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208화 (208/225)

208.

#혼돈천하 (2)

혈라의 갈라진 틈으로부터 순전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순간!

‘……!’

진우선은 심혼마저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찰나의 간극 속에서 미증유의 거력이 덮쳐오는 까닭이었다.

‘파천마신? 절대천마가 지금 목숨을 걸었구나! 막지 않으면 죽는다!’

육신이 부서지고, 혼백마저 소멸할 것만 같은 압도적인 기세가 짓눌러왔다.

본능이 단박에 느껴 섬찟한 신호를 보냈다.

한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 스승님도 사령체를 아예 못 나오시게 할 심산이다! 무조건 막아야 해!’

잠시 생각을 거듭할 수도 없었다. 잠시라도 멈칫하면 쓸려 나가 버릴 테니까.

진우선이 남아있는 모든 힘을 일거에 끌어올렸다. 내력이 바닥을 보였으나, 그렇다고 모아서 대처할 틈조차도 없었다.

미약한 오행진기에서 작은 광륜이 피어났다. 광채가 옅고, 두께도 얇았다. 내력이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 이미 광륜으로 사령신군의 진체를 옭아맨 터라, 이조차 단전 바닥을 박박 긁어 간신히 이루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미미해 보여도 광륜의 오행진기였다. 진우선이 곧장 패왕금룡신공의 선천지기를 더했다.

그 순간, 금선무의 선기가 광휘와 함께 솟구쳤다.

“흡!”

진우선이 기합성을 빠르게 외치며, 금빛 광채를 머금은 광륜검으로 금륜도겁의 절초를 펼쳐냈다.

금선무의 육초식인 금륜소천부터 전개한다면 연환초식인 금륜도겁의 위력을 더 증대시킬 수 있으나, 지금은 그리할 잠깐의 시간도 없었다.

쿠쿠쿠쿠쿵-!

태산이 덮쳐오듯 파천마신의 거력이 쏟아졌다.

태풍 앞의 작은 촛불처럼 광륜검이 빛을 뿜었다. 그 빛은 꺼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터트리며 사방을 찬란히 밝혔다.

화아아악-!

“다 절멸시키리라!”

절대천마의 외침에서 필사적인 의지가 절절히 느껴졌다.

‘정면으로 받아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진우선이 눈을 부릅뜬 채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쿠웅-!

파천마신의 거력을 진우선이광 륜검으로 쳐냈다. 하지만 묵중한 충격은 그대로 남아 심혼을 후드려쳤다.

“컥!”

진우선이 저도 모르게 선혈을 토해냈다. 어느새 옷자락들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살갗 또한 검게 죽어있었다.

후욱!

그때, 산봉우리의 우측면이 날아갔다. 비껴낸 파천마신의 일 초가 산봉우리를 소멸시킨 것이다.

진우선은 이를 느꼈으나, 눈으로 확인해볼 새가 없었다.

이는 첫 번째일 뿐이니까.

쿠우웅-!

파천마신의 두 번째 거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짓눌러왔다. 진우선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부들부들 떨리는 두 팔로 광륜검을 휘둘렀다.

“쿠허헉-!”

눈코입귀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공력이 중간에 끊어지며 육신이 압력을 받아낸 결과였다.

그와 동시에.

쏴악!

아슬아슬하게 비껴낸 파천마신의 거력에 산봉우리의 좌측면을 움푹 날려버렸다. 우측면보다 훨씬 깊게 깎여나갔다.

이번엔 제대로 비껴내지도 못한 탓이었다.

‘힘의 차이가…… 벌어졌어!’

생각조차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파천마신의 세 번째 거력, 마지막 일 초가 남아있었으니까.

쿠우우웅-!

탈마경으로 나아가는 마공, 파천마신의 위력이 덮쳐왔다

‘이를 어찌해야……!’

진우선의 눈동자에 절망감이 어렸다.

이제 금선무의 선기마저 끊어지려 하니 버텨낼 수조차 없을 듯했다.

진우선이 어두워져 가는 눈으로 절대천마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 순간, 파천마신에 미증유의 거력이 담긴 이유를 깨달았다

‘설마! 진원지기까지 끌어쓴 것이냐?’

애초에 반선경의 진우선과 진마경의 절대천마는 비슷한 실력을 지녔기에, 둘의 결전은 별다른 요인이 없다면 비등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컸다. 처음에 양패구상한 게 그래서였다.

하지만 절대천마의 이번 선택은 달랐다.

그는 진마의 마기는 물론이요, 사방에서 몰려드는 선천지기를 모조리 빨아들여 공력에 더하고, 결정적으로 본연의 진원지기마저도 쏟아부었다.

