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212화 (212/225)

212.

#암흑천하 (2)

검노야의 물음에 황금존자가 묵묵부답하니, 일대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즉시 대답하지 못하는 건 아마도 사실이기 때문이리라.

사황의 기억을 황금존자가 가졌다니!

그는 사황과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데, 이런 일이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모두가 황금존자를 쳐다보고 있을 때, 잠시 후에야 그의 입이 열렸다.

“후후. 선인은 진정 득도한 모양이오. 한데 현계에는 언제부터 계셨소? 설마 나 때문에 내려오신 거요?”

[하아! 주문강, 자네는 탐욕에 휩싸여 천하를 검게 물들이는 길을 택했었구나. 아니, 탐욕이 자네를 택한 것인가?]

본질을 꿰뚫어 본 검노야의 말에 황금존자 주문강이 일순간 당황했다.

“……그리 내 속을 다 들여다보고서 굳이 왜 또 묻는지 모르겠구려. 오히려 내가 묻겠소. 선인은 내 계획을 방해할 생각이오?”

역정을 낸 황금존자가 혼백마저 압살시킬 정도로 무시무시한 안광을 쏘아냈다.

그러나 그 안광은 곧 허공에 스르르 산화되었다. 검노야의 잿빛 신광에 허물어진 까닭이었다.

그때, 절대천마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진인! 왜 주문강이라 부른 거요? 설마 마영만이 아니라, 적문강조차 위장 신분이었단 말이오?”

“위장은 무슨. 마영도 나고, 적문강도 나요. 천마 담진천이었으면서 절대천마 담선우이기도 한 당신 역시 충분히 공감하는 바 아니오?”

“그게 무슨 궤변이란 말이냐! 내가 어찌 네놈 따위를 이해할까?”

정곡을 찔린 절대천마가 호통치자, 황금존자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오. 그리고 내가 당신보다 낫지 않소? 역천의 인이 그리 빛나는 것보다야, 나처럼 바쁘게 산 게 훨씬 낫지.”

“정말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군. 네놈은 역천을 한 것도 아닌데, 어찌 이럴 수 있지? 말도 안 돼!”

“그럼 역천을 한 건 믿을 수 있는 일이오? 실로 당신들의 존재 자체가 더 말이 안 되지 않소?”

“네놈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냐? 한 몸에 정사마의 기운을 가진 것도 믿을 수 없었는데, 며칠 만에 어떻게 이리될 수가 있지?”

“후후후.”

서로 자기 의견만 내세우다가, 황금존자가 절대천마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남기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검노야에게 물었다.

“선인은 왜 아무 말이 없소? 내 물음의 답을 듣고 싶구려. 정말 내 계획을 방해할 생각이오?”

[이미 이곳에 제 뜻을 관철하러 왔으면서, 진심으로 내 의견을 구하는 것인가?]

“혹시 지금이라도 마음이 바뀔까 해서 물어본 거요. 선인은 애석하게도 영체일 뿐 육신이 없으니 제 힘을 오래 펼치지 못할 거 아니오?”

[하지만 네놈이 합일(合一)을 이루는 건 막을 수 있겠지.]

검노야가 굳은 의지를 드러내며 눈에서 정광을 내뿜었다. 현월검도 머리 위에서 영롱하게 빛을 발 했다.

검노야는 황금존자가 극사와 극마 등을 합일하여 탈경에 오르려 하니, 이를 결단코 막을 심산이었다.

“정녕 나를 방해할 뜻인가 보구려.”

[하늘을 보아라. 혼돈기가 천하를 삼켜가고 있구나. 이제 서로 빛나던 천하는 어디에 있느냐? 탐욕의 화신이 모든 걸 먹어 치워 홀로 존재하니, 천지사방이 어두울 뿐이다.]

“혼돈기가 모든 걸 품는 거요. 자세히 보면 암흑 속에서도 제각기 빛나고 있소. 그저 어둠을 배경 삼았을 뿐이지. 애초에 삼라만상이 혼돈에서 나왔으니, 이게 본연의 모습이라오.”

