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94화 (194/225)

194.

#귀역무간진 (1)

진우선의 얼굴에 짙은 긴장감이 어렸다.

귀역무간진의 귀기가 심혼을 옥죄며 짓눌러오니, 절로 다급한 마음이 일었다.

‘스승님! 귀역무간진의 압력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신마황동은 아무래도 귀역무간진을 펼치기 위한 초석이었나 봅니다!’

[내 생각도 같구나! 천지 또한 한없이 짓눌려 떨고 있어. 이를 어찌할꼬!]

‘극경에 오른 무인이 아니고선 버텨내기도 쉽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큰일이다. 비역이 땅거죽 바로 아래에 있어 삼문협에 모여든 강호인 모두가 영향을 받을 테니 말이다! 동굴 내에서만 문제가 될 게 아니야!]

‘그런데 천장을 뚫고 올라가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맞다. 그건 불가능해. 여기서 천장을 곧장 뚫고 올라간다 해도 이십여 장은 파헤쳐야 하니까. 길을 찾아야 해!]

진우선과 검노야는 촉박한 와중에도 대책을 찾았다.

하지만 독교의 눈에는 진우선이 홀로 허둥대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급하고 당황스러운가 보네. 상황이 심상치가 않지? 키키킥!”

진우선은 잠시 생각하느라 별반 대꾸도 하지 않았다.

[히익-!]

[끼에엑-!]

[끼기긱-!]

“귀곡성도 막 들리네. 너도 들리지? 혹시 이게 뭔지 알아? 난 아는데!”

독교가 신이 나서 계속 주둥이를 나불거렸다.

그 모습이 여간 밉살스러운 게 아니었다. 진우선이 독교를 매섭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귀역무간진. 잘도 이런 극악무도한 진법을 펼쳤구나!”

“오! 알고 있었구나. 역시! 신뇌(神腦) 잔백구유 조사님은 고금에 유례가 없었던 분이시니까.”

때마침 귀역무간진의 귀기가 독교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그 안에서 한쪽 입꼬리를 쳐올리며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진우선이 눈에서 정광을 뿜기 시작했다.

그 눈빛이 눈앞의 독교뿐만 아니라, 석실 내외를 꿰뚫을 듯이 매우 강렬하게 훑고 지나갔다.

“잔백마군이 펼쳤겠지?”

“맞아. 잔백마군께서 극경에 오르시며 네게 복수할 날을 기다리셨지.”

“그렇군. 그때 목숨을 끊었어야 했어.”

“지금 그리 말해봤자 뭐해? 안 그래?”

“그 안에 있으면 안전할 것 같나?”

“날 어찌할 수 있으면 해봐. 하지만 네 뜻대로는 쉽게 안 될걸?”

독교가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어느새 귀기를 갑옷처럼 두른 것도 모자라, 천장에서 막대한 힘이 계속 쏟아져 내린 까닭이었다.

한데, 진우선과 싸우기 위해 준비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마! 얼른 들어오시죠!”

독교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석실 뒤편의 석벽이 반쯤 회전하여 열렸다.

휘익-!

그리고 백지장보다 새하얀 얼굴의 세 마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우리 차례로군.”

“맞아요. 이제부터 그대들 유령종의 능력을 보여주시면 돼요.”

“후후후!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소!”

한 중년인이 느물거리는 얼굴로 독교와 인사하더니, 석실을 가로질러 진우선 앞으로 다가왔다.

진우선이 세 마인을 바라보며 검노야에게 생각을 전했다.

‘스승님! 저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유령종이었습니다.’

[허! 어쩐지 기운이 참으로 희미하다 했더니, 흡혈유령종(吸血幽靈宗)이었구나. 그간 들려온 바가 없어 강호에서 멸절된 줄로만 알았거늘.]

원래 진우선과 검노야는 조금 전에 그들이 다가왔던 걸 알고 있었다.

귀역무간진이 석실에 내려앉은 순간, 소름 끼치는 섬찟한 마기도 번져왔던 까닭이었다.

‘흡혈을 하는 모양이군요. 이름만으로도 저들의 성격을 알 것 같습니다.’

[맞다. 마교도들이 워낙 극악무도하다지만, 저들은 그중에서도 비할 바 없을 정도로 흉악했다. 그래서 강호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못했었지.]

진우선이 검노야의 말을 들으며, 눈앞에 나타난 세 마인을 바라보았다.

그들 셋은 모두 흉신악살의 악귀처럼 참으로 불길하고 불쾌한 기운을 마구 흘려대고 있었다.

그중에 앞장섰던 중년인이 째려보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 왔다.

“네가 진우선이겠군. 반갑다.”

“흡혈유령종을 이곳에서 볼 줄은 몰랐군.”

