수련을 시키지 않았을 터다.
이번 수련을 통해 아이들이 제공감을 완벽히 익혀낸다면, 제공권도 얻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강호인 모두가 꿈꾸는 재능을 얻게 되는 것이니 결코 가치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제공권을 익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현 제공수련에서, 술래 측의 입장이었다.
‘원 내부에서는 제공감을 익히고, 회피 능력을 향상한다.’
그리고 원 바깥에서는, 연봉을 다룸으로써 무기에 익숙해지고, 생각보다 더한 무게로 근력을 상승시킨다.
뿐만이 아니라, 이 역시 자신이 공격할 수 있는 한정된 범위의 한계를 알게끔 한다. 제공감의 습득, 제공권이라는 상승의 무리(武理)로 향하기 위해서는 두 입장을 모두 꼭 겪어야만 한다. 어느 한쪽만 수련시킨다면 제공감을 얻을 수는 있어도, 제공권을 구사하지는 못한다.
마현은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제공수련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제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