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진법을 깨다 (4)
쿠쿠쿠-! 쿠르르릉-!
콰콰콰콰쾅-!
폭풍우가 몰아치고, 뇌성벽력이 마구 떨어졌다.
한없이 몰아치는 광풍에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들었다. 퍼붓듯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진 무사, 환사문에서 천변의 술을 죽자 사자 펼치고 있소. 조심하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나도 동감하오. 연환대진의 천세와 지세가 우리에게 한없이 몰아쳐 오고 있소!”
냉군상이 드문드문 신광을 뿜으며 진세의 흐름을 살피고 있었다. 사도련은 지금 인술을 제외한 기문진법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압박해오고 있었다.
“내당주님, 제 뒤에 바짝 붙으십시오!”
“이미 그러고 있소. 그러니 나는 걱정하지 말고 중심축으로 얼른 인도해주시오.”
진우선이 중심축을 향해 뇌우 속을 헤쳐 나가자, 냉군상이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진우선은 반경 일 장의 범위에 자신의 금기를 흘리고 있었다. 그곳에 있으면 그나마 진법의 영향을 덜 받았다.
‘그래도 어제저녁보다는 낫다!’
그때는 냉하상을 비롯한 이양의 고수들과 육합금강진을 구축했으나, 진세에 짓눌려 숨 쉬는 것마저 신경을 써야 했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내부로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내당주님, 이제 중심축에 거의 다 왔습니다. 한데 사방의 기운이 여태까지보다 더 세차게 몰려오고 있습니다.”
“진 무사도 느꼈군. 맞소. 지금 하늘의 흐름이 심상치 않소. 아무래도 강력한 술법으로 중심축을 방비해둔 모양이오.”
신광을 흘리며 하늘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냉군상의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아-! 낙뢰의 술-!”
냉군상이 급작스럽게 소리쳤다.
그들의 머리 위로 잔뜩 몰려드는 시커먼 구름의 정체가 바로 뇌운이었다.
“진 무사, 금기를 해제해야 하오. 저들은 천뢰(天雷)로 진 무사를 해하려는 거요!”
화기 어린 구름이 서로 끝장을 보듯이 부딪치며 뇌기를 뿜으니, 낙뢰는 화기의 극한이었다.
화극금의 이치로 인해 낙뢰는 금기를 뒤집어쓴 진우선에게 꽂힐 터였다.
하늘의 낙뢰를 인간이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스윽-!
냉군상은 기운의 성질이 바뀐 걸 눈치챘다. 수기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폭풍우 속에서 수기를 느끼니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금기와는 다른 안정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냉군상뿐이었다.
“진 무사! 뭐 하는 거요-! 왜 지금 금기를 두르고 있소?”
냉군상이 버럭 소리쳤다. 서천여래신안을 통해 진우선이 금기를 둘러쓰고 있는 게 보였다.
“차라리 빨리 뇌기를 받아내는 게 좋겠습니다. 낙뢰의 술이 계속 방해할 텐데, 언제 다 끝날지 알고 마냥 기다리겠습니까?”
진우선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언가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냉군상은 그걸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건 무리요! 죽으려고 목을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잖소-!”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쳤소? 차라리 저들의 축으로 공격을 날리시오!”
냉군상이 악을 질렀다. 얼굴에 핏줄이 발딱 서 있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그의 말을 흘린 채, 세 걸음을 더 멀어졌다.
“이게 무슨……!”
그때였다.
쾅-! 콰쾅-!
콰콰콰콰쾅-!
벼락이 마구 내리꽂혔다.
번개 빛이 번쩍번쩍했다. 눈이 섬광에 멀어버렸다.
‘……!’
하지만 서천여래신안을 통해 그 광경을 목도한 냉군상은 말문을 잃었다.
‘지극한 금기! 그리고 지극한 토기!’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전율이 흘렀다.
‘화극금이나, 화생토이며 토생금이라고? 그걸로 뇌기를 감당한다고?’
이론상으로는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낙뢰를 감히 몸으로 맞아 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콰콰쾅-!
번쩍번쩍번쩍-.
낙뢰가 반 각 정도 더 이어졌다. 모든 게 진우선에게로 쏟아졌다.
냉군상은 아연실색한 모습 그대로 멍하니 진우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는 더 놀랄 게 없는 듯했다.
그러더니 하늘에서 낙뢰가 더 떨어지지 않자 바로 물었다.
“진 무사…… 사람이 맞소?”
