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삼청태산 (4)
진우선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좌측에 계신 분들은 옥청검문이시고, 우측에 모여 계신 분들은 상청선문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진우선입니다.”
“반갑소. 옥청검문의 문주 현옥검이요.”
“나도 반갑소. 상청선문을 이끌고 있는 백관우사요.”
진우선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먼저 제가 태청동에 들었던 동안 이곳을 지켜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두 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문파는 다르나 도를 향한 마음은 같다고 느꼈습니다. 함께 문답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거 좋구려.”
“나도 가르침을 청하겠소.”
진우선의 제안에 현옥검과 백관우사가 먹이를 노리듯이 눈을 빛내며 호응했다.
진우선은 인상이 날카롭고 명예욕이 큰 옥청검문주에게로 먼저 시선을 주었다.
“현옥검께서 먼저 하문해주시지요.”
“소진인. 빈도는 도를 얻기 위해 검을 수련하며 일평생을 달려왔으나, 도는 더 보이지 않소. 옥청의 문을 크게 열어 도우(道友)들과 함께 수련에 힘쓰고 있음에도 말이오. 이만하면 단초가 보일 법도 한데 막막하구려. 조언을 부탁하오.”
“허를 이루기를 극진히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참되게 하십시오. 현옥검께서는 채움의 도나 태극의 도가 아닌, 비움의 도가 열려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허정(虛靜)의 깊은 상태에 드신다면, 비로소 도와 합일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진우선이 진중하게 말했다.
그에 현옥검이 맹수처럼 눈을 부라렸다.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도 붉으락푸르락했다. 진우선의 말이 태허진인이 종종 내뱉었던 말과 다를 바가 없는 까닭이었다.
옥청검문의 도인들이 무의식적으로 검을 쥐었다. 명령을 내리며 곧장 검을 뽑을 심산이었다.
“…….”
하지만 현옥검은 대꾸하지 않았다. 문주로서의 체면을 생각해 화를 참고 있었다.
“후후후.”
백관우사가 현옥검을 보며 슬쩍 웃더니,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소진인. 이번엔 빈도가 묻겠소.”
“그러시지요.”
“상청선문은 심히 깊고 짙은 태청동의 영기에 감응하며 수련하고 있소. 이 영기는 선도의 공부에 큰 진전을 주더이다. 그러던 중 이를 신단으로 빚어내면 좋겠다 싶은데, 아무리 해도 담아낼 수가 없소. 소진인께선 이 영기의 요체를 느끼셨을 텐데, 우리가 어쩌면 좋겠소?”
“이 영기는 적으면 얻을 수 있으나, 많으면 어지럽습니다. 사람이 함부로 다룰 기운이 아니니 욕심 내지 마십시오.”
“…….”
진우선이 딱 잘라 말하자, 백관우사의 얼굴이 단박에 굳어버렸다.
“허허허.”
태허진인이 웃음을 흘리더니, 현옥검과 백관우사를 꾸짖었다.
“태정, 태금. 잘 들었느냐? 태청동에 든 신인께서 하신 말씀이니 새겨듣도록 하여라.”
“…….”
“…….”
하지만 현옥검 태정과 백관우사 태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싸늘한 눈빛으로 진우선을 노려보았다.
진우선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걸 원하셨던 게 아니군요.”
현옥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단히 결심한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소진인. 나와 옥청검문의 도우들은 검으로써 도를 얻으려 애쓰고 있소. 한데 소진인이 말하는 비움의 도가 무엇인지 도대체가 모르겠구려. 우리에게 한 수 직접 가르쳐주시길 바라오. 아니면 태청동에서 얻은 도의 한 자락을 알려 주셔도 좋소.”
그 순간, 태허진인이 노발대발하여 현옥검에게 외쳤다.
“이 망할 놈아! 천지에 분간 못할 게 따로 있지, 얼른 그 말 주워 담지 못하겠느냐?”
“태허 사형! 꺼낸 말을 어떻게 주워 담소? 그리고 내가 못 할 말을 한 거요? 태산은 삼청의 것인데, 소진인이 여기서 무언가 얻었다면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소!”
“이런! 욕심이 그득하구나! 천하에 우뚝 선 태산이 어찌 누군가의 것일 수 있단 말이냐?”
“그럼 삼청이 태산을 왜 주관하는 거요? 우리는 주인이나 다름없소!”
현옥검이 태허진인에게 정면으로 대들었다.
백관우사도 현옥검의 뜻에 한마디 거들었다.
“태허 사형, 태정의 마음을 이해해주시구려. 사형이야 극에 올랐다지만, 우리는 한 갑자를 넘게 살아왔어도 얻지 못했소. 그러니 물어볼 수는 있는 거 아니오?”