말 그대로 최후의 생명력까지 짜낸, 목숨을 건 힘으로 파천마신을 펼쳐낸 것이다.

반면에 진우선은 광륜의 오행진기를 써서 사령신군의 진체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로 인해 절대천마와 공력의 차이가 벌어졌고, 이는 맞부딪칠수록 더 격차를 초래했다.

그러니 상황이 절대천마에게로 급격히 기우는 것이리라.

게다가 그러면서 또 다른 차이마저 드러나 버렸다.

파천마혼에서 발전된 파천마신은 완성된 무공으로 탈마경의 이치를 품었다.

이에 반해 금선무는 반선경에 이르는 이치를 품었으나, 신선경의 이치까지는 담지 못했다.

진우선이 감히 감당해내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진우선도 급히 진원지기를 끌어 올렸다. 어차피 이대로는 막아낼 수 없다면, 최후의 한 수로 저항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파천마신의 세 번째 거력이 짓쳐 들어왔다.

또렷이 살아난 금선무의 선기가 금륜도겁의 초식에 실려 퍼져나갔다.

검초가 전광석화처럼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머금기 시작했다. 금빛 광채가 홀연히 짙어지며 허공에 아로새겨졌다.

‘……!’

진우선이 눈을 부릅뜬 순간.

퍼억-!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파천마신의 공력에 금선무의 검초가 짓이겨지며, 진우선이 바닥에 나자빠졌다. 온몸이 짓눌러진 듯 혼백마저 쪼그라져 있었다.

주르르-!

널브러진 진우선의 입가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후우우우-!

천지사방이 뇌성벽력으로 요란하고 폭우마저 쏟아져 내리는 와중에, 산봉우리 위에 때아닌 미풍이 불고 신광이 빛을 발했다.

그 미풍에 파천마신의 어마어마한 잔력 또한 흔적조차 없이 살랑이며 날아가 버렸다.

“크흑…… 진인, 깨어나셨구려.”

절대천마가 입가로 선혈을 흘려 대며 왼쪽 무릎을 꿇은 채 중얼거렸다.

그는 피폐해진 육과 혼을 다스리고, 다 쏟아낸 진원지기를 채우기 위해 힘겹게 대자연의 선천지기를 들이마시는 중이었다.

하지만 검노야는 절대천마에 대꾸하지 않았다.

곧장 탄식을 흘리며 진우선의 곁에 내려서고 있었다.

[아-! 죽지는 않았구나!]

그렇다고 해서 살았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진우선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었다. 기식이 엄엄하여 곧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진원지기까지 다 쏟아냈을 줄이야!]

검노야가 몹시 안타까워하며, 천지사방의 선천지기를 이끌어 진우선에게로 밀어 넣었다. 진원지기를 다 쏟아냈으니, 이를 당장 채우지 않으면 절명할 터였다.

[우선아. 생을 놓지 말아라. 부디.]

절대천마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낮은 음성으로 비아냥거렸다.

“인명은 재천이오. 내 목숨을 건 파천마신에 육이 무너지고 혼백이 깨졌으니, 가망이 없을 거요. 크크크.”

[닥쳐라!]

후웅-!

검노야가 외치는 순간, 대자연의 힘이 절대천마를 짓눌렀다.

“쿠억-!”

절대천마가 피를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통쾌한 마음이 있는지, 부들거리는 팔로 상체를 일으키며 이죽거렸다.

“애틋하구려. 사제지정이란 게. 그런다고 살릴 수 있겠소?”

[고귀한 생명을 안타까이 여기는 것이 응당 마땅한 이치이니라.]

검노야가 진우선의 육신에 계속 선천지기를 불어넣으며, 생명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했다.

다행히 진원지기가 차츰 채워지며 혼백이 떠나가지는 않았다.

그 광경을 보며 절대천마는 여전히 빈정거렸다.

“크크크! 못 살리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이군.”

[숨이 붙어있는 한, 살려낼 수 있을 거다. 천명이 다하지 않아 하늘이 아직 데려가지 않은 것이니.]

“천명? 크하하하하-! 웃기지 마시오. 그딴 건 없소. 내 운명은 내가 열어갈 뿐.”

절대천마가 광소를 터트리면서 우뚝 일어섰다.

“인제 보니 알겠소. 파천마신이 더 위였소! 내가 창안해냈지만, 과연 탈마경의 무학이오.”

[탈마경의 무학? 그게 그리 중요한가?]

“그럼 뭐가 중요하오? 파천마신을 이루면 나 또한 인세의 속박에서 벗어나는데!”

[속박에서 벗어나면 하고 싶은 게 있었나?]

“당연하오. 만고천추에 독보군림하겠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군.]

“그럼 달라졌을 줄 알았소?”

