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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검전-149화 (149/225)

149.

#잠 못 이루는 밤 (3)

궁가장 대문 위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백의백발백 안으로 심히 괴이했다.

특히 백안에서 흘러나오는 귀화가 타오르기까지 하니, 귀왕(鬼王)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잔백마군!’

진우선이 귀무를 뚫고서 그를 알아보았다.

궁가장의 외곽은 이미 육합귀문진으로 뒤덮인 상황이었으나, 그건 진우선에게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가장 거슬리는 문제는 잔백마군이었다.

‘귀기가 그의 것이다!’

그의 날숨에서 귀기가 흘러나오고, 육합귀문진을 돌며 강렬해진 정수가 들숨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러니 잔백마군이 육합귀문진의 주인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여섯 개의 축 중에 세 개라도 급히 무너뜨리고 온 게 그래서였다. 축을 놔둘수록 더 많은 귀기가 정련되고, 잔백마군은 더 많은 정수를 흡입할 테니까.

솨아악-!

진우선이 잔백마군을 향해 달려가면서 광륜검을 힘껏 휘둘렀다.

섬광이 번쩍이더니, 빛살을 머금은 세 줄기의 검강이 삽시간에 허공을 격하고 날아갔다.

그 순간, 잔백마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눈에 어린 귀화가 일그러졌다.

동시에 섬뜩한 귀기들이 심혼을 꿰뚫을 듯이 진우선에게로 쏘아졌다.

귀무가 벽처럼 서서 검강을 막아내고, 귀기들이 검강에 들러붙어 마구 흩트렸다.

쎄애액-!

끼기기긱-!

영혼에마저 소름이 끼치는 이명이 들렸다. 그 소리가 지속되니 머릿속이 지끈거렸다. 잠시 후, 검강의 기운이 소멸한 후에야 기음이 사라졌다.

“과연 진우선이구나! 정말 강하군. 흐흐.”

잔백마군이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귀기를 이렇게 쓸 줄이야! 이곳에 내린 귀무를 다 상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과연 잔백마군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무시무시하군.”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군. 감히 바로 상대해낼 수 있다고?”

“당연하오!”

화르륵-!

진우선의 검에 푸른 불길이 어렸다. 이화가 유형화되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화라라락-!

귀무가 삭둑 베어져 나갔다. 검의 기운이 뻗치며 이화가 흩뿌려져 사방을 마구 태웠다.

“큭-!”

잔백마군이 짧게 신음을 흘렸다. 그의 표정은 미동조차 없었으나, 눈에서 뿜어지는 귀화가 잠시 흔들리고 있었다.

번쩍-.

잔백마군의 백안이 다시금 귀화를 내뿜었다. 그와 동시에 시리도록 새하얀 광채가 눈에서 마구 타오르기 시작했다. 귀린마염공이었다.

-귀부(鬼府)의 망혼(亡魂)들은 들으라! 나 잔백마군이 명할지니, 구유(九幽)에서 일어나 구한(仇恨)을 쏟아내어……

잔백마군의 입에서 심령을 섬뜩하게 옥죄는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우선은 물론이거니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느낄 뿐이었다.

‘이 귀기는 인세의 음기가 아니다!’

진우선이 잔뜩 경계하여 검에 이화의 기운을 더 피워 올렸다. 실제 로는 이화의 화기가 오행진기의 주축이 되어 광륜을 휘휘 돌고 있었다.

그리고 잔백마군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잔백마군의 눈에 어린 귀화가 허공에 잔영을 그리며 흐트러졌다.

그와 동시에 잔백마군이 손짓하자, 음산한 바람이 피어났다.

고오오오-!

스산한 바람 소리에 심령이 얼어 붙는다. 어지간한 무인이었으면 그랬을 것이다. 귀부음풍마기(鬼府陰風魔氣)의 스산한 음기가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하는 까닭이었다.

음풍의 시작은 작았으나, 일순간에 마구 회오리치더니 곧 작은 폭풍이 되어 걷잡을 수 없어졌다.

그게 마주쳐오는 진우선을 맞았다.

그 순간!

진우선이 이화를 잔뜩 머금은 광륜의 오행진기로 광영무의 한 초식을 펼쳐냈다.

검초가 흐르는 궤적을 따라 밝고 환한 빛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주변을 그늘진 곳 없이 환히 비추었다.

음풍이 불어오는 곳, 음기가 깃드는 곳, 귀무가 남아 있는 곳을 모조리 날려버릴 심산이었다.

광영무의 광명천하(光明天下)라면 그것이 가능하리라.

