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章)
백산, 백일 부자(父子)의 사건은 마현에게 정말로 많은 것을 일러주었다. 감정적인 부분이나, 심상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꼭 필요한 요소들 말이다.
‘건강이 우선이다.’
그중 첫째는 역시 건강에 관한 것이었다.
학문을 익히는 것 역시 몸이 건강해야 가능한 일이다.
‘팔 한쪽 다리 하나 없이도 배울 수 있는 것이 학문이라지만…….’
그래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현 본인은 아니라고 한들, 이곳까지 아이들을 보낸 부모의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자식이 공부를 대성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하기를 원한다. 한데 공부하러 나선 자식이 어디 하나 불구(不具)가 되어 돌아온다? 그야말로 마현이 부모들의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되는 순간이다.
‘과장된 생각이겠지만…….’
어찌 됐든, 사소한 열만 들끓어도 공부를 하는 데 지장이 생기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내뱉고 보니 꽤나 그럴싸한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마현은 곧바로 제자들의 공부에 대한 방향을 조금 달리 잡았다. 본래의 서원에서라면 모든 시간을 학문에 주력해야겠지만, 와룡서원은 그 틀을 조금 깬다.
‘어린 나이에 뛰어놀고 싶어 하는 본능을 억제하는 것만도 명답은 아니란 거지.’
그 말은 곧.
이전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마현은 최근 들어 그 이야기를 크게 절감하고 있었다.
* * *
제자의 체력을 키우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마현의 입장에서 보건대, 답은 너무나도 뻔할 정도로 명확했다.
‘무공을 익히는 것이지.’
무공과 학문.
검과 붓은 일치(一致)하는 부분이 있어 서로에게 무조건적인 도움을 준다. 마현이 처음 무공을 익혔을 때, 학문의 가르침에서부터 깨달음의 단서를 잡은 것이 많았으니, 이는 분명히 자신할 수 있는 부문이었다.
‘현대 무공의 기원이 불가(佛家)인 소림이라는 것부터가 이미 알려주고 있는 사실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무인들은 학문을 도외시한다.
심지어 불가의 성지라는 소림에서마저 무승(武僧)들이 글공부와 불경(佛經) 공부를 멀리한다고 들었다. 오죽하면 불심을 따로 공부하는 스님들을 나누어 불승(佛僧)이라 부르겠는가.
‘도가(道家)라고 하여 다를까?’
무당파나, 화산파, 종남파 등 정도강호를 대표하는 문파들 중에서도 무를 연마하는 도인과 문을 익히는 도사를 따로 나눈다. 무공의 근본에 심공(心功)이 자리 잡고 있단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처럼 말이다.
학문을 익히는 학사들 쪽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무공을 두려워하거나, 혹은 경멸한다.
함께 공존(共存)한다는 사상은 밑바탕에마저 깔아두지 않을 정도였다.
현재 천하가 그렇다.
마치 정해진 길이 있는 것 마냥,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처럼 너무나 정해진 정도(定道)를 따르려고만 한다.
‘내 제자들마저 그러란 법은 없지.’
마현은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제자들에게 무공과 학문을 병행하여 가르친다.
이미 좋은 선례가 있는데 굳이 당대의 법도를 따른다고 엇나간 길로 갈 필요가 없었다.
‘건강도 챙기고, 학문에도 도움이 되고.’
그야말로 무학(武學)을 익히니, 일석이조(一石二鳥)다.
결정을 하고 나니 남는 고민은 무공을 어찌 가르칠 것이냐는 점이었다. 마현이 생각건대 무공의 배움은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우선 그 첫째가 바로 내가진기.
이른바 내공이다.
흔히들 강호의 고수는 이 내공의 양과,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냐는 데서 결정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한 내가진기는 상식적인 선에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가능케끔 해준다.
예를 들자면 허공을 날듯이 박차 오른다든가, 검기를 뽑아낸다든가, 말과 비슷한 속도로 달린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말 그대로 비상식(非常識)의 영역을 가능케끔 해주는 힘이 바로 내가진기의 능력이다.
두 번째는 바로 육체단련이었다.
‘결국 다시 이리로 돌아오는구나.’
생각을 하던 마현의 입가로 작은 웃음이 떠오른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끝내 도착하는 종점은 육체단련에 관한 것이다. 학문에서 그러하건대, 직접 몸을 쓰는 무공이라고 피해갈 수 있을까? 아무리 내공의 고수가 하늘을 나는 강호라 할지언정, 기본적인 신체의 능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건강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겠지.’
육체단련은 말 그대로 단련이다.
단순히 건강을 챙기는 부분을 벗어나, 더욱 강화한다.