절대천마가 당당하게 야심을 드러내더니, 어느새 땅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령신군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게 아니오. 사황 저놈 역시 질긴 목숨을 가지고 여전히 불로불사하여 불멸을 꿈꾸지 않소? 그러면 뭐, 술법천하가 되겠지만.”

그 순간, 눈을 뜬 사령신군이 절대천마를 한 차례 노려본 뒤 검노야에게로 말을 건넸다.

“진인. 득도하셨으니 이제 곧 우화등선하시겠구려. 진심으로 감축드리오.”

[사황, 자네는 내가 우화등선하기를 바라는 모양이군.]

“그저 감축드리는 거요. 우리가 비록 악연으로 맺어진 관계이나,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왔는데 먼저 이루었으니, 어찌 아니 축하하겠소?”

“크크크. 네놈이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정말로 살고 싶은 모양이군.”

사령신군의 내심을 꿰뚫어 본 절대천마가 실컷 비웃었다.

“그렇다면 천마 네놈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이냐? 대체 어떤 역천의 비법을 터득했기에 그리 웃을 수 있단 것이냐?”

“정말 제 꾀밖에 모르는군. 사황 네놈이 그래서 그 수준인 거다. 종전에 천명이 다하지 않았다는 말을 못 들은 것이냐?”

“그럼 설마?”

사령신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혈라의 사령체가 부서진 후 남아 있는 영기를 흡수하던 중이었는데, 그조차도 잠시 멈췄을 정도였다.

“광륜이 풀렸다고 바로 살아 돌아갈 꿍꿍이나 하는 주제인데, 대체 뭘 알 수 있을까?”

“득도하면 등선하게 되고, 인세의 규율을 벗어나는 것 아니었나? 대신 인세에 간섭할 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진인이 왜 영체로서 현존했을 까? 왜 우리와 만나게 됐을까? 생각을 좀 해봐라.”

“아-!”

사령신군은 그제야 절대천마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의 탄식 속에 놀람 반 안타까움 반이 담긴 게 그래서였다.

창궁진인의 천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그건 천마와 사황이 살아있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창궁진인이 득도하여 스스로 혈라를 깨고 나왔으니, 어찌할 수도 없으리라.

그때였다.

[너희는 그저 천하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나.]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인데, 그럼 뭘 더 봐야 하오?”

검노야가 한탄하듯이 말하자, 절대천마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천하는 스스로 존재하며 흘러가는 것이거늘, 잠시 아우른다 한들 그게 온전히 너희의 것이겠느냐? 불멸한다고 한들 영원히 가질 수 있겠느냐? 그쯤 깨달았으면 하늘의 도가 보였을 법이거늘, 욕망을 놓지 못했구나.]

“하지만 그게 인간 아니겠소? 욕망 없이 어찌 무학을 깨닫고 올라갈 수 있단 말이오? 진인이라고 다르지 않잖소?”

사령신군도 반박했다.

[하긴 나도 그랬구나. 오욕칠정을 인간이 어찌 내려놓기 쉬울까! 더군다나 도를 이리 깨달았으니, 그 높은 깨달음을 어찌 내려놓을 수 있을까!]

검노야가 탄식을 흘렸다.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은 욕망에 지극히 충실한 것뿐이다. 이해되지 않는 바가 아니었다. 그저 안타까울 수밖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중요한 걸 놓치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래도 다들 천기를 볼 수 있지 않은가. 혼돈이 너희를 뒤덮었으며, 천하마저 시커멓게 드리우고 있지 않으냐?]

“그러고 보니 진인은 아시오? 제자는 저게 금천이라던데.”

[허-!]

검노야가 땅이 꺼질 듯이 탄식했다.

비움의 도를 깨달았건만, 업보는 아직도 유효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둘은 모르는 눈치였다.

[모든 걸 빨아들이는 혼돈의 기운이 입을 연 채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에 삼킬 것은 천하이며, 우주 삼라만상이겠지.]

“설마…… 우리 근처에서 암약했던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목숨마저 노리고 있단 말이오?”

사령신군이 놀람을 토해냈다.

이는 사령통천의 비술로도 보지 못한 바였다.

[혼돈기가 커지니 이제야 드러나는구나. 그는 모든 걸 삼키고자 태어났어!]

검노야가 깊은 근심을 드러냈다.

하늘을 가려버린 혼돈의 기운이 절대천마와 사령신군까지 품는다면, 세상이 어찌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우르르르르르-!

콰콰콰콰콰콰쾅-!

검노야가 천기를 읽은 걸 눈치챈 걸까.

혼돈의 기운에서 강렬한 섬광이 마구 번쩍이더니, 천지사방에 뇌성벽력이 세차게 몰아쳤다.

[혼돈기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커지고 있구나! 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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