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암흑천하 (3)
절대천마의 두 눈이 흑요석처럼 빛났다. 시리도록 차가운 분노의 염화였다.
그와 동시에 전신에서 묵빚 기운이 진득하게 배어 나왔다. 진마경에 이르러 한층 짙어진 마기가 극성의 천마신공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주문강!’
절대천마가 묵빛 마광이 가득한 눈으로 질풍처럼 짓쳐 들어가는 황금존자의 움직임을 맹렬히 뒤쫓았다.
황금존자는 하늘의 혈운을 몰고서 오로지 검노야와 그 앞에 시체처럼 누워 있는 진우선을 덮쳐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절대로!’
필살의 기세로, 극한의 집중력으로 절대천마가 황금존자의 신형을 꿰뚫어 보았다.
이 순간 그는 ‘당장 막으라’는 사령신군의 외침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육신의 한계를 초월해 찰나의 순간마저 무수히 쪼개어 낱낱이 파헤쳤을 때.
황금존자의 신경이 온통 전방으로 쏠려 있을 때.
‘바로 지금!’
천마신검이 세차게 돌며 광포한 위력을 머금은 묵색 빛줄기를 쏘아냈다. 이는 무수한 마공 중에 오직 천마신공만이 빚어낼 수 있는 순전한 파괴의 힘이었다.
쐐애애액-!
푸욱!
묵색 광선이 허공을 뚫고 부수며 날아가 황금존자를 관통했다.
천마신공은 순리를 거스르는 마공의 정점이며, 역행은 실상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이치다. 그 순전한 힘에 타협 따윈 없다.
한데 이런 무공이 극마를 넘은 진마경의 공력으로 펼쳐졌다.
그러니 천마신공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초식, 묵천멸겁(墨天滅劫)은 마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었다.
“크헉-!”
사방에 번져가던 혈운이 산산이 부서져 소멸하고, 암흑신령광류에 구멍이 뻥 뚫렸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황금존자가 단박에 앞으로 고꾸라져 땅을 굴렀다.
“이, 이익-!”
황금존자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일어서며 고통에 이를 악문 채 인상을 팍 찌푸렸다.
상처가 꽤 큰지 순식간에 핏물이 하의를 흠뻑 적셔 들어갔다. 이마저도 본능적으로 몸을 비튼 덕분이었다. 허리가 분질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리라.
“감히! 감히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그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쿠쿠쿠우우-!
황금존자의 전신에서 암흑 와류가 사납게 뿜어져 나와 휘몰아쳤다. 깊은 분노가 깃든 탓에 암흑신령광류가 종전과 달리 거칠게 일렁거렸다.
“누가 할 소리! 본교의 대계를 망치고 싸그리 강탈해간 네놈을 내가 놔둘 줄 알았느냐!”
콰아아앗-!
절대천마가 진마기를 더욱 세차게 피워내며 황금존자를 노려보았다. 골수에서부터 치밀어 오른 원한이 눈 밖으로 서릿발처럼 쏘아지고 있었다.
그건 잔백마군의 시신을 탈취당한 시점부터 시작된 노여움이었다. 절대천마는 그때 심히 분통이 터졌는데, 인제 보니 시초에 불과한 일이었다.
주문강은 그간 천마교에 숨어들어와 암약하고 음모를 꾸몄으며, 백 년을 숨죽여왔던 천마교가 강호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세우는 염원을 가로채 갔다.
그뿐만 아니라 천마교의 교도들마저 제 휘하로 빼앗아갔다.
이토록 악랄한 놈이 있을 줄이야!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었다.
한데 황금존자가 급히 암흑의 공력을 운용해 상처를 감싸 쥐며 절대천마에게 반박했다.
“그건 네놈이 무공에 미친 탓인데, 누굴 원망하느냐? 본교? 흥! 천하 만민이 다 내 백성이거늘, 교주가 네놈이라면 천마교는 마땅히 사라지는 게 옳다!”
“그래서 본교의 대계를 이용해 천룡부를 외쳤더냐? 네놈이야말로 죽어 마땅하다!”
