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91화 (191/225)

191.

#짙어지는 암운 (3)

휘익-. 핏!

진우선이 손을 살짝 휘젓자, 손끝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밤톨만 한 불꽃이 암흑천지인 동혈 내부를 훤히 비췄다.

사방에 시체들이 마구 널브러져 있는 게 적나라하게 보였다.

‘정말 너무나 참혹합니다. 이걸 천마교에서 의도했다고 생각하니, 그들에게 화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나 역시 그렇구나. 목불인견의 참상을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겠느냐.]

동굴 내부로 들어가는 진우선과 검노야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흉측한 주검들이 끝없이 보이고, 피가 흘러내려 바닥에 고이고 굳었으며, 육신은 썩어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얼른 들어가야겠습니다.’

진우선이 걸음을 재촉했다.

첫 번째 공동을 빠르게 지난 뒤 통로를 더 들어가자, 동혈이 좌측과 우측으로 나누어지는 지점이 나타났다.

‘좌측에선 독기가 느껴지고, 우측에는 귀기가 짙습니다. 한데 생기는 우측에서만 전해지니 일단 이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러자꾸나.]

곧장 우측 동혈로 들어선 진우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희뿌연 안개로 가득 찬 공동에 다다랐다.

바로 그때였다.

[히익-!]

[끼에에에엑-!]

공동에서 소름 끼치는 귀곡성이 마구 터져 나왔다.

희뿌연 안개는 본래 귀무였던지라, 진우선이 피워낸 푸른 불꽃 이화에 닿자마자 귀기들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뭐야? 저리 안 치워?”

그때 귀무 속에서 잔뜩 가시 돋친 앳된 음성이 들려왔다.

눈에 초점이 없고 눈빛이 서늘한 어린아이가 쓰러진 뭇 무인들 배 위를 콩콩 뛰어서 다가왔다.

“이게 무슨 짓이야? 너 누구야?”

“당신이 귀기의 주인이었군.”

“귀기를 알아봤어? 아! 진우선! 네가 바로 진우선이겠구나!”

어린아이가 진우선의 정체를 알아챘다.

“헉-!”

그러더니 다급히 숨을 들이마시며 뒤로 풀쩍 뛰어 물러섰다.

그러자 진우선이 저벅- 한 걸음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육합귀문진을 홀로 펼쳐냈군. 당신이 귀동이겠군.”

“흥! 내 이름을 쉽게 알 수 있을 줄 알아! 어림도 없어!”

어린아이, 귀동이 악을 쓰며 말대꾸했다.

하지만 진우선은 그가 귀동인 걸 확신하고 있었다.

“저 강력한 원귀들이 당신을 보호할 의도로 떨어지지를 않는데, 그런 일이 다른 누구에게서 일어날 수 있겠소?”

“헛-! 봤어? 어떻게 봤지? 숨어 있으라 했는데!”

귀동이 몹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귀무가 증발하기 시작하는 순간 심대한 위협을 느껴 친구들에게 피하라 했건만, 원귀들은 그의 뜻을 따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원귀는 멀리하는 게 좋소. 당신의 몸을 보시오. 혼백이 오랫동안 짓눌려 주어진 만큼 자라지 못했고, 육신 역시 기운을 뺏겨 성장이 멈춰버렸소. 이삼십 년은 그렇게 살아왔겠군.”

“아닌데? 나 열 살인데? 다른 사람들은 자꾸자꾸 늙어가지만, 나는 매일매일 열 살이니까 제일 좋은 건데? 그리고 나 기운 많다고-!”

쐐애액-!

귀동이 소리를 빽 지르며 귀기를 쏘아냈다.

그에 진우선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툭 쳐냈다.

퍼엉-!

귀기 덩어리가 튕겨 올라 귀무 속에서 폭발했고, 귀무 일부가 또 증발했다.

“이, 이런-!”

귀동이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간단한 한 수에서도 상대와의 실력 격차를 확실히 느낀 까닭이었다.

“역시 진우선은 괴물이구나! 대장님이 함부로 상대하지 말라는 이유가 있었어!”

귀동이 혼자서 쫑알거리다가, 별안간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근데 혈련구고저는 어딨어? 왜 안 보여? 나한테 안 주려고 안 가지고 온 거지?”

“혈련구고저를 원했던 게 당신이었군.”

“그래, 이 나쁜 놈아! 네가 강탈해가서 항마의 법구로 바꿔버렸다며! 원혼들 다 승천시킨 거지? 그렇지? 아까워, 아까워! 세상에 별로 없는 친구들이었는데…….”