상식 내에서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끄집어낸다. 그로 인해 또 다른 기이(奇異)를 펼친다. 인간의 육체가 간직하고 있는 신비는 감히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니만큼,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내공이 모두 떨어졌을 때의 싸움도 생각해야 하고 말이지.’
동수의 고수와 싸워 내가진기가 바닥을 보일 때.
이때야말로 육체단련의 힘은 빛을 발한다.
종이 한 장 차이로나마 생사(生死)가 갈리는 것이다.
‘하나 더 있지.’
그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육체의 단련도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했다.
바로 정신력!
정신력이란 말 그대로 정신(精神)의 힘이다.
육체의 능력과 다르게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단 점에서 단련하기도 쉽지 않은 부분이지만, 강화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싸움에서도 우세를 점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런 만큼 단순히 무인을 벗어나서, 학사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아니, 그냥 대놓고 말해 살아 숨 쉬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 모두에게 유용하다. 정신력이란 인간(人)이라는 거대한 기둥을 지탱하는 뿌리와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무공단련, 그 마지막 네 번째는 바로 초식이었다.
흔히들 말한다.
무공이 극에 이르면 초식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말 그대로 초극(超克)의 경지에 오르고서야 할 이야기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 하여도 초식에 구애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초식이란 것 자체가, 이미 조화의 경지를 넘어선 이들이 창조해낸 완벽으로 다다르는 길이다.
괜히 무공을 창조해낸 선대 고수를 대종사(大宗師)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무인의 길에 들어선 이상, 정점에 오르기 전까지는 초식을 익혀야만 한다. 그 길을 벗어난 순간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진기, 육체단련, 정신력, 마지막으로 초식이라…….’
당연한 말이겠지만, 기왕 무공을 익혀야 한다면 넷 모두를 두루 단련해야 한다. 마현의 경우는 이를 적절하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아이들에게 네 가지를 한꺼번에 시키는 것은 무리다. 강호의 이름난 문파에서는 이러한 단련을 한 번에 시키기도 한다지만, 역시 무리다. 무학이라 하여 무(武)를 가르친다 한들, 학문을 멀리하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면 역시 기반을 닦는 것부터가 좋겠지.’
기반이라 하면 무엇일까?
두말하면 입 아프게도, 바로 사람의 몸, 신체다.
사람을 두고 작은 우주(小宇宙)라 볼 때 지(地)에 해당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마현 역시 처음 마계에 떨어진 이후로는, 한참이나 육체적 노동으로 고생을 했었다.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막노동이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러한 육체단련 덕에 살아남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아무리 많고, 질 좋은 내공을 가지고 있어도 그 밑바탕이 되는 육체가 부실하다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면 또다시 남은 문제는 어떤 육체단련을 하느냐, 라는 건데…….’
흔히들 강호에서 기본 체력 훈련 과정으로 삼는 기마세(騎馬勢)가 좋을까? 그도 아니면 조금 더 활동적이지만 단순한 반복 노동?
‘아니지, 아니야.’
기왕 하는 육체단련이라면 즐거울수록 좋다.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고, 서로 교감을 더욱 깊게 나눌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고민을 하는 마현의 두 눈에 문득, 허공으로 떠오르는 둥근 연(鳶)이 보였다. 점점 더 높이 떠오르는 연을 보며, 마현은 저도 모르게 손뼉을 마주쳤다.
‘저거다.’
해답이 머리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 *
“여기까지 하자.”
아이들에게 소학을 일러주던 마현이 책장을 덮으며 말했다.
“……?”
자연스레, 아이들의 얼굴 위로는 의문이 떠올랐다.
공부를 끝내는 것이야 기쁘다.
한데 평소보다 훨씬 더 이른 시각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 탓이었다.
“의아해할 것 없다. 오늘부터는 글공부가 끝난 이후 한 시진 동안…….”
말을 길게 늘인 마현이, 자신의 책상 아래를 뒤적여 둥근 물건을 꺼내 들었다.
“축국(蹴鞠)을 한다.”
가죽을 잘 꿰어 만든 공을 꺼내 든 마현이 작은 웃음을 짓자, 모인 제자들의 반응이 순식간에 엇갈렸다.
기본적인 반응은 역시 놀 수 있단 생각에 마냥 기뻐하는 경우였다.
다음으로 보인 반응은 걱정이었다. 공부할 시간에 놀아도 되나? 습관적으로 몸에 밴 하루 일상이 뒤바뀌는 것이 두려운 경우다.
마지막은 짜증이었다.
“뭐 또 이상한 걸 가지고 와서는…….”
표정을 잔뜩 찌푸린 정순욱은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작게 읊조리며 투덜거렸다.
