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90화 (190/225)

190.

#짙어지는 암운 (2)

동이 터오는 무렵이었다.

“저기에 신마황동이라고 아주 선명하게 보입니다. 모양새가 딱 요 며칠 사이에 새긴 거 같은데, 천마교의 짓인 거 같습니다.”

용천월이 동굴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진우선과 제갈영이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 굵게 새겨진 ‘신마황동’ 네 글 자는 못 보고 지나칠 수가 없도록 반짝이고 있었다.

제갈영이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그럴 확률이 높다고 여겨 집니다. 천마교의 행태에 허를 찔렸습니다. 곧바로 이런 수를 들고 나올 줄은 몰랐네요.”

“천하의 누가 이 상황을 예상했겠습니까? 마교도들을 색출해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곳이 알려졌으니, 애초부터 그들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진우선이 제갈영을 두둔하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벌써 수백 명이나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나온 이들은 거의 없고, 설령 나왔다 해도 목숨을 잃은 경우가 태반입니다. 제 생각엔 아예 출입을 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 무사님의 말씀이 극히 옳습니다. 어젯밤에도 소문을 듣고서 삼문협에 모여든 수가 상당하다는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까 우려됩니다. 한데 과연 저들이 따르겠습니까?”

제갈영이 뒤에 늘어선 백여 명의 무인을 가리켰다. 그들은 새벽부터 진우선의 걸음을 알아채고 뒤따라온 상태였다.

“잘 설득해봐야죠.”

몸을 돌린 진우선이 엄정한 표정으로 사방에 외쳤다.

“동도들께 드릴 말씀이 있소.”

“말씀하시오-!”

무인들의 이목이 쏠리자 진우선이 본론을 꺼냈다.

“다들 신마황의 소문을 듣고 오셨겠지만, 어제오늘 벌어진 일들이 심상치 않소. 이 동굴에 수백 명이 들어갔으나 살아나온 이는 극히 드문 상황이오. 게다가 안에서는 내 옆의 동료가 적이 되는 건 예사였고, 통로마다 시신이 가득하다더구려. 아무래도 이곳은 너무 위험하오. 모두 돌아가시는 게 좋겠소.”

“아니, 갑자기 왜…….”

“상승무공과 절세무구가 발견된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는데…….”

“지금 말고 이런 비급을 언제 구하라고…….”

“아직 생사를 단정 짓긴 이르지 않나……?”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에 진우선이 다시 한번 힘차게 말했다.

“무공비급이나 신병이기에 현혹되어선 안 되오. 그들의 말로가 어찌 되었는지를 보시오. 혈사강기를 얻었다던 산서삼호는 혈응공자(血鷹公子)에게 모두 죽었는데, 혈응공자도 두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 괴인들의 손에 한 줌 흙으로 돌아갔소. 섬서미검은 야음을 틈타 도주하려 했으나, 사도련에게 목숨을 빼앗겼고. 그 외에도 온전히 돌아간 자가 없는데, 어찌 귀한 목숨을 여기에 버리려 하시오!”

장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진우선이 내공을 실어 호통을 친 효과였다. 하지만 무인들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한 중년인이 포권을 하며 나섰다.

“소인은 죽림군자 공불군이라 하오. 정검신협께서 숭고한 뜻으로 소생들의 정기를 일깨워주시니 그 지극한 가르침에 몸 둘 바를 모르겠소.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소이다.”

“말씀하시오.”

“대협께서 경천동지할 신위로 천하의 안위를 살피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고 감사할 따름이오. 한데 소인처럼 배움이 부족한 사람은 신마황동에 잠들어 있을 비급 하나만으로도 기연을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혈사강기, 극사패공 같은 사공은 차치하고서라도 현천무상심결, 무산신공, 범천불광 신공같은 정도의 전설적인 상승무공에 어찌 혹하지 않을 수 있겠소? 소생들에게는 일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연이 닿는다면 삼대의 홍복이라오. 대협께서는 부디 이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소.”

“지금 이 모든 게 천마교의 음모라 할지라도 말이오?”

“대협께서 직접 마교도들을 색출하시며 그들의 소행이라고 온전히 믿으시는 것 같으나, 소인들은 신마황동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해 드러난 것만 믿어질 뿐이오. 그러니 여기까지 와서 신마황동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오히려 각자마다 천추의 한으로 남지 않겠소?”

“허어-!”

탄식을 터트린 진우선이 서늘한 눈으로 죽림군자(竹林君子)를 바라보았다. 볼살이 두둑하게 늘어져 있으니, 군자라 하나 덕망보다는 욕심이 그득해 보였다.