“그 친구들은 이제 떠나보내시오.”

“안 돼. 그럴 수 없어! 나를 생각해주는 건 이 친구들밖에 없다고!”

귀동이 진우선을 증오하듯이 노려보며 악을 잔뜩 썼다.

하지만 진우선은 귀동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오직 원귀들만 노려보았다.

‘그럼 너희들이 떠나가거라!’

원귀들에게로 강력한 뜻이 전달되었다.

그와 동시에 진우선이 명토의 기운을 사방팔방으로 폭발하듯이 뻗쳐냈다.

‘여섯이 육합의 축이 되었고, 여섯이 혼백들을 잡아먹었구나!’

진우선이 가만히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푸른 불꽃이 곧장 타오르더니 여섯으로 쪼개져 육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피피피피피핏-.

퍼펑! 퍼퍼펑!

육합의 방위를 점하고 있던 축이 단번에 무너졌다.

[키에엑-!]

[히이이이익-!]

그 순간, 돌기둥을 축으로 삼아 깃들어 있던 여섯 원귀가 쫓겨나듯이 튕겨 나왔다. 너덜너덜하게 찢기고 관통되어 성한 데가 없었다.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이었다.

진우선이 명토의 기운을 공동 안에 잔뜩 쏟아내며 외쳤다.

‘천하에 해악이 이토록 깊은데, 다들 잘도 이승에 붙어있었군!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히이이이익-!]

[키히힉!]

동시에 내지르는 원귀들의 비명이 심혼을 옥죄듯이 소름 끼치게 퍼져나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듣는 것만으로도 질겁하여 혼백이 떠나며 숨을 거둘지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진우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런 영향조차 없는 듯했다.

이 상황에서 안달이 난 건 귀동뿐이었다. 원귀들이 귀동의 등 뒤로 숨었고, 몇몇은 귀동의 육체로 깃들었다. 그 상태에서 귀동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진우선에게로 짓쳐 들었다.

“멈춰! 이 괴물아! 대력십이귀 (大力十二鬼)는 내 유일한 친구라고-!”

“다들 가야 할 곳으로 가는 거요!”

“싫다고! 나는 싫다고!”

귀동의 주먹질이 바람을 갈랐다. 주먹 끝에서 뿜어진 기운은 허공을 격하고서 진우선에게로 쏘아졌다.

그때였다.

스읏-!

진우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앞으로 달려 나가더니, 손바닥을 펼쳐 공격해오는 귀동의 주먹을 맞받아쳤다.

그 순간!

귀동의 몸에서 원귀들이 튕겨 나갔다.

‘모두 명부로 귀원하라!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할 말이 있거든 태산부군께 고하도록-!’

진우선의 추상같은 일갈에 원귀들이 순간적으로 옴짝달싹도 못 했다.

사방에 퍼져 있던 명토의 기운이 대력십이귀를 포박하기 시작했다.

[크헤엑-!]

[흐이이엑-!]

대력십이귀가 사력을 다해 발버둥 쳤다. 공동 내부를 한없이 휘저으며, 명토의 기운에 붙잡히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안 돼! 죽이지 마! 내 유일한 친구라고!”

귀동은 눈에서 피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진우선의 기운에 막혀 좌우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온몸을 비틀며 온몸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귀왕아! 귀왕아-!”

귀동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대력십이귀 중 가장 커다란 덩치를 지닌 원귀, 귀왕(鬼王)이 눈에 들어왔다.

귀왕이 가장 강렬하게 반항하며 날뛰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허공에 떠 있던 검노야가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순간!

휘잇-!

공동에 가득 차 있던 명토의 기운이 그의 지휘를 따라 귀왕을 결박했다. 삽시간에 수십 겹을 에워쌌다.

진우선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검노야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우선아. 대력십이귀를 얼른 돌려 보내는 게 먼저다. 그다음에 이야기하자.]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명토의 기운에 집중하여, 곧 대력십이귀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검노야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홀로 생각했다.

[명토의 기운이 내 혼령을 채웠고, 내 뜻대로 움직였다. 정말 이게 될 줄이야!]

검노야는 공동에서 받은 기묘한 느낌에 아직도 얼떨떨했다.

진우선의 곁에 머무르며 명토의 기운을 느낀 적이 종종 있었다.

그때는 그저 신비롭다는 생각만 할 뿐이어서, 명토의 기운을 어찌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 전엔 귀왕을 빨리 잡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를 확신이 있었다.

