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86화 (186/225)

186.

#들썩이는 천하 (2)

한편, 금강마도가 숨을 거두고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주군. 서안에서 변고가 생겼습니다. 금강마도가 진우선에게 죽임을 당했고, 혈련구고저를 빼앗겼다고 합니다.”

“흠. 차질이 생기겠군.”

검은 장포를 걸친 사내, 흑야(黑夜)가 고저 없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보고를 받았다.

“정말 성가신 놈이야. 여러모로 곤란케 하고 있어…….”

톡. 톡. 톡.

무표정한 얼굴의 흑야가 검지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끝을 흐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흔, 그가 어디로 향하고 있지?”

“그날 밤 혈련구고저의 원혼들을 명부로 떠나보내고, 어제 서안을 나섰다고 합니다. 방향은 이곳, 삼문협 쪽입니다.”

군청색 의복을 입은 사내, 무흔(無痕)의 말에 흑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연히 삼문협이겠군. 진우선이 못 알아챘을 리 없지. 염라마군이 대공을 이루고도 숨을 거두었는데, 금강마도가 그를 어찌 감당할까?”

“계획은 어떻게 할까요?”

“계획은 변동 없이 진행한다. 어차피 준비는 이미 다 마쳤으니까. 화룡점정일 수 있었던 혈독쌍괴와 혈련구고저가 없을 뿐이야.”

“알겠습니다. 대계의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흑야가 여전히 아무 감정 없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여서 뜻을 표했다.

그러더니 한 마디 툭 내뱉었다.

“독교(毒嬌)와 귀동(鬼動)이 아쉬워하겠어.”

“독교는 이미 받을 건 다 받아놔서 상관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혈련구고저를 탐냈던 귀동은 다소 아쉬워할 겁니다.”

흑야처럼 무흔의 말에도 감정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에선 그럴 수 없었다.

“그나저나 너도 외롭겠구나. 청안이 떠났으니 이제 무영류(無影流)를 지키는 건 너 혼자뿐일 텐데.”

“오래전에 묻어둔 술이 있습니다. 만마의 지존 앞에 천하가 앙복(仰伏)하는 날, 서로 한 잔 나눌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군.”

무흔이 허탈한 심정을 토로하자, 흑야의 목소리에도 처음으로 적적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이 머지않았다. 그날 나와 함께 청안을 기리자꾸나. 우리는 남이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주군.”

일인전승 흑암류(黑暗流)의 계승자 흑야는 무영류의 전인인 무흔, 청안과 어렸을 적부터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변고로 인해 청안을 영원히 볼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흑야와 무흔이 잠시 청안을 추모하며 가슴 깊은 곳에 묻었다.

잠시 후.

흑야의 눈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안광이 흘러나왔다.

“진우선이 순순히 들어오는 꼴을 절대 용납할 수 없지. 소문을 살짝 변형할 것이다. 네가 애써줘야겠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제가 쉴 틈 없이 뛰어다니며 소문을 내겠습니다. 얼른 하명하여 주십시오.”

***

-정무맹이 삼문협에 숨겨진 무신(武神) 창궁자의 유진을 찾아냈다!

-그곳에는 신마황전 때 무신과 동귀어진한 천마와 사황의 무공도 함께 묻혀 있다!

-정검신협이 삼문협에 가고 있다! 그는 일신일마일황(一神一覽一皇)의 모든 신공을 독차지하고서, 강호일통할 생각이다!

소문 하나가 느닷없이 강호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이, 그 소문이 삼문협을 둘러싼 산서와 섬서, 하남 등지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러자 일대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삼문협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신일마일황의 무공이라니! 그들은 강호 백년사의 최고수였지 않은가!”

“두말하면 잔소리지! 신마황이라는 별호를 누가 함부로 쓸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그때 천마교와 사황성이 매서웠다 하던데. 정도무림이 쩔쩔맸다고 들었네.”

“그러니 무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겠어?”

“검선이라고도 하더군. 그의 검법이 하늘에 닿았다고도 들었네.”

삼문협 근처의 보륜객잔.

