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83화 (183/225)

183.

#또 다른 움직임 (2)

진우선 일행이 객잔을 나서서 안탑표국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옆을 따르던 제갈영이 물었다.

“진 무사님. 대체 서안에 사파 무인과 마교도가 얼마나 많은 건지요?”

“서안 곳곳에 있는 그들의 수를 다 더하면 수백은 족히 될 듯합니다. 아무래도 맹에서 많이 떨어져 있으니 저들의 행동에 제약이 별로 없겠지요.”

“수백이요? 아-!”

제갈영이 그들의 숫자를 듣더니 탄식했다.

섬서성에는 정무맹의 힘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는 까닭이었다.

용천월도 진우선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탑표국에서 어떤 마기가 느껴졌기에 심상치 않다고 말씀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그곳에 마교도만 사오십 명가량 있는 듯한데, 그들이 하나같이 무언가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 심상치 않습니다. 무수한 원한이 피맺힌 절규를 처절하게 흘리고 있으니까요.”

“헛!”

용천월이 너무 놀라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진우선의 목소리에 어린 심각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잠시 후, 안탑표국이 백 장 앞쯤에 보일 때였다.

돌연 진우선이 멈춰서더니, 용천월과 제갈영을 바라보았다.

“저 안의 기운이 심히 무거우니, 두 분께 잠시 제 기운을 나눠드리겠습니다. 그럼 한동안 마기가 자아내는 근원적인 공포에 영향을 받지 않으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이미 경험이 있던 용천월이 자연스레 손목을 내밀자, 제갈영도 조심스럽게 팔을 내밀었다.

진우선이 두 사람의 손목을 잡고, 기운을 전했다.

“진 무사님.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요?”

“항마의 기운입니다. 제갈 책사님은 특히나 정심이 약하니, 기운을 잘 품고 계셔야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제갈영은 용천월만큼 무공이 깊지 않았기에 진우선이 좀 더 세심하게 살펴주고 있었다.

잠시 후, 준비를 마친 진우선이 두 사람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럼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적들을 제압하는 건 제가 할 테니, 용 무사님께서는 제갈 책사님의 안전을 지켜주십시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용천월이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진우선에게 대답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안탑표국으로 달려갔다.

아직 한낮임에도 안탑표국의 커다란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진우선이 대문 앞에 서서 잠시 안탑표국의 현판을 바라보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일어난 바람이 힘껏 대문으로 불어닥쳤다.

뻐엉-!

대문 두 짝이 떨어져 나갈 듯이 홱 열리자, 마당에 있던 수십 명의 경계심 어린 이목이 쏠렸다.

“웬 놈이냐?”

대문 가장 가까이 있던 사내가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적대했다.

그때, 마당 한복판에 있던 남청색 장포의 중년인이 사나운 기세를 풍기며 즉각 튀어나왔다.

“뉘시오? 본 표국은 오늘 업무를 보지 않는데, 이 무슨 소란이란 말이오?”

진우선이 중년인을 노려보았다.

그는 사각 턱에 코끝이 휘어져 내려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눈동자에 마기가 단단히 정련된 안광만 깃들어 있지 않았다면, 길을 가다가도 절로 호감이 갈 사람이었다.

“당신이 표국주요?”

“난 총표두요. 그러는 댁은 뉘시오? 아니, 그보다 대문을 부수며 요란스럽게 찾아온 목적은 뭐요?”

진우선은 총표두라 밝힌 그의 말이 임시 신분이란 걸 알아챘다. 그가 품은 마기가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었다.

눈빛에서 마광이 뻗칠 정도의 마기라면 천마교에서도 내로라하는 위치에 있으리라.

그에 한마디를 툭 던졌다.

“혈련수라종이군.”

“……누구냐?”

후우웅-!

사각 턱의 사내가 강렬한 적개심을 보이며, 단박에 내공을 끌어올렸다. 갈색 마기가 그의 신형을 뒤덮으며 피어올랐다.

우웅-!

그에 진우선도 오행진기를 끌어 올리며 눈앞의 사내와 팽팽하게 맞섰다.