화아아아아-!

진우선이 쉼 없이 광명천하의 검초를 마구 뿌렸다.

그에 잔백마군의 새하얀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귀화가 마구 일렁이고 있었다.

“크큭! 귀기와 상극이구나, 네놈은!”

잔백마군의 음성이 몹시 기괴했다. 기쁨과 노여움의 감정이 한데 섞여 있다니!

그러더니 곧장 눈을 끔뻑 감았다가 떴다.

그 순간!

지이잉-!

눈에 어린 귀기가 강(罡)을 이루어 쏘아졌다. 서릿발처럼 시린 살기를 품고서 진우선에게로 쭈욱 날아갔다.

귀안마강(鬼眼魔罡)이었다.

“흡!”

진우선이 놀란 눈으로 급히 숨을 마셨다.

보는 대로 참(斬)한다.

귀왕의 눈길에 닿으면 육신은 어느새 잘려 있는 것이다.

귀안마강은 마주하는 것조차 안 될 정도로 위험했다.

진우선이 얼른 귀안마강의 줄기를 피하며, 광영무의 초식에 따라 몸을 날렸다.

진우선의 신형이 순식간에 공간을 격하고 다가갔다.

그 직후, 거의 동시일지도 모르는 순간에 진우선의 검세가 한 번 더 공간을 격하고 잔백마군에 닿았다.

쏴앗-!

검에서 폭발한 빛이 잔백마군을 덮쳤다.

곧이어 폭발의 그림자도 잔백마군을 뒤덮었다.

“커헉-!”

잔백마군이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냈다.

양광폭(陽光爆) 일영수천(日影垂天).

둘이면서 하나일 수도 있는 광영무의 절초가 펼쳐진 까닭이었다.

그와 동시에 귀안마강이 깨졌다.

어느새 무릎을 꿇은 잔백마군은 백안도 꺼져버린 상태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왼쪽 눈에서 피도 터져 나오고 있었다.

“크아악-!”

잔백마군이 비명을 터트렸다. 갈기갈기 찢긴 음성은 마치 무저갱에서 올라온 소리 같았다. 그러더니 곧장 악에 받쳐 소리쳤다.

“다 죽어버려-!”

퍼퍼퍼퍼펑-!

사방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마구 들리기 시작했다.

“헛!”

진우선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설마 잔백마군이 귀기들을 폭발시켰을 줄이야.

“크흐흐!”

잔백마군이 섬찟한 웃음을 흘렸다.

“잔백마군~! 내가 네 뜻대로 되도록 놔둘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진 진우선이 곧장 궁가장으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몸은 보이지도 않았다. 신형이 사라진 자리에 목소리만 남은 것이다.

진우선의 온몸에서는 어느새 광륜의 오행진기가 피어올라 있었고, 광륜검은 당장이라도 초식을 쏟아낼 태세였다.

‘광명천하다. 이걸로 궁가장에 드리운 귀무의 잔재를 단숨에 날려 버려야 해!’

***

퍼퍼퍼퍼펑-!

귀기가 폭발했다.

“이, 이런!”

“모두 피하시오!”

귀무가 드리워진 곳에서 연쇄적으로 귀기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귀무가 폭발하는 거라고 봐야 하리라.

“마군이 반각밖에 못 버틸 정도였다니!”

우도 초무량이 난감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잔백마군의 귀기가 급히 무너진 것을 느낀 까닭이었다.

“크윽!”

그 앞에 선 관무평이 고통에 신음했다. 도로써 몸을 지탱하고 위태롭게 서 있었는데, 이조차 마지막 자존심으로 버티는 것일 뿐이었다.

‘초무량이…… 한 수를 감추고 있었어!’

관무평은 초무량으로 인해 지독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얼마나 정양에 매진해야 다 나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귀무라도 근처에 있었다면 벌써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그는 미처 알지 못했겠지만, 초무량이 싸우고 있어 귀영이 다가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어쨌거나, 관무평이 힘겹게 정신을 붙잡은 채로 눈앞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초무량이 아직 흑우신마도를 되찾지 못한 건 청년 때문이었다.

“네놈만 아니었으면 이미 내 도를 차지했을 것을!”

초무량이 청년을 보며 이를 갈았다.

“당신은 영영 그걸 가질 수 없다.”

“왜지? 조부가 잃어버린 도를 손자가 되찾겠다는데!”

“내가 막아섰으니까.”

“크흐흐.”

초무량이 무정한 표정을 깨고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사실, 그의 무심은 조금 전에 귀기가 폭발하며 이미 깨진 상태였다.

