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82화 (182/225)

182.

#금천을 뒤쫓다 (1)

황금색 가면과 이마에 새겨진 천(天)이라는 글자.

홍대원의 외침 후, 좌중은 모두 말을 잃은 채 하나같이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급작스럽게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제갈영이 단호한 음성으로 정적을 깨트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척 존귀하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황금색과 하늘[天]은 부귀와 권위를 상징하니까요.”

“그런 것 같소. 그들이 벌이고 간 짓은 포악무도하기 그지없었지만 말이오.”

“그리고 정사마의 고수가 함께 움직이는 건, 강호에서 단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했던 일입니다.”

자하선옹이 제갈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연백위도 요점을 짚었다.

그에 진우선이 의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새로 나타난 무리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그들을 맞상대할 때 저뿐만 아니라 장문인과 문 사형도 매우 당황했습니다. 상승무공의 이치를 담고 있으나, 풀어내는 게 강호에서 겪었던 바와는 사뭇 달랐으니까요. 그저 내력의 기질만이 각기 정도와 사도, 마도의 무공이란 걸 알려줄 뿐이었습니다.”

홍대원이 당시의 고된 심정을 토로하자, 자하선옹이 그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그렇다면 정체부터 알아내야겠구려.”

“하지만 알려진 게 너무 없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악행은 몇 년 전부터 이루어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인께서 어제 강호에 이와 비슷한 일이 수차례 일어났다고 하지 않았소? 맹에선 이 일이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 모양이구려.”

“그렇습니다. 섬서성에서 실종된 무인만 해도 벽안귀마, 만악서생, 일점홍, 흑갈자, 청명검, 포의대협까지 총 여섯 명이었습니다.”

진우선의 대답을 들은 자하선옹과 연백위, 홍대원이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모두 사라졌단 말이오?”

“네, 죽었는데 시신이 사라진 예도 있고, 갑자기 실종된 일도 있습니다.”

연백위가 안타까운 기색으로 장탄식을 흘렸다.

“아-! 언젠가부터 청명검과 포의대협의 고명이 들려오지 않더라니…….”

“연 각주님께서는 그분들과 친분이 있으셨나 보군요. 어떤 분들이셨습니까?”

“청명검께서는 뭇 사람들이 두루 칭송하는 의인으로 천하에 나서거나 본인을 높이는 일 없이 조용히 의를 행하시는 분이었고, 포의대 협께선 불의를 참지 못하는 뜨거운 성정으로 천하에 몸소 협을 세우시던 분이었소.”

“혹시 두 분 모두 홀로 다니셨습니까?”

“그렇소. 아무래도 특별한 소문조차 없었던 게 그 때문인 모양이오.”

연백위가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하선옹도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 만악서생과 일점홍, 흑갈자 세 명은 사도에 속해 있었고, 벽안귀마는 마인이었으니, 그들은 납치하는 데도 정사마의 구분이 없었구려.”

“누군가를 살해한 것으로 끝난 게 아니니, 다른 어떤 목적이 있을 게 분명합니다.”

좌중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우선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추측을 꺼냈다.

“섬서성에서만 살펴봐도 삼 년 전에는 벽안귀마와 만악서생이 사라졌고, 이 년 전에는 청명검과 일점홍, 작년에는 포의대협과 흑갈자가 실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실종사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지요.”

“하지만 본 파의 장문인이 사고를 당하며 만상각주가 의문을 느꼈고, 이후 여러 정황이 드러난 모양이오.”

“맞습니다. 그리고 이는 중원 전체로 시야를 넓혀 봐도 비슷합니다. 지난 삼 년 동안 청송자, 방연대사, 사사노괴, 독주요마 등 스무 명 정도가 실종되었지요. 이들 역시 강하긴 했으나, 매화검백께 비할 수는 없습니다. 덕망이든 악명이든, 명성 역시 부족함이 있구요.”

“신인의 말은 그들이 무위로나 명성으로나 점점 더 고수를 찾아갔다는 것이구려. 참으로 타당한 것 같소.”

자하선옹이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연백위가 흥분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아! 섬서성의 무인들만 살펴도 정말 그렇습니다. 악명 높기로는 살인을 즐기던 일점홍이 제일이었지만, 무위로 따져보자면 그는 여섯 중에서 딱 중간 가는 실력이었습니다.”

