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황금존자 (1)
진우선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흑운이 하늘 양 끝까지 한없이 늘어선 채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고, 사방에선 살갗이 아릴 정도의 일진광풍이 마구 몰아쳐 대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예감이 너무 안 좋다!’
[조심하거라, 우선아!]
검노야도 진우선과 비슷하게 느끼며 급히 경고했다.
그는 영체를 잃은 후 아무런 형체 없이 광체로서만 존재했으나, 득도한 자아는 생생히 살아있기에 진우선의 감각을 공유하며 알아채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후웅-.
진우선이 즉각 모든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면서 밀려드는 흑운의 물결을 주시했다.
‘혼돈기!’
허공의 흑운은 천기를 어지럽히는 혼돈기의 실체나 다름없었다.
혼돈기가 온 하늘을 잠식해가니, 천기가 심히 요동치고 어지간해선 떨리지 않는 진우선마저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
츠으으-!
칼바람 소리가 섬뜩하게 휘몰아 쳤다. 스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팽팽한 대결을 이어오던 네 사람, 방각 선사와 탁탑천왕, 청풍자와 일원진군이 본능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방각 선사의 얼굴은 더욱더 심각해져 갔다.
방각 선사가 문득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진우선은 감히 측량키 힘들 정도의 짙은 현기를 흘리며, 하늘을 꿰뚫어 보는 듯한 맹렬한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혼돈기 속에서 왜 주문강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설마 저기에……?’
진우선이 온 신경을 집중하여 황금존자의 위치를 파악하려던 바로 그 순간!
‘헛!’
섬광이 번쩍였다. 그 강렬한 섬화에 시야가 새하얗게 바뀌며, 순간적으로 눈이 멀었다.
콰콰콰쾅-!
찰나의 틈도 없이 벽력이 진우선에게 그대로 직격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혼돈기의 와류에서 뿜어지는 맹렬한 뇌광 수백 가닥이 진우선에게로 쉴 새 없이 내리꽂혔다.
퍼퍼퍼퍼펑-!
벽력 줄기 하나하나마다 땅이 푹푹 패며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불꽃도 마구 튀었다.
흙먼지도 자욱하게 일어났다. 너무나 탁하여 주변에서 내부를 전혀 살필 수 없을 정도였다.
“신인!”
방각 선사가 두 눈을 부릅뜨며 다급히 외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사색이 되어 있었다.
곧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초토화된 땅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초목은 하나도 남김없이 잿더미로 변했고, 일대는 그야말로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이럴 수가…….”
“크크크. 방장, 보았소? 존자께서 보여주시는 신위를.”
탁탑천왕이 야비하게 웃음을 짓더니, 허공을 보았다.
혼돈의 기운과 혼재된 채 모여들고 있는 흑암의 기류는 황금존자의 암흑신령광류가 틀림없었다.
그에 방각 선사가 애타는 눈빛으로 흙먼지 속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후우-!”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금룡이 휘휘 맴도는 광휘 서린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신강기가 육을 보호하고 호심진기가 영을 지키니, 이는 극성으로 펼쳐진 패왕금룡신공이었다.
진우선은 그 속에서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시, 신인!”
방각 선사의 외침에 진우선이 잠시 그에게 한 차례 고개를 끄덕여 괜찮다는 눈빛을 보내고는,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흑운 속에 휘휘 흘러 다니는 암흑신령광류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무공은 볼 때마다 탐나는군. 내게 딱 어울릴 텐데.”
“주문강, 등장이 요란하구나.”
“네놈이야말로 여전히 버릇이 없구나.”
황금존자의 음성이 육합전성(大合傳聲)처럼 사방에서 들려왔다.
“황금존자!”
“이, 이럴 수가!”
방각 선사와 청풍자가 놀람을 토해냈다.
특히나 등봉조극의 경지가 까마득히 멀기만 한 청풍자는 심혼이 단박에 꺾여버렸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으나 기겁하여 오줌마저 지린 상태였다.
“존자를 뵙습니다.”
“존자를 뵙습니다.”
심히 놀란 두 사람과 달리, 탁탑천왕과 일월진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외쳤다. 그러자 허공에서 탐심 가득한 음성이 이어졌다.
“탁탑천왕, 영주를 얻었구나.”
“존자께서 명하신 바대로 행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기운을 영주에 온전히 가두는 데에는 일원진군의 도움이 컸습니다.”