“허허! 쫓기는 마음으로 도를 구하니, 도가 달아나는 것이다.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사형은 극에 올라서 그리 말할 수 있는 거요. 우리는 벌써 십 년 넘게 그 한 자락만 바라보고 있소이다! 우리는 이러다 언제 도에 귀의할지 모르거늘, 사형은 어찌 그리 야속하게만 말씀하시는 거요?”
백관우사는 속에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입을 열기 시작하자 태허진인에게 결코 기세가 밀리지 않았다.
태허진인이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진우선에게 부끄러운 빛을 보였다.
“허허. 신인께 삼청의 못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하오.”
“진인, 저는 괜찮습니다.”
진우선이 현옥검과 백관우사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두 분은 도가 궁금하십니까? 제가 궁금하십니까?”
“소진인의 도가 궁금하오.”
“나 역시 마찬가지요. 도를 보여 주시오. 소진인의 한 수가 득도의 단초가 된다면 그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오.”
백관우사와 현옥검이 진우선에게 당당하게 요구했다. 현옥검은 말도 번지르르했다.
태허진인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불호령을 내렸다.
“허어! 이놈들아. 마치 맡겨놓은 걸 찾아가는 모양새구나. 소진인께 도를 맡겨 놓았더냐?”
“태산에서 얻으셨으니 애초에는 우리의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소?”
“그게 무슨 망발이란 말이냐-?”
태허진인이 목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현옥검의 되바라진 반박에 분이 터져버린 모습이었다.
진우선이 그런 태허진인을 달랬다.
“진인께서는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때마침 검을 펼칠 생각이었습니다.”
“신인!”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도에서 서로 자라니, 현옥검과 백관우사께서 제게 청하시는 건 저로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차피 도 안에서 노니는 것이지 않 습니까?”
“허-! 그리 말씀하실 줄이야. 그럼 알겠소.”
지극한 도를 논하는 진우선의 모습을 보며, 태허진인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진우선이 옥청검문과 상청선문의 도인들을 두루 바라보더니, 현옥검과 백관우사에게 말을 건넸다.
“옥청검문과 상청선문의 도장들께서 많이 오셨군요. 이래서는 제가 일일이 가르쳐 드리기 어려우니, 두 분께서 도를 한 자락씩 보여주시면, 거기에 제 도를 담아 펼쳐 보이겠습니다. 이건 어떻겠습니까?”
“아니요. 나와 태금만으로도 충분하오. 제자들이 어찌 소진인의 검을 받아낼 수 있겠소? 오히려 지난번에 태청동 앞에서 소진인을 번거롭게 했다고 들었는데, 이 점은 사죄드리겠소.”
현옥검이 진우선과 직접 손속을 나누겠다는 욕심을 드러냈다.
“나는 생각이 다르오. 소진인의 말대로 하겠소.”
백관우사가 진우선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현옥검을 나무랐다.
“태정, 뒤를 돌아보거라. 네 제자들이 지금 소진인의 한 수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취했거늘, 너는 혼자만 차지할 셈이냐?”
“제자들은 나와 소진인의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제각기 온전히 느끼기엔 시간이 부족하겠지. 소진인이 모두를 위해 말한 큰 뜻을 왜 모른단 말이냐?”
“알고 있어. 다만 더 좋은 방법 같아 말했던 것뿐이야!”
현옥검 태정과 백관우사 태금이 서로를 노려보며 말다툼했다.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함께 도의 길을 걸어온 동갑내기요 죽마고우며 경쟁자여서, 언제 어디서든 상대에게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현옥검이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오십 명의 제자들이 발하는 열망의 눈빛이 뜨거웠다.
“소진인. 옥청검문도 그 뜻을 따르겠소.”
“감사합니다. 그럼 두 분께서는 한 초식씩 보여주시지요. 누가 먼저 하시겠습니까?”
제자들의 마음을 느낀 현옥검이 내친김에 먼저 의사를 표시했다.
“그럼 옥청검문의 진산절기인 옥청검무(玉淸劍舞)의 절초를 먼저 선보이겠소.”
“알겠습니다.”
현옥검이 옥청검문의 제자들에게 외쳤다.
“다들 공간을 물리거라. 그리고 청천여일(晴天如一)을 펼칠 터이니, 모두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도록!”
“예! 문주님!”
명운도장을 비롯한 도인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답하여, 즉각 물러섰다.
상청선문의 도인들 역시 그들과 발맞춰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진우선과 백관우사도 얼른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현옥검이 한 차례 호흡을 고른 뒤, 검을 뽑았다.
