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진법을 깨다 (1)
환사문의 연환대진을 탐색한 여섯 명은 두 차례 더 진법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먼저는 진우선만 능력을 발휘했으며, 두 번째로 들어갔을 땐 오로지 냉군상의 능력으로만 진을 빠져나왔다.
“다들 확인하셨겠지만, 진 무사의 능력만으로도 연환대진에 출입하는 것은 문제가 없겠소.”
“그렇소. 진 대협이 육합금강진의 기운을 계속 도우니, 확실히 움직임이 편하긴 하더구려.”
냉군상의 말에 교중학이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내당주님이 인도하실 때, 진법에서 생문을 찾아 나오는 게 훨씬 빨랐습니다.”
“하긴, 속도로만 따지면 거침없이 빠져나온 냉 대협이 배는 빨랐던 거 같군.”
제갈영의 말에도 교중학이 호응했다.
“그리고 두 분이 없다면, 저 연환 대진 속에서 나오는 게 한참 걸렸을 겁니다.”
백하련도 한마디 거들었다.
진법 속에서 잠시 확인해본 결과, 두 사람이 힘을 쓰지 않으면 누구도 나갈 길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일단 연환대진 속에 우리가 뜻하는 대로 출입할 수 있는 건 확인했소. 하지만 진법을 깨트리는 건 조금 더 방책을 찾아봐야 하오. 그건 내일 아침에 논의하는 게 좋겠소.”
“알겠소. 진 대협과 냉 대협을 비롯해 다들 고생하셨으니 푹 쉬시오. 내일 아침에 뵙겠소.”
냉군상의 말에 교중학이 가볍게 인사하고는 염성방의 진영으로 되돌아갔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각자 흩어졌다. 특히나 연환진법에서 비에 젖어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제갈영과 백하련이 얼른 돌아갔다. 내공이 얕은 두 사람은 몸을 오싹거리고 있었다.
그때, 파리한 안색의 냉군상이 진우선에게로 다가왔다.
“진 무사. 진법 속에서도 여러모로 도와주어 고맙네. 자네의 능력이 실로 대단하더군.”
“과찬이십니다.”
냉군상이 진우선을 추켜세우더니, 질문을 던졌다.
“자네도 이제 몇 번 봐서 알겠지만, 나는 무공을 발휘하여 진법의 요체를 파악하네. 그런데 내공의 소모가 커서 반 시진 정도를 펼치면 쉬어줘야 하지. 자네는 어떤가?”
“저는 기운의 흐름을 느끼는 것이기에 직관적으로 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큰 무리는 없습니다.”
“대단하군! 등봉조극에 오르면 천지간의 기운과 소통한다는 말이 사실이었어.”
“다행히 그런 모양입니다.”
진우선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뭇하게 웃던 냉군상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연환대진의 축을 몇 곳 확인했다네. 하지만 환영팔문진과 대라환영진을 잇는 축이었을 뿐, 연환대진의 중심축은 찾지 못했네. 자네는 어떤가? 혹시 발견한 게 있는가?”
“저 역시 그에 관해서는 크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까 들은 바대로 주의 깊게 살폈는데, 지세가 강한 곳들과 천세가 어디서 크게 흘러오는지는 파악했으나, 천지조화가 시작되는 곳은 찾지 못했습니다.”
천지조화가 시작되는 곳이 바로 연환대전의 중심축이었다. 이는 두 번 더 다녀오기 전에 냉군상이 설명해준 바였다.
“그럼 달리 진을 파훼할 방법은?”
“일단 기운이 흐르는 맥을 계속 끊다 보면 끝이 나오긴 하겠더군요.”
“얼마나 걸릴 것 같던가?”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만, 길면 열흘 정도일 듯했습니다.”
이는 진법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천지간의 기운의 흐름을 알 때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즉, 극경의 무인들이 취할 방책이었다.
“열흘이면 너무 길군. 아무래도 중심축을 얼른 찾아서 진을 깨트리는 게 좋겠네.”
“알겠습니다.”
“무얼 알겠다는 건가?”
냉군상이 돌연히 물었다.
진우선이 항상 알겠다고 하고 지금도 벌써 수긍하고 있으니, 그의 속내가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내당주님께서 아침저녁으로 반 시진씩 직접 들어가실 계획이시지 않습니까? 그때도 돕고, 그 외에는 제가 따로 천지조화의 축을 찾아보겠습니다.”
“허! 정확하군.”
냉군상이 감탄을 흘렸다.