절대천마가 격노하여 진마기로 천마신공의 기세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황금존자는 극마를 넘어 진마에 이르렀으나 마의 참된 깊이를 알지 못하니, 종전에 펼친 절대천마의 일격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
이는 절대천마가 검노야의 말에서 실마리를 얻은 바였다.
마찬가지로 황금존자는 사공 역시 천년의 사도 무학을 깨우쳐 아는 게 아니라 그저 기억을 받아들여 지식으로써 알 뿐이었다. 그래서 지식은 많아도 사령신군만큼 온전히 소화해내지 못했었다.
황금존자의 경지가 이들과 비슷하고 공력은 더 왕성하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한 수씩 밀린 게 그 때문이었다.
아무튼 황금존자가 흉흉한 적의를 드러내는 절대천마를 견제하던 중에, 뒤를 슬쩍 보았다.
‘제길! 더 강해졌어!’
황금존자가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켰다. 검노야가 혈운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쏘아 올리는 기운이 아까보다 짙고 굵은 까닭이었다.
그래서 육신의 공력 운용에 상당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었다. 천상의 혼돈기가 천지간을 통해 이어져 있어 벌어진 일이었다.
검노야는 비단 화산의 정기를 합일하는 것만 가로막은 게 아니라, 황금존자의 움직임마저도 저해하고 있었다.
검노야에게 짓쳐 들어간 게 그래서였다.
그를 치거나 시체나 다름없는 진우선의 육신을 탈취한다면 새로운 상황이 열릴 테니까.
이 불편한 상황의 타결책을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제는 불가능해졌지만.
한데 바로 그때였다.
“크하하-! 지금 딴생각을 해? 네놈이 스스로 죽을 자리를 파는구나!”
쐐쇄쇄쇄쇄 -!
귀청이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절대천마의 전신에서 묵색 광채가 줄기줄기 뻗쳐 나왔다.
그가 광소를 터트리며 진마기를 크게 휘돌려 묵천멸겁을 겹겹이 펼쳐내고 있었다.
“어허헉-!”
암흑 속에서 비단결처럼 윤기를 흘리는 묵광의 빛줄기가 황금존자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그러니 비명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황금존자는 급박한 와중에 암흑신령광류를 재빨리 몸에 칭칭 감았다.
그와 동시에 허공의 혈운 역시 휘리릭 말려들어 그의 육신을 감쌌다.
한데 그 순간!
후우웅-.
푸슈슉-!
어느새 뒤편으로 접근해온 사령신군이 여의혈옥을 펼치며 강맹한 혈광들을 쏘아냈다.
그중 두 가닥의 핏빛 섬광이 황금존자를 에워싼 암흑광채를 관통하여 파고들었다.
“으아악-!”
황금존자가 목에 핏대를 바짝 세우며 고통에 신음했다.
반사령의 사기가 사사지옥혈공의 정수, 여의혈옥의 이치를 품고서 파고들어 공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쐐애액-!
푸숙-!
묵광 한 줄기와 혈광 한 가닥이 서로 앞뒤에서 황금존자의 암흑광채를 동시에 꿰뚫었다.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의 합격.
둘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비슷한 방식으로 황금존자를 압박해 들어갔다.
그때, 황금존자가 곧 쓰러질 듯한 고통 속에서 기합성을 터트렸다.
“흐아압-!”
쿠쿠쿠쿵-!
암흑신령광류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며, 칠흑빛 불꽃을 거세게 피워올렸다.
‘이대로는 안 돼!’
육신에 외상과 내상이 부지불식간에 늘어나 있었다.
여태까지처럼 마를 마로 상대하고, 사를 사로 상대할 여력도 여유도 없었다. 흐르는 대로 싸우다간 원치 않는 상황에 다다르리라.
그래서 지금 일거에 공력을 터트린 상황이었다. 이로써 잠시 국면을 전환할 수 있을 테니까.
‘결국 공력의 소모가 막대하다 해도 그 수를 쓰는 수밖에 없다! 합일이 미뤄지는 것만은 피하려 했거늘!’
황금존자가 급히 몸을 내빼며 바로 결심을 내렸다.