“……!”

그 순간, 사각 턱의 사내가 움찔하더니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진우선에게서 넘실거리는 짙은 현기에 저도 모르게 위축된 탓이었다.

탁.

진우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사각 턱의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엄정하게 말했다.

“나는 진우선이오. 당신은?”

“이, 이익! 네, 네놈이 여길 어떻게!”

사각 턱의 사내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말을 더듬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표국 내에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모두 수라금강진(修羅金剛陣)을 펼쳐라! 전력으로!”

그때, 뒤편에서 제갈영이 외쳤다.

“진 무사님, 그는 금강마도예요! 혈불의 수제자예요!”

그에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싸늘한 기세로 입을 열었다.

“금강마도였군.”

혈련수라종주 혈불은 네 명의 제자를 두었다.

금강마도(金剛魔刀)는 그중 첫째로, 혈불의 성명절기 금강혈련마공(金剛血蓮魔功)의 ‘금강’을 이어받았을 만큼 마공이 뛰어나고 불법이 깊었다.

거기에 충심마저 뛰어나서 혈불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 중요한 임무를 도맡아 수행했다.

지금도 혈불이 내린 중책을 맡고서 멀리 다녀온 상태였다.

한데, 임무의 끝이 보이는 시점에서 난처한 상황을 맞았다.

‘여기서 진우선이라니!’

진우선은 삼사제 수라객을 황천길로 보내버린 원수였다.

하지만 무공이 극에 다다른 등봉조극의 고수이기도 했다. 그가 고작 내공을 끌어올렸을 뿐인데도, 벌써 살갗을 에는 듯이 아파지지 않는가.

두려움이 심신에 엄습했다. 마음이 떨려오고 모골도 송연해졌다.

진우선이 손을 들었다.

금강마도가 예리하게 그의 동작을 살피며 방어를 준비했다.

그때, 진우선의 손가락이 금강마도의 등 뒤에 묶여 있는 물건을 가리켰다.

“그건 무엇이오?”

“이건 표물이오. 표물 처음 보시오?”

금강마도가 떨리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게 표물이오? 이리 깊은 원한이 서린 물건을 원하는 자가 있단 말이오?”

금강마도가 한 손을 뒤로 돌려 등에 멘 물건을 움켜쥐며 말했다.

“잘못 짚으셨소. 이건 그런 물건이 아니오. 불가의 법보이외다.”

“불가의 법보라고? 그럴 리가!”

진우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그에 금강마도가 순식간에 뒤로 세 발짝이나 물러섰다.

‘이제 삼문협이 코앞이건만, 임무 완수는 어렵겠구나!’

진우선을 마주했으니 뚫고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실패할 확률이 십중팔구였다.

‘그런데 혈련구고저를 어찌 알아챈 거지?’

혈련구고저(血蓮九站杵)는 금강 저의 일종으로, 굉장한 법력을 지닌 법보(法寶)였다.

혈불이 혈련구고저를 얻고서 금강혈련마공의 이치를 깨닫고 대성했을 정도이니, 신묘한 이치를 품은 기물 중의 기물이라 할 수 있었다.

“불가의 법보가 맞소. 이건 금강저요.”

금강마도가 혈련구고저를 앞으로 가져왔다. 그 모습이 절굿공이가 새하얀 천에 쌓인 듯했다.

‘주군이시여! 제 부족함을 용서하시옵소서!’

금강마도가 혈련구고저의 중앙부를 잡고 느닷없이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그러자 혈련구고저를 감싼 새하얀 천 속에서 시뻘건 기운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천을 태워 잿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우우우-!

혈련구고저 전체에 스며든 핏기가 섬찟할 정도로 기분 나쁜 느낌을 풍기는 사이, 그 양쪽 끝에서 핏빛 아지랑이가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후후후. 이거라면 진우선 당신을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소?”

진우선이 잠시 금강마도가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이제 혈련구고저에 깃든 가공할 법력이 금강마도의 진신내공과 반응하여 섬찟한 기운을 피워내고 있었다.