그에 진우선이 핼쑥하다 못해 생기마저 없어 보이는 냉군상을 걱정하며 말했다.
“내당주님, 일단 얼른 쉬십시오.”
“알겠네. 고맙네.”
***
다음날이었다.
아침 일찍 연환대진을 살펴보고 온 냉군상이 소무강에게 말했다.
“소 대주. 진 무사가 진법의 요체를 파악할 것이니, 연환대진 내에서 그가 진세(陣勢)를 살피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알겠습니다.”
“진 무사는 아까 내가 부탁한 부분들을 자세히 살펴주시오. 그쪽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있었소.”
“염려 마십시오.”
진우선의 말에 냉군상이 창백한 얼굴로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소무강이 함께 온 진양각 십양의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금모룡과 정연서가 전방에 서고, 나와 진 대협을 축으로 하여 모두 십이금강진을 갖춰라!”
“옛!”
“넵!”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더니, 곧 십이금강진의 대형으로 섰다.
십이금강진(十二金剛陣)은 냉군상이 간밤에 육합금강진을 소폭 개량한 것으로, 육합을 둘이 감당하니 진양각의 일반 무인들도 충분히 금강진의 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제 적들이 느닷없이 공격해오더라도 어지간하면 무인들이 상대하기 충분했다. 진우선은 나설 필요가 없었다.
“소 대협, 들어가겠습니다.”
“진 대협. 이들은 십양에서도 정예들이며, 이미 일러두었으니 직접 명을 내리셔도 되오!”
“알겠습니다.”
소무강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으나, 진우선은 그의 눈빛에 담긴 뜻을 읽었다.
“전방의 두 분은 조심히 전진하시오.”
“네!”
“들어갑니다!”
정연서와 금모룡이 외치더니, 십이금강진을 이끌고 연환대진에 들어갔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의 깊숙한 곳까지 다다랐다.
쿠릉- 쿠르릉!
콰콰콰쾅-! 콰쾅-!
뇌우가 몹시 세차게 치고 있었다. 안개마저 자욱하게 내려앉은 까닭에 한 치 앞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이 바로 냉군상이 지목했던 장소였다.
“잠시 멈추시오.”
그 말에 십이금강진을 이룬 채 무인들이 멈춰 서서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진우선이 주의 깊게 흐름을 살폈다.
천세가 요동치듯이 흐르고, 지세는 곳곳에서 들끓어 올랐다. 기운이 수시로 좌충우돌하며 변화가 막심하여 쉬이 파악키가 어려웠
그때, 갑자기 진우선이 외쳤다.
“우측방! 적이오!”
“흐압-!”
채채챙-!
방위를 말한 순간, 십양의 무인이 기합을 터트리며 적을 맞았다.
“좌측방도 준비하시오!”
“넵!”
퍼펑-!
십이금강진의 좌우에 연차적으로 적들이 들이닥쳤다. 좌우가 앞뒤에 비해 약하단 걸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습격이었다.
‘천지조화의 축이 곧 모일 것 같은데…….’
진우선이 십이금강진의 대응을 살피면서도, 연환대진 내에서 일어나는 천세와 지세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지세가 드러날 때마다 뇌우가 내리쳐서 허점을 감추나, 이 둘이 오고 가는 데에 약간의 간극이 있었다.
잠시 후면, 그 간극들이 모여 한 번에 열릴 터였다.
‘저리 흐르면……!’
바로 그 순간!
“전방……!”
진우선이 경고를 다 쏟아내기도 전에, 강력한 일격이 터졌다.
퍼엉-!
뇌우 속에서 시퍼런 강기(罡氣)가 번쩍이며 쏟아졌다. 느닷없는 일격이었다.
“헛!”
금모룡이 당황하며 도신(刀身)으로 강기를 막았다. 도가 단박에 굽어졌다.
금모룡이 피를 토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전방을 지키지 못하고 금강진의 가운데로 튕겨 들어왔다.
‘제길! 강기라니!’
금모룡은 등골이 서늘했다. 동공도 심히 흔들렸다.
그는 십양의 부대주로서 부족하지 않은 무위를 지니고 있었으나, 아무리 십이금강진의 굳건한 힘이 있어도 강기를 막아내는 건 무리였다.
도에 기운을 불어넣어 막아내지 않았으면 도가 반으로 절단 나고, 강기가 가슴을 쩍 갈랐을 터였다. 생각만으로도 섬뜩했다.