“아-!”

홍대원이 비탄하여 탄식을 흘렸다.

“설마?”

그때 용천월이 눈을 부릅뜨며 진우선을 쳐다보았다.

진우선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도 한 생각이 뇌리를 번쩍 스쳐 가고 있었다.

“진인! 저희가 파악하기로, 섬서성에서는 사건이 한두 달 간격으로 일어났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실종자들이 둘씩인 게 그래서입니다.”

“그럼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진우선이 그리 대답한 순간, 제갈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 무사님의 말씀에 저도 깊이 공감하지만, 섬서성의 상황도 살펴보셔야 합니다. 매화검백께서 섬서성 제일의 고수이셨는데, 둘째간다고 알려진 동천산장의 추풍검은 매화검백께 비하면 손색이 있습니다.”

“그럼 나를 목표로 삼는다면 어떻겠나?”

“아! 그건…….”

그 순간 제갈영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화산파 대장로로서 명망으로나 실력으로나 매화검백에 뒤처질 게 없었다.

하지만 진우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도 진인은 아니실 겁니다.”

“그렇소?”

“그들은 정사마를 막론하고서 일을 자행했습니다. 하지만 시기에 관점을 두고서 살펴본다면, 한 부류에 연속적으로 손을 뻗친 적은 없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저는 그리 보고 있습니다. 한데 추풍검은 어느 방면의 인물입니까?”

“사도에 속해 있네.”

“그럼 그가 대상일 수도 있고, 산서, 하남, 호북, 감숙 등에서도 이어서 일을 벌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들의 행동반경은 중원을 아우르기 때문입니다.”

“…….”

진우선의 말에 좌중이 잠시 말을 잃었다.

무서운 실력과 심각한 흉계를 지녔는데 정체를 알 수 없으니, 남는 건 근심과 걱정뿐이었다.

“허어-! 그들은 정녕 누구이며, 이 강호에서 무엇을 획책하고 있단 말인가!”

자하선옹이 깊게 탄식했다.

진우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한 가지를 제의했다.

“일단 그들을 금천(金天)이라 부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름이 없으니 암중 세력의 윤곽조차 불분명해 보입니다.”

“신인의 말이 타당하네. 그게 좋겠군.”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자하선옹과 제갈영이 이에 동의했다.

홍대원이 아련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금천, 금천이라…….”

***

이틀이 지났다.

화산파 산문에 자하선옹을 비롯한 몇몇 도사가 진우선 일행을 배웅하고 있었다.

“홍 각주님의 신(神)이 안정되었으니, 저희는 이만 내려가 보려 합니다.”

“신인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구명의 은혜를 어찌 다 말로 표현하겠습니까만, 언제고 이 은덕을 꼭 갚겠습니다.”

“괜찮습니다. 홍 각주님께서 깨어나셨으니 다행이지요. 덕분에 금천의 실마리도 얻을 수 있었으니 충분합니다.”

홍대원이 허리를 굽히자, 진우선이 그를 일으키며 대답했다.

“아니오. 신인께서 도우신 덕이 정말 크오. 신인이 아니었으면 본 파는 울분을 쏟아낼 곳조차 알 길 없어 치욕스러운 누명을 써야 했을 거요.”

“하아-! 그러고 보면 금천의 음모로 인해 정말 많은 사람과 문파들이 고생하고 속앓이 했겠군요. 지금도 그러고 있을 겁니다.”

“그 말이 참으로 지당하오.”

자하선옹이 진우선의 뜻에 깊이 공감했다.

“본 파는 은원을 잊지 않소. 비록 산중에 있어 물질적으로 갚아드릴 게 마땅치 않으나, 훗날에 혹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화산의 이름으로 기꺼이 돕겠소. 신인께 받은 은덕을 모두가 고마워하고 있다오.”

“감사합니다. 진인의 뜻을 맹에서도 매우 기뻐할 겁니다.”

진우선의 말에 자하선옹이 진우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신인은 어떻소?”

“저도 물론 기쁩니다.”

“그게 전부요?”

“전부입니다. 혹시 뭐가 더 있겠습니까?”

“허허허. 신인의 마음은 참으로 맑구려. 어쩌면 그래서 도를 얻으셨는지도 모르겠소. 나는 아직 사사로운 마음이 있어 아흔이 넘도록 득도하지 못한 모양이오.”