한 무리의 무인들이 객잔 내의 시끄러운 소리에 숨어 서로 속삭이고 있었다.

한데 이들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반대편의 구석진 자리를 차지 한 낭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신마황전이 역사에서 잊혔을까?”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뭐 좀 아는 거야?”

“너희도 몰라?”

“모른다네. 말 좀 해주게.”

“알았어. 다들 몰랐나 보군. 이건 민감한 얘기이니, 귀 좀 모아보게.”

“뭔데 그러는가?”

“초대 정무맹주는 무신과 막역지우였는데, 그의 명성과 실력을 시기했다더군. 그래서 기록들을 다 지워버렸어!”

“헛! 그게 정말인가?”

“그럼 정말이지!”

그들은 비밀리에 말했겠으나, 무인들이 잔뜩 모여 있는 와중에 남에게 안 들릴 리 만무했다.

한데 이런 일이 비단 보륜객잔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사파인들이 주로 모인 남관객잔에는 더욱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댔다.

“정검신협, 이 뻔뻔한 놈. 극경에 올랐으면서도 신공에 욕심내다니.”

“역시 이럴 줄 알았네. 천하에 제 놈 혼자 정의로운 척하더니, 강호일통의 야욕을 품고 있었어!”

“정검신협? 흥, 웃기는 소리지. 정파 놈들이 제멋대로 별호를 지어 붙였어. 저들 멋대로 정이고, 협이지!”

“근데 정검신협 정도면 무신의 신공이 필요 없지 않겠나?”

“모르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나이를 생각해보게. 아직 약관이 채 안 되었다는데, 그 무위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영약을 잔뜩 먹은 게 아니고서는 말도 안 되지.”

“허! 영약만 먹고 극경에 오를 수 있다니. 얼핏 만년삼왕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걸 먹으면 되는 거겠지?”

“천년산삼이 열 뿌리 있어도 만년삼왕 하나에 못하거늘, 충분하고도 남을 테지.”

“제길, 세상 더럽군. 누군 영약 하나 먹고 저리 떵떵거리는데.”

“어디, 영약뿐이겠는가? 검도 신검이라더군. 돈 주고도 못 사는 검이라 들었네!”

“정파 놈들은 죄다 위정자들이지. 천하에 욕심이 없는 척하면서, 가장 욕망에 번질거리는 놈들이야!”

“맞아! 그래서 일전에 신군께서 그를 꺾으셨어야 했어! 하! 생각할수록 열 받는군. 정파 놈들이 비겁하게 연합해 공격해오는 바람에 그를 놓치신 게 천추의 한이야.”

“이런! 그때 련주님께 혼자 부딪치면 처참하게 발릴까 봐 연합한 거였고, 어떻게든 넘어서 보려고 이곳을 탐내는 거였구나!”

“아, 제길! 그때 싹을 잘라놓으셨어야 했는데!”

소문은 주춤하다가도 한없이 피어올랐다.

날마다 외부에서 무인들이 들이닥치니, 유언비어가 와전되고 퍼지며 더 커지기만 할 뿐 그칠 줄을 몰랐다.

그로 인해 삼문협 근처 뇌가객잔의 별채에 머물고 있던 진우선 일행은 잠시 행동을 멈추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진 무사님이 괜찮다 하시지만,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담과 저주, 욕설이 자자하더군요. 괜히 그것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신 건 아닐지 걱정입니다.”

제갈영이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는 진우선을 보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던졌다.

그에 용천월이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갈 책사님께서는 걱정이 많으시군요. 하지만 진 무사님은 별 영향을 받지 않으셨을 겁니다. 등봉조극에 오르는 일은 부단히 나를 보고 깨달아야만 가능한 법이니, 그에 오르신 진 무사님의 마음은 범인과 같지 않습니다.”

“용 무사님의 말씀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하의 소문이란 게 그리 간단하지 않지요. 천하의 거목이라 하여도 바람이 한없이 세차게 불어닥치면 뽑혀 나올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저도 용 무사님처럼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요 며칠간의 천하광풍은 다르더군요. 모두가 진 무사님을 욕하고 있으니 어찌 홀로 버텨내기가 쉽겠습니까?”