그가 자신을 막아선 청년을 바라보았다.

“벽력창을 이었나? 그의 창술이 보이던데.”

“삼 년간 스승으로 모셨지.”

“나머진 다른 거로 채웠군. 대단한 무재야.”

초무량이 묵창을 든 청년, 만총에게 감탄을 흘렸다.

만총은 이미 관무평보다 한 수 높았으며, 무공을 자신의 것으로 체득해낼 줄 알았다. 이대로 두면 계속 발전하리라.

힘을 아낀다면 몇 초식 더 어우러질 수 있었으나, 이제 그럴 새가 없었다. 잔백마군이 무너졌으니, 뒤를 생각해 힘을 비축해둘 여유가 없는 까닭이었다.

“잠시 재미있었다. 이만 끝내지.”

“흐압-!”

잠시 내력을 골랐던 만총이 기합과 함께 묵창을 내질렀다.

천뢰신창의 강맹한 초식에 흠뻑 담긴 뇌정일기신공의 공력이 초무량에게로 쏟아졌다.

투투퉁-!

초무량의 흑도와 만총의 묵창이 무거운 충돌음을 토해냈다. 둘의 강기가 연거푸 충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무량의 도강(刀罡)이 종전보다 훨씬 강해진 탓에, 만총의 창격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읍-!’

만총이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뇌정일기신공의 뇌력은 여느 내공보다 강맹하여, 같은 깊이의 수련을 쌓았다면 무조건 우위를 차지할 만큼 뛰어났다.

그래서 여태까지 초무량의 공격들을 어찌저찌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초무량이 뒤를 생각하지 않고서 힘껏 공력을 뿌려오니 쉬이 막아내기 힘들어졌다.

“만 소협! 제발 조금만 더 힘내세요!”

뒤에서 제갈영이 소리쳤다. 그녀는 초조한 마음에 손과 등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만총이 있어 그녀와 백하련과 냉군상과 궁목철이 아직 무사할 따름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미 이승을 하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백하련이 제갈영의 손을 잡았다.

“백 책사님?”

“조금만 기다리죠.”

백하련이 차분한 눈빛을 보이며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지금 검광을 뿌리면서 전각들을 마구 뛰어넘으며 달려오는 한 인영이 보이는 까닭이었다.

“아-!”

제갈영의 간절한 마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한편, 반대편에서는 힘겨운 싸움이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크윽-!”

캉캉캉-!

도에서 불꽃이 튀며 날카로운 소리가 계속 터져 나왔다.

한효기가 죽기 살기로 도를 뿌리고 있었다.

“철노! 당신도 이랬을 줄이야! 뭐라고 말 좀 해보시오!”

철노는 초무량의 시종이었다.

한효기는 술에 빠지기 전에 초무량과 자주 어울렸는데, 그때에 철노와도 상당한 관계를 쌓았다.

종종 그에게서 삶의 경륜을 배운 적도 많았으며, 실의에 빠졌을 때 많이 의지하기도 했다.

또한, 도법도 같이 수련하지 않았던가.

“…….”

하지만 철노는 아무런 말없이 무심하게 계속 도를 휘둘렀다.

카앙-!

두 사람의 도가 부딪치며 다시 격한 충격이 사방으로 번졌다.

한효기가 반탄력을 타고서 힘껏 도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천지를 양단할 듯이 내리그었다.

단천도법(斷天刀法)의 절초였다.

‘베면 끝이다!’

그 순간, 철노의 도가 보였다. 도 너머로 그의 눈도 보였다.

여태껏 무심했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눈빛은 오만가지 감정을 담아서인지 말로 형용키 어려웠다.

‘철노는 왜…….’

잠시 망설여졌다.

그때였다.

-효기님. 훌륭한 도법을 익히셨군요. 하지만 베야 할 때 베지 못하면, 자신이 베이는 법입니다. 도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습니다.

한효기가 도를 내리그었다.

그 순간, 도에 처음으로 도강(刀罡)이 슬쩍 어렸다.

즈응-!

철노의 도가 잘렸다. 그의 몸도 반으로 잘렸다.

그가 쓰러지며 작게 중얼거렸다.

“……좋습니다. 좋아 보입니다.”

“허어!”

한효기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힘이 든 건지, 허탈한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눈물이 눈가에 맺히고 있으니 허탈한 마음 때문이리라.

한효기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후련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들었다.

“아-!”

순백의 맑은 기운이 덮쳐오는 걸 느꼈다.

진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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