“호오-! 나야말로 놀랍군!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우리를 알고 있을 줄이야!”

탄성을 터트린 중년인은 기분이 꽤 좋은지 미소가 부드러워져 있었다.

“종주인 흡혈신마(吸血神魔)다. 먼저 네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염라마군과 구유마라종을 지워준 덕택에 우리가 천마오종에 합류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그랬던 건가?”

흡혈신마가 내뱉은 뜻밖의 말에 진우선은 떨떠름할 따름이었다.

“그런고로 하나 약속하지. 네 가는 길은 편안히 보내주마.”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나 보군.”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우리는 네 피로써 도약할 것이다. 그건 불 보듯 뻔한 일이야.”

흡혈신마가 입을 벌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남들보다 뾰족하게 솟구친 송곳니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그에 진우선도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야말로 고맙소. 하나씩 찾아가서 상대하는 수고를 덜어줘서 말이오.”

후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우선의 옷자락이 부풀어 오르며, 전신에서 한바탕 기운이 휘몰아쳤다.

이화와 항마의 기운이 사방으로 뻗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우선의 발아래에서 신령스러운 기운이 운무처럼 피어올랐다.

명토의 힘이 사방에 드리워진 귀기를 밀어내며 명부의 영역을 선포했다.

그때, 자신의 혼령에 영기를 가득 채워 넣은 검노야가 진우선에게 말을 전했다.

[우선아. 네 기운을 이어놓겠다. 비록 귀역무간진의 귀기가 강하고 질기나, 지금 보다시피 명부에서 나온 순전한 영기를 흩트릴 수 없으니, 이따가 비역에 찾아오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는 흡혈신마가 진우선에게 다가온 순간, 검노야가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부디 조심하십시오.’

[나는 걱정하지 말아라. 휩쓸릴 일도 없으니까.]

검노야의 신령한 영체는 이승의 혼탁한 기운으로 펼쳐지는 귀역무간진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검노야는 오히려 진우선을 걱정했다.

[우선아. 너야말로 주의하거라. 흡혈유령종은 어둠에서 자랐고 어둠 속에 거하니, 일말의 어둠이라도 있다면 그걸로 말미암아 한없이 강력하니라.]

‘명심하겠습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검노야가 명토의 기운을 이끌고서 천장을 뚫고 올라갔다.

잠시 석실의 크기를 가늠한 진우선이 정면의 적들을 바라보았다.

흡혈신마와 좌우의 두 마인은 어느새 독교처럼 귀역무간진의 귀기로 몸을 감싼 채, 짙은 암흑마력을 한껏 끌어올린 상태였다.

진우선이 흡혈신마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런데 둘은 어디 갔소? 처음에 느껴졌던 건 다섯이었는데.”

“……!”

흡혈신마가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령무영경(幽靈無影境)의 흔적도 느꼈었단 말인가? 과연 대단하군.”

“그걸로 어둠 속에 숨어든 모양이군. 그래서 어디로 간 거요?”

“어디긴, 땅 위로 나갔지.”

“그랬군.”

진우선이 짤막하게 대답하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이제 더 물어볼 게 없었다.

흡혈신마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진우선에게 음산한 눈빛과 섬찟한 미소를 남기며, 온몸의 기운을 폭발시켰다.

퍼엉-!

“크흐흐흐!”

흡혈신마가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무간지옥에서 올라온 듯한 귀기가 유령신마공(幽靈神魔功)에 스며드니, 전신에 내력이 꽉꽉 채워져 흘러넘치고 있었다.

거기에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깊숙한 동굴 속은 유령신마공의 위력이 배가되는 환경이었다.

그러니 어찌 광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있을까.

흡혈신마가 손가락을 쫙 편 채 두 손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손끝이 날카로운 두 손이 허공을 찢고 나타났다.

최앗-!

바람이 찢기는 소리도 섬찟했다.

하지만 그에 집중할 새가 없었다. 흡혈신마가 손을 쫙 편 채 허공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까닭이었다.

촤촤촤악-!

샤샥-!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두 손이 진우선을 움켜쥐려는 듯이 밀려들었다.

진우선이 그걸 직시했다.

두 손은 마공으로써 허공에 펼쳐졌다. 그래서인지 옥죄어오는 압력이 상당히 거대했다. 마기와 귀기가 뒤엉킨 까닭에 소름이 끼치고 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실체는 그게 아니었다.

은연중에 허공에 펼쳐진 손끝에서 가장 섬뜩한 위협이 전해졌다.

길쭉한 손톱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으니 그 하나하나가 칼날 같았다.

즉, 열 개의 칼날이 심혼을 할퀴고 베어 버릴 기세였다.