“이 혈련구고저에서 펼쳐질 혈법(血法)의 이치가 당신을 집어삼킬 거요! 크크크!”

금강마도가 괴기스럽게 웃으며 진우선을 노려보았다. 불법을 익혀서인지 마교도 치고는 광명정대함이 보이는 듯싶었는데, 어느새 갈색빛 마기에 취해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진우선이 손날을 날카롭게 세우더니, 금강마도가 휘휘 돌리는 혈련구고저를 내리쳤다.

콰앙-!

손날로 쳤는데 쇠의 충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금강마도가 한쪽 무릎을 땅에 퍽 꿇으며 입으로 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크윽-! 이, 이 무슨!”

“더는 볼 게 없겠군. 혈련구고저는 법보가 아니라 마구(魔具)요. 마구는 천하를 어지럽히고 해롭게만 할 뿐이지. 이리 내놓으시오. 당신은 이걸 제대로 다스릴 수 없소.”

“안돼!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고-!”

금강마도가 악에 받쳐서 피를 튀기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금강철마공(金剛鐵魔功)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며, 광명진언을 마구 읊었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옴 아모가-”

진언에 발맞춰 혈련구고저의 양쪽 아홉 가지마다 핏빛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졌다.

혈기가 끝에 조각된 연꽃에 맺히더니.

촤촤촤촤-!

연꽃이 휘리릭 도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며 혈광이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바로 그 찰나, 진우선의 두 손을 펼쳤다.

그와 함께 전신에서 황금빛 광채가 일더니, 금빛 용의 형상이 몸을 휘감으며 덮쳐오는 혈기를 마구 살라 먹었다.

단 한 수도 허용치 않는 패왕금룡신공의 위엄찬 호신강기였다.

어디 그뿐일까.

진우선의 두 손을 휘저으며 연거푸 앞으로 뻗어내니, 손끝에서 황금빛 용이 사방으로 날아올라 화살처럼 난사되던 혈광들을 모조리 잡아먹었다.

“헉!”

금강마도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급한 숨을 토해냈다.

혈련구고저의 기운이 부서질 때마다 온몸이 터지며 피가 쏟아져 내리고 있건만, 그는 오로지 허공에서 부서져내리는 혈광만을 안타까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진우선이 금강마도의 두 눈을 직시했다.

처음 보았던 단단히 정련된 안광은 불법을 닦아 얻은 것이었을 텐데, 지금은 그저 피에 굶주린 짐승처럼 광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정신 차리시오. 지금 혈련구고저가 당신의 몸을 잡아먹고 있는 걸 모른단 말이오?”

“크흐흐흐-!”

금강마도가 괴기스러운 웃음만 계속 흘렸다.

역시 애초에 느꼈던 대로, 혈련구고저는 마구였다.

양쪽으로 아홉 개씩 총 열여덟 가닥의 기둥에 스며든 피는 얼마나 될 것이며, 그 끝에 달린 혈련은 얼마나 많은 혈광을 뿌렸을 거란 말인가.

또한, 금강마도는 지금 공력만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저도 모르는 사이 온몸의 피마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주인의 내력과 정혈마저 갈취하는 마구였다.

‘이 자는 혈련구고저의 마기에 완전히 잡아먹혔구나!’

진우선은 그가 더는 가망이 없음을 알았다.

그는 단숨에 혈련구고저에 심령이 사로잡혔다.

진우선이 금강마도의 머리를 부여잡고서, 패왕금룡신공을 일으켰다.

“컥-!”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금강마도가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뎅구르르-!

혈련구고저가 바닥을 굴렀다.

진우선이 얼른 혈련구고저를 집어 들었다.

[흐으으으-!]

[흐으윽-!]

[히엑-!]

원혼들의 섬찟한 음성이 심중에 전해져왔다.

그 순간, 진우선이 명토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외쳤다.

‘닥쳐라!’

[-.]

그 순간, 혈련구고저에 흐르던 핏기가 단박에 사그라들었다.

등골을 서늘케 했던 혈기와 혈광도 단번에 멎더니 소멸했다.

이제 혈련구고저는 흔한 쇳덩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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