이유야 잘 알고 있었다.
최근 구결신공을 익힌 아이들이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여 정순욱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한참이나 앞서 나가 오만하게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격차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최근 정순욱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좁혀드는 격차를 어떻게든 늘이기 위한 발악인 셈이다.
‘그러게 말 좀 잘 듣지.’
모든 실상을 아는 마현의 입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순욱과 아이들의 격차가 이렇게까지 쉽게 줄어드는 이유는 노력의 부재(不在) 탓이 아니다.
최근의 정순욱은 얼마 되지 않는 인생이나마 돌아보면 다시없을 만큼 열심히 공부를 하는 중인 게 분명했다. 새벽에 소룡원의 불이 모두 꺼진 뒤에 정순욱의 이불 밑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소용없다.
우선적으로 정순욱은 마현이 일러준 구결신공을 행하지 않고 있었다.
두 번째로는, 다른 아이들은 학문을 익히다 어려움이 생기면 질문을 하는데, 정순욱은 절대로 물어오지 않는다.
마현을 스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그가 가르치는 모든 걸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반골이지.’
뭐, 처음부터 충분히 짐작했던 바다.
정순욱을 길들이려면 어지간한 노력과 시간으로는 힘들다.
새끼 호랑이를 기른다는 심정으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
‘시간이야 뭐…… 넉넉하니까.’
마현은 이전에 정순욱을 가르쳤던 다른 스승들과 달리, 너무나 여유로웠다. 그가 배우지 않는다면 안 가르쳐주면 그만이다. 어차피 서원비는 매달 들어오니, 시간이 갈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정순욱 측인 것이다.
‘정가(丁家) 측에서는 어찌 되든 상관없으니 버릇 좀 고쳐 달라는 분위기고…….’
마현은 며칠 전 밤, 정순욱의 서원비와 함께 받은 서찰을 떠올리며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의 아버지, 정철영이 보낸 것이었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재밌기 그지없었다.
정순욱은 다짐대로 서원 내에 갇혀 있으면서도 몰래 할아버지인 정대형에게 도움을 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문제는 이 모든 행동이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 벌이는 행각이었다는 점이다. 정철영은 이미 정순욱이 그런 식으로 행동할 것을 예상하여, 서신이 올 경우 모두 자신에게 전해지도록 조치를 취해놓았다.
이제는 한발 물러나 뒷방에 내려앉은 정대형과 실무를 잡고 있는 정철영. 서신이 아무리 잘 전해져 봐야 정순욱의 조부(祖父)에게 전해지기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예의에 대하여 호되게 가르쳐 달라고 하셨지?’
정철영의 편지에 적혀 있던 문구를 떠올린 마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부모가 바라는 공부가 예(禮)이니만큼, 정순욱에 대해서만큼은 몇몇 예외를 둘 생각이었다.
“축국을 하기 싫은 아이는 빠져도 좋다. 단, 이 축국도 단순한 의미가 아님은 미리 밝혀두마.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열심히 뛰어놀고 나면, 공부가 훨씬 더 잘 될 것이다.”
“네!”
“축국 하러 가요!”
대다수의 아이들이 신이 나서 그러한 마현의 말에 동조했다.
비교적 무관심해 보이는 소수린이나, 의원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더욱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는 백산의 반응도 부정적인 편은 아니었다.
“흥, 그깟 놀이 따위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마지막까지 콧방귀를 뀌는 이는 반골, 정순욱 하나뿐이었다.
* * *
“막아!”
“헹, 자신 있으면 해보시지!”
“우아아!”
서원의 앞마당,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드높이며 공을 향해 집념(?)을 불태우고 있었다. 많지 않은, 넷밖에 되지 않는 상대편의 수가 그러한 열의를 더욱 달구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기회는 보다 평등하게 오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훨씬 활기차네.”
날아오는 작은 공을 받는 마현의 입가로는 자연스레 뿌듯한 웃음이 떠올랐다.
“……한창 놀고 싶을 나이니까요.”
맞은편에서, 마현이 되돌려주는 공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받아낸 소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자연스레 마현의 얼굴 위로는 황당함이 떠올랐다.
“너도 저 또래란다.”
“나이는요.”
정말이지, 몇 번을 생각해도 나이에 비해 너무나 성숙한 아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단순히 사연 하나 끼고 있겠지, 그리 생각했다.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는 어린 나이에 고충이 심한 탓이로구나,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러한 심경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성숙해도 너무 성숙하다.
말하는 바나, 행동하는 바, 심지어 조심스러운 생각까지, 열두 살의 여아(女兒)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인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나마 어린아이라고 믿게끔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눈빛뿐이다.