죽림군자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대협께서 그리 한숨을 쉬시니 소인이 너무 죄스럽소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혹시 대협께서 소인들을 이끌어주시면 어떻겠소? 대협과 함께라면 설사 천마교의 졸개들이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괜찮지 않겠소?”

“그만하시오!”

진우선의 서슬 퍼런 외침에 죽림군자가 대번 목을 움츠렸다.

“교묘한 말로 날 꾀려 하지 마시오. 본인은 애초에 신마황동을 폐할 심산으로 여기 온 거요!”

“아……!”

진우선이 묵직한 기세를 피워내니, 죽림군자가 사색이 된 채 부들부들 떨었다.

좌중이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진우선이 모두에게 물었다.

“다들 같은 생각이시오?”

하지만 대답이 있을 리 만무했다.

진우선이 고개를 좌에서 우로 돌리며 백여 명의 무인들을 모두 훑어보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도 몸을 푹 숙이고 있었다.

그에 진우선이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그대들이 신마황동에 들어가려거든, 한 가지 방법이 있소. 나를 넘어서서 들어가는 거요. 자신 있는 분은 나오시오.”

고요했다.

사방이 쥐죽은 듯이 적막에 잠겼다.

진우선의 눈빛이 매서워 감히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잠시 후, 진우선이 용천월과 제갈영에게로 다가갔다.

“들어가서 신마황동을 폐하고 오겠습니다. 저들의 음모를 저지하기에는 아무래도 그게 제일인 것 같습니다.”

“진 무사님, 함께 가시지요. 저희도 이미 준비를 다 하고 왔습니다.”

“아닙니다. 제갈 책사님께선 용 무사님과 함께 내일쯤 도착할 백 책사님과 무사님들을 맞아주십시오.”

진우선의 말에 용천월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진 무사님께서 홀로 다녀오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저 안에서 지독한 마기만이 아니라 사악한 기운들이 잔뜩 느껴지니, 혼자 다녀오는 게 낫겠습니다.”

“아! 그 정도라니……. 알겠습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용천월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진우선은 내부의 상황을 느끼는 모양인데, 얼마나 심각하면 자신마저 떼어놓고 가려는지 결코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잘 다녀오길 바라는 수밖에.

진우선이 말을 이었다.

“아마도 사나흘 안에는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두 분께서 더 들어오려는 이들을 막아 주십시오.”

“그런데도 들어가려 하면 어찌할까요?”

그에 진우선이 동굴을 흘깃 바라본 뒤 대답했다.

“그건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들어오려 하거든 들여보내십시오. 어찌 다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할 수 있는 한 해보겠습니다.”

진우선이 두 사람과 대화를 마치고는, 백여 명의 무인들을 사나운 눈초리로 한 번 더 노려보았다. 그러고 나서 걸음을 옮겨 신마황동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무인들 사이에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정검신협이라더니, 혼자 독식하려고!”

“그렇게 정의롭다고 외치는 정무맹이 이래도 돼?”

바로 그때.

콰앙!

쿠쿵-!

쿠쿠쿠쿵-!

갑자기 산 중턱이 무너져 내렸다. 산사태가 난 듯이 바위가 마구 부서져 굴러떨어지고, 흙이 무너져내렸다.

산자락이 와르르 내려앉았다.

“이, 이게 무슨!”

“설마 정검대협이?”

“말도 안 돼. 이런 힘이라니…….”

그렇게 모두가 놀라는 사이.

동굴 입구가 사라졌다. 신마황동이라는 글자도 자취를 감춰 보이지 않았다.

***

삼문협으로 다가오는 일남사녀가 있었다. 장사에서 출발할 때는 서먹서먹했으나, 이제는 다소 친근해 보였다.

그렇게 된 데에는 대화가 잘 통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역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의인은 진 대협뿐입니다. 진 대협은 자기 뜻을 항상 지켜나가며 힘을 쓰니, 정말로 천하에 다시 없을 신인입니다. 탁 무사님께서 진 대협을 만나게 된 건 실로 천운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겠습니다.”

“하하하! 맞소. 진 대협을 만난 후로 내 삶에 중요한 것을 깨닫고 매진하게 되었으니, 그는 내 일생을 변화시킨 귀인이오. 나는 정말로 복을 많이 받았소!”

“저 역시 그랬습니다. 진 대협은 함께 있는 것 자체로 많이 보고 배우고 느끼게 하는 대인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진 대협만 한 스승이 없습니다.”

“오! 우문 무사는 그렇게까지 느꼈구려! 과연 진 대협이오.”

탁운비가 우문혁을 보며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혁은 일행들과 함께하면서 진우선을 ‘진 소협’에서 ‘진 대협’으로 높여 불렀는데, 탁운비 역시 호칭이 같았다.