[그리되면 천하는 죽은 것이다.]

“후후-. 역시 말이 통하지 않는구려.”

대화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자, 설득을 포기한 황금존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선인의 생각은 이만하면 충분히 들었소. 그래서 나를 막을 거요?”

[당연하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니.]

“허-!”

황금존자가 헛웃음을 내뱉더니, 길게 한탄했다.

“차라리 당신 제자가 혈라를 부수게 할 걸 그랬소. 그랬으면 사령체가 없어지며 선인이 소멸했거나, 득도하기 전에 빠져나와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겠지. 그럼 천하가 이미 내 것이었을 테고!”

[하늘의 일은 그리 허술하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우선이가 네놈을 막았겠지.]

“제자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구려. 곧 죽어도 이상할 게 없을 상태였는데. 후후후.”

황금존자가 싸늘한 웃음을 날린 후, 기운을 끌어올렸다.

고오오-!

대기가 부르르 떨며 요동쳤다.

황금존자의 전신에서 오색의 와류를 머금은 암흑신령광류가 무시무시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알겠소. 그럼 어디 한 번 해봅시다!”

검노야와 마주 선 황금존자가 기운을 피워내자, 황금존자의 뒤에서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이 며칠간 정양하며 끌어모은 공력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후우웅-!

네 사람의 기운이 허공에서 팽팽히 맞섰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흘렀다.

품(品)자 대형의 가운데에 갇힌 황금존자가 밀릴 법도 했으나, 오히려 그가 뿜어내는 암흑의 기운은 수그러들지 않고 사기와 마기를 잡아먹을 듯이 치솟고 있었다.

“크크! 그대들은 사마의 대종사이거늘, 혼백이 묶여 선인의 뜻에 놀아나는 모습이라니! 참으로 꼴 사납구려.”

“네놈이야말로 무슨 괴공을 익혀 극사경에 오른 것이냐? 혼돈에 박힌 극사의 빛이 어떻게 내 빛을 닮을 수 있단 말이냐?”

여태껏 황금존자를 말없이 노려본 사령신군이 의문을 던졌다. 그에 황금존자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정말 닮은 정도로만 보았소? 똑같진 않았고?”

“이놈!”

사령신군이 분노하여 외치며, 핏빛 사기를 온몸에 두른 채 짓쳐 들었다.

그 순간, 황금존자를 감싼 채 맹렬히 회전하던 암흑신령광류에서 사이한 혈류가 크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

사령신군이 자신과 똑 닮은 기운을 보며, 섬뜩한 느낌에 곧장 다섯 개의 혈옥을 만들어냈다.

핏빛 윤기로 반질거리는 혈옥이 허공을 흘러가며 황금존자에게로 다가갔다.

혈옥은 상대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트릴 수 있으니, 이를 이용해 황금존자를 산산이 조각내려는 것이리라.

한데 그때였다.

황금존자에게서 일어난 혈류가 검붉은 혈옥 다섯 개를 허공에 토해냈다.

‘거의 똑같다!’

사령신군이 속으로 놀람을 삼켰다.

황금존자가 피워낸 혈옥은 자신의 것과 모양도, 크기도 거의 흡사했다. 색깔만 좀 더 거무튀튀할 뿐이었다.

심지어 극사경에선 하나밖에 피워낼 수 없고, 반사령에 올라서야 다섯을 동시에 펼칠 수 있는데, 그 숫자마저도 같았다.

“사사지옥혈공은 과연 사도의 정점에 있는 무공이지.”

황금존자가 씨익 웃으며 한마디 지껄이더니, 자신의 검붉은 혈옥들을 사령신군의 것에 맞부딪쳐갔다.

오 대 오.

제각기 똑 닮은 것들끼리 서로 마주한 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이 좌우로 움직이면 동경으로 반사하듯 똑같이 흔들거리고, 한쪽이 밀고 나가면 한쪽이 뒤로 물러났다.