후웅-!
그의 검이 거칠게 기세를 뿜어내자, 사방에 폭풍이 이는 듯했다. 한평생 수련한 현옥검의 기운이 사방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도가 있으나, 날카롭구나.’
진우선이 현옥검의 검초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느꼈다. 그의 검법은 그의 삶을 닮아 있었다.
잠시 후, 현옥검의 기세가 달라졌다. 폭풍 후의 하늘을 그리듯, 기운이 맑게 갈무리되었다.
“소진인, 잘 보셨소?”
“네. 열심히 보았습니다.”
“잘 부탁드리오.”
“이렇게 보고서 펼치는 것이라 부족할 수 있으나, 제 도로 담아낼 테니 한 번 보시고 이야기를 이어 가면 좋겠습니다.”
진우선이 오행진기를 끌어올린 뒤, 청천여일의 검초를 펼치기 시작했다.
솨아아-!
초식의 검로 중 몇몇은 간결해지기도 하고, 몇몇은 맑은 기운을 강렬히 뿌리기도 했다.
“허!”
“와-!”
옥청검문의 도인들이 탄성을 흘리기 시작했다.
청천여일은 그들 모두가 아는 초식인데, 지금 순간에 새롭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현묘한 기운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진우선의 검 하나하나가 마음에 새겨졌다.
이윽고.
진우선의 시범이 끝났다.
“…….”
사방에 정적이 흘렀다.
수십 명이 모여 있으나 숨소리 하나 내는 이가 없었다. 모두가 진우선의 검초 하나에 함몰되었고, 그 여운이 지속되는 까닭이었다.
아무도 그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반 각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진우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괜찮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맙소.”
현옥검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는 진우선을 쉬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보고 느낀 것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때, 백관우사가 나서며 물었다.
“소진인, 상청선문에서도 한 수 부탁드리오. 우리의 진산절기인 상청무상신공(上淸無上神功)은 검을 쓰지 않는데, 괜찮소?”
“상관없습니다. 도를 담으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나는 무상무극파(無上無極波)의 초식을 보여드리겠소.”
백관우사가 고요한 가운데서 기세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기운이 심히 맑고 깨끗했다. 과연 선도의 공부라 할 수 있을 만큼, 지극한 현기를 품고 있었다.
‘무공은 더없이 맑으나, 사람이 길을 잘못 들었구나. 많은 걸 담아 내려 하시니.’
진우선이 초식을 보는 것과 동시에 사람을 살폈다.
선도의 공부는 참으로 깊으나, 사람이 온전히 나아가지 못한 듯했다.
잠시 후.
진우선이 상청무상신공의 무상무극파 초식을 펼쳐냈다.
“허허-!”
백관우사가 웃음을 흘렸다.
진우선이 펼쳐낸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초식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면서, 머릿속을 텅 비워버린 까닭이었다.
‘소진인은 내가 생각이 많은 걸 꾸짖는구나!’
반면에 태허진인은 진우선이 담아내는 지극한 도에 놀라면서도, 한껏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태정, 태금 이것들은 신인께 제 초식으로 공격하려 했었구나!’
태허진인이 조심스럽게 진우선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이 이들의 저의를 알아챘는데, 진우선이 못 알아챌 리 없었다.
그때, 진우선이 입을 열었다.
“두 분의 절초를 보고 나니, 제가 생각난 게 있습니다. 제 한 초식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소.”
“진정한 도우시구려. 고맙소.”
진우선이 검을 들어, 천천히 광영무의 이치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솨아아-!
지극한 도의 힘이 사방으로 물결치며 퍼져나갔다.
검초가 빠르지 않으나 순전하고, 복잡하지 않으나 심오했다.
이는 옥청검무의 청천여일을 깨는 검초이며, 상청무상신공의 무상무극파를 무력화시키는 움직임이었다.
‘……!’
‘제길!’
백관우사와 현옥검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바로 그때였다. 태청동에서 신묘한 영기가 마구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헛!”
“설마 태청동에서?”
“이렇게 깊고 오묘한 영기라니-!”
저마다 감탄을 쏟아냈다.
태청동에서 흘러나온 영기는 진우선에게 얽히고, 검이 나아가는 방향마다 깃들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선의 표정은 여전히 고요할 따름이었다. 전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검초를 이어나갔다.
그와 동시에, 진우선의 뇌리에 영기에 담긴 태산부군의 한 줄기 뜻이 전해져왔다.
-이는 명토(冥王)의 기운으로 신인께 드리는 선물이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소.
명토의 기운은 태산영기의 정수요, 명부의 기운이 담긴 토기였다.
[허허!]
검노야가 뜻 모를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