그게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상황이었다.

[어찌 이리된 것일까?]

검노야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순간, 태산부군의 말이 심중에 번뜩였다.

-두 분은 이제 돌아가시는 게 좋겠소. 그리고 밖에 선물을 준비 해두었소. 시간이 없어 자세히 일러드릴 수 없으나,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거요. 그럼 잘 부탁하오.

-이는 명토의 기운으로 신인께 드리는 선물이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소.

검노야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 명토의 기운은 우선이에게 주었으나, 그걸 사용하는 건 우리 둘에게 허락했단 말인가!]

잠시 후.

공동의 상황이 일단락되었을 때였다.

‘……그랬군요!’

[이는 내 추측일 뿐이니, 확실한 바는 아니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때의 대화가 기억납니다. 태산부군께서 스승님과 저를 함께 청했으니, 스승님께서도 이 힘을 주신 게 맞을 겁니다.’

검노야의 이야기를 들은 진우선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태산부군과의 대화를 곱씹어보니, 어디에도 유일하게 진우선만 챙겼다는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스승님께서도 하실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천지간에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이 없으니,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검노야가 진우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생전에 마지막으로 계셨던 동굴과 여기가 비슷한지요?’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구나. 생전에 들어간 곳은 이렇게 깊지 않았다.]

‘저 역시 그럴 거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면서 보니, 상당히 많은 곳에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더군요. 근래에도 관리를 한 거 같고요.’

이곳에 설치되어 있던 육합귀문진만 하더라도, 보통의 무인은 파훼할 수조차 없을 만큼 완벽했다.

이는 누군가가 일부러 만든 게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천마교에서 이곳을 발견하고 계략을 꾸민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신마황동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정사마에서 모두 달려들 테니까요.’

[천마교라면 그러고도 남겠지. 무신의 유진이라니…… 그때 난 옷자락에 무언가를 쓸 힘도 없었거늘. 허어-!]

검노야가 탄식을 흘렸다.

그렇게 둘이 대화하는 사이, 공동에 드리워져 있던 안개가 모두 걷혔다.

한쪽 벽 구석에 쌓인 백여 구의 시체가 보였다.

그 앞으로 다가간 진우선은 낯이 익은 무인을 발견했다.

‘서안대협…….’

그는 생전에 사리판단이 분명하고 공명정대해 보였으나, 지금은 싸늘한 시체 한 구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눈동자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던 탐욕의 기운을 이기지 못한 것이리라.

[이들 모두 대력십이귀에게 혼백을 잡아먹힌 모양이구나.]

‘그렇겠지요. 대력십이귀는 아마도 계속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던 모양입니다. 그걸로 기운을 나눠 주니, 정기신이 비정상적이었던 귀동이 이토록 오래 살아올 수 있었겠지요.’

진우선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널브러진 쭈글쭈글한 노인이 보였다.

그는 원귀들을 다 떠나보내고서 순식간에 늙어버리면서 숨을 거둔 귀동이었다.

그의 말로가 처참했다.

[그가 익힌 귀마공(鬼魔功)이 참으로 놀랍우면서도 끔찍하구나. 허허. 천하에 어찌 이런 마공이 태어났단 말인가.]

‘잔백마군도 평범치는 않았지요. 근데 귀동은 그와도 궤가 달랐던 모양입니다.’

진우선과 검노야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검노야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건넸다.

[우선아. 그런데 좀 이상하구나. 아까 느낀 원귀의 크기와 혼백을 빼앗긴 시신의 수가 맞지 않는다. 대력십이귀의 몸집을 생각해보면, 이 모두의 것을 먹어 치우지는 못한 거 같은데 말이야.]

‘그게 정말입니까?’

[귀왕을 비롯하여 대력십이귀만으로는 절대로 일백의 혼백을 소화해낼 수 없었을 것이니라.]

‘이럴 수가! 그럼 혼백이 어디론가 빠져나가 이용됐겠군요! 게다가 강호인들이 잔뜩 휩쓸려 버렸는데, 그렇다면 수백을 넘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구나.]

진우선의 동공이 몹시 흔들렸다.

삼문협에 모여드는 무인들이 이미 일천을 넘어 수천으로 향하고 있건만, 이들 모두가 희생양일 수도 있다니.

이는 너무나 아찔한 일이었다.

‘천마교! 대체 어떤 암계를 꾸민 것이냐?’

진우선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 눈에서 한없이 시린 정광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있는 한, 결코 이룰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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