‘혈옥광화로 터트리면 저놈도 곧장 터트릴 테니, 불의의 일격은 불가능이다!’

사령신군이 미간을 찌푸리며 황금존자를 노려보았다.

씨익.

황금존자가 조소하더니, 갑자기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갑자기 검붉은 혈옥 다섯이 궤짝처럼 쩍 벌어지더니 사령신군의 혈옥을 집어삼켰다.

화아악-!

핏빛 기운들이 황금존자의 사방에서 크게 소용돌이치며 일어나더니, 세차게 휘도는 암흑신령광류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혈광에 흑광이 깃들며 어둡게 변해갔다.

그리고 몇 줄기 혈류로 변하여 암흑신령광류에 스며들었다.

“이, 이게 무슨!”

“맛있군!”

“맛있다고? 그게 대체 무슨 망발이야!”

사령신군이 대노하더니, 두 눈에서 혈광을 줄기줄기 뿜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거였구나! 오냐!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

“후회하지 않겠소? 물론 나야 거절할 리 없지만.”

“네놈이야말로 천 년의 사도무학을 얕보지 마라!”

사령신군이 매섭게 노려보며 기운을 뿜어내더니, 사천독황공을 비롯한 사도의 절학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금존자 역시 사천독황공을 비롯해 똑같은 무공으로 동시에 마주쳐갔다.

콰콰쾅-!

굉음이 마구 터져 나왔다.

그렇게 둘이 정신이 없는 순간.

쿠쿠쿵-!

찰나의 간극 속에서 천지를 압도하는 미증유의 거력이 황금존자를 덮쳐갔다.

절대천마가 단숨에 그를 쓰러뜨리고자 펼쳐낸 강력한 한 수, 파천마신이었다.

그때, 황금존자의 금면에 뚫린 두 눈에서 새하얗게 빛나는 귀린이 맹렬히 타올랐다.

갑자기 귀안이 열린 것이다.

-모든 귀는 나를 보호하라!

황금존자에게서 심혼을 뒤흔드는 귀부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혼원혼천영겁대진의 혼백과 악귀들이 쏜살같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끼에엑-!]

[히익-!]

[켁!]

……

단박에 수십, 수백의 귀곡성이 마구 터져 나왔다.

귀들이 황금존자를 겹겹이 둘러싸서 대신 파천마신을 맞으며 감당해내고 있었다.

파천마신은 심혼을 짓이기는 무공이라, 혼밖에 없는 혼백과 악귀들은 파천마신의 힘에 닿는 순간 소멸했다.

하지만 수백을 넘어 일천의 혼백이 터져나가자, 파천마신의 힘이 사그라들었다.

절대천마가 부릅뜬 눈으로 황금존자를 노려보았다.

“말도 안 돼-!”

이리 막아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게다가 어떤 연유로 잔백마군의 무공을 원래부터 제 것처럼 능숙하게 펼쳐낼 수 있단 말인가.

‘시신을 훔쳐 간 건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절대천마의 속이 다급해졌다. 황금존자는 실로 불가사의한 상대라 어찌할 방법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얼른 검노야를 불렀다.

“진인! 얼른 이놈을 족치시오. 가만히 있지 말고!”

그 순간, 좌중의 시선이 검노야에게로 향했다.

검노야는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현월검을 통해 기운을 쏘아내며 혼돈기의 중심을 꿰뚫고 있었다.

황금존자가 다소 지친 기색으로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후우-! 선인, 선인은 내게 어떤 수를 보여줄 거요? 이 둘로는 어려울 것 같소만.”

그에 검노야가 감았던 눈을 떠서 황금존자를 잠시간 직시했다. 그러더니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에게 말을 건넸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게. 주문강이 극사와 극마를 제 것으로 만들었으나, 그 깊이는 자네들보다 깊지 않으니까.]

“선인은 나와 맞상대하는 걸 꺼리는구려. 선인은 내가 두렵소?”

황금존자가 검노야를 자극했다.