그게 과연 사사로운 마음 때문일까.

자하선옹은 여전히 대장로 직분을 맡고 있었다. 진우선은 그게 자하선옹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책임감 때문이란 걸 느끼고 있었다.

“제가 화산파의 도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나, 진인께 조심스레 한 말씀 드리자면 심중에 고민이 많아 보이십니다.”

“허허-! 그렇소? 그럼 어찌해야겠소?”

“고민이 없어져야 벗는 것일 수도 있고, 고민을 벗어야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요. 이는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진정 옳은 말이오. 고맙구려.”

“넓게 받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자하선옹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본심을 꺼냈다.

“우리 화산은 정무맹과 돕고 돕는 관계일 뿐, 서로가 어느 쪽으로도 속하지 않았소. 즉, 신인께 받은 은덕은 맹과 별개로 감사하다는 말이오. 신인이 비록 득도(得道)하여 천하가 가릴 수 없다 하나, 성도(成道)는 득도보다 어렵다 했으니, 신인은 언제든 화산을 벗으로 여겨주셨으면 좋겠소.”

“진인의 크신 말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도를 얻기가 쉽지 않으나, 얻은 도를 계속 이루어나가는 일은 더욱 어려운 법이었다.

자하선옹은 그 점을 들어 말하며 진우선과의 인연도 다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시오. 연 각주가 산 아래까지 안내해드릴 거요. 화산의 겨울 길은 친절하지 않으니, 신인과 귀빈들께서는 아무쪼록 조심히 내려가시오.”

자하선옹이 말을 마치자, 연백위가 두 제자와 함께 하산길을 열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감사합니다.”

***

진우선 일행이 서안지부에 도착했다.

서안은 정무맹의 근거지인 장사에서 이삼천 리가량 떨어진 매우 먼 곳이었다.

하지만 서방무역의 시작지이며 섬서성의 중심으로서 매우 크고 번화한지라, 섬서성에서 유일하게 정무맹 서안지부가 있었다.

“양 지부장님. 이 전서들을 빠르게 보내주세요.”

“급보로 보내겠습니다.”

제갈영이 밀봉한 전서 두 개를 내밀자, 서안지부장 양원창이 눈에 총기를 보이며 대답했다.

잠시 후.

전서구를 보내고 온 양원창에게 진우선이 물었다.

“양 지부장님, 추풍검의 근황은 어떻습니까?”

“동천산장에 관해서는 특별히 들어온 소식이 없습니다. 오늘도 서안에 들러 여느 때처럼 물건들을 둘러보고 간 것으로 보고받았습니다.”

“그럼 혹시 황금색 가면을 쓴 괴인들에 대한 소문은 없습니까?”

“원하시는 답은 아니겠지만, 저는 그런 형색의 사람을 지금 처음 들었습니다. 이곳에 아무리 오가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그런 행색을 한 이는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이 근방에서 나타날지도 모르니, 혹시나 의심이 가는 게 있다면 바로 알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평소처럼 살피는 가운데, 동천산장 주변을 조금 더 신경 쓰겠습니다.”

양원창의 일처리가 깔끔하니, 더 요구할 게 없었다.

“그런데 괴인에 대해서 조금 더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들은 금천에 속한 자로서 셋이서 다닐 수 있으며, 각기 정사마의 뛰어난 고수입니다. 가면의 이마에 천(天)이라 새겨져 있지요.”

“혹시 여쭙기 송구하오나, 대협께서 화산에 다녀오신 게 그 일 때문이신지요?”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만 알고 함구하겠습니다.”

양원창이 눈치 빠르게 행동하며 조심스러워했다.

한데, 그날 밤이었다.

양원창이 다급한 기색으로 남전객잔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진우선 일행은 추풍검 등에 대해 알아볼 심산으로 객잔에서 며칠 머물 심산이었다.

“대협. 낮에 말씀하셨던 세 고수가 모습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진우선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여산 부근에서 큰 혈전이 벌어졌는데, 알고 보니 금강마도(金剛魔刀)와 혈련수라종의 마인 수십이 얼굴이 번쩍이는 흑의인 셋과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부터입니까?”

“한두 시진쯤 되었을 겁니다. 여산에서 그들의 충돌을 보자마자 알려왔으니까요!”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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