“본의 아니게 내당주님을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혼비백산하여 이제 더 놀랄 넋도 없소.”
냉군상이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에 진우선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내당주님. 여기는 기문진법 속이지 않습니까? 진법이 만들어낸
낙뢰라 그런지 기운을 빠르게 흘려낼 수 있을 듯했습니다. 실제 벼락이었으면 이러지 못했을 겁니다.”
“허허-! 그게 말이 쉽지, 아무나 가능하겠소? 극경의 고수들은 천지간의 기운과 소통한다더니, 이런 것도 가능했구려.”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까 보니 낙뢰가 반 시진은 떨어질 것처럼 구름이 잔뜩 몰려드는데, 이래선 애꿎은 시간만 많이 흐를 것 같았습니다. 그럼 밖에 계신 분들이 많이 걱정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허허.”
냉군상이 웃음을 흘렸다.
진우선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일까?
사실 사람을 헤아리는 것도 어느 정도여야 할 만한데, 지금은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심지어 서천여래신안으로도 진우선을 제대로 측량할 수 없었다.
오직 그의 진체(眞體)가 선하고 밝게만 보일 뿐이었다.
‘나로서는 불가해한 존재였구나.’
바로 그때였다.
“내당주님.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세가 요동칩니다.”
“그렇군. 저기가 중심축이었구려!”
진우선과 냉군상이 즉각 상황을 인지했다.
화르르륵-!
오 장 정도 앞에서 갑자기 커다란 불길이 치솟더니, 두 사람을 에워싸며 덮쳐오기 시작했다.
불이 번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순식간에 사방을 뒤덮었다.
폭우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건, 기문진법 내에서 펼쳐진 술법이기 때문이리라.
“이건 겁화(劫火)구려. 초열지옥의 술이 펼쳐진 것 같소.”
여전히 신광을 흘리고 있던 냉군상이 바로 알아챘다.
천변(天變)의 술인 낙뢰의 술에 이어, 지변(地變)의 술인 초열지옥(焦熱地獄)의 술이었다.
“낙뢰가 땅에 떨어져 불타기 시작하며 초열지옥으로 더욱 가두려 한 모양이오. 저들은 천번지복(天飜地覆)의 계책을 들고 왔었구려.”
“그리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냉군상에게 말했다.
“내당주님. 바로 뚫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겁화의 힘이 종전보다 꽤 약하니, 바로 갈 수 있겠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당연한 거요!”
냉군상이 단호하게 대답하며, 곧바로 진우선의 뒤에 섰다.
두 사람은 처음 진법에 들어왔을 때의 대형이었는데, 이번에 냉군상을 감싸는 건 수기였다.
‘그러고 보니 수기도 지극하구나. 진 무사는 어쩌면 오행의 기운이 다 지극하겠어.’
두 사람은 성큼성큼 나아갔다.
진우선은 초열지옥의 겁화 속에서 아무런 지장도 받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지나갈 때마다 겁화가 사그라들었다. 냉군상은 맨땅을 밟고 나아올 수 있었다.
그러더니 두 사람이 곧 중심축의 일 장 앞에 다다랐다.
“가겠습니다.”
진우선은 걸음을 늦추지 않고, 그대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광영무 일광삼점파의 검초를 따라 광륜의 오행진기가 세 가닥으로 쏘아져 나갔다.
“안 돼-!”
“피해-!”
퍼퍼펑-!
적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찰나, 커다란 바위 세 개가 터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서 폭풍우가 사라지고, 진법 바깥의 빛이 확 쏟아졌다.
“헛!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
갑자기 훤히 드러난 술법가 몇몇이 망연자실한 눈으로 진우선을 쳐다보았다.
그때 신광을 흘리며 중심축 내부를 살피던 냉군상이 한 장소를 가리켰다.
“진 무사! 저거요, 저곳을 싹 날리시오. 그럼 연환대진이 단박에 깨질 거요.”
진우선이 곧장 검을 휘둘러 기운을 쏘아냈다.
콰콰쾅-!
연환대진의 흐름을 조율하던 장소마저 단박에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폭우를 쏟아내며 검게 물들었던 하늘이 쩍쩍 갈라지더니, 햇빛이 확 스며들었다.
그렇게 천지가 깨졌다.
“허허. 천문환상미로 대진이 어떤 진인데…….”
“도대체 무슨 사악한 술수를 쓴 것이냐? 어찌 천문(千門)을 무시하고 바로 미로를 뚫어낼 수 있단 말이야-!”