하지만 검노야는 일언반구도 대답하지 않은 채,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에게 다시 말했다.

[주문강은 오래전에 극사를 품었고, 마공도 익숙하여 극마 역시 쉬이 품었다네. 이제 화산의 정기를 품어 등봉조극에 오르려 했지. 그 리하면 정사마의 힘을 합일해 생사경에 올랐을 테니까.]

“그럼 진인이 지금 혼돈기를 꿰뚫은 건…….”

[극사와 극마의 힘을 상대해서 알겠지만, 화산의 정기까지 녹아드는 것만은 막고 있지.]

그에 황금존자가 비아냥대듯이 반박했다.

“후후후! 선인의 망상은 잘 들었소이다! 근데 정말 나서지 않을 거요? 정녕 이 두 사람을 내게 희생시킬 작정이오?”

“…….”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의 눈빛이 깊어졌다.

황금존자가 말을 이었다.

“뭐하러 그리 어렵게 힘을 빼시오? 차라리 선인이 지금 날 베면 되지 않소?”

“하하하! 그게 네놈이 바라던 바였구나. 진인이 기운을 거둬들이는 순간, 합일하여 생사경에 오르려는 속셈이었군.”

사령신군이 황금존자를 꿍꿍이를 알아챘다. 말을 듣는 순간 속내를 절로 알아버렸다.

그때였다.

황금존자가 벼락같이 암흑신령광류를 일으켜 사령신군을 덮쳐갔다.

사령신군의 눈이 혈광으로 물들었다.

‘정말로 나를 닮았다!’

황금존자는 자신과 기운만 닮은 게 아니었다. 사고방식이나 판단력마저 유사했다.

그래서 기습해올 순간마저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령신군이 곧바로 반격했다.

그의 가슴팍에서 정련된 혈기의 구체가 솟구쳐 나왔다. 짙은 사기로 심장의 본을 뜬 구체에서 강맹한 섬광을 뿌리는 사사지옥혈공의 정수, 여의혈옥이었다.

이는 사령신군이 종전부터 생각해둔 비장의 한 수였다.

푸슥-!

여의혈옥의 섬광이 부지불식간에 연이어 쏘아지더니, 반격의 공세 속에 숨겨진 혈광 하나가 황금존자의 암흑광채를 뚫었다.

“큭!”

황금존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미처 예상치 못하고 오른쪽 어깻죽지에 일격을 허용한 것이다.

“생각보다 강렬하군.”

“이건 정말 모르는군.”

“근래에 창안했나? 한 수 배웠다.”

“그렇다면 네놈은 장검평까지의 기억을 가졌단 말이냐?”

“예리하군. 하지만 거기까지다.”

황금존자가 싸늘한 눈빛을 쏘아내며 분노를 끌어모아 암흑신령광류를 일으켰다.

구루루루-!

하늘의 혼돈기가 황금존자의 기세에 따라 휘몰아치며, 혈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쐐쇄쇄쇄-!

혈운의 소용돌이 굉음을 터트리며, 봉우리 일대를 집어삼키듯이 덮쳐왔다.

그 힘이 사령신군을 훑고 지나가자, 급격한 충격에 나동그라지며 피를 토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한 줄기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네놈! 네놈은 장검평의 허물을 먹었구나! 설마 육신을 먹어 기억을 흡수한단 말이냐!”

극사경의 무공과 공력, 축지성촌과 사사혈라대법을 비롯한 술법들을 펼쳐낸 방법.

그리고 잔백마군의 육신을 가져가 귀역무간진과 귀안을 펼쳐내는 모습.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방법이지만, 추측한 대로라면 지금의 상황이 말이 되었다.

그때, 황금존자가 암흑신령광류에 휩싸여 하늘의 혈운을 끌어다 몰아치며 검노야 쪽으로 덮쳐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령신군이 즉각 외쳤다.

“천마! 당장 주문강을 막아라! 저놈은 지금 화산지도를 버리고, 진우선을 먹어 생사경에 오를 심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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