“둘 다 수고했다. 영주는 내가 가져가마.”
“명을 받듭니다.”
탁탑천왕이 일언반구의 반박도 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방연아!”
방각 선사가 애끓는 음성으로 급히 소리쳤다. 사제가 황금존자에게 저리도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던 까닭이었다.
작은 희망이라도 놓칠 수 없어서 수백 합의 공세를 막아내며 회심하기를 바랐건만, 그 모든 게 헛수고였다.
하지만 탁탑천왕은 잠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직 조심스러운 손길로 품에서 영주를 꺼내 하늘로 들어 올릴 따름이었다.
바로 그 순간!
우우웅-!
대기가 부르르 떨더니, 흑운에서 시커먼 기류가 쏟아져 나왔다.
[우선아! 막아라! 혼운이다!]
검노야의 다급한 심정이 절절히 전해졌다.
진우선이 대답할 겨를도 없이 금선무를 펼쳤다.
즉각 내리그어진 광륜검에서 빛살 같은 기운이 허공을 격하며 쏘아졌다. 혼운을 쪼개어 날려버릴 듯이 태세였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충돌이 일어나기 직전, 혼운이 갑작스럽게 다섯 기류로 갈라졌다.
그래서 굉음 대신 휘이- 바람 흩어지는 소리만 났다.
진우선의 전광석화 같은 일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헛!’
진우선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얼른 혼운을 쫓았다.
그러자 다섯으로 갈라진 혼운이 제각기 넘실대듯이 허공을 농락하며 마구 흩어져 갔다.
이래서야 진우선은 한꺼번에 뒤쫓을 수가 없었다.
‘그래봤자 영주가 목적일 터!’
진우선이 얼른 탁탑천왕에게로 몸을 날렸다.
“과연 네 뜻대로 될까?”
다섯으로 흩어졌던 혼운의 기류들이 다시 몰려들며 악마의 거대한 손아귀 형상을 이루더니, 진우선의 행로로 파고들었다.
‘천마신공?’
[맞다! 천마신공의 하나인 흑천마수(黑天魔手)구나. 이건 분명 절대천마의 무공이거늘!]
‘그의 육신을 먹어 치워서 펼칠는 모양입니다.’
섬뜩한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진우선은 저도 모르게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는 걸 느꼈다.
이는 혼절했던 동안의 상황을 건네 들을 때부터 너무나 경악스러웠던 능력이었다.
하지만 마냥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주문강! 절대천마는 어디 있느냐? 사령신군은?”
“후후! 그들은 나에게 좋은 양분이 되었다.”
황금존자가 진우선을 비웃었다.
진우선이 사나운 눈빛으로 허공을 노려보았다.
아직 태산영기에 묶인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의 영체가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흑천마수의 한복판, 즉 손바닥 부분에 거대한 구멍이 열렸다.
구멍은 온통 칠흑처럼 검어 깊이를 내보이지 않은 채 섬뜩한 기운을 흘려대니, 악마의 입이요 지옥의 입구였다.
기괴하게 변질된 흑천마수가 한없는 공포를 자아냈다.
진우선마저도 등골이 쭈뼛 섰다.
악몽 같던 기억이 떠오른 검노야가 급히 외쳤다.
[흑혈이다, 우선아. 흑천마수에 흑혈을 심었어!]
그때, 황금존자의 광오한 음성이 장내를 진동시켰다.
“짐은 만변하여 불멸하는 사(邪)와 역행하여 꿰뚫는 마(魔)를 품었다. 네놈 따위는 감당할 수 없는 이치니라.”
“네놈은 설마 강호를 일통하여 황제라도 되려는 것이더냐?”
“크크크!”
황금존자는 검은 속내를 들키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힘을 잔뜩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은 것처럼 느껴졌다.
“재미있는 걸 보여주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천마수의 흑혈에서 검고 붉은 기운이 마구 얽히고설킨 구체 하나가 튀어 나왔다.
‘하나로 품어냈어!’
구체의 원형은 분명 사령신군의 절기인 여의혈옥이었다.
하지만 구체에 응축된 건 극경을 넘은 진마의 기운과 사령의 기운이었다.
각기 묵빛과 적빛을 띠는 두 기운은 서로 매우 반발하며 더 강렬한 기세를 표출하고 있었다.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것들을 한 곳에 뭉쳐놓았으니, 함께 터진다면 본래보다 훨씬 더 큰 파괴력을 보여줄 게 자명했다.