그런 시퍼런 강기가 재차 날아왔다.
금모룡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연서. 피해!”
하지만 맑은 검소리가 들렸다.
스앙-!
섬광처럼 뻗어나온 쾌검이 시퍼런 강기를 갈랐다.
그에 짓쳐들어오던 강기가 튕겨 나가더니, 땅바닥에 내리꽂혔다.
금모룡이 너무 놀라 화등잔만 한 눈으로 정연서를 바라보았다.
“호오! 막았어? 대단한데?”
차분한 인상의 사내, 이문박이 정연서 앞에서 몸을 드러냈다. 그의 눈빛에 짙은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사나운 기세는 여전했다.
그는 매우 위험해 보였다.
‘연서가 저 자와 맞설 수 있다고?’
금모룡이 심히 떨리는 마음으로 정연서를 보았다. 적이 무서워서 놀란 것만큼이나 정연서의 감춰져 있었던 실력에도 놀라고 있었다.
한편.
“소 대협, 뒤에!”
이문박의 등장과 함께 십이금강진의 뒤편에서도 핏빛 강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퍼퍼퍼펑-!
소무강이 쏟아낸 검초들이 핏빛 강기를 모조리 쳐냈다. 뼛속까지 시린 빙기의 초식이었다.
“귀검이 네놈이었구나!”
돼지상의 중년인, 숙일위가 시뻘건 눈으로 길쭉한 곤(棍)을 휘두르면서 외쳤다.
“혈풍곤이군.”
소무강도 상대가 혈풍곤 숙일위인 걸 바로 알아보았다. 그의 힘이 심히 강해 보였다.
소무강이 한령신공을 더욱 끌어 올려 초식을 펼쳐나갔다.
쏴쏴쏴-!
서릿발 같은 빙기가 연거푸 쏟아 졌다.
숙일위가 재빨리 묵중한 철곤을 휘두르며 기운을 흩어냈다. 그는 묵중하고 길쭉한 철곤의 장점을 살려 한 초식 펼칠 때마다 소무강을 한 걸음씩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철곤을 횡으로 벼락같이 휘둘렀다.
콰콰쾅-!
바위조차 으깰 듯한 풍압과 함께 묵직한 강기가 마구 쏘아져 왔다. 숙일위의 진신절기이자 별호이기도 한 혈풍곤법(血風棍法)의 절초, 혈풍난세(血風亂世)였다.
“……!”
소무강이 눈을 부릅떴다.
그와 함께 빙혼검결(氷魂劍訣)의 절초를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려는 찰나!
화악-!
빛이 일었다.
순백의 빛줄기가 살기를 마구 뿌리는 혈풍을 완벽히 갈랐다. 혈풍의 뿌리부터 잘려나갔다.
“소 대협. 감사합니다. 이제 충분합니다.”
“그렇소?”
“네. 진세를 잠시 지켜주십시오!”
진우선이 검을 들고, 바로 광륜의 오행진기를 쏘아냈다.
새하얀 빛이 번쩍이는 순간, 세 가닥의 검광이 쏘아져 나갔다.
하나는 숙일위에게로.
둘은 진법의 어딘가로.
“커억!”
쾅-! 콰콰쾅-!
그에 비명 하나와 파쇄음 둘이 들려왔다.
숙일위가 진우선의 공격을 다 감당해내지 못해 뒤로 몇 장이나 밀려나며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파쇄음은 뒤편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였다. 그와 함께 반 이상 부서져 내린 바윗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바위는 진법을 일으키는 한 요소였다.
“돌아오시오!”
그때, 두 바위 사이에서 윤건을 쓴 중년인이 외쳤다.
숙일위가 얼른 그 속으로 몸을 숨겼다.
진우선이 땅을 박찼다. 그를 뒤쫓기 위해서였다.
한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쿠쿠쿠쿠쿵-!
지세가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또한, 바위도 형체를 감췄다.
어느새 진세에 숨어버린 것이다.
우르릉-!
콰르릉-!
콰콰콰콰콰쾅-!
시꺼먼 하늘에서 마구 뇌성벽력이 터져 나왔다. 뇌우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모두 대형을 유지하라!”
진우선이 아쉬움을 감추며 진세로 돌아왔다.
그런데 반 각 후였다.
변화막측한 천지조화가 걷히더니, 어두컴컴한 밤이 그들을 덮쳐 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진우선이 그 변화를 즉각 알아챘다.
“진세가 바뀌었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천지무로절행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