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70화 (170/225)

170.

#방가장으로 (3)

광주 번화가에 있는 다관 삼 층에는 한 손님이 아침부터 정오까지 계속 앉아 있었다. 차를 마시며 끊임없이 창밖을 살피는 그는 바로 진우선이었다.

“진 무사님. 성과는 있으십니까?”

다관을 찾은 용천월이 진우선에게로 다가오며 물었다.

“이렇게 보고 있다가 발견해서 붙잡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렇지는 않겠지요. 잠시 생각도 좀 해보고 있었습니다.”

“하긴, 그리 쉽게 잡힐 거라면, 천하에 속 썩을 일이나 있겠습니까?”

용천월이 진우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은편에 앉았다.

“용 무사님은 혹시 마라혈기와 관련해 직접 겪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실은 그걸 물어보고 싶어서 지금 진 무사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마라혈독은 마기에 죽음의 기운이 짙게 어렸다고는 하는데, 말로만 들었고 또 죽은 이후의 사체만 봤을 뿐이니까요.”

“그러셨군요.”

용천월의 의문을 이해한 진우선이 설명해주었다.

“일단 마라혈인이 마라혈기를 끌어올리면, 주변 무인들의 내력에 섞여들어 광기에 휩싸이고 짐승처럼 울부짖습니다. 종국에는 눈에서 혈광을 흘리며 살심에 가득 차 광분하지요. 그게 마라혈독에 중독된 모습입니다.”

“들은 것보다 더 심각하군요. 그럼 마라혈기를 운용하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까?”

“항마공을 익혔다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어도 마라혈기는 마기와 사기(死氣)가 크게 뒤섞인 것이기에 청죽령이 울립니다. 일전에 보니 그렇더군요.”

“아! 그래서 조금 전에 청죽령을 전달해주었나 봅니다.”

용천월이 오전에 정무맹 광주지부에서 연락을 받았던 게 그래서였다.

진우선이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형의파의 일을 다시 살펴보니 의문점이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원래 마라혈독에 중독되어서 핏빛 안광을 흘릴 때면, 이지를 잃고서 적아의 구분 없이 죽이려 듭니다. 마라혈인은 그걸 통제하여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들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 형의파에서는 그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서로 싸운 듯한 흔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적에게 일방 적으로 난도질당했던 모습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의아합니다. 몇 명이 붙잡힌 채 팔을 통해 마라혈독이 주입되었다면 시간이 좀 걸렸을 테고, 다른 무인들이 달려들 틈도 충분히 있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모습은 하나도 없었지요.”

용천월이 심각한 안색으로 진우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 무사님. 어제 방가장이 형의파를 수습하며 확인해보니, 형의파의 식솔 백여 명이 모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체의 위치나 다른 여러 흔적으로 보아 습격한 자들은 많아봤자 열 명 이내일 거라고 했습니다.”

“그럴 겁니다. 마라혈인은 몹시 희박한 확률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전에 만났던 자 역시 본원진기를 써서 익혔고요.”

진우선이 철혈객을 떠올리며 말했다.

용천월이 찻잔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손이 섬섬옥수 같았다.

“용 무사님, 저는 그래서 마라혈인과 마라혈독 중에 무언가 변화가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변했기에 한쪽 팔만 마라혈독으로 녹아내렸겠군요.”

“아마도 그렇겠지요.”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오히려 다른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마라혈독으로 혼란을 유발하고 상잔케 하는 건 이미 가능했으니까요. 그리고 암중에서 살행을 하려 하면, 저들에게는 보다 손쉽고 다양한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럼 어떤 목적을 가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단 형의파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식솔들은 팔이 멀쩡했으니, 아마도 무인에게만 작용하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진우선이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신중한 어조로 사견을 밝혔다.

“……다른 무인들에게서 들끓어 오르는 마라혈독을 회수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단전에서 팔로 이어진 혈도를 통해서 말이죠.”

“헛-!”

용천월이 눈을 부릅떴다. 뇌리에 섬찟한 생각이 번쩍인 까닭이었다.