제갈영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진우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진우선의 실상을 모르기에 하는 말이었다.

진우선은 지금 내면에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승님께서 천하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이셨던 곳이 삼문협이셨군요.’

[허어-! 맞다. 그런데 심히 당황스럽구나.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었거늘.]

삼문협에서 퍼져나가는 소문은 마냥 허황된 게 아니었다.

공전절후했던 신마황전이 펼쳐진 장소는 삼문협이 맞았다.

[삼문협에서 천마와 사황의 합공을 물리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이 각자의 목숨을 도외시하고서 덤벼왔지. 동귀어진은 그들의 태도였을 뿐, 둘 다 끝내 숨을 거두었는데…….]

‘스승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태산부군께서 부탁하신 것도 생각해보면, 그들은 혼백을 어찌할 수 있었기에 동귀어진이라도 하려고 달려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허어-! 아무래도 그랬겠구나.]

검노야는 당시의 상황에서 무언가 특별한 게 있었는지 계속 떠올려보았으나,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그러나 진우선은 어딘가에 있을 단초를 찾기 위해 검노야에게 계속 물었다.

‘아무래도 천마교에서 암계를 단단히 꾸민 것 같습니다.’

[그런 모양이다. 대계라 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어.]

‘스승님, 혹시 그들은 어떻게 숨을 거두었습니까?’

[천마와 사황은 당대에 극마와 극사의 정점에 올라 있었다. 그래서 선무가 아니면 상대할 수 없었지. 천마는 결국 현월검에 목이 베여서 이승을 떠났고, 사황은 전신혈도에서 피분수를 뿜어내며 죽음을 맞이했다.]

‘역시 그들은 끝을 맞이했군요. 그런데 의문이 있습니다. 조문신 맹주님의 서책에서는 스승님께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서 홀연히 사라지셨다고 했는데, 그때의 상황이 생각나시는지요?’

[그때, 이곳 삼문협에는 곳곳에 천마교와 사황성의 무리들이 가득했다. 나는 정무맹의 무인들을 찾았지만, 적들이 너무 많아 합류할 수 없었지. 결국, 두 시진 가량 헤매다 눈앞에 보이는 동굴로 들어가야만 했다. 내상이 깊어 운신할 힘조차었었던 까닭이지. 하지만 내상이 워낙 깊어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아! 그럼 그 동굴을 저들이 발견한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봤자 낡아 부스러지는 옷가지나 발견했을 것이다. 결전을 치르는데 누가 무공비급을 들고 가겠느냐? 게다가 나는 생전에 비급을 써본 적도 없었지. 내 무공을 전한 건 우선이 네가 유일하다.]

진우선이 그런 검노야의 말에 신뢰가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생각을 정리했다.

‘스승님. 그럼 천마교의 계략은 강호인들을 유혹하여, 천하를 혼란에 빠트릴 음모에 불과하겠습니다. 그걸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혈련구고저도 이용할 심산이었나 봅니다.’

[그렇겠지. 마교도들이 정말로 극악하구나, 극악해.]

‘맞습니다.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써먹는군요. 그럼 저들의 계획을 막는 게 급선무겠습니다. 그러려면…….’

진우선이 그렇게 검노야와 여러 대화를 더 이어갔다.

이윽고 진우선이 눈을 떴다.

그러자 별채 앞에서 긴장한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제가 용 무사님과 제갈 책사님께 심려를 많이 끼쳤군요.”

“아닙니다. 그보다 생각은 잘 정리가 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일은 천마교의 음모가 당연하며, 제가 난처할 이유가 하나도 없지요.”

“맞습니다.”

용천월이 진우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제갈영이 물었다.

“진 무사님, 그럼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이곳에 유진은 없습니다. 있다면 음모입니다. 그걸 알려야 합니다.”

“저들이 믿을까요? 비급이라도 하나 나오면 다들 호들갑을 떨며, 믿는 이가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럼 천마교의 간계에 놀아나는 거겠지요. 그걸 밝혀낼 방도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렇습니까? 방법이 있었는지요.”

“네. 있습니다. 두 분은 잠시 저를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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