두 사람은 ‘진 대협’을 가슴으로 우러르는 동질감으로 급격히 친해진 상태였다.

“이제 삼문협이오. 곧 진 대협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기대가 되오. 우문 무사는 일 년만이라 했으니, 나보다 더 떨리겠구려.”

“하하하! 긴장도 되지만, 기대도 됩니다.”

“진 무사는 볼 때마다 나를 놀라게 했소. 우문 무사도 아마 그럴 거요. 후후!”

탁운비와 우문혁의 대화에 백하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두 분은 이제 슬슬 대화를 줄이시는 게 어때요? 여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잖아요.”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일행을 이끄는 백하련의 말에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객잔 거리는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작은 불씨 하나 떨어지면 대폭발이 일어날 것 같은 일촉즉발의 긴박감이 팽배했다.

“백 책사님, 사천의 무인들까지 와 있나 봅니다.”

“저들은…… 당문과 아미파, 청성파로군요.”

한효기가 작음 음성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백하련이 바로 알아챘다.

그들의 얼굴에는 보통의 긴장감을 넘어 흉흉한 살기마저 잔뜩 어려 있었다.

그렇게 객잔 거리를 조용히 지나가고 있을 때, 그들에게로 두 사람이 다가왔다.

“다들 무사히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용 무사, 오랜만이오.”

“제갈 책사님, 반갑습니다.”

탁운비와 백하련이 용천월과 제갈영을 알아보았다. 이어서 만총과 우문혁, 한효기도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백하련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엊그제 보내신 전서까지는 확인했습니다. 이곳의 상황이 날이 갈수록 험악해진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전황이 어떻습니까?”

“어제 이른 아침에 진 무사님께서 천마교의 음모를 파훼하기 위해 들어가셨습니다. 강호인들이 더 빠져드는 걸 막기 위해 입구도 폐하셨고요. 한데, 엊저녁에 십 리 정도 떨어진 산자락에서 새로운 출입구가 발견되어 난리가 났습니다.”

“헛! 그럼 다들 진 대협의 뜻을 어기고 그리로 들어갔겠군요!”

탁운비가 짙은 눈썹을 역팔자로 부라리며 대화를 받았다.

“사마외도의 사람들은 진 무사님이 보이지 않으니, 잠시 망설이다가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정도의 무인들 상당수는 객잔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라는 점입니다.”

“그래도 정도의 의기가 죽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들 눈빛과 얼굴에 욕심이 드리워지면서 안타까움이 흐르고 있으니, 오늘 밤이 지나면 어찌 변할지 모르지요.”

“허어-!”

탁운비가 탄성을 흘렸다.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한 백하련이 일행에게 물었다.

“일단 저희도 한 번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바로 쉬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용천월이 묻자, 백하련이 옆에 선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일단 먼저 확인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만총이 진중한 목소리로 의견을 꺼냈다. 제갈영은 이전보다 깊어진 그의 눈빛에 저도 모르게 긴장 감이 어렸다.

우문혁과 탁운비, 한효기가 서로 잠시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괜찮은 모양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들 일곱 명이 신마황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자락에 다가갈수록 일행의 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으나, 짙은 살기가 매우 수두룩했다. 살기등등하게 산을 헤집는 무인들만 수백은 되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에 일행이 뻥 뚫린 새로운 동혈 근방에 도착했다.

“저곳입니다.”

“후우-! 상황이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군요.”

탁운비가 침음성을 흘렸다.

“맞습니다. 다들 누가 들어가는지 견제하다가, 종종 뒤따라 들어가서 죽이고 나오기도 하더군요. 살벌하기 짝이 없습니다.”

“진 무사님께서 나오기로 하신 때가 이삼일 정도 남았으니, 일단 지켜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일행이 용천월의 의견에 다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였다.

스스스슷-!

삽시간에 사방에 자욱한 안개가 내려앉았다.

그러자 곳곳에서 아우성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한낮이라 운무가 피어날 리가 없는데?”

“운무는 개뿔! 이렇게 소름 끼치고 오싹한 기운은 대체 뭐야?”

하지만 만총을 비롯하여 몇 사람은 이 정체를 알았다.

“귀기입니다, 귀기!”

“귀문탈백종이 나타난 게 틀림없어요!”

한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발밑에서 한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런 지독한 음기라니!”

이번에는 용천월을 비롯한 일행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순간! 백하련이 사색이 된 얼굴로 숨이 넘어갈 듯이 외쳤다.

“앗! 구음의 기운이에요! 월령마화종도 나타났나 봐요. 저들이 합공을 펼치다니!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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