“타인의 마라혈독을 가져오는 것 아닙니까? 그럼 마라혈기가 불어나는……?”

용천월은 너무나 경악스러워 말도 채 잇지 못했다. 그의 무거운 음성도 심히 떨리고 있었다.

진우선과 용천월은 곧장 방가장 총관의 업무실을 찾아가, 방약빙에게 말을 건넸다.

“방금 하신 말씀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마라혈독을 퍼트린다는 어제의 말씀보다 훨씬 무섭군요.”

이야기를 들은 방약빙의 안색이 몹시 어두워졌다.

“방 총관님. 아직은 추측일 뿐입니다만, 적들이 사람들을 조용히 죽이려는 목적만이 아니리라 생각했습니다.”

“진 대협. 저 역시 듣고 나니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명 무사가 숨졌을 무렵의 동선을 알아보니, 근처에서 남곤묵도 경 대협께서 실종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직 찾지는 못했구요.”

남곤묵도는 광동성 한복판에 있는 남곤산 일대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고수였다.

“어쩌면 그도 마라혈독에 중독된 사체로 발견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크겠군요.”

방약빙이 진우선의 추측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용천월이 물었다.

“경 대협의 실력은 형의파 장문인이셨던 평 대협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입니까?”

“크게 부딪친 적은 없으나, 종종 듣기로는 경 대협이 조금 더 높을 거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그랬군요. 아무래도 그들은 내공이 높은 순서대로 상대를 찾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용천월의 말을 들은 진우선이 방약빙에게 물었다.

“방 총관님. 그럼 근방에서 또 손에 꼽히는 고수는 누가 있습니까?”

“아마도 두 분이 최고수이시겠지만, 두 분을 제외한다면 오늘 거래 차 방문한 복건성 남천장의 고수 분들이 가장 뛰어날 겁니다. 상단을 이끌고 온 호덕인 공자도 그렇고, 무인들도 두루 고강하지요.”

호덕인의 이름을 들은 용천월이 바로 아는 바를 말했다.

“남천패도 호자청 대협의 삼남이군요. 호 공자는 문무에 두루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용 대협의 말씀대로입니다. 오전에 그분이 저희와 거래를 마치고 돌아갔고, 내일 오전에도 또 들르기로 했습니다.”

진우선이 얼른 물었다.

“그럼 남천장 일행이 어디에서 묵는지도 아십니까?”

“아마도 서쪽의 대은객잔에서 머물고 있을 겁니다.”

***

저녁 무렵이었다.

진우선과 용천월이 대은객잔 이 층에 올라 식사하고 있었다.

“남천장에서 삼 층을 통째로 빌렸습니다.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알아보니, 예순 명 정도로 상단을 꾸려서 왔다고 합니다. 무인은 그 절반인 서른 명 남짓 된다고 합니다.”

“서른 중에 열 명가량이 뛰어난 축에 속하고, 호 공자는 내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용천월과 진우선이 각자 알아낸 정보를 조용히 나누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약을 꽤 먹었으니까요. 하지만 세 아들 중에서 무재가 가장 떨어지는 탓에 상단의 일에 집중한다고 들었습니다. 호 대협의 뒤를 잇고 있는 건 장남 호덕천 공자구요.”

“문무가 뛰어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반적으로 보면 뛰어납니다. 하지만 남천패도 호 대협의 눈에는 차지 않는 거죠.”

“용 무사님께서는 꽤 상세하게 알고 계시는군요.”

“종종 듣게 되었습니다. 호 대협께서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뵈러 몇 번 오셨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진우선은 문득 용천월이 비천용문의 직계란 사실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용천월이 선을 긋듯이 냉정하게 말하는 걸 들으며, 딱히 내켜 하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았다.

“진 무사님. 근데 마라혈인이 무인들의 팔을 시커멓게 태우는 것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그 마공은 애초에 대규모의 적들을 죽이려고 만든 무공인데, 정말 회수를 목적으로 하는 게 맞을지 의아합니다.”