이 수를 택하면, 본연의 공력이 없어지니 당장에 등봉조극의 공력과 극사의 사기와 극마의 마기를 삼원합일(三元合一)하는 일은 늦춰질 게 분명하리라.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암흑신령광류의 회오리 속에서 황금존자가 고개를 번쩍 들며 하늘에 외쳤다.
“혼돈이여!”
쿠쿠쿠쿠우우우우-!
하늘의 혼돈기,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룬 혈운이 크게 요동치더니 점차 땅을 짓누르듯 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소용돌이의 중심이 황금존자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나를 따르라-!”
구우웅-!
황금존자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거무튀튀한 와류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중을 나가려는 모양새였다.
천상의 혼돈기.
자신의 혼원기(混元氣).
둘은 궤를 같이하니, 결속하여 천지를 아우를 수 있으리라.
번쩍!
사방에 전광이 마구 터지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르-!
콰콰콰콰콰콰쾅-!
천지를 뒤흔드는 우렛소리가 사람들의 심혼이 다 떨어져 나갈 정도로 몰아쳤다.
그간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뇌성벽력이 삼문협 일대를 세차게 짓이겼다.
그 와중에, 하늘에서 내려온 소용돌이 혈운의 혼돈기와 황금존자로부터 퍼져나간 거무튀튀한 혼원기가 만났다.
그 순간!
천하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더니 한데 엮여 붙으며 시커멓고 커다란 구멍, 흑혈(黑穴)을 만들어냈다.
흑혈은 분명 속이 뚫려 있으면서도 온통 검어서 하나도 보이지 않아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중심부에 흑혈을 연 커다란 구름이자 혼원기와 혼돈기의 결속체, 혼운(混雲)이 일대를 휩쓸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팍-!
한없이 거센 바람결이 일대를 때려 부수며 돌진했다.
그에 돌과 바위들이 말려들어 무시무시하게 회전하고, 산비탈마저 거칠게 깎여나갔다.
퍽- 퍼퍼퍽-!
둔탁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쉼 없이 들려왔다.
혼운이 사람에게 불어닥치면, 살갗을 쪼개어 몸을 뚫거나 아예 날려버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한마디로 사방에 광풍이 난무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하늘의 기운을 인간이 끌어오다니!”
하늘이 무너져 땅에 내려앉을 듯한 변고가 벌어져 잠시 우왕좌왕하던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이 소리를 지르며 기함했다.
둘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혼운을 보며 떨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주문강-! 모습을 드러내라! 어디 갔느냐!”
절대천마가 악을 질렀다.
그와 사령신군 사이에 있던 황금존자는 어느새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억센 바람이 둘을 짓눌러왔다.
퍼억-!
무릎이 땅에 박혔다. 상체마저 고꾸라졌다.
‘이, 이건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대자연의 힘이다!’
바람이 짓누르는 만근의 압력에 몸이 땅에 박혀 들기 시작했다. 땅에서 발도 채 뗄 수 없는 건 당연지사였다.
“혼, 혼돈기가……!”
사령신군이 간신히 고개를 들어 전방을 보며, 덮쳐오는 혼운에 부르르 떨었다.
그때였다.
[이리 오너라-!]
어느새 눈을 부릅뜬 검노야가 급히 소리치며, 사령신군과 절대천마에게 묶어두었던 명부 영기의 줄을 확 잡아당겼다.
그와 함께 온몸의 영기를 사방으로 터트려냈다.
쏴아아아-!
깊고 새하얀 광채를 뿜는 신광이 사방을 비추었다. 암흑천지에서 빛의 영역이 확장되어갔다.
“진인, 이건……!”
[영기에서 벗어나지 마라!]
사령신군이 물어보려는 찰나, 검노야가 뜻을 전하며 전방을 노려보았다.
[주문강! 이게 네놈의 선택이었더냐?]
“선인이야말로 결국 세 사람을 다 지켜내기로 한 모양이구려. 대단하오. 근데 혼운이 다 사라질 때까지 그게 가능하겠소?”