허공중에 잔상처럼 보이는 귀수(鬼手)가 바로 유령마조(幽靈魔爪)의 본모습이었다.

유령마조의 징그럽고 소름 끼치는 손톱들이 진우선을 움켜쥐고 마구 할퀴었다.

아니, 그래 보이는 찰나.

쾅-!

콰쾅-!

굉음이 터져 나왔다.

유령마조의 기운이 단박에 깨져 버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허공의 형체 없는 잔영 속에서 진우선이 검을 든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검을 뽑아들어 광륜의 오행진기로써 유령마조를 쪼갠 것이다.

“이 정도는 예상했었지!”

강렬한 외침과 함께 유령마조의 잔영이 다시 맞붙었다.

그와 동시에 흡혈신마가 두 눈에서 붉은 광기를 흘리더니, 석실의 흐릿한 어둠 속에 숨어들었다.

스윽-!

진우선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유령의 기척에 집중했다.

야명주로는 절대 태양처럼 빛을 밝힐 수 없으니, 석실 내부는 저들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두 마인도 보이지 않았다. 독교만 동혈 구석으로 물러나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진우선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화만으로는 귀역무간진의 귀기를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화아아-!

진우선의 몸에서 원형의 빛무리가 눈부시게 뿜어져 나왔다.

오행진기로 이루어내는 광륜이 겉으로 실체화된 것이었다.

그때였다.

“나는 유령광마요.”

살기 짙은 탁성 한 줄기가 땅속에서 올라오는 듯이 들려왔다.

‘암습!’

진우선이 단박에 유령광마의 속셈을 알아채고 기운을 움직였다.

한데, 그의 몸 주위에 흐르던 광륜의 기운이 빛살처럼 정수리 위로 쏘아졌다.

푹!

“컥!”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유령광마의 시신이 허공중에 드러났다. 진우선에게로 추락하는 모양새였다.

바로 그 순간.

유령광마의 시신 아래쪽에서 마기가 뚝뚝 흐르는 칼날 하나가 삐죽 튀어나왔다.

퍽-!

채앵-!

신체 외부를 휘돌던 광륜의 고리가 떨어져 내리는 유령광마를 단박에 쳐냈다.

그와 동시에 광륜을 머금은 광륜검이 은밀히 베어 들어오는 칼날을 튕겨냈다.

곧바로 양광폭(陽光爆)의 검초가 터져 나왔다.

“크윽!”

새하얀 빛이 폭발하며 석실을 가득 채웠다.

그와 동시에 이름조차 밝히지 못한 마인, 흡혈마도가 쇳소리만을 흘리며 죽음을 맞이했다.

어디 그뿐일까.

양광폭에서 터져 나온 빛에 어둠 속으로 숨어든 흡혈신마의 위치도 드러냈다.

흡혈신마는 삼 장 거리 앞에서 짓쳐들고 있었다.

“제길!”

진우선이 신체 외부를 휘도는 오행진기의 광륜을 크게 휘돌렸다.

그러자 사방에서 푸른 불꽃이 튀어올랐다.

타탁-!

타타탁-!

[끼에에엑-!]

[끼기끼기끽-!]

허공중에서 귀기들이 마구 타올라 소멸하며, 저마다 오싹한 귀곡성을 흘려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진우선의 검이 흡혈신마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네놈에게 다가갈 수조차 없단 말이냐!”

흡혈신마가 악을 지르며, 모든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의 눈에서 새빨간 마기와 서늘한 한기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그 눈은 결코 인간의 것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기까지 했다.

후우우웅-!

흡혈신마의 손짓과 함께 석실 천장에 닿는 거대한 두 손의 형상이 떠올랐다.

왼손에는 마기가 넘실거렸고, 오른손에는 귀기가 서늘한 예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왼손이 유령마조(幽靈魔爪)라면, 오른손은 귀령마수(鬼靈魔手)라고 부를 만했다.

그 두 손이 진우선에게로 덮쳐 들어왔다.

바로 그때였다.

진우선의 몸에서 두 줄의 광륜이 더 튀어나왔다.

화아악-!

세 줄의 광륜이 서로 맞물리며 빈틈없이 번져나갔다. 석실 구석구석까지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콰앙-!

퍼퍼펑-!

귀기의 갑주가 산화되고, 흡혈신마의 육신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마, 말도 안 돼……!”

독교가 눈을 파르르 떨며 입에서 선혈을 한 움큼 쏟아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흡혈유령종의 마인들이 연거푸 숨을 거둔 걸 어찌 믿으란 말인가.

게다가 자신을 꿰뚫고 지나간 광채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녀가 납득할 시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툭.

생을 다한 독교의 목이 떨어져 내렸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