“후후후-! 네놈의 그 몸 상태로 감히 막을 수 있을까?”
황금존자의 거만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흑천마수와 여의혈옥의 기운이 그에 동조해 일대를 움켜쥐었다.
“크악-!”
대기가 청풍자의 육신을 비틀고 생혈을 마구 쥐어 짜냈다. 단박에 빈사지경에 내몰렸다.
“컥!”
방각 선사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선혈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청풍자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의 미간에서 오색찬란한 불광이 뿜어지며 거대한 세존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 신비로운 광채가 사방을 비추니 혼탁한 사기가 쪼개지고 있었다.
이는 파사현정의 온전한 이치를 담아낸 불가지보 금광불영공(金光佛影功)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신에서 선명한 황색 법륜의 고리가 마구 뿜어져 나오며 마기의 압박을 막아냈다.
이는 항마공 중 최고라 알려진 여래불심항마공(如來佛心降魔功)이었다.
반야대능력을 기반으로 불문의 절대무공 두 개를 동시에 운용하는,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기예가 펼쳐지고 있었다.
한데 중요한 건 이 정도로는 황금존자의 기운을 물리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상황을 일견하여 바로 파악한 진우선이 즉각 모든 내력을 끌어 올렸다.
‘소멸시켜야 해!’
광륜검에서 금선무 최강의 절초인 칠 초식 금륜도겁(金輪渡劫)이 터져 나왔다.
쿠우웅-!
묵빛과 적빛이 교차하는 여의혈옥을 광륜검이 베어갔다.
그 순간, 측량키 힘든 거력이 짓눌러왔다.
‘이게 무슨……!’
진우선의 손이 순간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바로 그때, 여의혈옥이 터졌다.
퍼억-!
응축되어 있던 사마의 정점, 사령기와 진마기가 물이 쏟아지듯이 진우선을 덮쳐왔다.
“커헉!”
한껏 눌려 있다가 수십 배의 크기로 펼쳐지니, 그 폭발력은 곱절을 아득히 넘었다. 천지간에 함부로 담아낼 수조차 없을 미증유의 거력이었다.
[우선아!]
검노야가 즉각 외쳤다.
“신인!”
방각 선사도 피를 한움큼 쏟아내며 진우선을 찾았다.
“괘, 괜찮습니다!”
숨결도, 기운도 전혀 멀쩡하지 않았다.
시야도 잃었다. 여의혈옥이 터지며 코앞에서 섬광이 터진 까닭이었다.
실로 혼절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하지만 황금존자는 잠시간의 회복할 새도 주지 않았다.
그가 흑혈을 품은 흑천마수를 움직였다.
‘영주다! 안 돼!’
진우선이 기감으로써 알아챘다. 흑천마수가 탁탑천왕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진우선이 단박에 광륜검을 내리그었다.
광륜의 오행진기와 선천지기로 만들어진 금빛 선기가 흑천마수를 쪼갤 기세로 쏘아졌다.
하지만 마땅히 들려와야 할 충돌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빗나갔다. 피해갔어!’
오히려 들려온 건 방각 선사의 절규였다.
“방연아-!”
“조, 존자시여……!”
탁탑천왕의 당혹스러워하는 음성도 이어졌다.
‘설마, 탁탑천왕도 흡수해?’
들려오는 음성과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눈은 아직 보이지 않는데,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이제 곧 시야가 열릴 것이건만, 찰나의 암전된 시간이 몹시나 길게 느껴졌다.
[주문강이 영주와 탁탑천왕을 한꺼번에 삼켰다!]
진우선이 시야가 열린 순간, 검노야의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진우선이 즉시 몸을 날리며 광륜검을 내던졌다.
쐐애애액-!
탁탑천왕이 먹혀들어 간 흑혈로 금빛 선기를 가득 머금은 광륜검이 파고들었다.
진우선이 의념을 집중하여 검을 조종하며 탁탑천왕을 뒤쫓았다.
콰앙-!
허공을 유유히 흐르던 암흑신령 광류의 한 자락이 터지며, 광륜이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얼굴이 베이며 피를 흘리는 황금존자가 잔뜩 성난 채로 뛰어 내려왔다.
“진우선, 네놈이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