용천월은 진우선의 말이 꽤 신빙성 있다고 여기면서도, 정말 그러할지는 의문스러운 모양이었다.

“사람들을 살해할 목적이라고 하면, 사실 마라혈독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단숨에 수십 명을 혼란에 빠트리고 죽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인들의 팔에 남은 흔적은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용천월에게 차분히 대답해준 진우선이 한마디 물었다.

“혹시 용 무사님은 마교도들이 여기로 오지 않을까 봐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객잔에 올라오고 나니, 과연 마라혈인이 이리로 올지 의아합니다. 장소를 잘못 택했다면, 어디선가는 또 큰 사태가 벌어질 테니까요.”

그리 말하는 용천월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진우선이 물었다.

“남천장의 무인 분들 때문에 그러신 건 아닙니까? 혹시 저들이 껄끄러우십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용천월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목소리에 다소 당황한 기색이 어리며 어색하게 들려왔다.

바로 그때였다. 진우선이 잔뜩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옵니다!”

그 말에 용천월의 눈빛과 기세가 단박에 바뀌었다.

“정말입니까? 어느 쪽입니까?”

“동쪽입니다. 잠시 후에 도착하겠군요.”

“삼 충을 대피시킬 시간도 부족하겠군요.”

용천월이 그리 말하는 순간, 허리춤에서 소리가 났다.

딸랑-.

딸랑-.

용천월이 즉각 청죽령을 만지며 소리를 잠재웠다.

‘진 무사님이 청죽령보다도 훨씬 빨리 알아채시는구나!’

극경의 무인이니 당연하겠지만, 직접 경험하니 놀라웠다.

하지만 길게 감탄하고 있을 새가 없었다.

진우선이 급히 말했다.

“접근하는 이들은 두 명입니다. 다행히 한 방향에서 오고 있으니, 저들을 밖에서 저지하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선과 용천월이 급히 밖으로 몸을 날렸다.

“호호호호!”

요염한 여인이 다소 경박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눈썹이 없는 백안의 사내가 경고하듯 외친 까닭이었다.

“괴요! 앞을 보시오!”

“왜?”

괴요가 의아한 눈초리로 대꾸하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경악성을 질렀다.

“헛-! 갑자기 어떻게?”

“기다리고 있었소.”

엉겹결에 내뱉은 괴요의 물음에 객잔문 위에서 진우선이 뛰어내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객잔 앞 큰 거리에서 순식간에 흉흉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기척을 숨기고 있었군.”

백안의 사내가 진우선을 노려보며 경계심을 피워냈다.

“당신이 마라혈인이구려.”

“…….”

“너 뭐야?”

백안의 사내가 침묵으로 대응할 때, 괴요가 잔뜩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백안의 사내가 여인을 노려보았다. 도무지 도움이 안 된다는 눈초리였다.

“나는 무혈객이오.”

“무혈객이었군. 근데 피부가 하얗소.”

“허! 그것도 알고 있었소?”

무혈객이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다소 흉악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새하얀 피부에 눈썹마저 없으니 섬찟한 느낌마저 들었다.

“설마 맹에서 왔소?”

“그렇소.”

“누구시오? 이쯤 되면 이름도 알려줄 법한데.”

그때, 옆에 있던 괴요가 숨이 넘어갈 듯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진우선! 저놈은 진우선이야!”

“당신이 괴요라면, 흑괴에게서 나에 대해 들은 모양이오.”

괴요는 그에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은 채 마구 씩씩거렸다.

그때 진우선이 용천월에게 전음을 보냈다.

[용 무사님. 삼 층에 대피하라고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마라혈인이 또 오고 있습니다. 제가 곧 올라가겠습니다.]

“……!”

용천월이 굳은 얼굴로 진우선을 한 번 바라보더니, 곧장 몸을 움직였다.

괴요가 잠시 멀뚱히 있던 진우선에게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흥! 벌써 알아챘나 보지? 설마 이곳에 우리 둘이서 온 줄 알아?”

“흑괴를 믿고서 떠드는 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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