암흑신령광류로 몸을 감싼 황금존자가 어둠 속에서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네놈이 그렇게 묻는 것 자체가 이미 나의 답이니라.]
“역시 그렇군. 근데 그게 되리라 보오? 선인의 영기는 지금도 소멸해 가는데?”
[내 뜻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검노야의 두 눈에서 정광이 뿜어져 나왔다.
“후후후! 그렇구려. 그럼 이건 어떻소? 혼운이 일대를 모두 뒤덮으면, 흑혈은 생사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걸 먹어 치울 거요. 진인의 빛 속에 있는 이들만 제외하고 말이오.”
[설마?]
검노야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대에는 무극에 오른 정도의 고수가 있으니, 자신이 기운을 잃는 것과 동시에 그들이 먹혀든다면 황금존자는 제 뜻을 이루는 것이지 않은가.
“참고로 일대에 펼쳐진 건 혼원혼천영겁대진이오. 혼원기로 피어난 혼운과 함께 영원무궁토록 진세를 유지할 테니, 엄청난 장관이 끝없이 이어질 거요. 후후후!”
[허허허. 나의 도는 비움의 도이니, 하늘은 이 또한 비워가라 하시는구나!]
검노야가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뜻을 밝혔다.
“좋소, 그럼 해봅시다!”
황금존자가 암흑신령광류로 몸을 감싸더니 존재를 감췄다.
그와 동시에 현월검이 허공에서 맹렬히 회전하며 천지사방으로 영기의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쏴쏴쏴쏴쏴-!
신령스러운 광채가 삼문협 일대를 비췄다.
그러자 신광과 혼운이 맞닿는 전역에서 격렬한 충돌이 터져 나왔다.
홰애애액-!
콰콰콰콰콱-!
신광은 혼운에 절대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혼운을 조금씩 녹여내기 시작했다.
주륵.
주르륵.
빗방울이 떨어졌다. 신광이 혼운을 녹여내며 비가 되어 낙하하고 있었다.
그때,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 알아챈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이 검노야에게로 달려들었다.
“진인! 아니 되오! 대체 왜 영기로 저 진세와 혼운을 다 녹여내려 하시오?”
“진인! 아무리 진인이 득도하였어도 육신이 없어 끝까지 버텨내지 못할 거요! 생각을 바꾸시오, 얼른!”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겨를도 없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그러던 중!
혼운 가운데서 흑혈이 불쑥 튀어나와 덮쳐들었다.
“흑, 흑혈이 어떻게?”
모든 걸 삼키는 흑혈들이 영기에 부딪쳐 제 몸을 깎아 먹으며 깊숙이 들어왔다.
스악! 현월검에서 뿜어진 영기가 흑혈을 갈랐다.
그 순간, 흑혈이 셋으로 나뉘더니 절대천마와 사령신군, 그리고 혼절해 있는 진우선을 단박에 덮쳐왔다.
[……!]
검노야가 눈을 부릅떴다.
셋을 다 붙들기에는 시간도, 영기도 부족했다.
[우선아!]
검노야가 애타게 부르짖으며 진우선의 육신을 뒤덮었다.
“끄아아악-!”
“사, 살려……!”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의 비명이 허공에 남았다. 흑혈이 둘을 집어 삼키며 서서히 사라져간 까닭이었다.
푹-!
검노야와 진우선을 덮치려던 흑혈은 현월검에 찔려 즉시 소멸되었다.
[하-! 주문강 네놈은 정말…….]
“선인, 공력을 이토록 써댔는데, 뭐라도 채워야지 않겠소? 후후.”
혼운 속 허공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잠시 들려왔다.
그 후로는 황금존자의 방해가 없었다.
천지간에 신광과 혼운이 서로의 기운을 갉아먹으며 충돌했다.
삼문협에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비만이 주룩주룩 내렸다.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나흘.
맑은 빗줄기가 천하에 계속 내렸다.
비가 어찌나 내렸는지, 이제 천하는 희뿌연 안개로 가득 찰 지경이었다.
“으음?”
산봉우리 위에 누워 있던 진우선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러자 가슴팍에서 아주 작은 음성 하나가 전해졌다.
[일…어…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