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74화 (174/225)

174.

#몰려드는 구유마라종 (4)

정무맹 광동지부장 가득소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전서구를 하루에 얼마나 날리는 건지…….”

오늘만 해도 이삼백 마리는 족히 날린 듯싶었다.

마교도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고, 하루에도 수차례씩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까닭이었다.

광동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일들을 파악하고 지원하는 게 그의 주임무이기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요 며칠 제대로 쉬지도 못해 눈자위가 검어져 있었다.

“지부장님! 급보입니다.”

“어디서 온 소식이야?”

“흥안지부에서 왔습니다.”

“얼른 줘봐.”

가득소가 급히 다가온 부하에게서 바로 전서를 건네받았다.

흥안지부는 정무맹이 광서성에 설치한 유일한 곳으로, 천마교와의 접경 바로 아래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가벼운 소식일 리 없었다.

“……!”

전서를 보던 가득소가 눈을 부릅뜨더니, 곧장 회의실로 향했다.

그 안에는 며칠째 광동의 상황을 함께 파악하고 분석하는 두 사람, 진우선과 용천월이 있었다.

“진 대협, 용 대협. 광서성에서 월령마화종의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종주인 구음신녀(九陰神女)가 직접 나섰다고 합니다!”

가득소가 요점을 말하며 전서를 건네자, 진우선과 용천월이 굳은 표정으로 서찰을 읽어내렸다.

“진 무사님. 구음신녀를 따라 사대마령(四代魔靈)이 나섰고, 백여 명의 월령들이 함께했군요. 이러면 월령마화종의 정예가 대부분 나선 거나 다름없다고 봐야 합니다.”

“예상한 대로 천마교가 대대적으로 나선 형세입니다.”

용천월의 말에 진우선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귀문탈백종이 파죽지세로 귀주를 쓸어버린 후 사천으로 향하고 있으며, 구유마라종은 광동에 계속 밀려들어 크고 작은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에 더해 월령마화종은 광서에서 호남성으로 진격하는 모양새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광서성 십만대산에서 전방위적으로 북진하고 있었다.

“지부장님. 맹에서 온 소식은 없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제 급보로 전했으니, 오늘 내로는 답이 올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가득소의 말에 진우선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회의실 밖에서 광동 지부 무인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지부장님, 맹에서도 급보가 왔습니다!”

“진 대협, 때마침 온 것 같습니다.”

가득소가 살짝 웃으며 얼른 전서를 받아와 진우선에게 건넸다.

-진 무사님의 무운을 빕니다. 근래에 천마교가 무섭게 창궐하는 데다 사도련이 때를 놓치지 않고 준동하는지라,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직접 전해드리지 못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주신 질문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구유마라종주 염라마군 척무해는 운부현 태생입니다. 천마교 발호 당시 그 이름은 알려졌으나 모습을 드러낸 적이 별로 없으며, 심지어 십 년 전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췄습니다. 구유마라종에서 구지 아래에 잠들어 공력을 쌓는 기인이 있다면 염라마군일 가능성이 유력합니다.

-둘째로, 구유마라종의 무공은 익히기가 심히 어려우나, 익히고 나면 음산하고 소름이 끼치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종주의 무공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백 년 전 척일중이 천마에게서 배워 구유마라종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셋째로, 혈괴와 독괴는 서로 사이가 안 좋다고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일설에는 염라마군의 가복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호에서 서로 마주친 행적이 없어 판단할 수 없습니다. 행적을 살펴보면 오히려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긴 듯 보입니다.

……

진우선이 서찰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 무사님.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구유마라종은 종주인 염라마군을 깨우려는 목적을 가진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의 행적이 십 년 전에 홀연히 사라졌다는군요.”

진우선이 용천월에게 서찰을 건네주며 대답했다.

“그럼 구지 아래의 기인이 바로 그였겠군요.”

“그렇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용천월과 진우선의 안색이 매우 어두웠다.

가득소가 우려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허-! 큰일이군요. 진 무사님께서 예견하신 대로라면, 마라혈기가 그를 깨우는 데 쓰일 것이라 하셨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무공을 익히기가 심히 어렵다고 하니, 더욱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이럴 땐 꼭 최악의 상황으로 흐르네요.”

가득소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진우선이 엊그제 추론한 바를 들을 때 고개를 저었으나, 결국 그리될 모양이었다.

“마라혈기를 익힌 무인이 마라혈독을 퍼트리고 회수하는 과정을 통해 공력을 더 쌓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예사로운 게 아니지요. 게다가 그걸 옮길 수도 있었는데, 그만한 걸 만들어냈다면 분명 어떤 목적이 있었지 않겠습니까?”

진우선의 말에 용천월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둘은 같은 심정이었다.

그때, 진우선이 냉철하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래서 지부장님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요 며칠 구유마라종의 움직임을 보며 구지가 어디일지 살펴봤는데, 운부현은 어떤 곳입니까?”

“그런 것도 살피셨습니까? 설마 이 운부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용천월에게 서찰을 건네받아 읽어보던 가득소가 놀란 눈초리로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광동성은 산과 평원과 구릉이 많아 숨어들 곳이 너무나 많았다. 동강을 비롯해 강도 많고 바다도 넓게 펼쳐져 있으니, 마음먹고 숨어든다면 쉬이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확신하듯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척무해의 고향인 운부현에 구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유마라종이 천마로부터 비롯했다면, 천마교의 교도인 척일중부터 척무해까지 그곳을 지켰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요.”