초탈한 듯, 또래가 보기에는 무감각할 정도로 무심한 눈동자를 하고 있지만 마현은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저 눈빛에 담긴 감정은 애(哀)다. 물론 저 나이 또래의 아이가 애를 품고 있는 것도 참 말이 되지 않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현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저 슬픔이야말로 소수린이 아직 열두 살의 어린 여아라는 유일한 증표다. 고작 눈빛만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경험을 겪었는지는 아무리 마현이라 해도 알 수 없다.
하나 소수린이 무감정(無感情)이라는 표현법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사실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약하기에.
아직 어린 나이의 눈물을 감출 수 없기에.
그래서 무심한 척 자신을 감춘다.
장막(帳幕) 속에 숨어 버리면 상처를 입을 일조차 없으니 말이다.
이야말로 순수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보호의식의 발로다.
아직 어린 나이기에, 세상과 맞서는 것이 두려운 소수린은 숨어 있다.
‘저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 왔듯, 마현은 급하게 그 내부를 캐내려 하지 않았다. 때가 된다면 언젠가 닫혀 있던 문이 열리기 마련이다. 마현은 그때까지 그 문 옆에 서서, 저 어린 마음에 더 큰 상처가 남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선생님.”
“음?”
“눈빛이 이상해요.”
“……오해다.”
의심 가득한 소수린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은 마현이 되돌아온 공을 부여잡았다. 동시에 작은 공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이 피어오르며 마현의 손끝으로 파고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효율이 높을 수도 있겠는걸.’
입가로는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전날 떠오르는 연을 보며 떠올린 구기(球技) 놀이는 분명 현명한 선택이었다. 서원의 앞마당에 백결을 이용한 활기를 북돋워 주는 진법을 연성하고, 그 기운을 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더욱 확대해 효율을 증폭시킨다.
서원의 제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뻥뻥 차며 놀고 있는 공은 전날 밤 마현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주술구(呪術球)인 것이다.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지.’
몇 번이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뛰어놀고 싶은 나이다.
여기서 ‘뛰어논다.’는 것은 흔히들 떠올리는 체력증강을 위한 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의 제자들이 바라는 뛰어놀기의 구분은 명확했다. ‘놀이’다. 무언가 목적을 가진 행위가 아닌, 말 그대로 노는, 소모적인 행동을 원한다.
마현은 아이들의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며, 운동을 통한 체력증강, 거기에 더해 진법과 주술구를 이용한 내가진기의 단련 효율까지 잡아냈다.
그야말로 일석삼조(一石三鳥).
돌 하나를 던져 세 마리의 새를 잡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나저나…….’
정순욱이 빠진 덕에 인원수가 맞지 않아 대신해서 시작한 송구(送球)놀이가 이 정도다. 직접 축국을 한다면 마현의 예측보다 훨씬 더 높은 효율이 나올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선생님.”
“……오해래도.”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크흠…….”
마현이 머쓱한 헛기침을 하자, 어지간해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나마 소수린의 입가가 올라갔다. 눈 안에는 기묘한 감정이 감돈다. 미약하지만, 아주 천천히 마음의 문이 열리고 있다는 징조였다.
‘역시 시간이 약이란 거겠지.’
모른 척.
“그나저나, 왜 불렀던 것이냐?”
웃음을 감춘 마현이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공을 주고받을 때, 손끝에서부터 이상한 느낌이 전해져요.”
“……이상한 느낌?”
마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설마……?’
고작 이 짧은 송구놀이 동안 내기를 느끼게 되었단 말인가?
“이질적인데…… 아닌가, 따뜻하네요. 무언가 포근한 게 손끝에서부터 시작해서 온몸을 빠르게 회전하는데, 신기한 기분이네요.”
확실하다.
말이 별로 없는 소수린치고 장황했던 설명은, 분명한 내가진기의 움직임이었다.
‘재능인가…….’
마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이 정도 놀이로 내가진기를 느낄 정도면, 제대로 운기조식을 행한다면 빠른 속도로 내기를 쌓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소수린은 문보다 무에 재능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글쎄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 기분이 좋아진 것 아니겠느냐?”
하지만 그러한 속내를 굳이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직은 이르다.
아이들이 익히고 있는 것에 무학의 이치가 숨어 있다 한들, 벌써부터 그것을 이해하려 들 필요는 없다. 그로 인해 오히려 공부도, 무공도 모두 놓칠 수가 있으니, 지금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이해는 조금 더 경험이 쌓인 뒤에 해도 늦지 않으니…….’
혼동치 않게,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은 역시 스승인 마현의 몫이었다.
제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