몇몇 술법가들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냉군상이 광증을 보이는 이들을 무시한 채, 벌벌 떠는 술법가 하나에게로 다가갔다.
“악범승은 어디 있느냐?”
“모, 모릅니다. 조금 전에 어디론가 도망치셨는데…….”
겁에 질린 술법가가 고개를 좌우로 대중없이 흔들었다. 그도 모르는 것이다.
그때, 진우선이 입을 열었다.
“저쪽으로 두 명이 숨은 게 느껴집니다.”
“두 명이면, 악범승과 그가 아끼는 제자겠군. 그들을 놓치지 마시오. 이 대진을 실질적으로 펼쳐낸 이들이니까.”
“염려 마십시오.”
진우선의 말에 냉군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방을 멀리 살폈다.
계획대로 일행들이 마구 달려오고 있었다.
“진 무사. 그새 이곳 정리를 마쳤구려.”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악범승 일행만이 아니라 대라연환진과 동떨어진 커다란 기운 둘도 느껴지고 있습니다. 십대빈객으로 여겨집니다.”
“그렇소? 그럼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겠소.”
진우선과 냉군상이 서로의 마음과 뜻을 이해하며, 곧장 신형을 날렸다.
잠시 후.
사방에서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쪽에 흐릿하게 보이는 부분을 공격하세요!”
콰르릉-!
백하련의 외침에 십양의 한 무사가 재빨리 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흐릿한 안개가 걷히며 적들이 드러났다. 술법가와 사도련의 무인들이 여럿 달려 나왔다.
“역시 책사님이시오!”
“지금 보신 것처럼 환영팔문진에는 들어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큰 축이 무너지니 연쇄적으로 허점이 노출됐습니다!”
백하련은 빠르게 인원도 분배했다.
“무사님들 다섯 분만 이곳을 맡아주시고, 다음으로 가겠습니다!”
한편, 제갈영도 눈코 뜰 새 없이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대라환영진은 방금 하신 것처럼 네 분이서 함께 베셔야 합니다!”
“제갈 책사님, 알겠습니다.”
이양의 무인들이 제갈영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진법을 부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적들을 쓰러뜨려 갔다.
“냉 대주님, 사도련의 무인들이 너무 많네요. 베도 베도 끝이 없는 거 같아요.”
“사도련이 원래 그렇소. 게다가 진법이 컸으니 그걸 운용할 사람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겠소?”
제갈영을 보호하며 사방에 쌍검을 뿌리던 냉하상이 대답했다.
“맞아요. 그렇겠네요. 그럼 저쪽에 숨어 있는 이들은 아예 튀어나오기 전에 베어버려야겠어요.”
“그럴 수 있으면 당연히 좋소!”
그 시각, 십대빈객을 상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크윽!”
단옥철각 이문박이 고통을 토해냈다.
그리고 삭둑 잘린 자신의 무기, 철수투(鐵手套)와 철각반(鐵脚辯)을 내던졌다.
단박에 베어져 무기로서의 효용이 사라진 까닭이었다.
“빌어먹을!”
절뚝.
각법의 대가였는데, 다리를 절고 있었다.
이문박이 이를 악물며 분노에 들끓는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너, 너 때문에-!”
“…….”
하지만 그를 마주한 정연서는 여전히 침착하게 검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사도련 무인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없다는 것처럼.
그리고 모든 일행을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진우선과 냉군상이었다.
두 사람은 악범승과 순우굉립을 쓰러뜨린 후, 전체적인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진우선이 혈풍곤 숙일위를 바라보았다. 이쪽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가봐야겠습니다.”
“아니오.”
“숙일위를 꺾는 건 어렵지 않겠습니까?”
“저건 소 대주에게 맡기는 게 좋겠소. 그리고 교 대협이 있으니 상관없소.”
“알겠습니다.”
냉군상의 말에 진우선이 자리를 지켰다.
“진 무사가 보기엔 어떻소? 소 대주의 검이 한층 더 날카로워진 것 같지 않소?”
“자세히 보니 그렇습니다.”
진우선은 냉군상이 왜 이 질문을 던지는지 바로 알아챘다.
하지만 냉군상의 말은 다른 일행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냉군상이 진우선을 잠시 바라보다가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격렬한 전장에 적응하며 조금씩 변하고 발전해 가는 이들의 모습이 눈동자에 새겨지고 있었다.
‘나 역시 끝이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