떨떠름한 가득소를 보며, 진우선이 며칠간 그려둔 지도를 가져와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시면 알겠지만, 구유마라종의 마교도들을 이끄는 백괴의 행적은 얼핏 중구난방처럼 보여도 일정한 장소만 감싸듯이 둥글게 돌고 있습니다. 바로 창우현과 운부현, 그리고 양산현과 용문현입니다.”

“엇-!”

“그중에서 창우현과 운부현 주위의 마교도들은 진중하게 힘을 쓰니 맹의 무인 중 사망자가 많았습니다. 양산현과 용문현에서는 동분서주하며 싸우느라 부상자들이 속출했지요. 그들은 천마를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움직이니, 본능적으로 그랬을 겁니다.”

“아-! 그래서 구유마라종의 마교도들이 광동으로 계속 몰려드는 거였군요. 진 대협의 혜안이 정말 놀랍습니다.”

가득소가 탄성을 흘리더니,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말을 늘어놓았다.

“진 대협! 운부현은 산으로 잔뜩 둘러싸여 있는데, 릉하동(凌霞洞)이라는 엄청난 크기의 괴이한 동굴이 하나 있습니다. 입구의 높이가 백 장은 되는 듯하고, 동굴 안에 작은 강도 흐르지요. 그래서 저승의 입구라 여겨져 다들 근방으로 다가가는 것조차 꺼립니다. 혹시 이곳 아닐까요?”

“들어보니 심상치 않군요. 일단 지부장님이 알려주신 릉하동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운부현은 광주에서 서쪽으로 삼백 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흑의를 입은 진우선과 용천월은 자정이 지났을 무렵에 릉하동 앞에 도착했다.

고오오-!

릉하동의 커다랗고 시커먼 입에서 소름 끼치는 바람소리가 울려 나왔다. 절로 지옥의 입구가 연상되었다.

한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우우.

-하아아.

땅속에서부터 섬뜩한 괴음이 온몸에 전해졌다. 이는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심령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움찔!

용천월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무공의 고수인데도 등골이 오싹하여 놀라고 있었다.

[이곳이 맞군요!]

[그렇습니다.]

용천월이 전음을 건네며 바라보니, 진우선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어둠을 꿰뚫고 동굴 안을 매섭게 바라보고 있었다.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진우선이 전음을 보내왔다.

[마교도가 탄 작은 배 하나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암중인 한 명을 태워갈 듯한데, 그때 잠입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잠입하실 생각입니까?]

[배를 조용히 따라가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수공(水功)이 약하여 물속에서 자유롭게 숨 쉬거나 움직이지 못합니다.]

용천월은 적잖이 당황했으나,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그에 진우선이 고개를 돌려 용천월을 바라보며 아무런 문제없다는 눈빛을 보였다.

[물속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제게 방도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고요한 한밤중에 잠잠한 물살을 살며시 가르며 나오는 나룻배의 기척이 느껴졌다.

입구 앞까지 나온 나룻배가 멈춰 섰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한 인영이 불쑥 나타났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군. 들어가자.”

“알겠습니다.”

두 사내가 짧게 대화하더니 곧장 나룻배에 올라탔다.

나룻배가 방향을 바꿔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에 진우선이 용천월에게 손짓하더니, 소리 없이 움직여 작은 강 앞에 내려섰다.

갑자기 광륜검을 꺼내 강에 띄우더니, 진우선이 그 위에 올라섰다.

‘설마……?’

용천월이 놀란 눈으로 진우선을 바라보자, 전음이 들려왔다.

[제 뒤에 서십시오. 검을 타고 가겠습니다.]

[이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니 검을 띄웠지요.]

[……하긴 그렇지요.]

용천월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서 검에 올라서며, 진우선의 어깨를 붙잡았다.

[가겠습니다.]

[네.]

스으윽-.

검이 작은 강 위를 미끄러져 가기 시작했다.

검은 나룻배보다 빠르게 나아갔다. 하지만 흔적은 전혀 없었다. 물살을 가르는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물방울 하나도 튀지 않았다.

동굴 속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느낌만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나룻배의 기척을 놓치지 않고 뒤쫓았다.

곧 작은 물결 소리가 들렸다.

찰랑- 찰랑-

[앞에 나룻배가 있군요. 이제 속도를 늦추겠습니다.]

진우선은 이제 나룻배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뒤따라갔다.

그렇게 반 각쯤 더 강을 타고 들어갔을 때였다.

동굴 상부에 오묘한 녹빛이 언뜻 보였다.

그 아래쪽에 바위가 튀어나온 곳에 나룻배가 조용히 멈춰 섰다.

두 사람이 배에서 내리더니, 동굴 중턱으로 뛰어올라 사라졌다.

[저기인가 봅니다.]

[그냥 들어왔으면 아예 찾지도 못했겠네요.]

[그러게요.]

용천월의 말에 진우선이 동의했다.

동굴 아래에는 강물만 흐르고 있으니 애초에 걸어 들어올 수 있을 곳도 아니었다.

그때였다.

-후우우.

-하아아.

동굴 입구에서 한 번 들었던 섬찟한 괴음이 다시 한 번 심혼을 뒤흔들었다.

용천월은 저도 모르게 머리가 쭈뼛 서는 걸 느끼며, 전율에 몸 서리쳤다.

그에 진우선이 얼른 용천월의 손을 잡고 따뜻한 기운을 흘려 넣었다.

[용 무사님. 진정하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용천월이 작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뭘까요?]

[이건 누군가의 단단한 숨소리라고 생각됩니다. 호흡에 망자의 숨결이 담겨 있으니, 아무래도 염라마군의 호흡이 릉하동과 함께하는 모양입니다.]

바로 그때였다.

단단한 숨소리가 괴이쩍게도 갑자기 들려왔다.

-후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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